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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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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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9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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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DUMMY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좁은 통로. 그 사이로 출구를 향해 달리는 인영이 둘.


“이거 완전 나가린데.”


랭겔은 뒤를 한번 돌아보다 추격자들이 잔뜩 쫒아오고 있는 걸 발견하고 인상을 찡그렸다.


고속이동을 번갈아 써서 잠시 따돌릴 순 있지만 그렇게 해도 금방 다른 병사들의 감시망에 걸려버린다.


이들도 자체적으로 통신을 사용하고 있는 것인지 지휘에 혼선은 전혀 없다. 광맥지대 전부가 그들을 찾으려 혈안이 되어있는 것이다.


잠입의 대가인 로지스트까지 데려왔음에도 이렇게 일찍 발각당하는 건 계획에 없었다. 광맥지대 내부를 연결하는 수많은 통로들 중 꽤 사용이 드문 것만 골라서 사용했다고 하는데도 이꼴이다.


결과는 완벽하게 낭패.


마왕군이 이곳에 집결해있다는 건 어찌 확인했지만 그뿐이다. 제일 중요한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이상 여기까지 온 보람이 있다고 할 순 없었다.


“다크엘프가 어떻게 저런 마법을 쓸 수 있는 거야, 도대체. 화살 말곤 재능 없는 거 아니었어? 납덩이 쏴대는 무기는 또 뭔데?”


랭겔이 입술을 깨물며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일곱번째가 퇴로를 확보해두었습니다. 질문은 탈출하고 난 뒤입니다.”


리우가 덤덤하게 말했지만, 마왕의 정체도 알아내지 못하고 마왕군의 탐색도 하지 못했다는 건 임무의 실패를 의미했다. 황국 제일의 천벽인광으로서는 그만한 수치가 없다.


“하지만ㅡ”

“무사히 귀환할 수만 있다면 재정비 후 추후 대책을 생각하는 것이 가능. 여기서 한탄해봤자 아무 소용없습니다.”


마치 랭겔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리우가 말했다.


“그거참 어려운 걸 요구하시는구만...”


핑!


랭겔은 시선은 앞으로 유지한 채로 검을 뒤로 휘둘러, 뒤에서 날아온 화살을 베었다.


“저기 있다! 전원 공격! 생포할 필요는 없다는 명령이다!”


통로 앞쪽에서 누군가 고성을 지르고, 벽에 붙어 각자 자리를 잡고 있던 다크엘프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아댔다.


달리기까지 하며 투사체까지 쳐내는 건 보통이라면 불가능에 가깝겠지만, 일단은 천벽인광에서 다섯 번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랭겔은 자신을 노리는 화살들을 전부 베어냈다.


적병을 하나하나 상대할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는지, 리우도 화살을 피하며 일직선으로 앞으로 내달렸다.


“이러다 벌집 되겠구만...!”


자신의 머리를 정확히 노린 화살을 쳐내며 랭겔이 뇌까렸다.


“다섯 번째. 이쪽으로 돌파합니다.”

“하지만... 여긴 아직 2계층이잖아?”


그들이 알고 있는 출구는 하나밖에 없고, 그건 1계층에 있다. 리우가 가리킨 곳은 막다른 곳이었다. 그걸 지적하기도 전에 천검이 한번, 번쩍 빛난다.


단숨에 벽이 부서지고 생긴 널찍한 구멍 사이로 리우가 뛰어내렸다.


“에라... 모르겠다.”


뒤를 따른 랭겔은 뛰기 직전 발을 헛디디긴 했지만 가까스로 넘어지는 일 없이 착지에 성공했다.


모래투성이인 땅의 감촉이 느껴졌다. 공기도 지하의 공기와는 전혀 다른 산뜻한 종류의 것.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밖에 나온 것이다.


“그래서 로지스트 자식은 어딨는건데? 먼저 튀었을 것 같은데.”


리우가 로지스트에게 내린 명령은 퇴각을 최우선으로 하라는 것. 벌써 꽁무니를 빼고도 남았을 시간이었다. 마차를 써서 달아나고 있겠지.


“어? 저기있네!”


마차가 랭겔의 예상을 배반하고 남겨둔 그대로 서있었다.


“로지스트 녀석, 기특하게 기다려준 거 아니야?”


기세 좋게 뛰려 하던 랭겔은 뒤로 고꾸라졌다. 리우의 작은 손이 말도 안되는 악력으로 랭겔의 목덜미를 잡고 있던 것이다.


“부단장? 뭐하는ㅡ”


시선은 마차에만 고정시키고 있는 리우가 곧바로 충격적인 소식을 입에 담았다.


“일곱 번째가 당했습니다.”

“뭐?”


리우가 주위를 둘러본다.


“이미 포위당했군요.”


아니나 다를까 둘을 둘러싸는 형태로 마족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었다.


바위 뒤에서, 나무 사이에서, 짙게 드리운 그림자 속에서. 광맥지대 입구에서도 그들을 쫒고 있었던 적지 않은 숫자의 병사들이 뛰어나온다.


저벅, 저벅.


마차 뒤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건 리우와 싸웠던 다크엘프. 어떻게 둘보다 먼저 밖으로 나올 수 있었는지가 의문이었지만 그것보다 랭겔의 시선을 강탈하는 건 그 손이 질질 끌고 있는 시체였다.


“먼 길을 왔을 텐데, 벌써 돌아가려고 하면 섭섭하지.”


다크엘프에 붙들려있던 로지스트의 몸이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졌다. 잔뜩 피범벅이 된 그는 지면에 고꾸라진 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묶어두었던 행상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 정말이냐. 일곱번째가?”


랭겔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전투능력으로만 따지면 로지스트는 자신과 엇비슷한 수준이다. 그런 그가 이렇게 쉽게 살해당했다는 건 쉽게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마왕군 나부랭이치고는 꽤 하는군요.”


자신의 부하가 살해당했다고 하는데도 리우는 전혀 동요가 보이지 않는 말투로 말했다. 거기엔 분노도, 슬픔도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을 알 수 없는 십자 눈은 이미 로지스트의 싸늘한 시신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있었다.


“말해두지만 오늘은 전투를 목적으로 찾아온 건 아닙니다. 당신은 저희가 누군지 알면서, 적대행위를 계속하려는 겁니까?”


그런 리우를 보는 다크엘프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너희들에 대한 건 필요 이상으로 잘 알고 있어, 황국의 천벽인광. 네 만행에 대한 것도.”


둘의 대화를 지켜보던 랭겔은 납득했다. 천벽인광이 쫒아온 마족 중 제일 끈질기게 살아남은 게 바로 다크엘프다. 직접적인 면식은 없을지라도 마족 사냥꾼의 존재를 알고 있어도 이상할 게 없다.


다크엘프는 차가운 분노를 드러내며 입을 열었다.


“마족들은 존재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 아래, 여태 몆 명을 죽였지? 하늘의 뜻을 운운하며 목을 벤 희생자는 몇 천, 아니 몇 만이려나?”

“신기한 질문이군요. 천벽인광의 설립 의의를 알고 있다면 이런 문답에 의미는 없는 걸 알고 있을 텐데요.”


리우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팔을 쳐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천벽인광은 신의 뜻을 대행하는 충실한 종. 루미아님께서는 죄 많은 인류에게 일깨워주셨습니다. 마족은 그 존재 자체가 신의 권위에 대한 모독이라는 것을. 그 추악한 생명의 본질은 인간의 세계에 무단으로 기생해 살고 있는 해충. 그러니 이건 어디까지나 세계의 정화작업인 겁니다. 그렇군요, 만에 하나 후회가 있다면ㅡ”


미소를 유지하는 리우의 입이 움직였다.


“당신의 종을 완벽하게 말살하지 못했다는 것. 마족 따위와 같은 하늘 아래에 살고 있다는 건 수치입니다.”

“...”


수많은 마족에 둘러싸여 살기를 온몸으로 받으면서도 리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말을 계속했다.


“몇 번이나 시도한 탐색이 무색하게 자꾸 숨어버리는 다크엘프의 행방은 늘 신경 쓰였습니다. 그러려고 온 것은 아니지만 이런 곳에서 만난 것은 신의 뜻. 이번에야말로 깨끗하게 정화를 할 수 있습니다.”


리우의 의지를 대변하듯 천검이 밝게 타오르기 시작했다.


강한 감정을 담아 리우를 노려보던 다크엘프는 흥, 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가. 이 놈은 너무 쉽게 죽어서 졸병인가 했는데, 너는 좀 다르려나.”


뻔한 도발에 역시 리우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우리도 얕보였던 모양이야. 인간의 몸으로 이곳에 유유자적 들어온 경위는 대충 상상이 가지만. 그렇게 간단하게 침입을 허락할 거라 생각했던 건 아니지?”


은색 사이드 테일을 단정하게 빗어 넘긴 궁수는 화살을 빙빙 돌렸다.


“나는 신ㆍ마왕군 마도궁병단장ㅡ카니앗 이그ㆍ시피아. 침입자의 목을 마왕님께 바치는 역할은 내가 가져가겠어.”


카니앗의 말에 반응한 것처럼 리우와 랭겔을 겨누고 있는 병사들의 어깨에 힘이 들어갔다.


“얌전히 보내준다는 느낌은 없는 걸, 부단장.”


랭겔은 검을 뽑았다.


“우리를 처리하러 나온 건 여기 있는 게 전부인 것 같고. 싸울 수밖에 없다는 거지.”

“동의. 추격자를 처리하지 않고서는 퇴각은 힘듭니다.”


리우는 천검으로 횡을 그으며 말했다.


“저는 천벽인광의 두 번째 빛ㅡ리우 에스타. 신의 뜻을 실천하겠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카니앗은 싸늘함밖에 느껴지지 않는 미소를 옅게 띠었다.


“전 부대, 발사.”


무수한 화살들과 납덩이들의 세례가 두 사람을 덮쳤다.


“신벌ㅡ그 여섯 번째,”


리우는 속삭이듯 읊었다.


“고라의 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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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용족 소녀 +1 20.02.02 326 9 11쪽
105 현자 +1 20.01.31 289 12 8쪽
104 임무 실패 +1 20.01.23 303 9 9쪽
103 용의 이상향 +1 20.01.19 307 11 10쪽
102 꽃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1 20.01.16 302 8 12쪽
101 어쩔 수 없는 희생 +1 20.01.12 312 10 10쪽
»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12 8 9쪽
99 적발 +1 20.01.05 298 9 9쪽
98 잠입 +1 19.12.29 315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32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22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10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21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7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5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42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8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97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50 9 10쪽
87 난투 +2 19.11.21 342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5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44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9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55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9 1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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