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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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9.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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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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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06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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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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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방아쇠

DUMMY

“말해두지만 적당히 봐주는 건 없으니까? 이쪽은 꽤 험한 꼴을 당했다고.”


로그는 몸을 풀며 선고했다.


우리가 서있는 곳은 마을을 조금 벗어나면 나오면 흰 꽃이 만개한 들판으로, 머리 위로는 붉은 석양이 지고 있었다. 마나를 끌어들이는 습성이 있는 라이든 꽃은 밤이 되면 아름답게 빛난다는 로그의 설명이다.


“저, 로그. 역시 내가 사과하는 걸로 참아주는 건 안 될까?”


덩달아 따라오긴 했지만 영 마음이 놓이지 않는지 시이나가 말을 꺼냈다. 자이언트 드래곤을 상대해본 그녀인 만큼 용의 일격이 얼마나 강력한지 아는 것이다. 다른 마족에 비해 견고한 웨어울프의 몸으로도 중상을 입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시이나의 요청에도 로그는 생각해볼 것도 없다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당하면 당한만큼 갚아주는 게 용족의 원칙! 상대가 타종족이라 해도 똑같은 걸. 블레이크도 오케이 한 거잖아?”

“됐다, 시이나. 그렇게 호들갑떨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그건 정말 포커스가 어긋난 걱정이다. 굳이 걱정할 거라면 내 쪽이 아닌 용의 신변을 걱정하고 있어야 했다.


“원래 형태로 돌아가지 않아도 괜찮은 건가?”


내가 인간인 모습 그대로 있는 로그를 보며 묻는다.


“이 모습이라고 해서 힘이 약해지거나 그러지는 않으니까 걱정마셔. 몸집이 작아질 뿐이야.”


산들바람 한줄기가 불어와 내 코트자락을 휘날리게 했다.


마법사가 흔히 걸치는 로브에 비해선 덜 거추장스럽다고 해도 도저히 근접 난투에 적합한 복장이라고 보이지는 않지만 그런 건 상관없다. 근접전이 오래 지속될 싸움의 여지는 앞으로도, 그리고 지금부터도 없으니까.


숨을 내쉬며 자세를 잡는 로그와 반대로 나는 아무런 준비자세 없이 서있었다.


“그럼 간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전이라도 한 것마냥 로그의 몸이 쏜살같이 나를 향해 날아왔다. 이스나 시이나는 미처 반응도 하지 못한 채다.


꽉 쥔 채인 작은 주먹이 휘둘러지기 전에,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고유스킬 발동.


아련하게 머리를 어지럽히는 공기의 내음이 나를 둘러싼다.


그건 다른 세계에 존재하는 것. 내가 태어난 고향 마을의 언덕에 언제나 맴돌았으며, 이젠 다시 돌아가지 못하는 장소의 편린.


내 후회와, 추억과, 희망과, 좌절이 함께하는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이곳에선 무적의 방패가 된다.


그 세계의 것은 이 세계의 것에게 거절당한다. 본래 존재해서는 안 되는 이질적인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 세계의 물리법칙. 마법. 시간. 그 무엇하나와도 접하지 않는, 이공간을 만들어낸다.


세계에 의해 전력으로 거절당하는 것이다. 나를 감싸는 이 얇은 막의 공기가 있는 한, 나는 상대가 신일지언정 아무런 상처를 입지 않는다.


빛이 닿지 않아 어둠뿐인 공간 속에서, 나는 탐지마법을 사용해 내 얼굴에 닿으려는 로그의 주먹을 보았다. 딱히 마법으로 강화를 하거나 하진 않은 것 같지만 엄청난 기세다. 보통 인간이라면 그 끝이 닿는 순간 머리가 터져 없어졌을 것이다.


하지만.


고유스킬을 발동한 내게 회피동작은 필요 없다.


콰ㅡ앙!


기세 좋게 뻗은 로그의 주먹은 갈 곳이 없는 것처럼 내 얼굴에서 미끄러져 지면에 내리꽂혔다. 주먹으로 땅을 내리쳤다기 보단 육중한 크레인이 부딪힌 것에 가까운 소리가 울렸다.


아름답게 피어있던 꽃들이 공격에 휘말리며 백색의 꽃잎들이 공중으로 날아오른다. 주먹이 때린 곳을 중심으로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처참한 균열이 나있었다.


워낙 빠르게 주먹을 휘두른 덕분에 소닉붐이 일어난 건 덤이다.


“읏!”


몰아치는 바람에 시이나가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방어동작을 취한다. 대충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일찌감치 몸을 살짝 돌리고 있던 이스는 헝클어진 머리를 정리했다.


“어라?”


로그는 자신이 일으킨 피해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낯선 것을 보는 것 마냥 자신의 주먹과 나를 번갈아보았다.


“분명 제대로 맞췄는데? 때린 느낌이 전혀 없었어. 그보다 왜 미끄러진 거야? 방어마법?”


엄청난 힘으로 날리는 주먹이 내 고유스킬에 막혀 갈 곳이 없으니 그리 된 것이겠지만 답해줄 의리는 없다.


나는 등을 돌려 마을로 향하는 반대쪽으로 걷기 시작했다.


“이제 됐겠지. 약속대로 한대 맞아줬으니 말이다.”


이쪽은 이런 장난에 어울려줄 시간은 없다. 일단 현자를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ㅡ


“저기, 저기!”


로그가 손을 흔들었다. 붉은 양 갈래 머리가 덩달아 흔들렸다.


“너, 정말 강한 것 같은데 나랑 한번 겨뤄보지 않을래?”


뜬금없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이 애송이는.


무척이나 귀찮다는 표정을 향해도 로그의 얼굴에서 밝은 웃음은 지워지지 않았다.


“여기 규칙으로 용끼리는 싸워서 안 되거든. 외부인인 너라면 괜찮으니까 딱 한 번! 한 번만 싸우게 해주라. 너 같은 인간은 처음 봤어.”


아직도 나를 인간으로 착각하고 있는 건가. 시이나는 만나고 곧바로 내가 마족이라는 걸 알아차렸건만. 워낙 강한 힘 탓에 둔한건지.


“오빠는 맹약이니 뭐니 시끄럽겠지만 우리가 황국이랑 맺은 약속은 지상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거! 그러니까 여기에서 싸우는 건 문제가 안 될 거라구 분명!”

“그렇게 보이지는 않는데, 싸움 자체를 즐기는 성격이었군.”


무미건조하게 던진 말에 로그가 환하게 웃었다.


“강한 녀석은 싫어하지 않아. 누가 더 센지 겨루고 싶은 건 당연한 거잖아?”

“그걸 전투광이라고 하는 거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난데없이 떨어뜨린 건 미안하게 됐다만 이것과 그건 별개의 문제다. 약속대로 한대 맞아준 걸로 끝내는 건 어때.”

“잠깐 싸운다고 해서 별 문제될 거 없잖아? 너 같은 강한 녀석, 꽤 좋아한다구 나는. 쓰러 눕히고 싶어!”

“그런 촌극에 어울려줄 필요는 없다.”


그래봤자 어린아이의 헛소리다. 로그의 제안을 무시하고 돌아서려는 찰나,


“어라, 강하다고 생각했는데 ‘도망치는’ 거야?”


뻔한 도발이 들려왔다.


어디까지나 나를 끌어들이기 위한 말이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나는 그걸 무시할 수 없었다.


“지금... 뭐라고.”


도망쳐? 내가?


내 마음 아주 깊은 곳에서 누군가 대답해온다.


도망쳤잖아. 그러니까 '그런 결과'가 된 거야.


나는 그럴 생각은 없었다.


하지만 전부 네 탓이야. 네가 일찌감치 받아들이지 않고 운명을 거부한 탓에, 그 둘은ㅡ


내 눈동자는 어둡게 물든다.


그런가.


도망치지 않는다.


절대.


더 이상 도망쳐서는 안 돼. 그럴 자격은 이미, 잃은 몸이다.


“류... 셀?”


시이나가 마치 다른 사람을 보는 것처럼 뒷걸음질 친다.


어째서지, 이 용족 소녀의 말은 내게 굉장히 불쾌하게 다가왔다. 가벼운 도발일 터일 그 말이, 어째서 이렇게 까지 거슬리는 걸까.


나는 생각했다.


로그는 방금 전까지와는 달리 확실하게 싸울 의지를 보이고 있다. 방금의 일격으로 미루어보아 장난으로 다투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하지만 그 이유가 무엇인지는 사실 아무 상관없다.


어느샌가, 나는 전생에서 평소에 늘상 하던 대로 논리를 전개하고 있었다. 사람의 목숨으로 ‘사업’을 하던 그 때로 돌아가서. 변덕 하나로 사람을 살리고 죽이던 그 때로.


내게 적의를 향한 이상, 나의 적이다.


마피아의 세계는 자신을 향한 적의를 가볍게 보지 않는다. 나를 향한 적의는 곧 내가 쌓아올린 모든 것에 대한 적의다. 나의 부하와, 동료와, 조직에 대한 적의다.


짓밟아야한다. 철저하게 짓밟지 않으면 성에 차지 않는다.


한심하게 관용을 보여 봤자, 한번 자신에게 이빨을 보인 상대는 미래에 분명 같은 짓을 되풀이한다. 그럴 바엔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만들어줘야지.


완전히 굴복시켜 종으로 삼을지, 아예 처리해버릴지는 성향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굳이 따지자면 후자를 선호하는 편이다.


힘으로 지배되는 세계에서 얕보인 상대를 그냥 놔둔다고? 그건 패망의 지름길이다.


나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싸늘한 눈으로 로그를 노려보았다.


금방 꽥꽥 울부짖었던 광맥의 쓰레기보다는 좀 더 버텨줄까. 죽음을 면전에 두고는 무슨 표정을 지을까.


“말해두지만 나는 손대중은 하지 않는 성격이다. 후회는 하지 않겠지?”

“자신감 넘치는 걸? 좋아좋아!”


내 경고를 들은 체도 않고 로그가 자신의 주먹을 맞부딪혔다. 그 단순한 동작만으로 충격파가 조금 인다.


아무 생각 없이 싸움의 흥분에 달아오른 로그의 얼굴을 보고 나는 혐오를 숨기지 않고 이를 빠득 갈았다.


어째서, 이렇게 짜증이 솟아오르는 거지.


얕보고 있어. 고작 자신 하나로 어떻게 될 상대라고 생각하는 건가.


“기어오르지 마라. 파충류 따위가.”


나는 오른손을 앞으로 뻗었다.


“자초한 건 너다. 죽어도 원망하지 말라고.”


내 손에 모인 마나는 금세 불안정하게 타들어가는 검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꺼림칙한 것은 망설임 없이 앞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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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온천 +1 20.02.20 291 7 10쪽
110 난입 +1 20.02.16 293 8 8쪽
109 분노 +3 20.02.13 313 8 9쪽
108 피바람 +1 20.02.09 310 8 9쪽
» 방아쇠 +1 20.02.06 286 10 9쪽
106 용족 소녀 +1 20.02.02 325 9 11쪽
105 현자 +1 20.01.31 287 12 8쪽
104 임무 실패 +1 20.01.23 302 9 9쪽
103 용의 이상향 +1 20.01.19 305 11 10쪽
102 꽃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1 20.01.16 301 8 12쪽
101 어쩔 수 없는 희생 +1 20.01.12 310 10 10쪽
10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10 8 9쪽
99 적발 +1 20.01.05 296 9 9쪽
98 잠입 +1 19.12.29 313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30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21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09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21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5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53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41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7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95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49 9 10쪽
87 난투 +2 19.11.21 340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5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42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8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55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7 1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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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 세계수 +1 19.10.10 426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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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빙결의 마수 +1 19.10.03 415 11 11쪽
72 설원 +1 19.09.29 442 11 11쪽
71 류아 +2 19.09.26 473 11 11쪽
70 서로의 요구 +2 19.09.22 457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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