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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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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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31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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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력 증강

DUMMY

정신을 잃은 카니앗이 깬 건 엘프의 마을에 돌아온 후였다.


“여긴...”


눈을 뜨자 보이는 낮선 천장에 당황해 급히 일어난다.


벽을 따라 흐르는 한 줄기의 초록 불, 그리고 발코니의 커튼 사이로 흘러들어오는 달빛이 은은하게 비출 뿐인, 그렇게 밝지는 않은 방이었지만 다행히 머리맡에 있는 활과 화살통을 찾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그 이상한 목소리. 생각했던 것과는 좀 달랐지만 끝에는 고대 엘프의 유산을 취할 자격을 인정하겠다는 식으로 말했을 터. 하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좀 뻐근한 걸 빼고는 아무런 변화도 느껴지지 않았다.


카니앗은 침대에서 내려와 커튼을 열어젖히고 발코니로 나갔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5층 정도의 높이다. 근력강화를 걸고 그냥 뛰어내려도 다치진 않겠지만 당당하게 정문으로 나가도 아무도 뭐라할 사람이 없는데 그럴 필요는 없다. 카니앗이 여기로 나온 건 다른 이유에서였다.


“비스 비레스.”


이마 위로 수인을 맺은 카니앗이 영창하자 마법진이 떠오른다.


그 중앙에 작은 불꽃이 타닥거리는 것 같더니 화염이 크기를 키워가며 사납게 혀를 날름거렸고, 곧 마법진에서 뿜어져 나오는 건 어두운 밤하늘을 밝히는 불기둥이었다.


카니앗의 11번이라고 할 수 있는 공격마법, 하지만 그 크기는 그녀가 기억하는 것보다 훨씬 컸다. 이전보다 더 뜨거워진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카니앗은 상기된 표정으로 마나 공급을 멈추어 마법을 지워버렸다. 새로운 마법의 발동을 위해 마음을 다잡았다.


“윈드 카타스트로피.”


바람 계열 마법은 그렇게 익숙하지 않을 뿐더러, 카니앗이 쓸 수 있는 마법보다 살짝 위계가 높다. 이때까지 수도 없이 영창을 실패해온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 정말로 마력이 강해졌다면 충분히 쓸 수 있어야 했다.


아니나 다를까, 아까보다 조금 밝아진 것 같은 마법진에서 돌풍이 몰아쳤다.


그것은 한줄기 한줄기가 전부 적을 갈기갈기 찢는 매서운 바람. 위치 조절을 조금만 잘못했어도 자신이 있는 발코니가 박살이 났을 것이다.


카니앗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마력이 얼마나 오른 건지 자세하게는 모른다. 더 높은 위계의 마법의 영창 방법은 배우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일단 올랐다는 건 확실했다. 아무리 노력해도 넘지 못하던 한계를, 지금 넘어선 것이다.


이 기쁜 소식을 누구에게 제일 먼저 전해야할지는 정해져있었다. 그녀의 주인이 일부러 마수를 쓰러뜨리면서까지 세계수를 찾은 건 다크엘프를 위해서였으니까.


서둘러 활을 챙기고 어두운 방을 나가자 제일 처음 보이는 건 거목. 발코니에서 볼때는 몰랐지만 여긴 그 큰 나무를 감싸는 형태로 지어진 건물이었다.


아래에서부터 그 기둥을 둘러 올라가는 형태로 원형 계단 겸 복도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를 따라 카니앗이 있었던 방과 비슷한 방들이 있었다.


거목에서는 농밀한 마나의 존재가 느껴졌다. 방을 밝히던 수수께끼의 빛과 동일한 초록색 광원이 나무 전체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저 빛은 단지 미약한 조명을 제공할 뿐인걸까. 그 용도가 조금 궁금했지만 지금은 건물에서 나가는 게 우선이다. 카니앗은 아래로 향하는 복도를 내려갔다.


“일어나셨군요.”


마왕에게 뭐라 사념을 보내면 좋을지 생각하며 1층으로 내려오자 들어본 적 있는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거목 옆 의자에 앉아있던 하이엘프가 낡은 책을 내려놓는 참이었다.


“서두르지 않아도 방금 소식을 전했으니 곧 동료 분들이 오시겠죠. 조금 더 쉬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 말이에요. 출출하실 테니 식사라도 하시겠어요?”

“됐어. 그것보다 여기는 어디인데?”

“병원 같은 곳이에요.”


카니앗은 레야를 미심쩍게 바라보았다.


“장로가 왜 여기 있는 거야?”

“그렇게 긴장하지 마세요. 여기 책임자는 저랍니다. 이래봬도 치유마법은 제 특기 중 하나니까요. 제가 상태를 보겠다고 자처한 거예요.”


레야의 손에는 어느새 곰방대가 들려있었다. 따로 불을 붙이지도 않았는데 깊게 빨아들인 입에서 연기가 나왔다.


“갑자기 쓰러졌다고 들었지만 상처는 없었어요. 역시 위그드라실과 직접 닿은 영향이겠죠. 그래서, 수확은 있었나요?”

“그거, 알려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는데.”

“차갑네요, 이제 같은 편이 되었다고 하는데도...”


숨기려하지도 않은 불신에 레야가 상처받았다는 것처럼 말했지만, 실은 그렇지도 않다는 건 얼굴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가지고 계실 질문에 대답해드릴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요? 그것과 직접 만났으니 아직 이해가지 않는 게 많을 텐데 말이에요.”

“그것...? 당신, 그 목소리를 아는 거야?”

“모를 리가 있나요. 위그드라실이 있는 곳으로 여러분을 보낸 건 바로 저인데.”


세계수를 보관하는 신전에 그 마수가 있는 걸 알면서도 아무런 경고도 하지 않은 것을 따지려던 카니앗이었지만 가까스로 억눌렀다. 그녀의 주인이 그걸 알면서도 자신을 레야에게 맡긴 거라면 크게 문제 삼지 않았겠지.


“라그라로크 때문에 세계가 불타는 가운데, 엘프들은 무슨 심정으로 세계수의 씨앗에 마법을 담았을까요? 새롭게 태어난 세계에 정착할 거라는 보장도 없었는데 말이에요.”

“조상에 대한 일이라면 몰라. 당신네들은 우리를 내쳤으니까. 우린, 다크엘프는 이런 것에 의지하지도 못했다고.”


레야는 고개를 흔들었다.


“정답은 절망뿐인 세계에서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했던 거랍니다. 그 간절함이 씨앗에 의지의 형태로 담겼어요. 모든 것을 품는 세계수의 특성 때문에 지식이 인격을 가지게 된 거예요.”

“즉 내가 들은 건 조상의...?”

“네, 이그ㆍ시피아 씨가 마주한 건 그 인격이에요. 이렇게 살아있다는 건 마법을 넘겨받을 자격을 인정받았다는 것이죠. 하지만 힘이 생겼다고 해서 그 한계까지는 모르실텐데요.”


마음을 읽힌 것 같아 카니앗은 눈을 찡그렸다. 마력이 오른 지금, 과연 어느 위계의 마법까지 쓸 수 있는 건지는 일어나서 마법을 시험해본 뒤로 계속 궁금해 하고 있었던 것이다.


“당연한 거죠. 고대 마법은 저희가 알고 있는 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원래는 단지 배움을 희망한다고 해서 쉽게 습득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마법이 선택해야 비로소 자격을 얻게 됩니다. 이전에는 선택을 받을 수 있을지 알지도 못한 채 평생 수련에 매진했다고 해요.”


다시 곰방대를 깊게 빨아들인 레야가 긴 한숨과 함께 연기를 내보냈다.


“하지만 겨우 이 섬을 찾았던 조상은 그런 불확실한 방법에 기댈 수 없었죠. 다져온 기반이 다 무너진 마당에 후손이 마법을 잃기까지 하면 척박한 환경에서 살아남기 어려울 거라고 알았으니까요. 그래서 느리지만 확실한 방법을 찾았답니다. 빙결의 마수를 보고 얻은 아이디어였죠. 실제로 보셨으니 아시겠죠?”


카니앗은 고개를 끄덕였다. 레야가 말하는 건 아까 예상해둔 내용이었다.


봉인된 몸으로 칼란츠 전역을 설원으로 바꿔버린 마수. 역시 마왕 앞에선 큰 위협이 되지 못하고 쓰러졌지만 마수로 불릴 만큼 강한 건 틀림없었다.


“그 마수는 단지 존재하는 것만으로 주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었으니까요. 현자들은 고전 끝에 에델가르드를 봉인하며 씨앗을 심었어요. 언젠가 이 섬이 새로운 세계수가 될 수 있도록.”

“그렇게 오래 전에 있었던 일이야? 싹도 피지 않은 것처럼 보이던데.”

“세계수의 씨앗은 성장이 느리답니다. 세계를 떠받치는 나무인 만큼 일반적인 나무와는 다르니까 말이에요. 하지만 마법을 다음 세대로 확실히 넘기게 해준다는 면에선 성공적이었어요.”


꿈을 꾸는 것처럼 말하던 레야는 짐짓 진지한 어조를 만들었다.


“새로운 땅에 심은 것으로 다시 숨쉬게 된 씨앗은 그 안의 담긴 강대한 마법을 섬의 주민들에게 불어넣었습니다. 섬에서 살아가는 자들은 씨앗과 직접 닿지는 않지만 일생동안 그 영향을 받게 되죠. 그 영향이 간접적이라고 해도 마법의 효율이 높아지고 마법식의 순도는 올라가요. 다크엘프에서 마법의 대가 끊긴 건...”


레야는 잠시 뜸을 들였다.


“그런 방법을 찾지 못했기 때문, 이라고 생각해요. 저희도 에델가르드가 실마리를 제공해주지 않았다면 이미 마법을 잃어버렸겠죠. 시간이 흐를수록 고대 마법 적합자들은 사라져갔으니까요.”


틀림없이 독차지한 마법에 기대며 살아왔을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하이엘프도 나름 고충을 겪었다는 이야기였다. 섬의 안전을 위협하는 마수에게서 종족을 부흥시킬 아이디어를 얻었다는 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그 대신 그 특혜를 받은 저희는 엄격한 규칙에 따라야 해요. 슬픈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결국에는 힘의 잘못된 사용이 낳은 결과를 슬퍼한 조상이 남긴 유산이니까요. 그 힘을 얻을 자격을 얻었다는 건 악한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는 걸 증명한 거나 마찬가지랍니다.”


레야는 아까 읽던 책의 표면을 쓰다듬었다.


“라그나로크 이래 하이엘프의 마법을 습득한 다크엘프는 이그ㆍ시피아 씨가 처음입니다. 다른 장로들은 끝까지 찬성하지 않았어요. 하이엘프만의 유산을 그렇게 넘겨주는 걸 반대하는 의견도 있었지만 천천히, 아주 긴 세월동안 천천히 알아가야 할 것을 한 번에 배워버리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죠. 마왕의 측근의 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하이엘프 전체에 불똥이 튈 것을 두려워했어요. 그 장로들을 붙들어두는 동안 여러분이 에델가르드를 쓰러뜨리고 세계수를 찾아내 보인 거지요.”

“왜 그렇게까지 하는 거야? 내가 더 강해진다 해도 당신에게 이득은 없잖아.”


카니앗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다툼이 있을 때마다 모두 죽어갔어요. 신도, 인간도, 마수도, 마족도. 이제 슬슬 그 굴레에서 벗어날 때가 된 거예요. 그걸 위해서라면 기꺼이 도와드리죠.”


레야는 낡은 책을 들어 카니앗에게 내밀었다.


“엘프가 알고 있는 상급 마법이 모두 적혀있는 고서예요. 고대 룬으로 적혀있지만 읽으실 수 있다고 들었으니 괜찮으시겠죠? 그걸로 시험해보세요.”


미심쩍게 레야를 보던 카니앗은 일단 책을 받아들었다.


“일단 고맙다고는 해둘게.”


간단히 감사인사를 하고 바로 병원을 나서려는 카니앗의 뒤에서 레야가 덧붙였다.


“마을 한복판에서 썼다가 소란이 나는 건 곤란하니 마법을 쓸 장소에 대해선 류아에게 물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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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적발 +1 20.01.05 297 9 9쪽
98 잠입 +1 19.12.29 314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31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21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09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21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5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5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41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7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96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49 9 10쪽
87 난투 +2 19.11.21 341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5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42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8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55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8 10 10쪽
» 마력 증강 +1 19.10.31 384 11 11쪽
80 포로의 결정 +1 19.10.27 392 11 11쪽
79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19.10.24 397 13 10쪽
78 바르포르도 +1 19.10.20 394 13 10쪽
77 승전국의 대위 +1 19.10.17 412 10 10쪽
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91 11 10쪽
75 세계수 +1 19.10.10 426 12 11쪽
74 에델가르드 토벌 +1 19.10.06 417 12 11쪽
73 빙결의 마수 +1 19.10.03 415 11 11쪽
72 설원 +1 19.09.29 443 11 11쪽
71 류아 +2 19.09.26 474 11 11쪽
70 서로의 요구 +2 19.09.22 458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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