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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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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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수 :
3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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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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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98
글자수 :
1,753,096

작성
19.06.02 01:03
조회
817
추천
17
글자
9쪽

살인 청부업자(11세)

DUMMY

땅거미가 내려앉은 왕국의 가도.


『또 이런 밤중에 나가는구나, 꼬마 아가씨.』


“시끄러워... 오늘은 일이니까 어쩔 수 없잖아?”


유리에는 자신의 목표를 다시 확인했다. 소녀 둘과 소년 하나가 살고 있다는 저택. 사용인은 거의 쓰지 않는다고 했으니 행여나 헷갈릴 일은 없었다. 밤을 틈타 자고 있는 목표의 목을 베어버리면 그만인 이야기다.


대기하라는 명령을 받고 왕국에 체제한지 벌써 반년이 가까웠다. 의뢰주가 제국 정보국이 아니었다면 할 일없이 평범한 시민인척하며 하루하루를 지내는 건 절대 하지 않았겠지. 딱히 정보국의 의향을 따르면 돈이 두둑하게 들어온다는 점 때문에 순응한 건 아니다. 돈이야 최소한의 생활을 이어갈 수만 있으면 충분하다.


유리에가 얌전히 이제까지 기다렸던 것은 온갖 종류의 살인을 눈감아주는 정보국의 지침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다. 의뢰주가 지정한 목표만 제때 처리해주면 어느 정도의 ‘일탈’은 허용된다.


제국 내라면 어느 정도 제한이 붙지만, 타 나라라면 제한은 없다시피 했다. 과연 그것뿐일까, 잡히지 않도록 뒤처리까지 도와준다.


살인이 취미인 유리에에게 그 이상의 최적의 조건은 없었다. 국가에서 인정해주고 돈까지 주는 취미라니, 꿈의 직장인 셈이다.


“따분하네...”


『자업자득이라고. 그러게 왜 평소부터 그렇게 날뛰고 다닌 거야.』


“참... 부른 적도 없는데 오늘따라 시끄러워...”


자꾸만 자신의 말에 딴지를 거는 목소리를 무시하며 유리에는 바람에 쉽게 헝클어지는 붉은 머리를 긁적였다. 국왕 암살 사건이 일어난 뒤로 밤길을 나다니는 놈들이 별로 없었던 것이다. 과거에 어두컴컴했던 거리는 환한 불로 밝혀져 있었지만 술주정하며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습을 감췄다.


말들이 모는 마차가 지나다니고, 가끔가다 칼을 찬 병사들이 돌아다닐 뿐이다. 괜히 일이 커지지 않도록 왕국 소속의 병사는 함부로 해치지 말라는 엄포를 받았기에 그들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


유리에는 가벼운 걸음으로 길거리에 띄엄띄엄 설치된 횃불에 밝혀진 간판 밑을 지났다. 주인의 행방불명으로 인해 더 이상 영업을 하지 않는다는 문구가 휘갈겨 쓰여 있었다. 그걸 보고 유리에의 기분도 한결 나아졌다.


“그 아저씨는 참 잘 울었지, 헤헤.”


『좋은 남자였는데 아깝네. 그가 따라주는 술은 일품이었어.』


“페리스도 참... 술은 다른 곳에서 마시게 해준다니까? 그리고! 술집 아저씨는 공들여서 처리해줬으니까.”


『해체한 뒤 술통에 담아서 마차에 실은 것 말이니? 유리에는 정말 취미가 나빠.』


“흥이다 흥!”


뒤를 향해 혀를 내밀어 보이는 유리에가 반년동안 왕국에서 죽인 사람은 217명. 시체는 전부 정보국의 요원들이 처리해주었으니 발견된 것들은 없을 터인데도, 자꾸 사람들이 행방불명되자 찝찝한 것인지 사람들은 이전보다는 안전에 신경 쓴 것 같은 차림이었다.


마침 저 큰 도로를 걷고 있는 남자는 기사가 입는 풀 플레이트 아머를 걸치고 한 손을 검 손잡이 위에 놓은 채다. 그가 실제 기사가 아니라는 건 바로 알아챈 유리에였지만 바로 뒷골목으로 숨었다. 오늘 밤에 죽일 사람은 따로 있었다.


입을 어두운 천으로 가린 채 등에 짧은 단검 하나와 검을 맨 소녀는 그림자에 몸을 숨기며 인기척이 없는 곳을 걸었다. 근처의 높은 건물은 작은 상점가들에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우는 큰 성당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대로 조금만 더 가서 나온 게 바로 오늘 신세를 지게 될 저택이다.


그 정도의 크기에 경비가 전혀 없다는 것에 유리에는 눈을 살짝 찌푸렸다.


그녀와 비슷한 또래라는 소년의 이름은 류셀. 광맥의 자이언트 드래곤을 처치한 공로를 인정받아 왕국의 모험자 길드로부터 엄청난 양의 돈을 받았다고 했다. 굳이 돈으로 용병을 고용하지 않더라도 충분히 호위기사를 요청할 수 있는 입장일 텐데.


조금 이상한 느낌을 받은 유리에는 몸을 숨기지도 않고 저택의 입구 앞까지 가, 철창 너머로 안을 들여다보았다.


“이상한 걸?”


『왜 그래?』


“너무 조용해...”


『조용한 건 좋은 거잖니? 어서 들어가서 일을 끝내고 나오면 돼.』


가도를 순찰하던 위병 하나가 유리에의 수상쩍은 행동을 보고 다가온다.


“거기, 지금 뭘 하고 있습니까?”


“응?”


유리에는 순수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앳된 나이를 보고 위병이 긴장을 풀었다.


“이상하네, 너 분명 누구랑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았는데... 이런 곳에서 혼자 뭘 하니? 어린이는 집에 돌아갈 시간이야.”


“하지만 아직 일이 안 끝났는데? 응, 알고 있어 페리스.”


알쏭달쏭한 유리에의 말에도 위병은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했다.


“자, 엄마 아빠도 걱정하시잖니.”


“엄마? 아빠? 왜 그런 걸 물어?”


유리에가 너무나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위병을 올려본다.


“둘 다 내가 죽였는데?”


“뭐?”


“맞아맞아, 아빠는 심장에 과도를 꾸욱 찔러줬고~ 엄마는 목에 포크를 넣어줬어! 잘했지?”


그건 어린아이의 농담치고는 너무 메마른 것이었다. 위병은 그제야 유리에의 등에 있는 무기를 확인했다. 장난감처럼은 보이지 않았다.


“너...”


위병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사이, 유리에는 등에 손을 뻗었다.


화려한 세공은 아니지만 날과 사용자의 손 사이가 세밀하게 다듬어져 광이 나는 흑요석 색깔의 반-십자가 모양의 가드, 그리고 흑색의 탄탄한 그립에 늑대의 은색 엔블럼이 달려 있었다.


유리에가 그 튼튼해 보이는 손잡이를 당겨 뽑으니 검은 도신이 드러났다. 한쪽만 날카로운, 넓지도 작지도 않은 날의 평행한 두 선이 가드에서부터 나아가 곧게 뻗은 검의 끝부분에서 직각삼각형의 형태로 좁아져 날카로운 끝을 만들었다. 옛이야기에 나오는 검객을 연상케 하는 긴 도신은 똑바로 세울 경우 유리에의 어깨까지 오는 길이였다.


유리에는 칼집을 한 손에 들고, 위병이 든 횃불에 비추어져 검은 빛을 흩뿌리는 검을 비스듬히 잡아 보였다.


“꼬마...야?”


“아저씨, 운이 없었네?”


위병은 꿈과 같은 광경을 보며 얼어붙어있었다. 그 어린 소녀가 살벌한 검을 잡고 자세를 취하는 게 왠지 어색하지 않다는 게 그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한 생각이었다.


“위험했네, 들킬 뻔했어.”


유리에는 손에 익은 놀림으로 흑색의 검을 같은 색으로 빛나는 칼집에 집어넣었다. 일생동안 지녀온 검에는 피도 묻지 않았다. 위병이 목이 저만치 굴러가고 있을 뿐이었다.


『저 목, 탐나는 걸. 잘 말리면 좋은 장식품이 되겠어.』


“지금은 일 중이니까 안~돼!”


어느새 손에 들려있는 횃불을 호, 하고 끈 유리에가 저택의 담에 손을 얹으려는 순간이었다.


“클로드? 클로드는 어디 있어! 아직 근무시간이라고?”


누군가 소리 내서 사람을 찾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유리에는 그게 자신이 죽인 위병의 이름이라는 걸 깨달았다. 철컥 거리는 갑옷 소리를 듣자하니 위병이 아니라 기사다.


『괜찮겠어? 위병에 기사까지 죽이는 건 예정에 없었잖니.』


“뭐, 어쩔 수 없어!”


유리에는 방긋 웃으며 짧은 단검을 치켜들었다.


...


유리에는 저택 내부를 사뿐사뿐 걸어가며, 엄청나게 넓은 입구 쪽의 정원에 감사했다. 위병과 기사가 큰 소리를 한 번씩 내었으니, 입구와 저택의 거주공간이 크게 떨어져있지 않았다면 벌써 자신의 침입이 알려졌을 것이다.


“우리의 류셀은 어디에 있을까?”


콧노래를 부르며 유리에가 방문을 하나씩 열어보았다. 하나하나 다 열어본 것은 아니다. 서재로 짐작되는 곳을 찾고 나서 소년의 방이 어딘지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이 조용히 열리고, 검은 머리가 담요에서 삐죽 나와 있는 침대를 찾은 유리에가 소리 없는 환호를 질렀다. 6개월 동안이나 기다리게 해준 메인 디시에는 뭘 쓰면 좋을까. 고민할 필요도 없다. 역시 검이겠지.


희희낙락하게 검을 뽑아 침대의 머리맡까지 간 유리에는 뭔가 다르다는 걸 눈치 챘다. 그 침대에 있는 건 사람이 아니었다. 짙은 검은색의 마력이 일렁이고 있을 뿐이었다.


“거기까지다.”


뒤에서 들린 소리에 유리에는 홱하고 몸을 돌렸다.

방문에 등을 기댄 채 서있던 그녀의 목표가 자세를 바로 했다.


“같이 따라 와주실까, 얌전히 무기를 내려놓는다면 동이 튼 다음 아침을 대접해 줄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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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14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56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75 1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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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모두 붉게 물들었다 +4 19.03.18 1,539 37 8쪽
21 던전의 주인은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2 19.03.17 1,545 37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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