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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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9.07 21:52
연재수 :
3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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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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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8
글자수 :
1,753,096

작성
19.07.18 10:52
조회
698
추천
15
글자
9쪽

제국의 침공

DUMMY

“이거, 류셀이 만든 거예요?”


저택에 도착한 린이 말없이 건넨 옷 꾸러미를 받아든 시이나가 물었다. 검은 색을 입힌 상의와 하의, 코트와 군화까지 해서 한 세트다. 누가 봐도 군복 느낌이 짙게 나는 옷이었다.


“몸에 딱 맞아... 아, 하지만 내 사이즈는 어떻게?”


사무적인 태도를 유지하려던 린도 시이나의 순진한 반응에 조금 표정이 풀어진다.


“그 정도, 늑대사이에는 말하지 않아도 알아. 응?”


린은 시이나가 이상한 표정을 짓고 있는 걸 보고 의문을 띄웠다.


“아, 아니... 린 씨도 제대로 반말할 줄 아시네요... 이스처럼 존댓말만 고집할 줄 알았는데 조금 의외라고나 할까...”

“실례했습니다. 시이나 씨는 왠지 모르게 여동생 같은 느낌이 들어서 잠시 본분을 망각했네요. 작전 지령서는 이쪽에 있으니 저는 그럼 이만ㅡ”


다시 말투를 딱딱하게 고친 린이 돌아서려는 찰나,


“그, 그런게 아니에요! 방금처럼 편하게 불러주시면 안될까요?”


시이나가 다급하게 린을 멈춰 세우고 있었다.


“죄송해요. 요즘 자꾸 생각 없이 말을 내뱉는 것 같아요...”


풀이 잔뜩 죽어 고개를 떨어뜨리며 시이나가 말을 흐렸다. 검은 단발 사이로 쫑긋 솟은 귀는 린의 것과 흡사했지만, 꼬리는 주인의 기분을 그대로 반영하는지 힘없이 처져있다.


“류셀이 저한테 화나 있는 것도 분명... 그런 이유겠죠. 저는 류셀에게 받기만 했지 스스로 할 줄 아는 건 아무것도 없으니까요. 린 씨나 가름 씨 같은 분들이 있는데 저 같은 게 부대의 지휘를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들고.”

“...”


린이 듣기로는 이 소녀는 그녀의 보스ㅡ류셀 블레이크의 첫 번째 조력자였다.


이 세계의 인간 중 제일 먼저 그를 이름으로 부르는 게 허락됐던 운 좋은 웨어울프 소녀.


그 이상, 그 이하의 감정은 없었지만 시이나의 말에는 사람을 돌아보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너무나 불안정해서 잠시 눈을 뗀 사이 부서져버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품게 하는 무언가다.


린이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 시이나가 방안으로 손짓했다.


“저는 이런 게 처음이에요, 린 씨. 그, 몇 가지 물어볼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은데...”

“좋죠. 원래는 지령서와 군복을 전달하는 게 끝이었지만.”


린의 입가에는 쓴웃음이 걸려있었다.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정도까지는 알려줄게. 시이나 양. 그 대신 나한테 빚 하나 진 거야.”


린이 시이나의 방에서 나온 건 그로부터 두 시간이나 지난 후였다. 작전은 지령서대로 움직이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것이었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어느 소년에 대해 이야기하는데 써버렸다.


사랑에 빠진 두 소녀가 만나서 할 이야기는 결국 하나밖에 없는 것이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연적을 만나버렸다고 린은 생각했다.


“린 씨.”


뒤에서 들린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깨닫자마자 조금 달아올랐던 린의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그래서, 시이나 씨의 상태는 어떻던가요?”

“당신에게 보고할 의무는 없습니다.”


린은 푸른 머리를 한차례 넘기며 복도 맞은편에 서있는 은발의 소녀를 노려보았다. 린이 그러든지 말든지 이스의 입에 걸린 은은한 미소는 전혀 흐트러지지 않는다. 상대가 자신을 향해 품은 어두운 감정을 전부 알면서도 개의치 않는다는 태도다.


“정말 저한테는 쌀쌀하시네요, 린 씨. 시이나 씨에겐 그렇게 상냥하게 언니 역할을 해줬는데 말이에요.”

“쌀쌀한 게 싫으면 뜨겁게 해드리겠습니다, 이스.”


린의 눈동자가 빛을 내며 푸른 화염이 몸에서 넘실거렸다.


“분노네요. 제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로 이 정도의 분노를 품다니. 린 씨가 류셀 씨를 따르는 이유는 역시 그런 이유인가요?”


압도적인 힘을 앞에 두고서도 이스는 전혀 주눅들거나하지 않았다. 알고 있는 것이다. 린은 자신을 해칠 수 없다는 것을.


제국의 내부 정보를 훤히 꿰고 있다는 이용가치 외에도 류셀의 계획의 1익을 담당하고 있는 이상, 같은 편인 린은 이스에게 손가락 하나 댈 수 없었다.


공기를 뜨겁게 달구던 열기가 없어지고, 린은 말했다.


“자신의 나라를 배신해놓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의 인간은 역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무슨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보스가 당신의 뜻대로 이용당하게 두지는 않을 거예요.”

“그건 안심하세요, 린 씨. 저는 처음부터 배신하지 않았으니까요.”


이스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등을 돌렸다.


“잘 친해지기는 어려운 것 같지만 시이나 씨를 잘 다독여준 건 감사할게요, 린 씨. 날도 곧 저물어 가는데 슬슬 광맥에 돌아가 보시는 게 좋겠네요. 이제 곧 제국군이 국경을 밟을 테니까요.”


린은 멀어져가는 이스의 발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고 나서도 그 자리에 가만히 서있었다.


“정말... 기분 나쁜 여자.”




같은 시각, 제국군의 선봉은 국경을 넘고 있었다. 그 수는 자그마치 30만. 적의 침공을 대비해 국경에도 군이 배치되어있었지만, 나날이 철저히 훈련을 받아온 제국군과 달리 제대로 체계가 잡혀있지 않은 왕국군이 당해낼 리가 없다.


군이 진군할수록 적병의 시체가 뒤로 즐비하게 쌓여갔다.


“싱겁네요. 이런 걸 전쟁이라고 불러도 되는 겁니까?”


부관이 던진 농담에도 바르포르도 중장은 웃지 않았다. 말의 고삐를 쥔 채 앞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조금 닥쳐.”


싸늘한 말에 부관이 입을 즉시 다물었다.


창백한 안색의 여성이 사령관으로 불리는 데는 전부 이유가 있었다. 제국이 무너지지 않고 막강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자랑할 수 있는 건 이 여성이 제국을 가로막는 적을 전부 자진해서 처리해왔기 때문이다. 어느새 그녀에겐 제국의 번견이라는 별명까지 붙어있었다.


“황제는 허투로 경계심을 보이실 분이 아니야. 그 분이 이변을 느꼈다면 이번 전쟁은 조금 힘들지도 몰라. 그걸 어떻게든 승리로 이끄는 게 우리의 역할.”


바르포르도가 탄 말이 푸르륵 하고 울었다. 자신보다 앞서 진군하는 병들을 힐끗 보더니 그녀는 요염하게 검지를 입 안에 집어넣고 자신의 날카로운 송곳니를 만지작거렸다.


그들 앞으로 펼쳐진 넓은 평원지대에 수수께끼의 구멍이 거대하게 나있었다.


“저거, 원래 있었니?”

“저는 잘... 정보국에게 연락해보시겠습니까?”


부관으로부터 만족스럽지 않은 답변을 들은 바르포르도는 고개를 흔들었다.


“안 봐도 뻔해. 황제가 염려하시는 게 저거야. 선봉에게 기습에 주의하라고 전달해. 내 예상으로는...”


말을 늘이며 잠시 감았다 뜬 눈은 인간의 것이 아니다.


“저건 혼자 한 거야. 고위 공격마법을 쓴 거겠지. 저런 거에 직격으로 맞아대면 30만이 순식간에 3천이 돼버려.”

“중장님, 예의 그 정보가 사실이라는... 겁니까? 단독으로 드래곤을 쓰러뜨렸다는 그 소년... 저는 아직도 잘 믿기지는 않습니다. 정말로 그런 괴물이 적측에 있다면...”

“그래? 나는 믿을 수 있을 것 같아.”


바르포르도는 부관의 갈등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처럼 작게 하품을 하고, 점점 가까워지는 왕국의 첫 번째 성을 가리켰다. 지금은 지그문드 폰 알레인의 신정권에 숙청된 지 오래인 어느 남작의 성이다. 국경에서 제일 가까운 성인만큼 첫 번째로 함락될 예정이다.


“성안에서 방어전을 벌일 생각이야. 병력을 내보내봤자 시체만 늘어난다는 걸 알고 있는 거겠지.”

“보통이라면 공성전이 되겠군요. 충차를 준비할까요?”


바르포르도가 고개를 젓는다.


“아니. 폭격부대로 먼저 선제타격을 가하고 필요한 인원만 투입해.”

“민간시설도 포함합니까?”

“원래 같았으면 나중을 위해 쓸 만할 시설은 보존시켜두고 싶지만 지금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지. 사람도 건물도 전부 가루로 만들어버리렴.”


바르포로드의 명령이 하달되고, 이내 로브를 뒤집어쓴 군인들이 대열에서 빠져나와 말에 박차를 가해 빠르게 앞으로 나아갔다.


“황제의 명령은 제국에 거스르는 적을 처리하라는 것. 전부 다 죽이면 안 된다고는 말씀하지 않으셨어. 섬멸전이야. 그래도 1할 정도는 끈질기게 살아남을 테니 괜찮겠지.”


마법사들이 폭격마법 준비에 한창인걸 보며 바르포르도는 그런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그녀의 직할 여단 소속인 저들은 전원 마족이다. 수십이 모여 쏘는 폭격 마법에 버틸 수 있는 성은 이제까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잠깐 졸았을까, 대기 중의 마나가 한 지점에 모여드는 걸 본능적으로 느끼고 고개를 들자 마도병들이 치켜든 지팡이에 붉은 빛이 깃들고 있다.


“중장님. 지시를.”


바르포르도는 자신의 말을 기다리고 있는 마도병들을 향해 손을 크게 위로 치켜들었다. 그 손이 내려가며 의욕 없는 목소리가 나왔다.


“발사.”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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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

  • 작성자
    Lv.99 변진섭
    작성일
    22.11.08 21:52
    No. 1

    여기 주인공은 화경ㅡ현경ㅡ생사경ㅡ자연경ㅡ초신경...
    이중에서 어느 경지일까
    아니면 아직 남은 두개 경지에...ㅋㅋ
    잘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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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 신의 사자 +1 19.08.25 569 12 10쪽
60 제물 +1 19.08.22 559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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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승전 +3 19.08.15 620 15 10쪽
57 기폭 +3 19.08.11 571 12 9쪽
56 습격 +2 19.08.08 595 13 9쪽
55 초전 +1 19.08.03 631 13 9쪽
54 군복 +2 19.07.25 611 12 10쪽
53 첫 번째 함락 +1 19.07.22 654 13 10쪽
» 제국의 침공 +1 19.07.18 699 15 9쪽
51 환청 +1 19.07.14 669 14 10쪽
50 아침 +3 19.07.11 751 17 10쪽
49 잃어버린 기억 +2 19.07.06 756 33 9쪽
48 노트북이 고장나서 잠시 휴재합니다 +3 19.06.18 829 12 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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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대(對)인간병기 +1 19.06.01 808 17 11쪽
44 전쟁의 피스 +1 19.05.30 816 17 11쪽
43 밤하늘 +1 19.05.26 877 21 10쪽
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14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56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74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42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22 22 10쪽
37 시찰 +1 19.05.12 1,014 23 9쪽
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74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40 24 9쪽
34 네이아르 백작 +2 19.05.06 1,167 29 10쪽
33 죄의 운반 +2 19.05.05 1,208 29 9쪽
32 유일한 생존자 +7 19.04.25 1,232 32 10쪽
31 앞으로의 연재 공지 및 1권 후기 +3 19.03.25 1,474 21 1쪽
30 모두 죽었다 +4 19.03.25 1,447 35 8쪽
29 피의 연회가 열렸다 +3 19.03.24 1,426 38 10쪽
28 명령을 내리다 +4 19.03.23 1,403 35 8쪽
27 연회는 시작되려고 했다 +2 19.03.23 1,461 37 9쪽
26 선배의 텃세는 통하지 않는다 +2 19.03.22 1,418 34 8쪽
25 한밤중의 불청객이 찾아오다 +6 19.03.20 1,538 36 9쪽
24 이제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3 19.03.20 1,477 36 8쪽
23 금의환향하다 +3 19.03.19 1,543 38 8쪽
22 모두 붉게 물들었다 +4 19.03.18 1,538 37 8쪽
21 던전의 주인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 19.03.17 1,545 37 8쪽
20 한때 사람이었던 것을 만나다 +3 19.03.16 1,576 3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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