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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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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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24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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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돌이킬 수 없는 선택

DUMMY

그게 농담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기까지는 짧지 않은 정적이 흘렀다.


“전...부?”

“네. 왕국도 인구 2할 소실이라는 만만치 않은 피해를 입었지만 일단은 승전국이 되었죠.”

“제국군의 규모는 30만이라는 걸 알고 얘기하는 거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어 바르포르도는 다시 물었다.


“네. 30만 전부 사망했어요. 바르포르도 씨가 붙잡혀 있을 때도 다른 포로는 보이지 않았을 거예요. 아닌가요? 직속 여단도 같은 운명을 맞았어요. 유감이네요.”


사실일 리가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같은 대답이 돌아왔다.


자신과 함께 습격 받은 여단뿐만 아니라 기세등등하게 침공한 온 병력이 먼지가 되어 흩어져버렸다는 것이다.


통솔하던 군대가 병사 하나도 빠짐없이 죽었다는 건 군의 장성으로서 쉽게 받아들일 소식이 아니었다. 그 늑대에게 기습을 받은 건 사실이라고 해도 잘 훈련된 그들이 이미 꺾일 대로 꺾인 왕국군에 무너졌을 리가 없는데.


“30만은 적은 숫자가 아니야. 그 수의 병사를 몰살시켰다는 건... 혹시 그 묘한 무기가 쓰인 거야?”

“류셀 씨의 발명품을 말씀하시는 거면 그건 아니에요. 그 방법도 있었겠지만 ‘총’은 아직 왕국군에 보급되지도 않았으니까요.”

“그럼 제3의 세력이 있다는 소리구나. 지금의 왕국에서 신무기를 독점할 수 있을 정도면 한명밖에 떠오르지 않는걸.”


손쉽게 적병의 몸을 꿰뚫을 수 있는, 전쟁의 판도를 바꿀 무기를 가지고도 왕국군이 무너지는 걸 방관했다면 그 자는 왕국을 단순한 장기말로 보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그 무기는 언뜻 봤을 때도 상당한 수준의 기술이 아니면 만들지 못할 물건. 양산한다 한다면 꽤 많은 자본이 필요할 것이다.


왕국 안에서 방해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자금과 기술자를 끌어다 그런 짓을 벌일 수 있는 건 신 지그문드 정권에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면서 왕국과는 별개의 세력에 속한 자.


“역시 기사단장 씨의 쿠테타의 배후에는 그가 있었다고 볼 수밖에 없어. 그러면 우리 군을 전부 죽인 것도...”

“바르포르도 씨의 짐작이 맞을 거예요. 제국군은 류셀 씨가 쓰신 마법 한방에 절멸했답니다.”


한방.


이스는 그렇게 말했지만 어떻게 마법 한방으로 수십만의 생명이 날아갈 수 있는지 바르포르도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혼을 빼앗아 술자가 쓸 수 있는 마나로 바꾸는 광역마법이 쓰였어요. 지금까지의 경과를 생각하면 조금 어이없게 종전하긴 했지만 그들의 목숨 값은 나름 도움이 되었다고 하셨더라고요.”

“... 꽤나 친한가봐. 그 소년이랑은.”


어떻게 자국민이 30만이나 죽었는데 그리 태평할 수 있냐는 식으로 쳐다보며 말하자, 이스는 조금이나마 짓고 있던 미소를 지웠다.


“나라를 팔아넘긴 매국노처럼 보인 걸까요.”

“아니라고 말할 셈?”


둘은 잠시 그렇게 서로를 노려보고만 있었다.


“제국의 번견이라는 이명이 붙을 정도로 오로지 제국의 적만을 앞장서서 제거해온 바르포르도 씨는 아마 이렇게 생각하고 계시겠죠. 저는 충성을 연기하다 제일 적절한 타이밍에 조국을 배신한 쥐라고. 하지만 저는 제가 지켜야 할 이들을 잊은 적이 없어요.”


바르포르도는 헛웃음이 나오려는 걸 겨우 참았다.


“입에 발...린 소리를 잘도.”

“바르포르도 씨, 제가 왜 혼자 알트레아 왕국에 왔었는지 아시나요?”

“지오돌프 국왕을 암살하기 위해서였지. 왕국이 전쟁을 걸면 우리도 조금이나마 피해가 나니까 그걸 막으려고 했었던 거라고 들었어.”


이스는 과거를 회상하듯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래요. 저는 위에 선 자로서 제국민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이곳에 왔으며, 작전의 성공을 위해 이미 목숨을 값으로 치렀어요. 제가 태어나서부터 몸담았던 제국의 안위를 위해서.”

“제국군이 몰살당했다고 하는데도, 그런 말을 하는구나.”

“이건 전쟁. 약자는 뭔 짓을 당하든 불평할 수 없어요. 강자는 뭘 해도 정당화되고요. 그걸 제일 잘 아는 사람은 바로 바르포르도 씨일텐데요.”


이스는 화살을 바르포르도에게 돌렸다.


“그리고 먼저 전쟁을 걸어온 건 제국이에요. 류셀 씨의 성격상 곱게 보였을 리는 없겠죠. 저라고 자국민의 피가 흐른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지는 않아요. 선제 침공이 없었다면 이렇게까지 희생자가 늘어나지 않았을 테고.”

“당신이라고 하는 사람은... 레스트가 그 말을 들으면 어떻게 생각할지 알면서 그러는 거야?”


바르포르도는 차갑게 물었다.


“마치 황제가 제 의도를 신경 쓰기라도 할 거라는 말이네요. 제가 제국을 배신했다고 해도 그 사람은 화를 내다 말고 금방 어떻게 제 마음을 돌릴지 궁리부터 할 걸요. 그는 그런 사람이니까.”

“듣자 하니까ㅡ”

“이기심 때문에 이런 말을 했다고 생각하진 않으셨으면 좋겠네요, 바르포르도 씨. 저는 볼 의무가 있어요. 이 세계의 끝을.”


바르포르도는 무슨 소리를 하냐고 따져 물으려 했지만 이스는 검지를 들어 막았다.


“우리가 알고 있는 세상의 끝이 점점 다가오고 있답니다. 피하려고 해도 이미 정해진 운명에서 벗어날 순 없는 거예요. 계속 모른척하고 계시지만 실은 제 입으로 얘기하지 않아도 알고 있잖아요.”

“...”


최근 차례차례 벌어진 사건들은 확실히 이상했다. 자신이 알고 있던 파워밸런스가 완벽히 무너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의식 밑으로 부유하던 퍼즐조각들이 맞춰지고 있었다.


처음 있었던 붉은 유령의 암살실패. 30만의 군세를 마법 하나로 죽여 버리는 마법력. 거기에 신화의 마수를 부리는 힘.


확실한 게 없었지만 사실 바르포르도는 이미 단독으로 자이언트 드래곤을 쓰러뜨린 소년이 마왕인건 아닐까 의심을 품고 있었다.


70년 전과는 달리 다음 마왕이 나타났다는 정보는 어디에서도 들려오지 않았지만 바르포르도의 직감이 그렇게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마왕이 나왔다 해도 용사에게 쓰러질 게 뻔해. 이 세계의 역사는 그렇게 되풀이되어왔는걸. 마왕 강림을 안 인간의 나라들이 연합하고 싸우면 마왕과 그를 따르는 마족들이 당해날 수 없어.”

“그 패턴은 역사의 첫 페이지부터 지난 인마전쟁까지 반복되어왔죠. 하지만 이번은 달라요. 그 순환은 저희 세대에서 깨질 거니까.”


그게 무슨 말이냐고 물으려던 바르포르도는 자신의 모습이 비치는 이스의 눈이 갑자기 붉은 안광을 내는 걸 보았다.


“제국이 숨겨둔 카드를 꺼내든다 해도 이번만큼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아요.”

“... 쓴 거구나, 어렸을 때는 그렇게나 싫어했던 그 눈의 능력을.”


바르포르도는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제국의 인간이라면 모를 수 없는 눈이다.


제국을 설립한 초대 황제가 쓰던 능력.


오랜 세월동안 주변 영토를 흡수해온 제국이 크고 작은 내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분단되지 않을 수 있었는지 묻는다면 전부 그 힘을 가리킨다.


그건 아이들이 좋아하는 용사 영웅담에나 나올 법한 고유스킬.


제국 황실의 핏줄에 수백 년에 한번 씩 무작위로 발생한다는 고유 스킬은 별로 가져서 좋은 건 아니었다. 그 스킬이 발현한 인간은 백이면 백 전부 단명하기 마련이었으니까.


처녀의 피처럼 선명한 그 붉은 눈은 너무나도 강력한 나머지 소유자의 정신을 갉아먹는 종류의 힘이었다.


이 소식을 제국을 만들었다는 그 눈의 소유자가 알리다니,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안 믿으셔도 좋아요. 하지만 정말 제가 단지 제 잇속을 챙기려 황실을 배신했을까요? 사실은 대충 어떻게 된 건지 바르포르도 씨라면 전부 눈치 채신 것 아닌가요.”


바르포르도는 목이 타서 남은 차를 한꺼번에 마셔버렸다.


“거짓말이라고 매도하고 싶지만 이스, 당신이 거짓을 말한 적은 한 번도 없었지. 당장 제국의 앞날이 밝지는 않겠는걸.”

“어떨까요, 저희가 사절을 보냈으니 좋든 싫든 곧 알게 되겠죠.”

“사절을...?”

“침공에 대한 걸 따지지 않고 넘어갈 수는 없으니까요. 물론 사절이라고 해도 둘 뿐이에요.”

“인간이 둘, 은 아니겠지.”

“인간이 하나, 그리고 음... 굳이 따지자면 개가 하나일까요. 가름 씨에게는 개라는 호칭이 많이 실례 같지만 말이죠.”


당연한 것처럼 마수를 부리는 소년이다. 제국이 끝까지 굽히지 않았을 때를 대비해 실력을 행사할 수 있는 부하를 보냈겠지. 레이아가 너무 날선 반응을 보이지 않으면 다행이련만.


하지만 자신은 너무나도 무력했다. 언제까지 포로로 잡혀있을지 모르는 운명이다. 이 세계에 닥친 위협을 경고하는 것도, 미약한 힘으로 그 소년에 맞서는 것도 할 수 없다.


그렇기에 바르포르도는 고개 숙여 부탁할 수밖에 없었다.


“뭘 봤는지 묻진 않을게. 하지만 방금 그 얘기, 레스트한테는 하지 말아줘. 당신한테서 그런 말을 들으면 전부 포기해 버릴 테니까.”

“그런 부탁이야 얼마든지 들어드릴 수 있어요. 정말, 황제는 자신을 이렇게까지 생각해주는 부하가 있는 걸 알고는 있을까요.”


한때 바르포르도를 언니처럼 따랐던 소녀는 의자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바르포르도 씨, 정해진 걸 바꿀 수는 없는 거예요. 하지만 그곳에 제 긍지는 함께하죠. 영원한 끝이라 할지라도... 슬슬 시이나 씨를 부를 때가 된 것 같네요.”


똑, 똑, 똑.


이스가 노크하자 응접실의 문이 열렸지만 바르포르도는 그쪽을 바라볼 여유도 없었다. 한 번에 받아들이기는 너무 힘든 사실들의 연속이었으니까.


“시이나 씨, 심문이라고는 해도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어디까지나 형식적인 거예요. 바르포르도 씨가 말하기 싫은 걸 말하게 만들 방법은 없는 걸요.”

“알아.”


누군가의 손이 바르포르도의 턱을 잡더니 강제로 들어 위를 보게 했다.


“나도 내 친구들을 죽인 여자랑 길게 얘기할 생각은 없어, 이스.”


시이나 렌은 단단히 화가 난 표정으로 바르포르도를 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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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온천 +1 20.02.20 291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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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10 8 9쪽
99 적발 +1 20.01.05 296 9 9쪽
98 잠입 +1 19.12.29 313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30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20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09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20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5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53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41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7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95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49 9 10쪽
87 난투 +2 19.11.21 340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4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42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8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55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7 10 10쪽
81 마력 증강 +1 19.10.31 384 11 11쪽
80 포로의 결정 +1 19.10.27 391 11 11쪽
»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19.10.24 397 13 10쪽
78 바르포르도 +1 19.10.20 394 1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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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91 11 10쪽
75 세계수 +1 19.10.10 425 12 11쪽
74 에델가르드 토벌 +1 19.10.06 416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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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설원 +1 19.09.29 442 11 11쪽
71 류아 +2 19.09.26 473 11 11쪽
70 서로의 요구 +2 19.09.22 457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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