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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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9.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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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53,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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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12 0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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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9쪽

시찰

DUMMY

사냥꾼도, 상인도 찾지 않는 북부의 바이만 산은 나무들이 아무렇게나 우거져있다.


하얗게 서리가 내려 주위보다 온도가 현저히 낮아진 환경은 아주 일부의 침엽수 말고는 식물조차 대부분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었다.


바이만 산만 넘는다면 제국과 왕국을 동시에 칠 수 있을 거라는 오랜 소문이 돌 정도로, 이 위치상으로만 보면 요충지인 지형은 아무도 감히 접근하지 못하는 가파른 절벽을 자랑했다.


정신이 제대로 박힌 놈이라면 바이만 산을 오르려하지 않을 것이다. 같은 속담도 존재했다.


그런 악명 높은 산의 일부가 대충 깎여져 벌판을 만들고 있었다.

바이만 산의 속담을 자주 들먹이는 자가 보면 기겁했겠지. 공략 불가능의 오지에는 천 정도의 마족이 집결해 있었던 것이다.


“아, 류셀 마왕님. 오셨습니까.”


손에 든 종이에 뭔가를 분주히 적던 스키잔이 날 보고 반색했다.


“누추한 곳에 모시게 되어 면목 없습니다.”


시찰이나 할 겸 마왕군의 임시 주둔지인 북부 산림을 방문한 나는 각기 다른 모습을 한 마족들이 뛰어다니는 걸 보고 신기하다는 감상을 가졌다.


“저들은?”


“아, 지금은 식사 준비 중입니다.”


“저게 말인가?”


거대한 돼지인간 형상을 한 하이오크들은 식량을 분배하는 다크엘프들을 도우려는 것 같았지만 오히려 방해가 되고 있었다.


다크엘프들과 달리 추운 것에 익숙하지 않은 것이겠지. 둔한 몸이 추위에 더 둔해지는 바람에 식사 준비 작업이 점점 늦어져만 가고 있었다.


그건 오크뿐만이 아니었다.


거대한 털뭉치가 나무 옆에 있다 싶었더니,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크고 작은 팍시들이 조금이라도 열의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 옹기종기 모인 것이었다.


일반 여우와 다를 게 없는 겉모습처럼 원래는 활기차게 뛰어다니며 마법으로 장난치는 걸 좋아한다는 팍시가 골골거리고 있다.


편안해 보이는 건 추위를 전혀 타지 않는 서리 거인과 정령들 정도다.


“죄송합니다, 마왕님. 이곳 말고는 그렇다 할 만한 장소를 찾지 못했습니다.”


“추위에 내성이 있는 자들은 어느 정도 되나?”


“6할입니다.”


스키잔이 주저하며 대답했다. 그 말은 즉 여기에 계속 주둔하면 분명 4할은 죽어나간다는 소리다. 이건 천명이 모일 때까지 아무도 죽지 않은 게 대단했다.


“현재 주둔지로 쓸 만한 장소를 수색 중입니다. 그... 최대한 빠른 시일 안에 인족들의 감시가 닿지 않는 곳을 찾도록ㅡ”


“이런 내용은 보고에 없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건가?”


나는 거침없이 스키잔의 말을 잘랐다.


“며... 면목 없습니다...!”


스키잔이 땅에 머리를 대고 엎드렸다.


“마왕님께서 수고를 들일 일이 아니라 생각했습니다... 제 선에서 어떻게든 해결해보려 했지만 도저히...”


“알겠나, 스키잔. 질책이 두려워 보고를 미흡하게 하면 일이 꼬이게 된다. 혼자서 해결하려고 무리하다보면 이런 일이 생기는 거야.”


“예...!”


군의 편성 총책인 스키잔이 내게 엎드리는 걸 보고 다크엘프 하나가 이쪽을 이상하게 쳐다본다.


“아직 실패하지 않았으니 넘어가주지. 하지만 다음부턴 보고를 누락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라.”


“가, 감사합니다 마왕님...!”


“마침 비어있는 장소가 있다. 입구에 사역마를 풀어놨으니 아무도 접근하지 못했을 것이다. 지체할 시간이 없어. 바로 전이마법을 쓰지.”


“예, 마왕님.”


나는 손을 하늘로 쳐들었다.


“전이: MAX.”


거대한 마법진이 바이만 산 일대를 뒤덮었다. 놀란 마족들이 웅성대기도 전에 천의 마왕군은 광맥지대로 전이되었다.


“여긴 어디지? 동굴?”


“적습인가?”


스키잔은 나를 보고 감탄했지만 대다수의 마족들은 갑자기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넋을 놓고 있었다.


“저거 봐! 재보가!”


누군가 제일 먼저 보물을 발견하고 소리치자 모두의 시선이 동굴의 제일 안쪽으로 쏠렸다.


산처럼 쌓인 금화에 눈이 돌아가는 건 마족도 마찬가지지만 적어도 자신의 입장을 파악하고는 있는 것인지 진형을 무너뜨리고 달려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꼴사납게 죽은 파충류가 살아생전 모으던 재보 옆에 서있던 나는 앞으로 걸어 나왔다.


“인...간?”


서리거인이 몽둥이를 들었다.


“인...간... 죽... 인... 다...”


“기다리세요! 이 분은ㅡ”


“빠져있어라, 스키잔.”


문답무용으로 거대한 몽둥이가 내게 휘둘러진다. 굉음을 내며 몽둥이가 바닥을 뚫고 박혔다.


서리거인이 이상한 걸 느꼈는지 옆을 보자 마력을 담은 내 검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공격 명력이 떨어지지 않았는데 독단전행. 전시라면 군사재판 감이다.”


톡, 하고 이마를 건드렸을 뿐이었지만 서리거인의 커다란 몸뚱이가 굉장한 속도로 반대편 벽에 날아가 박살났다.


미동도 없는데다 스키잔이 새파랗게 질려 달려가는 걸 보니 아마 거의 사망한 상태겠지.


첫 번째 사상자가 TK라니.


“조절한다고 했는데 실패했나 보군. 갑자기 공격당하는 건 마음에 안 들어. 내가 무슨 죄라도 지은 것 같단 말이다.”


내 시선을 받은 마족들이 동요했다.


“저 놈... 서리거인을 일격에...!”


“조용히!”


증폭 마법으로 볼륨을 키운 내 목소리가 동굴 내부를 쩌렁쩌렁 울렸다.


“나에 대한 불경은 용서하지 않는다. 오해든 뭐든 참작의 여지는 없다. 주인에게 이빨을 세우는 개를 예뻐하며 키울 정도로 나는 착해빠지지 않은 것이다.”


내가 말하는 것을 제외하곤 동굴에서 말하는 자는 하나도 없었다. 전투력으로는 높은 축에 드는 서리거인을 이렇게나 쉽게 쓰러뜨렸으니 그것도 당연하지만 늑대 사역마들을 열다섯 마리째 꺼내고 있는 중이라는 이유도 있겠지.


“내 부름에 응해 모인 자가 이것밖에 안 되는 것부터 마음에 들지 않은데, 이 이상 일을 그르치려하지 마라. 내 애완동물이 조금 기분이 안 좋은 모양이거든.”


해야 할 말을 다했다고 생각한 나는 입을 다물었다. 정적을 깬 것은 아까 내가 스키잔과 대화하는 걸 쳐다보던 다크엘프다.


“실례. 저희들은 아직 그대의 존함을 모릅니다.”


다크엘프는 늑대들이 살의를 향한 것에도 주눅 들지 않고 당당하게 물었다.


“부디 알려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나는 홀로 나서서 질문한 다크엘프를 찬찬히 뜯어보았다.


자신보다 큰 활을 등에 메고 머리를 적당히 정리해 포니테일로 뒤로 넘긴 모습은 어른이라고 하기엔 좀 어려 보였지만 그래도 70살은 넘었을 것이다. 다크엘프는 100살을 전후로 성인식을 하니까.


“그럴까? 그래야 하나? 오해는 하지 말도록. 딱히 너를 놀리려는 게 아니다. 저번에 한번 이름을 댄 적이 있는데, 전혀 안 믿어서 말이지.”


내가 장난처럼 말을 던졌다.


“여기 남은 핏자국의 주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나? 여기는 광맥의 제9계층. 얼마 전까지 자이언트 드래곤이 살고 있던 곳이다. 그래, 얼마 전까지.”


내 입가가 풀어졌다. 눈은 빙글빙글 돈다. 즐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행복에 잠겼다.


“아, 그건 정말 재미있었어. 사지가 하나씩 없어지면서 목숨을 구걸하는 놈의 모습은 볼만했다. 좋은 여흥이었어.”


“자이언트 드래곤을 그대가 죽였다는... 말씀이십니까?”


“그렇다.”


폭탄발언에 마족들이 웅성거렸다. 하지만 믿지 못하는 건 아닌 것 같았다. 실력행사를 보인 덕분이다.


“드래곤이 아니라 파충류에 가깝지. 70년 전의 인마전쟁에 참전하지도 않은 주제에 거들먹거리면 그렇게 되는 거다. 배신자의 말로는 언제나 꼴사납지.”


내 눈은 어느 샌가 붉은 안광을 내고 있었다. 하지만 마안을 걸지는 않았다.


자신의 부하에게까지 신뢰를 얻지 못하고 마안에 의존해야 한다면 그것 또한 꼴사나운 것이다.


“자, 너희들은 어떤가? 너희들은 선택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스키잔의 부름을 받고 모인 것 아닌가? 선택해라. 나와 함께 걸을지, 나를 적대할지.”


“그, 그대는 설마...”


“호칭부터 바꾸도록, 다크엘프여.”


중상을 입은 서리거인의 비상처치가 끝났는지 곁을 떠난 스키잔이 조마조마하며 내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 눈빛에 더 이상의 팀킬은 삼가달라는 애원이 섞여있는 것 같았다.


확실한 수직관계를 만들기 위해서였는데, 어쩔 수 없지.


“인족 따위에게 치욕을 받고 있는 너희를 구하고 새로운 세계를 가져다줄 구세주님, 정도로 알려져 있는 모양이더군. 그게 내가 이 세계에서 받은 ‘역할’. 짊어지게 된 업보. 너희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진 왕이다.”


“그대가...”


다크엘프가 말을 하다 말고 엎드렸다. 조금의 시간차를 두고 같은 동작을 동굴의 마족 전원이 따라했다. 나는 흡족한 얼굴로 그걸 보았다.


“좋다. 가슴에 똑똑히 새겨라. 너희들은 오늘부터 정식 마왕군이다. 내게 바치는 충성에 대한 보답으로 나는 너희들에게 승리를 약속하지. 마왕의 이름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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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신의 사자 +1 19.08.25 569 12 10쪽
60 제물 +1 19.08.22 559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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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승전 +3 19.08.15 620 15 10쪽
57 기폭 +3 19.08.11 571 12 9쪽
56 습격 +2 19.08.08 595 13 9쪽
55 초전 +1 19.08.03 631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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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제국의 침공 +1 19.07.18 699 1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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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대(對)인간병기 +1 19.06.01 808 17 11쪽
44 전쟁의 피스 +1 19.05.30 816 17 11쪽
43 밤하늘 +1 19.05.26 877 21 10쪽
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14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56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74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42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22 22 10쪽
» 시찰 +1 19.05.12 1,015 23 9쪽
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74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40 24 9쪽
34 네이아르 백작 +2 19.05.06 1,167 29 10쪽
33 죄의 운반 +2 19.05.05 1,208 29 9쪽
32 유일한 생존자 +7 19.04.25 1,232 3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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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모두 죽었다 +4 19.03.25 1,447 35 8쪽
29 피의 연회가 열렸다 +3 19.03.24 1,426 38 10쪽
28 명령을 내리다 +4 19.03.23 1,403 35 8쪽
27 연회는 시작되려고 했다 +2 19.03.23 1,461 37 9쪽
26 선배의 텃세는 통하지 않는다 +2 19.03.22 1,418 3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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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이제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3 19.03.20 1,477 3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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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모두 붉게 물들었다 +4 19.03.18 1,539 37 8쪽
21 던전의 주인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 19.03.17 1,545 37 8쪽
20 한때 사람이었던 것을 만나다 +3 19.03.16 1,576 3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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