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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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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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08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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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격

DUMMY

“밑에 놈들에게 약탈은 적당히 해두라고 전해.”


바르포르도는 왕국의 시내를 적당히 둘러보며 그렇게 명령했다. 깨끗했던 도시가 불길에 휩싸이고 비명소리와 함성이 끊이지 않는다.


“너무 이런 곳에서 시간을 끌면 그 할아범이 나중에 시끄러워. 죽일 거면 빨리 죽이고 가야지.”


전장에 직접 나가는 걸 좋아하는 바르포르도의 성격상 이번에 30만의 대군을 지휘하는 건 그녀가 아니었다. 고지식한 장군이 따로 총지휘관을 맡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계급도 중장. 하나하나 이래라 저래라 명령을 들을 정도의 경력이 아니다.


아무리 총지휘관이 따로 있다지만 바르포르도가 출전한 이상 이 전쟁의 판도는 그녀의 손에 의해 결정된다. 베르돌트 시를 함락하고 조금만 있으면 그녀의 최종 목표인 왕성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연달아 굉음이 울린 건 그런 생각에 젖어있을 때였다.


“뭐지?”


소리가 들린 곳은 멀어서 보이지 않았지만 아군이 먼저 전진하고 있는 곳이다. 상정 외의 사태를 생각하며 바르포르도는 우선 마도부대의 오폭 여부부터 확인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아무도 마법을 발동하지 않았다는 보고 뿐.


“왕국군이 폭격? 그럴 리가.”


아직도 구식 전투방식을 고수하고 있는 왕국이 폭격을 해낼 여력이 있을 리 없다. 만에 하나 그럴 수 있었다면 성문이 함락되기 전에 공격을 퍼부었을 것이다.


“중장님, 척후부대와 연락이 되지 않습니다!”


불안한 보고가 계속된다. 저 앞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가. 생각할 수 있는 건 역시 하나밖에 없다. 이 승자가 뻔한 전쟁에서 이변을 일으킬 수 있는 건 존재 자체가 이질적인 하나의 소년이다.


이어지는 폭음에 제국군의 정예들도 동요하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한 거지.”



주민들이 전부 대피한 탓에 비어있는 민가에 몸을 숨기고 있던 시이나는 수많은 생각이 오가는 사이에서 문득 류셀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겉으로 보면 무기라는 걸 전혀 알지 못할 정도로 기묘하게 생긴 그의 발명품은 살인을 무서울 정도로 쉽게 만들어주었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었다.


사거리가 길지 않다는 것이다. 유효사거리는 50미터. 그마저도 여덟번을 쏘고 나면 탄피를 빼고 새로운 탄을 채워 넣는 작업을 해야 한다.


장기적으론 그런 단점을 보완할 방법이 있다는 뉘앙스였지만 지금은 당장 있는 장비로 대처할 수밖에 없었다.


시이나의 마음을 무겁게 했던 건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제이드의 도움으로 왕국의 아인들 중에서 전투에 참가할 지원자를 모았으나 그 숫자는 100을 넘지 못했다. 국가를 없앨 기세로 쳐들어온 제국군과 정면으로 맞붙기엔 역부족.


그래서 류셀이 제안한 것이 바로 '시가전'이라는 것이었다. 거리를 지나는 제국군이 방심한 틈을 노려 공격을 가하고 잽싸게 도망가서 같은 짓을 반복한다는 작전이다.


그게 말처럼 잘 될까 시이나도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었지만 그 자그마한 불신은 눈 녹듯 없어지는 중이었다.


“준비가 된 사람은 바로 쏴! 두 차례만 더 쏘고 뒤로 후퇴할거니까!”


제국군의 병사 한 무더기를 걸레짝으로 만들어버리고 날렵하게 장전을 하고 있는 아인들에게 시이나가 외쳤다.


일개 병사가 체인메일까지 입고 있을 정도로 장비체계가 뛰어난 제국군이었지만 어느 갑옷이든 너무나도 손쉽게 관통해버리는 이 무기 앞에선 뼈를 추리지 못했다. 방아쇠를 당길때 나는 탕, 하는 큰 소리도 그들의 공포심을 부추기는데 한몫했을 것이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날아오는, 미지의 무기에 의한 공격. 어리둥절해있는 사이 옆에서는 자꾸만 아군이 외마디 소리를 내며 쓰러진다. 괜찮냐며 부상자를 부축하려던 자도 순식간에 몸의 균형을 잃고 가도에 나뒹군다. 자신의 동료들이 뭐에 당한지도 모르니 혼란이 빠르게 적을 잠식하고 있었다.


열을 갖추어 전진하던 역전의 병사들이 천둥치는 걸 처음 들은 아이마냥 두려움에 떨며 동요한다.


적이 그러건 말건, 아인들은 두세 명씩 창문을 차지하고 자세를 낮춰 장전을 마친다. 재빨리 고개를 내밀어 제각기 타깃을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겨대자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병사들이 쓰러져갔다.


“시이나.”


누가 부르나 싶어 돌아보니 제이드가 서있었다. 한 층 위의 아인들의 지휘를 맡겼던 제이드가 왜 내려와 있는 것인가.


“이대로 여기서 버티는 것도 괜찮지 않아? 저 놈들,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나자빠지고 있잖냐.”

“그건 안돼.”


시이나는 강하게 부정했다.


“숫자로 밀어붙이면 절대 우리가 이길 수 없어. 적에는 성을 반파시킨 마법사 부대도 있잖아. 너무 시간을 지체해서 이 건물이 포위당하기라도 하면 사이좋게 날아갈 거라구. 탄약을 장소마다 나눠서 배치해 둔 것도 그 이유야.”

“그것도 그런가...”


제이드는 납득한 소리를 냈다.


“작전대로 왕도 입구까지 후퇴하는 게 우리 목표야. 적의 숫자를 계속 조금이라도 줄이면서. 이제 슬슬 움직이자. 남은 탄약을 챙겨서 다음 장소로 이동해.”


그렇게 말하면서도 시이나는 자신이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 라는 생각이 드는 걸 멈출 수 없었다. 제국군이 겁을 먹고 후퇴해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는다면 본인 휘하의 병력만으로 이겨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


류셀은 자신에게 이번 일을 맡기며 별다른 말은 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무능하다고 생각되어지는 건 죽어도 싫었다. 가능하면 주어진 것만으로 이 사태를 어떻게든 해결해보일 것이다.


시이나는 밖의 기척이 잦아든 것으로 적이 잠시 후퇴했다는 걸 확인하고 생각에 잠겼다.


제일 큰 위협인 마법사 부대의 위치는 이제 앞으로 옮겨질 것이다. 공성전에서 쓰일 정도의 위력을 가진 마법은 절대 홀로 하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으니 골고루 분산되어 배치될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다음 공격은 선봉을 노리는 게 아니라 선행 부대가 지나가는 것을 기다려 제일 후방을 노리면 된다. 그렇게 하면 폭사하는 일 없이 제국군의 사기와 전력을 깎아갈 수 있다.


“제일 골칫거리인 그 부대만 없앨 수 있다면 훨씬 일이 편해질 텐데.”


끙끙대며 고민하던 시이나의 눈에 탄약 상자를 들고 이동하는 래빗맨이 밟혔다.


“그거다!”



“피해보고 드립니다. 432명이 사망. 200여명이 중상을 입었습니다. 그리고 수습한 일부 시신을 확인해본 결과...”


부관이 잠시 뜸을 들였다.


“하나같이 몸에 구멍이 뚫려있었습니다.”

“구멍?”


바르포르도는 말에서 내려 직접 병사의 시체를 확인해보았다. 명치 부근에 작은 구멍이 하나. 뒤로는 그것보다 훨씬 큰 구멍이 뚫려있다.


“큰 소리가 나면서 아군이 쓰러졌다고 합니다. 왕국이 비밀리에 개발한 병기가 아닐지...”

“이걸 저지른 놈들은?”

“길목의 민가에 잠복하고 있었습니다. 저희의 발을 묶는 게 목적이라면 아직 그 부근에ㅡ”

“아니, 놈들은 이미 그곳엔 없어.”


바르포르도는 당연한 것처럼 잘라 말했다.


“나라면 그렇게 했을 테지. 위치가 발각되면 폭격에 당할게 뻔한데 그 자리에 그대로 있을 가능성은 제로야. 게릴라전을 벌일 생각인거겠지.”

“그럼 진로를 변경하시겠습니까?”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이번은 그럴 수 없겠는걸. 이만한 숫자의 병력이 기습 한 번에 꼬리를 말았다는 소문이라도 퍼지면 어떻게 될 것 같아?”

“그건...”


부관이 조용해진다.


“그리고 진로를 바꾸면 너무 진군 속도가 느려져. 우리가 짠 작전표를 전부 갈아엎을 수는 없지. 사람 몸에 저런 구멍을 내버리는 무기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도 왕성을 차지하면 전부 알게 될 비밀이야.”


수백의 아군을 저세상으로 보내버린 무기. 보통이라면 미지의 것에 대해 두려움을 품겠지만 바르포르도는 오히려 흥미가 생겼다고나 할까, 의욕이 보일 정도였다.


“왕국은 저런 무기가 있으면서 왜 지금까지 쓰지 않았던 걸까요?”


도통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부관이 묻는다.


“자잘한 전투의 승패는 중요하지 않다는 거야. 결과에 대한 확신이 있으니 몇 만이 죽어나가든 크게 상관없다는 거야. 저쪽에도 단단히 미쳐있는 놈이 하나 있다는 건 이제 확실해졌어.”


국가와 국가 간의 전쟁을 전략게임이상으로 보지 않는 자가 말을 움직이고 있다. 국민도 군도 그의 앞에서는 체스판에 놓인 단순한 말일 뿐이다. 맛보기라도 하라는 든 지금 보인 것은 실제 패의 극히 일부일 뿐이겠지.


“뭘 해주나 싶었더니 꽤 재미있는 수를 두었네, 그는. 병사 반절이 날아갈 줄 알았는데 다른 꿍꿍이가 있는 걸까.”


얼굴도 모르는 소년이 저 멀리 보이는 것 같아 바르포르도는 손을 뻗었다.


“이번 전쟁은 역시 재밌어질 것 같아. 예정대로 이대로 계속 전진해. 제국군이 아닌 자는 확인하는 즉시 바로 죽여 버려. 다음 수는 어떻게 나오는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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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 제물 +1 19.08.22 559 13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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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 승전 +3 19.08.15 619 15 10쪽
57 기폭 +3 19.08.11 571 12 9쪽
» 습격 +2 19.08.08 595 13 9쪽
55 초전 +1 19.08.03 631 13 9쪽
54 군복 +2 19.07.25 611 12 10쪽
53 첫 번째 함락 +1 19.07.22 654 13 10쪽
52 제국의 침공 +1 19.07.18 698 15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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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대(對)인간병기 +1 19.06.01 808 17 11쪽
44 전쟁의 피스 +1 19.05.30 816 17 11쪽
43 밤하늘 +1 19.05.26 877 21 10쪽
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14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56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74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42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22 22 10쪽
37 시찰 +1 19.05.12 1,014 23 9쪽
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73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40 24 9쪽
34 네이아르 백작 +2 19.05.06 1,167 29 10쪽
33 죄의 운반 +2 19.05.05 1,208 2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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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피의 연회가 열렸다 +3 19.03.24 1,426 3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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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이제 돈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3 19.03.20 1,476 36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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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모두 붉게 물들었다 +4 19.03.18 1,538 37 8쪽
21 던전의 주인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 19.03.17 1,545 37 8쪽
20 한때 사람이었던 것을 만나다 +3 19.03.16 1,576 38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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