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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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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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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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쩔 수 없는 희생

DUMMY

아무리 검술의 달인이라 해도 이 정도나 되는 투사체의 비를 전부 튕겨낼 수는 없다. 수많은 전장을 거쳐 온 검사도 금방 몸이 벌집이 되어 쓰러졌겠지. 압도적인 숫자의 폭력 앞에선 결국 기량은 한계를 보이고 마는 것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평범하게 뛰어난' 검사일 때의 이야기다.


적어도 천벽인광의 부단장, 리우 에스타는 흔한 의미로 '우수한' 성기사는 아니다.


리우가 검을 땅에 꽂는 것과 동시에 지면이 지진을 방불케 할 정도로 크게 흔들렸다.


땅은 마치 이성을 가지기라도 한 것처럼 형태를 바꾸어가더니 흙의 벽이 생겨나, 리우와 랭겔을 감싸듯 쏜살같이 솟아올랐다.


“오.. 역시!”


화살과 납덩어리들이 두꺼운 벽을 완전히 통과하지 못하고 막혀버리자 랭겔이 감탄했다. 14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폼으로 천벽인광의 부단장을 맡고 있는 게 아닌 것이다.


리우가 천검으로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신벌'.


그것은 과거 인류에게 내려졌다고 하는 신벌을 일정 부분 행사할 수 있게 해주는, 어느 상황에도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가진 경건한 신도에게만 가능한 기술이다.


그걸 쓸 수 있는 것도 충분히 대단하지만 12개의 신벌을 전부 익힌 자는 리우 말고는 역사상 존재하지 않는다.


능력의 유연함이라면 천벽인광에서도 제일가는 리우라면 이 상황도 어떻게 돌파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고 하는 믿음이 생겨나고 있었다.


흙의 벽이 무너져가는 사이, 리우는 검을 쥔 자세를 바꿨다. 방어가 무너지는 것과 동시에 공격을 할 생각이다.


“이어서 신벌, 그 첫 번째ㅡ 유황과 불의 비.”


리우의 의지를 따라 생겨난 뜨겁게 타오르는 천검이 휘둘러지고, 끔찍한 소리를 내며 타들어가는 유황과 불의 세례가 주위 마족들에게 쏟아졌다.


과거 자그마치 2개 도시를 멸망시킨 신벌은 그대로 적의 살을 탐하려 달려들지만,


“풀캐스트ㅡ실드.”


카니앗이 때맞춰 넓게 펼친 마법 장막은 유황을 전부 막아버리고, 미처 리우의 신벌에 반응하고 있지 못하던 병사들을 전부 보호했다.


상급 방어 마법조차 잠시 막아내는 게 고작이었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불타는 유황은 적에 닿지 못하고 흘러내려 애꿎은 땅에 불구덩이를 만들었다.


“다크엘프가 상급 마법을 쓴다고...?”


랭겔은 자신의 상식과 어긋나도 너무나 어긋난 광경을 보고 시선을 떼지 못했다.


“윈드 카타스트로피.”


카니앗이 휘저은 손을 따라 강풍이 발생. 귀를 찢는 소리와 함께 예리함을 지닌 바람의 “칼날들이 휘몰아친다.


아군이 말려드는 걸 방지하기 위해 공중에서 발동했지만 일대를 덮어버릴 정도의 범위다.


저런 살상력을 극한까지 끌어올린 바람 마법은 공격 전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 해도 평범한 마법사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정신력을 필요로 한다. 마나가 충분히 있다고 해도 마력 폭주로 자멸하는 쪽이 빠르겠지.


공격 마법은 규모를 최소로 해서 빠르게 발동시킨다는 암묵의 룰이 있는 것도 전부 마력 폭주시의 리스크가 널리 알려진 사실이기 때문이다.


두려움의 편린도 없이, 무표정으로 그걸 저렇게 쉽게 제어하고 있는 카니앗이 이상한 것이다. 마법에 해박한 건 어디까지나 하이엘프. 다크엘프는 날렵한 신체능력을 제하면 내세울 건 활 실력밖에 없었을 텐데.


“랭겔, 가만히 있지 말고 뭐라도 하는 건 어떤가요.”


리우가 차근차근 말하고 나서야 랭겔은 검을 치켜들었다. 아무리 일곱 번째ㅡ로지스트를 죽인 상대라 해서 싸우기도 전에 주눅들 필요는 없다. 자신의 힘을 맹신하는 상대라면 그도 몇 번이고 베어온 경험이 있었다.


“신성마법, 브라이트 플래시!”


그의 검에서 번쩍, 하고 눈부신 섬광이 일었다.


랭겔의 특기는 전투에서의 근거리 전이와 교란 마법. 적어도 잠시 동안은 상대의 시야를 뺏고, 그 틈을 이용해 배후로 전이한 다음 목을 친다.


그의 전략을 모르는 상대에게 이 전략이 통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섬광마법을 직통으로 맞은 적은 역시 죄다 눈을 감싸고 혼란해하고 있다.


“바람 공격을 이대로 회피하고, 적장부터!”


카니앗의 뒤를 잡은 랭겔이 검으로 횡을 긋는 순간이었다.


“실망이야, 황국.”


분명 앞에 있었을 터인 다크엘프의 모습은 사라져있고,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미처 돌아보기도 전에 날아온 돌려차기를 정통으로 얻어맞은 랭겔이 꼴사납게 바닥을 굴렀다. 사람 하나를 날려 보낸 것 치고는 가볍게 착지한 카니앗은 몸을 푸는 동작을 취했다.


“허를 찌른다는 생각이었겠지만 그 정도는 이미 예측하고 있었거든.”


그 꼴을 보고 있던 리우의 눈은 카니앗이 랭겔의 공격을 회피하는 걸 똑똑히 포착하고 있었다. 엄밀히 따지면 회피조차 아니다. 처음부터 그곳에 없었던 것이다.


다른 이에게 보이는 자신의 위치정보를 고의적으로 조작한 흔적이 있었다. 지금 서있는 자리도 마찬가지로 실제 위치와는 다르겠지. 일종의 환영마법이라 생각해도 좋았다. 그게 상시 발동되고 있는 이상 카니앗을 치는 건 불가능하다. 시각에 의존하는 이상 간단한 함정에 너무나도 쉽게 빠져버린다.


“아, 쓰읍ㅡ”


피가 섞인 침을 뱉은 랭겔이 땅을 짚고 일어선다. 서있기만 해도 격통이 이는지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다. 얼룩 하나 없었던 망토와 사제복이 흙과 먼지로 엉망이 되어 있었다. 그는 옆구리에 손을 대었다.


“거 드럽게 아프네. 왼팔은 아예 망가졌고, 갈비뼈도 세 개 정도는 절대 부러졌어, 지금 걸로.”


팔에서 피를 쏟으며 휘청거리는 랭겔을 보며, 리우는 머릿속에서 차분하게 현 상황을 정리했다.


작전 도중 적진 바로 앞에서 포위당한 상태. 부하 하나는 이미 사망했고, 다른 하나도 중상을 입어 제대로 움직이지 못한다.


퇴로를 막고 있는 건 상급 마법을 아끼지도 않고 써대는 마왕군 간부. 실력을 보아하니 쉽게 쓰러뜨릴 상대는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이 전투에서 밀리지는 않을 것 같지만 문제는 어디까지나 이렇게 공격이나 차례로 주고받고 있을 시간이 없다는 것.


적의 원군이 더 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도망갈 틈을 잠시 만들 수단이야 있지만, 그걸 쓰면 분명 랭겔이 말려들게 된다. 단 하루 동안 천벽인광에 공석이 둘이나 생기는 건 좋지 않았다.


“적어도 지금 상황이라도 전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만.”


리우는 손 안의 통신 마법석이 빛을 잃은 걸 물끄러미 내려 보았다. 안에 담긴 통신마법을 몇 번을 발동시켜도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비상시 바로 연결되는 황국과도 연락이 두절 된지 오래다.


의도한지는 확실치 않았지만 저 마족이 다루는 거대한 마나의 흐름이 통신을 방해하고 있다.


첫 번째가 없다고는 하나 마족 사냥에 숙달된 천벽인광을 이렇게까지 궁지에 몰아넣다니, 그것도 다크엘프 단 하나가 말이다.


수많은 마족을 통솔하고 탁월한 인재를 간부에 등용하여 원활하게 군을 움직이는 재간. 비밀리에 작전을 수행하여 의심을 사지 않은 전략. 원리조차 알 수 없는, 납덩이를 쏘아대는 무기.


리우는 알 수 있었다.


위험하다.


이대로 내버려둬서는 인류의 존망이 끊임없이 위협 당한다.


신ㆍ마왕군, 이 얼마나 강대한 위협. 지금까지 존재해왔던 마왕군과는 격부터가 다르다.


오합지졸을 이끌고 고성을 지르며 근처 성에 아무렇게나 쳐들어오는 이전의 마족들이 아니다.


확실한 명령체계와 작전에 따라, 효율적으로 인간을 말살시키려 하고 있다.


적이 이 정도까지 칼을 갈고 닦는 동안 인류는 마왕의 강림조차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바실루스 황제의 감이 맞다면 이미 알트레아 왕국은 사실상 마왕군의 지배하에 놓였다는 소리가 된다.


나라가 하나, 함락되었지만 아무도 긴장감조차 품지 않고 있다는 건 최악의 상황이다.


수단은 한정되어 있다. 그럼 어찌해야 좋을까.


“부단장. 무슨 생각하는지는 알겠는데 말이야. 부단장만이라도 도망치는 게 낫지 않겠어?”


랭겔은 억지로 쓴웃음을 지어보였다.


“의외네요. 랭겔은 좀 더 자신의 안위부터 생각하는 자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해야 하는 일은 최대한 미루고, 틈만 나면 땡땡이 칠 궁리만 하는 랭겔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왔다는 것만 해도 리우에겐 굉장히 놀라웠다.


“거 참, 상처 받는구만. 한번쯤은 멋있는 모습 보여주고 싶다는데 말이야.”

“이 궁지에서 벗어나기 위해 쓴다는 건 일곱 번째 신벌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겠죠.”


순간 리우의 금색 십자눈에 연민이 깃든 것 같았다.


“그걸 쓰게 되면 랭겔이 도망치는 건 불가능. 휘말려 죽으면 다행, 최악의 경우에는 산채로 사로잡혀 죽기 전까지 고문을 받게 될 겁니다.”

“그야 당연하겠지. 원래 피할 수 있었다 해도 지금 이 몸으로는 불가능이야.”


그게 허세가 아니라는 걸 깨달은 리우는 조용히 물었다.


“각오는 이미 다진 겁니까?”


랭겔은 실없는 웃음을 띠며 좀처럼 말을 듣지 않는 팔로 검을 들었다.


“로지스트가 죽어 자빠진 거 봤을 때부터 죽겠구나 생각은 하고 있었다고. 부단장은 잔말 말고 준비나 하셔. 같은 천벽인광이라 해도 부단장이랑 내 전투력은 하늘과 땅만큼 차이 나잖아? 그러면 누가 희생해야 하는지는 더 고민할 필요도 없지.”

“알겠습니다, 다섯 번째.”


리우는 부하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고개를 살짝 숙여보였다.


“그 마지막 여정의 끝에 신의 축복이 기다리고 있기를.”

“인간들, 이야기는 슬슬 끝났으려나.”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카니앗은 활통에서 새 화살을 꺼내는 대신 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으로 시위를 당겼다.


시위가 팽팽하게 당겨졌을 때에는 이미 푸르게 타오르는 불사조가 날개를 펼치고 있었다.


화살에 마법을 부여하는 것보다 몇 단계는 위인, 화살 대신 사역마를 쏘아 보내는 마법이다.


“신벌, 그 일곱 번째ㅡ”


리우가 치켜든 천검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게 타올랐다.


카니앗의 불사조가 시위를 떠나는 순간이었다.


“빛이 있으라.”


그 말 하나로 충분했다.


천검으로부터 발생한 새하얀 파괴의 빛은 순식간에 주위의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작가의말

토요일 밤인지도 모르고 쿨쿨 자고 있다가 일어나서 지금 올립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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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온천 +1 20.02.20 292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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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꽃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1 20.01.16 302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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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11 8 9쪽
99 적발 +1 20.01.05 298 9 9쪽
98 잠입 +1 19.12.29 314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31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22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10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21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6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5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42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8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96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50 9 10쪽
87 난투 +2 19.11.21 342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5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44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8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55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9 10 10쪽
81 마력 증강 +1 19.10.31 385 11 11쪽
80 포로의 결정 +1 19.10.27 392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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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바르포르도 +1 19.10.20 394 13 10쪽
77 승전국의 대위 +1 19.10.17 414 10 10쪽
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92 11 10쪽
75 세계수 +1 19.10.10 426 12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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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 류아 +2 19.09.26 474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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