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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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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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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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2.29 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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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UMMY

“오? 봉쇄된 광맥지대치고는 도로가 잘 닦여있네.”


땅을 찬찬히 살피던 랭겔이 고개를 들었다.


“역시 이 앞에 뭔가 있는 건 확실한 것 같아, 부단장. 잘 티가 안 나긴 하지만 제대로 바퀴자국도 나있어. 헛걸음한 건 아닌가 보네.”

“그건 다행이군요.”


리우가 사뿐히 마차에서 내리는 것을 본 로지스트는 잔뜩 경직된 손으로 고삐를 쥐고 있는 행상인을 툭툭 쳤다.


“이 이상 나아간 사람들이 전부 행방불명됐다는 건 사실이겠지?”

“저, 저, 정말입니다...! 여기까지 온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요!”


행상인의 마차에 숨어든다는 전략은 효과적이었다. 주위를 어슬렁거리는 왕국군과 몇 번 조우하긴 했지만 의심을 사지 않고 무사히 광맥지대 근방까지 도착한 것이다.


왕국과 제국은 아직 적대관계이긴 하나 왕국군은 굳이 먼 거리를 달려 물자를 가져다주는 상인을 해코지하지는 않았다. 절차상 대충 마차 내부를 보고 나서는 순순히 보내준 것이다.


“저기가 입구인가 본데.”


랭겔은 멀리 나있는 커다란 구멍을 가리켰다. 최근까지도 이용한 흔적이 남아있는 도로가 일직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특이한 구조야. 들어가서 역으로 올라가는 건가? 그러면 여기가 최저층이라는 얘기구만.”

“이제 제국이 제공한 정보의 진위를 확인하는 일만 남은 겁니다.


리우가 말했다.


“들키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도보로 움직이죠.”

“부단장님, 이 놈은 어떻게 할까요?”


로지스트가 행상인을 가리켰다.


“일단 여기까지 데리고 오긴 했는데, 역시 처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괜히 제국에 돌아가서 입을 나불거리고 다니면 성가신 일이 될지도 모릅니다.”


안색을 새파랗게 해서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어대는 행상인. 여기까지 와서 죽임 당할 줄은 몰랐을 것이다. 시키는 대로 했으니 풀어줄 거라 생각했겠지.


“그것도 괜찮겠지만.”


리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 남자는 아직 쓸모가 있습니다. 탐사가 무사히 끝난다면 돌아갈 때도 행상인의 신분을 이용할 수 있어요. 묶어서 적당히 방치해두죠.”

“넵!”


로지스트가 휘리릭 밧줄을 꺼내더니 신속하게 행상인을 구속했다.


“자, 잠깐만요...!”


차마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던 행상인이 겨우 입을 열었다.


“이 근처는 마물들이 어슬렁거린다고 합니다. 기왕 두고 갈 거면 조금 떨어진 장소는 안 되겠습니까...?”


행상인의 간청에 랭겔과 로지스트는 서로를 쳐다보았다.


“ㅡ라는데. 어쩔 거야, 일곱 번째?”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어요? 죽으면 운이 나빴나, 생각하면 되겠죠.”


랭겔의 물음에 로지스트가 표정을 바꾸지도 않고 대답했다.


“그런...!”


애원하는 목소리를 내는 행상인은 그렇게 의논의 여지없이 도로변에 방치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로지스트는 리우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그럼 부단장님. 먼저 앞을 탐색하도록 하겠습니다.”


리우가 고개를 끄덕여 승낙하고, 로지스트의 모습이 돌연 사라졌다. 투명화 마법과 고속이동을 연달아 쓴 것이다.


인기척을 전혀 내지 않고 적지에 숨어드는 일곱 번째 빛, 로지스트의 능력은 천벽인광 중에서도 암살에 제일 적합했다. 이번 잠입 임무가 아니었으면 다른 나라에서 황국의 적의 목을 긋고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부단장. 우리가 우려하고 있는 게 맞으면 어떻게 할 계획이야?”


꽁꽁 묶인 채 애처롭게 이쪽을 쳐다보고 있는 행상인에게서 시선을 돌리며 랭겔이 물었다.


“생각보다 저 안은 큰 모양인데. 마왕군이라도 바글바글하면 아무래도 우리 셋으로만 대처는 어렵지 않겠어?”

“발각되지 않고 사실만을 확인한 뒤 빠져 나오는 게 목표. 만일 발각될 경우에도 퇴각이 우선이라는 점은 변함없습니다. 저희는 전쟁을 하러 온 게 아니니.”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마족이라면 얼굴 하나 바꾸지 않고 참살하는 리우치고는 의외인 발언이었다.


“이 정도까지 조심스러운 마왕이라면 수족도 꽤 불려놓았겠죠. 소수의 인원으로 정면으로 맞서는 건 어리석은 짓. 적어도 첫 번째를 데리고 오지 않으면 안심할 수 없습니다.”

“첫 번째?”


천벽인광의 단장ㅡ첫 번째 빛은 존재 자체만으로 전쟁의 억지력이 되는 황국의 으뜸가는 병기. 황국이 첫 번째 빛을 쓰지 않는다는 조약을 외교 카드로 쓸 만큼 막강한 인물이다. 그가 임무에 불리는 건 오직 황국이 중대한 위기에 처했을 뿐.


그런 단장을 부를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에 랭겔은 미묘한 표정을 만들었다.


“꽤 후하게 평가하는구먼...”

『부단장님.”』


리우는 주머니에서 작은 구슬하나를 꺼냈다. 로지스트의 목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확인했나요, 일곱 번째.”

『네. 이곳이 마족의 소굴인 건 틀림없습니다. 입구에서 하이드 어쌔신과 세도우 이터들이 몸을 숨기고 있습니다. 무리하게 들어가려고 하면 적발될 겁니다.』

“허어, 잘못 들은 거 아니지? 하이드 어쌔신을 고작 보초로 세워뒀다고?”


랭겔이 혀를 내둘렀다. 한편 리우는 침착하게 물었다.


“정확히 몇 체가 있죠?”

『하이드 어쌔신이 두 체. 쉐도우 이터가 세 체입니다.』


하이드 어쌔신은 조우 주의령이 떨어질 정도의 상급 마족이다. 어지간해서 서식지인 사자의 계곡을 벗어나지는 않지만 멋모르고 들어간 모험자들은 하나같이 싸늘한 시체가 된다.


먹잇감의 그림자에 숨어 생명력을 탐하는 쉐도우 이터 또한 만만한 상대는 아니었다. 물리 공격은 일절 통하지 않으며 한번 그림자에 들어가 버리면 어찌할 방법이 없다.


“어쩔 수 없지요. 저와 다섯 번째가 가세하겠습니다.”

“엉? 괜찮은 거야, 부단장?”


랭겔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천검 따위를 써버리면 바로 들키고 말텐데? 혹시 광맥지대를 전부 무너뜨릴 생각인거야?”

“랭겔... 저를 뭐라 생각하는 겁니까.”


리우는 살짝 성가시다는 말투로 말했다.


“화려한 공격을 쓸 생각은 없습니다. 가면서 설명할 테니 따라오는 겁니다.”


광맥지대는 마왕군의 본거지이지만 대외적으로는 왕국 소유의 자산으로만 알려져 있다. 근처를 배회하는 마물들에게 높은 확률로 살해당한다는 불길한 소문은 조금 과장이 보태지긴 했지만 완전히 거짓인 것도 아니었다. 가끔씩 흘러들어오는 부외자는 입막음을 위해 처리하라는 지침이 모든 병사에게 내려져 있었으니까.


이따금씩 물자가 들어오고 나가는 것 이외에는 한산한 광맥지대의 입구를 지켜보는 임무는 그리 매력적인 것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하이드 어쌔신은 군말 않고 벽 속에 숨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명령을 내린 마왕은 자신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의 절대적인 강자였으며, 온 마족을 다스리는 왕이었으니까.


게다가 병사들 사이에선 조만간 적의 침입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문도 있었다. 입구의 경비는 지루할 수는 있지만 절대 하잘것없는 역할은 아니었다.


“부스럭.”


가까이서 들린 소리에 하이드 어쌔신은 경계태세에 들어갔다. 방금 전까지 누군가 접근하는 기척은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지근거리까지 왔다는 건 여간내기가 아니라는 소리.


저벅, 저벅.


“인...간?”


묘한 복장의 인간 소녀가 하나 걸어오는 걸 발견한 하이드 어쌔신은 같은 임무를 받고 함께 몸을 숨기고 있는 동료와 간단한 사념을 주고받았다.


『이곳으로 오고 있다.』

『지침대로 군무부에 보고를.』

『먼저 처리하고 해도 늦지 않다. 적은 고작 인간 하나다.』

『...동의. 이터는 침입자를 처리해라.』


다른 하이드 어쌔신이 상급자로서 쉐도우 이터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벽의 그림자에 숨어있던 쉐도우 이터들이 빠져나와 빠른 속도로 지면을 타고, 무방비하게 서있는 소녀를 덮쳤다.


한순간만 있으면 생명력을 모조리 빨린 변사체가 완성되는 것이다.


휙.


소녀는 자세를 낮추며 손날을 휘둘렀다.


그 광경을 보고 있던 하이드 어쌔신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깨닫지 못해 잠시 당황했다. 공격하던 쉐도우 이터 3체 모두 생명을 잃고 희미해져가고 있었다.


비스듬히 휘둘러진 소녀의 손에는 흰 빛의 입자가 반짝거리고 있었다. 그로부터 느껴지는 건 터무니 없이 강한 신성력.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어서 보고를ㅡ』


사념이 끊긴 것을 알아채고 말을 도중에 끊은 하이드 어쌔신은 동료가 있을 반대쪽 벽을 보았다.


은은하게 빛을 내는 단검 하나가 동료의 몸까지 관통한 채 꽂혀있었다. 이미 죽은 상태다.


...


쏜살같이 날아오는 날붙이가 자신이 있는 벽을 뚫기 직전, 하이드 어쌔신은 은신을 풀고 벽에서 빠져나왔다.


“헤ㅡ더러운 마족 주제에 감이 좋구나? 신기한 걸?”


하나라고 생각했던 적은 둘로 늘어있었다. 비슷한 복장의 소년 하나가 단검을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숨어있던 동료를 죽인 건 저 인간이 틀림없었다.


미끄러지는 듯한 움직임으로 적에게 접근한 하이드 어쌔신은 창백한 단검을 휘둘렀다. 두명을 모두 노린 공격이었지만 중간에 달려든 소년이 막아내고, 그 반동으로 반대쪽으로 날아갔다.


“역시 이 마족은 힘이 엄청나네요, 부단장!”


소년은 공중을 날면서도 긴장감 없이 소리쳐댔다. 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하던 하이드 어쌔신은 돌연 움직임을 멈추고, 밑으로 시선을 내렸다.


자신의 흉부를 뚫고 나온 검 끝이 빛나고 있었다. 검은 천천히 비스듬히 비틀어지며 오장육부를 헤집어놓았다.


“ㅡ기습이라는 건 정말 대단하구만. 평소 같았으면 이렇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안 그래, 부단장?”


생명을 잃고 털썩 쓰러지는 하이드 어쌔신의 시체 뒤에서 나타난 랭겔이 중얼거렸다. 한편 리우는 그의 말에는 관심이 없는지, 아무것도 없는 먼 곳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부단장? 거기에 뭐라도 있어?”


랭겔은 리우가 바라보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지만 역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기분 탓인가요.”


리우는 어깨를 으쓱했다.


“보초들이 죽은 사실이 퍼지기 전에 임무를 완수합니다. 일곱 번째, 들키지 않는 경로로 안내하세요.”


쪼그리고 앉아 실실 웃으며 시체를 툭툭 찌르고 있던 로지스트는 표정을 싹 바꾸고 일어서 리우에게 고개를 숙여보였다.


“옙, 부단장님.”


다시 투명화 마법을 써서 모습을 감춘 로지스트가 선두를 맡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그 뒤를 리우와 랭겔이 따랐다.


물론, 자신들을 지켜보던 '눈'에 대해서는 알아차리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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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임무 실패 +1 20.01.23 303 9 9쪽
103 용의 이상향 +1 20.01.19 307 11 10쪽
102 꽃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1 20.01.16 302 8 12쪽
101 어쩔 수 없는 희생 +1 20.01.12 312 10 10쪽
10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11 8 9쪽
99 적발 +1 20.01.05 298 9 9쪽
» 잠입 +1 19.12.29 315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31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22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10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21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6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5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42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8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97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50 9 10쪽
87 난투 +2 19.11.21 342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5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44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8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55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9 10 10쪽
81 마력 증강 +1 19.10.31 385 11 11쪽
80 포로의 결정 +1 19.10.27 392 11 11쪽
79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19.10.24 397 13 10쪽
78 바르포르도 +1 19.10.20 395 13 10쪽
77 승전국의 대위 +1 19.10.17 414 10 10쪽
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93 11 10쪽
75 세계수 +1 19.10.10 427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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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설원 +1 19.09.29 444 11 11쪽
71 류아 +2 19.09.26 474 11 11쪽
70 서로의 요구 +2 19.09.22 460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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