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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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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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3 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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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의외의 고백

DUMMY

“제국에 혼욕 풍습이 있다는 건 몰랐다만.”


수건으로 가릴 곳을 가리고 들어간 내가 말했다. 온천에 들어가기 전에 몸을 씻는 곳에는 간이의자와 마법으로 온수가 계속 흘러나오는 일종의 샤워 시설이 준비되어 있었다.


실제로 노폐물이 나오는 몸은 아니지만 나는 습관적으로 몸을 씻으러 간이의자에 앉았다.


“남녀 구별 없는 공중 욕탕이 있긴 하지만 가는 사람들만 가는 곳이에요. 생판 타인 앞에서 알몸을 보이는 건 역시 저항이 있으니까요.”

“나는 아는 사람이니 괜찮다고?”

“뭐, 그런 이유도 있지만요.”


몸을 식히려던 건지 조각상 옆에 걸터앉아있던 이스는 다시 탕에 들어갔다.


나도 젖은 머리를 넘기고 발을 담갔다.


전생에도 스파는 자주 가봤다지만 이렇게 또래의 여자아이와 같이 몸을 담그는 건 처음이었다. 유럽도 아닌 미국에 혼욕 문화는 없으니까.


“류셀 씨와 이렇게 보내는 시간은 언제나 환영이에요. 왕국에서는 서로 바빠서 자주 얘기도 못 했고.”


이스가 손을 모아 온천 물을 뜨더니 자신의 어깨에 흘려보냈다.


“셋이서 여행을 떠나던게 어느새 까마득한 옛날일 같네요. 그렇게 잠시나마 모험자 활동을 할 때는 정말 즐거웠어요.”

“쿠테타를 성공시키고 나서도 모험자 활동을 계속할 이유는 없었으니까 말이지. ”

“류셀 씨는 어디까지나 효율주의이시니까요. 이번 나들이도 다른 이유가 있는 거죠?”


나는 잠시 말을 골라야 했다.


나는 이스에게 아직 내 정체를 밝히지 않았다.


마의 계약을 나눈 이상 내 명령에 완전 복종해야 되니 굳이 알려줘서 생기는 리스크도 없는데 굳이 숨긴 것은 아마, 이스는 인간이기 때문이겠지.


“저는 의지해도 된답니다, 류셀 씨. 저도 생각 없이 따르고 있는 건 아니에요.”


그렇기에 이스가 툭 던진 말이 내게는 충격으로 다가왔다.


“딱히 마왕이라고 해서 싫어하거나 그러진 않으니까요.”

“지금... 뭐라고?”


나는 이스를 뚫어져라 보았다.


내 귀가 잘못된 게 아니다.


마왕. 이스는 그렇게 말했다.


“류셀 씨가 마왕이라는 건 꽤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굳이 저한테까지 숨기실 필요는 없었을 텐데.”


농담하는 것 같지는 않다. 그냥 떠보려 던진 것도 아니다. 이스는 내 정체를 이미 알고, 확신까지 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들킨 거지?


“마왕? 무슨 근거로 나를 마왕이라 단정 짓는 거지?”


바로 방어적인 말이 나왔다.


“역시 저한텐 비밀로 하실 생각이었나 보네요. 정황증거야 수도 없이 많지만 절 설득시킨 건 그런게 아니에요. 바로 이거죠.”


이스는 손가락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켰다.


“눈?”

“제국의 황족 핏줄엔 좀 특별한 힘이 있어요. 원래는 용사나 마왕한테만 주어지는 고유스킬 같은 거예요. 이 두 눈으로 본 미래는 제가 마땅히 류셀 씨를 따라야 한다는 걸 알려줬죠.”


그녀의 말을 증명하듯 한 쌍의 붉은 눈동자가 밝게 빛났다.


“황족에게 고유스킬이 있다는 건 처음 들었다. 미래를 보았다고 한다면 그건 예지 능력인 건가. 하지만 말로 들어서야 바로 믿을 순 없다. 적어도ㅡ”

“말에 준하는 증거를 보여주지 않으면.”

“말에 준하는 증거를 보여주지 않으면.”


나와 동시에 같은 말을 한 이스가 웃었다.


“하지만 그런 답변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답변은 누구나 예측할 수 있다.”


말을 예상해서 따라 말하는 수준이 아니다.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뭐라 말할지 전부 알고 있는 것이다. 생각할 수 있는 건 이스의 말마따나 예지능력이거나 마음을 읽는 독심술.


이스의 붉은 안광이 점차 잦아들었다.


“이 정도면 증명이 될까요? 물론 이 힘도 명확한 한계가 있긴 하지만 짧은 미래는 이런 것처럼 쉽게 볼 수 있어요.”


이스가 고유스킬을 가지고 있다는 건 전혀 생각지도 못한 전개였다. 그와 동시에 내 마음속에선 의심의 싹이 고개를 들었다. 이스는 정말로 내 아군이 맞는 건가?


이젠 내 눈이 붉게 빛날 차례였다.


“마의 계약으로 명한다.”


과거 국왕 암살에 협력해주는 대가로 이스에게 건 절대복종의 마법이 발동되었다. 만일을 위해 건 족쇄였지만, 사용해야 될 때가 있다면 바로 지금이다.


“일체의 거짓 없이 내 질문에 답해라.”

“네.”


계약으로 종속된 자는 절대명령에 저항하지 못한다. 정신계 마법에 대한 저항이 있으면 버텨낼 수 있는 내 마안과는 다르다.


나는 제일 신경 쓰이는 것부터 물었다.


“너는 내 이익을 위해 행동하고 있나?”

“그럼요. 조금이라도 더 도움이 되려고 매일 노력하고 있어요.”

“배신할 생각을 조금이라도 품고 있나?”

“류셀 씨를 배신하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저는 류셀 씨의 모든 걸 위해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이걸로 배신의 가능성은 사라졌다. 살짝 마음을 놓은 나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네 고유스킬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라.”

“생명력을 대가로 미래를 엿볼 수 있는 능력이랍니다. 덕분에 이 능력에 너무 의존한 조상들은 하나같이 길게 살지 못했어요. 황족이라고 해서 누구나 쓸 수 있는 건 아니고 아주 가끔 저처럼 적성자가 태어나는 거예요.”


대가가 생명을 갉아먹는 고유스킬이라니. 별로 가지고 싶지도 않은 능력이다. 하지만 황족이 그런 힘이 있다면 제국이 이렇게 거대한 나라로 자란 것도 설명이 되겠지.


“네가 본 미래를 알아서 내게 좋을 것이 있나?”


일부러 이렇게 애매한 질문을 던진 건 다 이유가 있다. 알아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미래의 정보는 단지 판단력을 방해할 뿐이니까. 만에 하나 암울한 미래가 기다릴 뿐이라면 듣지 않느니만 못하다.


“없어요.”

“그럼 됐다. 이제 계약대로 대답하지 않아도 좋아.”


이스는 말리지 못하겠다는 듯 포옥 한숨을 내쉬었다.


“류셀 씨도 참 의심이 많으시네요. 그 정도 질문은 계약에 의존하지 않아도 성실하게 대답해드렸을 텐데. 저, 조금 상처받은 기분이에요.”


하지만 내 관심사는 다른 데 있었다.


“더더욱 이해가 안 되는군. 내 정체를, 미래를 알면서도 아무 저항이 없다는 건가? 나는 너희 인류의 적이야. 시이나라면 몰라도 인간인 네가 어떻게 그렇게 차분할 수 있지?”

“종족은 상관없어요. 저는 제가 인정한 분을 끝까지 따르는 것뿐이에요.”


마왕이 이겨봤자 인류에게 좋은 일은 없을 텐데도 이스는 당연하다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이걸로 류셀 씨도 저에게 의지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러기 위해 곁에 있는 거니까요.”


누군가 자신에게 무한한 호감을 보낸다 하더라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하면 답답함이 배가 된다. 그렇기에 나는 물어볼 수밖에 없었다.


“왜 나를 따르는 거지?”

“음...”


웬만하면 바로바로 대답하는 이스가 이번에는 뜸을 들였다.


“도저히 홀로 둘 수는 없으니까, 라는 건 어때요.”

“...”


더 물어봤자 제대로 된 대답은 들을 수 없다. 정직한 대답을 강제하는 방법도 넘쳐나지만 나는 일단 이스의 의견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러면 내가 마왕군을 조직한 것도 이미 알고 있겠군.”

“네. 린이나 가름 씨 같은 분들은 마왕군의 중추를 맡고 있을 테고요. 펜리르와 지옥사냥개ㅡ헬하운드가 그렇게 갑작스레 류셀 씨의 부하로 들어오면 모르고 있어도 눈치챘을 거예요.”

“너 말고 내 정체를 눈치챈 자는? 왕국에 있나?”

“아뇨.”


이스는 딱 잘라 말한다.


“류셀 씨가 의도하셨겠지만, 정보통제는 확실하게 되고 있어요. 왕국 밖이라면 대충 눈치챈 자들은 있는 것 같지만요.”

“제국과 황국을 말하는 건가.”

“레스트, 그 사람은 금방 포기할 것처럼 굴다가도 약삭빠르게 편법을 찾으니까요. 벌써 황국과 비밀리에 접선했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아요.”


마왕군의 첩보부 부장은 린이다. 린이 제공하는 정보를 전혀 받아보지도 않고 이렇게까지 예측하는 이스의 통찰력은 나도 혀를 내두를 수준이었다.


“그래서, 용사는 찾으셨나요? 마왕인 류셀 씨가 제일 먼저 처리해야 하는 건 용사예요.”

“후보는 있지만 확증은 없다.”

“흐응.”


이스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이번 전쟁은 이전과는 다르게 될 테니 용사의 존재가 이전처럼 크지 않을지도 모르겠네요. 쓰이는 무기부터가 다르니까요.”


이스는 네이아르 백작과 함께 총기의 개발 및 보급에 깊게 관여되어 있다. 드워프 선임 연구원 키루아와도 직접 만나지 않았을 뿐, 서면으로는 몇 번이고 소통해왔으니 말이다.


총리와 기술자라는 직함 아래. 아직 본모습을 세상에 드러낼 수 없는 마왕군은 알트레아 왕국이라는 공식적인 경로로 자재를 조달할 필요가 있었다.


“무기 개발은 순조롭게 되고 있어요. 화약의 사용법도 깨닫지 못한 인간들이 당해낼 리가 없죠.”

“하지만 문제는 그 총이 통하지 않는 상대다. 인간뿐이 아니야. 이곳에 있는 드래곤 전체가, 최신 병기로 무장한 일반 병사들이 이기지 못하는 놈들뿐이다.”

“좋게 보면 잠재적인 아군. 나쁘게 보면 미래의 위협이라는 소리시군요.”

“그 견해는 시이나도 말하더군. 라드레이드는 우리의 앞날에 있어 너무 위험해. 최대의 변수다. 나를 포함한 소수만이 제대로 상대할 수 있으니 말이지.”


나는 수면에 비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여차할 때 나나 가름, 린이 있어주리란 보장은 없다. 그런 후일의 위협을 그냥 놔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고민은 단지 그것뿐인가요? 류셀 씨.”


이스도 역시 내 이변을 포착한건가.


그래. 내가 드래곤 남매와의 싸움에서 나답지 않게 감정에 휘둘렸다는 건 자각하고 있다.


“제 사족이긴 한데, 류셀 씨는 가끔 너무 생각을 많이 하시는 것 같아요. 자신이 할 수 있는 걸 한다, 그걸로 충분한 것 아닐까요? 그게 친구로서든, 마왕으로서든.”

“쉽게 말하는군. 하지만 그게 정답일지도 모르겠어.”


내가 조용해지자 이스가 물어왔다.


“시이나 씨에겐 언제 밝힐 생각이신가요? 그녀라면 마왕으로서의 류셀 씨도 인정해주실 거예요.”

“언제까지고 숨길 수는 없겠지. 본인은 모르겠지만 이미 마왕군 대위라는 직위까지 줬으니 말이다.”


똑똑.


누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옥상 문이 열렸다.


“어라,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이스가 재미있다는 듯 웃었다.


수건으로 가릴 곳만 겨우 가리긴 했지만 부풀어 오른 가슴을 완전히 커버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오히려 부분적으로만 가렸기에 더 색기가 있달까.


시이나는 잔뜩 붉어진 얼굴로 말했다.


“같이 들어가도 되지?”


하아.


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당장 전쟁이 급한 마당에 어쩌다 여자를 끼고 온천이나 하게 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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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 마왕군의 침공 +1 20.02.26 305 7 10쪽
» 의외의 고백 +1 20.02.23 309 6 11쪽
111 온천 +1 20.02.20 292 7 10쪽
110 난입 +1 20.02.16 294 8 8쪽
109 분노 +3 20.02.13 313 8 9쪽
108 피바람 +1 20.02.09 310 8 9쪽
107 방아쇠 +1 20.02.06 286 10 9쪽
106 용족 소녀 +1 20.02.02 326 9 11쪽
105 현자 +1 20.01.31 288 12 8쪽
104 임무 실패 +1 20.01.23 302 9 9쪽
103 용의 이상향 +1 20.01.19 306 11 10쪽
102 꽃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1 20.01.16 301 8 12쪽
101 어쩔 수 없는 희생 +1 20.01.12 310 10 10쪽
10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11 8 9쪽
99 적발 +1 20.01.05 297 9 9쪽
98 잠입 +1 19.12.29 314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31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21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10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21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5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5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41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7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96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49 9 10쪽
87 난투 +2 19.11.21 341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5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42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8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55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8 10 10쪽
81 마력 증강 +1 19.10.31 385 11 11쪽
80 포로의 결정 +1 19.10.27 392 11 11쪽
79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19.10.24 397 13 10쪽
78 바르포르도 +1 19.10.20 394 13 10쪽
77 승전국의 대위 +1 19.10.17 412 10 10쪽
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91 11 10쪽
75 세계수 +1 19.10.10 426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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