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나니 마왕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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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stable
그림/삽화
Zig
작품등록일 :
2019.02.24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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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9.07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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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7.14 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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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청

DUMMY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라고 누가 말했던가.


어디에선가 들어 뇌리에 새겨진 그 말에는 틀림이 없다.


한 방식에 익숙해진 사람은 제아무리 주위에서 무슨 말을 들어도 다시 자신이 있던 곳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건 살인 또한 마찬가지다.


한번 살인에 익숙해진 사람은 다시는 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살인이라는 수단의 편리함을 깨닫는 순간 이미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것이다.


나 또한 그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그래. 기억하고 있다.

첫 번째 살인은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아직 아버지의 ‘회사’가 정점에 서기 전이었다. 적대 조직 간의 항쟁으로 인해 우리 집에는 부하들의 시체가 굴러다니고 있었다. 물론 총탄이 오가는 항쟁의 승자는 이미 결정되어진 상황이었지만 남미 카르텔의 조직원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남은 인원을 전부 '복수'에 투입했다.


풀내음이 산들바람을 타고 내려오는 작은 언덕.

그 위에는 나와 어머니, 그리고 동생의 집이 있었다.


자그마한 우리의 보금자리는 단순히 거주하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평화를 가져다주는 신기한 곳이었다.


그날까지는, 말이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보인다.


아니, 그보다 선하게 들려온다. 타닥 타닥, 하는 소리가.


다운타운에서 급히 돌아온 나는 손에 들고 있던 케이크 상자를 떨어뜨린다. 눈앞에 보이는 것은 불타고 있는 집이다.


코스모스가 드문드문 핀 언덕까지도 불이 옮겨 붙어 숨을 쉬기 힘들 정도로 공기가 뜨겁다. 하지만 그런 건 신경 쓰지 않는다.


미친 사람처럼 불타는 집에 홀로 뛰어 들어가는 10살의 소년이 있었다. 그는 무언가를 필사적으로 찾으려 문을 발로 차서 열어젖히고 시체들을 넘어간다.


총을 쥐기에 너무 작은 손이 꽉 쥐고 있는 건 45구경 권총이다.


그가 드디어 찾으려 했던 것을 찾아낸다.


그것도 시체였다. 하지만 그냥 시체가 아니다.


마피아 조직원도, 카르텔 조직원도 아니다. 피비린내 나는 항쟁에 말려들 필요가 전혀 없었던 두 명의 시체다. 끝까지 저항했던 것이겠지.


어머니는 사후에도 어울리지 않는 기관단총을 세게 쥐고 있었다. 품에는 나보다 여섯 살 어린 동생이 잠을 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카르텔 놈들도 이렇게 격렬한 저항을 예상하지는 못했는지 차마 시신을 욕보일 시간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그것만큼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어디선가 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아버지의 부하들이 강제로 나를 끌어낸다.

어디선가 누군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시끄러운 놈이다. 그건 어린이의 울부짖는 소리였다. 무척이나 소중한 걸 잃어버린 것처럼 한 치도 쉬지도 않고 비명을 질러댄다.


시끄럽다. 도대체 무슨 일을 당했기에 그리도 시끄럽게 구는 것일까.


한참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게 내 입에서 나오는 거라는 걸 깨달았다. 머리가 온통 하나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만큼은 기억한다.


지키지 못했다.

지키지 못했다.

지키지 못했다.


이 얼마나 꼴사납나.


아무리 울부짖어보았자 내가 이미 패배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이 만행을 저지른 놈들을 전부 죽여도 이미 죽은 사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피해자와 가해자의 각인은 이미 새겨졌다. 그 시점에서 무슨 일이 추가로 일어나도 내가 영원한 피해자로 남는다는 사실은 이미 시간의 흐름에 전부 새겨졌다.


하지만 나도 인간이었다.

그래도 복수심을 돌릴 대상은 필요했다.


나는 잔디를 짚고 천천히 일어나, 어쩔 줄 모르고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검은 양복 중 하나에게 180도 돌변해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추적하고 있겠지?”


“예. NSA의 협조를 받아 위성으로 추적 중입니다."


"전부 찾아. 마지막 한 놈까지. 그리고 산 채로 붙잡아서 내 앞에 데려와."


"산 채로... 말씀이십니까?"


"그래. 숨이 붙어 있어야 돼."


"그런... 아무리 도련님의 부탁이라 해도 곤란합니다. 6명밖에 안 남았다지만 그래도 놈들은 카르ㅡ“


남자의 말은 거기서 끊긴다. 머리가 날아갔으니까.

아무 주저 없이 방아쇠를 당긴 나는 기겁한 다른 부하들을 훑어보며 차갑게 말했다.


“명령에 따르지 않는 부하는 필요 없다. 6명 전부 내 손으로 죽이지 못하면 너희도 전부 죽은 목숨이라고 생각해라.”


보통 살인에 뒤따르는 묘한 흥분이나 희열은 전혀 없었다. 내 눈에 보이는 건 도구로조차 쓸모가 없는 인간쓰레기들이었다. 단 두 사람의 목숨도 지키지 못하는 무능한 쓰레기들. 일처리는 언제나 한발씩 늦었고 제일 중요한 보고 체계도 제대로 잡혀있지 않다.


이번의 희생이 많은 인재를 앗아간 덕분에 ‘회사’에는 이제 이런 쓰레기들밖에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이런 놈들에게 일처리를 맡길 리 없다. 적대 조직과의 분쟁이 아니었으면 벌써 쫓겨나고도 남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마피아를 자칭하는 쓰레기들이라니.


부리나케 차를 몰고 멀어져가는 검은 차량들을 보며, 나는 잿더미로 변하고 있는 집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만큼은 잊지 못한다. 잊을 수 있을까 보냐.


나는 그날 밤, 첫 번째 살인을 했다.


아버지의 '사업'에 본격적으로 내가 참가하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보스, 왜 그러십니까?”


걱정스런 목소리에 고개를 드니 린이 내 안색을 살피고 있었다.


“역시 어제 암살자 건으로...”

“아니. 옛 생각이 났을 뿐이다.”


고개를 흔들어 기억을 지워버린 나는 차가운 광맥의 냉기를 느꼈다.

마왕군의 주둔지는 나날이 배송되는 각종 물자들로 북적였다. 더 이상 이전의 황량한 광맥 지대가 아니다. 군사훈련과 작전 회의가 매일 열리니 나름 군대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 것이다.


가용 가능한 인원이 많으니 간단한 시설은 빠르게 지을 수 있다. 카니앗이 수소문해온 드워프들의 지도 아래 건설 작업이 진행된 결과, 졸병도 천막 신세에서 벗어나 있었다.


보수로 잔뜩 재보를 준다는 소문을 퍼뜨렸을 뿐이지만 그것에 넘어간 드워프 5명에게 감독을 맡기는 걸로 충분했다. 계층 별로 구획도 나뉘어진지 오래다.


아직 유일하게 황량한 곳이 있다면 그건 내 지휘관실로 쓰이는 제9계층뿐이다.


“가름은?”

“동생은 아직 작전회의 중입니다, 보스.”


내가 좀 더 가까이 다가오라는 손짓을 하자 린이 기쁜 얼굴을 지으며 종종걸음으로 옥좌까지 올라왔다.


“평소에도 그렇게 예를 갖출 필요는 없다고 말했잖나. 너희들은 내 심복이야. 허가 없이도 내 곁에 있는 게 허락되는 게 당연하다.”

“그, 그렇지만...”


린이 말꼬리를 흐린다.


“보스는 이만한 병력을 통솔하는 지휘관이십니다. 제가 너무 허물없이 굴면 다른 자들이 행여나 잘못된 생각을 품지는 않을지...”

“지휘관, 지휘관이라.”


그렇게 말하는 나는 분명 정말 따분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겠지. 지휘관이라는 자리가 즐거움과는 절대 거리가 멀다. 생전이나 지금이나 바뀐 건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천천히 상황을 분석했다. 그게 내게 주어진 역할이자, 나를 선망의 눈으로 바라보고 따르는 자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소한이었으니까.


“린의 말은 틀리지 않아. 우리는 전쟁이 임박해있다. 저들끼리 자멸해버리는 것을 구경하는 것도 나름의 묘미였겠지만 왕국이 그냥 제국의 손아귀에 넘어가게 둘 수는 없어.”

“보스... 제가 나설까요? 인간 놈들 따윈 몇 백만을 끌고 와도 저 혼자서도 금방 잿더미로 만들 수 있습니다.”


터무니없게 들릴 수 있는 말이었지만 그 말을 꺼내는 당사자가 신화의 늑대인 만큼 크나큰 무게를 가진 말이었다. 허나 나는 고개를 젓는다.


“인간을 얕보지 마라, 린. 인간은 나약하지만 그렇기에 온갖 술수를 쓸 것이다. 짐승보다도 잔혹해질 수 있는 게 바로 인간이라는 존재다.”


그 만행을 직접 봐왔기에 내 말에는 흔들림 하나 없었다.


“나라는 괴물이 있는 걸 눈치 챘다면 그에 맞설 수 있는 괴물을 부린다. 너도 보고 있었잖나. 그건 이미 인간이라고 할 수 없는 수준의, 또 다른 괴물이었다.”

“죽은 자의 혼을 부리는 영매 암살자... 붉은 유령, 이라고 했었지요.”


린은 아름다운 얼굴에 살기를 가득 담고 있었다.


“보스를 밀어붙이다니 절대 용서하지 않습니다. 그 인간 소녀는 어떻게 해서든 제가 처리하겠어요.”


푸른 머리가 푸른 불꽃에 타오르려는 찰나 내 손이 린의 어깨에 놓였다.


“내가 짐작하건대 그건 제국의 비장의 카드다. 내 정체를 알고 그 카드를 쓴 건지는 모르겠지만 버스트를 맞고 멀쩡히 버틸 수 있을 정도의 마법력을 쓸 수 있다는 건 정상이라고 보기 힘들다. 설령 그게 유령에게서 빌린 힘이라고 해도.”


어깨를 살며시 치고 나는 다시 옥좌에 앉았다.


“레스트 바실루스. 제국의 황제. 생각했었던 것보다 감이 좋은 남자다. 붉은 유령을 그 정도로 부릴 수 있다면 이 전쟁에서 제일 중요한 건 괴물보다 그 괴물을 움직이는 쪽이다. 괜히 너를 앞에 내보냈다가 함정에 걸리기라도 하면 아마 내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겠지.”

“보스...”

“진짜배기 전쟁이 될 것 같군. 제국군은 이미 진군을 개시했다. 플랜 B-3을 먼저 실행한다.”


그리고 순간의 망설임이 있었지만 나는 다음 말을 입에 담았다.


“시이나는 왕국 내 아인 부대의 지휘를 맡기기로 했지. 연락을 넣어라.”


작가의말

장재인의 ‘환청’들으면서 써서 제목을 그리 지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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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 신화의 괴물 +2 19.05.25 914 20 11쪽
41 선전포고 +3 19.05.22 956 24 10쪽
40 헬하운드와 펜리르 +1 19.05.19 974 19 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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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목적과 이유 +2 19.05.11 1,074 24 9쪽
35 전쟁의 준비 +4 19.05.09 1,140 2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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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죄의 운반 +2 19.05.05 1,208 29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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