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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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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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03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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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결의 마수

DUMMY

당연히 세계수를 발견할 거라고 생각하고 쓴 탐지 마법이었지만 틀림없었다.


그건 방대한 마력이 모인 덩어리. 하지만 그와 동시에 생명체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이 신전에 가만히 있을 뿐이지만 너무나도 강력한 탓에 계속해서 바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저 안에 있다. 아마 이 일대를 통째로 얼려버리고 영원히 그치지 않는 눈을 내리게 할 정도의 마력을 가진 것이.


나는 어이가 없어 혼자 웃음을 터트렸다. 우연의 일치라고 하기에는 너무 잘 짜인 상황이다. 요컨대 저 마수를 자기들 대신 쓰러뜨려달라는 것인가. 이용할 생각으로 와서 역으로 이용당할 줄이야.


“재미있군.”


그 여자 장로가 무슨 속내를 가지고 있다는 건 알았지만 꽤나 의외의 전개라고 할 수 있겠지. 아무리 그래도 하이엘프가 마왕의 화를 살 리스크를 각오하면서까지 설마, 라는 생각이 자꾸 들려했지만 내 탐지마법에 걸린 것의 정체는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이 신전의 수호자 같은 마수를 발견했다.”


나는 방금 알게 된 사실을 굳이 숨기지 않고 말했다. 그 말에 제일 동요한 건 이 그룹의 유일한 하이엘프.


“마, 마수요?”


류아는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었다. 마물이 마수로 분류되려면 가진 힘의 차원이 달라야 한다. 근래에 이르러서는 새롭게 확인된 마수는 없었으며, 아주 오래 전에 그런 것들이 존재했다는 기록이 드문드문 남아있을 뿐이다.


“세계수를 보존하는 신전에 그런 게 있을 리가 없는데... 확실한가요? 애초에 섬의 방위마법은 여태 뚫린 적이 없고ㅡ”

“류아.”


나는 아직까지도 우리의 안내인을 자처하고 있는 엘프의 이름을 불렀다.


“왜 섬에서 이곳만 눈이 항상 내리고 있는지 생각해본 적은 없나?”

“아뇨, 처음부터 그랬다고밖에...”


아까 쏘아보낸 내 '눈'은 거구의 푸른 마수를 담고 있었다. 아무런 움직임 없이 서있는 모습은 일견 거대한 동상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것이 살아있는 건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시시한 수수께끼지. 장로들은 그걸 너 같은 일반 시민에게는 숨기려고 한 모양이군. 용케 지금까지 숨겨온 게 대단할 정도다.”


나는 류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길을 헤메는 일 없이 앞서 나아가며 말했다.


“아까도 확인했지만 섬에 날씨를 조작하는 마법이 걸려있지는 않았어. 하지만 이 설원은 진짜배기. 그렇다고 한다면 그런 마법 없이도 기후의 변화를 불러오는 것이 계속 있었다는 것이다.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옛것이라면 마수 말고는 딱히 없겠지. 너라면 충분히 유추할 수 있을 텐데.”


슬며시 류아의 반응을 확인하니 뭔가 생각하는 얼굴을 하고 있는 것이, 분명 짚이는 게 있는 모양이었다.


“강대한 힘은 선악과 관계없이 분명 피해를 불러온다. 그런 힘을 가진 마수가 얌전히 아무런 문제도 일으키지 않고 있을 리는 없고. 한번 맞춰볼까, 이곳에 이주한 너희 선조에게 봉인 당했다는 건 어때.”

“그런... 물론 존재하는 것만으로 설원을 만드는 거라 한다면 하나밖에 없는데... 하지만 그러면 왜 이 신전에? 하필 귀중한 위그드라실이 있는 이곳에 그걸 봉인할 이유라고 한다면...”

“그래. 네가 생각하는 게 맞겠지. 그 타다 남은 나무에는 고대 마법이 깃들어있었다고 했다. 그걸 사용해서 겨우 봉인에 성공했다는 것밖에 없지 않나. 세계수와 마수를 함께 둘 이유는 그것 말고는 설명이 안 되니 말이다.”


하이엘프는 말 그대로 세계들을 지탱하던 세계수를 일부러 위험에 빠뜨릴 정도로 어리석은 종족이 아니다. 허겁지겁 도망쳐온 직후에 곧바로 새로운 위협을 맞닥트리고 만 상황에서 최적의 선택을 한 거겠지.


“마왕님, 큰 전투가 예상된다면 지원병력을 데려올까요?”


대강 눈치를 챈 스키잔이 물었다.


“저도 점점 느끼고 있습니다. 터무니없는 마력이 가까워지고 있어요.”

“그건 한번 합을 나눠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겠지. 여차하면 내가 직접 상대한다.”


본래 지휘관이라는 건 최전선에서 싸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지휘관 본인이 전투에 제일 최적화된 능력을 가지고 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여기 온 건 어디까지나 세계수를 확인하기 위함이긴 하지만 그 정체가 불확실한 지금, 조금이라도 힌트를 줄 수 있는 건 이 마수밖에 없기 때문에.


“꼭 도움이 되어 보이겠습니다.”


카니앗이 의욕을 불태웠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여기 온 건 너희 일족이 일찍이 잃어버린 과거의 유산을 되찾기 위함이야. 괜히 앞에 나설 필요는 없겠지. 마수의 상대는 내가 할 테니 최대한 몸을 사리고 있어라. 가브리엘, 방금 이야기 들었겠지?”


만일의 경우 카니앗을 지키라는 의미를 담아 물어보자 가브리엘은 고개를 끄덕여보였다.


“... 설마... 에델가르드가 여기에 있을 거라고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곧잘 납득은 되지 않는지, 류아는 아직도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 이름을 입에 담은 것만으로 한기가 도는지 코트를 여미는 동작까지 보였다.


“과연. 그 마수의 이름이 그것인가.”

“네... 이 섬에 원래부터 있었다는 마수예요. 섬에 이주한 엘프들마저 혼신의 힘을 쏟은 끝에 봉인하는 게 고작이었다고 할 빙결의 마수. 하지만 봉인된 위치는 아무도 모르고 있을 텐데. 그게 칼란츠였다고요...?”

“네 반응을 보니 하이엘프의 장로들은 역시 진실을 숨기는 데는 일가견인 모양이군.”

“하, 하지만 레야 언니는 절대 저한테 거짓은ㅡ!”

“너희의 연을 무시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반대지, 그 여자는 너를 꽤나 아끼는 것 같으니.”

“네...?”


어리둥절한 류아에게 나는 말해주었다.


“너를 우리와 동행시켰다는 건 그게 생존률이 제일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겠지. 아무래도 레야 장로는 위그드라실의 사용을 허락해주는 겸 작은 소일거리를 부탁한 모양이다. 내 생각으로는 봉인의 힘이 다하기 전에 여기에 눌러앉은 불청객을 없애달라는군.”

“소일거리... 라고요?”


류아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에델가르드는 그렇게 쉽게 볼 마수가 아니에요, 마왕님. 인간의 군대를 상대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고요. 봉인이 풀리면 섬뿐만이 아니라 세계가 혼돈에 빠질ㅡ”


나는 한 손을 들어 류아의 말을 막았다.


“세계에 혼돈을 불러올 존재라면 여기 있다. 그걸 잊은 건 아니겠지.”


레야가 엘프의 보배를 이용하겠다는 이쪽의 요구를 순순히 승낙한 이유가 무엇인지 슬슬 감이 잡히고 있었다. 아무리 강한 힘을 가졌다는 마왕이라고 해도 그 힘을 증명하지 못한다면 대중의 지지를 얻기는 힘들다.


즉 이건 결국 다른 하이엘프들에게 내 능력을 직접 증명해주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성가신 마수의 처리까지 되니 일석이조, 하이엘프는 잃을 것이 전혀 없었다.


이 곳이 신성한 나무를 보호하고 있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신전 내부에 마수가 있을 거라곤 꿈에도 생각해보지 않으니 한방 먹었다고 해야 할까.


단순한 방어형 골렘이라면 모를까, 위그드라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건물에 그런 위험요소를 집어넣을 리가 없다고 생각했던 게 실수였겠지.


“그럼... 저희는 지금 에델가르드가 봉인된 장소로 가고 있는 건가요?”

“이런 큰 건물을 샅샅이 뒤지는 것보다 그게 빠를 테니 당연하지.”


류아는 내키지 않은 것 같았지만 최적안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위그드라실은 아주 정교하게 숨겨진 건지 내 탐지 마법으로도 위치를 특정하지 못했으니 직접 찾아볼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실마리를 제공하는 건 아마도 마수 에델가르드.


레야의 계획에 장단을 맞춰주는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별다른 선택지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다.


기나긴 복도를 지나니, 신전의 정중앙에는 넓은 공간이 마련되어있었다. 그게 누구를 위한 것인지 헷갈릴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 공간을 가득 채우는 것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으니까.


그건 엄청난 크기의 얼음조각상이었다. 자이언트 드래곤보다도 클 정도다. 무지막지하게 크다는 점은 닮았지만 모습만은 매우 달랐다.


머리는 용과 흡사했지만 몸체는 사자와 닮아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걸 얼려놓은 것처럼 흉측한 마수의 모습의 디테일 하나하나가 발톱 하나하나까지 잘 묘사되어있다. 살짝 휘두르는 것만으로 대지를 박살낼 것 같은 앞발이 인상적이었다.


“정말... 이게 칼란츠에 있었다니...”


다들 얼음상을 경계하는 가운데, 류아는 경외가 섞인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분명 에델가르드는 하이엘프에게 있어 단순한 마수 이상의 의미를 가진 것이겠지.


“이런 걸 여기 세워놓다니, 네 조상들은 취미가 나빴던 모양이군.”


위를 바라보며 감상을 섞인 농을 던지자,


“아, 아니에요 마왕님!”


내가 한 말이 농담이라는 걸 알아차리지 못한 건지 류아는 다급하게 거대한 얼음상을 가리켰다.


“저건 그냥 얼음장식이 아닐 거예요. 너무나도 소름끼치게 책에서 봤던 그림과 닮아있어요. 마왕님도 느껴지시죠? 밀집된 마나가 계속 저 조각상에서 흘러나오고 있어요. 선조가 막대한 피해를 입으면서도 결국 봉인밖에 할 수 없었다는 게 이해가 될 정도예요.”


그걸로 설명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류아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역시 저게 봉인된 에델가르드. 가는 곳마다 재악을 일으킨다는 세계급의 재해예요! 역시 전력을 더 데려오는 게 나을 거예요.”


나는 류아의 말을 듣지 못한 것마냥 얼어붙은 마수에 다가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마력으로 가늠했을 때, 고대의 마수라고 해도 린만큼의 거물은 아니고 가름보다 살짝 약한 정도다. 그것만으로 하이엘프들에게는 벅차겠지만.


“이미 늦었다. 봉인은 금방이라도 풀리려고 하고 있어. 여기선 장로회가 원하는 대로 쓰러뜨려줘야겠지. 잘 봐라, 이런 걸 영원히 봉인해둘 수는 없다.”


아니나 다를까, 에델가르드를 둘러싼 얼음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하고 있었다. 빙결의 마수가 가진 큰 눈동자가 천천히 뜨였다.


“그런, 벌써?”


류아는 망연자실하게 혼잣말을 했다.


아마도 신전의 귀퉁이를 뚫어버린 게 봉인에 안 좋게 작용했겠지. 이 건물 자체가 저것 하나만을 가둬두기 위한 것이었으니.


나는 전혀 위기감 없이 말했다.


“오랜 잠에서 깨자마자 미안하지만, 이번엔 영원한 잠에 빠져줘야겠군. 기나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올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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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적발 +1 20.01.05 297 9 9쪽
98 잠입 +1 19.12.29 314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31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21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10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21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6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5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41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7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96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49 9 10쪽
87 난투 +2 19.11.21 341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5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42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8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55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8 10 10쪽
81 마력 증강 +1 19.10.31 385 11 11쪽
80 포로의 결정 +1 19.10.27 392 11 11쪽
79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19.10.24 397 13 10쪽
78 바르포르도 +1 19.10.20 394 13 10쪽
77 승전국의 대위 +1 19.10.17 413 10 10쪽
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92 11 10쪽
75 세계수 +1 19.10.10 426 12 11쪽
74 에델가르드 토벌 +1 19.10.06 417 12 11쪽
» 빙결의 마수 +1 19.10.03 416 11 11쪽
72 설원 +1 19.09.29 443 11 11쪽
71 류아 +2 19.09.26 474 11 11쪽
70 서로의 요구 +2 19.09.22 459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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