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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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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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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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25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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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군복

DUMMY

갑작스레 침공한 제국군의 소식은 곧 왕국 전역에 퍼졌다. 정권의 교체로 인해 정세가 불안정한 상황에 외세의 침략도 겹치니, 이번에야말로 나라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오는 실정이다.


“정말... 그는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이대로 애써 손에 넣은 나라를 넘겨줄 생각은 아닐 테고...”


페르난도 폰 네이아르 백작은 주어진 임무대로 온갖 소식통을 통해 첩보를 수집하면서도 그런 혼잣말을 입에 담았다.


수수께끼의 철제 병기의 양산은 왕국 내 대장장이를 긁어모아 어떻게든 성공했다. 그 위력은 정말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방아쇠를 당기는 것만으로 큰 소리를 내며 불을 뿜고, 납덩어리를 가공할 만한 속도로 날려 보낸다. 그 시연을 직접 본 백작이었기에 어째서 국경 지대의 군에게 그 무기를 보급하지 않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게 군에게 보급품으로 전달되기만 했어도 제국군이 이렇게 간단히 왕국군을 제압하며 나아갈 일은 없었을 것이다. 지오돌프가 무리하게 키워놓은 군은 여러모로 빈약했지만 이렇게까지 제대로 된 싸움을 해보지 못하고 밀릴 정도는 아니다. 숙청 때문에 지휘 체계에 구멍이 생기지 않았다면.


류셀의 판단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군인들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진언을 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현재 백작의 위치에서 나라의 제일가는 통수권자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적군이 바로 앞까지 도달한 마당에 하다못해 작전회의도 열리지 않는다. 백작이 열심히 행해온 정보통제도 이제 역부족. 국민들은 날마다 군화소리가 들려오는 걸 두려워하며 잠에 든다. 밖을 나다니는 사람도 뜸해지고, 왕도의 광장에서 사형이 집행되는 일도 이제 없었다.


신세라도 한탄할 겸 왕성의 집무실을 비우고 광장에 나와 분수대에 걸터앉아 있는 네이아르 백작의 입에서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명령을 내린 자의 생각을 모르겠으니 고민은 점점 깊어져만 갔다. 당연한 소리지만 지그문드 폰 알레인 국왕도 '각하'의 명은 단지 따를 뿐이라는 식으로 일관할 뿐이었고.


“정말... 어떻게 될련지.”

“저기,”


그의 생각을 끊은건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였다.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돌린 백작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오, 자네는 시이나 렌이 아닌가!”


지난번에 봤을 때와는 복장이 확연히 달라졌지만 그의 옆에 서있는 건 그의 딸의 은인인 모험자 웨어울프 소녀였다. 어째서인지 군복 느낌을 지울 수 없는 옷을 입고 있지만 상의와 하의가 각각 반팔과 반바지라는 건 상대의 자유분방한 분위기를 최대한 반영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보다 눈에 밟히는 건 허리춤에 찬 예의 그 무기다. 검은 가죽으로 만든 집에 은색 무기가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등에 큼지막한 대검을 차고 있는 건 익숙한 무기를 쉽게 포기할 수는 없다는 거겠지.


백작이 신기해서 바라보고 있자 시이나는 고개를 살짝 돌리며 손에 들고 있던 코트를 펼쳐 걸치듯이 입었다. 하지만 이전처럼 늑대 귀를 가리려고 하지는 않았다.


“으, 음. 페르난도 폰 네이아르 백작.”


목을 가다듬은 시이나가 말했다.


“저는 이번에 아인부대의 지휘를 맡게 된 시이나 렌 대위입니다.”

“대위?”


저도 모르고 상대의 말을 반복한 백작이 다시 물었다. 아인부대라는 것도 처음 듣는 소리였다. 아인을 배척하는 왕국의 특성상 절대 그런 부대를 만들지는 않을 터였다.


"자네, 군에 소속되었었나?"

"아, 그건 아니지만 이번에 신설된 부대의 지휘를 위해 계급장을 달았다고나 할까..."


한편, 시이나는 자신이 이 복장에 얼마나 어울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머릿속이 뒤죽박죽이 되고 있었다. 백작 작위를 가진 자에게 스스럼없이 다가가 말을 거는 것도 이전이라면 감히 할 수 없는 짓이다.


주머니에 넣어둔 왕가의 문장을 꺼내면 긴 설명도 설득도 필요 없겠지. 어쩐 영문인지 류셀은 자신에게 국왕의 모든 권리를 대행할 수 있는 권한을 줬으니까.


하지만 시이나는 역시 자신은 사람을 부리는 데 적합하지 않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류셀은 민간인이 부대를 지휘하는 건 말도 안 된다는 논리를 세웠지만 역시 갑자기 군인을 하라고 해도 무리인 것이다. 린에게 이것저것 주의사항을 들었지만 이렇게 바로 실전에 들어가니 말이 바로 꼬이기 시작했다.


역시 제대로 거절해둘 걸, 후회만 계속 밀려왔다. 인간들 사이에서 주눅 들고 사는 것이 역시 익숙해졌던 거겠지.


“일단 용건부터 말하는 게 어떤가? 내게 볼일이 있어 찾아온 거겠지?”


백작이 말을 꺼내고 나서야 시이나는 불현듯 정신을 차렸다.


“아, 추가로 제작한 총기의 운반 관련해서 변경 사항이 있어서. 아니, 있어서요.”


이번에도 화려하게 말이 꼬인 시이나를 보며 백작이 일어났다.


“말은 편하게 하게. 자네는 분명 각하의 최측근이었지? 처음 왔을 때도 행동을 같이하고 있었으니 말이야. 이번 쿠테타로 작위 같은 건 거의 의미가 없어졌으니 굳이 예의를 차리지 않아도 되네. 그의 곁에 있는 자네가 나를 하대하는 게 오히려 이치에 맞으니 그렇게 해주지 않겠나?”


시이나는 그 말에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확실히 류셀 덕분에 왕국 내에서 만연하던 마족을 향한 멸시 같은 것은 눈에 띄게 없어졌다. 귀족이라고 해서 마족을 함부로 대할 수도 없어진 것이다.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걸어 다녀도 되는 세상이 점점 가까워져오는 건 본인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류셀에게 살해당한 일부의 인간들에 대한 죄악감도 있었지만, 그게 류셀의 말대로 최적의 결과를 불러왔다는 건 부정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이나는 최근 더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잠자코 그를 따라가기만 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 올 것 같은 마음과, 그건 도리에 어긋나지 않다는 마음이 계속 충돌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네. 이제 더 이상 이전의 왕국이 아닌 거야.”


시이나는 혼잣말로 자신을 다잡고 백작을 보았다.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죠. 추가로 발주한 총기는 전부 마족 거주 구역의 폐교회로 발주합니다.”

“최전선의 병사들에게 보급하는 게 아니었던 건가?”


백작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는 듯 물었다.


“폐교회에 운반한다는 건 거기까지 제국군이 쳐들어온다는 걸 상정해야 나올 수 있는 판단 같은데... 설마.”


스스로 결론에 다다른 백작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져갔다.


“위는 지금도 적과 싸우고 있는 군을 내버릴 생각인가?!”

“그건...”


그 결정을 내린건 시이나가 아니었지만 백작의 호소를 듣고 있으니 자꾸만 마음이 흔들리려했다.


“전쟁은 이길 거예요, 백작. 반론은 필요 없으니 운반을 서둘러 주세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 군은 전멸일세!”

“...”

“들려오는 보고에 의하면 포로도 잡지 않고 진군해오고 있다고! 그 무기를 조금이라도 좋으니 군에 보급시키면 사상자를 줄일 수도ㅡ”


시이나는 한숨을 폭 쉬고 주머니에 넣어뒀던 왕가의 문장을 꺼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는 백작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지휘관 명령이야, 백작. 내 명령에 따르지 않으면 왕가에 대한 반역으로 치부될 거야. 해가 지기 전까지 남은 물량을 전부 이송시켜.”


대부분의 귀족들이 단두대에 끌려간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네이아르 백작이다. 자신 하나의 목숨이라면 몰라도 가족의 목숨까지 걸려있으니 이 명을 거절할 수는 없는 것이다.


“... 알겠다.”


백작이 분한 표정을 지우며 고개를 살짝 숙인다. 시이나는 자신의 귀나 꼬리를 만지며 친근하게 장난을 치던 작은 여자아이가 생각나 가슴 한구석이 조금 찔리는 것 같았지만 명령을 철회하지는 않았다.


백작의 생각대로 류셀의 발명품을 최전선에 전해준다면 제국군을 무찌를 수도 있겠지. 더 이상 피해를 불리지 않고 전쟁을 끝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인간에게 이런 무기를 조달해 줄만큼 인간을 신뢰하지 않았다.


적어도 그 부분에서는 류셀과 시이나의 생각이 일맥상통했다. 이 기술이 인간들에게 넘어간다면 마족이 다시 부흥의 길을 걷기도 힘들어진다.


인간들의 생각은 뻔했다. 더 강한 힘을 얻으면 분명 그걸 사용해서 자신보다 약한 자들을 억압하는데 쓸 것이댜. 그 피해자는 언제나 그래왔듯 마족이 된다.


“... 서두르면 세시간 안에 도착할걸세. 운반의 확인은 누구에게 받으면 되겠나?”

“현장에서 기다리고 있을 제이드라는 남자에게. 미리 이야기해뒀으니 차질은 없을 거야.”

“그럼 바로 가보도록 하지. 창고에서 그 많은 철 덩어리들을 꺼내야하니 말일세.”


그 이상 할 이야기는 없다는 듯 등을 돌려 멀어져가는 백작의 뒷모습이 순간 누구와 닮은 것 같아, 시이나는 이를 악물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리는 권력은 그렇게 좋은 느낌이 아니었던 것이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타인에게 명령을 내리고 이용할 수 있을 정도의 정신력은 아직 시이나에게는 없었다.


전쟁으로 죽는 건 군인만이 아니다. 자신은 방금 많은 인간들의 죽음까지 명령한 것이다. 그 생각은 죄책감이 되어 지금도 무겁게 시이나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다.


“하지만 어쩌겠어. 인간은 신용할 수 없는 걸...”


시이나는 허리춤의 리볼버에 손을 얹었다.


류셀은 자신에게 기회를 줬다. 자신보다 지휘관에 적합한 인재는 얼마든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불신을 보였던 자신에게 믿음을 준 것이다. 그 행위를 배신할 정도로 시이나는 타락하지 않았다.


무엇보다, 같은 편을 배신하는 건 인간의 전매특허였으니까.


작가의말

겉모습은 그렇다 치고 나이를 생각하면 대위가 적당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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