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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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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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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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6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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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군의 침공

DUMMY

평소에는 이따금 어슬렁대는 마물들 말고는 썰렁한 제국의 동쪽 평야. 그걸 빼곡히 채운 건 검은 군복을 입은 가지각색의 마족들이다.


선두에서 말을 탄 자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은ㅇ 병력을 운송하기 위한 마차에 실려있었다. 그 수는 대략 2천.


그들은 태반이 마왕군 보병단에 소속된 자들로, 이 날을 위해 훈련을 거듭해왔다.


“엘로이님, 선행부대가 제국 국경에 도착했습니다.”


빠릿하게 경례를 한 고블린이 인간의 두세 배는 되는 크기의 오크에게 보고했다.


보병단 지휘부 총괄, 류라이스 엘로이는 콧김을 뿜었다.


등에는 할바드를 짊어진 그는 전신 갑옷을 착용하고 있었다.


드워프들의 손에 의해 탄생한 특제 갑옷은 아무리 내려쳐도 흠이 나지 않을 정도의 상급. 그의 허리의 권총집에는 마왕군 기본 무장인 리볼버가 수납돼 있다.


“드디어 벌레같은 인간 놈들을 직접 짓밟아줄 수 있겠군. 그 드워프 계집이 만든 개틀링건의 상태는 어떠냐?”

“보급받은 건 12대밖에 없긴 하지만 작동에 이상은 없습니다. 언제라도 전선에 배치할 수 있습니다”


이전의 인마전쟁 때는 작은 소년에 불과했던 류라이스는 마왕군이 진군하는 것도 직접 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의 차이는 엄청났다.


이렇게 조직적으로, 차근차근 침공하는 건 마구잡이로 쳐들어가던 과거의 기억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다.


성미가 급한 류라이스도 스키잔에게 몇 번이나 주의를 들은 만큼 독자적으로 움직일 생각은 없었다.


“국경에는 제국 수도와 바로 연결되는 마법통신망이 있다. 하이엘프들에게 먼저 마법통신을 무력화시키라고 전달해. 소리가 크게 나면 안 되니 총기는 쓰지 마라. 그러고 나면 선행부대만으로 국경을 점거하고 우리는 마도중대를 따라 진군을 개시한다.”

“그, 작전명령서에는 없는 부분에 있어 혼란스러워하는 병사들이 일부 있는 모양입니다만.”


고블린은 혹시라도 류라이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 애쓰며 물었다.


“제국에는 마족이 소수지만 살고 있다고 하는데, 그들에 대한 방침은 어떻게 됩니까?”


작전명령서에 없는 부분은 류라이스의 재량이다. 같은 마족과 싸우는 걸 거북해하는 자들도 있다는 이야기였지만 그는 콧방귀를 뀌었다.


“인간의 체제에 굴복해 살아가는 놈들에게 마족의 긍지 따윈 없다. 저항하는 놈들은 전부 벌집으로 만들어버려라. 항복하는 놈들은 일단 구류해둬.”

“알겠습니다. 스키잔 군무부 비서국장에도 그리 전해두겠습니다.”


이번 침공의 총 지휘를 맡은 건 바람의 정령 스키잔.


그 정령의 잔소리에 따라야 하는 건 맘에 들지 않지만, 이 정도 재량이 인정되는 한 큰 불만은 없다. 병력의 대부분이 보병단인 이상 그 총괄인 류라이스도 한바탕 날뛸 수 있다는 소리였다.


뿌득, 하고 류라이스가 고개를 꺾었다.


“마왕님께 내 가치를 증명할 기회다. 제국 따위 철저하게 부숴주지.”



◆ ◆ ◆ ◆ ◆ ◆ ◆ ◆ ◆ ◆ ◆ ◆ ◆ ◆



“끄악!”


심장을 화살로 관통당한 병사가 가슴을 부여잡고 망루 위에서 고꾸라져 추락한다.


“기습! 기습이다! 빨리 수도에 연락해! 마도통신병은 어디에 있나?!”

“그게, 통신이 두절됐습니다!”

“뭐?! 그럼 누구를 보내서라도 빨리 알리란ㅡ”


보라색 광선이 지나가고, 목청껏 소리치던 제국군 간부의 머리가 없어졌다.


목표를 꿰뚫고 나서도 광선은 멈출 기세 없이 지그재그를 그리며 잔존 병력으로 향했다.


“히, 히이익!”


겁에 질려 무기를 버리고 도망치는 병사들의 머리를 보라색 빛이 휘감고, 목을 잃은 시체들이 털썩 쓰러졌다.


“이걸로 전부네.”


카니앗은 국경의 제국 병사들이 전부 땅에 구르는 걸 확인했다.


“그쪽은 어때, 류아?”


카니앗과 마찬가지로 간부용 군복을 입은 류아는 죽은 제국군 통신병의 손에 들려있던 오브를 살피고 있었다.


“방해마법이 제대로 먹혀들었어. 수도로 통신이 간 기록은 없어.”


하이엘프는 미리 통신에 수작을 부려두고, 다크엘프는 국경 병력을 처리한다.


둘로 나뉜 뒤부터 오랜 반목의 역사를 가진 두 엘프 종족은 완벽하게 호흡을 맞춰냈다.


“그 활, 전장에서도 쓰는구나.”


류아는 신기하다는 듯 카니앗의 활을 보았다.


“싸우러가는 사람이 왜 무기를 두고 가겠어.”

“아니, 그게 아니라 활을 매개로 마법을 쓰는 건 참신해서.”


엘프라고 하면 숲에 살며 활을 애용하는 종족이 생각나겠지만 하이엘프는 마법의 의존으로 활을 버린 지 오래다.


그들의 선조가 남긴 유산인 마법은 무슨 문제든지 해결해주는 편리한 도구였다. 그조차도 받지 못한 다크엘프는 오기 하나만으로 인간의 세계에서 살아남아 온 것이다.


“누구씨와는 달리 우리들은 이거 하나밖에 의지할 게 없었으니까.”


그렇기에 대답하는 카니앗의 목소리에 비꼼이 섞여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신의 주의가 부족했다고 깨달은 류아는 황급히 말을 정정하려 했다.


“아니, 다른 의도가 있어서 말한 게 아니야! 마법이라면 무영창, 그게 아니면 보통 지팡이를 쓰는 걸로 알고 있어서 신기해서 그랬어.”

“그 정도로 해둬. 별로 신경 쓰지 않으니까.”


제국 침공 작전은 4일에 걸쳐 진행된다.


국경 인근까지 접근한 선행부대가 진군하는 것을 시작으로 전쟁이 발발한다. 제국이 자랑하는 마법통신을 무용지물로 만들어놓았으니 인간들은 두발 뻗고 자고 있다 봉변을 당하는 것이다.


“그러고보니 이제 너희 차례였지? 어서 다녀오기나 해.”


류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의 주요 군사 시설의 위치는 이미 지도에 기록되어 있었다.


보병단이 본격적으로 침투하기 전에 와이번을 탄 하이엘프들에 의해 주요 시설 폭격이 계획되어 있다.


노리는 곳은 군단 사령부, 통신소, 그리고 황제가 체제하는 성.


제도의 경우 몇몇 시설이 워낙 다른 민간 시설과 인접해 있어서 민간인의 피해가 다소 예상되긴 했지만, 작전 수행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적어도 류아는 그렇게 애써 자신을 몰아붙이고 있었다. 다른 생명을 빼앗는 건 류아에게 있어서 처음이었고, 낯설었으니까.


크게 쉼호흡을 한 류아는 진지한 얼굴을 했다.


“갔다올게.”



◆ ◆ ◆ ◆ ◆ ◆ ◆ ◆ ◆ ◆ ◆ ◆ ◆ ◆



한편, 전선과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오브를 통해 상황을 지켜보는 이가 둘 있었다.


“마도중대의 선제 타격을 제안한 건 당신이었죠, 코르니아스. 문제없이 진행될 거라 보나요?”


스키잔의 물음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는 엘드리치는 마왕군 마법연구원 원장, 피아넬 비 코르니아스.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건 정보. 그 귀중한 걸 얻을 수단을 끊어버리면 아무리 수가 많아도 갈팡질팡하는 오합지졸들일 뿐이지. 지휘체계를 먼저 무너뜨리는 걸세.”

“그건 그렇다 치고, 신경쓰이는 점이 있었습니다만...”


스키잔은 눈을 가늘게 떴다.


“마족, 인족을 불문하고 사로잡은 포로의 일부를 연구원에 양도하는 건 무슨 이유에서인가요?”

“비서국장님께서 염려하실 사항은 아니네. 단지... 그래,”


말을 고르던 코르니아스는 들뜬것처럼 말했다.


“실험 샘플이 많을수록 마법은 진보한다는 것이지.”


대략이나마 연구원에서 진행되는 실험의 내용을 알고 있는 스키잔은 불쾌함을 숨기지 않았지만 코르니아스의 요구를 거절하지도 않았다.


아무리 비도덕적이고 잔인한 실험이라 해도, 그가 내는 성과는 마왕군에게도 이익이 된다.


“마왕님께서는 역시 동행하지 않는 건가?”

“라드레이드의 일정이 길어지게 된 모양입니다. 염려할 건 없어요. 미리 짠 작전대로만 행동하면 될 입니다.”

“그분의 마법이라면 이 정도 전쟁은 단숨에 끝낼 수 있을테지만 굳이 이런 형태를 고집한 이유는 나도 알고 있소. 전세계에 마왕군의 존재를, 그분의 이름을 알리기 위함이지. 이제 시작이야. 정말 기대가 되는군.”


스키잔은 지도 위의 말을 제국령 안쪽으로 옮겼다.


“우선 폭격 개시입니다.”



◆ ◆ ◆ ◆ ◆ ◆ ◆ ◆ ◆ ◆ ◆ ◆ ◆ ◆



제국의 하루는 시끌벅적하면서도 평화롭다. 제도의 성에 화재가 나는 등 뒤숭숭한 일이 있었지만 그래도 시민들은 계속해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바쁜 거리를 마차들이 오가는 사이 각기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향하는 제국 시민들에게 그날은 평소와 다를 게 없는, 평범한 하루였다.


“엄마, 하늘에 뭔가 날고 있어.”


젊은 여성의 치맛자락을 잡아당기며 다섯 살배기가 말했다.


“그래, 새라도 본 거니?”

“새 아니야.”

“새가 아니면 뭘까?”


어차피 어린애가 하는 말이다.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적당히 대꾸한 여성은 다음 순간 울린 굉음에 귀를 막게 된다.


파ㅡ바ㅡ바ㅡ바ㅡ방!


폭발이다.


굉음은 한 차례로 그치지 않고 연이어 울렸다.


그제야 위를 올려다본 여성은 입을 벌렸다.


용과 비슷하지만 훨씬 작은 마물인 와이번이 열을 갖추어 비행하고 있었다.


그 위에 탄 자들이 쏘는 마법이 위에서 쏟아져 내리고, 그게 지상에 닿을때마다 귀를 찢는 폭음이 울렸다.


전쟁이다. 제국의 어느 도시보다도 굳건한 방벽을 자랑하는 제도가 습격당하고 있다.


시끄럽게 울리는 폭음. 비명소리. 먼지 냄새. 피어오르는 연기.


질서없이 도망치는 사람들은 서로를 밀치고 짓밟는다.


여성은 자신의 아이를 감싸안았다. 어디가 안전한지는 모르지만 일단 달리기 시작한다.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뿐.


“루미아님...! 저희를 구해주세요.”


다음 순간, 모자가 서있던 거리는 성대하게 폭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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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전장에 울려퍼진 총성 +1 20.03.08 296 5 9쪽
114 불타는 도시 +1 20.02.29 283 9 9쪽
» 마왕군의 침공 +1 20.02.26 307 7 10쪽
112 의외의 고백 +1 20.02.23 309 6 11쪽
111 온천 +1 20.02.20 292 7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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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 피바람 +1 20.02.09 310 8 9쪽
107 방아쇠 +1 20.02.06 286 10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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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꽃잎은 천천히 떨어진다 +1 20.01.16 302 8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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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1 20.01.09 311 8 9쪽
99 적발 +1 20.01.05 298 9 9쪽
98 잠입 +1 19.12.29 314 9 11쪽
97 간부 회의 +3 19.12.26 331 8 10쪽
96 침공 준비 +1 19.12.22 322 10 9쪽
95 어딘가 수상한 나들이 계획 +1 19.12.18 310 8 9쪽
94 위화감 +1 19.12.14 321 12 11쪽
93 천재 드워프 소녀 +1 19.12.11 336 7 11쪽
92 천벽인광 +1 19.12.08 354 8 11쪽
91 섬광의 리우 에스타 +1 19.12.05 342 9 12쪽
90 첫 번째 마무리 +1 19.12.01 338 10 10쪽
89 뜻밖의 개입 +2 19.11.28 396 10 11쪽
88 인간 대 지옥개 +1 19.11.24 350 9 10쪽
87 난투 +2 19.11.21 342 10 9쪽
86 임박하는 갈등 +1 19.11.17 345 11 10쪽
85 왕국의 사절 +1 19.11.14 344 9 12쪽
84 천천히 흘러가는 밤 +1 19.11.10 338 10 10쪽
83 사소한 충돌 +2 19.11.07 355 11 11쪽
82 엘프와 술 +1 19.11.03 389 10 10쪽
81 마력 증강 +1 19.10.31 385 11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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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 바르포르도 +1 19.10.20 395 1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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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6 자격의 증명 +1 19.10.13 493 11 10쪽
75 세계수 +1 19.10.10 427 12 11쪽
74 에델가르드 토벌 +1 19.10.06 417 12 11쪽
73 빙결의 마수 +1 19.10.03 416 11 11쪽
72 설원 +1 19.09.29 444 11 11쪽
71 류아 +2 19.09.26 474 11 11쪽
70 서로의 요구 +2 19.09.22 460 13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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