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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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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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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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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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박하는 갈등

DUMMY

“강화라고? 왕국은 종전할 의사가 있다는 소리인가?”

“그건 황제께서 내릴 결단에 달렸습니다.”


네이아르 백작은 미리 대답을 준비해온 것처럼 즉답했다.


“잘 아시다시피 제국의 침공으로 인해 왕국은 크나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농경지는 불타고 성은 무너졌으며, 수많은 국민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에 대한 보상을 요구하는 건 승전국의 권리라는 게 왕실의 견해입니다.”

“음.”


레스트는 목을 가다듬었다.


“첫 침공이 실패한 건 사실이라 하나 제국은 아직 완전히 패배하지 않았다. 그대는 이미 승자가 정해졌다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인가?”

“바로 그렇습니다.”


당연하지 않느냐는 투의 백작의 말. 물론 레스트도 반론하고 싶었으나 지금의 왕국과 저번 같은 싸움을 반복한들 같은 결과가 되풀이된다는 것을 아는 이상 그럴 순 없었다.


“그래, 우리도 소모전을 계속할 생각은 없다. 자네의 조건을 한번 들어보도록 하지.”

“불타버린 토지의 재건, 무너진 건축물의 보수 작업, 인적 피해에 따른 위로금, 그리고 그 외 복구 작업의 비용 총액의 부담입니다. 자체적으로 계산한 결과 대략 462만 개의 금화가 들겠지요.”

“460만 개라고?!”


천문학적인 금액에 레스트가 놀라기도 전에 판테온이 먼저 소리쳤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지금 장난치는 겁니까? 그런 정신 나간 보상, 제국이 순순히 넘겨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백작은 이런 자리에서 농담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을 터입니다.”

“르윈 판테온 경, 기분은 잘 알겠지만 이건 무리한 요구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무턱대고 쳐들어와 이런 피해를 끼친 제국이 잘못한 거지요.”


백작은 판테온의 서슬퍼런 기색에 조금 기가 눌린 것 같았지만 담백하게 말했다.


“저는 단지 왕실이 제시한 강화 조건을 전달하러 왔을 뿐, 제국이 그에 응하라고 강제하는 건 아닙니다.”

“제국의 국내 총생산의 절반이 되는 금액을 불러놓고, 그걸 조건이라고 하는 겁니까?”

“판테온, 마음은 알겠지만 물러나있어라.”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판테온에게 주의를 주어 조용히 시킨 레스트는 강화 조건을 찬찬히 되짚어보았다.


왕국에서 전사한 30만의 제국군은 상비군으로만 꾸린 게 아니다. 왕국에서 벌어진 쿠테타에 수많은 시민들이 공분했기에 징집을 하지 않아도 모집병으로만 숫자를 채울 수 있었던 것이다.


그 30만이 전사했다는 건 그만한 사람들이 매일같이 기여하던 경제활동에 구멍이 생긴다는 소리. 사망한 자들의 대부분이 젊은 층이라는 것도 심각했다. 전쟁 전과 비교하면 이미 하락세에 들어선 제국의 경제로 강화 조건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인가.


“왕국의 요구를 따르지 않고 전쟁을 계속할지, 보상금을 내고 종전할지는 제국의 판단입니다. 단, 결정을 미루는 일 없이 바로 내려주셔야 합니다.”


백작은 저리 말하고 있지만 어느 쪽을 택해도 제국은 파국을 맞는다.


“제국은 알리시아 폰 지오돌프 왕녀의 신병을 구속하고 있지. 그녀를 협상 테이블에 올릴 생각은 없나?”


레스트가 꺼낸 말에 알현실에 동요가 일었다.


제국은 알리시아 왕녀의 망명을 정식으로 받아들이고, 그녕디 일가족이 살해당한 것에 대한 국민의 공분으로 군을 움직이기까지 한 것이다.


여차하면 왕녀를 넘겨도 좋다는 속내가 담긴 레스트의 제안은 밖으로 새나가면 폭동이 일어날 정도로 언어도단이었다.


“왕녀의 행방은 저희의 관심 밖입니다.”


그런 이야기가 나올 줄 알았다는 듯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굳이 따지자면 전 왕녀라고 해야겠지요. 정권이 새로 들어서면서 왕녀의 지위는 전부 박탈당했습니다. 제국에 망명한 이상 왕국의 국민조차 아닙니다.”

“왕가를 숙청한 건 혹시 모를 불씨를 남겨두지 않기 위해서가 아니었던 건가?”

“그런 이유도 일부 있지만 본보기를 보여주기 위해서였겠죠. 침공을 물리치고 신 정권의 기반이 튼실히 다져진 지금, 알리시아 전 왕녀는 아무 가치도 없습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던 레스트는 싸늘한 눈으로 네이아르 백작을 보았다.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응하지 않을 경우 자네는 적국의 중요 인사가 된다는 소린데. 그게 무슨 소리인지는 자각하고 있겠지?”

“맨몸으로 찾아온 사절에게 그런 만행을 벌인다니, 제국다운 판단이 아니지 않습니까?”


합당한 지적이었다.


국제적으로 따르게끔 정해진 전쟁법은 없지만, 단지 서신을 전달할 뿐인 사절을 해치는 건 절대 하면 안 되는 금기로 여겨졌다.


사절을 보낸다는 건 기본적으로 대화의 장을 열자는 제스쳐. 전쟁엔 언제나 양쪽의 희생이 따르니 그걸 뿌리치는 건 어리석고 오만한 행동이었다. 그런 관행에는 한 국가의 긍지가 걸려있다고 보아도 좋았다.


“왕국은 이미 제국군의 장성을 포로로 잡아두고 있어.”


하지만 레스트는 원래부터 긍지 같은 것에 크게 연연하는 성격은 아니었다. 사소한 룰을 조금 깬다고 해도 결과만 좋으면 되는 것이다. 작은 것에 얽매일 상황이 아니라는 것도 한몫했다.


“아무리 패군지장이라지만 그녀는 제국에 빠질 수 없는 인재지. 자네도 지그문드 정권의 숙청을 피하고 높은 자리를 꿰찼다고 알고 있는데, 우리라고 해서 같은 걸 하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ㅡ”

“아, 그거는 조금 정정해드려야 되겠는데.”


백작이 뭐라 반론하려는 걸 끊어버리며, 대화에 참여하는 일 없이 관망하던 아인이 입을 열었다.


“무례한 놈! 먼저 신분을 밝히지도 않고 발언하다니!”


표정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던 판테온이 다그쳤다. 그게 무슨 대수냐는 듯 사내는 어깨를 으쓱했다.


“나는 가름. 이 백작의 감시역이자 호위로 따라왔다고만 알아두면 돼. 황제가 말하는 걸 듣다 보니 잘못된 정보가 있어서 말이야.”

“호오? 어디가 잘못됐다는 건가.”


이런 아인이 왕국의 상층부에 있다는 정보는 레이아로부터도 듣지 못했지만 백작의 감시역을 자처할 정도면 꽤나 중요한 직책을 맡고 있는 것이겠지. 레스트는 주시하던 대상을 백작에게서 가름으로 돌렸다.


가름은 발로 대리석 바닥을 천천히 두드리며 날카로운 눈매를 레스트에게 향했다.


“우리가 포로로 잡고 있다는 장성. 그거 바르포르도라는 여자를 말하는 거 맞지?”

“그렇다.”

“그 여자, 얼마 전에 죽었어.”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을 가볍게 입에 담는 가름.


레스트는 그게 무슨 뜻인지 바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몇 번이나 곱씹어보고 나서야 그가 말한 게 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뭣...!”


레스트는 자신도 모르고 왕좌에서 벌떡 일어섰다.


말도 안 된다. 그녀가 죽었을 리가 없다. 언제나 승리의 깃발을 흔들며 돌아오던 그녀가 이제는 돌아오지 못한다니. 그런 건 있으면 안 되는 일인 것이다.


바르포르도의 이름을 모를 리가 없는 다른 가신들도 충격을 금할 수 없었는지 작은 소란이 일었다. 황제에게 최고로 신임 받는 제국의 일등공신. 수많은 전장을 누비던 번견이 사망했다고?


“심문 도중에 자살했다고 하더라고. 그러니 왕국이 구금하고 있는 포로는 더 이상 없어. 그 여자 말고는 전원 사망했으니까. 그 많은 죽은 인간들 시체 처리하는 건 정말 고생이었지.”


별것 아니라는 말투를 일관하는 가름.


레스트의 몸은 분노로 떨리고 있었다.


“지...금 네 녀석이 말한 사실이 뭘 뜻하는지 알기나 하나?”


수십만의 병력을 잃었다. 소국이라고 무시하고 있었던 왕국에게 꼴사납게 패배했다. 하지만 바르포르도가 살아있으면 제국군은 언제나 다시 일으킬 수 있다.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녀를 무사히 되찾을 수 있으면 조금 무리를 해서 왕국의 비위를 맞춰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바르포르도가 없는 제국은 상상도 할 수 없었으니까.


그런데 그녀가 죽었다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바르포르도가 스스로 그런 선택을 내렸을 리 없다. 거짓말은 집어치우고 당장 진실을 말하는 게 좋을 것이야.”

“그거야, 나도 직접 본 건 아니지만 누님이 전달해준 내용이라 진위는 틀림없을 거라고?”


가름은 짧은 머리를 긁적이며 또박또박, 느리게 말했다.


“당신네 흡혈귀는 자살했다, 이건 바뀌지 않는 사실이야.”


그 말에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었다.


판테온은 당장이라도 검을 빼어들고 달려들 기세였고, 데네브와 티아레트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러니 백작이 말한 대로 우리의 요구를 따를지 말지 빨리 결정하라는 거지. 너무 질질 끌면 알아서 결론을 내려버릴지도 모르니까. 형씨는 이 나라의 제일 높으신 분인 거잖아?”

“너희는 지금 내 나라의 중심에 있다. 아무리 사절로 제국을 찾았다고 해도 내가 그럴 마음을 먹으면 오만불손한 네 놈을 사로잡아 처형해 목을 내거는 일도 어렵지 않다는 걸 아나?”


레스트의 위협을 뒷받침하듯 양 옆에 도열한 근위병들이 쥔 무기에 힘이 들어갔다.


“글쎄. 그건 잘 모르겠는데. 그렇게 쉽게 되려나. 내가 마음만 먹으면 여기 있는 전원, 사망일 텐데 말이지.”


가름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자는 없었다. 저 마족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근거리에서 숫자로 밀리면 질 수밖에 없다.


“조금 지저분해지겠지만 아직 전쟁 중이니 별로 놀랄 일도 아니지 않아? 그러니 빨리 결정하셔.”


이 남자의 페이스에 말려버리면 왕국과의 전쟁은 계속된다. 레스트는 충신의 죽음에 분노하는 와중에도 냉정한 판단을 잃지 않았다.


문제는 그의 부하는 인내심을 발휘하지 못했다는 것이었지만.


“티아레트!”


긍지 높은 제국의 일원으로서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겠지. 판테온은 고함을 지르며 발도, 가름이 서있는 곳으로 뛰었다.


“이 건방진 놈을 처단한다!”


그의 외침에 반응한 티아레트가 공중에 만들어낸 시미터 세 자루가 회전하며 가름의 머리에 쇄도한다.


“흠.”


가름은 백작을 저만치 밀쳐버리며 자신을 향한 공격을 응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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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10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21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7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5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42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8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97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50 9 10쪽
87 난투 +2 19.11.21 342 10 9쪽
»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6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45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9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55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9 10 10쪽
81 마력 증강 +1 19.10.31 386 11 11쪽
80 포로의 결정 +1 19.10.27 392 11 11쪽
79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19.10.24 398 13 10쪽
78 바르포르도 +1 19.10.20 395 1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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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93 11 10쪽
75 세계수 +1 19.10.10 427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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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설원 +1 19.09.29 444 11 11쪽
71 류아 +2 19.09.26 474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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