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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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9.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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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53,096

작성
19.03.20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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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글자
9쪽

한밤중의 불청객이 찾아오다

DUMMY

나도 등을 돌리고 거실 쪽으로 갔다. 대리석 바닥이 또각또각 울렸다.


“류셀... 이스, 이스는 믿을 만한거지, 그렇지, 류셀?”

“믿을만하게 만들었ㅡ 그럴 예정이다.”


시이나는 나와 이스가 나눈 마의 계약을 모른다. 심성 상 좋게 보지는 않을 듯 하니 섣불리 언급하는 건 자제해야 했다. 예정대로 계획이 흘러가기만 한다면 기껏 손에 넣은 수족이 되는 것이다.


“아직 할 이야기가 남았어, 류셀. 여기는 같이 살지만... 내 분배금은 못 받겠어. 저택을 산 비용은 류셀 게 아니라 내거에서 빼줘. 나는 아직...”


참 고집이 완강한 소녀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섰다. 작은 실내 연못을 둘러싼 폭신폭신해 보이는 소파에 앉아 한동안 누워있을 생각이다.


내가 낮게 중얼거린 말은 아무도 듣지 못했다.


“곧 이곳은 내 것이 된다.”


기사단장은 한밤중에 불현듯 찾아왔다.


조금 망설이더니 정원을 지나 정문으로 향하는 그의 기척은 상시 발동시켜두고 있던 나의 탐지마법에 걸렸다.


수행기사도 없고 단신이다. 갑옷은 기사단장치고는 조금 조촐한 느낌이 있었지만 여러 정보통을 통해 저 놈의 신분은 대략 확인해두었다.


왕국기사단장.


검술을 우대하고 마법을 천시하는 알트레아 왕국에서 검의 실력을 인정받아 국왕을 직접 섬기게 된 왕국기사단의 우두머리다. 무슨 꿍꿍이로 찾아온 건가.


하지만 나는 걱정은 하지 않았다.


그 잡졸 드래곤을 여태 못 잡고 있었으니 왕국기사단에서 나보다 실력이 우위인 놈은 없다는 게 판명되었다. 내가 저 놈을 처리해버린다면 조금 계획이 틀어지긴 하겠지만 말이다.


기사단장이 문간 계단을 오르기도 전에 정문이 활짝 열렸다.

상대가 조금 당황하는 것을 느끼며 나는 말했다.


“이 한밤중에 방문할 생각을 하다니, 내가 알고 있었던 예절은 잘못되어 있었나 보군.”


기사단장은 꽤 젊었다. 실력만으로 오른 것인지, 빽으로 오른 것인지. 하지만 무척 성실해 보이는 놈 같았다.


“... 알아차리고 계셨습니까.”


당황한 것도 잠깐, 기사단장은 평정을 되찾았다.


“류셀 님이라고 들었습니다. 늦은 시각에 방문하게 된 점, 대단히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기사단장은 내게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기사단장이라는 직책에 있으면서 국왕과도 매우 친하게 지내고 있다는 것까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저게 뭘 의미하는지는 알았다. 알트레아 왕국의 톱 중 하나가 내게 고개를 숙인 것이다.


“네가 그렇게까지 감사를 표할 만할 일은 아니었다.”


내 말에도 기사단장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당신이 이번에 해준 건 원래 제가 아니라 국왕이 몸소 왔어야 하는 일입니다. 그걸 대신해 제가 온 점은 재차 사과드립니다.”

“국왕은? 주무시고 계신가?”


기사단장이 화를 낼까, 생각하며 던진 질문이었지만 반응은 전혀 예상 밖이었다.


“...그 사람은 그걸 알면서...! 아, 죄송합니다. 추태를 보였습니다.”


이를 가는 단장을 보며 국왕과 사이좋다고 하는 건 일방적인 관계일까, 라는 생각을 했다.


“단순한 모험자의 퀘스트 처리 건이었다면 당연히 저도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자이언트 드래곤을 쓰러뜨렸습니다. 이건 국익에 관하는 일입니다.”

“왕국이 얻게 될 이익은.”

“성가신 드래곤이 없어졌으니 광맥의 수입원은 열렸습니다. 이제 옛 시절처럼 광부들을 보내 광물을 캐게 할 수 있습니다. 무너져가던 나라 하나를 살리신 겁니다.”

“네 눈에도 그렇게 보였나.”

“...예.”


나는 단장의 눈에 자리 잡은 분노를 보았다. 그 분노가 향하는 건 결국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다.


역시 이 놈은 현 국왕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


“철강은 이 주변에서 그 광맥을 제외하면 흔하지 않습니다. 거래가 끊긴 제국 말고 다른 나라들에도 수요가 많습니다. 제국에 지지 않을 정도의 경제를 발전시키고ㅡ아니, 그보다 우위에 선 최강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놈이 말만 제대로 들어준다면...”


마지막 한 문장은 기사단장이 조용히 중얼거린 거다. 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겠지만 상대가 나라 안타깝다.


“그 놈이라는 건, 현 알트레아 국왕을 말하는 건가?”

“그, 그건... 아닙니다.”

“뭐가 아닌가. 국왕 집권 뒤부터 단기간에 왕국 경제가 쇠퇴한 것은 사실이잖나?”

“그건...”

“부정하지 마라. 바라고 있지, 왕권을?”

“지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그런 소리, 함부로 입에 담아서는ㅡ”


기사단장은 무심코 검에 손을 얹으려다 자신의 허리가 빈 걸 알아차리고 나를 보았다.

내 왼손에는 들린 검에는 왕국기사단의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빈틈투성이군. 그런 능력으로 야심을 품겠다는 건가.”

“저는...”

“계속 부정할 셈인가?”

“하지만... 저는 사리사욕을 위해 왕이 되겠다는 게 아닙니다!”


드디어 단장이 본성을 드러냈다. 일개 모험자에게 말해서는 안 되는 것을 말해버리고 있다.


“단지 시민들이 하루하루 먹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을 뿐입니다!”


나는 단장의 검을 뽑아 목에 들이댔다.


“목숨을 걸고 할 수 있는 말인가? 그런 입에 발린 말이라면 누구라도 할 수 있다.”

“죽이실 거면 죽이십시오. 제 믿음에 흔들림은 없습니다. 그건 뼈저리게 느끼고 있으니까요.”


기사단장의 말에 독기가 차올랐다.


“그 분은 변하셨습니다. 왕위에 오르고 나서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셨습니다. 영애를 납치할 생각이나 하다니...”

“역시 이번 영애 납치 사건의 배후는 국왕인가”

“상대가 류셀 님이니 정직하게 말씀드리죠. 사실입니다.”

“그건 정당하다고 생각했나?”

“대답은 이미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올곧게 나를 똑바로 쳐다보는 시선을 보고 나는 생각했다.


이놈은 예측 가능하다. 나의 체스 피스로 쓸 수 있는 놈이다.


“그렇군.”


더 이상의 대화를 지속할 의미는 없다.


내 눈은 색깔을 바꾸었다.



“맛있네요, 왕국에서 이런 퀄리티를 기대할 수 있을 줄은 몰랐어요.”


스테이크를 두 조각 먹고 나온 이스의 감상이다.


“너, 제국 출신이라고 너무 제국 편만 드는 거 아냐?”


만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시이나가 자연스레 딴지를 걸었다. 그새 친해진 둘을 보며 나도 고기를 씹었다. 적당히 익힌 스테이크는 육즙이 풍부했다.


우리는 꽤 괜찮다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있다. 몸 자체가 마력으로 이루어진 나는 식사를 필요로 하지 않지만 시이나가 한턱 쏜다기에 얼떨결에 온 것에 불과하다.


“별로야?”


스테이크를 질겅질겅 씹고 있자 시이나가 걱정스레 물어왔다.


“난 원래 식사에서 큰 즐거움을 느끼지 않는다. 내게 물어도 곤란해.”


시이나는 여태껏 봤던 것 중에 제일 충격 받은 모습이었다.


“밥 먹는 게 즐겁지 않다고? 류셀은 그럼 무슨 재미로 살아? 맛있는 걸 먹는 게 인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내 생은 그렇게 단조롭지 않아. 음식은 배만 채우면 그만이다.”

“그런...”


전생이나 지금이나 그건 바뀌지 않았다. 음료면 몰라도 뭐갈 먹고 맛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항상 느껴지는 건 잘게 씹힌 음식물이 목구멍을 넘어가는 감촉뿐이다.


게다가 지금은 배를 채울 이유도 없어졌으니 지금은 단순히 소꿉놀이에 어울려주는 것뿐이다.


나는 직원을 불러 와인을 추가로 주문했다. 이름만 다를 뿐, 이세계에서도 주류의 종류는 잔뜩 있는 것 같으니 제일 달콤한 것으로 추천해 달라 했다.


“의외네요. 류셀은 술을 좋아하시나요?”


기품 있게 포크와 나이프를 움직이던 이스가 물었다.


“적당히 취하는 건 나쁘지 않다.”

“겉모습만 보면 아슬아슬하게 술을 마실 수 있는 나이인데 말이죠. 꽤 오랜 취미인 것 같네요.”


직원이 따라준 와인은 노란색이었다.

그걸 살짝 코 쪽으로 가져다대고 냄새를 먼저 음미하고,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이건 좋군.”


내 평이었다.


“안주가 있었으면 더 극상의 맛이겠어.”

“안주? 지금 시킬까?”

“아니. 내가 얘기하는 안주는 그런 게 아니다.”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 방해꾼이 들어온 것이다. 자기 집 마냥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들어오는 사인조 뒤에는 레스토랑 직원이 쩔쩔매며 따라오고 있었다.


남자가 둘, 여자가 하나. 거기에 '어리게 보이는' 남자아이가 껴있다. 리더 격으로 보이는 남자는 금발을 한번 가다듬더니 곧바로 우리 테이블로 향했다. 그의 허리엔 화려한 검이 있었고, 나머지 인원도 고급 장비를 착용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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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노트북이 고장나서 잠시 휴재합니다 +3 19.06.18 830 12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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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 살인 청부업자(11세) +1 19.06.02 818 17 9쪽
45 대(對)인간병기 +1 19.06.01 808 17 11쪽
44 전쟁의 피스 +1 19.05.30 817 17 11쪽
43 밤하늘 +1 19.05.26 878 21 10쪽
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14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56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75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43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23 22 10쪽
37 시찰 +1 19.05.12 1,015 23 9쪽
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74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41 2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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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모두 죽었다 +4 19.03.25 1,448 35 8쪽
29 피의 연회가 열렸다 +3 19.03.24 1,427 3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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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선배의 텃세는 통하지 않는다 +2 19.03.22 1,418 34 8쪽
» 한밤중의 불청객이 찾아오다 +6 19.03.20 1,539 36 9쪽
24 이제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3 19.03.20 1,477 36 8쪽
23 금의환향하다 +3 19.03.19 1,544 38 8쪽
22 모두 붉게 물들었다 +4 19.03.18 1,539 37 8쪽
21 던전의 주인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 19.03.17 1,545 37 8쪽
20 한때 사람이었던 것을 만나다 +3 19.03.16 1,577 3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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