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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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최근연재일 :
2024.09.07 21:52
연재수 :
31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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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753,0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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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5.25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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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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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11쪽

신화의 괴물

DUMMY

적당히 마왕군의 업무를 마치고 돌아오자 벌써 해가 지고 있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보스.”


한적해진 왕국의 번화가를 나란히 걷던 가름과 린이 입을 모아 말한다.


강아지 같은 애완동물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작은 강아지를 연상하며 사역마를 만들었지만 어째서인지 이미 옛날 옛적에 죽었을 터인 헬하운드와 펜리르가 나와 버렸는지는 아직도 알 수 없다.


시체가 걷는 언데드도 아니고 둘 다 멀쩡히 살아있는 상태였다. 새끼로 태어나기까지 했다. 마치 같은 세계에 ‘전생’한 것 같지 않은가. 그건 내가 전생한 마왕이라서 그런 것일까.


하지만 풀리지 않은 미스테리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때그때 소환할 수 있는 그림자 사역마와는 다르게 둘은 자아가 있다. 명령이 있어야 비로소 움직이는 것이 아니고, 기본적으로 스스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것이다. 살아있을 시절의 기억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각기 다른 성격도 가지고 있다.


나는 언제나처럼 전이 마법을 준비하려다, 멈칫했다. 한 달 사이에 습관이 되어버린 행동에 위화감을 느낀 것이다.


“슬슬 너희도 같이 살아도 되지 않나? 역시 내 사역마가 옆 동네의 호텔에서 지내는 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된다만.”


“정말입니까?!”


어째서인지 린이 방방 뛰었다. 드문드문 지나가는 행인들이 쳐다보았다. 성장이 끝나고 나서부턴 얌전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내 생각이 틀렸던 건가.


“괜찮으시겠습니까? 본가에 동거 중인 두 소녀는 아직 저희들에 대한 걸 모르는 상태인 게...”


헬하운드ㆍ가름이 말을 흐리자 밝았던 펜리르ㆍ린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


“그거야 잘 설명하면 되겠지. 이스야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줄 거고, 시이나는 너희들과 같은 개과니까 잘 이야기가 통하지 않을까.”


“보스, 그것만으로 친해질 거라 단언하는 건 조금...”


가름이 솔직하게 말했다.


“야박하군. 가름 너도 린과 쉽게 친해지지 않았나.”


나는 가름과 린을 소환했던 밤을 떠올렸다.


저택의 방에서 분명 보통 크기의 강아지를 상상하고 스킬을 발동했는데 불에 휩싸인 큰 개가 나와 버려서 당황한 끝에, 밖에서 하나를 더 만들었더니 펜리르가 나와 버렸다는 웃기지도 않은 이야기다.


그 뒤로도 강아지를 만드는 노력은 하고 있으나 번번이 실패하고 있는 실정이다.


“에이, 그거랑은 다르죠. 저와 누님은 어떻게 보면 쌍둥이 같은 느낌 아닙니까. 물론 그렇게 따지면 먼저 보스께 불린 제가 오빠ㅡ”


“하?”


린이 웃으면서 돌아보자 가름이 파랗게 질렸다.


“아무것도 아닙니다, 누님!”


인간으로 의태했을 때의 키는 가름의 가슴 부근까지밖에 되지 않는 린이 누나 노릇을 하고 있다. 역시 세계 멸망의 방아쇠를 당기는 펜리르 앞에선 헬하운드도 꼬리를 말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결과는 어찌됐든 간에, 내 애완동물 격인 둘은 내 마력을 토대로 만들어서 그런지 내가 이 세계에 새롭게 태어나고 난 뒤의 기억을 대부분 공유하고 있었다. 따라서 굳이 숨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나는 둘에게 내 전생을 포함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상급마족인 헬하운드와 그것마저 뛰어넘는 신화의 존재인 펜리르가 인간으로 의태할 수 있다는 사실은 마왕의 ‘역할’로써 내게 주어진 지식의 범주에 있었기에 그걸 공유하는 둘이 이렇게 인간의 마을에 외출하는 건 큰 문제가 없었으며,


다른 세계에서의 내 삶에 대한 얘기를 듣고 나서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나를 보스라고 부르고 저 복장을 고집한 것도 둘의 의견이었다.


“너 말이야... 깐족거리는 게 점점 심해지는 거 같은데, 다시 한 번 혼나봐야 정신을 차리려나?”


“오, 오해라고요! 저는 원래 이런 성격이라...! 잠깐, 누님?”


“우리 동생과 누나의 이야기를 좀 할까? 그래, 다섯 번 정도 진심으로 맞으면 정신을 차릴 수 있을 거야.”


“잠, 잠깐! 타임! 여긴 인간들 사는 마을 한복판이라고요? 누님 진심은 내가 죽는데?! 아, 정말 잠깐만.”


나는 둘이 다투는 걸 보며 역시 개는 개다, 라는 감상을 가졌다.


둘이 쉽게 친해진 데다 언어나 상식 같은 건 나와 일부를 공유하고 있으니 딱히 둘을 돌보는 게 어렵지는 않았다.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지만 말을 할 수 있는 특이한 애완동물이 생겼을 뿐이었다.


“잘 되나 싶었더니 훼방을 놓기나 하고, 너 이리 와봐.”


“누님?! 양복 구겨져, 구겨져!”


일주일 만에 성인 크기로 성장할 때까지는 내 방에서 키웠으나, 그 뒤부터는 다른 숙소를 알아보는 수밖에 없었다. 이유는 두 가지다.


[퍽!]


실제 나이는 둘째 치고 겉보기로는 성인 여성인 린을 내 방에서 키우자니 내가 다 거북했고, 시이나와 이스가 마찬가지로 겉보기로는 성인 남자인 가름을 거북해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사실 시이나와 이스를 그렇게까지 신경 쓸 필요는 없었지만 사실대로 설명했다가 웃음거리가 되는 건 끔찍하게 싫었다. 말을 아껴도 오히려 이쪽이 거북한 것은 매한가지다.


[퍽!]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자이언트 드래곤 토벌로 받은 보상금이 산더미처럼 남아있으니 괜찮은 호텔을 알아보는 건 일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크게 뒤치다꺼리를 할 필요도 없으니 이런 면에선 스스로 돈을 쓸 줄 아는 애완동물이 편리했다.


“슬슬 끝났나? 린.”


가름의 머리에 헤드락을 걸고 있는 린에게 묻자 둘은 재빨리 열중쉬어 자세로 돌아갔다.


“죄송합니다. 꼴사나운 모습을 보여드렸습니다. 모든 건 가름 탓입니다.”


린이 헝클어진 희푸른 머리를 정돈하며 화살을 가름에게 돌린다.


“네?”


“다물고 있어...!”


“너희는 참 사이가 좋군.”


나는 둘을 관찰하고 있던 시선을 거두었다.


“어쨌든. 너희들이 좋을 대로 하면 된다. 굳이 나와 거주하는 게 불편하면 호텔 생활을 계속해도 상관없다. 전생에는 그런 놈들도 꽤 있었으니 말이다. 그래, 혹시 모르니 호텔 쪽에 돈을 좀 더 맡겨두지.”


“예!”


가름의 시원한 대답이 뒤에서 들려왔다.


따로 사는 것으로 이야기가 끝난 것으로 생각하고 호텔로 향하는 걸음을 옮기려 하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뒤에서 들었다.


“누님?”


가름도 덩달아 뒤를 돌아보고, 린이 말없이 서있는 것에 눈썹을 올렸다.


“그럴... 리 있겠습니까.”


“린?”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실 수 있는 겁니까.”


린의 마력이 폭주하려는 기색이 느껴졌다.


최악의 상황이다. 의태가 풀려버린다.


이런 곳에서 펜리르가 나타났다간 대륙 전역에 내 패를 들키고 만다. 몇 번이나 봤듯이 헬하운드로는 펜리르를 억누를 수 없다. 여기서 린의 폭주를 방지할 수 있는 건 나뿐이었다.


내가 고유스킬과 다섯 종류의 마법을 동시 발동시키며 린에게 손가락을 겨누는 순간이었다.


“보스는 제 주인님입니다... 곁에 있고 싶은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린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는 게 보였다.


“누님...”


가름이 입술을 깨물었다. 린은 두 주먹을 꽉 쥐고 울먹이는 얼굴로 나를 보고 있었다.


“망자의 세계에서 오랜 잠을 자다 깨어난, 아무것도 모르는 갓난아기인 저희들을 이 세상에 부르고 키워주신 건 보스입니다... 같이 있는 게 불편할 리가 없지 않습니까...”


“...”


나는 린의 얼굴을 보았다.


내가 보고 있는 것의 정체는 언젠가 시이나에게서 엿보였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것이다.


“왜... 왜 몰라주는 겁니까.”


저것 또한 내가 모르는 감정이다. 저건 아마 슬픔이라는 것이겠지. 그게 아니면 야속함, 일까. 혹은 분함일까.


“린.”


이해하고 싶다. 미지의 것을 이해하고 싶다는 그 기분은 확실하게 단정 지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상한 기분은 이성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어렴풋이 위화감을 느낄 정도로 끝나는, 이상한 개념이다.


주인이 없는 집에 혼자 남겨진 강아지가 느낄 쓸쓸함 정도로 이해하면 좋을까. 내가 지금까지도 알지 못하는 감정을 저 둘은 고작 한 달 만에 습득한 것인가. 이젠 애완동물에게까지 져버렸다는 이야기다.


“... 부럽군.”


나는 내 몸을 둘러싸고 있는 그리운 고향 언덕의 향기를 한 번 크게 들이마시고, 그대로 절대방벽의 고유스킬을 해제하며 혼잣말을 했다.


“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데 말이다.”


“보스?”


가름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걸 무시하고 린에게 다가가, 전생의 강아지에게 하던 것처럼 턱 밑을 긁적여준다.


“뭐, 뭐를 하시는 겁니까!”


필요 이상으로 얼굴을 붉히며 린이 떨어졌다.


“의견 상신은 좋은 일이다. 네 뜻이 그러하다면 존중하지.”


“그... 말은!”


린의 얼굴이 기대감에 부풀어 화악 달아올랐다.


“저택은 넓다. 너희들이 지낼 방 정도는 널려있어. 가름, 같이 사는 것에 대한 불만은 있나?”


“예? 없는 게 당연하지 않습니까?”


“결정이군. 기뻐해라 린. 당분간 내 저택의 애완동물이 되어줘야겠다.”


나는 오랜만에 집에 돌아온 주인이 강아지에게 하는 것처럼 두 팔을 벌렸다. 린은 눈물을 훔치더니, 사양도 하지 않고 내게 덥석 안겼다. 역시 조금 특이한 애완동물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신체접촉도 싫지만은 않았다.


“같이 돌아간다, 린.”


“... 네.”


그러고 있자니 가름이 뒤에서 말을 걸어왔다.


“저기, 보스. 오늘은 전이 마법을 쓰지 말고 걸어서 돌아가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직 아기였을 때처럼 누님을 안은 채로 말입니다.”


“어째서 이야기가 그렇게 되나?”


“누님이 조금 피곤한 상태인 것 같아서 말이죠. 안 되겠습니까?”


펜리르가 피곤하다고?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아 가름을 바라보니 넉살 좋은 웃음을 짓고 있다.


그렇군. 이게 애완동물의 애교라는 건가. 그런 게 있었던 것 같은 기억이 어렴풋이 들었다.


그리고 5분 뒤.


“굳이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불평을 말하는 나는 린을 업고 저택까지 걸어가고 있었다.


“좋지 않습니까, 보스. 누님도 만족하고 있는 것 같고 말이죠.”


“만족?”


린은 어느새 새근새근 소리를 내며 내 등 위에서 잠들어 있었다.


“펜리르인데 이렇게 쉽게 경계를 내려놓아서야.”


“보스도 참.”


자신은 아무것도 지지 않은 채로 얄밉게 앞서 가는 가름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신화의 괴물도 상대쯤은 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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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전쟁의 피스 +1 19.05.30 817 17 11쪽
43 밤하늘 +1 19.05.26 878 21 10쪽
» 신화의 괴물 +2 19.05.25 915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56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75 19 11쪽
39 카니앗 이그ㆍ시 피아 +2 19.05.17 943 23 8쪽
38 다크엘프 +2 19.05.16 1,023 22 10쪽
37 시찰 +1 19.05.12 1,015 23 9쪽
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74 2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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