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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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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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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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01 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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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첫 번째 마무리

DUMMY

“천계에서? 역시라는 건 또 무슨 소리인데? 어째서 하필 지금!”


가름이 소리치는 와중에도 하늘의 화살은 끊임없이 내렸다. 한시라도 전혀 약해질 기미 없이, 그 둘을 핀 포인트로 노리고 아낌없이 퍼부어대고 있다.


평소엔 불문율의 규칙으로 지상계에 대한 개입을 최소로 유지하는 신들. 저 계집이 얼마나 소중하기에 원칙마저 깨려든다는 것인가.


“대상이 도망친다.”


무미건조한 말에 가름은 정신을 차렸다. 아니나다를까, 유리에가 혀를 내밀어 보이며 종종걸음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젠장...! 어떻게 할 순 없겠어?”


가브리엘은 고개를 저었다.


“그럴 틈은 없다. 방어 술식을 해제하는 순간 너와 나는 소멸하게 된다. 지금은 천계의 공격이 그치기를 기다려야 한다.”


그렇게 말해지니 가름도 어쩔 수 없었다. 신도 제한 없이 마음껏 쓸 수 없는 이 공격의 위력은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늘의 화살이 이렇게 길게 지속된다는 건 복수의 신들이 힘을 합쳐 천벌을 내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는 유리에가 유유자적 모습을 감추는 걸 이를 악물고 보고 있어야 했다.


그로부터 몇 분은 흐른 뒤에야 빛의 광선은 멎었다.


이젠 완전히 화염에 감싸인, 아무도 없는 알현실을 둘러보며 가름은 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빌어먹을 신 놈들 같으니. 직접 내려오지도 않을 거면서 참견은 지들 입맛대로 하겠다고...”


이래야 다잡은 먹이를 눈앞에서 놓쳐버린것이나 마찬가지.


“보기 좋게 놀아났다는 거잖아. 이래서 무슨 얼굴로 보스를...”

“아니. 수확은 있었다.”


타닥, 타는 불 소리 사이로 가브리엘이 중얼거렸다.


“뭐? 이게 어딜봐서 수확이라는 건데?”


◆ ◆ ◆ ◆ ◆ ◆ ◆ ◆ ◆ ◆ ◆ ◆ ◆ ◆ ◆ ◆ ◆


공유된 시야를 통해 가름이 펄펄 뛰는 걸 보며, 나는 제국에서 엘프의 섬까지 사념 통신을 제공하고 있는 부하에게 치하의 말을 건넸다.


『수고했다, 가브리엘. 외부의 전이마법이 막혀있는 이곳으로 준비작업도 없이 돌아오기는 힘들 테니 가름과 함께 왕국에 돌아가 있도록 해라.』

『알겠다, 주인.』


사념이 끊기고, 나는 달콤한 술을 가득 담은 잔을 찰랑이며 생각에 빠졌다.


가름이 실망한 건 충분히 이해가지만 유리에를 놓쳤음에도 얻은 수확은 확실히 있다.

전지전능을 연기하며 우리를 내려다보는 신이 드디어 속내를 드러나게 한 것이다.


천계에도 신의 파벌은 갈리기 마련이라는 건 가브리엘 덕분에 잘 알게 된 사실이다. 이번에 싸움에 개입해온 건 그중에도 힘이 우세한 인간지지 파벌.


허나 아무리 친인간이라고 해도 그들이 노골적으로 인간의 편을 드는 일은 어지간해선 없는 일이다. 이렇게 대놓고 참견했다는 것은 그 인간이 절대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라는 것. 앞으로 인류에 닥칠 재해를 막아낼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유리에. 그 소녀가 용사인건가.”


술을 천천히 목구멍에 흘려 넣으며 내릴 수 있는 제일 간단한 결론을 고려한다.


확실히 인간인 주제에 그 힘은 규격을 한참 벗어나있다. 여러 혼을 번갈아 자신의 육신에 정착시키며 내보이는 전투력 또한 꽤 위협적이라고 할 수 있다. 왕국의 저택에 쳐들어온 유리에와의 첫 전투 도중 왜 내가 정신을 잃었는지는 아직 실마리조차 잡히지 않는 수수께끼다.


하지만, 유리에가 다른 혼을 빙의시키기 전까지 그 검에 성스러운 빛은 들지 않았다.


신에게 선택된 용사라면 패시브로 어두운 기운을 몰아내는 신성력을 장착하고 있을 테니 말이 되지 않는다.


굳이 용사가 아니더라도 인류에 꼭 필요한, 예를 들어 용사의 동료가 될 인물일 수도 있다.

인류를 지키는 최고봉 중 한 명인 건 확실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편애를 보이지는 않는다.


어찌됐든 간에 용사 후보의 인물이 하나 생긴 것이다.


황제의 대답은 들었으니 이제 정식으로 제국에 군을 진군시킬 필요가 있었다. 나름 모양새를 갖춘 마왕군의 첫 출진이 되겠지.


깊은 생각에서 깨어나며 주위의 소음이 다시 귀에 들어오고 있었다.


“마왕님, 총장로가 잠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잠시 일어서서 레야와 몇 마디 주고받은 스키잔이 뒤에서 귀띔했다.


“총장로가?”


이곳은 레야의 집의 메인홀. 섬 안에서 제일 큰 특성상 연회를 열기에 적합하다는 이유로 선정된 장소다.


엘프의 전통에서 거하게 잔치를 벌이는 일은 모처럼 없었지만 오늘만은 예외로, 참석객들이 전부 먹지도 못할 만큼의 좋은 술과 희귀한 음식이 상이 휘어지게 차려져있다.


골칫거리였던 마수가 없어졌다는 희소식까지 겹친 덕분인지 연회는 한창 무르익어 있었다.


각각 나름의 고위직을 맡은 엘프들이 각자 술잔을 들고 서서 얘기하거나 둥근 테이블에 앉아 식사를 즐기고 있다. 이따금씩 이쪽에 흥미로운 시선을 보내고는 있지만 역시 적극적으로 다가가기는 껄끄러운지, 내가 앉은 테이블에 착석한 건 내 부하들뿐이다.


“말씀을 나눠보시겠습니까?”


조심스럽게 묻는 스키잔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앉아서 얘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내 허락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초로의 남성 엘프가 고개를 숙이며 빈자리에 앉았다. 엘프는 나이를 굉장히 느리게 먹는다는 걸 감안하면 이 장로는 매우 오랜 시간을 살아온 것이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마왕님. 어제는 어수선한 상황을 정리하느라 자기소개도 제대로 하지 못했지요. 저는 레나운이라고 불러주십시오. 음식은 입맛에 맞으십니까?”

“나는 음식보다 너희들이 즐겨 마시는 술에 더 관심이 가는군. 맛이 아주 일품이야.”

“그건 정말 다행입니다. 대륙의 주류와는 많이 다르니까요.”


이 남자가 하이엘프의 총장로. 내 상대를 하는 건 레야가 일임받긴 했지만 엘프 사이에서 제일 큰 권력을 가진 건 레나운이다.


“섬의 안전을 위협하던 마수 에델가르드를 친히 쓰러뜨려주신 것에 모두 가슴 깊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건 충분히 들었으니 됐다.”


목청이 터져라 내 이름을 연호하는 건 이미 진저리가 났다. 막상 에델가르드를 토벌하고 돌아와서, 오찬의 시작과 끝에서, 그리고 조금 시간차를 두고 열린 지금 연회가 시작할 때까지 환호는 수그러들지 않은 것이다.


그 마수에 품고 있었던 공포심을 생각하면 그럴 만도 하다고 이해해주지 못할 것도 아니지만, 불특정다수에게 계속해서 감사를 받는 것도 슬슬 거북해지고 있었다.


“예, 마왕군에 보낼 인원도 지원자가 몰려들고 있다고 합니다. 예상 이외의 열기라 저도 놀랐습니다. 특히 젊은이들은 질세라 지원서를 내고 있습니다.”


레나운은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아시겠지만 저희 일족은 바깥의 싸움에 크게 가담하지는 않아왔습니다. 무엇보다 섬의 안전과 일족의 번영을 우선으로 하는 철칙을 고수하고 있지요. 따라서 과거의 인마전쟁에도 소수의 병력만 보낼 뿐이었습니다. 본래라면 이번도 그래야 하겠지만...”

“하겠지만?”

“섬을 위기로부터 구해주신 마왕님의 은혜에 보답하고자 400의 하이엘프를 보내고자 합니다. 총 지원자의 수도 그 정도일 겁니다.”


묵묵히 포크를 움직이던 카니앗의 손이 멈췄다. 의외의 제안에 놀란 것이겠지.


이 섬에 살고 있는 하이엘프의 수는 대략 천. 거의 그중 절반을 마왕군에 보내겠다는 것이다. 개개인이 가지는 마력을 생각하면 엄청난 규모의 원군이었다.


“레야는 이렇게 이야기하더군요. 항상 마왕군의 패배로 끝났던 전적에도 불구하고 이번엔 뭔가 다를지도 모르겠다고. 저는 그녀의 감을 믿어보고자 합니다.”

“오, 그거야 든든하군.”


마법을 다루는 것에 있어 하이엘프보다 뛰어난 마족은 없다. 자이언트ㅡ거인족들을 무작정 성에 돌격시키는 것보다 적절히 폭격마법을 쏘아대는 게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 점령을 용이하게 하는 전략적 선택. 그러니 하이엘프의 가세는 무척이나 든든했다.


“선발 절차는 수 일안에 완료될 전망입니다. 저희 장로 중 한 명도 보낼 테니 잘 부려먹어 주시길.”


설마, 하고 레야가 앉은 테이블을 바라보니 아니나 다를까 웃으며 손 인사를 보내온다. 처음부터 따라올 작정이었던 건가, 저 여자.


“아무쪼록 조만간 제국으로 진군시킬 병력 편성에 늦지 않았으면 하는군.”

“제국을 먼저 치시는 겁니까?”

“그 의외라는 듯한 말투. 역시 유디트 황국이 급선무라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

“나라 전체가 마족이라면 치를 떠는 광신도로 구성된 건 황국밖에 없으니까 말입니다. 세 살배기가 당연하다는 것처럼 빛 마법을 익히는 곳입니다.”


마족에게 있어 빛 마법. 즉 신성력이 가미된 공격은 치명적이다. 굳이 언데드가 아니더라도 그런 타입에 취약한 건 다르지 않다. 따라서 마족으로 구성된 마왕군에게 제일 성가신 건 신성마법 적합자들이 많은 황국이라는 소리였다.


“황국도 언젠간 쳐야 하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표면적으로 왕국과 제국은 전쟁 중이니까 말이지. 하지만 침공으로 호되게 당한 '왕국군'이 복수를 위해 제국에 쳐들어간다 해도 별로 이상하지 않아. 괜한 의심을 사지 않을 수 있다. 즉, 다른 나라들이 봤을 때 이건 인간의 전투라고 생각하게 하는 것이다.”


내 설명에 수긍한 레나운은 고개를 숙여보였다.


“서두르느라 일을 그르칠 필요는 없다. 착실하게 마왕군의 세력 범위를 늘려간다면 그걸로 좋아.”


인간들은 나라는 마왕의 강림 사실조차 알지 못하고, 다가오는 파멸을 눈치 채지도 못한 채 종말을 맞게 된다. 그걸 초래하는 건 내 계획, 내 부하, 그리고 내 힘이다.


나는 들뜬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제국에서 얼마나 많은 피해가 나올지 기대되는군. 패배를 인정하고 알아서 기게 하려면 제국은 얼마나 부서져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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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10 8 9쪽
99 적발 +1 20.01.05 296 9 9쪽
98 잠입 +1 19.12.29 313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30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20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09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20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5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53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40 9 12쪽
»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7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95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49 9 10쪽
87 난투 +2 19.11.21 340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4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42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7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54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7 10 10쪽
81 마력 증강 +1 19.10.31 384 11 11쪽
80 포로의 결정 +1 19.10.27 391 11 11쪽
79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19.10.24 396 13 10쪽
78 바르포르도 +1 19.10.20 393 1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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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91 1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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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설원 +1 19.09.29 442 11 11쪽
71 류아 +2 19.09.26 473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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