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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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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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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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6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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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꽃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DUMMY

지면이 박살나고 뒤집혀 쑥대밭이 된 광맥지대 입구.


그 위를 힘이 빠진 걸음으로 걷는 건 카니앗이다. 불구덩이가 된 일부 부분은 아직까지도 불이 꺼지지 않고 있었다.


천벽인광 계집이 쓴 공격에 당한 마왕군 측 사망자는 17명.


어떻게 손써볼 새도 없이 즉사했다. 공격의 전조가 심상치 않음을 알아챈 카니앗이 재빨리 상급 방어마법인 풀캐스트ㆍ실드를 썼음에도 미처 빛의 입자들에 몸이 꿰뚫리는 걸 피하지 못한 자들이 있었던 것이다.


상급 방어마법으로도 다 막아내지 못할 만큼의 공격이었다는 소리다.


계집의 검이 수상하게 밝은 빛을 내는 걸 보고 처음엔 섬광마법을 의심했지만, 그 빛은 단순히 밝은 게 아니라 젤리라도 뚫는 것처럼 병사들의 신체를 헤집고 지나가버렸다.


설마 신성마법에 그런 사용법이 있었다니.


운이 없었다면 카니앗 본인도 당했을 뻔한 참이었다.


“빨리 움직여! 치유마법 적성자한테 연락은?!”

“엘프의 협력을 받아 준비해두었습니다!”


사후처리를 위해 현장에 모인 자들이 목소리를 높여댔다.


카니앗은 광역 빛 공격에 정통으로 휘말려든 주제에 놀랍게도 아직 숨이 붙어있는 인간 남자가 들것에 실려 가는 걸 지켜보았다.


들것의 흰 천이 금세 붉은 액체로 축축해졌다. 심상치 않은 출혈량이다.


온 몸에 구멍이 뚫려 있으니 당장 지혈하지 않으면 죽겠지. 주제넘은 짓을 해준 황국에 관해 캐낼 정보가 많으니 살려두는 것이 이득이었다.


아니, 숫자로 따지자면 이쪽의 피해가 더 크니 그렇게라도 하지 못하면 낭패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적은 인원이라고는 해도 마왕군의 전부는 하나하나가 소중한 전력이다. 아무리 황국의 정예라고 해도 그걸 인간의 손에 잃었다는 건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치인 것이다.


그 공격이 있고 나서 상황을 파악하기까지는 수분이 걸렸다.


당연하지만 근처에 적당히 세워져 있던 마차는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었다. 이동속도가 빠른 켄타우로스와 하피들로 구성된 추격부대를 보내긴 했지만 그 재빠른 계집을 상대로 좋은 소식을 들고 올 것 같지는 않았다.


상인으로 보이는 인간 하나를 미리 붙잡아두긴 했지만 아무리 캐물어도 그럴듯한 정보는 나오지 않는다.


“한 명은 도망친 건가요.”


옆에서 들려온 낭랑한 목소리에 생각에 빠져있던 카니앗은 흠칫하며 자세를 바로 했다.


회의 때와는 달리 군복 대신 검은 정장을 입은 푸른 장발의 소녀가 주위의 참상을 천천히 훑어보고 있었다.


얼음장같이 차가운 눈동자에 비치는 감정은 쉽게 짐작할 수 없는 종류의 것이었다.


“린 님.”


침입자 사태의 뒷수습에 모습을 보인 건 린이다.


전설의 늑대이자, 충실한 마왕의 심복으로 활약하고 있는 린이 일부러 행차했다는 건 실패로 끝났다고는 하나 인간이 잠입해온 것이 그만큼 중대한 사건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번 실책의 책임자는 카니앗이다.


“죄송합니다, 린 님. 황국을 얕볼 생각은 없었지만 허를 찔린 제 책임입니다.”


능력 면에서 크게 밀린다는 느낌은 없었다. 하지만 남자 둘은 그렇다 쳐도 여자를 압도하지 못한 건 사실이다.


카니앗의 마법적인 감각은 리우가 쓴 것이 신성마법이라고 알려주고 있었지만 막상 그 빛나는 검에서 뿜어져 나온 건 신성력으로 쓸 수 있는 범주를 넘은 것들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건 한 명을 놓쳤다는 결과 앞에서는 변명에 불과할 뿐이다.


주제넘게도 마왕군 주둔지에 숨어들어온 쥐새끼를 놓쳤으니 어떤 질책이 날아올지 몰랐다. 상대가 황국이라는 걸 듣고 평소보다 감정적이 된 자신 책임이다.


허나 카니앗의 우려와 달리 린은 평온한 표정이었다.


“동료를 버림패로 삼으면서까지 도망치다니. 인간답다고나 해야 할까요.”


면목이 없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카니앗의 어깨에 린의 손길이 닿았다.


“걱정하지 마세요. 실은 붙여두었습니다.”

“실... 말씀이신가요?”

“이런 일도 있을까 해서 가브리엘에게서 받아둔 게 정답이었어요.”


린이 꺼내 보인 건 새하얀 깃털로, 카니앗도 이전에 본 적이 있는 물건이었다.


“그건 분명 천사의ㅡ”

“네. 천사의 깃털입니다. 제가 이걸 쓰게 될 거라고는 옛날 같았으면 상상도 못했을 일이지만 말이죠.”


린은 깃털을 이리저리 돌려보다 다시 안주머니에 넣었다.


“가브리엘은 천사의 권능으로, 자신의 신체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이동할 수 있습니다. 굳이 직접 움직이지 않더라도 위치는 언제나 파악할 수 있죠. 편리한 능력입니다.”

“그렇다는 소리는ㅡ”

“혹시나 해서 부하를 시켜서 마차에 미리 심어두었습니다. 두발로 멀리 가긴 힘들 테니 마차를 쉽게 버리지는 않겠지요. 천벽인광의 위치는 실시간으로 추적하고 있습니다.”


즉 린은 도망자가 나올 것을 예측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면 펜리르의 힘으로 가세해서 바로 처리했어도 되었을 텐데, 일부러 놓아주는 것 같은 일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결과적으로 마왕군에 대한 것이 황국에 알려지는 꼴이 되었는데 말이다.


“황국은 다른 나라들과는 달리 마족과의 싸움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용사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도 그들의 역할인 이상, 한 번에 뿌리 뽑지 않으면 안 됩니다. 천벽인광의 두번째 빛이 그 실마리가 되는 겁니다. 이제 마왕군도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테니 숨는 건 의미가 없습니다.”


카니앗의 생각을 읽은 것 마냥 린이 말했다.


“마족에 관해선 눈치가 꽤 빠른 인간인 것 같지만 과연, 같은 편 인줄 알았던 신의 사자가 마왕군에 붙었다는 걸 알고나 있을까요?”




“그런가, 수고했다.”


광맥지대에 있었던 침입자 소동에 대한 보고를 들은 나는 사념통신을 끊었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황국은 마왕군의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찾아왔고, 대략적인 사실을 파악한 채 떠났다.


의심 가는 곳으로 광맥지대를 바로 특정지은 것은 제국의 귀띔이 있었기 때문인가.


퍼즐조각을 짜 맞추기 시작한 인간들은 이제 대ㆍ마왕군을 조직하기 위해 움직이겠지. 우리의 위치가 들통 나는 걸 감안하면서까지 정보를 캐내는 걸 우선시하라는 명령을 린에게 내린 건 나다.


역시 비밀유지를 위해 침입자를 철저히 죽이는 게 정답이었을까?


아니, 그래도 결과는 똑같다.


광맥지대에 보낸 부하들의 소식이 전부 끊기면 이곳이 제일 먼저 의심을 사는 건 어쩔 수 없다. 근처에 흘러들어온 인간들을 전부 죽여 왔지만 흉흉한 소문이 생겼을 뿐이었다.


그래, 결국 어느 시점에는 들켰을 것이다. 본격적인 침공을 개시함에 있어 정체가 들통 나는 건 어쩔 수 없다. 하지만 지금부터 발 빠르게 인간연합군을 꾸린다 해도 그때는 왕국과 제국이 이미 내 손아귀에 넘어간 뒤.


게다가 마왕군으로 인한 실질적인 피해는 아직 없다. 눈에 ‘보이는’ 위협은 없는 것이다.


왕국은 쿠테타로 정권이 교체되었고, 제국은 보복성 침공을 당할 뿐이다.


제아무리 황국이 위험성에 대해 떠들어댄다 한들 마왕군이 인간 마을을 불사르는 걸 본 자가 아니라면 회의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자들도 많을 것이다.


어제까지 적대관계를 유지해온 나라의 주장을 순순히 믿을 수 있을까?


아니아니, 의심과 불신이 먼저 싹틀 것이다. 인간이란 그런 면에서는 단순한 생물이니까.


“그래서, 슬슬 어지러운 건 괜찮아졌나. 시이나?”


나는 넓적한 바위에 대자로 뻗어 배꼽을 무방비하게 드러낸 채 쉬고 있는 늑대 소녀를 불렀다.


“이런 절경을 앞에 두고 잘도 쉬고 있군.”

“... 시끄러.”


한 박자 늦게 퉁명스러운 대답이 돌아온다.


시이나가 저리 쓰러질 정도로 전이마법을 수도 없이 반복한 끝에, 우리가 도착한 곳은 라드레이드로 통하는 입구 앞이다.


입구라 하기에도 애매한 곳이긴 하지만 이곳이 단순한 산이 아니라는 건 여기서부터 이미 뚜렷하다.


고산지대의 안으로 향하는 통로에는 양 옆으로 복잡한 문자들이 잔뜩 새겨진 돌벽이 세워져 있는 것이다.


각자 다른 색상으로 불규칙적으로 깜박이는 문자들은 밤하늘의 별을 연상케 했다.


고개를 들면 보이는 건 끝이 없는 산.


가파르게 올라가 구름 너머까지 이어져 있는 산의 최고봉이 바로 드래곤들에게만 허락된 낙원이다.


산소가 저리 옅은 곳에서 살 수 있는 마족도 많지 않다.


자, 그럼 라드레이드는 어떻게 가야할까.


단순히 생각한다면 이대로 무턱대고 산행을 시작하는 게 유일한 방법 같아 보이지만 그래서는 다시 지상에 돌아오는 것도, 정상을 밟는 것도 하지 못한 채 싸늘한 시신이 된 수많은 도전가들 중 하나가 될 뿐이다.


나는 이곳에 도달하고 나서야 어째서 아무도 무모한 도전에 성공하지 못했는지 깨달은 참이었다.


그저 고된 길이기 때문이 아니다. 도전자가 산을 타는 것에 익숙하고, 절대 지치지 않고 잠도 필요하지 않다고 해도 불가능한 산행이다.


걸어서 끝까지 가는 걸 막는 모종의 술식이 산 전체에 작용하고 있다. 같은 길을 빙빙 돌게 하는 악질의 함정인 것이다.


드래곤의 마을에 들어가는 방법은 단 한 가지.


“라드레이드로 통하는 건 입구에 있다는 전이문이다. 아무래도 입구는 여기인 듯하군.”

“네, 서적이 맞다면 여기에 전이마법 장치가 어디 있을 텐데요...”


지루한 서류 업무에서 벗어나서 기쁜 건지, 잔뜩 들떠있는 이스는 돌벽을 살폈다.


“드래곤의 언어는 역시 아무리 봐도 모르겠네요. 징표가 있으면 문이 열린다는 말이 맞으면 분명 이 근처에 숨겨져 있을 거예요. 류셀 씨?”


나라면 당연히 답을 찾을 거라는 것처럼 이쪽을 바라보는 이스. 뭐, 틀리지는 않았다.


“이쯤인가.”


나는 손을 내밀어 보라색 문자를 건드렸다. 다른 문자들과는 다른 마력이 감돌고 있었던 것이다. 글자가 벽에서 천천히 떠오르더니 마치 뭔가를 요구하듯 간헐적으로 빛났다.


“자.”


품에서 꺼낸 갈색 비늘ㅡ자이언트 드래곤의 시체에서 떼어낸 것을 빛의 중심에 맞춘다.


킹, 하는 소리가 나고 비늘이 공중에 고정되었다. 아무런 변화도 없는 것 같았지만, 비늘은 서서히 작은 입자들로 분해되어 가고 있었다.


“마나로 변환되는 건가...”


내가 혼잣말을 했다.


그 입자들은 푸른빛을 내며 아름답게 공중을 활보하다, 서로 합쳐져 곡선들을 만들어갔다.


아무 의미도 없는 것 같은 선이 휘어지고, 곧게 나아가고, 여러 갈래로 나뉘어 뻗어나간다.


움직임이 둔해지다 싶다가도 재빨리 속도를 올려 보는 이를 계속해서 애타게 한다.


마치 발레리나의 춤사위를 연상하는 광경에 나와 이스는 둘다 시선을 빼앗겼다. 마법이란 것은 잘만 쓰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이었구나, 하는 시답잖은 생각이 들었다.


넋놓고 마나의 향연을 보고 있자니, 이미 바닥엔 하늘색 마법진이 펼쳐져 있었다.


범위에 포함된 대상을 특정 장소로 이동시키는 그 마법은 내가 사용하는 것보다 훨씬 고대의 것이었다.


“오, 류셀 씨, 이게 예의 전이장치인가요?”


문득 정신을 차린 이스가 물었다.


“드래곤이 설치해둔 장치인건 틀림없는 듯하군. 끝까지 이어져 있는 것이겠지.”


나는 마법진의 정체를 대충 깨닫고 벌써부터 질린 얼굴을 하고 있는 아인 소녀에게 손짓했다.


“시이나, 슬슬 와라. 너만 내버려두고 갈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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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스카디 +1 20.03.22 284 11 9쪽
118 연극의 막을 올리다 +1 20.03.18 293 7 9쪽
117 함락 +1 20.03.15 293 8 8쪽
116 드리워지는 그림자 +1 20.03.12 432 7 8쪽
115 전장에 울려퍼진 총성 +1 20.03.08 296 5 9쪽
114 불타는 도시 +1 20.02.29 283 9 9쪽
113 마왕군의 침공 +1 20.02.26 307 7 10쪽
112 의외의 고백 +1 20.02.23 309 6 11쪽
111 온천 +1 20.02.20 292 7 10쪽
110 난입 +1 20.02.16 295 8 8쪽
109 분노 +3 20.02.13 314 8 9쪽
108 피바람 +1 20.02.09 311 8 9쪽
107 방아쇠 +1 20.02.06 287 10 9쪽
106 용족 소녀 +1 20.02.02 326 9 11쪽
105 현자 +1 20.01.31 289 12 8쪽
104 임무 실패 +1 20.01.23 303 9 9쪽
103 용의 이상향 +1 20.01.19 307 11 10쪽
» 꽃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1 20.01.16 303 8 12쪽
101 어쩔 수 없는 희생 +1 20.01.12 312 10 10쪽
10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12 8 9쪽
99 적발 +1 20.01.05 298 9 9쪽
98 잠입 +1 19.12.29 315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32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22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10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21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7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5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42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8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97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50 9 10쪽
87 난투 +2 19.11.21 342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6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45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9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55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9 10 10쪽
81 마력 증강 +1 19.10.31 386 11 11쪽
80 포로의 결정 +1 19.10.27 392 11 11쪽
79 돌이킬 수 없는 선택 +2 19.10.24 398 13 10쪽
78 바르포르도 +1 19.10.20 395 13 10쪽
77 승전국의 대위 +1 19.10.17 414 10 10쪽
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93 11 10쪽
75 세계수 +1 19.10.10 427 12 11쪽
74 에델가르드 토벌 +1 19.10.06 418 12 11쪽
73 빙결의 마수 +1 19.10.03 416 11 11쪽
72 설원 +1 19.09.29 444 11 11쪽
71 류아 +2 19.09.26 474 11 11쪽
70 서로의 요구 +2 19.09.22 460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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