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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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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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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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10 0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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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천천히 흘러가는 밤

DUMMY

“앗, 마왕님. 가름으로부터 전언입니다.”


계속해서 술을 마시던 중, 조금 볼이 붉어진 스키잔이 멈칫하더니 뭔가를 듣는 것처럼 집중한 얼굴을 했다.


“사절단이 제국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국경을 통과해서 제도로 향하고 있다고 하네요.”

“마차로 간 것 치고는 빠르군.”


아무리 이웃나라라고 한들 며칠 만에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 가름이 보나마나 중간에 마차 째로 전이마법을 썼겠지.


“그... 국경을 수비하던 병사들을 처리했다고 합니다. 핑계를 대면서 통과시켜주지 않아서 가름이 독자적으로 행동했다고...”

“벌써 희생자가 나온 건가.”


까불다가 린에게 헤드록을 당하곤 하는 가름은 기본적으로 시원시원한 성격이긴 하지만, 무시를 당하면서까지 가만히 있는 타입은 아니다.


사절의 입장으로 제국의 병사들을 죽였다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는 것. 나는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걱정할 필요는 없다, 스키잔.”


입가에 손을 대고 생각에 빠져있는 스키잔을 안심시키려 말을 꺼냈다.


“가름은 보이는 것처럼 생각 없이 일을 벌이거나 하지는 않아. 황제와 만날 때도 내 의중대로 행동해주겠지.”


하지만 역시 사절로서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건 네이아르 백작이다. 그는 이웃국가와의 거래도 해왔으며, 정치판에도 상당한 경험이 있으니 황제와도 대화가 어느 정도 통할 것이다.


너무 노골적으로 황제를 밀어붙이는 일 없이 적당히 구슬려가며 협상을 진행시킬 수완을, 그 남자는 가지고 있으니까.


“게다가 이쪽은 적장까지 구금해두고 있다. 포로의 귀환을 들먹이며 얘기를 꺼내면 황제도 귀를 기울이지 않고는ㅡ”

『늦은 시각에 죄송합니다, 보스.』


갑자기 들려온 린의 사념에 난 말을 멈췄다.


『무슨 일이지?』

『그게... 바르포르도 중장이 사망했습니다.』

『도망치려 해서 죽임당한 건가?』


흡혈귀가 도망치려할 때는 망설이지 말고 숨통을 끊어놓으라고 린에게 명령했었으니 당연히 그 쪽으로 생각했지만,


『아닙니다. 심문 도중 자살했습니다.』


린은 생각지도 못한 대답을 내놓았다.


『자살이라고?』


의외의 소식이었다. 흡혈귀는 마족 중에서도 자기애가 강하다. 절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지는 않는 일족이라고 알고 있었는데, 그 바르포르도가 자살을?


『제가 들어갔을 때는 이미 머리에 총상이 나있었습니다.』

『총상, 총상이라. 심문을 주도한 건 시이나였지?』

『네, 시이나 양이 방심한 사이에 자신의 머리에 가져다댔다고 합니다.』


전쟁 도중 아인부대의 기습에 직접 당해봤기에 총기의 사용방법을 대충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특이사항은 없었나? 감옥에서도 악착같이 버티던 그 여자가 갑자기 마음을 바꿨을 리는 없을 테고.』

『심문 전에 이스 씨가 할 이야기가 있다며 자리를 비워 달라 요청했습니다.』

『그런가.』


내 짐작이 맞다면 바르포르도는 아마도 같은 제국 출신인 이스와 구면일 것이다. 옛 지인에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간단히 목숨을 끊을 동기를 부여해줬다는 소리겠지.


말 몇 마디로 죽음을 선택하게 하다니. 도대체 뭐라고 말한 거냐, 이스.


『면목 없습니다, 전부 제 불찰입니다. 좀 더 주도면밀하게 감시했었어야 했는데...』

『그래봤자 고작 포로 한 명이다. 신경 쓰지 말도록.』


황제 앞에 들이밀 카드를 하나 잃은 건 가슴 아프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 죽은 장군이 황제와 깊은 관계가 아니기를 바라야지. 만일 뜨거운 사이였다고 한다면 이쪽도 어쩔 수 없이 강경하게 나갈 수밖에 없다.


『아, 그래. 시이나 쪽은 별 일 없었나?』

『적장이라고 해도 바로 자신 앞에서 자살한 것에 조금 충격을 받은 것 같습니다. 잘 타이르고 있으니 그 부분은 걱정 마시길.』

『그래. 돌아올 때까지 부탁하지.』


린이 시이나와 친해진 건 다행이다. 지금 상황은 그 녀석이 왕국의 변두리에서 영위하던 이전의 조용하고 평온하던 삶과는 180도 달라졌으니까.


혼자서 마음고생을 하는 것보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친한 언니 포지션의 린이 있다면 시이나도 마음이 놓이겠지.


『예, 보스. 귀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린과의 사념을 마친 나는 엘프 원정대 멤버에게도 바르포르도의 사망 소식을 전했다.


“그런고로 조금 일이 꼬이게 되었지만 그래도 염려할 필요는 없다. 일이 지저분해지겠지만 무력으로 누르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니까.”

“지난번의 암살자처럼 성가신 전력은 제국에 없을까요? 쓸 만한 전력은 가름 혼자입니다.”


우려의 목소리를 낸 건 스키잔. 지옥의 문을 지키는 헬하운드를 너무 과소평가하는 게 아닌가 싶지만 그녀의 걱정은 타당하다.


유리에는 한번 싸워봤음에도 위험도를 제대로 측정할 수 없는 적이었으니까.


망자의 혼을 자신의 몸에 빙의시켜 싸우는 능력은 예측할 수가 없으니 성가셨다. 유리에 말고도 비슷한 강자들이 제도에 있을지도 모르니 가름을 혼자 보내는 건 어리석은 행동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번은 달랐다.


“그녀 본인이 있다고 해도 상관없어. 준비는 만전이다.”


나는 자신 있게 말했다.


“가브리엘, 내가 명령한대로 그걸 가름에게 주고 왔겠지?”


가브리엘이 고개를 숙여 긍정한다.


“그럼 됐어. 지금은 마음 놓고 쉬면 된다.”


스키잔은 나와 가브리엘을 번갈아보다 내가 미리 설치해둔 장치가 뭔지 알아차렸는지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며 감탄했다. 아무리 오랜 삶을 살아와 현명한 정령이라고 해도 여전히 눈치가 빠른 부하다.


다시 잔을 입에 가져다 대려던 내 눈에 조금 상태가 이상한 것 같은 카니앗이 밟혔다. 어두운 피부인데도 눈에 띌 만큼 볼이 상기돼있고, 눈이 조금 풀려있다.


“카니앗, 괜찮나?”


카니앗 앞에는 빈 술병들이 즐비했다.


“히끅, 갠... 갠찮습니다...”


내 말에 허리를 꼿꼿이 펴며 대답한 카니앗이었지만 혀가 꼬이는 건 어찌할 수 없는지 전혀 괜찮지 않은 모습이었다.


“너무 마신 거 아닌가? 여기 술은 워낙 달아서 마시다보면 취하는 것도 모를 텐데.”

“히, 히끅.”


다크엘프는 정령과 달리 독에 대한 내성이 없었지. 나나 스키잔이 마시는 페이스를 그대로 따라 마시면 당연히 취할 대로 취하게 되는 것이다.


“엘레멘트ㅡ워터.”


나는 카니앗의 잔에 대고 주문을 외웠다. 맑은 물이 잔을 금세 채웠다.


“물은 많이 마셔둬라. 생각하지 않고 마시다보면 다음날이 고통스러울 테니까.”

“가, 감샤합니다...”


두 손으로 잔을 들고 열심히 마시는 카니앗을 보다가 차례로 주위를 둘러보던 난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거, 영락없이 놀러온 모양새다.


“안주도 없이 술만 마시고 있으니 틀린 말도 아닌가... 대학의 신입생 환영회도 아니고.”


혼잣말을 하고 있자니,


탁.


내가 하는 푸념을 들었는지 가브리엘이 종이 꾸러미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이건?”

“엘프의 간식이다, 주인. 술 뒤에 함께 보관되어 있었다.”


그건 불투명한 정육면체의 모습으로, 어릴 적에 즐겨먹던 젤로 같은 질감의 음식이었다. 한 입에 먹기 좋은 엄지만한 사이즈에 다양한 색깔이 입혀져 있다.


말캉거리는 걸 집어 입에 넣으니 기대한 대로인 맛이 퍼졌다.


“술과 함께 먹는 안주인가보군. 마침 잘됐어. 카니앗, 저녁으로 뭔가 먹었나?”

“아... 아뇨, 일어나자마자 바로 오느라...”


카니앗이 정신을 잃고 있던 동안 남은 우리는 다른 장로의 호의로 저녁 식사에 초대받긴 했지만 나도, 스키잔도, 가브리엘도 보편적인 식사가 필요한 신체는 아니니 그렇게 많이 먹지는 않았다.


사실을 말하자면 적당히 거리를 두고 내 행동을 조심히 관찰하는 다른 엘프들의 시선 때문에 불편해져서 빨리 빠져나와 술이나 마시고 있는 것이다.


“일단 이거라도 좀 먹어둬라. 식사로는 많이 빈약하다만 내일은 에델가르드 토벌 기념 오찬과 연회가 준비되어있다고 하더군.”


전이마법을 써서 왕국의 식당에서 먹을 것을 가져오는 방법도 있지만 섬 바깥과 안을 전이로 왕래하는 건 방위마법에 의해 막혀있다. 섬에 들어올때는 그러려니 했어도 지금은 한 끼 때문에 방위마법을 얼려버릴 수도 없는 일이니 말이다.


젤리로 배를 채우는 건 조금 어떨까 싶긴 하지만 빈속보다야 낫겠지. 카니앗은 군말없이 젤리를 먹었다.


“어떤가?”

“이런 과자는 처음입니다. 갱... 굉장히 부드럽고 과일 맛이 나네요...”


그거야, 젤리니까. 대륙에도 있기는 있다고 들었지만 상류층에게만 한정되는 기호식품이다보니 카니앗은 처음 먹어보는 모양이었다.


똑똑.


노크소리에 나는 이 시간에 방문할 사람이 있나, 하고 초ㆍ지각 마법으로 밖을 내다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카니앗을 불렀다.


“카니앗, 손님이다. 너를 찾아온 것 같군.”

“저를... 말입니까?”


의아해하면서도 내 말대로 문을 연 카니앗을 맞이한 건 다름 아닌 류아. 큼지막한 바구니를 들고 있었다.


“너... 무슨 일이지?”

“아, 안녕. 마왕님도, 다른 분들도 늦은데 죄송합니다. 이거 빨리 받기나 해. 나도 가봐야 하니까.”


카니앗이 류아가 건넨 바구니를 얼떨결에 받아든다. 류아는 부끄러운 것처럼 다시 꾸벅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 전이마법을 발동, 순식간에 사라졌다.


“뭐였지...?”

“뭐가 들었는지 보면 알거다.”


아직도 얼떨떨한 카니앗은 그제야 바구니의 내용물을 확인했다.


“아,”

“네가 저녁 식사를 거른 걸 신경 쓰고 있었나보군.”


바구니에는 겉모습은 의문스러웠지만 속은 알찬 주먹밥이 가득 들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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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 의외의 고백 +1 20.02.23 308 6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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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3 용의 이상향 +1 20.01.19 305 11 10쪽
102 꽃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1 20.01.16 301 8 12쪽
101 어쩔 수 없는 희생 +1 20.01.12 310 10 10쪽
10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10 8 9쪽
99 적발 +1 20.01.05 296 9 9쪽
98 잠입 +1 19.12.29 313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30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20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09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20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5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53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40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7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95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49 9 10쪽
87 난투 +2 19.11.21 340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4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42 9 12쪽
»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8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55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7 10 10쪽
81 마력 증강 +1 19.10.31 384 11 11쪽
80 포로의 결정 +1 19.10.27 391 11 11쪽
79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19.10.24 396 13 10쪽
78 바르포르도 +1 19.10.20 394 13 10쪽
77 승전국의 대위 +1 19.10.17 412 10 10쪽
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91 11 10쪽
75 세계수 +1 19.10.10 425 12 11쪽
74 에델가르드 토벌 +1 19.10.06 416 12 11쪽
73 빙결의 마수 +1 19.10.03 415 11 11쪽
72 설원 +1 19.09.29 442 11 11쪽
71 류아 +2 19.09.26 473 11 11쪽
70 서로의 요구 +2 19.09.22 457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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