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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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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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22 0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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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스카디

DUMMY

“자유의지라는 건 말이지. 어느 생물에서든 제일 중요한 거라고 할 수 있다. 타인에게 조종당할 뿐인 인생은 빈껍데기뿐인 거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그런 면에서 자유의지를 박탈당하는 건 개인에 있어 죽음보다도 더한 것일 수도 있지.”


나는 잔을 살짝 흔들어 그 안의 술이 찰랑거리게 했다.


“하지만 과연 자유의지의 박탈을 강요하는 건 악인가? 누구나 살아가며 어느 정도로는 타인의 의지를 구부리고 침범한다. 그걸 하지 않으면 일용할 양식을 얻는 것조차 불가능하지. 사냥꾼은 사슴의 살고자 하는 의지를 박탈하고, 관리는 세금을 걷어 사냥꾼의 조금이라도 나은 삶을 살고 싶다는 의지를 꺾는다. 이렇게 만연한 것이 과연 도의적으로 어긋났다고 할 수 있나?”

“정당하고 하지 않고의 여부를 떠나, 각자의 입장에서 끝까지 저항하는 것 또한 만연하지요.”


티테이블 건너편에서 차분히 말하는 건 드래곤 마을 라드레이드의 수장. 현자 디.


“농락당한 끝에 벼랑 끝으로 떨어질 걸 알면서도 가만히 있을 사슴은 없답니다.”


재치있는 대답에 나는 살며시 웃었다.


“지당한 말이야. 아무리 만연한 것이라 해서 당하는 걸 기꺼워할 놈이 이 세상에 몇이나 되겠어.”


바로 성사된 디와의 독대는 거친 말이 오가지는 않았지만 꽤 살벌했다.


“하지만 저항한 결과가 더 빠른 파멸이라면 그거야말로 낭패지. 디, 너는 내 정체를 눈치챘을 때 그걸 깨달았을 텐데.”

“칠흑의 마왕, 류셀.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숨길 생각도 없어 보이시던걸요.”


디는 고개를 까딱였다.


“역대 어느 마왕보다도 검은 마나의 사용에 능숙하며, 미지의 방어형 고유스킬을 지닌 새로운 마왕. 소년의 모습을 했으나 괴물이라는 호칭이 더 어울리는 자.”

“너무한 평판이군. 같은 마족끼리 할 소리는 아닌 것 같아. 인간이라는 공통의 적을 두었으면 내 출현에 기뻐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알고 계시겠지만.”


디는 여전히 무감정한 목소리를 내었다.


“저희 드래곤은 인간과 불가침 조약을 맺었습니다. 인간을 적으로 보고 있지 않을뿐더러, 아래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여할 이유도 없습니다.”

“그렇게 자신들은 폭풍으로부터 안전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영겁의 시간 동안 살아온 것이겠지. 하지만 이번은 상대가 다르다. 너희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나를 두려워해야 해.”


방관자의 입장을 자처하면서도 나에 대한 건 꽤나 알고 있는 디. 그 모순은 재미있었다.


“드래곤이 끝까지 마왕군 참가를 거절하겠다면 나는 마왕으로서 너희라는 위험인자를 제거하겠다. 설득하려 해봤자 시간만 아깝고 말이야.”

“동행한 두 아이들은 큰 전력이 되지 않을 텐데요. 혼자 라드레이드 전체를 상대하시겠다는 겁니까.”


나는 흥, 하고 코웃음을 친다.


“그 둘은 이미 귀환시켜두었다. 그 대신 믿음직한 부하를 불러오는 방법도 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군.”


나는 탕. 하고 잔을 내려놓는다.


“말했지. 선택하는 건 너라고. 결정해라. 지금 여기서 몰살당할지, 고개를 숙이고 내 산하에 들어올지.”


디가 쓰는 마법은 무슨 원리인지는 몰라도 내 암 속성 마법을 봉인할 수 있다. 하지만 내 고유스킬이 있는 한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다. 물리공격이든 마법공격이든 내게 통하는 공격은 없는 것이다.


“나에 대해 그 정도까지 알고 있다면 네 승산이 희박하다는 것도 알고 있겠지. 현자로서 올바른 판단을 할 거라 믿고 있다.“


바로 굽힐 거라는 내 예상과 달리 디는 협박에 가까운 내 강요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저도 이 산이 다툼에 휘말리는 건 원치 않았지만... 류셀. 당신은 아무래도 한가지, 착각을 하고 있는 것 같군요.“

”착각?“


자리에서 일어선 디는 낯선 것을 만지작거리는 것처럼 자신의 몸을 쓸어내려 갔다.


”저는 드래곤들을 이끌고 있는 몸이긴 하지만 드래곤은 아닙니다. 제2의 라그나로크를 일으키려는 당신들의 편에 붙을 이유는 없어요. 이치를 따지자면 오히려 신들에 가세해야 하는 처지겠지요.“


디의 눈빛이 변했다. 위화감 가득한 겉모습에 유일하게 진실한 것이 보인 순간이었다.


”디는 제 본명이 아닙니다. 사정상 짧게 줄여 부르는 것뿐이지요.“

”너는...“

”스카디, 라고 들어보셨나요.“


한치의 예고도 없이 온도가 급격하게 하락.


공기마저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가 돌기 시작했다. 마법을 쓴 기색은 전혀 없다.


에델가르드 때와 마찬가지다. 이 영도의 추위는 디가 있는 곳이면 자연스레 나타나는 종류.


하지만 빙결의 마수와 급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난다는 것을, 아직 일 합도 나눠보지 않은 나는 알 수 있었다. 시이나의 웨어울프의 감각이 곤두섰던 데는 전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살짝 싸늘하겠지만 그게 이곳의 본 모습입니다. 이 산은 과거 트림하임이라고 불렸습니다. 추위는 제 재량으로 없애고 있는 것뿐이죠.“


인간이라면 한숨만 들이마셔도 폐가 얼어붙을 정도의 한기. 그걸 당연하다시피 불러낼 수 있는 디는 드래곤도, 마수도 아니다.


”그랬군. 그랬어.“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현자의 정체는 티야치의 딸. 사냥과 겨울의 여신 스카디였나.“


이 여자는 드래곤같은 게 아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뭔가 이상하다 싶었더니, 생물조차 아니었던 것인가.


”스카디.“


그 이름은 북유럽 신화를 담은 책에서 접해본 적이 있다. 거인족이면서도 다른 신들과의 관계는 우호적이었으나, 난폭한 성격으로 힘을 아무렇게나 휘두르곤 했다는 설이다. 라그나로크에서도 신들의 편을 든 그녀에 대한 기록이 많이 남아있지는 않았지만, 확실히 이질적인 존재다.


”영원한 겨울의 지배자, 네가 라그나로크의 생존자일 줄이야.“

”네, 중립을 유지할 생각이었지만 꼭 어느 쪽을 고르라 강요한다면 저는 천계의 편에 서겠습니다. 펜리르와 가름의 주인이여.“


스카디가 내 부하의 이름을 거론하자 나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최악의 마수인 그 둘을 다시 살려낸 시점에서 당신은 제 적이었습니다. 친다면 세계뱀 요르문간드가 아직 없는 지금이 절호의 기회겠지요. 당신이라면 그조차 명계에서 불러낼 수 있을지도 모르니 말이에요.“

”철저히 조사한 모양이군, 스카디. 확실히 세계뱀이 있으면 좋은 전력이 되긴 하겠지만 말이야.“


나는 바로 고유스킬을 발동했다. 언젠간 신과 맞서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일찍 조우할 줄은 모르고 있었다.


”살아남은 신이 어째서 천계에 머무르지 않고 여기 있는 거지? 그런 위장까지 하면서.“

”누군간 이 아이들을 보살필 책임이 있었으니까요. 드래곤은 고고히 살아가며 과거의 기억을 간직한 존재. 마왕이 함부로 다툼에 끌여 들어도 되는 생물이 아닙니다.“


드래곤을 치러왔지만 나타난 장애물은 무려 겨울의 신.


돌발상황이지만 해야 할 일은 바뀌지 않는다. 신을 치는 건 본래 최종계획의 일부다. 요컨대 이 여신을 쓰러뜨리면 될 일이다.


”신살은 처음이라 기대되는군. 기대에 부응해줬으면 좋겠어.“


봉인당할 게 뻔한 암속성 마법은 시도하지도 않는다. 겨울의 여신에 대항하려면 화 속성 마법이 제격이겠지. 신살 무기가 없는 지금 공격이 통할지는 미지수지만.


속으로 마법 순서를 생각하고 있으려니 스카디가 말했다.


”부하를 부르지 않아도 되겠나요? 암속성 마법을 봉인당한 당신은 저를 칠 수 없을 텐데요.“

”걱정은 고맙지만 아까 말한것처럼 나 혼자서도 충분하다.“


린과 가름을 비롯한 내 부하들은 각자 위치에서 분발해주고 있다. 나 역시 라드레이드에 온 이상 꼴사납게 부하의 손을 빌리지 않고 목적을 완수하고 돌아가야 하겠지.


”그럼 사양않고.“


스카디의 모습이 희미해지더니 가녀린 여인은 곧 사라졌다.


그 대신 나타난 건 큰 천장을 가득 채울 정도의 거구를 가진 거인. 이제는 추위 정도가 아닌, 한층 더 강한 눈보라가 몰아친다. 실내에서 눈보라라니, 거짓말 같지만 이게 신의 권능이다.


”어리석게도 신에 거스르려 하는 칠흑의 마왕이여, 세계의 균형을 위해 당신을 처단하겠습니다.“


한 발자국 앞도 보이지 않는 눈보라 사이에서 그런 목소리가 들렸다.


”풀캐스트: 비스 비레스.“


내가 바로 전개한 초고위 화염 마법은 불사조와 흡사한 형상으로 눈보라를 뚫고 날았다.


화아악ㅡ!


세차게 내리는 눈이 잠깐 기세를 꺾는다. 같은 마법진은 수십 개, 동시에 띄운 나는 사무적인 표정을 띄우며 말했다.


”영원한 겨울을 내리게 하는 여신이여, 길고 긴 추위의 끝을 고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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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연극의 막을 올리다 +1 20.03.18 292 7 9쪽
117 함락 +1 20.03.15 293 8 8쪽
116 드리워지는 그림자 +1 20.03.12 431 7 8쪽
115 전장에 울려퍼진 총성 +1 20.03.08 295 5 9쪽
114 불타는 도시 +1 20.02.29 282 9 9쪽
113 마왕군의 침공 +1 20.02.26 305 7 10쪽
112 의외의 고백 +1 20.02.23 308 6 11쪽
111 온천 +1 20.02.20 292 7 10쪽
110 난입 +1 20.02.16 294 8 8쪽
109 분노 +3 20.02.13 313 8 9쪽
108 피바람 +1 20.02.09 310 8 9쪽
107 방아쇠 +1 20.02.06 286 10 9쪽
106 용족 소녀 +1 20.02.02 326 9 11쪽
105 현자 +1 20.01.31 288 12 8쪽
104 임무 실패 +1 20.01.23 302 9 9쪽
103 용의 이상향 +1 20.01.19 306 11 10쪽
102 꽃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1 20.01.16 301 8 12쪽
101 어쩔 수 없는 희생 +1 20.01.12 310 10 10쪽
10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10 8 9쪽
99 적발 +1 20.01.05 297 9 9쪽
98 잠입 +1 19.12.29 314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31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21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09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21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5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5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41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7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96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49 9 10쪽
87 난투 +2 19.11.21 341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5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42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8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55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8 10 10쪽
81 마력 증강 +1 19.10.31 384 11 11쪽
80 포로의 결정 +1 19.10.27 392 11 11쪽
79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19.10.24 397 13 10쪽
78 바르포르도 +1 19.10.20 394 13 10쪽
77 승전국의 대위 +1 19.10.17 412 10 10쪽
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91 11 10쪽
75 세계수 +1 19.10.10 426 12 11쪽
74 에델가르드 토벌 +1 19.10.06 417 12 11쪽
73 빙결의 마수 +1 19.10.03 415 11 11쪽
72 설원 +1 19.09.29 443 11 11쪽
71 류아 +2 19.09.26 474 11 11쪽
70 서로의 요구 +2 19.09.22 458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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