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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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9.07 21:52
연재수 :
3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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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53,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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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9.19 0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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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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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대화의 시작

DUMMY

“뭐?! 섬의 결계가 깨졌다고?”


슬로겐은 보초가 들고온 소식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섬을 지키는 절대적인 마법이 깨진다니, 그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더군다나 섬을 거대한 얼음이 둘러싸고 있다고 하니, 다물어진 입이 닫히지 않았다.


“그런 바보 같은! 섬의 방위결계는 완벽했었을 터다! 마법공격이 통할 리가 없어!”


한편, 맞은편의 소파에 누워있던 레야는 곰방대를 슬로겐 쪽으로 들어보였다.


“그러니까 말했잖아? 마왕이 곧 찾아올 거라고.”

“결계를 깨부수면서까지 온다는 이야기는 없었잖나?!”

“뭐뭐, 그렇게 열불낼 필요 없어. 칠흑의 마왕도 나름 배려를 해준 거야. 결계를 통째로 얼려버린 것도.”


레야는 안절부절 못해하는 슬로겐을 두고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평소처럼 제대로 여미지 않은 푸른 비단의 옷의 이음새 부분이 그녀의 몸매를 잘 드러내주고 있었다.


“아차, 마족의 왕님을 뵙는데 좀 더 정중하게 입어야 할까?”


상황을 고려하면 조금 늦은 고민을 하는 레야에게 슬로겐이 눈을 흘겼다.


“네가 언제부터 제대로 입고 다녔다고 그러나, 레야. 민원이 있는 주민들이 중앙장로회를 찾을 때마다 눈을 둘 곳이 없게 곤란하게 한건 너잖아.”

“하긴 그것도 그렇네~”


기지개를 피는 레야는 슬로겐이 기다란 마법지팡이를 들고 있는 걸 보고 이상하다는 얼굴을 했다.


“너, 평상시에는 그거 안 들고 다니잖아? 심경의 변화라도 생긴 거야?”

“...지금 이 상황에서 심경의 변화가 생기지 않겠나! 섬에 외부인이 찾아오는 건 하이엘프의 역사상 한 번도 없었던 일이란 말이다. 만일의 경우...”

“마왕과 싸우겠다고?”


슬로겐이 말을 흐리는 것을 본 레야가 말했다.


“슬로겐. 오랜 친구로서 조언하나 해줄까?”


레야의 곰방대에서 연기가 뭉실뭉실 피어올랐다.


“아무리 다섯 장로 중 하나인 너라고 하더라도 칠흑의 마왕을 이길 수는 없을 거야. 그걸 잘 명심하고 행동해. 특히나 이번 마왕은 규격 외라고 하니까.”

“크윽.”


슬로겐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마왕이 정말 이곳으로 온 시점에서 교섭 말고는 빠져나갈 방법이 없어. 괜히 일을 그르치지 말고 내게 맡겨봐. 다른 장로들한테도 그렇게 전해주겠어? 나는 이제부터 손님맞이를 하러 항구에 나가야 하니까.”


엘프들 사이에 마법통신은 보편화되어있지만 이렇게 중요한 일을 얼굴도 보지 않고 해결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자연스럽게 레야의 말을 전하는 입장이 된 슬로겐은 마법으로 띄운 섬 주변의 얼음덩어리들을 보며 한숨을 쉬었지만, 결국 그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가 한계인 것 같습니다, 마왕님.”


배가 빙하에 부딪힌 것을 확인하고 스키잔이 말해왔다.


뱃머리 뒤에서 전망을 보던 나는 방금 전까지 바다였던 것의 옆에 있던 엘프의 숲에 오솔길 같은 것이 나있는 걸 보고 몸을 돌렸다.


“내 시야가 닿는 곳까지는 전이를 쓸 수 있으니 그렇게 하도록 하지. 저 얼음 위를 걷다가 미끄러지는 건 사양이니 말이다.”


한순간에 섬 위로 이동한 나는 전이마법의 편리함을 실감하며 주위를 살폈다. 하이엘프 이외의 종족을 지나가게 하지 못한다는 방어마법 브리기드는 여전히 해제된 체다.


“마왕님.”


숲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오는 걸 확인한 카니앗이 시위에 화살을 걸고 있었다.


“어머, 그렇게 경계할 필요는 없답니다. 어린 다크엘프 씨.”


처음 보는 하이엘프는 세간 남자라면 누구나 시선을 빼앗길 미녀였다. 걸친 옷은 동양식인지 서양식인지 헷갈리게 하는 기묘한 의복이다.


“저는 이 섬의 모든 걸 관장하는 다섯 장로 중 하나. 레야라고 합니다. 정령 분과는 앞서 이야기한 바 있고... 제 감이 맞는다면 그쪽 분이 마왕님이시겠군요.”


레야는 나를 향해 고개를 숙여보였다.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정령, 천사, 그리고 다크엘프를 데리고 오신 건가요.”

“홀몸으로 올 수는 없으니 말이지.”


레야는 살짝 황홀한 눈으로 가브리엘을 보았다.


“천계의 사자 분을 직접 뵙는 건 저도 처음입니다. 대체 어떻게 하신 걸까요? 천사를 부리는 마왕님의 실력에 감탄하지 않고는 못 배기겠군요. 하이엘프 전원을 대표해서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스키잔과 카니앗은 레야가 바로 내게 무릎을 꿇지 않은 것에 불만이 있어보였지만 하이엘프는 원래 자부심이 높기로 유명한 종족이다. 섬의 장로가 이렇게 직접 마중을 나왔다는 것부터가 그들 입장에서는 꽤나 파격적인 대우겠지.


“섬의 방위마법을 얼려버린 것이라면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마도 천사 분이 잠시 얼도록 신경 써 주신 것이겠죠?”


가브리엘은 레야를 빤히 쳐다보더니, 다시 나를 보았다. 레야의 질문에 대답해도 되냐는 것이겠지. 내가 긍정해주자 가브리엘의 즉답이 나왔다.


“주인의 의지가 있었기에, 그리 했다.”

“부술 수도 있었을 텐데, 저희의 편의를 봐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헌데. 한 분은 조금 무서운 표정을 짓고 계신데... 제가 무례를 범했을까요?”

“카니앗. 활을 내려라.”


금세 쏠 기세로 아까부터 활을 쥐고 있는 카니앗에게 명령했다.


“그녀는 스키잔과 접촉했던 장로. 일단 섬 주위를 얼려버린 우리를 공격할 의사는 없어 보이니 말이지. 게다가ㅡ”


나는 아까부터 레야라는 여장로을 휘감는 기운을 보았다.


“화살로 쓰러질 상대가 아니다. 상당한 마법을 두르고 있군.”

“하하, 마왕님도 참. 칭찬이 과하시네요.”


내 말을 농담으로 넘긴 레야는 오솔길 쪽을 가리켰다.


“저 길을 통해 같이 걸으며 섬의 전경을 구경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마왕님께서 오신 용무부터 해결하는 것이 좋겠죠. 어떠신가요?”

“이쪽도 딱히 관광을 하러 온 것은 아니니 그렇게 하도록 하지.”

“그럼 위대한 분의 뜻을 받들도록 하죠. 조금 어지러울 수 있답니다?”


레야가 곰방대를 탁 치자 숲이 우리를 향해 쓸려들어오는 것처럼 순식간에 다가왔다. 머리 위로 푸른 잎사귀들이 빠르게 지나가고,


“숲의 지름길이랍니다.”


레야가 그 한마디를 마칠 즈음엔 우리는 어느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섬을 덮은 숲에 가려졌던 작은 왕국의 등장이다.


가브리엘과 스키잔은 문제없이 서있었지만 카니앗은 조금 휘청였다. 레야는 그게 재밌는지 쿡쿡 웃었다.


“어서오세요, 하이엘프의 땅에.”


마을 중앙에 있는 큰 건물을 중심으로 민가가 배치되어 있고, 그 옆에는 숲과 마을을 통하는 강이 흐르고 있었다. 하나의 큰 도시를 축소해 놓은 것 마냥 다양한 용도의 건물들이 존재했고, 거리를 따라 걷는 하이엘프들의 모습들이 보였다.


잡화시장도, 대장간도, 신전으로 보이는 것들도 있다. 바깥세상과 단절되어도 자급자족할 수 있을 만하다. 건축물은 하나하나 오랜 역사를 가진 게 분명하지만 그 세월이 무색하게 영롱한 빛을 띠고 있었다.


소규모긴 하지만 농장도 제대로 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밭에서 일하는 일꾼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그대로 놔두기만 해도 알아서 풍작이 올 것이라는 것처럼. 탐지마법을 사용한 나는 농장 전체에 풍요의 마법이 걸려있다는 걸 알아챘다.


거리를 노니는 아이들 중 하나가 우리를 보더니 옆의 아이에게 귓속말을 했다. 그들의 눈이 하나같이 휘둥그레져있는 걸 본 레야가 인자한 웃음을 지었다.


“이 섬에 이방인이 들어오는 것은 처음이니까요. 신기한 것이겠죠. 섬에서 자라난 저 아이들은 하이엘프 이외의 종족을 처음 보는 거랍니다.”

“마치 당신은 아닌 거라는 말투군요.”


카니앗이 말했다.


“아무리 섬에 뿌리를 내린 저희도 때로는 섬에서 나가야 할 때도 있답니다, 다크엘프 분. 물론 아주 일부로 국한 되지만요.”


레야는 자신의 곰방대를 들어보였다.


“이것도 예전에 동방의 여우에게 받은 물건이죠. 아마 제가 섬 밖의 세계를 제일 많이 본 엘프이지 않을까요? 자, 다른 장로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가시지요.”


여우라 함은 흔히 말하는 여우신을 가리키는 것이겠지. 이쪽 세계에도 그런 요물은 마족의 형태로 존재하고 있는 모양이다.


레야가 중앙회관이라 부른 곳은 무척이나 높은 천장을 가진 석조물이었지만, 사용되는 용도를 생각하면 그럴만도 했다. 섬으로서의 결정을 총괄하는 곳이라 했으니.


회관에 들어서자 네 명의 하이엘프들이 각자 다른 색의 로브를 입고 원형으로 앉아있었다.

무표정인 남자가 둘. 불만스러워하는 얼굴을 한 자가 하나 있었지만 자리에서 제일 먼저 일어선 것은 계속 눈을 감고 있던 남자였다.


“여기까지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런 상황만 아니었다면 여러 가지 여쭈고 싶은 분들도 계시지만 마왕님과의 이야기가 우선입니다.”


말을 계속하며 그의 눈이 차려로 가브리엘과 카니앗을 훑었다. 나머지 장로들도 그를 따라 일어난 것을 보면 아마도 그가 제일 큰 권한을 쥐고 있는 자겠지.


“우선, 이번 교섭에 대한 것은 레야에게 전부 일임하기로 했습니다.”


그는 조금 느릿느릿하게 말했다.


“장로회는 그 결정을 검토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안쪽에서 그녀와 말씀을 나눠보십시오.”


중앙회관의 내부에는 손님을 위해 마련된 듯한 공간이 있었다. 단단한 목재로 만들어진 테이블을 주변으로 우리가 착석하자, 레야는 익숙한 놀림으로 반대쪽 소파에 걸터앉았다.


“그럼 마왕님, 제일 먼저 저희가 의논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그게 뭐냐는 식으로 바라보자 레야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바로, 마족이 저번 인마대전을 인간들에게 패배한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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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해제 +1 19.09.15 456 12 7쪽
67 장로회의 +1 19.09.12 475 10 9쪽
66 항구도시 프냐르 +1 19.09.09 492 11 11쪽
65 짧은 여정의 출발 +1 19.09.08 518 11 9쪽
64 하이엘프 +1 19.09.04 562 12 9쪽
63 사전 준비 +3 19.09.01 554 15 10쪽
62 그들의 이야기 +1 19.08.29 567 12 10쪽
61 신의 사자 +1 19.08.25 569 12 10쪽
60 제물 +1 19.08.22 559 13 9쪽
59 반격 +4 19.08.18 599 13 10쪽
58 승전 +3 19.08.15 620 15 10쪽
57 기폭 +3 19.08.11 571 12 9쪽
56 습격 +2 19.08.08 595 13 9쪽
55 초전 +1 19.08.03 632 13 9쪽
54 군복 +2 19.07.25 612 12 10쪽
53 첫 번째 함락 +1 19.07.22 655 13 10쪽
52 제국의 침공 +1 19.07.18 699 15 9쪽
51 환청 +1 19.07.14 669 14 10쪽
50 아침 +3 19.07.11 751 17 10쪽
49 잃어버린 기억 +2 19.07.06 757 33 9쪽
48 노트북이 고장나서 잠시 휴재합니다 +3 19.06.18 829 12 1쪽
47 빙의 능력자 +1 19.06.06 774 17 9쪽
46 살인 청부업자(11세) +1 19.06.02 818 17 9쪽
45 대(對)인간병기 +1 19.06.01 808 17 11쪽
44 전쟁의 피스 +1 19.05.30 817 17 11쪽
43 밤하늘 +1 19.05.26 878 21 10쪽
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14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56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75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43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22 22 10쪽
37 시찰 +1 19.05.12 1,015 23 9쪽
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74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41 24 9쪽
34 네이아르 백작 +2 19.05.06 1,168 29 10쪽
33 죄의 운반 +2 19.05.05 1,208 29 9쪽
32 유일한 생존자 +7 19.04.25 1,233 32 10쪽
31 앞으로의 연재 공지 및 1권 후기 +3 19.03.25 1,474 21 1쪽
30 모두 죽었다 +4 19.03.25 1,448 35 8쪽
29 피의 연회가 열렸다 +3 19.03.24 1,427 38 10쪽
28 명령을 내리다 +4 19.03.23 1,404 35 8쪽
27 연회는 시작되려고 했다 +2 19.03.23 1,461 37 9쪽
26 선배의 텃세는 통하지 않는다 +2 19.03.22 1,418 34 8쪽
25 한밤중의 불청객이 찾아오다 +6 19.03.20 1,538 36 9쪽
24 이제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3 19.03.20 1,477 36 8쪽
23 금의환향하다 +3 19.03.19 1,544 38 8쪽
22 모두 붉게 물들었다 +4 19.03.18 1,539 37 8쪽
21 던전의 주인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 19.03.17 1,545 37 8쪽
20 한때 사람이었던 것을 만나다 +3 19.03.16 1,577 3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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