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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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파
작품등록일 :
2012.11.1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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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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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6.15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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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 그림자 191

DUMMY

석정은 평소대로 해가 저물어서야 퇴청하여 집에 왔다. 당장 대자리에 두다리 뻗고 드러눕고 싶은 생각에 아내가 어서 문을 열어주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문이 열리는가 싶더니 그 틈새로 조막만한 얼굴이 빼꼼 비쳤다. 이소였다.


"아버지..."


반가운 웃음이 어리는 이소와는 달리 석정은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왜 네가 여는 것이냐? 애비가 와도 문열어주지 마라, 그리 누누이 일렀거늘!"

"그치만 어머니는 저녁 하시느라 바쁘시어..."


당장 어미에게 불호령이 떨어질 듯 하자 이소는 순식간에 떼꾼해진 눈으로 석정의 눈치를 보았다. 손님이 오면, 문을 여는 일은 어미에게 맡기라면서, 노상 아비는 사립문 빗장도 잡지 못하게 하였다. 그런 아비의 진노를 누그러뜨릴 방법이 없었다. 그저 눈치를 보며 살살 아양을 떠는 수 밖에 없었다.


"소녀만 혼내시어요. 어머닌 제가 나오는 것도 몰랐사옵니다."

"녀석도 원..."


석정은 이소를 흘겨보곤 그대로 휙 지나쳐서 마당을 가로질렀다. 사랑채 앞 섬돌에 한켤레의 검은 목화가 놓여 있었다. 석정은 고개를 기우뚱했다. 손님이 있었다. 얼른 다가들어 목화를 확인하려는데 어느틈에 또 이소의 목소리가 등뒤로 바짝 달라붙었다.


"작은 할아버님께서 오셨어요."

"또! 또! 사랑채 앞으론 얼씬도 하지 말라 일렀...누구?"


이소가 쫄래쫄래 뒤따르며 귀띔해 준 말에 석정은 버럭 성을 내려다가 한번 더 고개를 기우뚱했다. 이소는 평소 석정의 생부인 최후량을 큰할아버지로, 양부이자 숙부인 최후상을 작은할아버지로 호칭을 구분했다. 헌데 석정은 방금 이소가 한 말을 제대로 듣질 못했다. 큰할아버님인지, 작은할아버님인지 수식어를 놓쳤다. 하지만 생부일 리가 없었다. 아비는 조부 최명길과 함께 청국에 인질로 끌려갔다가 심신이 쇠약해져서 돌아온 탓에 집밖으론 한발짝도 나서지 못하는 폐인이었으니까.


석정은 섬돌 앞에 와서, 목화를 자세히 살폈다. 목화 자체는 사슴가죽도 갓 무두질을 한 것처럼 윤이 반질반질한데, 뒤축이 꺾인 자국이 구질구질했다. 새 신발은 가죽이 구겨질세라 조심하게 마련인데, 뒤축이 꺾이거나 말거나, 개의치 않는 사람이 분명했다. 그러면서 앞코엔 티끌 한점 묻히지 않았으니.


"숙부님?"

"예, 조심하세요. 어머니께서요, 아버님이라 안 불렀다고 꾸지람 좀 들으셨어요."


석정은 의아한 느낌에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숙부 최후상이 끝내 아들을 얻지 못하자, 졸지에 석정이 양자로 호적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하지만 멀쩡히는 아니지만 엄연히 생부 최후량이 생존하여, 구태여 호칭을 고치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아버님이라 부리지 않는다고 숙부가 아내를 꾸짖다니, 뜬금이 없었다.


"아니 무슨 바람이 부셔서..."


석정이 의혹 어린 눈빛으로 섬돌의 목화를 한번 더 내려다보고 방으로 들어가니 최후상이 청단령 차림으로 찻잔을 홀짝이며, 자신을 기다리는 참이었다.


"숙부님!"


흔줄을 넘어 쉰줄에 이르러 턱수염이 희끗희끗한 얼굴로, 그가 석정에게 힘없이 웃었다.


"왔구나?"

"웬 일이세요?"

"웬일이긴. 네놈 보러 왔지."


최후상은 홍단령 차림의 석정을 대견한 눈빛으로 쳐다보곤, 이내 무릎맡의 자그마한 소반에 시선을 떨구었다. 그저 콩고물이 묻은 듯 안 묻은 듯 희누런 빛이 맨숭맨숭한 인절미에, 어디서나 손쉽게 구할 법한 엽차가 고작이었다. 최후상은 인절미를 한쪽 집어들고 투덜거렸다.


"야 이놈아, 당상씩이나 되어서 콩고물도 없는 인절미가 말이 되냐?"

"에이, 잘 보세요. 콩고물 있잖아요."

"이게 묻은 거냐?"

"에이, 그정도면 호사죠. 남들은 평생 소원이 콩고물 인절미라는데."

"에잇, 치사한 놈."

"사치한 놈이 되는 것보단 낫잖아요."

"반지빠른 놈 같으니."


한마디도 지지 않고 대거리를 해대는 최석정을 노려보며 푸념하듯 욕하고선, 최후상은 인절미를 또 한쪽 입에 집어넣었다. 혀끝에 닿는 식감이 쫀득쫀득하지 않고 빠닥빠닥했다. 한 사흘 묵은 인절미를 내어놓은 게 아닌가 미심쩍어 슬며시 장지문 너머를 흘겨보고, 최후상은 입을 실룩였다. 하지만 석정이 마주 앉아 인절미 접시에 손을 뻗자, 최후상은 인절미를 뺏길세라 석정의 손끝을 탁 쳐버렸다.


"어딜! 이놈 손버릇 좀 보게. 인절미 앞에선 위아래도 없구만."

"에이, 어차피 제 처가 저녁상 차려올텐데, 볼가심 용도로 양보 좀 하시지요."

"생각해주는 척은."

"숙부님이야말로, 안드실 거면 저 먹으라고 주실 수도 있잖아요. 저도 점심부터 한끼도 못 먹었다구요."

"누군 먹었냐? 그리고 내가 널 아는데, 네놈은 누룽지든 숭늉이든 뭐라도 먹었을 놈이야."


두 숙질이 인절미 접시를 두고서 한참을 실랑이에 한창인데, 마침 장지문이 열렸다. 석정의 처 경주이씨와 딸 이소가 소반 한상씩을 들고 문간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이소가 깜찍한 함박웃음으로, 조카며느리가 겸연쩍은 헛웃음으로 한마디씩 건넸다.


"시장하셨지요?"

"차린 건 없지만 많이 드세요."


비복도 없이, 혼기도 꽉 찬 이소까지 직접 밥상을 나르는 모습이 조금 이상했다. 최후상은 코끝으로 국물냄새가 스며들자 기대반 불안반 뒤섞인 눈초리로 지켜보았다. 질부가 직접 한 건가? 최후상의 두눈에서 불안이 더욱 짙어졌다.


사실 경주이씨는 음식솜씨가 그리 좋진 않았다. 한때는 좌상댁으로, 또 나중엔 우상댁으로 불린 화곡 이경억의 여식이라 손에 물 한번 안 묻히고 곱게 자라 시집을 왔다. 그래선지 음식솜씨는 형편없었다. 밥물을 맞추는 것도 제대로 못했다. 누룽지인지, 무리풀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쌀밥을 내놓을 정도였다. 세월이 흘러 이제는 좀 나아졌다. 그나마 된밥인지, 진밥인지 정도는 분간이 되었다. 게다가 시장이 반찬이니, 점심도 굶은 지금은 돌도 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소가 먼저 최후상의 무릎맡에 내려놓은 소반을 보니 5첩반상이었다. 너무도 소박했다. 경주이씨가 최석정의 무릎맡에 내려놓은 소반도 마찬가지였다. 성균관에서 나올 법한 나물죽 소금밥 같은 차림이었다. 기껏해야 누르끼리한 쌀밥에다 짠내나는 간장, 시큼한 냄새가 나는 미나리김치, 멀건 시래기국, 그리고 말라비틀어진 멸어蔑魚(멸치) 정도였다.


"이게 뭐냐. 떡은 묵정이에, 밥은 쭉정이에, 국은 꺽정이에..."


최후상이 젓가락으로 잘 찔리지도 않는 인절미를 콕 찔러보고, 이어서 국그릇 속을 휙휙 휘저었다. 물크러진 시래기에 친친 감긴 꺽정이가 보였다. 살점이라곤 없이 그저 뼈와 비늘만 있는 놈이었다. 먹을거리도 되지 않았다. 끝으로 최후상의 젓가락이 마른 멸어 접시로 닿더니, 부들부들 떨렸다.


"게다가 멸어...이 천한 멸어...어이구야...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런 푸대접이라니..."


석정은 유난스런 숙부 최후상의 푸념에 그저 입맛을 쓰게 다셨다. 아내를 탓할 수도 없었다. 신통찮은 솜씨를 타낼 수는 있어도, 변변찮은 재료를 타낼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경주이씨 딴엔 그나마 귀한 손님이 왔다고 신경써서 내온 밥상이지만, 최후상에겐 흡족하지가 않았다. 요즘 오랜만의 관직생활로 피로가 쌓인 탓에 입맛도 떨어졌는데, 당상 씩이나 되어서 이리 초라한 밥상을 내어놓다니. 특히나 멸어는 천한 음식으로 간주되어 손님상엔 감히 올리지도 않는 법일진대, 괘씸하다 못해 서운했다. 서운하다 못해 서러웠다.


"신경 쓰느라고 썼는데..."

"신경? 신경?"


최후상이 어처구니 없다는 듯 언성을 높여 되묻자, 이소가 암팡지게 한마디 끼여들었다.


"작...할아버님께서 오셔서 이 정도지, 저흰 평소에 풀떼기만 먹사옵니다."

"풀떼기?"

"예, 꺽정이는 커녕 이 멸어도 못 먹사옵니다."

"정...말이냐?"

"예, 어떨 때는 쌀도 모자랍니다. 아버지가 녹미 받아오시면 약천 어르신께 보내고, 큰할아버지께 보내고, 작은할아버지께 보내고...그래서 허구한 날 삼시세끼를 찌끄레기쌀에 시래기국에...그나마 어머니가 기분 안 좋으실 때는 큰맘 먹고 꺽정이를 사...아..."


이소가 모처럼 찾아온 최후상을 붙들고 미주알고주알 쏘개질을 해대자, 경주이씨가 당황하여 옆구리를 꼬집었다. 이소는 옆구리가 화끈거리는 아픔에 인상을 잔뜩 쓰면서도 계속해서 입을 놀렸다.


"사실 꺽정이...가 빼짝 말라서 뜯어먹을 살도 몇점 안되거든요. 아...그러니 뼈째 아작아작 씹어드셔야 하는데...그렇게 드시면 목에 콱 얹힌 것이 싹 내려가신다나..."

"얘가...왜 할 얘기 안할 얘기 다 하고..."


경주이씨가 난처한 얼굴로 이소의 옆구리를 찔렀다. 하지만 조잘대는 이소의 입은 멈추질 않았다.


"할아버님께 푸대접을 했다는 오해를 사는 것보다는 낫사옵니다. 그렇죠?"

"..."

"정말로 형편껏 차린 것이옵니다. 알아주시옵소서."


이소가 밥상위의 반찬들을 어서 들라고 손짓을 하였다. 최후상은 밥상 위의 반찬들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그런다고 혀끝에 군침이 돌지는 않았다. 보면 볼 수록 한숨만 나왔다.


"아니 왜 먹을 게 하나도 없다냐...벌써 당상인데..."

"벌써 당상이니 쪼들리지요. 관직생활 오래 안하셔서."

"그...러냐?"

"예, 그러니 부디 오래오래 사시옵소서. 곳간에서 인심나는 법이오니, 언젠가는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드릴 것이옵니다."

"아니 얜 누구 닮아...하기야 널 닮았지."


최후상은 짜증을 내다 말고 헛웃음이 나온 탓에 그저 석정에게 눈을 흘기며 입맛을 쓰게 다셨다. 이소는 후상을 보고 혀를 낼름 빼물고 웃어보이고선 냉큼 문쪽으로 물러났다.


"그럼 맛나게 드시어요."


이소를 보고 경주이씨도 고개를 살레살레 저으면서 얼른 뒤따랐다. 어른답지 않게 실없이 반찬투정이나 하던 최후상은 두 모녀가 사랑채를 나서기 무섭게 눈빛을 진지하게 굳혔다.


"윤휴 말이다."


석정은 긴장한 눈빛으로 최후상을 마주보았다. 숙부는 눈빛이며, 음색이며, 한순간에 찹찹하게 가라앉았다. 유독 초점이 또렷해진 눈빛으로 자신을 보는 것이, 방금 전까지 실없이 반찬투정을 해댈 때와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사자탈을 쓰고 춤을 추던 사당패가 한순간에 구경꾼에게 칼을 빼드는 느낌이었다.


"전하께서 사사하란 명을 내리신 걸 너도 알테고..."

"..."

"우리 헌부(사헌부의 약칭)에선 승복할 수가 없어 다시 국문을 청하는 계문을 올리고 오는 길이다. 조심해라. 벌써 네 입김이 작용했다고 대청이 술렁거리니."


최후상의 언질에 석정은 두눈을 크게 떴다.


"제가요? 제가 무슨 재주로요?"

"흥, 국청대신들이 모두 너와 연이 닿아 있으니 하는 말이다."

"모두까진 아니지요."


석정은 자신도 모르게 두눈을 싸늘하게 번뜩였다. 김수항, 민정중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들은 누구보다 송시열과 긴밀했다. 특히나 민정중은 윤휴와 친밀했던 시간도 있었는데, 송시열을 따라서 윤휴에게서 등돌렸다. 그리고 윤휴의 처결조차 송시열의 뜻을 서찰로 묻기까지 했다. 그들은 최석정 자신이 아홉번을 죽었다 깨어나도 결코 인연이 닿을 수가 없었다. 이미 어미 뱃속에서부터 끊긴 인연이었다. 지천 최명길의 가문 사람으로 태어난 이상은.


"모두?"


최후상은 석정의 대답이 어쩐지 찜찜했다. 원래 웃자고 대거리를 하는 놈이니, 이번에도 그저 말꼬리를 잡은 것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조정을 수중에 넣으려는 야심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리 욕심 많은 녀석은 아니었는데. 욕심이 적은 대신 야심이 컸던가. 미관말직일 때부터 왕의 특별한 성총을 입었으니, 왕의 수중에 조정을 쥐여 주려는 것 같기도 하였다.


그래서 불안했다. 왕의 칼이 된다는 것은 송시열의 적이 된다는 뜻일지도 몰랐다. 송시열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 왕인 만큼, 석정이 송시열에게 날을 세워야 할 날이 오고야 말 터였다. 어차피 주자학에 이따금씩 삐딱한 반응을 보이는 것만 봐도, 어쩌면 태생부터가 대로의 적일 수도 있겠지만.


최후상은 석정의 소싯적을 돌아보듯, 그리고 장성하여 혼기까지 찬 딸을 둔 현주소를 비교하듯,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석정의 방안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다. 어쩐지 방안 구조가 좀 변한 것 같았다.


"어쨌든 자중하거라. 네놈이 네 사돈을 움직여 윤휴의 국문을 막았다고들 수군거리니..."


최후상은 손때가 덕지덕지 묻은 낡은 서가書架에 눈길을 두었다. 손도 닿지 않는 맨윗칸은 석정이 석만이란 초명으로 공부하던 시절 접했던 성학집요聖學輯要나 격몽요결擊蒙要訣 같은 유학 서적이, 겨우 손이 닿는 둘째칸은 주자학 서적이, 쉽게 손이 닿는 셋째칸은 천학 서적이, 그리고 허리나 무릎을 굽혀야 손이 닿는 넷째칸은 산학 서적이, 아예 무릎을 꿇어야 손이 닿는 다섯째칸은 잡학 서적이 빼곡하게 꽂혀 있었다. 최후상이 찾는 책은 보이지 않았다.


최후상은 문득 기묘한 위화감을 느꼈다. 뭔지 모르게 달랐다. 벌써 30년은 되었을 법한 이 낡은 서가에서 변한 것은 그다지 없는데도. 물론 책이야 좀 바뀌었겠지만, 그 정도로 위화감을 느끼는 건 말이 안되었다.


여섯째칸이 숨어있는 건가?


최후상은 고개를 갸웃하며 서가의 셋째칸 선반을 손끝으로 짚고 서가의 서책들을 하나하나 확인했다. 하지만 무엇이 변했는지는 찾을 수가 없었다. 어깨에서 맥이 풀리는데, 석정이 미심쩍은 눈빛으로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뭘 찾으십니까?"

"찾다니?"

"아무래도...뭘 찾으시는 것 같은데..."

"그러니까 뭘?"

"제가 아나요? 찾는 분이 아시겠죠."

"글쎄...나도 뭔가 느낌이 이상한데, 뭐가 이상한지 몰라서 살피는 것 뿐인데? 왜, 켕기는 거라도 있냐?"

"켕기긴요."

"조심해라."

"뭘요?"

"뭐겠냐? 무슨 책인지 몰라도 잃어버리지 않게 조심하라고."


최후상은 석정의 볼을 집게손가락 끝으로 툭 쓰다듬으며 웃었다. 자신은 대를 이을 아들이 없었다. 그리고 형은 아비 최명길을 따라 심양에 끌려가서 온갖 고생을 한 끝에 두눈이 침침해지고 심장이 두근거리는 괴질을 얻어 돌아온 탓에 석정을 제대로 가르칠 수 없었다. 그리하여 자신이 조카인 석정을 계자系子(양자)로 삼아서 형을 대신하여 가르쳤다. 석정이 성장한 이후로는 약천 남구만을 스승으로, 화곡 이경억을 장인으로 붙여주어 더욱 깊이 있는 학문의 길로 이끌었다. 그렇게 심혈을 기울인 아이가 눈앞의 석정이었다.


그런데, 조카이자 아들인 이녀석은 하필 성학聖學(성리학)이 아니라 성학星學(천문학)의 길로 빠져들었다. 제 아비와 조부가 청국에서 가져온 서적들을 들춰보며, 그리고 제 스승 남구만과 연이 닿아 있던 이민철을 통해 혼천의를 접하며, 또...또...


최후상은 더는 생각을 잇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눈 깜짝할 새에 이마가 서가로 기울어지면서 크고 작은 서책들 모서리에 찍히고 말았다.


"숙부님!"


석정이 황망히 최후상을 부축했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숙부의 등허리와 어깨를 잡는 순간 하마터면 자신도 중심을 잃고 넘어질 뻔하였다. 너무 무거워서 감당이 되질 않았다. 그런데 금세 팔이 가벼워지는가 싶더니 숙부가 중심을 잡고 똑바로 섰다.


"아, 어지러워서..."

"괜...찮으세요?"

"그래, 괜찮다. 그럼 이 애비는 이만..."

"숙부님이시거든요."

"애비거든!"


입씨름을 하는 것을 보니, 그저 잠시 어지러우셨던 모양이었다. 석정은 그렇게 마음 편히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왠지 불안했다. 그저 눈 깜짝할 사이였지만 한순간에 돌덩이처럼 무거워졌던 것을 생각하면, 숙부는 그 촌음동안 혼절했던 것이 분명했다.


"좀 누워계세요."

"되었다. 집이 요앞인데 가서 누우련다."

"숙부님!"

"애비는 간다. 나오지 마라."

"..."


자신을 부축한 석정의 손을 떨쳐내려고 최후상이 손을 휙휙 내젓고는 문고리를 잡았다. 석정은 놓친 최후상의 팔을 다시 잡을까 말까 고민하며 흔들리는 눈빛으로 최후상의 옆얼굴을 지켜보았다. 혹여 다시 넘어지기라도 할까 봐서 바짝 옆에 붙어선 채로. 장지문이 열리고 숙부가 문턱을 넘자, 석정도 얼른 뒤따라 한발을 문틈으로 들이밀었다. 문을 닫으려던 최후상은 석정을 흘끗 보았다.


"나오지 말래도."

"에이, 바래다드릴게요."

"됐대도. 요앞인데 뭐하러."

"요앞이니 바래다드리죠. 조앞이면 안바래다 드립니다."

"하여간..."


최후상이 헛웃음을 짓자, 석정이 냉큼 팔꿈치를 잡고 다시 부축했다. 최후상은 그런 석정을 힐끗 내려다보았다. 석정이 씨익 웃었다. 따라 웃을 뻔하였지만, 최후상은 자신도 모르게 애잔한 눈빛으로 시선을 비껴서 처마 아래로 보이는 잿빛 남녘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둠 속에 희미하게 묻힌 흰구름이라도 오래오래 담아두고 싶은 눈빛으로.



"윤휴를 국문이 끝나기도 전에 사사하는 것은 불가하니 다시 엄하게 국문하라?"


아침이 밝기 무섭게 편전 어탑으로 올라온 사헌부의 계문에, 숙종은 솟구치는 짜증을 삭이느라 눈시울이 실룩거렸다. 두손으로 계문을 부여잡고, 빨래터에서 세답방 나인들이 속곳에 묻은 얼룩을 지우듯이 비비고 또 비볐다.


"불윤. 국문은 이만하면 충분하다."


숙종은 그 자리에서 사헌부의 계문을 서안 위로 탁 내려놓았다. 아에 발치로 내려놓고, 그 자리에서 밟아버리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런데, 거친 손길 탓인지 서안에서 두루마리가 스륵 미끄러져서 무릎에 맞고 발치로 툭 떨어져버렸다. 숙종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대사헌을 쳐다보았다. 대사헌은 왕의 발치로 굴러떨어진 계문을 보고 고개를 들어야 할 지 더 숙여야 할 지 갈등하느라 등줄기가 꿈틀했다.


"전하...아직 국문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어찌 이리 서두르십니까?"

"경들이야 말로 왜들 질질 끄는가?"

"아직 윤휴는 죄를 인정하질 않았사옵니다. 허니..."

"경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윤휴는 죽을 죄를 지었다...이 말이 아니던가? 헌데 윤휴의 죄가 아직도 불충분한가? "


숙종이 차갑게 묻는 말에 대사헌은 움찔했다. 윤휴의 죄가 불충분하다니. 그것만은 인정할 수 없었다. 자신은 물론 모든 서인들이 윤휴는 죽을죄를 지었다고 믿는 터였다. 심지어 사초를 적는 저 최석정마저도.


"아니옵니다. 윤휴는 이미 충분히 죽을 죄를 지었사옵니다."

"그런데?"

"아직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여..."

"이태서는, 허견은, 이환은, 죄를 인정해서 죽였던가? 허면, 죄를 인정하지 않은 그들을 죽인 경들은?"

"하오나 윤휴는 다르옵..."

"뭐가 다른가? 모든 죄인이 죄를 인정해야지만 처형할 수 있다면, 이를 악용하여 모두 자신의 죄를 부인하려 들텐데, 장차 법을 집행할 수나 있겠는가?"

"하오나, 아직..."

"아직, 아직, 아직! 뭐가 더 필요한가? 윤휴가 물귀신처럼 애먼 사람을 같이 끌어들이고 죽어야 속이 풀리는가?"


왕의 옥음이 편전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평소 목소리가 그리 크지 않은 왕이었다. 자주 목이 붓고 기침이 나다보니, 왕은 평소에도 옥음을 아꼈다. 그래도 정전과 편전의 구조가 어탑의 목소리를 명징하게 모아서 퍼뜨리다 보니 말을 알아듣는 데엔 별로 지장이 없었다. 그러니 왕은 언제나 신료들이 알아들을 만큼만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지금은 분노가 뚜껑이 꽉 닫힌 솥에서 끓어넘치는 것만 같았다.


"왜, 누구의 이름이 더 필요한가? 허목? 권대운? 민희? 그것도 아니면..."


대사헌은 이어지는 왕의 고성을 들으며 고개를 더욱 조아리는 시늉을 하다가, 멈칫했다. 갑자기 왕의 옥음이 끊겼다. 그리고 잠시 뜸을 들이고서 순식간에 가라앉은 옥음이 고막을 파고들었다.


"나인가?"


왕의 나지막한 옥음에 대사헌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등줄기가 들썩였다. 한순간에 머릿속이 아득해졌다. 환청이었다. 왕은 그저 말끝을 흐렸을 뿐이었다. 입술을 거의 달싹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자신은 헛것을 들었다. 아니다. 왕의 혼잣말을 들었다. 아니다. 자신더러 들으라고 한 소리였다. 헷갈렸다. 자신이 들은 게 맞는지 그른지. 왕이 말한 건지, 아닌 건지.


"번독煩瀆(구질구질하고 번거로움)하게 하지 말고 이만 물러가라."

"..."


왠지 혼이 빠진 채로 대사헌은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대답을 하는 것도 잊었다. 대답을 했는데, 목소리가 안 나온 것 같기도 했다.


정신 없이 편전을 나와 행각 아래로 오니, 막혔던 숨통이 트이면서 좌우에서 쏟아지는 햇살에 시야도 훤해졌다. 햇살에 떠도는 먼지들이 보였다. 자신을 추궁하려다가 말꼬리를 흐린 왕의 망설임이 보였다. 왕도 두려운 것이었다. 자신들이 왕과 윤휴 사이에 뭔가 암묵적인 묵계가 있었다고 둔갑시킬까 두려운 것이었다. 그제야 대사헌은 여유를 되찾고 한숨도 돌렸다. 그는 입술을 비죽이며 문쪽을 돌아보았다.


"내일도 뵙겠습니다, 전하."


행각에서 속닥거리는 목소리도 왕이 들을 수 있을까. 잠시 의문이 뇌리를 스쳤지만, 더는 마음쓰지 않았다. 또 서둘러 대청으로 돌아가야 했다. 관원들과 함께 두번째 계문을 준비해야 했다. 지금이야 자신이 혼이 빠졌지만, 야금야금 왕의 혼을 빠뜨릴 심산이었다.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글피도, 그글피도...



그그제도, 그제도, 어제도, 오늘도, 편전의 어탑엔 사헌부의 계문이 올라왔다. 숙종은 연이은 계문 탓에 윤휴의 사사를 집행할 수가 없었다. 삼사의 간섭이 가시울타리처럼 느껴졌다. 어탑에 두른 난간이 오히려 가시울타리로 보였다. 징그러웠다.


"윤휴를 사사하는 것은 불가하니 다시 국문하라?"

"예, 전하, 아직 윤휴가 자백을 하지 아니하여..."


대사헌은 숙종의 용안을 마주하고 당당히 아뢰다가 움찔했다. 용안을 보려고 본 것이 아니었다. 그저 자신도 모르게 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두눈이 날선 사금파리처럼 번뜩였다. 그저 용안을 마주쳤을 뿐인데, 마주친 두눈이 베인 듯한 통증이 일 정도였다. 대사헌은 이마가 전돌 바닥에 닿을 정도로 더욱 납작 엎드렸다. 그런데 왕의 옥음이 옥음이 냉기를 품고 그의 등줄기를 훑었다.


"더 이상 윤휴를 국문하자 청한다면, 윤휴의 죄를 불충분으로 간주하겠다."

"전하..."


대사헌 신정이 계속해서 불복하고 반박하려는 순간, 숙종은 느릿한 손짓으로 서안을 엎어버렸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쏟아진 두루마리들이 그대로 계단을 타고 굴러떨어졌다. 포악하지 않은 듯, 포악한 왕의 행동에, 대사헌은 너무도 놀라서 두눈을 휘둥그레 떴다. 자신의 발치까지 굴러와서 널브러진 두루마리들이 한두필이 아니었다.


"전하, 어찌 이런...."

"지난 닷새동안, 아니 열흘동안 경들이 윤휴에 관해 올린 계문들이다. 그 글들엔 모두 두글자가 똑같이 들어가 있지."

"두글자라 하심은..."

"죽을사死, 죄죄罪..."


왕의 옥음과 함께 신정은 갑자기 오금이 저리는 느낌으로 발치를 돌아보았다. 여기도 사죄死罪, 저기도 사죄死罪란 글자 천지였다. 버젓이 윤휴의 죄를 죽을죄라 적어놓고, 사사를 반대하는 자신들의 모순을 두눈으로 확인할 뿐이었다.


"여태 윤휴를 죽을죄라 주장한 그대들은 반좌율反坐律에 의해 거꾸로 죽을죄가 되겠지? 윤휴의 죄가 불충분으로 간주된다면야."

"..."


대사헌의 등줄기가 작살 맞은 물고기처럼 펄떡거렸다. 왕은 이미 두번, 세번, 윤휴가 죽을죄라는 사실을 자신들에게 확인했다. 자신들 입으로 윤휴가 죽을죄라고 해놓고서, 이제 와서 윤휴의 사사를 반대할 명분도 없었다.


"하오나, 윤휴는 충분히 죽을죄를 지었사옵고, 신들은 배후가..."

"윤휴가 배후가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겠지? 허적인지 거적인지, 이미 죽은 이름은 필요 없고, 허목인지 고목인지는 이미 팔순이 지났으니 유형流刑(유배형)도 사형도 불가하고, 권대운은 윤휴와 친분 자체가 없었으니, 아니 오히려 사사건건 반목하였으니 배후로도 지목할 수 없고, 누구의 이름이 필요한가?"


왕이 재차 묻는 말에 대사헌은 숨이 턱 막혔다. 같은 곳을 두번 찔리면, 더욱 아픈 법이었다. 저번엔 왕의 입술이 움직이는 것을 보지 못한데다, 정확히 듣지 못한 탓에 잘못 들었으려니 싶어서 그냥 넘어갔다. 헌데 이번엔 왕도 거침 없이 입밖에 낼 태세였다. 차마 들을 수 없는 말을.


"경들이 비밀차자 운운하니 내 이름 이순李焞, 이 두글자가 필요한가?"

"..."


숨이 턱 막힌 채로, 내쉴 수도, 들이쉴 수도 없었다. 대사헌은 숨소리도 내지 못한 채로 고개를 조아렸다. 권대운이나 허목이란 이름을 더는 받아낼 수 없는 사실을 확연히 깨닫고야 말았다.


"어찌 그런 말씀을..."

"알겠는가? 그대가 지금 여기서 윤휴를 더 국문하겠다고 버티면, 반좌 아니면 반역이란 사실을."

"..."

"돌아가라. 내일도 사헌부에서 계문이 올라오면, 그때는 윤휴에게 먹일 사약을 경의 입에 들이부을 것이니."

"..."


너무도 차가운 왕의 옥음에 대사헌은 눈시울을 파르르 떨었다. 닷새사이에 왕은 냉정하게 돌변했다. 윤휴의 화가 자신에게 미칠까 불안해 하던 모습은 남아있지도 않았다. 미리 걱정하고, 나중엔 냉정해지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불안이고 뭐고 차갑게 식어서는 오히려 자신을 다그치고 협박하는 모습이라니. 언제까지고 자신들에게 끌려다닐 왕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만 물러가라. 내의원에 일러 사약을 준비해둘 것이니."

"..."


누가 사약을 먹게 되는지, 두고 보자는 눈빛으로, 숙종이 차갑게 말했다. 대사헌은 할 말을 잃었다. 왕은 내일은 기필코 윤휴에게 사약을 내릴 태세였다. 그간 자신들의 계문 탓에 윤휴의 사사를 집행할 수 없었으니, 내일도 걸림돌 노릇을 하면 가차 없이 자신들에게 반좌율 내지는 반역죄를 적용하겠다는 엄포는 결코 빈말이 아니었다.


대사헌은 무릎에서 힘이 빠진 채로 터벅터벅 편전을 나섰다. 행각 아래 양쪽 신도로 신료들이 즐비하게 늘어서서 자신을 지켜보는 참이었다. 보나마나 김수항을 비롯한 서인들의 수뇌부들일 터였다. 어떻게 되었냐고, 내일도 간쟁을 하라고 독촉할 것이 뻔하였다.


헌데 몇걸음 걷다 보니, 김수항이 보이지 않았다. 민정중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남구만이, 이민서가, 김만중이, 오두인이, 오도일이, 가만히 서서 웃는 듯 마는 듯한 눈길로 자신을 구경하는 참이었다.


고작 한살 연하인 남구만이 희끗한 콧수염과 턱수염 사이로 흐릿한 웃음을 지으며 도리질을 해대었다. 대사헌은 머리가 울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자 무릎에서 힘이 더 빠졌다. 걸음을 내딛기는 커녕 서 있을 기운도 없었다. 마침내 그는 힘없이 쭈그려 앉았다. 왕을 쥐락펴락 할 수 있다고 믿은 것이 착각이었다.


"괜찮으십니까?"


어느틈에 등뒤에서 바짝 따라붙은 최석정의 음성에 대사헌은 어깻죽지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방금 전까진 그저 같은 서인이었는데, 최석정의 목소리를 듣고 다시 쳐다보니 최석정의 친인들일 뿐이었다. 그 사실을 인지하고 보니 더욱 기분이 고약해졌다. 이녀석이 어느 틈에 이렇게 컸던가 의심스러웠다. 이 정도면 제 스승 남구만이든, 스승의 친우들이든, 제 친우들이든 아무나 앞세워서,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고도 남았다.


"괜찮네."


대사헌은 손을 휙휙 내젓고 발길을 떼었다. 혹시라도 자신이 넘어질세라, 보호하듯 등뒤로 바짝 따라붙은 석정의 손길이 묘하게 걸리적거렸다. 정말로 기분이 껄끄러웠다. 같은 목소리를 내지 않고, 같은 길을 딛지 않는 자들이, 마치 자기 턱에 생겨난 혹처럼 느껴졌다. 아주 작은 종기일 때 째야 하는 것을, 더 큰 종기가 되면 아파서 째지도 못할 것을.


물론 최석정의 세력이 아무리 불어나보았자, 송시열은 커녕 김수항의 상대도 되지 않았다. 꺽정이는 어디까지나 꺽정이일 뿐, 송강 농어가 될 수 없다고, 그는 생각했다. 중국의 시인들이 꺽정이를 송강 농어로 부른 줄은 꿈에도 모른 채로.


"오대烏臺(사헌부의 별칭)만 제외하고 왜들 윤휴의 사사를 반대하지 않는 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

"이만 접으시지요."

"..."


대사헌 신정은 아무 대꾸도 없이 대청으로 걸음을 옮겼다. 최석정의 목소리가 등뒤로 척척하게 달라붙는 느낌이 끔찍했다. 물론 그도 알았다. 비국備局(비변사)이니, 은대銀臺(승정원)니, 옥당玉堂(홍문관)이니 하는 곳들은 물론, 평소 대청을 같이 쓰고, 행동을 같이 하던 미원薇垣(사간원)조차도 침묵을 하는 마당에, 자신들 백부柏府(사헌부의 또 다른 별칭)도 더는 버텨낼 재간이 없었다. 그나저나, 신정은 방금 자신이 석정에게 뭔가 기분 나쁜 말을 들은 기분이 들었다.


뭐더라?


경황이 없어서 더는 생각할 수가 없었다. 더는 윤휴의 국문을 고집할 여력도 없는 탓에, 그는 터덜터덜 솟을삼문을 지났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니 바늘처럼 뾰족하게 생긴 잣잎이 밟혔다. 그제야 대사헌은 버릇처럼 와버린 여기가 어딘지를 깨달았다. 사방이 잣나무 천지인 이곳은 사헌부였다. 향긋하게 코끝에 닿는 잣나무 냄새도 맡기 좋았다. 하지만 잣나무 가지 사이로 날개를 푸드득거리며 날아다니는 까마귀들은 보기 싫었다.


최석정이 아까 왜 자신의 신경에 거슬렸는지도 이제야 깨달을 수 있었다. 잣나무柏가 많다는 뜻인 백부柏府라는 좋은 말을 놔두고 기분 나쁘게도 까마귀烏가 많다는 뜻으로 오대烏臺라고 불렀으니 언짢았던 것이었다. 어차피 한철이든 두철이든 오래 머물지도 않을 자리에다, 백부든 오대든 똑같은 별칭인데도, 오대라고 불리는 건 마뜩치가 않았다. 그는 가슴 깊이 잣나무 향을 들이마셨다.


"대감, 왜 여기 계십니까?"


귀익은 음성에 돌아보니 하필이면 집의執義(대사헌 바로 아랫벼슬) 최후상이었다. 최석정의 숙부이자 양부가 되는 자라니. 괜히 징글징글하고 지긋지긋했다. 아무래도 최석정이 조금씩 조정에서 세력을 키워가는 모양이었다. 물론 곧 복귀하실 대로大老나, 조정의 수장인 문곡文谷 김수항이나 언제까지 두고 보지만은 않을 터였다.


"대관臺官들이 대청臺廳(사헌부, 사간원의 회의장소)에서 대감을 기다리는..."

"오늘은 파좌罷座하라고 하게나."


마침 까마귀 한마리가 힘찬 날갯짓으로 이 잣가지에서 저 잣가지로 옮겼다. 한낮인데도 까마귀가 푸르륵 날아다니며 끼루룩 우짖는 소리를 듣노라니, 정신이 온통 까무룩했다. 대사헌 신정은 까마귀를 피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며 시무룩히 대꾸했다. 하지만 최집의는 순순히 물러나질 않았다.


"하지만 내일도..."

"내일은 없으이."

"예?"

"없으이. 되었는가? 어지러워 죽겠으니 그만 좀 말 시키게!"


결국 손사래까지 치고, 대사헌은 홱 돌아섰다. 앞뒤 잘라먹고 대충 던진 상관의 말에 최후상은 미간을 살짝 찡그렸다. 내일은 없다니. 윤휴의 국문을 청하는 계문을 중지하란 얘긴가? 꼬투리를 잡고 따지고 싶은 충동이 들었지만, 일단은 물러나야 했다.


"알겠습니다."


결국 대사헌이 두손 들었다? 최후상은 잣나무 사이를 날아다니는 까마귀의 움직임을 두눈으로 좇으면서 문쪽으로 돌아섰다. 눈앞이 핑글핑글 돌았다. 대사헌 만큼이나, 어쩌면 더 어지러운 것은 자신이었다. 요즘 들어 몸이 예전 같지 않았다. 걸핏하면 현기증이 일고 식은땀이 나는 것이, 오늘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일은 살고 싶었다. 생존욕구란 모든 인간이 갖는 본능이겠지만.


문득 까마귀들의 광란이 윤휴의 죽음을 예고하는 흉조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불길한 날갯짓들은 윤휴에게 내일이 없다는 뜻이리라. 저들 까마귀 몸뚱이 만큼이나 시꺼먼 사약 한사발이 오늘밤, 혹은 내일 아침 윤휴의 눈앞에 당도할 터였다.



"자네 혼자인가?"


윤휴는 갑산으로 유배를 떠나는 길에, 돈의문을 나서자마자 장독이 도져서, 여염집 고방에서 의원에게 치료를 받는 참이었다. 의원은 사람을 시켜 탕약을 보내겠다며 고방을 나섰고, 윤휴는 피떡이 된 엉덩이가 닿지 않도록 더러운 짚자리에 엎드려 탕약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헌데 의원 대신 금부도사가, 탕약 대신 사약이 왔다. 두려움에 질려 눈시울을 파르르 떨다가, 방문을 등지고 선 금부도사의 어깨너머로 눈길을 돌리고 보니, 찾는 얼굴이 없었다.


"네. 왜 그러십니까?"

"아니, 아닐세."


당황한 기색으로 얼버무리고 윤휴는 금부도사의 눈치를 보았다. 자신이 듣기로, 그간 왕은 대신들과 종친들의 목숨을 거둘 때마다 은밀히 최석정을 딸려 보내 유언을 받아오게 했다. 헌데 지금 눈앞의 금부도사는 홀로였다.


"정말 혼자인가?"


윤휴는 현실을 부정하고 싶어졌다. 왕은 자신에겐 최석정마저 보내주지 않았다. 그 사실이 더 없이 자신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그래도 송시열과 더불어 조선에서 가장 뛰어난 유현儒賢(유교에 정통하고 행실이 바른 선비)인 자신을 이토록 헌신짝처럼 벗어던질 줄은 몰랐다. 못내 서운했다.


"그럼, 혼자지, 둘이겠습니까?"


금부도사는 심드렁히 되물었다. 윤휴가 누구를 찾는 지 알 것 같았지만, 굳이 내색하고 싶진 않았다. 최석정은 따라오지 않았고, 윤휴는 유언을 남길 기회도 얻지 못했다.


"지필묵이라도 좀 빌려주게나."

"지필묵요?"


금부도사는 눈꺼풀을 꿈틀했다. 죽음을 앞둔 사람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병아리 눈물 만큼이라도 대신 흘려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필묵은 곤란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복선군도, 복창군도, 허적도 하나같이 발악하듯 악담을 퍼부은 마당에, 윤휴마저 조용히 죽으리란 보장이 없었다. 그는 마음을 모질게 먹고 차갑게 두눈을 내리떴다.


"불가합니다."

"불가?"


윤휴는 헛웃음이 나왔다. 인정 많은 금부도사를 만났더라면 가족 상봉도 했고, 유언도 남겼을 터였다. 하지만 무정하게도 눈앞의 금부도사는 모두 원천봉쇄했다. 피도 눈물도 없었다. 이 모든 게 왕의 뜻이었다. 왕은 철저히 자신을 버렸다. 아니, 버리다 못해서...밟았다.


아주 오래 전에, 포동에서 어떤 도령을 만난 순간이 지금도 눈앞에 선했다. 친민親民과 신민新民, 그 개념의 차이를 설명한답시고 자신은 도령을 복사꽃이 만발한 복숭아나무에 올라서게 하고 그 머리 위로 손도끼를 휘둘렀다. 그리고, 연분홍 꽃이파리들이 연못 위로 흩뿌려지는 그 순간에 공포로 문인석처럼 굳어버린 도령은 두눈도 깜빡거리지 못하고서 자신을 그저 쳐다보기만 했다.


대학지도大學之道

재명명덕在明明德 재신민在新民 재지어지선在止於至善....


주자가 임의로 고쳤을 뿐, 원래는 새로울신新자가 아니라 친할친親자라는 것을, 그 개념을 도끼로 쪼개어 가르쳐주었다. 그날 도령을 수행한 자들에게 두번, 세번 들은 말이 '이분이 누군 줄 알고'였다. 마침 자신의 수족이나 다름 없던 무인 박가가 송시열의 집을 염탐하고 와서 귀띔을 했던 말도 '송시열이 고개 숙인 귀인'이었다. 자기를 밟고 올라가라며 최석정이 등허리를 내준 것만 봐도, 신분을 가늠할 수 있었다.


귀하디 귀한 옥체에 감히 도끼를 휘두른 죄를, 왕은 더는 문제삼지 않았다. 최소한 자기 기준에서 하나라도 배울 점이 있다고 여겼으니 괘씸하더라도 참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내어놓는 지패법도, 병거도, 왕은 그 효용을 의심하며 외면했다. 조선의 실정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왕은 탁상공론만 일삼는 유현들에게 싫증이 난 모양이었다.


송시열을 비호하고 왕을 비난한 최석정만 해도, 십육계든 삼십육계든 그토록 빗발치는 상소들을 묵살하고, 왕은 있는 힘껏 지켜주었다. 백번 양보해서 극변이나 절도안치로 결단할 불경죄인데도, 열두폭 치맛자락으로 덮어서 고작 문외출송으로 매듭지었다. 그나마도 명안공주의 혼사를 핑계로 너그러이 소결시켜 버렸다.


최석정은 살고, 자신은 죽는 이유...최석정이 그린 마방진이 윤휴의 눈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는 것만 같았다.


"유현을 쓰기 싫으면 안 쓰면 그만이지, 죽일 것까진 없잖은가?"


윤휴는 쓴웃음을 내뱉았다. 금부도사가 기묘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것이 느껴졌다. 윤휴는 서글프게 웃으면서 손을 내밀었다. 사약을 달라는 손짓이었다.


"말은 똑바로 하셔야지. 대로는 유현이니 살리고, 대감은 유현이 아니니 죽이는 겁니다."


금부도사가 퉁명스레 말하고서 사약을 건넸다. 윤휴는 사약사발을 두손에 움켜쥐다 멈칫했다. 억울했다. 자신이야말로 뼛속까지 선비였다. 잡학도, 정치도 모르고, 오직 유학, 그 한길 만을 걸어왔다. 오히려 송시열은 순수한 유현이 아니라 불순한 정치가요, 최석정은 그저 산학이니 천학이니 가리지 않고 섭렵하는 잡놈이었다.


"흥, 내가 말한 건 대로인지 대롱인지 하는 노망난 노인네가 아니라, 새파란 잡놈일세."

"잡놈?"

"그래, 잡놈."


윤휴는 짤막히 대꾸하고 사약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까마귀 깃털만큼 검은 액체가 목울대를 홧홧하게 지지고 뱃속으로 흘러들었다.


"누구 말입니까? 잡놈이라니?"

"잡놈인데...자네가 알 리 있나."

"도대체 누구..."

"있지 그놈. 그놈이 진짜 사문난적이지. 그놈이..."


시간이 지날수록 윤휴의 눈앞이 흐리터분해졌다. 당장 눈앞의 금부도사 얼굴도 또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사방이 온통 송시열이 쳐놓은 흰 거미줄로 가득했다. 그런데, 그 거미줄 틈새로 시꺼먼 벌레들이 보였다. 아니, 벌레가 아니라 시꺼먼 숯 같기도 하였다. 아니, 숯이 아니라 숫자였다. 그냥 숫자가 아니라 서로 자기들끼리 얽히고 설킨 마방진이었다. 이제 보니 잡놈이 그려낸 마방진이었다. 검은 거미줄이 되어 흰 거미줄을 야금야금 불살랐다.


잡놈...


검붉은 피를 토하고서야 윤휴는 하얗게 웃었다. 자신의 속을 새까맣게 태워버린 거미줄이 조선팔도 방방곡곡에 자리를 잡는 환영에 웃음이 절로 나왔다. 잡놈이라면 해볼 만 할 지도 몰랐다. 뼛속까지 학자인 자신보다는 차라리 잡놈이 조선을 좀더 트이게 할 지도 몰랐다. 굳이 저주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궁금했다. 자신이 죽은 뒤의 조선이.


의...의제義濟야...


윤휴는 거칠어진 숨을 헐떡이며 마지막으로 아들의 이름을 속으로 불렀다. 부디 아들 의제는 오래오래 살아남아, 더욱 강한 조선에 살 수 있길 바라면서, 더욱 강한 조선을 지켜볼 수 있길 바라면서, 그는 자꾸만 끊기는 숨결을 힘겹게 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조금만 더, 조금 더, 살고 싶었다.



"윤휴가 죽었습니다."


붉은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질 무렵, 흰 포의 차림의 늙은 선비가 말갈기에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백마를 타고서 느릿느릿 제천 청풍부에 당도했다. 구종만 해도 예닐곱에, 똑같이 백포차림으로 수발 들며 뒤따르는 선비들만 해도 스물이 넘어, 늙은 선비의 일행이 몇인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


게다가 길목마다 구름 같은 군중들이 꾸역꾸역 모여들더니, 여기도 청풍부의 백성이란 백성은 모조리 쏟아져나왔다. 부스스한 쑥대머리를 한 아이들이며, 청아한 아청색 중치막을 입은 노인이며, 입가에 커다란 사마귀가 난 사내며, 하나같이 납작 엎드리는 것도 모자라서 부채며, 야채며, 고기며, 서찰이며, 알뜰살뜰하게 두손에 쥐여주고, 또 뒤따르는 통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뭐? 잘 안 들리네."

"윤휴가 죽었습니다."

"누가 죽어?"


당장 칠순이 넘은데다, 인파에 묻혀서 귀가 온통 먹먹했다. 마중 나온 청풍부사가 한치 앞에서 하는 말도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자기 소개를 청풍부사 임상운인지, 임상원인지 뭐라고 했는데도 발음을 똑바로 알아듣질 못할 지경이었다.


"잘 안 들리십니까?"

"들리겠나?"

"하긴, 가시는 곳마다 워낙 구름처럼 인파가 몰리시어..."

"누군지나 다시 말하게나."

"윤휴요. 그자가 죽었습니다."


청풍부사가 더욱 목소리를 높여서 고했다. 늙은 선비는 그제야 알아듣고 고개를 비껴서 청풍부사를 쳐다보았다. 눈엣가시였던 백호 윤휴, 그놈이 죽었다? 설명을 요구하는 눈빛으로 쳐다보니, 청풍부사가 소매춤에서 주섬주섬 조보를 꺼내어 건네었다. 늙은 선비는 얼른 조보를 펼쳐서 윤휴라는 이름 두글자를 찾아 재빠른 눈길로 읽어내렸다.


"복날도 아닌데, 벌써 개를 잡았군."


늙은 선비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러자, 등뒤의 젊은 선비들이 따라서 웃었다. 못 알아들은 선비한텐 귀엣말로 전하고, 또 듣고 맞장구를 치면서. 자신이 울면 같이 울고, 웃으면 같이 웃는 착한 제자들이었다. 눈앞의 청풍부사도 아까 자신의 방면을 힘써 주청했다 하였다. 그런데 이름을 기억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가르친 제자들만 해도 수천, 그중 크고 작은 관직에 몸담은 자가 일천, 그들 중 자신의 방면을 주장한 자가 수백...그 이름을 일일이 외울 수가 없었다.


"시장하시지요? 한벽루로 모시겠습니다."


늙은 선비는 말에서 내려서 청풍부사의 부축을 받아 강가의 언덕을 올랐다. 한벽루寒碧樓라 써진 현판이 달린 누각이 350여년의 세월을 거쳐서 그를 반겼다. 고려시절, 큼직한 돌들을 겹겹이 쌓아 널찍한 축대를 만들어 이층누각을 세우고, 또 그 옆으로 익랑翼廊까지 세운...이 예스런 누각이 참으로 보기 좋았다. 여기서 내려다 보는 풍경은 더욱 운치가 있었다. 드넓은 남한강이 언덕 아래로 펼쳐지고, 길쭉길쭉한 바위들이 병풍처럼 둘러쳐져 호방한 멋이 있었다.


이 누각의 너른 마루에 푸짐하게 차려진 주안상이 먹음직스런 냄새를 풍겼지만, 이미 오는 길에 고을 현감들에게 극진한 접대를 받은 덕에 뱃속이 느긋느긋하여 수저를 들고 싶지도 않았다. 그는 입가에 사마귀가 난 사내가 구름 같은 인파 속에서 은밀하게 쥐여 준 서찰 한통을 가만히 펼쳐보았다. 우암공尤庵公이라, 자신을 부르는 서찰 속의 서체는 뜻밖에도 눈에 익었다. 송시열은 두눈을 와락 찌푸렸다.


허적?


죽은 자의 글씨가 마지막 몸부림처럼, 힘없는 칼부림처럼 춤을 추었다. 자주색 옷고름紫紐이란 두 글자가 송시열의 뇌리에도 입질을 기다리는 낚싯줄처럼 기나긴 끈을 늘어뜨렸다.


작가의말

윤휴의 유언은 꽤 유명합니다. 이덕일씨의 “윤휴와 침묵의 제국”이란 서책에도 있더군요. 윤휴가 죽기 직전, 최석정을 떠올린 것은 제 상상입니다. 최석정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건 실제입니다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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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5

  • 작성자
    Lv.99 눈겨산환
    작성일
    14.06.15 20:53
    No. 1

    성학과 성학이라.... ㅎㅎ

    오늘도 즐감하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8 뚱뚱한멸치
    작성일
    14.06.15 23:26
    No. 2

    드디어 송시열이 날개를 다시 달아 날것같네요
    뭐 오랫동안 날지는 모르겠지만...
    그나저나 죽은 허적의 서찰은 뭘까???
    미리 경고하는 것일까? 자신의 모습으로 될까봐서...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8 파리매
    작성일
    14.06.16 10:11
    No. 3

    잘 봤습니다.
    결국 윤휴가 죽었군요. 조선이 온전하게 주자의 나라가 되는 길이 이렇게 열리는 군요.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ANU
    작성일
    14.06.16 22:20
    No. 4

    과거사이고 주워들은 지식이긴 하지만 윤휴는 정말 안타깝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일화환
    작성일
    15.10.15 12:09
    No. 5

    짐수레로 길을 만들 것을 병거부터 주청하는 정말로 유현의 한계를 보였던가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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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해의 그림자 193 +4 14.06.28 1,861 36 40쪽
193 해의 그림자 192 +4 14.06.21 2,017 31 41쪽
» 해의 그림자 191 +5 14.06.15 1,839 26 42쪽
191 해의 그림자 190 +5 14.06.09 3,270 38 41쪽
190 해의 그림자 189 +4 14.06.01 2,196 47 41쪽
189 해의 그림자 188 +12 14.05.26 3,055 43 40쪽
188 해의 그림자 187 +8 14.05.22 1,957 31 42쪽
187 해의 그림자 186 +8 14.05.18 2,168 32 40쪽
186 해의 그림자 185 +13 14.05.11 2,178 35 43쪽
185 해의 그림자 184 +12 14.05.05 2,100 37 42쪽
184 해의 그림자 183 +10 14.04.27 1,861 34 37쪽
183 해의 그림자 182 +8 14.04.21 2,182 45 35쪽
182 해의 그림자 181 +8 14.04.15 2,307 32 42쪽
181 해의 그림자 180 +12 14.04.10 1,898 33 39쪽
180 해의 그림자 179 +12 14.04.06 2,126 29 41쪽
179 해의 그림자 178 +10 14.04.02 1,765 31 42쪽
178 해의 그림자 177 +7 14.03.29 1,685 32 41쪽
177 해의 그림자 176 +7 14.03.25 2,322 32 43쪽
176 해의 그림자 175 +6 14.03.21 2,232 38 36쪽
175 해의 그림자 174 +2 14.03.17 2,108 24 39쪽
174 해의 그림자 173 +4 14.03.13 2,259 98 37쪽
173 해의 그림자 172 +6 14.03.09 2,329 39 36쪽
172 해의 그림자 171 +6 14.03.05 2,467 32 39쪽
171 해의 그림자 170 +4 14.03.01 2,759 27 35쪽
170 해의 그림자 169 +5 14.02.26 2,586 29 39쪽
169 해의 그림자 168 +2 14.02.22 2,978 32 30쪽
168 해의 그림자 167 +3 14.02.19 2,083 26 38쪽
167 해의 그림자 166 +4 14.02.15 1,784 30 38쪽
166 해의 그림자 165 +4 14.02.11 2,178 29 40쪽
165 해의 그림자 164 +5 14.02.07 1,920 33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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