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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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9.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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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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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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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19.05.11 0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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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목적과 이유

DUMMY

손에 익은 놀림으로 책상 위의 부품들을 결합했다.


칠흑의 유광으로 빛나는 건 M1911.


세계대전에서 미군이 애용한 이 권총은 본래 콜트사가 개발한 것이지만 현대에 와선 제작 회사들도 많아졌다.


내가 도면을 떠올리며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만들어낸 이 샘플은 킴버 사에서 만든 커스텀 모델로,


분해와 조립을 수도 없이 해봤기에 별 일 아닐 거라고 생각했지만 밀링 머신이 없는 판타지 세계에서 총을 제작하는 건 정말 골치 아팠다.


버스트를 아주 미세한 레벨로 쏘는 것으로 준비된 철을 절단했지만 하루 종일 그러고 있자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스키잔조차 아마 광맥에서 전멸 당했을 드워프의 행방을 찾지 못하는 판국에 백작과 이스가 제대로 된 대장장이를 구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사람을 강아지귀 씨라고 부르고, 조금 실례 아니야? 류셀.”


“맞잖나, 강아지귀.”


다른 방에 숨어있던 시이나가 나오며 말한 것에 나는 심드렁하게 대꾸해주며 고개를 돌렸다.


“덕분에 전쟁을 막았나 싶었더니 새로운 전쟁이 일어날 판국이다. 뿌듯했으면 좋겠군, 시이나.”


통렬한 말에 시이나가 분한 듯 고개를 떨어뜨렸다.


“딱히 너를 탓하려는 건 아니야. 직접 경험해보지 않으면 잘 가슴에 와 닿지 않으니까.”


물론 일어날 파장을 전부 계산한 후에 일부러 왕녀를 제국에 보냈다는 건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도 수습은 제대로 해주었으면 좋겠군. 내가 저번에 준 건 아직 잘 간직하고 있지?”


“... 응.”


시이나가 내가 들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총기를 들어올렸다. 1911같은 반자동 피스톨이 아닌, 357 매그넘 리볼버다.


이 세계에 단 세 정밖에 없는 총기 중 하나를 든 시이나는 아직도 어색해 보였다.


“오늘도 연습이나 해볼까. 잠시 따라와라, 시이나.”


“... 알았어.”


내 의지를 따라 발생한 전이 마법진이 나와 시이나를 덮고, 우리는 곧 알트레아 왕국 북부 산맥지대에 있었다.


“오늘은 마물이 없군.”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잡아대면 없어지는 게 당연하잖아, 류셀.”


“무기의 성능 체크는 필요하다. 아, 마침 하나 있군.”


탐지마법으로 마물의 존재를 체크한 나는 보지도 않고 권총을 조준했다.


굳이 눈으로 볼 필요는 없다. 필요한 위치정보는 전부 탐지마법으로 해결하고 있으니.


탕!


방아쇠를 당기자 연기가 피어오른다. 탄피가 뎅그르르하고 땅에 떨어졌다.


한 번 크게 숨을 들이마신다.


이 화약 냄새는 맡으면 안정된다. 익숙한 피와 철의 냄새다.


전생에서 나와 동고동락해온 권총을 휘리릭하고 간이로 제작한 권총집에 넣은 나는 시이나 쪽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았나.”


“그야... 그런 큰 소리를 내면 누구라도 깜짝 놀란다구.”


시이나는 자신의 총을 떨어뜨리는 건 겨우 면하고 늑대귀를 감싼 채였다.


“마물의 시체를 확인해라. 어디에 맞았는지 잘 봐.”


“아, 그러고 보니...”


시이나가 두리번거리더니 근처에 쓰러져있는 사슴 모양의 마물의 시체를 보았다.


“머리에 구멍이 나 있어. 류셀이 한 거지? 확실히 죽었어.”


“총알을 만드는 것도 쉬운 게 아니다. 그러기에 너는 그 도구를 쓰는 법을 빨리 익혀야 해. 네가 익숙한 대검을 쓰지 말라는 건 아니다. 하지만 여차할 때 꺼내 쏠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한다. 광맥에서의 추태를 다시 보이지마라.”


“윽, 알았어...”


늑대귀가 내려가는 걸 보니 풀이 죽은 모양이었다.


“네가 가지고 있는 건 리볼버다. 속사를 해서 재밍이 걸리더라도 다시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한 발을 건너뛰고 다음 발을 쏠 수 있다. 그 설명은 기억하고 있겠지?”


“응.”


시이나가 들고 있는 건 나이트가드 모델 327. 스미스 웨슨 사의 생산 중단된 8연발 리볼버다. 굳이 리볼버를 만든 데는 이유가 있었다.


피스톨은 스프링이 배럴에도 들어가고 탄창에도 들어간다. 부품을 제때 정비하고 갈아주지 않으면 탄약의 피드가 제대로 되지 않아 재밍이 걸리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그래서 시이나처럼 단순한 자들도 사용할 수 있게 정비가 간편하고 재밍이 적은 리볼버의 샘플을 두정 더 만들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만드는 작업도 훨씬 간편했다. 실린더를 둥글게 하는 작업을 제외하면.


“자세 잡아봐.”


나는 엉거주춤한 시이나의 자세를 바로잡아 주었다.


“팔은 피고. 왼손은 오른손을 받쳐주는 자세로. 가늠자와 가늠쇠를 일렬로 맞춰. 그리고 조준이 흐트러지지 않게 유의하며 천천히 방아쇠를 당기는 거다.”


“... 이렇게.”


탕!


내 것보다 조금 묵직한 발사음이 울렸다.


“이거를 군인에게 전부 보급하겠다는 거지, 류셀은?”


“지금의 왕국군을 신용할 수 있을 지는 아직 생각 중이다. 그들은 전부 인간들이라고, 시이나.”


“확실히... 이걸 사용하면 마법이나 검술에 아무런 재능이 없어도 무서운 병사가 될 거야. 어느 군대도 상대가 되지 못할 정도로...”


시이나는 꺼림칙한 거라도 들고 있는 것처럼 표정이 좋지 않았다.


“있지, 물어보고 싶었는데 류셀은 어떻게 이런 걸 알고 있는 거야? 이런 무기가 있다는 건 처음 들어봤어. 책에서도 본 적 없고.”


“원리는 간단하다. 건파우더를 채운 탄피에 뇌관이 들어있다. 한 발을 약실에 장전한 상태로 방아쇠를 당기면서 해머가 뇌관을 때리고, 그 영향으로 충격이 발생해 화약이 터지면서 탄피를 놔두고 탄환이 앞으로 운동하는 거지.”


“건... 파우더?”


“너희들도 이미 쓰고 있는 약품이다. 불화살을 쏠 때 쓰는 가루가 있다는 것쯤은 알고 있겠지. 그걸 이런 식으로도 쓸 수 있다. 폭발을 일으키는 가루 정도로 생각해둬라.”


물론 건파우더를 대량으로 생산하는 것도 난관중의 하나였다.


지금은 땅 밑에서 썩어가고 있을 지오돌프가 무기를 많이 사들인 덕에 당장은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언제까지나 창고에 있는 화약에 의존할 수 있는 것도 아닌 것이다.


불화살은 공성전이 아니면 거의 쓰이지 않았으니까 요 며칠 사이 화약의 잔량은 지금도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그렇구나... 잘은 모르겠지만.”


시이나는 리볼버를 어루만졌다.


“이걸로 사람이 죽는 거구나...”


“방어마법이나 선천적으로 단단한 외피를 가지고 있지 않는 이상 인족이든, 마족이든 거의 그렇겠지. 아직 믿기지 않는 건가? 뭣하면 사형수를 데려와서 처리해도 좋다. 움직이는 표적은 연습용으로도 일품이겠지.”


“있지. 류셀이 있던 곳에서는 이런 게 많았어?”


무슨 말인가 싶어 시이나를 보니 딴 곳을 쳐다보고 있었다.


“많았지. 이것보다 더 큰 것들도 있었다. 이런 작은 나라쯤은 한방에 없애버리는 병기도 있었다고 하면 너는 믿을 건가?”


“바로... 와 닿지는 않지만 아마 믿을 거라고 생각해, 류셀.”


“너... 하고 싶은 말이 뭐냐.”


“아무것도. 그냥 말해보고 싶었어.”


시이나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의도를 읽지 못하는 대화는 언제나 짜증난다.


나는 그 짜증을 불식시키기 위해 허공에다 총을 겨누고 남은 탄창을 전부 비워버렸다.


찰칵, 하고 슬라이드가 뒤로 락백이 될 때까지.


“류...셀?”


시이나가 놀라 물었다.


“처음 만났을 때, 너는 내게 부탁을 했지. 그 내용은 자신을 도와달라는 것이다. 슬슬 확실히 해야겠어. 네 목적은 뭐냐.”


“그건...”


“목적 없이 꺼낸 이야기는 아니었을 거다. 다시 묻지. 시이나 렌. 네 목적은 뭔가. 뭘 위해 내게 접근했나.”


그건 시이나에게 있어 무척 어려운 주제였을 것이다. 곧잘 말하던 입이 바로 다물어지는 걸 봐서는.


“잘... 모르겠어.”


“또 그 소린가. 뭘 도와달라는 건지조차 말하지 않고서 내게 뭘 바라나. 마족의 부흥? 그렇다면 내가 하는 말에 토를 달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다. 돈? 드래곤 퇴치로 받은 네 몫의 보상금을 내놓지 말았어야 했을 것이다.”


나는 거기에서 말문이 막혔다. 더 이상 이유가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시이나 렌이 내 곁에 있을 이유가.


“칫.”


“묻겠는데, 그럼 류셀은 왜 나를 죽이지 않고 있는 거야?”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리자 시이나가 감정이 북받쳐 오르는지 물었다.


“류셀이라면 나 같은 건 언제든지 죽일 수 있잖아. 마법도 제대로 쓰지 못하고 검만 휘두를 줄 아는 웨어울프 하나 정도는 손가락 까닥하면 죽일 수 있잖아.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고, 왕녀를 살려 보낸 것도 류셀이야. 왜 그랬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이 웨어울프 소녀는 쓸데없는 기억을 자꾸 떠오르게 한다.


“됐다. 너 먼저 집에 돌아가라. 난 할 일이 남았으니까.”


시이나의 몸을 전이 마법이 삼켰다.


“잠깐, 류셀ㅡ!”


다시금 산맥지대에는 정적이 찾아왔다. 풀내음을 맡으며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잘 모르겠다... 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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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2

  • 작성자
    Lv.50 cover
    작성일
    21.01.08 03:07
    No. 1

    마족의 부흥이 목적이니까 마족이어서 안 죽인거 아니었나요? 아니었다면 주인공한테 엄청실망인데......아무리봐도 주인공 성격상 이 이유가 아니면 안 죽일 이유가없는데...근데 그냥 모르겠다라...아님 나중에 주인공이 감정을 찾아서 인간미가 생길 거라는 암시인가...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변진섭
    작성일
    22.11.08 19:21
    No. 2

    잘보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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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선전포고 +3 19.05.22 956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74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42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22 22 10쪽
37 시찰 +1 19.05.12 1,014 23 9쪽
» 목적과 이유 +2 19.05.11 1,074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40 24 9쪽
34 네이아르 백작 +2 19.05.06 1,167 29 10쪽
33 죄의 운반 +2 19.05.05 1,208 2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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