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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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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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11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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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천재 드워프 소녀

DUMMY

제국 침공 개시일이 얼마 남지 않은 아침.


나는 간만에 홀로 광맥지대를 돌아보고 있었다.


부지런히 움직이던 병사ㆍ간부들이 내가 지나가자 하던 일을 멈추고 경례를 붙인다. 바싹 잡힌 군기에 만족하며 나는 간단히 손을 흔들어 답해주었다.


마왕군을 조직한 지도 벌써 수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실전은 없었다고 하나 꾸준히 훈련을 시행해온 덕분에 나름 군대다운 용모를 갖추게 되었다.


마족들은 종족에 관계없이 지급된 군복을 입고 다녔고, 정해진 직책이 요구하는 일과를 수행하며, 계급에 따른 명령 및 복종 관계를 가졌다.


예를 들어 서리거인을 중심으로 모인 자이언트들은 각각 40명의 고블린과 함께 1개 보병 소대로 행동한다.


신체 능력이 인간에 비해 크게 다르지 않는 고블린들이지만 개량에 개량을 거듭해나가고 있는 총기로 무장시키니 전투력이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다. 그렇게 다수의 적에 포위 당했을때 무방비해지는 거인의 약점을 고블린 호위부대로 보완한 것이다.


마왕군 조직의 초반에는 강한 상급 마족 위주로 모집하긴 했지만, 군이 크기를 불려가면서 어깨 너머로 소문을 듣고 마왕군에 들여보내 달라 찾아오는 하급 마족들이 늘었다. 수로 치자면 현재 마왕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신체능력이 그렇게 높지 않은 마족은 고블린 뿐만 아니다.


같은 아인 사이에서도 두드러지게 약한 래빗맨, 죽은 자의 시체에서 일정 확률로 발생하는 스켈레톤, 비행 능력을 제외하면 전투능력이 거의 전무하다시피 한 하피 등, 전쟁터에서 인간에게 쉽게 쓰러지고 말 하급 마족들은 널린 것이다.


총이라는 현대무기는 그런 약한 마족들을 신뢰할 수 있는 정예병들로 바꿔주었다. 높은 숙련도를 필요로 하는 마법이나 검, 화살 따위와 달리 작동방법과 조준 팁을 익히기만 하면 누구나 쉽게 싸울 수 있게 해주었으니까. 필요한 건 총을 잡을 힘과 방아쇠를 당길 손가락이나 발톱뿐이었다.


카니앗이 수소문한 드워프들을 광맥지대에 데리고 와준 덕분에 총기의 생산 및 정비는 매우 원활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내가 만든 리볼버의 작동원리를 연구한 드워프들이 더 사거리가 긴 장총의 프로토타입까지 만들어냈을 정도다.


희망적인 관측을 보태면 지금 유일하게 쓸 수 있는, 지구에서는 19세기 말까지 쓰이던 흑색화약에서 무연화약으로의 진화를 곧 이루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총기가 인간들 중에서도 뛰어난 전투력을 자랑하는 놈들에게까지 통할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숙련된 마법사라면 총알은 마법 방벽으로 튕겨낼 수 있고, 신체강화로 고속으로 이동하는 검사는 방아쇠를 당기기도 전에 사수를 베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믿고 여러 위치에 배치시킬 수 있는 전력이 생겼다는 건 그 자체만으로도 든든하다. 나라고 해서 모든 전쟁터에 있을 수는 없으니 홀로 싸우는 건 무리가 있으니까.


마침 드워프들이 일하고 거주하는 구역인 제3계층에 내려온 나는 뜨거운 열기를 내뿜는 용광로 옆에서 뻘뻘 땀을 흘리며 쇳물을 작은 틀에 붓고 있는 일꾼과 마주쳤다.


내가 했던 것처럼 철을 버스트로 절단할 수 없으니 총기의 부품마다 틀을 만들어 녹은 철을 필요한 모양대로 굳히는 것이다.


그 과정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자니 드워프가 인기척을 느꼈는지 고개를 들었다.


“어, 엇? 마왕님?”


놀란 얼굴도 잠시, 드워프는 쇳물을 담은 틀을 조심스럽게 옆에 내려놓았다.


“여기까지 내려오시고, 무슨 일이라도 있으신 검까?”


이마의 땀을 닦으며 고글을 벗은 드워프가 특유의 껄렁껄렁한 말투로 물었다.


보통 드워프라고 말하면 우락부락한 몸집에 작은 키와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생명체를 떠올리겠지만 이곳에서의 드워프는 남자고 여자고 슬림한 몸을 하고 있다.


토끼귀와 흡사한 귀와 작은 키를 제외한다면 인간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겉모습이다.


“특별한 용무는 없다, 카루아. 한번 돌아보고 있을 뿐이야.”


키루아는 아, 그런검까 라고 대답하며 기지개를 폈다. 꽤 장시간 일하고 있었는지 땀이 방울방울 맺혀있었다.


오로지 덥다는 이유로 알몸에 멜빵청바지만 걸친 정신 나간 복장의 여자 드워프는 나와 구면이었다.


총기의 제작을 의뢰하려 드워프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표로 이야기한 건 제일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솜씨만은 뛰어다나는 키루아.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측면의 가슴 때문에 속으로 노출광이라는 별명을 붙여두었지만 그녀의 실력에 거짓 한 점은 없었다.


“그렇게 뜨겁게 바라보셔도 곤란하지 말임다. 마왕님은 이미 임자 있는 몸 아니셨슴까?”


키루아가 실실 웃으며 농을 던졌다. 하지만 그 파격적인 복장은 어디를 바라봐도 살색이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는 종류의 것이다.


“자각이 있으면 좀 가리고 다녀라. 네가 다른 계층에 올라가기라도 하면 그 옷차림 덕분에 작은 소란이 일어난다고. 하피도 제대로 군복을 입고 다니는데 말이다.”

“이게 편하니까 어쩔 수 없슴다~”


신분의 차이도 상관 않고 친근하게 대하는 키루아의 성격에도 이미 익숙해져 있었다.


“아, 오신 김에 제가 만든 장난감 하나 보시겠슴까?”


키루아가 스스럼없이 내 어깨를 잡고 이끌었다.


다른 드워프들도 일에 열중하고 있다보니 키루아와 내가 작업장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는데도 고개를 들지도 않는다. 철을 내려치는 소리와 치이익하고 물과 쇳물이 맞닿는 소리로 요란한 가운데 걸음소리를 듣는 것도 힘든 일이겠지만.


작업장 구역을 거쳐서 조금 걷다보면 나오는 드워프의 주거구역은 드워프 본인들이 만들어서 그런지 꽤나 호화로운 것이다.


왕국 근처일대에서는 얻기 힘든 양질의 나무를 구해와 지은 크고 작은 오두막집들이 모여 있는 광경은 마치 작은 마을 같았다.


“아무리 마왕님이라도 깜짝 놀랄 검다~ 이런 건 저같은 천재아님 아무도 시도조차 못하는 거란 말임다.”


벌써부터 으쓱대며 키루아가 자신의 오두막 문을 열었다. 작은 산장같은 분위기의 집은 아담하지만 혼자 살기엔 충분한 크기인데다 아늑한 구석이 있었다.


“아, 역시 작업장 밖은 추운 검다.”


키루아는 라이터로 벽난로를 켰다. 엄지 하나로 불을 만드는 이 장치는 역시 키루아가 고안해낸 물건으로, 나는 단지 구조를 대충 설명했을 뿐이지만 눈을 빛내며 달려가더니 며칠 만에 완성품을 뚝딱 만들어왔다.


“어기서 잠시만 기다려주시면 됨다. 금방 다녀오겠슴다.”


키루아가 재빨리 계단을 올라간다.


물건을 뒤지고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연달아 나고, 돌아온 키루아의 손에는 보기만 해도 무거워 보이는 길쭉한 원통형의 장치가 들려있었다.


“...뭐냐, 그건?”

“이 아이의 대단함을 바로 못 알아주다니 말도 안 됨다!”


장치를 쿵하고 내려놓은 키루아가 흥분한 얼굴로 방방 뛰었다.


“이 형태는.. 총인건가?”

“단순한 총이 아닌검다! 이 손잡이를 보시기 바람다! 이렇게 돌리면ㅡ”


키루아가 장치에 달린 손잡이를 돌리기 시작하자 타타타탁 하고 작은 알갱이들이 발사되었다. 그 장치의 정체를 눈치 챈 나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개틀링건...?”

“그 개틀링이라는 게 뭔진 모르겠지만 이건 엄청 빠르게 총알을 쏘는 총임다! 총열이 여러 개라 번갈아가면서 발사와 재장전이 가능한 검다! 시험본이라 진짜 총알은 아니지만 이미 원리는 성공했으니 문제없슴다!”


신이 나서 키루아가 손잡이를 계속 돌리는 동안 개틀링건에서 발사된 알갱이들이 바닥에 쌓여갔다.


“어떻슴까? 빨리 저를 칭찬하시면 되는 검다. 두 번 칭찬해도 부족한 검다!”


키루아는 들떠서 말하고 있지만 저건 정말 말도 안 되는 물건이다.


디자인에서 다소 차이가 있긴 하지만 원통형의 장치의 정체는 19세기 미국 남북전쟁에 쓰였던 개틀링건. 현대의 기관총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세기의 발명품이다.


키루아는 중세 수준의 기술력이 팽배한 세계에서 그걸 보란듯이 만들어낸 것이다.


“대단하군. 정말 천재라고 해도 부족해.”


나는 진심으로 찬사를 보냈다. 개틀링건의 존재 자체는 알고 있었지만 그것의 작동 방식은 알지 못했기에 키루아에게는 아무런 정보도 준 적이 없다.


“에헷, 드디어 제 진가를 알아주신 검까?”


키루아의 입꼬리가 잔뜩 올라갔다.


“마왕님이 준 리볼버라는 것도 충분히 대단하지만 역시 여덟 발 쏘면 다시 장전해야 된다는 점이 걸렸슴다. 전장에선 1초가 승패를 가르는 거 아니겠슴까! 다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보니 이게 번뜩 떠오른검다!”

“리볼버의 발주만 해도 바쁠텐데, 이것까지 만들 시간이 있었던 건가?”

“다들 마감 맞추려고 정신이 없는 건 사실이지 말임다. 하지만 한번 생각나면 잠을 줄여서라도 해내야하지 않겠슴까! 어떻슴까, 저 진짜 대단하지 않슴까?”

“인정한다, 키루아. 너는 대단해.”


방방 뛰던 키루아는 내게 안기려 달려들다가, 뭔가 생각한 건지 동작을 멈췄다.


“왜 그러나? 너는 역사에 한 획을 그었어. 포옹 정도는 몇 번이고도 해주지.”

“음... 지금 일하는 도중에 온 거라 땀범벅이지 말임다. 조금 쑥스러운 검다.”


나는 조금 놀라고 있었다. 일 외에는 아무것도 신경쓰지 않는 키루아에게 그런 섬세함이 있었다니.


“그니까 이건 모아놨다가 나중에 마왕님과 단둘이 목욕권으로 쓰겠슴다!”

“목욕권?”


잘못 들었나 싶어 내가 의문을 담았지만 키루아는 신경도 쓰지 않고 흐흥, 하고 계속 기분 좋은 소리를 냈다.


“어쨌든...”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오늘 저녁 7시에 있을 참모 회의에는 키루아 너도 참석해라. 이 무기를 당장 실전에 도입할 수 있으면 부대 배치와 작전서가 많이 바뀔 테니 말이지, 만든 장본인의 조언이 있으면 많은 도움이 될 거다.”

“오옷! 저도 이제 그런 자리에까지 불리는 검까! 초고속 출세인검다!”

“알았으니 늦지나 말도록.”


나는 흥분한 키루아의 등을 두드려주다, 역시 등이 훤하다는 걸 깨달았다. 고된 대장장이 일로 굳어도 이상하지 않지만 역시 여자인지 부드러운 살결이다.


“으으읏~ 저는 여기서 처녀를 잃는 검까? 저보다 마왕님이 먼저 손을 대다니잇ㅡ 싫지는 않지만 역시 씻고 와서 하면 안 되겠슴까? 몸도 마음도 청결하게 하고 나서 엉망진창으로 범해지는 거라면 환영임다!”


무슨 오해를 했는지 헛소리를 하고 있는 키루아를 질린 눈으로 보고, 나는 다시 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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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의외의 고백 +1 20.02.23 309 6 11쪽
111 온천 +1 20.02.20 292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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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분노 +3 20.02.13 313 8 9쪽
108 피바람 +1 20.02.09 310 8 9쪽
107 방아쇠 +1 20.02.06 286 10 9쪽
106 용족 소녀 +1 20.02.02 326 9 11쪽
105 현자 +1 20.01.31 288 12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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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꽃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1 20.01.16 301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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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11 8 9쪽
99 적발 +1 20.01.05 297 9 9쪽
98 잠입 +1 19.12.29 314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31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21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10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21 12 11쪽
»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6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5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41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7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96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49 9 10쪽
87 난투 +2 19.11.21 341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5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42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8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55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8 10 10쪽
81 마력 증강 +1 19.10.31 385 11 11쪽
80 포로의 결정 +1 19.10.27 392 11 11쪽
79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19.10.24 397 13 10쪽
78 바르포르도 +1 19.10.20 394 13 10쪽
77 승전국의 대위 +1 19.10.17 412 10 10쪽
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92 11 10쪽
75 세계수 +1 19.10.10 426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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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설원 +1 19.09.29 443 11 11쪽
71 류아 +2 19.09.26 474 11 11쪽
70 서로의 요구 +2 19.09.22 459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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