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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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9.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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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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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1.21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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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난투

DUMMY

검에 정밀한 마력을 담는 것으로 그 위력을 배가 되게 하는 판테온의 베어 올리기는 아무리 단단한 재질의 갑옷이라고 해도 두부처럼 양단해버리는 날카로움을 지녔다.


수납마법을 응용한 방법으로 저장창고에서 원하는 만큼 시미터를 불러내 공중에서 가공할만한 속도로 사출시키는 티아레트는 병졸 없이 단 혼자서 전선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화력을 자랑한다.


파캉!


위력과 속도라면 제국을 뒤져도 따라갈 자가 없는 둘의 합동 공격은 마치 폭격마법이 터지는 것 같았다. 충격으로 바닥에 난 균열이 그치지 않고 순식간에 왕좌가 있는 곳까지 도달할 정도다.


이런 걸 정통으로 맞고 살아있을 수 있는 자는 세상에ㅡ


“뭐, 뭐라...고?”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으려던 판테온이 말을 더듬거리며 얼굴을 굳혔다.


갑작스런 부하의 공격. 막을 사이도 없이 너무 빠르게 일어난 바람에 레스트는 무슨 일이 벌어진건지 순간 이해하지 못했다.


정확히 목표를 향해 날아가던 시미터는 어째서인지 애꿎은 천장에 꽂혀있고, 판테온의 묵직한 검은 가름을 베지 못하고 막혀있었다.


매서운 칼날을 붙잡고 있는 건 오직 엄지와 검지. 식사에 나온 콩알을 집기라도 하는 것처럼 가름은 회심의 일격을 막아낸 것이다.


“말도 안 돼, 시미터를 맨손으로 쳐냈어?!”


티아레트가 직접 보고도 못 믿겠다는 듯 경악했다. 연달아 시미터를 날리는 건 그녀의 특기지만 추가로 공격을 하는 것도 잊고 있었다.


“이, 이 놈이...!”


판테온이 아무리 힘을 줘 봐도 가름의 손가락이 붙잡은 검은 요지부동이었다.


“기세 좋게 달려들더니 이게 끝이냐? 이런 이쑤시개가 그리 가지고 싶으면 도로 가져가시라고.”


가름이 팅, 하고 검을 손가락으로 튕기자 온 힘을 다해 손잡이를 쥐고 있던 판테온은 그의 애검과 함께 무서운 기세로 날아가, 두꺼운 돌기둥을 부순 뒤 벽에 처박혔다. 파편 범벅이 된 그는 일어날 기미가 없었다.


그걸 넋 놓고 보고 있던 레스트는 상황의 중대함을 깨달았다.

황제의 검 중 하나가 순식간에 당했다. 어떤 적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 제국 최강의 기사가. 고작 손가락 튕기기에.


“화... 황제 폐하를 지켜라!”


판테온이 리타이어한 것으로 정신을 차렸는지, 비현실적인 싸움에 얼어붙어있던 근위병들이 그제야 가름에게 달려든다. 저 무지막지한 아인으로부터 황제를 지켜야한다는 생각으로 용기를 낸 자들의 무기가 제각기 가름의 급소를 노렸다.


“그러니까 부질없는 짓이라니까.”


가름이 팔을 가볍게 휘두르자 제국 최고 공방에서 조달한 철제 무기들이 유리마냥 깨지고, 근위병들은 몸 이곳저곳에서 피를 뿜으며 나가떨어졌다. 황제를 지킨다는 긍지로 오랜 시간 훈련에 정진해서 단련시킨 몸은 너무나도 쉽게 부서졌다.


“이...!”


뒤늦게 티아레트의 시미터가 수십 자루 날아들었다. 한 자루 한 자루가 정확히 가름을 향했지만, 가름은 눈에 잡히지도 않는 움직임으로 마지막 한 자루까지 쳐내버렸다.


사출시키는 시미터의 수를 최대로 늘려도, 다른 방향에서 날려도 결과는 똑같다.


“맞아도 별로 아프진 않겠지만 그냥 맞아주기는 싫네. 보스에게서 받은 지 얼마 안 된 새 옷이 더러워지기라도 하면 낭패라고.”

“그런...”


공격이 통하지 않는 것을 깨달은 티아레트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갔다. 그녀가 거쳐 온 전장에서 빠른 속도로 내리꽂히는 그녀의 시미터를 알아채고 대항할 수 있던 적은 인간도, 마족도 없었다.


내로라하는 무장들도 그녀 앞에선 반격할 사이도 없이 쓰러져왔다. 창고에 넣어둔 수만 자루의 시미터를 아낌없이 퍼붓는 건 적에게 반칙이라고 불릴 정도의 기술이다.


설령 직감으로 한두 자루를 쳐냈다고 해도 전부 받아칠 시간은 없을 텐데.


알현실에서 일어난 소란을 듣고 달렬온 병사들이 문을 여는 게 보였지만 저것을 상대로 얼마나 도움이 될지 생각하면 티아레트는 암울하기만 했다.


“데네브! 판테온이...!”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계속해서 시미터를 날리던 중이었던 티아레트는 발을 동동 구르며 남은 동료를 불렀다.


많은 사람들의 위에 서는 황제의 검으로서 위엄을 지키기 위해 평소에는 표정의 변화도 잘 보이지 않던 그녀였지만, 언제나 듬직하게 웃던 판테온이 너무 허망하게 쓰러지는 걸 본 그녀의 눈에는 눈물까지 고여 있었다.


“알고 있어!”


그녀의 의향을 바로 이해한 녹색 로브를 두른 사내ㅡ황제의 검 중 최연소 멤버는 로브 안에 손을 넣어 단검을 잔뜩 꺼내들더니 위로 던졌다.


아무렇게나 던진 것 같았지만, 단검들은 마치 살아있기라도 한 것처럼 방향을 바꾸더니 움직이지 않는 가름을 원형으로 둘러싸는 형태로 바닥을 부수며 차례로 꽂힌다.


“합!”


기합 소리와 함께 단검들이 밝게 빛나고, 일제히 터지며 불타올랐다. 사로잡은 자를 재도 없이 태워버리고 남을 정도의 뜨거운 불기둥이 솟는다.


불길이 가름을 완전히 휩싼 것을 확인하고 데네브는 두꺼운 단검 하나를 꺼내서 화염 속으로 던졌다.


단검에 부여되어있던 바람 속성 마법이 발동. 산소가 무더기로 발생한 덕분에 불기둥은 굉음을 내며 터져나갔다. 최악을 예상하고 기다란 레이피어를 잡은 데네브였지만, 불이 멎은 잔해에는 아무도 없었다.


“폭발에 산산조각난건가?”


시체가 없는 게 의아했지만 그 폭발을 직격으로 맞았으니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데네브는 일단 납득했다.


“나는 판테온의 상태를 볼 테니까 티아, 빨리 폐하를 피신시켜!”


데네브는 쓰러진 채 움직이지 않고 있는 판테온의 곁으로 갔다.


수납마법밖에 쓰지 못하는 티아레트와 달리 검과 여러 종류의 마법을 동시에 사용하는 특이한 전법을 가진 데네브. 그는 황제의 검이면서도 중급 공격마법과 저위 치유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다재다능한 인재였다. 너무 깊은 상처만 아니라면 응급처치 정도는 할 수 있을 터다.


판테온의 상태를 확인한 그는 눈을 찡그렸다. 양 팔의 뼈가 거의 다 부서져있고, 갈비뼈의 절반이 부러졌다. 단지 손가락으로 튕겼을 뿐인데 이런 위력이 나왔다는 건가.


“데네브...!”


황제를 데리고 대피했어야 했을터인 티아레트의 목소리가 들렸다.


“왜 아직도 안 빠져나간 거야, 여긴 위험하니까 빨리 나가야 해. 티아ㅡ”


성을 내며 고개를 돌리던 데네브의 눈에 티아레트와 레스트의 어깨에 사이좋게 양손을 올리고 있는 아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나한테 불 속성 공격이라니. 농담이 조금 심하네. 상어에 물을 뿌리는 것과 다를 게 없는데 말이야.”


단지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있을 뿐이었지만 티아레트는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 목숨이 붙어있는 건 단순한 변덕. 문자 그대로 가름이 살짝 손가락만 움직여도 자신의 몸이 산산이 부서진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증오스러운 적에게 시미터를 날리고 싶은 생각은 굴뚝같겠지만 황제와 이리 가까이 있으니 무턱대고 공격할 수도 없다.


“어, 느, 사이에.”


데네브가 벙쪄있는 사이, 온전한 기둥 뒤에 겨우 몸을 숨기고 있던 네이아르 백작이 소리쳤다.


“가름, 그를ㅡ바실루스 황제를 죽여서는 안 되네! 체제가 무너져 버려!”

“참, 성가시구만. 백작, 알았으니까 여기에 계속 있다간 목숨이 언제까지 붙어있을지 모르니 알아서 도망쳐.”


가름은 짧게 한숨을 쉬었다. 황제가 순응한다면 귀찮게 일부러 일을 벌일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난 덤벼드는 놈들을 가볍게 상대해준 것뿐이야. 별로 너희나 황제나 죽일 생각은 없으니까 얌전히 있으시라고. 저 갑옷 덩어리처럼 신나서 덤벼들지 말고.”


가름의 말에 주눅들은 병사들이 주춤대는 사이, 백작은 빠른 걸음으로 알현실을 빠져나갔다.


“그나저나 무서운 기술을 가졌네, 이쪽 아가씨는. 수납마법을 그렇게 응용할 줄이야. 좋은 공부가 됐어.”


잔뜩 몸이 경직된 티아레트를 장난스럽게 보던 가름의 눈은 말이 없는 레스트를 향했다.


“자, 시끄러운 놈도 없어졌고 하니 슬슬 아까의 대답을 들어보도록 하실까.


레스트는 데네브 발치에 쓰러져있는 판테온을 보았다. 가름은 제국이 전적으로 왕국에 고개를 숙이고, 사실상 요구사항을 무조건적으로 따르는 속국이 될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보통 이런 대우를 받았을 때, 제국이 원칙대로 행동한다면 압도적인 국력으로 상대를 짓누르고 제 분수를 알게 해야 한다.


하지만 한때 비웃었던 왕국은 이제는 도저히 대적할 수 없는 나라가 되어 있다. 확실하게 실력이 증명된 황제의 검이 다 모여도 사절 하나의 시간을 끌지도 못한다. 현시점에서 왕국에 반기를 드는 건 너무나도 어리석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내려야 할 판단은 이미 정해져있었지만.


“정말.”


황제는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참 어쩔 수 없는 성격이라니까.”


가름이 눈썹을 올린 순간이었다.


“유리에!”


레스트의 외침과 동시에 가름은 뭔가에 얻어맞고 저만치 뒤로 나가떨어졌다.


먼지구름이 뭉게 뭉게 피어오르는 사이, 티아레트와 레스트 사이에 선 붉은 머리의 소녀가 함박웃음을 지어보였다.


“기다리느라 지쳤다구, 황제 아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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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드리워지는 그림자 +1 20.03.12 432 7 8쪽
115 전장에 울려퍼진 총성 +1 20.03.08 295 5 9쪽
114 불타는 도시 +1 20.02.29 283 9 9쪽
113 마왕군의 침공 +1 20.02.26 306 7 10쪽
112 의외의 고백 +1 20.02.23 309 6 11쪽
111 온천 +1 20.02.20 292 7 10쪽
110 난입 +1 20.02.16 294 8 8쪽
109 분노 +3 20.02.13 313 8 9쪽
108 피바람 +1 20.02.09 310 8 9쪽
107 방아쇠 +1 20.02.06 286 10 9쪽
106 용족 소녀 +1 20.02.02 326 9 11쪽
105 현자 +1 20.01.31 288 12 8쪽
104 임무 실패 +1 20.01.23 303 9 9쪽
103 용의 이상향 +1 20.01.19 306 11 10쪽
102 꽃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1 20.01.16 302 8 12쪽
101 어쩔 수 없는 희생 +1 20.01.12 311 10 10쪽
10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11 8 9쪽
99 적발 +1 20.01.05 297 9 9쪽
98 잠입 +1 19.12.29 314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31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22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10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21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6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5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42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7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96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49 9 10쪽
» 난투 +2 19.11.21 342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5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44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8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55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9 10 10쪽
81 마력 증강 +1 19.10.31 385 11 11쪽
80 포로의 결정 +1 19.10.27 392 11 11쪽
79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19.10.24 397 13 10쪽
78 바르포르도 +1 19.10.20 394 13 10쪽
77 승전국의 대위 +1 19.10.17 414 10 10쪽
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92 11 10쪽
75 세계수 +1 19.10.10 426 12 11쪽
74 에델가르드 토벌 +1 19.10.06 417 12 11쪽
73 빙결의 마수 +1 19.10.03 416 11 11쪽
72 설원 +1 19.09.29 443 11 11쪽
71 류아 +2 19.09.26 474 11 11쪽
70 서로의 요구 +2 19.09.22 460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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