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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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9.07 21:52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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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8
글자수 :
1,753,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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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3.23 0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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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연회는 시작되려고 했다

DUMMY

본래 상급 모험자가 되는 건 하늘의 별따기다. 아이돌 연습생의 대부분이 인기 아이돌이 될 수 없듯, 모험자의 대부분은 하급 모험자 인생인 것이다. 그것도 언제 죽을지 모르는, 몬스터와 자주 마주쳐야 하는 일이니 진입장벽은 높다.


모험자를 시작한지 열흘 만에 상급 모험자로 대우받을 수 있게 된 것은 우리가 자이언트 드래곤의 퇴치라는 거보를 달성했기 때문이다.


이 연회라는 것에 참석할 수 있게 된 것도. 전부 그것으로 얻은 지위 덕분이었다.


“재미있게 즐기고들 있군.”


연회장을 가득 메워 수다 떨기에 한창인 인간들을 한심하게 바라보고 나는 손에 쥔 스테이크 나이프를 돌렸다. 상급 모험자 자체가 별로 없기에 연회에 실질적으로 참석한 건 고위 관리들이다. 연회가 시작된 지 한 시간이나 지났지만 국왕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치장이라도 하고 있는 건가.


“류셀, 그거 안 먹을 거면 나 줘.”

“먹고 있다.”

“한입도 대지 않았잖아!”


시이나가 고개를 들이밀며 요구한 것에 심드렁하게 대꾸하자 평소의 태클이 돌아온다.


“음식을 낭비하면 좋지 않다구?”

“왜 그렇게 생각하지.”

“그거야, 사치는 좋지 않으니까...”


시이나는 말하면서도 자신의 말에서 오류를 느낀 모양이었다.


백 명 가까이 모인 연회였지만 준비된 요리는 탁상이 휘어질 정도로 나왔다. 아무리 많이 먹어도 먹지 못할 양의 고급 음식을 준비한 것이다. 남은 요리는 버려지겠지.


순금으로 만든 조각상. 복잡한 공예가 새겨진 천장. 군데군데 크리스탈이 박힌 바닥. 심지어 수저도 전부 금이다.


아무것도 모르는 자가 이곳만 본다면 분명 왕국은 강대국인줄 알 것이다. 국고 사정이 좋지 않을 텐데도.


이 넓은 공간이 왕성의 일부에 불과하다는 것도 언급해야겠지.


사치의 극한이라고 볼 수 있는 이곳에서 음식낭비를 운운하는 게 코미디다. 단지 타인에게 뽐내기 위한 사치는 싫어한다.


연회 시작 후부터 쉬지 않고 연주하고 있는 저 궁중악사들을 제외하면 이 연회는 토가 나올 정도로 지루했다.


그 중에서 나는 바이올린과 피아노의 선율에 집중하고 있었다. 오른손은 따분하다는 것처럼 칼을 돌리고, 왼손은 왕성 메이드에게 준비하게 한 종이에 뭔가를 바삐 써내려가고 있었다.


“그래도 경제사정을 겉으로는 보여주지 않으려 애쓰는 것 같으니까요, 그 국왕은.”


한참 전에 식사를 마치고 홍차를 홀짝이던 이스가 코멘트했다. 우리는 지금 큰 원형 테이블에 셋이 적당히 거리를 두고 앉아있다.


“그나저나 류셀 씨, 아까부터 적고 있는 건 뭔가요?”

“여흥이다.”


따분한 건지 집중한 건지 알 수 없게 되어버린 나는 대충 답했다. 어릴 때 억지로 배웠던 게 이런 식으로 도움이 되는군.


“류셀은 한번 생각에 빠지면 저렇게 된다니까.”


놀랍게도 시이나는 제대로 꿰뚫어보고 있다. 하지만 더 대답해줄 생각은 없다. 선지에 그은 5개의 줄에 점을 찍는 걸로 이미 나는 바빴다.


“그런데 저쪽 분들이 계속 이쪽을 노려보고 있는 것 같은데, 제 착각은 아니겠죠?”


이스는 제일 단상에 가까운 테이블에 눈길을 주며 말했다.


“저 사람들, 아무래도 우리한테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아. 역시 내가...”

“시이나 씨가 잘못한 건 없어요. 파렴치한 행위를 해온 건 상대방이에요.”


둘이 얘기하고 있는 건 왕국에서 서열 1위라는 금의 장미다. 저번에 꼬리를 말고 도망친 게 억울한지 자꾸만 째려보는 시선이 느껴지는데, 나는 사과해줄 일말의 생각도 없었다.


텃세를 부리려 찾은 신입 모험자 팀에게 도리어 겁을 먹고 자리를 떴다는 게 알려지면 서열 1위의 자리가 흔들리겠지.

그렇다고 입막음을 하기엔 엄두가 나지 않을 것이다. 그들 전원이 덤벼도 내게 순살 당할 거라는 건 여자 마법사에게 충분히 일깨워주었다.


“우리, 앞으로 어떻게 하지? 금의 장미는 국왕과도 친분이 있다고 했는데...”


시이나는 계속 신경 쓰이는 모양이었다. 펜을 든 왼손을 멈춘 내가 물었다.


“처리하길 바라나?”

“여, 연회장에서 무슨 소리야 류셀!”


시이나는 모자가 자신의 귀를 덮고 있다는 것도 잊고 반사적으로 손을 들어 늑대귀를 가리려했다.


“슬슬 등장하시는군.”


악사들이 연주를 멈추고 퇴장하는 걸 보며 말했다. 연회의 주역이 등장하시고 있었다.

모두의 기립박수를 받으며 레드카펫을 느긋하게 걸어오는 건 하나의 노인.


고품질의 옷과 화려한 장신구, 그리고 머리에 금빛으로 번쩍이는 왕관을 썼지만 나이를 속일 수는 없는지 복장과 옷걸이가 전혀 맞지 않다.


시이나는 자신도 일어나서 기립박수를 치려다 이스와 내가 가만히 앉아있는 걸 보고 슬며시 다시 앉았다.


“류셀, 저 사람이 누군진 저번에 알려줬지? 저 사람이 국왕이야.”


시이나가 다시 알려줄 필요도 없다. 저 노인에 대한 건 그에게 들어서 필요이상으로 알고 있을 셈이다.


지오돌프 국왕.


충신들의 간언을 무시하고 되지도 않는 고집을 펼쳐 수년 만에 강대국을 떨어뜨린 노인. 그 강대국이라는 게 다름 아닌 본인의 나라라는 게 웃기다.


필요 없는 곳에 예산을 낭비하고 국고를 바닥내며 경제를 파탄시키고, 마족에 대한 박한 취급을 공공연히 놔둔 알트레아 왕국의 지도자.


“오늘은 모여주어 감사하네.”


박수가 잦아들자 국왕은 왕좌에 앉으며 말했다.


“내가 몸소 초대했으니 참석하는 게 당연하겠지. 일단 자리에 앉게.”


국왕의 양측에는 기사단장과 젊은 여자가 섰다.


머리를 과도하게 부풀린 여자는 국왕과 나이차가 마흔은 되어보였지만 놀랍게도 왕비다. 국왕 사이에 가진 여덟 살배기 자식까지 있다.


연회장이 조용해진 와중, 국왕이 크게 한숨을 쉬었다.


“흥을 깨뜨리는 꼴이 되겠지만 본론부터 들어가도록 하지. 나는 너희ㅡ아니,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하다.”


평소 말투가 튀어나올 뻔한 걸 국왕이 재빨리 고쳐 말했다.


“오늘 모인 자들은 알 것이야. 요즘 들어 왕실에 대한 대중의 인식이 나빠지고 있다. 내 탓은 전부 아닌데 말일세. 자꾸 내게 전부 뒤집어씌우려 하고 있어, 아랫것들은.”


시이나는 조용히 국왕을 노려보고 있었다.


“탓이 아니긴 뭐가 아냐,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네 탓이라고...”


여기 테이블에서 국왕이 서있는 왕좌까지는 꽤 거리가 있다. 시이나가 중얼거리는 건 나와 이스에게밖에 들리지 않았다.


“모든 일의 주범이... ”


시이나의 몸이 역정으로 조금 떨리고 있었다. 그토록 좋아하던 고기가 눈 앞 접시에 있는데도 국왕이 나타나고 나서부턴 입에 대려 하지도 않는다.


“류셀 씨, 언제 움직이실 건가요. ”


다른 사람들이 국왕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이스가 내게 귓속말을 했다.


나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잔에 와인을 더 따랐다.


“지금이 기회예요. 일단 저 먼저 눈치를 보면서 접근할 테니ㅡ”


이스가 일어서려는 걸 내가 시선으로 막았다.


“아직이다.”

“저 사람은 대화가 통할 것 같지 않아요. 연회가 끝나도 따로 만나줄 분위기도 아니고, 할 거면 지금 해야 해요.”

“이스, 계약은 유효하다.”


저번 레스토랑에서 먹었던 와인과 같은 종류를 홀짝이며 내가 말했다.


“같은 말 반복하게 하지 마라. 아직이다.”

“...네.”


이스가 왜 애가 타는지는 알 수 있다.

이스가 말한 대로 지금이 국왕을 확실하게 죽이기엔 제일 적합한 찬스다. 국왕을 지키고는 있는 건 기사단장과 국왕 직속 근위대뿐이다.


하지만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과일이 탐스럽게 익어야 그걸 따서 한입 먹는 농부의 입가에 더 큰 미소가 그려지는 법이다.


“시이나랑 류셀은 무슨 얘기를 그렇게 재미있게 하고 있어?”


겨우 분노를 삭힌 시이나가 아무렇지 않은 척 말을 걸었다.


“연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당연하지 않나?”

“연회라면 이미 시작했잖아?”


시이나의 반문.


그 와중에도 국왕의 연설은 계속되고 있었다.

빙빙 돌리고 있지만 결국 같은 이야기다. 우매한 대중을 억누르는데 힘을 보태달라는 것이다.


“이 연회는 상급 모험자들을 위한 것이지. 큰 힘을 가지고, 대중의 인식에 또한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그렇기에, 난 부탁을 하고 싶다!”


국왕은 왕좌에서 일어나 그 앞에 준비된 단상에 손을 내리쳤다.


“치하는 충분히 해주지. 어리석은 놈들을 울타리에 가둬놓는데 동참시켜 주지 않겠나?”

연회장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국왕의 제안에 동참한 자들이 탄성을 지르고 국왕의 이름을 연호했다. 금의 장미도 마찬가지로 오버해서 반응을 보여주고 있다.


“지오돌프 국왕님!”


이라는 구호가 반복되어 외쳐졌다.


국왕은 자신만만한 얼굴로 웃었다. 그의 계획은 예정대로 성사된 것이다. 성난 민심을 잠재우려는 그의 노력은 결실을 맺었다고 생각하겠지.


과실은 무르익었다.


“그렇게 하기만 한다면 나는ㅡ”


기사단장은 단검으로 국왕의 심장을 찔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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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전쟁의 피스 +1 19.05.30 816 17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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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14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56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74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42 23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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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피의 연회가 열렸다 +3 19.03.24 1,426 3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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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이제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3 19.03.20 1,477 3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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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모두 붉게 물들었다 +4 19.03.18 1,538 37 8쪽
21 던전의 주인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 19.03.17 1,545 3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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