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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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9.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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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53,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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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13 0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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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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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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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분노

DUMMY

처음 보는 얼굴이었지만 누군지 대충 짐작이 갔다.


로그와는 남매 관계인, 우리를 경계하고 있었던 회색 드래곤. 그것이 인간으로 의태해서 내게 창을 들이대고 있었다.


“용인 주제에 묘한 무기를 쓰는군. 인간으로 의태했을 때를 위한 무기인가?”


그런 감상을 담으려니 문답무용으로 창이 찔러져 왔다.


특이하게도 끄트머리가 네모난 촉으로 되어 있었다. 용이 인간의 무기를 쓴다는 것부터 신기하지만 다루는 것도 익숙한 모습이다.


하지만.


나를 향하는 창의 궤도가 강제로 틀어져 엉뚱한 곳을 찌른다.


연달아 재빠른 베기 동작이 날아들지만 내 고유스킬에 닿는 족족 멈추거나 다른 곳으로 미끄러졌다.


아무리 갈고 닦은 기술이라 해도 닿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나는 내 고유스킬의 불합리함에 스스로 혀를 찼다.


“이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하지 못하는 상대.


방어마법의 기척도 없고, 보이는 위치를 조작한 흔적도 없는데 왜 공격 마법이 빗나가는 건지 몰라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일단 말은 해두겠지만 먼저 제안한 건 이 녀석이다. 나는 단지 마무리를 지으려던 거고.”

“닥쳐라!”


계속 들이닥치는 공격은 여전히 내게 닿지 못했다.


“근접공격이 무효화되는 건가...?”


놈이 지레짐작했지만 거리를 벌려 전처럼 마법으로 공격하는 일은 없었다. 내가 붙잡고 있는 용에게도 피해가 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내가 인질을 데리고 있는 꼴이 된 거지?


“역시 너같은 놈은 이곳에 들이면 안 됐어. 이번엔 현자님께서 실수하신 거다.”


놈은 로그를 잡아 도망칠 기회를 엿보지만, 속박마법은 내가 명하지 않는 이상 풀리지 않는다.


“너, 정말 인간이 맞기는 한 거냐?”

“호오. 다르게 보이기라도 한 건가.”


내가 비웃자 청년이 낮게 뇌까렸다.


“검은 악의밖에 담기지 않은 뒤틀린 마나. 너는 그걸 당연하게 쓰고 있다. 하지만 그런 걸 맨몸으로 사용하고 무사할 인간이 있을 쏘냐!”


네이아르 백작의 메이드, 레이븐이 그랬던 것처럼 내 마나를 통해서 위화감을 느낀 건가. 생각보다 감이 예리한 녀석이다.


“넌 누구지? 원하는 게 뭐냐! 왜 라드레이드에 왔지?!”

“의미 없는 소리를 중얼거려도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잖나.”


밧줄이 더욱 팽팽하게 당겨져, 로그가 고통에 찬 신음소리를 냈다. 그걸 보는 청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그걸 고갯짓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너희 드래곤들의 문화는 모르고, 알 생각도 없다. 하지만 지금의 결과는 전부 이런 문제 덩어리가 홀로 움직이는 걸 허락한 너희들의 실책이다.”

“무슨 소리를...!”

“네 소중한 여동생은 내게 싸움을 거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어야 했어. 내게 계속해서 공격을 가할 의도를 굽히지 않는 시점에서, 이미 나를 향한 위협이 되었다. 처리해야 할 변수가 되었다는 소리다.”


!!


처음으로 이해가 그의 얼굴에 번졌다. 적어도 내가 아무 이유 없이 로그를 공격한 것 아니라는 건 알았겠지.


“그래, 로그가 대결을 신청한 건가. 그리고 진 거고...”

“이제 대충 상황이 파악되나 보군.”


말을 흐린 것도 잠시, 그는 곧바로 로그의 변호에 나섰다.


“로그는 아직 철이 없어서 호기심이 많을 뿐이야! 승부는 이미 났으니 더 싸울 필요는 없잖아? 빨리 로그를 풀어줘. 용이라고 해서 저렇게 피를 많이 흘려도 된다는 건 아니다! 슬슬 위험하다고!”


애처롭게 애원하는 그 모습은 여동생을 걱정하는 오빠의 모습이다. 그게 이유 모르게 화가 나는 건 어째서일까.


뚝. 뚝.


확실히 내가 아까 입힌 부상에서 위험할 정도의 양의 피를 흘리고 있다. 과다출혈의 영향으로 어지러운지 로그는 축 늘어져 있었다.


말하는 걸 보아하니 평소에도 이렇게 날뛰고 다닌 모양이다. 곧잘 강해 보이는 상대에게 덤벼들거나 하곤 했겠지.


“그래... 어려서 그런 거다. 로그에게 너를 해코지하려는 악의는 없었어. 그러니ㅡ”

“그건 조금 어려운 부탁이군.”


나는 팔을 벌려 놈을 조롱했다.


“단지 궁금하다는 이유만으로 나를 해칠 마음을 품었다. 아이들의 동네 싸움도 아니고, 승부가 갈리고 나서는 다시 하하호호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나?”


나는 고개를 젓는다.


“아니. 아직 위협은 해결되지 않은 채다. 이 녀석의 숨이 붙어있는 한 사라지지 않아. 목숨이 오가는 싸움에서 자신만의 목숨은 안전하다는 건 엄청난 착각이지.”

“로그를 죽일 생각이냐?!”

“패배자의 말로라고 하면 죽음 말고 뭐가 있겠어?”

“큭...”


그의 몸은 사시나무처럼 떨렸다. 도저히 이기지 못할 상대를 앞에 두고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함에 치를 떠는 행색이다.


이윽고 그는 무릎을 꿇는다.


나는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긍지 높은 드래곤이 스스로 무릎을 꿇었다고?


“...부탁이다. 나를 대신 죽여도 좋으니 여동생만은 살려줘. 로그는... 로그는 여기서 죽을 아이가 아니야.”


고개까지 숙여 땅에 대고 비는 꼴사나운 모습을 보자니 화가 치밀어올랐다. 이게 여동생을 지키는 오빠의 모습이라니.


“너야말로...”


나는 원인불명의 분노를 다스리려 애썼다.


“너야말로 그렇게 소중하다면 어째서 같이 있어 주지 않은 건가?”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인간의 몸을 모방했을 뿐인 육신이지만 제대로 피 맛이 났다.


“네가 제대로 뒤를 봐주기만 했다면 여동생은 다치지 않았어. 언제까지나 탈 없이 그곳에 있을 거라는 네 착각만 아니었다면 이런 국면을 맞을 필요도 없었다.”

“전부 내가 잘못했어. 로그는 내가 잠시 자리를 비운 틈을 타서ㅡ”

“말 같지도 않은 변명은 작작해라!”


짜증이 난다. 이 남매는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났다.


“너 같은 것의 말로가 뭔지 아나? 알려주지. 그렇게 자만하다 모든 걸 다 잃고 나서 후회뿐일 삶을 살아가는 거야. 누구보다도 자신을 저주하면서, 그런데도 과거를 잊지 못하고 고통 속에 연명할 뿐인 거라고. 다 잃고 나서 후회해도 아무 소용없다는 걸 모르나?”

“제발... 부탁이니... 로그만큼은...”


폭언을 들으면서도 약한 목소리가 나오자 나는 내가 화를 내고 있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다.


한번 잃어버린 건 되돌아오지 않는다. 그 간단한 것도 모르고 안일하게 있다가 하는 거라고는 여동생의 목숨 구걸이라니. 그 여동생을 만신창이로 만든 내게 자비를 구하는 꼴이라니.


“너는 그 창을 멈춘 채 뭘 하고 있나? 여동생을 죽이려는 내게 애원해봤자 좋은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라도 하는 건가? 적에게 등을 보일 정도로 나약해 빠진 새끼가!”


나는 어느새 두 주먹을 쥐고 있었다.


“진정 소중하다면 전력으로 나를 죽이려고 해야 했어. 공격이 통하든, 통하지 않든 상관없이 네 목숨이 다할 때까지 내 숨을 끊으려는 시도를 멈추지 말았어야 했다.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이는 한 계속 달려들었어야 했다고! 그런데 지금 꼴을 봐라. 여동생과 같이 황천길을 가고 싶기라도 한 건가?”


도저히 어쩔 수 없는 운명의 장난 같은 일도 있지. 인간이라는 약자는 운명이라는 강자 앞에서 철저하게 농락당하는 입장을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그래도 저항해야 했다. 끝까지 발버둥 치지 않으면, 그렇게 쉽게 굴복해버리면 공허한 후회가 남을 뿐이다.


“뭐? 여동생만큼은 살려달라고? 네가 보기에 나는 여동생의 생사를 맡기기에 충분했다는 소리냐? 너 같은 나약한 놈들 때문에 피해가 늘어난다. 어디까지고 어리석은 족속 같으니. 지키지 못할 거면 처음부터 관계를 맺지 말란 말이다! 너 같은... 너 같은 놈들 때문에...”


가슴이 저려온다.


나는 잠시 말을 멈췄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잃고 후회해서는 늦어. 그걸 안다면 어서 덤벼와라.”


나를 둘러싼 공기의 막이 없어진다.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고유스킬의 해제를, 나는 굳이 사용할만한 수준의 상대도 아니라는 자기변명으로 넘겨버렸다.


...


말이 없던 회색 머리는 다시 창을 치켜들었다. 나를 설득시키려고 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죽음을 각오한 그 얼굴은 아까 보인 패배자의 얼굴보다 훨씬 강인했다.


“어서.”


다음 순간,


검은 악의로 가득 차 있다는 내 검이 창과 맞부딪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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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 연극의 막을 올리다 +1 20.03.18 293 7 9쪽
117 함락 +1 20.03.15 293 8 8쪽
116 드리워지는 그림자 +1 20.03.12 432 7 8쪽
115 전장에 울려퍼진 총성 +1 20.03.08 295 5 9쪽
114 불타는 도시 +1 20.02.29 283 9 9쪽
113 마왕군의 침공 +1 20.02.26 306 7 10쪽
112 의외의 고백 +1 20.02.23 309 6 11쪽
111 온천 +1 20.02.20 292 7 10쪽
110 난입 +1 20.02.16 294 8 8쪽
» 분노 +3 20.02.13 314 8 9쪽
108 피바람 +1 20.02.09 310 8 9쪽
107 방아쇠 +1 20.02.06 286 10 9쪽
106 용족 소녀 +1 20.02.02 326 9 11쪽
105 현자 +1 20.01.31 288 12 8쪽
104 임무 실패 +1 20.01.23 303 9 9쪽
103 용의 이상향 +1 20.01.19 306 11 10쪽
102 꽃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1 20.01.16 302 8 12쪽
101 어쩔 수 없는 희생 +1 20.01.12 311 10 10쪽
10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11 8 9쪽
99 적발 +1 20.01.05 298 9 9쪽
98 잠입 +1 19.12.29 314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31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22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10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21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6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5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42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8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96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50 9 10쪽
87 난투 +2 19.11.21 342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5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44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8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55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9 10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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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 설원 +1 19.09.29 444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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