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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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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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9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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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용의 이상향

DUMMY

그곳은 세상의 그 어느 재화로도, 권력으로도 살 수 없는 풍경.


영겁의 시간이 흘러도 시들지 않는 낙원.


천계의 신들도 질투할 정도라는 그 아름다움을 평생 접할 일이 없는 이들은 소설에서, 시에서 각자 본인들이 상상한 라드레이드의 모습을 그렸다.


그 묘사는 사람마다 천지 차이였지만 공통점은 확실했다. 이 세계의 미적 기준치의 상한선을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는 것.


하지만 직접 보지 못하면 없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저들만의 삶을 영위하는 드래곤의 특성상 다른 종족을 초대하는 일도 거의 없었고 말이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다 보니 실존하는 것보다는 전설에 가까워진 드래곤의 땅.


그냥 믿기에는 너무나 허황된 내용에 그 진위를 의심하는 사람도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전설에는 과장 하나 없음을, 나는 지금 확인하고 있었다.


보통 산이라고 하면 정상은 꽤 좁은 장소를 상상하기 마련이다. 그저 밑을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의 자투리땅을 말이다.


하지만 우리들의 눈 앞에 펼쳐진 건 작은 도시라고 해도 과장이 아니었다.


에메랄드빛의 호수를 중심으로 세워진 마을은 산의 꼭대기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잘 정돈되어 있었다.


마을의 구석구석까지 이어지는 널찍한 도로는 먼지 하나 없는 대리석이었으며, 정교하게 깎아낸 용의 조각상들이 길목에 세워져 있었다.


물이 흐르는 소리에 옆을 보니 마을의 경계를 지나,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 계곡이 떠있다.


원천도 없는데 바닥나지도 않고 계속 아래로 흘러 떨어지는 물은 살아오며 봐온 그 어떤 물보다도 맑은 색을 가지고 있었다.


건물은 하나하나가 하이엘프의 중앙회관을 방불케 하는 크기다. 거주하는 종족의 특성을 고려해서인지 출입문 또한 인간의 것보다는 훨씬 컸다.


드워프가 짓는 건물이 효율성을 우선으로 생각했다면 이것들은 그런 현대적 감각과는 동떨어진, 머나먼 고대를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는 느낌이다.


고개를 위로 돌리니 머리 위로 유유자적 느리게 하늘을 날고 있는 드래곤들도 눈에 띄었다.


자이언트 드래곤보다 크기는 작았지만 분명 더 강한 것에는 틀림이 없겠지. 그 녀석은 몸집을 빼면 대륙에 널린 마수들과 별 차이도 없었으니까.


“여기가... 라드레이드. 정말 있었구나.”


시이나는 사탕 가게 앞을 지나던 다섯 살배기마냥 입을 벌렸다. 동화 속에나 나오던 장소를 직접 보고 있으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자기 눈을 의심하듯 몇 번이고 눈을 비비는 시이나.


“과연, 세상의 모든 재화를 다 주고서라도 오고 싶을 만하네요.”


시이나처럼 알기 쉬운 얼굴은 아니었지만 이스 또한 아름다운 광경에 매료되어 있었다.


화려한 장식이 잔뜩 달린 것도, 흥미로운 구경거리가 많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단지 마을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 마음에 알 수 없는 평온함이 자라났다.


흘러가는 시간이 너무나 느린 나머지 밑에서는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걱정, 고민거리가 이곳에서는 아무런 무게를 가지지 못하고 잊혀지는 기분이었다.


신비한 광경에 빠져든 것도 잠시, 라드레이드에 도착했다는 현실은 곧 우리를 일깨운다.


“그래서... 이제 어쩔건데?”


아무렇지도 않다는 척을 하고 있지만 잔뜩 주눅이 든 채인 시이나가 살짝 말을 더듬었다.


하나만 있어도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는 최강종이 이렇게 모여있다. 웨어울프로서는 생명에 위협을 느끼지 않기는 어렵겠지.


“흠.”


딱히 우리가 온 것에 눈치를 못 채고 있다는 느낌은 없었지만 멈춰서는 드래곤은 하나도 없었다. 최강의 마족으로서는 굳이 신경 쓸 만큼의 존재도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대로는 곤란하다. 나는 나름 드래곤의 진위를 파악하기 위해 여기까지 온 것이니까.


“으음, 완전히 무시당하고 있는 것 같은데요?”


이스가 난처한 얼굴을 했다.


“이대로 알아서 둘러보는 것도 좋겠지만 류셀 씨, 어떻게 할까요?”


나는 검지를 하늘에 겨냥했다.


“일단 한 마리, 불러볼까.”


“응? 부른다니...”


내 행동에 의아해하던 시이나는 곧 그 의도를 깨닫고 얼굴을 새파랗게 했다.


“잠까ㅡ”


시이나가 황급히 내 손을 잡아 내리기 전에, 나는 짧게 말했다.


“버스트.”


흑색 광선이 라드레이드의 상공을 가로질렀다.


상급 파괴 마법이 일직선으로 향하는 곳은 날개를 활짝 편 채 활공하던 붉은 드래곤의 어깻죽지. 마법이 직격하기 전의 마지막 순간에야 그 눈이 부릅 뜨인 것 같았지만 이미 늦었다.


팡!!!!


폭발로 연기가 상공에서 피어오르나 싶더니 붉은 드래곤이 축 늘어진 상태로 자유낙하를 개시했다. 제아무리 드래곤이라 해도 아무런 예고 없이 공격당하면 저렇게 되는 것이다.


“류, 류, 류, 류ㅡ”


시이나는 붉은 덩어리가 떨어지는 것과 나를 번갈아 보며 말을 더듬었다.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내 이름의 두 번째 글자를 말하지 못했다는 사실도 모르는 눈치다.


“지금 무슨 짓을 한 거야?! 우린 라드레이드에 있다구! 드래곤들한테 싸움을 걸 생각이야?!”


한편 이스는 태평하게 손으로 날을 세워 이마에 대고 휘파람을 불었다.


“이 거리에서 명중이라니, 역시 류셀 씨네요.”


나는 시이나의 말이 들리지 않은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래. 이걸로 주의는 확실히 끌었겠지.”


라드레이드는 용들의 보금자리와 같은 곳. 이런 곳에서 소동이 일어난다면 누군가는 금방 눈치채고 달려와 줄 것이라는 내 예상은 곧 적중했다.


!!


회색 드래곤 하나가 동료의 추락을 발견하고 쏜살같이 날았다.


그건 마치 하나의 스텔스 전투기.


그 거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속도다.


고산지대에서부터 지상까지의 끝없는 낙하를 시작하던 붉은 드래곤이 낚아채여지고, 곧 안전한 지면에 눕혀졌다.


잠시 상태를 확인하는 듯하더니 놈은 바로 범인을 특정하고 이쪽으로 날아왔다.


한눈에 알아본 건 내가 손을 흔들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루그를 떨어뜨린 건 네놈이냐?!”


노기에 가득찬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위협적으로 펼친 날개에 광원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고 있는 건 상급 파괴마법의 동시발동을 알리는 신호다.


기껏해야 하급 전이마법 정도밖에 쓰지 못했던 자이언트 드래곤과는 확실히 급이 다른 개체였다.


노발대는 걸 보아하니 내 버스트에 맞고 떨어진 붉은 드래곤과는 꽤 친한 사이겠지.


“아, 미안하군.”


나는 최대한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려고 했다.


“손가락이 미끄러졌어.”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기 상태에 있던 광원들이 한꺼번에 빛났다.


여러 갈래의 다채로운 빛이 서로 휘감기며 나를 때린다.


바람, 물, 흙의 세가지 속성인 마법은 하나하나가 버스트와 맞먹는 파괴력을 가지고 있었다.


아까의 폭발보다 훨씬 큰 굉음이 연달아 울렸다.


“이야기를 들을 새도 없이 한 번에 죽여 버렸나...”


드래곤은 성급한 판단을 후회하는 것처럼 고개를 틀었다.


이 정도의 공격을 받고 살아있을 수 있는 건 같은 드래곤 종이라 해도 별로 없다. 일격으로 가루로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겠지.


“우리는 단지 초대를 받아 왔을 뿐이야. 거친 짓은 삼가주지 않겠어?”


그렇기에 내 목소리를 들은 회색 드래곤은 파충류임에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어깨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었다.


“붉은 놈은 안됐군. 그래도 급소는 피했다고 생각하는데 말이지.”


“네놈ㅡ”


어째서 내가 멀쩡히 서 있는지 몰라 갈팡질팡하던 눈빛은 곧 이해의 빛을 띠었다.


“단순한 인간이 아니군.”


웃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나.


시이나는 자신의 사지가 멀쩡한 것을 확인하고 있고, 이스는 재미난 거를 구경하는 것처럼 우리를 보고 있었다.


방금의 공격 마법은 전생 특전으로 받은 원래 세계의 공기ㅡ즉 고유스킬로 막은 건 아니다.


내 몸을 얇게 두르는 식으로 발현되는 고향 마을의 뒷언덕 공기는 넓게 펼칠 순 없다. 그렇게 했다면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멀쩡한 대신 시이나와 이스가 즉사했겠지.


드래곤이 날린건 꽤 묵직한 한방이었지만 방어마법으로 막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상급 방어마법인 실드로는 아슬아슬하겠으나 내가 사용한 건 암 속성 마법 적성자만 사용 가능한, 상대의 공격을 그대로 먹어치워 없애는 보다 상위의 마법이다.


“징표가 없으면 이곳에 들어오는 것은 불가능할 터. 어떻게 한 거지?”


나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징표는 들어오면서 제대로 지불했다. 손님이 먼 길을 걸어 기껏 도착했는데 아무도 반겨주지 않아서 한 마리 불러볼까 해서 말이지.”

“멀쩡히 하늘을 날고 있는 용을 격추시키는게 손님이 할 짓이냐?!

”저희는 인간의 나라에서 온 모험자 팀이에요.“


이대로는 다시 다툼이 일어날 거라 생각했는지 듣고 있던 이스가 부가설명을 붙여주었다.


”용족과 적대할 생각은 없어요. 조금 일이 거칠게 된 건 제가 사죄드릴게요.“


공손히 고개를 숙이는 이스를 보고 회색 드래곤은 흥, 하고 콧방귀를 뀌었다.


”할 일 없이 마물들에 싸움이나 걸고 다니는 모험자인가. 죽지 못해 안달이 난 괴짜 놈들이 여기에 발을 들이다니.“


꽤 신랄한 평가였지만 나는 속으로 드래곤과 동의했다. 모험자라는 족속은 그렇게 제정신인

놈들은 아니었으니까.


”다른 때 같았음 로그를 다치게 했으면 바로 죽여버렸겠지만 징표를 갖고 라드레이드에 들어온 외부인을 해칠 이유는 없다. 일부러 너희들을 초대한 용의 이름을 더럽히는 게 될 테니. 그건 그렇고...“


큰 눈동자가 잔뜩 겁에 질린 시이나를 보았다.


”인간이 마족과 다니다니, 괴짜 놈들이군. 하지만 여기에 있는 동안은 명심해둬라. 함부로 소동을 일으키고 다녀서는ㅡ“


드래곤이 갑자기 말을 끊더니 뭔가 들린 것처럼 뒤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의 끝에 있는 건 다른 건물들보다 다소 큰 푸른 건물이다. 둥근 수정의 모양을 한 그것은 빛의 반사 없이도 유난히 광채를 냈다.


노기가 살짝 누그러지나 싶더니 회색 드래곤은 등을 돌렸다.


”따라와라. 현자께서 너희를 보고 싶어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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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의 이상향 +1 20.01.19 306 11 10쪽
102 꽃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1 20.01.16 301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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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10 8 9쪽
99 적발 +1 20.01.05 296 9 9쪽
98 잠입 +1 19.12.29 313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30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21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09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21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5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53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41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7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95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49 9 10쪽
87 난투 +2 19.11.21 340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5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42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8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55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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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바르포르도 +1 19.10.20 394 1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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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세계수 +1 19.10.10 426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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