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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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9.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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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6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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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밤하늘

DUMMY

집에 도착한 우리 3인조를 맞아준 건 다름 아닌 이스였다.


“어라 류셀 씨, 오늘은 손님도 함께인가요?”

“기르는 강아지가 반항기가 와서 말 잘 듣는 애완동물 두 마리를 데려왔다.”

“푸흡, 류셀 씨도 참.”


이스는 손을 내저으며 웃다가 내가 아무런 반응이 없는 걸 보고 “에, 정말인가요?”라며 정색했다.


“반은 농담이지만 나머지는 진실이다. 둘 다 개과의 마족이니까.”

“류셀 씨는 강아지를 참 좋아하나 봐요. 한분씩 소개받을 수 있을까요?”

“이쪽은 린. 옆은 가름이라고 한다. 너희들은 이스에 대한 걸 알고 있겠지.”

“물론이죠, 보스.”


가름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스에게 악수를 건넸다.


“이야기 많이 들었어. 보스를 잘 보좌해주고 있다지? 아직 어린데 장하네.”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뿐이에요. 아, 가름 씨라고 하셨죠. 특이한 이름이네요.”


이스는 거리낌 없이 악수를 받고 가름에게 싱긋 웃어 보이더니 고개를 린에게 돌렸다.


“린 씨도 잘 부탁해요.”

“... 그래요.”


가름과는 정반대인 무미건조한 반응이었지만 이스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모양이었다. 단순히 낯을 가리는 거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자, 여기서 서계시지 말고 빨리 들어오세요. 밖은 쌀쌀하다고요.”

“이스. 시이나는 외출한 건가.”


탐지마법으로 저택 내부에 시이나의 반응이 없다는 걸 확인한 내가 물었다.


“글쎄요... 요새 기운이 없어 보이던데 바람이라도 쐬러 간 걸까요?”

“그런가. 둘을 각자 빈방으로 안내해줘라. 한동안 여기서 같이 살 예정이다.”

“그건 좋은 소식이네요. 다시 저택이 떠들썩해지겠어요. 두 분, 그럼 이쪽으로 와주세요.”


그렇게 둘이 방을 배정받고 30분 뒤, 나는 아까 있었던 린의 마력이 폭주할 뻔했던 사건을 포함해 가름과 단둘이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역시 린은 인간을 상대하는 걸 아직 꺼림칙해하고 있는 건가.”

“그렇습니다, 보스. 아까 그 아가씨와의 짧은 대화를 들어보면 누구라도 한방에 알 수 있겠죠.”


즉각 가름이 답한다. 나는 짧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에게는 마의 계약이 걸려있으니 내 이해에 반하는 행동을 하지 못해. 그건 린도 알고 있을 터다. 이해는 하지만 납득을 하지 못할 정도로 감정의 골이 깊다는 건가.”

“그도 그럴게, 누님은 인간계에 큰 피해를 끼치지 않았음에도 발할라와 폴크방의 인간 전사들... 즉 에인헤랴르에게 적대 당했으니 어쩔 수 없겠죠.”


마치 어제의 아침뉴스를 말하는 것 같았다.


“라그나로크는 까마득한 옛날일 텐데, 막 깨어난 너희에겐 엊그제 같다는 거겠지.”

“예. 잊으려고 해도 잊을 수 있겠습니까. 저희들의 사활을 걸고 싸운 전투였으니까요. 신이랍시고 높은 자리에 앉아서 모두를 우롱하는 놈들을 용서할 수 없었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고 말입니다.”


가름은 독한 럼주가 들어있던 술잔을 단숨에 비웠다.


“저는 지옥문을 지키는 번견. 하지만 지옥에 들어가는 자들을 보면서 어느 날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지옥에 있어서는 안 될 자들까지 이런 곳에 끌려오는 구나, 라고. 하지만 제겐 아무런 힘이 없었습니다. 심판을 내리는 건 신들이니 말이죠. 정작 그 신들을 심판할 수 있는 건 아무도 없는데 참 웃긴 이야기 아니겠습니까.”


내가 잔 가득 술을 따라주자 가름이 고개를 숙이며 다시 채워진 술잔을 달빛에 비춰보았다. 그건 필사적으로 잃어버린 것을 찾으려는 것처럼도 보였다.


“라그나로크에선 누님도 저도 죽었습니다. 다시 목숨을 얻고 나서 보스께서 알려주셔서 안 사실이지만 결국엔 살아남은 신들이 육지의 통치권을 나눠가졌다고 했죠. 목숨을 버리기까지 했는데도 아무 의미가 없었다는 걸 알면 아무리 누님이여도 지금처럼 흔들릴 수밖에 없을 겁니다. 부모도, 동생도, 자식도, 동료도, 부하도 전부 잃고 이룬 게 없다고 생각하고 있겠죠. 홀로 죄책감을 다 떠안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비그리드로 모두를 이끌지 않았더라면 다들 아직도 살아있지 않을까, 하고 말이죠.”


가름이 잔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를 피와 살이 있는 장난감으로밖에 보지 않는 신들을 그 잘난 하늘에서 끌어내릴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 만행에 끝을 고할 수 있었으면 여한이 없었겠죠.”

“지나간 일을 논해봤자 소용없다, 가름. 지금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야 과거에 속박되지 않아.”

“보스가 말씀하시는 건 항상 너무 정론이라 가슴이 아프네요, 하하.”


나는 가름이 웃어넘기는 걸 빤히 바라보고 있다 고개를 기울였다.


“허나 너희들이 무엇에 사로잡혀 있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겠어. 신들과의 전쟁에서 죽은 너희가 나와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싶었다만, 그런 것이었군. 너희들도, 나도 ‘미련’이 남아있어.”

“보스도 한 번 죽으셨고 말이죠. 누님은 그래서 열망을 보스에게 품고 있을 겁니다.”


몇 번째일지 모를 가름의 말에 나는 손을 내저었다. 그 주제는 수도 없이 들었지만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을 거라고 상상이 가지 않았던 것이다.


“살아남은 신의 잔당을 처리하고 싶다고 말해도 내게는 무리다. 네게도 얘기했었지만 내가 알고 있는 건 세계의 억제력을 자칭하는 수수께끼의 놈들뿐이고, 자신들은 신이 아니라고까지 얘기했다.”

“보스를 이렇게 다른 세상에 살려놓을 정도면 좀 의심가긴 합니다.”

“여기부턴 내 가정이다. 그걸 감안하고 들어라. 나는 그 놈들이 신보다 위의 존재이고, 신으로 불리는 존재는 세계마다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아마 내 손으로 네가 말하는 신들을 죽이는 건 가능하겠지.”


가름은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보스는 말도 안 되는 능력을 가지고 계시니까요. 아무런 공격도 통하지 않는다니 그게 말이나 됩니까.”

“불합리한 힘이지. 하지만 덕분에 나는 나로서 이곳에 있을 수 있다. 고유스킬이 없었다면 너희 둘을 불러냈을 때 불길에 타서 죽어버렸겠지.”

“아... 그건 본능적으로 모르는 사람을 보고 불부터 나왔다고 할까...”

“착각하지 마라. 탓하는 게 아니다.”


우물쭈물하려는 가름을 나무라고 나도 내 술잔을 비웠다.


“하지만 이해가지 않는 게 하나 있다. 나도 전생에는 인간이었는데 왜 아무렇지 않게 대할 수 있는 건가?”

“보스의 얼굴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

“농담입니다, 보스. 농담입니다. 죄송합니다.”


가름이 급히 말을 돌린다.


“전생에 인간이었던 걸 신경 쓰지 않는 건, 그 뭐냐, 당연하지 않습니까.”

“당연하다고?”

“보스도 세계 멸망을 불러왔다는 펜리르를 아무렇지도 않게 대해주셨지 않습니까? 저도 지옥을 지키고 사자를 가두는 헬하운드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종관계로 술을 먹고 있지 않습니까.”

“나는 마왕이잖나.”

“바로 그겁니다. 전생이 어찌됐든 간에 보스는 대단하고 마음도 넓으시니까요. 그런 부분에서 누님이나 저나 감명 받지 않았나, 싶습니다.”

“잘 모르겠군, 그 부분은.”


나는 가름의 어깨 너머로 벽에 걸린 시계를 확인했다. 슬슬 약속한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누가 오기로 되어있는 겁니까?”

“너와 얘기를 하다 린이 오기로 되어있다만. 아까 일에 대해 사과라도 하려는 거겠지.”

“예?”


헬하운드나 되는 마족이 들고 있던 술잔을 떨어뜨릴 뻔한다. 펜리르라는 건 그 정도의 공포심을 일으키는 존재인 것인가.


“저, 저는 그럼 여기까지... 괜한 소리를 했다는 게 들통 나면 분명 저택이 부서질 겁니다.”


대답을 하기도 전에 인사까지 마친 가름이 문을 닫고 멀어져갔다. 저렇게까지 급히 서두를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재빨리.


“부하 관리는 어느 세계나 까다롭군.”


부하들이 내게 거는 기대가 너무 큰 것도 하나의 문제였다.


가름은 내 고유스킬이 어느 상황에서든 무적인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건 사실이 아니다. 다른 세계에서 온 공기이기에 이 세계의 모든 것에 의해 거절당할 뿐.


겉보기엔 아무 약점이 없어 보이지만 그런 ‘특전’을 받은 게 나 하나일거라는 보장은 절대 할 수 없다는 게 치명적이었다.


만일 나와 같은 세계의 특전을 받고 이 세계에 와있는 자가 있다면 내 고유스킬은 상대가 특전으로 받은 게 부채라고 해도 간단히 무효화되어 버린다. 원래 세계의 물건으로 나를 감싸는 언덕공기를 날려버리기만 하면 절대방벽 너머로 내게 공격을 가할 수 있는 것이다. 같은 세계의 물건은 서로 상호작용할 수 있으니까.


물론 내 무기는 고유스킬 이외에도 무수히 있지만, 무적이라는 치트키를 잃고 나서는 상대가 나보다 약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다.


“역시 마왕이 있다면 용사가 있을 수밖에 없나...”


나는 작게 중얼거렸다.


용사에 대한 소문은 부풀려진 기록상으로나 존재할 뿐, 적어도 왕국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로 현재 용사의 존재 유무는 확인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내게 마왕의 역할을 주고 특전을 부여한 생명의 관리자가 다른 사자에게 비슷한 짓을 꾸밀 가능성은 절대 부정할 수 없다.


“용사, 용사라...”


나는 술잔을 내려놓고 밤하늘을 내다보았다. 원래 있던 세계와 달리 밝게 빛나는 별들로 가득한, 정말이지 거슬리는 하늘이다.


“반드시 찾아내서 죽여주지.”


그렇게 다짐한 내 손에는 잡다한 도형과 선이 빼곡히 그려진 도면이 몇 장 들려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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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전쟁의 피스 +1 19.05.30 817 17 11쪽
» 밤하늘 +1 19.05.26 878 21 10쪽
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14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56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75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43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22 22 10쪽
37 시찰 +1 19.05.12 1,015 23 9쪽
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74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41 24 9쪽
34 네이아르 백작 +2 19.05.06 1,167 29 10쪽
33 죄의 운반 +2 19.05.05 1,208 29 9쪽
32 유일한 생존자 +7 19.04.25 1,232 3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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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모두 죽었다 +4 19.03.25 1,448 35 8쪽
29 피의 연회가 열렸다 +3 19.03.24 1,426 38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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