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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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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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18 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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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DUMMY

끼이익.


나는 무거운 문을 천천히 열고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숨어서 대기하던 마족 하나가 내 접근을 탐지하고 경계 태세에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지난 번 저택에 몰래 잠입해온 유리에에게 기사가 당한 이후로 따로 인간 보초를 세워 두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름 집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을 완전히 무방비하게 놔두지는 않은 것이다.


“...”


내 기척을 확인한 하이드 어쌔신이 창백한 단검을 거두고 복종의 의미로 고개를 숙이며 다시 벽 안으로 사라졌다.


파충류 계열 아인과 흡사한 외형에 흰 피부를 가진 그들은 물체에 융합할 수 있는 마법에 능하기 때문에 이런 고정적 업무에 제격이다.


“여기에 드나들 때마다 가끔 이상한 기운이 느껴져서 뭔가 했는데 류셀 씨의 부하였군요?”


나를 따라 저택에 들어서던 이스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했다.


“꽤 강력한 마족인 것 같은데 잘도 문지기 같은 걸로 만족하고 있네요, 실은 좀 더 피 냄새나는 일을 좋아할 것 같은데.”

“크게 틀리지는 않았지만 괜히 신경 긁거나 하지는 말라고.”


이스의 적합 클래스가 성기사여서인지는 몰라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한 추측이었다. 하이드 어쌔신은 기본적으로 살육을 즐기는 종족이니.


“그건 그렇고 오늘은 분위기가 평소와는 좀 다른데요, 류셀 씨.”

“그런가?”

“네. 좀 홀가분해 보인다고 해야 되나...?”


이스의 말마따나 나는 꽤 좋은 기분이었다. 계획해두었던 일들이 차근차근 풀리고 있으니 굳이 마음을 조급히 할 필요가 없었다.


“네 말대로 일지도 모르겠군.”


휴일인 점을 감안해도 해가 아직 떠있는 시간에 저택에 돌아가는 것도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나눌 수 있는 업무는 최대한 분배하긴 했지만 마왕으로서 해야 할 건 단순히 의자에 앉아있는 게 아니었던 것이다.


부하들이 정리한 안건을 검토하고 최종적으로 승인을 내리는 건 생각보다 고된 일이었다. 오죽하면 얼마 전 하이엘프의 섬에 다녀온 것이 일종의 기분전환이 되었을 수준이었다.


“어, 류셀?”


소파에 누워 낮잠을 청하려던 시이나는 내가 이른 시각에 저택에 돌아온 것에 놀라 고개를 번쩍 들었다.


“대낮부터 잠이라니, 주말은 잘 보내고 있나 보군.”

“그, 그냥 누워있으려던 것뿐이야.”


저번 작전에서 대위라는 지위를 받긴 했지만 아직 마왕군의 존재 자체도 모르는 시이나가 할 업무라고 해도 린에게 하달 받는 간단한 지시사항을 수행하는 것뿐이다. 주말이면 더더욱 한가하겠지.


“그런 류셀이야 말로 오늘은 귀가가 빠르네?”


낮잠에 들어가려던 참에 나와 마주친 게 부끄러운지 시이나는 얼굴을 붉히며 주제를 돌렸다.


“뭘, 나들이가 예정되어있으니 슬슬 준비하려고 해서 말이지.”

“나들이?”


한 쌍의 늑대 귀가 쫑긋하고 움직였다.


“갑자기 나들이라니, 무슨 일이야 류셀?”


시이나가 미심쩍은 듯 물어왔다.


“기분전환으로 적당하다고 생각했다. 왜, 바쁜가?”

“아, 아니. 딱히 바쁜 건 아니지만...”


시이나는 내 뒤에 서서 상큼하게 웃고 있는 이스를 가리켰다.


“이스는 총리잖아. 국정으로 바쁜 거 아니었어? 자리를 비워도 괜찮은 거야?”

“걱정할 건 없답니다, 시이나 씨. 급한 업무는 다 처리해놨으니 당분간 제가 없어도 왕국은 잘 돌아갈 거예요. 오랜만에 이렇게 셋이 모험을 갈 수 있다는데 더 중요한 일이 있을까요?”


확실히 우리가 모험자로 활동한 건 도적단을 소탕한 것과 자이언트 드래곤을 쓰러뜨린 게 전부다. 그리고 나서부턴 쿠테타가 터지고 소란스러워지는 바람에 모험자 노릇을 할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왕국의 모험자 길드도 건재하긴 하나 제국으로부터 입은 피해 덕에 최근에는 모험자의 수요 및 공급이 대폭 줄어들었다 했다.


“그래서 류셀, 가볼 곳이라는 게 어디야?”

“라드레이드.”

“뭐ㅡ? 케, 콜록.”


목적지의 이름을 들은 시이나가 갑자기 사레가 걸려 기침을 해댔다.


“농담이지? 별로 재미있지도 않은데 그런 농담은 그만둬.”


시이나의 반응도 이상한 게 아니다.


라드레이드. 이 세계의 주민 중에 그 이름을 들어보지 못한 자는 없다. 동화에서, 시에서, 역사책에서 자주 거론되는 장소인 것이다.


그곳은 예로부터 드래곤 일족이 모여사는 고산지대. 인간은 물론 마족도 초대받지 않은 자라면 그 마경에 발을 들일 수는 없다. 하나만 있어도 위험한 드래곤이 수십 마리가 모여 있으니 목숨이 아까운 자라면 근처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류셀 씨, 라드레이드는 무슨 일로 가시려는 건가요?”

“관광이다.”


나는 사실이 일부 섞인 거짓을 답으로 내놓았다.


“음... 평범한 여행치고는 꽤 난이도가 높네요. 확실히 엄청난 경치라고 듣기는 했지만...”

“이스도 그걸 그대로 납득하는 거야?!”


진지하게 내 말을 곱씹는 이스를 보고 기가 막히다는 듯 시이나가 소리쳤다.


“관광으로 드래곤 마을에 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납작하게 밟힐게 뻔한데.”

“대륙을 훤히 내려다보는 경치에,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곳에는 온천도 있다고 들었다. 관광지로는 안성맞춤이지.”

“하지만 류셀... 거긴 용한테서 받은 징표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잖아? 제일 단단하다는 목 뒤 비늘이 없으면 바로 브레스를 맞아 버릴 텐데.”


라드레이드는 대륙의 최남단에 있다고 전해지긴 하지만, 용족에게서 정식으로 초대를 받았음을 증명하는 징표가 없으면 접근이 제한된다. 마왕군 참가를 권유했던 스키잔 또한 직접 라드레이드의 경계를 넘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것 또한 이미 생각해둔 게 있었다.


“징표라면 여기에 있다.”


내가 들어올린 갈색 비늘을 보고 이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자이언트 드래곤의 시체에서 떼어낸 거네요.”

“쓸모없는 쓰레기였지만 티끌만큼은 도움이 되는 구석이 있었다는 거다.”


용의 신체는 여러모로 쓸모가 많으니 시체가 썩기 전에 제대로 쓸만한 건 따로 분리해둔 것이 정답이었다.


“우와, 그렇게 해서까지...”


시이나는 질렸다는 얼굴을 했다.


“말은 그렇게 해도 시이나, 너도 용들의 마을에는 꽤 관심이 있는 거 아닌가? 생물 중 최강이라는 타이틀답게 이 세계에서 제일 아름다운 장소를 독차지하고 있다는 전설이다.”


대륙에서 제일 높아 꼭대기를 바라볼 수 없다는 높이의 고산지대인 라드레이드. 옅은 산소와 대비되게 농밀한 마나로 둘러싸인 그곳은 지상의 어느 곳과도 비할 수 없는, 일종의 이계와 비슷한 것이다.


신비한 목소리의 안내를 받아 앞으로 나아가다보면 무지개 색으로 빛나는 꽃이 피어 앞을 비추고, 계곡에서는 꿀이 흐르며, 진귀한 열매들이 어딜 가나 잔뜩 달려있다고 했다.


제일 중앙에 있는 공중공원의 검은 밤하늘엔 지상의 영혼들을 가리키는 별들이 가득 수놓아져있다고 하는 전설이다.


“한번 발을 들이면 절대 헤어 나올 수 없다는 낙원. 이야기는 물론 많이 들었어. 어릴 적에 아빠가 자주 읽어주던 동화책에 나왔으니까.”


처음에 거부감을 보이던 시이나도 라드레이드 자체에는 관심을 보였다. 지상보다는 천계에 더 가깝다는 장소니 무리도 아니다.


“본래 드래곤 외의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 성역. 거기에 가볍게 관광을 가자니 류셀 답다고나 할까...”


시이나와 이스를 굳이 데려가는 데는 전부 이유가 있다.


내가 마왕이라는 것을 숨기고 드래곤의 속내를 떠보기 위해 일반인을 가장하는 것이다. 용족의 징표까지 가지고 있으니 손님으로 받아들여줄 테고, 남는 건 내 결정 뿐이다. 어떻게 해서라도 마왕군에 가담할 생각이 없으면 취할 행동은 이미 정해져있었다.


“그래도 말이야, 우리가 그거 시체에서 떼어왔다는 거 알고 있으면 어쩌게?”

“다행히 드래곤들은 인간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관심이 없다고 하니 그럴 일은 없다. 흘러가는 시간 자체가 다르니 그런 것도 있겠지. 우리는 자이언트 드래곤에게서 고맙게 비늘을 넘겨받은 왕국의 모험자 팀 행세를 하면 된다.”


사실과 크게 다르지도 않았다. 고작 우리 셋이서 드래곤을 죽였다고 믿을 리도 없을 테니 이쪽에서 내미는 징표를 믿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는 말은 추가로 호위를 붙이기는 힘들다는 말씀이네요. 너무 인원수가 많으면 역으로 의심받을지도 몰라요. 류셀 씨가 동행하는 이상 그럴 필요도 없겠지만요.”

“그렇다는 말은...”

“네, 저는 찬성이에요. 이런 재미있는 일을 놓치고 싶지는 않은걸요?”


시이나는 나와 이스를 번갈아 쳐다보다 결국 못 이기겠다는 듯 두 손을 들었다.


“딱히 따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런 분위기에서 나만 빠지겠다고 하기도 뭐하니까... 알았어, 어울려줄게 뭐.”


이렇게 옛 모험자 팀 삼인조의 라드레이드 행이 결정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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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9 분노 +3 20.02.13 313 8 9쪽
108 피바람 +1 20.02.09 310 8 9쪽
107 방아쇠 +1 20.02.06 286 10 9쪽
106 용족 소녀 +1 20.02.02 326 9 11쪽
105 현자 +1 20.01.31 288 12 8쪽
104 임무 실패 +1 20.01.23 302 9 9쪽
103 용의 이상향 +1 20.01.19 306 11 10쪽
102 꽃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1 20.01.16 301 8 12쪽
101 어쩔 수 없는 희생 +1 20.01.12 310 10 10쪽
10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11 8 9쪽
99 적발 +1 20.01.05 297 9 9쪽
98 잠입 +1 19.12.29 314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31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21 10 9쪽
»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10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21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5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5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41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7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96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49 9 10쪽
87 난투 +2 19.11.21 341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5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42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8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55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8 1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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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바르포르도 +1 19.10.20 394 1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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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설원 +1 19.09.29 443 11 11쪽
71 류아 +2 19.09.26 474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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