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제가 보는 눈이 없었나 보군요. 다크엘프란 부류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는 짐승이었던 건가요? 지금 누구에게 말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가요?!”
카니앗의 몸을 바람이 쉬익 소리를 내며 휘감고 있었다.
과연 바람의 정령. 그 이름이 아깝지 않은 마법이다. 무해한 공기가 날카로운 흐름을 따라 움직이게 해 정령만이 쓸 수 있는 5대원소를 사용한 원시마법을 잘 제어하고 있다.
“대답하세요!”
스키잔이 마음만 먹으면 카니앗의 얇은 목은 떨어진다. 바람을 응축하고 칼날로 만들어 목표를 절단하는 건 아무 일도 아닌 것이다.
“종복인 주제에 어째서 주인에게 그런 태도를 보이는 겁니까!”
“아직 완전히 주인이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뭐...라고요?”
스키잔이 노기에 몸을 떨었지만 카니앗은 눈 하나도 깜빡이지 않고 말했다.
“이 분이 마왕으로 강림했다는 건 이해했습니다. 그 강대한 힘에는 경외심도 품고 있습니다. 하지만 단지 마왕이라는 이유만으로 제 충성을 얻을 순 없습니다.”
“마족의 왕을... 거부한다는 건가요?”
“아까 본인이 말하지 않았습니까, 겉치레보다 중요한 건 알맹이라고. 정녕 마족을 이끌기에 합당한 왕인지의 여부는 그 알맹이를 봐야 알 수 있는 겁니다.”
“이... 상급마족이라고는 해도 엘프 주제에...!”
일촉즉발로 치닫는 분위기다.
“하, 크큭. 흐.”
내 웃음소리가 제9계층을 울렸다. 깜짝 놀란 스키잔은 화를 내다 말고 나를 보았다.
“재미있어,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재미있는 피스를 하나 주워왔군, 스키잔.”
“... 송구합니다.”
성대하게 웃어재끼던 나는 차가운 미소를 머금은 채 아래를 향해 손가락을 까딱였다.
“지금 내 앞에 서 있는 네게 걸린 목숨은 하나둘만의 것이 아니다. 200명의 다크엘프 전원의 존속이 걸린 것이다. 카니앗, 그럼에도 너는 도박을 하고 싶은 것이군?”
“큰 도박에 앞서 조건을 확인하고 싶을 뿐입니다.”
“좋지.”
내가 손을 대충 휘두르는 것으로 스키잔의 마법은 힘을 잃고 흩어졌다.
“정확히 무엇을 알고 싶나?”
카니앗은 스스럼없이 말했다.
“우선 마왕님에 대한 것입니다. 어째서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까?”
“이상한 것을 물어보는군. 내가 인간이 아니라는 건 조금 자세히 보면 알 수 있을 터. 다크엘프는 마법을 쓸 수 있지 않나?”
“그렇습니다. 저 또한 5급 마법까지 사용할 수 있습니다. 겉모습으로 헷갈릴 무지몽매한 자는 서리거인밖에 없을 것입니다.”
사실 드래곤 중에서도 하나 있었지.
“허나 제가 알고자 하는 건 그런 게 아닙니다. 굳이 인간으로 의태한 것은 의미가 있습니까?”
“잘 모르겠군. 나는 마왕으로서 강림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내 태생에 대한 것도 몰라. 그건 스키잔이 증명해줄 수 있다.”
꽤 솔직하게 말했지만 카니앗은 끈질기게 물었다.
“그런 것 치고는 꽤 지식이 많아 보입니다. 지금 가지고 계신 지식은 어떻게 습득하신 겁니까?”
“같은 대답을 돌려줄 수밖에 없겠군.”
“그렇습니까. 마왕님의 목표는 마족의 부흥입니까?”
나는 그 대목에서 이해했다. 어째서 카니앗이 내 겉모습에 연연하는 지를. 내가 인족에게 마음이 있는 배신자인지, 진심으로 마족을 위하는 마왕인지 알기 위해 시험하는 것이다.
“진실을 듣고 싶나?”
“부디.”
나는 잠시 가면을 벗어던지고 표정을 바꿨다.
“나는 마족이다. 마족인 나는 인족이 만든 사회에서 어깨를 피고 살아갈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러니 마족이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는 내게 있어서도 득이 된다. 이 정도면 이해는 일치하고 있다고 본다. 스키잔이나 다른 마족이 나를 구세주라고 떠받들어주는 건 좋지만, 사실은 대의 같은 게 아니라 득실을 따져서 판단했을 뿐이야. 이런 말을 들으면 실망할지도 모르겠군.”
“그렇지 않습니다!”
듣고 있던 스키잔이 크게 부정했다.
“마왕님은 너무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계십니다! 핍박받는 마족을 위해서 하신 일들은 류셀님이 아니라면 아무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그렇게 말해주니 고맙군.”
카니앗은 스키잔과 나를 뻔히 바라보았다. 그 속내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궁금해졌을 때, 다른 질문이 날아들었다.
“하나 더 물어도 되겠습니까. 서로 다른 종족을 통합해 만든 마왕군을 어떻게 운용할 계획이십니까?”
“그건 간단하다. 네가 아까 언급한 식단의 차이로 인한 트러블은 어디에서나 발생하지. 그걸 개선하려면 여러 식단을 동시에 쓰면 된다.”
“말은 쉽습니다. 그걸 어떻게 실현시키실 수 있습니까?”
공직자 토론회에 나온 기분이었지만 나는 최대한 성실히 답변했다.
“이미 자본의 준비는 되어있다. 너, 또 이런 걸 물어볼 생각이었지? 언제까지나 이런 곳에서 주둔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그에 대한 답변도 같이 하지. 준비는 전부 되어 있다. 나라 통째로 말이야.”
“나라... 라고 하셨습니까?”
믿을 수 없다는 어조의 말에 내가 나름 공들여 달성한 최근의 성과를 늘어놓는다.
“들어가서 점거만 할 수 있게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다. 마족의 국가가 탄생한다고 하면 기뻐할 줄 알았다만.”
“지금 공식적으로 마족이 지배계층으로 있는 나라는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설마 벌써ㅡ”
카니앗은 혼자 답을 찾았는지 말을 삼켰다.
“알트레아 왕국의 국왕은 내 허수아비다.”
“허수... 아비?”
“너도 알고 있겠지. 아까 보여준 이거다.”
나는 마왕의 능력ㅡ마안을 발동했다.
“본래 그건 하급 마족에게만 통하는 게... 인간에게 쓰셨단 말입니까?”
“그렇다. 국왕은 암살당했고, 내 허수아비가 통치 중이다. 방법은 둘째 치고, 귀찮은 놈들은 이미 전부 숙청했다. 멍청한 왕국민 놈들. 신나서 귀족이라면 아무나 처형중이다.”
카니앗의 표정이 조금 풀어지는 게 보였다.
“그러면 바로 마족의 나라라고 공표하실 생각입니까?”
“그건 어리석은 행위다. 바로 인족 연합군의 융단폭격을 맞게 되겠지. 마족의 나라를 공표하는 건 성가신 이웃국가를 해결한 뒤다.”
“제국... 말입니까.”
“그래, 제국이다. 그 군사력은 위협이다. 곧 전쟁도 벌어질 테니 말이야. 유일하게 살아남은 왕녀가 제국으로 망명한지도 꽤 됐으니, 곧 폭군으로부터 이웃국가를 구한다는 대의명분을 가지고 침공해오겠지.”
“수상한 움직임이 보인다는 보고가 있었는데 그런 것이었습니까...”
상대가 혼자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며 나는 말을 계속했다.
“인족의 싸움이라고 등한시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아직 완전히 힘을 키우지 못했다. 마음을 편히 놓고 있으면 이때까지처럼 일방적인 싸움으로 지게 된다. 하지만 참 잘된 일이 있다고 한다면 죽은 국왕이 제국과의 모든 교류를 끊었다는 것이다. 그걸 이용한다.”
대다수에게 숨기고 있던 정보를 카니앗에게 말할까 고민하는 것도 잠시, 나는 생각을 굳혔다. 족장의 딸이라는 이름의 지위도 있는데다 머리도 잘 돌아가는 다크엘프 소녀. 내 수족으로 쓰기에 부족함이 없다.
“남은 왕국의 군대를 소모품으로 써서 수도 바로 근처까지 유인하고, 제국군을 전멸시키는 거다. 괜한 의심을 사지 않도록 왕국에 남아있는 마족들을 써서 말이지.”
“그들만으로 제국의 군대를 무찌를 수 있겠습니까?”
“그럴 리가. 직접 보여주는 게 빠른가.”
손가락을 딱, 하고 튕기자 문이 열리고 내 새로운 부하가 들어왔다. 카니앗이 경계하지만 나와 스키잔은 친구를 맞는 것처럼 그것이 들어오는 걸 보았다.
큰 개의 형상에 뜨겁게 불타는 불꽃을 두른 마족의 입에는 숯덩이가 된 인간이 물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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