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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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파
작품등록일 :
2012.11.1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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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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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4.02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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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 그림자 178

DUMMY

"계세요? 계세요?"


변장한 채로 칼찬 금군들이 약방 마당에 진을 치고 서 있는데 별안간 사립문을 아낙이 요란스레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안에서 문을 걸어잠궜으니 저러다 말겠지 싶었다.


하지만 소란이 잦아들긴 커녕 더욱 심해졌다. 무슨 힘이 그리 장사인지, 아낙은 사립문까지 부술 기세로 더욱 드세게 두들겨대었다.


"아 시끄러!"

"쫓아버려야 되는 거 아니야?"


금군들은 두손으로 귀를 막아도 보고, 문질러도 보며, 고달픈 고막을 달랬다. 마음 같아선 확 칼로 잔뜩 겁을 주어 내쫓고 싶었다. 그들은 동간쪽을 향해 따가운 눈총을 보냈다.


"흥령아..."


동간에서 약틀에 감초를 넣고 자르던 서른줄 중반의 의원이 구석에서 약연에 반하半夏를 넣는 의원을 힐끗 쳐다보았다. 자신보다 한두살이라도 더 어린 의원에게 나가보란 눈짓을 보내는 것이었다.


그러자 반하를 넣던 손이 멈칫했다. 슬며시 인상을 쓰느라 이맛살이 깊어졌다. 그는 이내 약두구리 앞에 웅크리고 앉은 머슴아이를 불렀다.


"흥성아..."

"예, 나으리."


미루고 미루다 자신의 차례까지 왔다. 머슴아이가 한숨섞인 대답을 했다. 그리곤 엉거주춤 동간을 나섰다. 당장 이 소란을 일으키는 아낙을 내쫓아야 했다.


하지만 막상 사립문 앞에 이른 머슴아이는 사립문 너머로 비치는 아낙의 떼꾼한 눈을 보니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아기를 잃을까 공포로 꺼져 들어가던 눈동자에서 다시 지펴올린 희망의 불씨를 보니, 도저히 그 불씨를 자신의 손으로 꺼뜨리고 싶지가 않았다.


"내 아기가 아파...많이..."

"..."


아낙이 어린 머슴의 두눈에 띄도록 아기를 높이 쳐들어보였다. 어린 머슴은 벌겋게 불덩이가 되어버린 아기를 보고 더욱 갈팡질팡했다. 아기가 고통에 겨워 조그만 입술을 꿈틀거리는 모습을 보니 자신의 심장도 따라서 꿈틀거렸다. 마치 한여름 장마에 지붕에서 비가 새는 느낌이었다.


"제발...살려줘..."


사립문 손잡이를 쥔 손이 움츠러들었다. 머슴아이는 자신도 모르게 사립문 빗장을 풀어버렸다.


"신의님! 신의님! 이 아이를 살려주세요!"


다 해어진 옷을 입은 서른 즈음의 아낙이 간난아기를 안고 약방으로 뛰쳐들어왔다. 대청마루 앞에 대기하던 장정들은 뜻밖의 사태에 깜짝 놀라 당장 아낙의 앞을 가로막았다.


"어딜 감히..."

"저놈이 미쳤나!"

"문을 왜 열어줘 열어주길!"


금군들의 성난 눈길을 마주하고도 머슴아이는 혀를 쏙 내밀어보이곤 고개를 똑바로 들고 동간으로 들어가버렸다.


금군들이야 당장 쫓아가서 머슴아이를 복날 개 패듯이 패주고 싶은 심정이 굴뚝 같았지만, 지금 당장은 약방에 난입한 이 아낙을 쫓아내야 했다.


"비켜? 비켜요!"


아낙은 당장 마음이 조급한데 장정들이 자신을 대청마루 안으로도 들어가지 못하게끔 막아서자 안달이 났다. 하지만 순순히 그녀를 대청마루로 들일 그들도 아니었다. 아낙이 그들을 무시하고 대청으로 다가서려 하면 할수록 그들은 아낙의 어깻죽지를 한손아귀에 힘껏 움켜쥐고 놓아주질 않았다.


"어허, 어느 안전이라고!"

"나중에 오거라. 저 안에 귀한 분이 계시다."

"비켜! 비키라니까! 당장 내 아이가 죽게 생겼는데!"


아낙은 자신의 어깻죽지를 파고드는 손톱 끝에 눈물이 쏙 빠질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어떻게든 장정들의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몸부림을 쳤다. 이제 하나 뿐인, 하나 남은 이 아기의 목숨만큼은 세상 그 누구와도 타협할 수 없었다.


대청마루에 앉아있던 석정과 석하는 흠칫 놀란 얼굴로 사태를 지켜보았다. 당장 이 약방에서 남는 방은 한칸도 없었다. 서간에선 중궁이 치료를 받는 중이고, 또 그런 중궁을 누가 채어가기라도 할까 봐서 왕이 두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보는 마당에, 게다가 그나마 남는 대청마저도 자신들이 차지한 터였다.


"웬 소란이냐?"


왕의 옥음이 서간에서 들려왔다. 석정이 긴장한 눈빛으로 서간 장지문을 쳐다보니, 왕의 손끝이 희미하게나마 달라붙었다. 벌써 왕이 장지문을 열고 나서는 참이었다. 그것도 몹시 날카롭게 신경이 곤두선 채로.


"중궁이 치료를 받는 중이다. 어찌 소란을 피운단 말이냐?"


왕의 나직한 음성을 아낙은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녀는 품안의 아기가 너무 뜨겁고 축축하여, 품속의 아기가 너무 괴롭게 입을 오물거려서, 머릿속이 그저 아득할 뿐이었다.


"신의님! 안 계셔요? 나으리!"

"무슨..."


마침내 동간에서 약재들을 말리고 다듬던 서른줄 초중반의 의원이 빼꼼히 얼굴을 내밀었다. 아낙은 동간에서 얼굴을 내비친 서른줄 중반의 의원을 보고 한가닥 희망을 만난 표정이 되었다.


"신의님 되세요?"

"나? 나 아닌데..."


아낙은 품안의 아기를 더욱 소중히 보듬어 안았다. 아기는 달뜬 숨결을 겨우 내쉬면서 칭얼거렸다.


"그럼 그분 아드님..."

"아...뭐 저기..."


서른줄 중반의 의원은 반하가루를 쌈지에 담아서 침통과 함께 침함에 챙겨넣더니, 등뒤의 한두살 어린 의원을 손가락으로 가리켜 보이곤 뒷문으로 쏙 나가버렸다.


"어어?"


서른줄 초중반 의원이 어이 없는 얼굴이 되었다. 하지만 이내 아낙이 달려들어 그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사, 살려주세요 나으리!"

"왜, 왜 이래..."


신의?


숙종은 미간을 찡그리며 약방을 둘러보았다. 신의라면, 백광현을 말하는 건데. 하지만 고작 삼간짜리 약방이 백어의네 약방일 리가 없었다. 의원이 둘씩이나 있고 여의까지 있는데도 삼간 규모라면 더더욱.


"어후, 요새는 개나 소나 다 신의라고 하니..."


갑자기 숙종의 뒤에서 석정이 능청스레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혼자 남은 서른줄 초중반의 의원이 콧잔등을 찡그리며 석정을 흘겨보았다. 석정은 눈썹을 꿈틀대며 의원의 눈길을 피했다.


숙종은 피식 웃었다. 가끔 석정은 웃는 낯으로 사람 염장을 긁을 때가 있었다. 하긴, 엔간히 병자들을 잘 고쳐도 신의라는 허황된 명성을 얻는 판에, 속단할 수는 없었다.


"우리 칠구 좀 살려주세요! 일곱에서 다 죽고 이 아이 하나만 남았습니다! 제발! 살려주세요!"


아낙의 몸부림에 의원은 뒤로 펄쩍 뛰며 서너발짝 뒷걸음질을 쳤다. 대청 옆문틀에 기대어 지켜보던 숙종은 흠칫했다. 칠구? 일곱에서 다 죽고 이 아이 하나만 남았다?


왕실에서야 워낙 손이 귀하지만, 기실 여염에선 일곱이고 여덟이고 아이를 낳아서 손이 흔하였다. 그래서 숙종의 귓가엔 마냥 낯설게 들렸다. 그것도 일곱 자식이 다 죽고 이 아이 하나만 남았다니.


"나으리들 소문 듣고 왔습니다. 없는 사람한텐 없이 고쳐주신다구요. 그러니..."


의원이 대뜸 손사래를 치며 상체를 뒤로 젖혔다. 하지만 그럴수록 아낙은 상체를 앞으로 숙이고 그의 소맷자락을 부여잡았다.


"그건 나 아니오."

"아깐 맞다고 하셨잖아요."

"글쎄 나 아니래도! 나 아니야! 아니라고!"

"맞구먼요! 신의님도 훌륭하신 분이시고, 그 아우도, 그 아드님도 다 훌륭하신 분이라고, 소문을 들었구먼요!"

"아니 난..."


뿌리치기도 버겁다 보니 의원은 고개를 돌려 대청 위의 석정과 석하를 번갈아서 흘겨보았다. 마치 이 모든 사달이 최석정인 양, 왜 자신을 도와주지 않느냐고 두눈 가득 애원과 원망을 담아서. 하지만 석정은 능글맞게도 눈썹을 꿈쩍하곤 그대로 고개를 돌려버렸다. 석하 역시 애써 웃음을 참으며 그의 곤경을 외면해버렸다. 체건은 아예 담을 훌쩍 넘어 어디론가로 가버렸다.


"나으리! 제 아이를 살려주세요! 이 아이마저 잘못되면 저는...저는 여기서 확 혀 깨물고 죽어버리렵니다!"

"글쎄 지금은 안돼. 돈이 있든 없든 안돼!"


의원은 곤란한 표정으로 대청을 다시 돌아보았다. 저 약관의 선비는 한눈에도 범상치가 않았다. 얼마나 귀한 사람인지 몰라도, 부응교인 최석정과 재산루의 김석하는 물론 예닐곱씩이나 칼찬 장정을 이끌고 와서 반시진 동안은 환자를 받지 말라면서 은한냥을 내어놓았다. 아내는 사내의 손을 타면 안된다며 치료도 서모庶母에게 맡겼다. 최석정이며 재산루의 김석하가 허리도 펴지 못하는 모습도 심상치가 않았다.


이리 딱한 환자들은 이미 이골이 났다. 가난과 기아로 허덕이다 뗏장 같은 자식을 잃게 생긴 부모들의 사정이 처음 한두번은 안타까워 무료로 치료해주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선팔도에 그리 딱한 사정을 가진 부모들은 밑도 끝도 없이 많았고, 꾸역꾸역 밀려드는 공짜 환자들을 당해내기도 힘들었다. 몸이 배겨나질 못하였다. 결국 수련을 쌓는다는 핑계로 광통교를 떠나서 그렇게 이동네 저동네 떠돌다가 겨우 돌아온 터라, 이제는 넌더리가 나서라도 공짜로 치료해주는 짓은 하지 않았다. 더욱이 반시진은 환자를 받지 않기로 은자까지 받은 마당에.


의원은 석정과 석하를 향해 도움을 청하는 눈길을 끈덕지게 보냈다. 자신의 곤경을 정녕 모른척 할 것이냐는 원망과 푸념이 짙게 배어나는 눈초리였다. 아예 입가며 콧등까지 실룩거리면서 그는 입술로 계속 의리義理 운운하는 참이었다. 의리도 없냐, 의리는 갖다 버렸냐...누가 보기에도 친분이 있는 사이라는 것을 눈치챌 만큼 절박한 눈짓, 손짓, 발짓까지 점점 격렬해졌다.


"..."


하지만 석정에게도 결정권은 없었다. 당장 중궁의 속살을 남이 보는 것도 싫어서 약방에 환자를 일절 받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한 왕이, 이 아낙과 아기를 받아줄 리가 없었다. 그렇다고 아낙과 아기를 내쫓는 쪽이라면 더욱 들어주고 싶지도 않았다. 마침 단비처럼 왕의 옥음이 석정의 갈등을 씻겨주었다.


"대청을 비워주도록 하여라."


숙종은 이 많은 환자들이 득시글거리는데 자신이 아무리 아끼는 이들이라 해도 팔자좋게 앉아있는 꼴은 차마 두눈 뜨고 볼 수가 없었다.


물론 석정과 석하 역시 편히 두 다리 뻗고 앉아있을 위인도 아니었다. 벌써 이들은 안절부절하여 두손 두발을 움츠렸다 폈다, 입술을 꼬집었다 놓았다 하는 참이었다.


왕의 윤허가 일단 떨어지자 석정과 석하는 대청에서 내려서서 신을 신고 축대 모서리에 걸터앉았다. 그러자 아낙이 냉큼대청으로 올라서며 품안의 아기를 달랬다.


"칠구야 좀만 참아...나으리가 널 고쳐주신대..."


하지만 의원이 대청에서 아기를 치료하는 사이, 또 다른 환자가 찾아들었다. 이번엔 또 웬 중년사내와 서너살 된 계집아이였다.


"백의원님! 제 딸이 다 죽어갑니다요!"

"..."


채 일각이 되기도 전에, 꾸역꾸역 병자들이 모여들었다. 아픈 아들딸을 양 어깨에 둘러업고 들이닥친 사내도 있었다.


"백의원님! 제 아비가, 제 아비가..."

"나 먼저, 내가 먼저 왔소!"

"내가 더 급해!"

"이거 왜 이래?"

"아우 귀야! 조용히 좀 하라고!"

"아이 진짜..."


숙종은 이제 저들을 내칠 수도, 들일 수도 없게 되었다. 도대체 이 조그만 약방이 왜 이리 이름이 나서 여기저기서 병자들이 모여드는 건지. 게다가 저 의원들은 백어의의 아들뻘 되는 나이에 무슨 환자들이 이리 많이 몰려드는 건지. 보아하니 약재도 별로 없는 판에. 헌데 방금 환자 한명이 백의원이라 불렀다면...


"백의원...백어의의 집이...이 부근이라 하였지 아마? 허면 저자는..."


그제야 숙종이 한가지 짚이는 구석이 있어서, 석정을 돌아보며 물었다. 석정은 얄궂게도 눈썹을 꿈틀하며 숙종의 눈길을 회피하는 참이었다.


"..."

"..."

"..."


어느틈에 체건은 내빼고 없고, 석하도 나 몰라라 하는 참이었다. 석정은 집요하게 들러붙는 숙종의 시선을 뿌리칠 수가 없어서 답하고 말았다.


"저자는 백흥령이라고, 어의 백광현의 장남이지요. 아까 뒷문으로 나간 그자는 백광린이라고, 백어의의 막내아우입니다."

"그걸 왜 이제야 말하는가?"


숙종이 눈을 흘겼지만 석정은 목화 끝이나 내려다 보면서 발 끝으로 마당의 흙을 툭툭 긁어댔다. 애초부터 이 약방이 백광현과 관련이 있기에 중궁을 이리로 데려오려 하였다. 환자들이 돗대기새우처럼 득시글한 이곳을 중궁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중궁은 이 환자들을 보면 무언가 깨닫는 것이 있을 터였다.


그리하여 중궁을 모시고 궐밖으로 나서는 조건으로 광통교의 약방을 찾아달라 조건을 내건 것이었다. 우연인지 필연인지, 중궁은 허벅지에 깊은 상처를 입고서 이곳 약방을 거쳐가게 되었다. 어쩌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일 지도 몰랐다. 중궁이 스스로 자신의 허벅지를 찔러 상처를 입힌 것일 지도 몰랐다. 약속은 약속이니 어떻게든 지키겠다는 일념으로.


"저 서간은..."


어느새 머슴아이가 그들에게서 받은 은 한덩이까지 도로 내어놓으며 하는 말이었다. 이미 대청이 미어터지고, 서간마저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다른 환자들을 위해서라도 서간 또한 비워주길 바라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을 소리였다. 왕이 서간을 양보할 리가 없었다. 서간은 중궁이 치료를 받는 곳이었다. 중궁을 저리 비루하고 불결한 병자들과 한방에 둘 왕이 절대로 아니었다. 석정은 자신의 두손이 으스러지도록 힘껏 맞잡고서 그저 중궁의 치료가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릴 뿐이었다.


그때 서간의 장지문이 스르륵 열렸다. 문틈이 벌어지자, 대청에서 치료받던 병자들과 숙종 일행의 눈길이 일제히 문틈으로 쏠렸다. 중궁을 치료한 여의 정씨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정씨가 손에 화제和劑(처방)를 접어 쥐고 문턱을 넘어섰다.


"작은어머님!"


의원이 구원병을 만난 것만 같은 얼굴로 정씨를 쳐다보며 일어서려는데, 한발 먼저 숙종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그녀는 어떤가?"

"치료는 다 마쳤으니 상처를 깨끗이 관리만 잘하시면 되지요. 앞으로 한두번 더 내방을 하시면..."

"내방은 되었다. 탕약이나 다오."

"하오나..."

"어서!"

"예, 나으리."


여의 정씨는 마지 못해 답하고선 동간에서 약틀에 약수건을 깔던 머슴아이를 소리쳐 불렀다.


"흥성아, 이 화제대로 약을 달여오너라."

"예 어머니."


어린 머슴이 동간에서 냉큼 달려와서 두손으로 공곤히 화제를 받아들었다. 어머니? 머슴아이의 옆얼굴을 쳐다보는 숙종의 눈길이 의미심장하게 반짝였다. 머슴아이가 도로 동간으로 달려가버리자, 숙종은 여의 정씨에게 의미심장한 눈길을 건네었다.


"헌데, 자네는 낯이 익군?"

"저...말이옵니까?"


여의 정씨가 의아한 얼굴로 숙종을 쳐다보았다. 무슨 소리를 하는 지 알 수가 없었다. 눈을 내리깔라고 금군들이 마당에서 검 손잡이를 고쳐쥐고 자신에게 사납게 눈총을 보냈지만, 숙종의 정체를 짐작도 못하는 그녀로선 그저 눈만 멀뚱거릴 뿐이었다.


"전에도 여기 약방을 찾은 적이 있으시온지..."

"아니, 여긴 처음이다."

"허면 저를 보셨을 리가 없습니다."

"분명히 자네 얼굴이 낯이 익어."


숙종은 고개를 살짝 틀어 이리저리 시각을 바꾸어 정씨의 얼굴을 요모조모 살폈다. 여의의 연령이 얼추 마흔 안팎으로 보였다. 한눈에도 곱디 고운 미태美態가 어딘지 눈에 익었다. 진홍을 치료하는 모습을 보면서도 계속 눈여겨 봐두었다. 하지만 좀처럼 기억의 실끝을 바늘구멍으로 잡아당길 수가 없었다.


"자네...혹시 의녀였던가?"

"..."


그걸 어떻게...숙종을 보는 정씨의 시선이 의혹으로 비스듬히 기울었다. 그러고 보니 서간의 여인은 금떨잠에 허벅지를 다쳤다 하였다. 서간에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한손에 금떨잠을 쥐고 있었다. 조선팔도에 금떨잠을 손에 쥘 여인이라곤 오직 하나였다. 하지만 자신은 그 여인의 얼굴을 몰랐다. 방안에 있는 여인이 그 여인이 맞는지도 확신이 없었다. 자신을 보고 낯이 익다면서 내의녀 출신이냐고 묻는 이 사내는 대체 누구란 말인가.


"그걸 어찌..."

"궐에서 자네를 본 듯 하이."

"하지만 저는 14년전에 궐을 떠났사온데...혹시 절 숙경공주방淑敬公主房에서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숙경공주방?"


숙종은 눈밑을 실룩이곤 여인에게서 눈길을 떼었다. 그저 낯이 익어 잠시 호기심을 두었을 뿐이었다. 중궁을 치료한 손이라 더욱 관심이 갔을 뿐이었다. 이왕이면 눈동냥 귀동냥으로 어설프게 의술을 익힌 돌팔이보단 궁방 소속으로 초학의初學醫부터 간병의看病醫, 내의녀內醫女의 단계를 체계적으로 차근차근 밟은 의녀인 편이 좋았을 뿐이니.


더는 말을 않고 입을 다물어버린 숙종을 보면서, 정씨는 더욱 의아한 표정이 되었지만, 이내 관심을 끊고 자신의 아들에게 한번이라도 더 시선을 주었다. 아들은 동간에서 놋쇠 약두구리를 들고 바삐 돌아다니는 참이었다.


약두구리...


정씨는 갑자기 머릿속을 횃불이 비추듯, 횃대에 걸리듯, 놀란 눈빛으로 숙종을 돌아보았다. 자신이 의녀를 그만두기 전까지만 해도 당시 동궁을 지칭하는 은어가 하나 있었다.


금두구리...


놋쇠가 아닌 금으로 만든 탕약기란 말로 허구한 날 골골대며 탕약을 달고 사는 동궁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때 동궁이 고작 여섯이었으니 지금쯤 약관이 되었을 터였다. 지금 눈앞의 사내처럼.


"아니...시지요?"

"..."


무슨 생각으로, 무슨 말을 묻는 건지, 스스로도 모를 만큼 두서 없는 질문이었다. 정씨는 두손이 후들거려서 치맛자락을 힘껏 틀어쥐었다. 머릿속이 온통 멍하였다. 제생원에서, 내의원에서, 암암리에 금두구리로 통하던 그때의 동궁이, 지금의 왕이 눈앞에 있다니. 이렇게 가까이 있다니.


정씨는 괜한 불안에 주변을 둘러보았다. 혹시라도 왕이 여기서 잘못될까 두려웠다. 정씨는 안절부절하여 약방 안을 둘러보았다. 마당이며 대청에 득시글한 병자들 틈에 누군가 끼여 있진 않는 지. 어쩐지 마음이 놓이질 않아서 구석구석 살피면서 그녀는 눈앞의 사내가 왕이 아니길 바라는 마음으로 조심스레 쳐다보았다.


정말로 왕인가, 왕이면...


하지만 숙종은 대답없이 동간을 쳐다보았다. 어린 머슴이 이번에는 기나긴 나룻배 모양의 약연 앞으로 다가들어 연차를 굴리면서 약을 찧느라고 낑낑대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머슴아이가 정씨를 어머니라 불렀고, 또한 백흥령은 정씨를 두고 작은어머니라 불렀으니, 정씨는 필시 백광현의 첩실일 터였다. 정씨는 숙종이 대답을 않자 슬그머니 자리를 떠서 동간으로 가서 어린 머슴에게 낮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성아, 병주는?"

"병주형이요? 안왔어요 아직."

"그래?"

"예, 근데 왜요?"

"병주 오면, 아무 소리 말고 오늘은 들어오지 말라 이르거라."

"예? 왜요? 가끔 와서 거드는 게 좋댔잖아요."

"오늘은 안된다. 이 안에 발도 못 디디게 해."

"어머니?"

"..."


흥성은 의아히 정씨를 쳐다보았다. 일손이 하나라도 더 필요한 법인데, 어미는 오히려 병주를 들이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도대체 왜? 흥성은 납득할 수가 없어서 입을 비죽였다. 자신과 병주는 씨가 다르고 성이 다르긴 하지만 각자 천한 어미의 신분을 따라 똑같은 노비 신세였다. 물론 자신은 좋은 주인을 만나서 노역을 하지 않고 이렇게 약방에서 형님 일이나 거들며 의술을 익히는 것이 좋았다. 그래도 구김이 생긴 마음 한귀퉁이는 도저히 펴지지 않아서, 같은 처지인 병주를 보며 조금씩 위안을 삼는 터였다. 그런 병주를 오지 말라 하다니?


하지만 어미는 더는 설명을 해주지 않고서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대청으로 돌아갔다. 영문을 알 길이 없어 그저 답답했다. 대청에 올라서 약관의 선비의 눈치를 보듯 머뭇거리는 어미를 보니 그저 기분이 이상했다.


"무슨 얘길 한 건가?"


숙종은 의아히 이쪽을 보는 흥성의 눈을 정씨의 어깨너머로 내려다보며 물었다. 정씨는 흠칫 놀랐지만 이내 태연한 척 둘러대었다.


"탕약은 다 달였나 물었사옵니다."

"그래? 아들인가?"

"예? 예..."

"의녀가 어의 백광현의 첩실이 되어 있다...?"

"간병의에 그치고 궁노로 돌아갔으니, 제 주인인 숙경공주께오서 저를 백어의와 맺어주셨지요."


정씨의 조곤조곤한 대답에 숙종은 가만히 어린 머슴을 쳐다보았다. 흥성이라 했다. 장남의 이름은 흥령...백광현은 비첩婢妾의 소생에게도 돌림자를 붙여주었다. 하지만 호칭 만은 바꾸질 못했다. 형에게 나으리라 불러야 하는 아우의 마음이 어떠할 지는 이복동생조차 없는 숙종으로선 감도 잡히질 않았다. 그저 막연하게, 뭔가 가슴 속에서 어긋나는 기분이 들었을 뿐이었다.


"여긴 항상 이렇게 병자들로 붐비는가?"

"좀...분잡하지요?"

"나쁘진 않구나. 지킬 게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리니."

"동시에 잃을 게 많은 사람들이기도 하지요."


석정의 음성이 날카롭게 끼여들었다. 숙종은 뭔가 가슴 속에 앙금을 차곡차곡 쟁여놓는 눈빛으로 석정을 돌아보았다. 눈빛에 매서운 칼끝이 번뜩였다.


"내 분명히 경고했었소. 중궁을 다시 만나면 아무리 사부라도 가만두지 않겠다고."

"중궁전하께 보여드려야 했습니다. 재산루에 인질로 결박되어 있는 그분의 영혼을. 그리고 이곳 약방에도 돗대기새우처럼 허여멀겋게도 득실거리는 희망이란 놈을. "

"..."


숙종이 할 말을 잃고 대청 안의 환자들을 내려다보았다. 이미 약방 사립문은 활짝 열린 터였다. 하지만 대청 안은 이미 미어터졌다. 언제까지고 환자들을 땡볕에 방치할 수가 없었다. 서간을 열어 저들을 중궁과 한방에 둬야 할까. 그럴 수는 없었다. 자신은 여기서 병자들과 한뼘의 틈도 없이 함께 있을 수는 있어도, 중궁은 안되었다. 여인인 중궁은 그럴 수 없었다. 까다롭고 까탈스런 조선 예법으로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갑자기 부드럽게 팔꿈치를 잡는 손길이 느껴졌다. 숙종이 흠칫 놀라 돌아보니 얼굴이 창백해진 중궁이 어느 틈에 다가와 있었다. 유독 귀가 밝은 숙종이었지만 워낙 대청 안이 시끄러운 탓에 중궁이 서간 장지문을 열고 나오는 줄도 몰랐다. 해연히 놀란 숙종의 눈앞에 해사히 웃는 진홍이 있었다.


"왜 벌써 나왔소?"

"이만 돌아가고 싶사옵니다."

"하지만 그 몸으로..."

"집에 가고 싶사옵니다."

"집?"


숙종은 궁을 집이라 부르는 진홍의 말에 귀를 의심했다. 집이라니...기분이 이상했다. 궁을 집이라 부르다니. 물론 대청안에 복작거리는 환자들을 의식하여 궁을 집이라 바꿔 말한 것이겠지만, 이상하게도 듣기 좋았다.


집? 집?


숙종이 계속 뇌까려보는데, 진홍의 눈길이 가만히 환자들을 굽어보았다. 마침 의원이 겨드랑이에 침통을 끼고서 어느 간난남아의 두눈을 살피고, 또 손목의 맥을 짚어보는 참이었다.


"한시름 놓았네."

"정말요? 정말요?"

"그래. 칠구라 했던가? 일곱째는 살렸으이."

"아이구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나으리..."


눈시울이 붉어져서 의원에게 거듭 허리를 숙이는 아낙을 보면서, 진홍은 목울대가 출렁일 정도로 힘겹게 마른침을 삼켰다. 이미 그녀의 눈시울도 붉어져 있었다. 코끝이 찡해진 채로 진홍은 칠구라 불린 아기를 내려다 보았다.


"일곱째..."

"..."

"일곱째..."


진홍의 혼잣말에 아낙은 의아히 고개를 들었지만 진홍에게 더는 눈길을 주지 않고, 자신의 소중한 아들을 품에 꼬옥 끌어안았다. 하마터면 잃을 뻔한 아기라서, 더욱 애틋하고 소중했다. 여기 있는 선비들이 누군지, 청단령의 관료가 누군지, 또 서간을 독차지했던 여인이 누군지 알 바가 아니었다. 세상에 오직 자신과 아기, 그 둘만 있었다.


"최사부"

"..."

"내게 여기 약방에 들러달라 조건을 내건 이유가 이것이었소?"

"..."


석정은 무사히 살아난 간난아기를 보며 기뻐하느라 미처 중궁의 호명에도 대답하지 못했다. 뒤이어 들려온 중궁의 옥음을 듣고서 고개를 돌렸더니, 중궁의 애잔한 눈길이 대청 안의 환자들을 굽어보는 참이었다. 석정은 중궁과 눈길을 마주치는 것도 송구스러워서 왕의 눈치를 보다가, 왕의 쇠꼬챙이 같은 눈길에 부딪혔다.


"사전에 둘이 여기 약방에 들르기로 얘기가 되어 있었던 거요?"

"예, 그랬지요."

"허면 중궁이 다친 것도, 일부러 그런 거요?"

"..."


진홍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시울을 붉힌 채로 애써 두눈에 초점을 지키면서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그런 진홍을 보는 숙종의 눈밑이 실룩였다. 어이가 없었다. 약속대로 여기 약방에 들르겠다고 자신의 허벅지에 그토록 큰 상처를 냈다는 말인지. 그러니까 자해自害를 하였단 말인지. 놀란 숙종의 귓전에 석정의 예리한 힐난이 들려왔다.


"여생麗生이란 분이 너무 여생餘生을 버리십니다."

"..."

"남들은 살자고 덤빌 일에, 죽자고 덤비시니..."

"..."

"하여 이리로 모셨습니다. 아이를 세번 잃은 것은 분명히 단장斷腸의 아픔이나, 단명斷命의 이유는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우쳐 드리기 위함이지요."

"..."

"국모의 신분으로 백성 앞에 엄살 떨지 말라, 이 말입니다."

"..."


석정의 뼈 아픈 충고에 진홍은 할 말을 잃었다. 초개와 같이 목숨을 던지려 들던 자신을 꾸짖으니 머리를 한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궁에 갇혀 살던 자신이야, 권모술수에 휘말려 용종을 세번이나 잃었으니, 세상이 끝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석정의 표현대로 돗대기새우 같은 희망을 이곳 약방에서 보고야 말았다. 자식을 일곱 낳아 겨우 하나 건진 인생, 아비를 잃고 홀로 살아가는 인생, 친형을 나으리라 부르는 인생...


"애낳아 반타작이란 말도 있는데, 이제 셋을 잃었으니, 앞으로 셋은 더 얻으셔야지요."

"애낳아 반타작..."


방금 전까지 매섭게 진홍을 꾸짖던 석정은 이내 은근한 음성으로 그녀를 위로했다. 자신의 딸보다 몇살 더 많을 뿐인 중궁을 어르고 달래어, 그녀의 꺾인 무릎을 바로세울 심산이었다.


"사부는 무슨 말을 그리 함부로 하시오? 누구 마음대로?"


시큰둥히 끼여드는 숙종의 음성에 석정과 진홍은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그들의 얼굴 틈새로 숙종이 심드렁한 얼굴을 붙이고서 말을 이었다. 그 와중에도 진홍의 희고 고운 손목을 힘껏 틀어쥐며.


"셋이 아니라 넷, 다섯은 더 낳을 거니 걱정 마시오."

"..."


진홍은 그저 자신의 손목을 붙든 지아비의 손을 내려다 보았다. 아이 셋을 품고 또 잃는 동안 죽을 만큼 힘들었다. 하나는 탯줄을 끊기 전에 잃었고, 둘은 탯줄을 끊고서도 잃었다. 그런 고통을 사내들은 모르는지 말을 쉽게도 한다. 하지만 야속한 마음 이전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푸른 힘줄이 도드라진 지아비의 어수御手를 보니 더욱 안심이 되었다.


"갑시다."


숙종은 그대로 진홍의 팔을 잡아끌고 대청을 나섰다. 달항아리 속의 콩나물처럼, 혹은 돗대기새우처럼 빼곡한 인파 속을 헤쳐나가려니 하필이면 앉아있던 누군가의 팔꿈치가 다친 허벅지를 스쳤다. 진홍은 화끈한 통증에 입시울이 온통 얼얼해졌다. 걸음을 멈추자 지아비가 의아히 쳐다보았다. 눈밑이 떨리는 것을 애써 두눈 감고 버티면서, 진홍은 힘겹게 걸음을 옮겼다.


헌데 대청 끝에 이르자 먼저 흑혜를 신어버린 지아비가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 다시금 자신의 등에 바짝 붙였다.


"업히시오."


이번에도 순전히 업어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남의 손이 닿는 것이 싫어서일 터였다. 지아비는 자신의 사람과 물건에 대한 애착과 집착이 유독 심했다. 그렇게 자기중심적인 성품 탓에 몸과 마음을 지치고 다치게 할 때도 많았다. 하지만 심장이 펄떡펄떡 뛰게 만드는 기분도 들었다.


진홍은 타는 듯이 붉은 입술을 숙종의 귀밑에 묻었다. 무슨 말인가를 하고 싶은데, 잘 생각이 나질 않았다. 그런데 먼저 지아비가 고개를 옆으로 바짝 돌리고 입을 열었다.


"나한테 미안하지 않소?"

"예?"

"그...허벅지 말이오."

"..."

"참 이상하지. 중궁이 피를 흘리면 가슴이 아린 것이, 나도 피를 흘리는 것 같으니."

"..."

"아무래도 심장이 붙어버린 모양이야."

"..."

"그러니 한방울의 피라도 함부로 흘리지 마시오."

"..."


진홍은 차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가슴을 지아비의 등에 붙이고 있으니, 정말로 두 개의 심장이 붙어버린 느낌이었다. 이 지독한 집착은 아마도 불안 탓일 터였다. 서로가 서로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두려움이 심장을 꿰뚫어서 그대로 꿰매어버린 모양이었다.


"병주형, 왜 왔어?"

"왜 오다니?"

"..."

"너 뭐야? 왜 이래?"

"그게...어머니가 이따가 오라셔."

"뭐? 작은외숙모님이?"

"쩌기 저분들 가고 나면 오라셔."

"항, 저분들이 누군데?"

"몰라. 그니깐 빨리 가."


열서넛 된 아이들이 속닥거리는 소리가 고막을 살살 간지럽혔다. 진홍은 왠지 이상한 기분에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여기가 백광현의 아들 백흥령의 약방이라던가. 지아비의 등에 업힌 채로 사립문을 나서면서, 금군들이며 최석정과 김석하가 호위하듯 바짝 붙어서 걷는 동안, 병주라는 아이의 호기심 어린 눈길이 집요하게 따라붙었다. 자신과 지아비의 발끝에서, 혹은 손끝에서 떨어지지 않는 그림자처럼.



"네가 만희냐?"


침방나인 처소에서 방문을 열어놓고 문턱에 걸터 앉은 채로 이제나 저제나 중전마마께서 돌아올까 목을 빼고 기다리는 우희의 머리 위로 검은 보자기 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고개를 들어보니 웬 검은 멧돼지 같은 관료가 시뻘건 관복을 입고 자신을 내려다보는 참이었다. 우희는 두눈을 멀뚱거리면서 그를 올려다 보았다.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시꺼먼 얼굴이라선지 그 풀기 없는 시선은 파고들지도, 들러붙지도 않았다.


"아닌데요."

"김만희, 아니냐?"

"최우희, 이옵니다만."


우희는 시큰둥히 대꾸했다. 갑자기 통명전 안으로 걸어들어와서 자신에게 말을 붙이는 이 시꺼먼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아니, 그래도 평소 같았으면 반감이 생기지 않았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은 마냥 성가셨다. 중궁이 벌써 두시진 가까이 통명전에서 사라진 터였다. 성미 급한 왕이 다짜고짜로 자신을 찾아와 굴뚝처럼 머리꼭대기에서 김이 펄펄 나는 듯한 얼굴로 있는 속 없는 속 다 뒤집어놓고 갔다. 오래전 중궁이 궐을 나섰을 때에도 우희 자신 때문이었다며, 이번에도 우희 때문이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그런데 한방살이를 하는 고상궁이 어디서 일거리를 한아름 안아들고 와선 다짜고짜로 그녀에게 떠넘긴 참이었다. 춘사월이라 봄도 다 간 마당에, 벌써 후원 여기저기에 불두화가 탐스럽게 핀 마당에, 왜 고상궁은 자신에게 홑베개잇이며 홑이불잇을 들고 와서 세누비를 놓으라는 건지. 이제 열한살이 된 자신을 이리 부려먹어도 되는 건지. 중전마마께 하소연하고 싶어도, 당장 중전마마께서 사라지고 없었다. 측근인 상아가 홀로 서온돌을 지키다 전하께 혼쭐이 났으니.


- 그, 그림을 찾으러 간다고 하셨사옵니다.

- 그림?

- 예, 재산루에...희, 희초도를 찾으러 가신다고.


두번째 출궁이셨다. 왕은 불같이 진노하여 우희 자신을 볶아쳤다. 중전마마께 무슨 일만 생기면 우희 자신을 달달 볶았다. 왜들 자신을 못살게 구는 건지. 중전마마께서 사라지고, 통명전이 발칵 뒤집혀서 아무도 통명전을 떠나지 못한 채로 대비전과 이 멧돼지 같은 나으리가 이리로 듭시었다. 헌데 대비전이 치맛자락을 펄럭이며 통명전을 나서더니, 왜 또 이 멧돼지 나으리는 이리로 와서 자신을 찾았는지.


"내가 누군지 아느냐?"

"예?"


모를 리가 없었다. 조선의 개돼지로 개는 허견許犬이고, 돼지는 김석저金錫猪라는데. 자신도 모르게 김석저라는 별칭이 혀끝에서 감돌았다. 춘택 도련님은 무슨 제갈공명 떠받들듯 '병판대감' 운운하며 지극한 공경심을 내비쳤지만.


"재산루의 주인이다."

"그럼 중전마마께선..."

"알아보니 중전마마께서 이미 우리 재산루를 다녀가신 모양인데...예서 기다리면 오시겠지?"

"..."


우희는 미처 대답을 못했지만, 김석주를 보는 두눈에선 경계심이 살짝 풀렸다. 일단 중궁에 대한 반가운 소식을 가져다 준 것이 고마웠다. 강남 갔던 제비가 봄소식을 물어다 주듯, 흑저가 중궁의 소식을 물어다 주었으니.


헌데 이 검은 멧돼지 나으리는 기지개를 켜며 입이 찢어져라, 팔이 찢어져라 하품을 하더니, 갑자기 어깨에서 솔기가 뚜둑 터지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그리곤 민망한 양 우희의 눈치를 보더니, 어깨쪽을 잡아당겨 확인하고, 또 다시 우희의 눈치를 보며 머뭇거렸다.


"만희야..."

"..."


우희는 일부러 대답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이름을 틀리게 부르니 상대가 가막쇠처럼 천정에 들러붙어 떨어지지도 않는다던 병판대감이라 해도, 그 무서운 대비전의 사촌오라비라 해도 대답을 하고 싶지 않았다.


"우희야..."


암팡지게 침묵하며 버티는 우희를 보고서 석주는 두눈에 기묘한 웃음을 띠고 은근히 불렀다. 그제야 우희는 이불에 솜을 넣고 세누비를 놓던 손을 멈칫하고 석주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냉큼 대답하진 않았다. 그저 석주의 미어터질 것 같은 얼굴을 쳐다볼 뿐이었다.


"옷이 기어이 터지고 말았구나. 내 요즘 살이 또 찌는 바람에."

"..."

"허니 네가 좀 꿰매주련?"

"소녀가요?"

"그래. 그 세누비 놓는 솜씨를 보아하니 내 터진 어깨시접도 잘 꿰맬 것 같구나."

"..."


우희는 콧잔등을 찡그렸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중궁전 침방 생각시였다. 물론 자신의 앞에서 갑자기 시접이 터졌으니 자신에게 부탁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아직 생각시라 해도, 함부로 외간사내와 말을 섞을 수도 없고, 또 관복을 꿰매주거나 기워주거나 해서도 안되었다.


"나으리, 소녀의 나이가 열한살이옵니다."

"그래? 많이 컸구나."

"열한살이면 이 나이에 입궁하는 생각시들은 앵무새피로 검사까지 하지요."

"그러냐?"

"아시겠어요? 소녀는 외간사내를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사오니, 나으리께오선 댁에 가시어 마나님께 시키시든 따님께 시키시든 하시든지요."


다부진 우희를 살살 구슬리며, 석주가 품에서 은자銀子를 꺼내 살랑살랑 흔들어보였다.


"내 너에게 이 은자를 줘도?"

"..."

"어떠냐? 하려느냐?"

"왜 그렇게 많이 주시려구요?"

"내 체면 값이다. 내가 좀 비싼 몸이니라."

"..."


우희가 마침내 흔들리는 눈빛으로 석주의 손을 뚫어져라 쳐다보는데, 석주가 나머지 한손도 내밀었다. 우희의 두눈 초점이 석주의 두손에 고정된 채로, 그 어깨너머로 반가운 얼굴이 흐릿하게 비쳤다. 우희는 두눈을 깜빡이고 어깨너머를 쳐다보았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는 몰라도, 살갑고 반가운 얼굴이 자신들을 보며 차갑게 굳어 있었다.


"꿰매주겠느냐?"

"..."


우희가 입안 가득 고여버린 군침을 꼴깍 삼키는 순간이었다. 시리고도 맑은 옥음이 고드름처럼 석주의 등줄기를 겨냥했다.


"우희한테서 당장 떨어지시오."


석주는 움찔하여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덧 통명전 뜨락에 중궁이 왕의 등에 업힌 채로 이쪽을 내려다보는 참이었다. 그 뒤로 공손히 시립한 금군들을 놔두고서 왕이 직접 업은 모습을 보니 어딘지 중궁이 불편해 보였다. 헌데 한눈에도 핼쑥하니 얼굴에서 핏기가 하나도 없었지만 석주를 보는 그 눈빛 만큼은 온통 가시가 돋쳤다.


"당장 떨어지시오."

"..."

"중전마마!"


우희의 음성이 밝게 터져나오는 순간, 햇살이 온통 통명전 뜨락으로 쏟아져서 은회색 박석에 부딪혀 영롱한 은금빛을 뿌렸다. 햇살을 삼킨 중궁의 두눈도 흑금색으로 반짝였다. 양지옥처럼 투명하게 반짝이는 얼굴을 왕의 귓불에 바짝 기대고서, 그 부드러운 손가락끝을 왕의 목덜미에 살짝 붙이고서. 아무리 중궁이라 하나 참으로 복도 많은 계집이었다. 감히 왕의 성궁聖躬에 업히다니, 그것도 어려서부터 골골대며 온갖 탕약을 달고 산 탓에 끔찍이도 성체聖體를 아끼는 저 등에 업히다니. 석주의 입꼬리가 조용히 비틀렸다.


"그림은 잘 견식하셨는지요?"

"덕분에 잘 견식하였소."


진홍은 차갑게 대꾸하곤 숙종의 등에서 내려오려 다리를 뻗었다. 숙종은 이마며 귀밑까지 이미 땀이 송골송골 맺힌 채로 힘겹게 진홍을 업은 참이었다. 진홍이 자칫 잘못 떨어질까 조심스레 팔을 잡아 부축하곤 숙종은 금세라도 잡아먹을 듯이 석주를 쏘아보았다.


"외종숙은 참으로 볼모가 많아 좋겠소?"


외종숙? 석주의 입술이 실룩거렸다. 방금 왕은 자신을 외종숙이라 불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사자에겐 예민한 호칭 문제였다. 잠곡 김육의 적장손嫡長孫으로 고故 청풍부원군이 아들보다 귀히 여긴 데다, 대비 김씨 또한 친오라비보다 의지하여 왕 또한 어려서부터 외숙으로 부르며 예우하던 것이, 하루아침에 호칭이 바뀌었다.


"전하?"

"목에 주렁주렁...진주들을 참으로 많이도 꿰어찼으니, 감히 누가 외종숙의 목을 노리겠소?"

"..."

"허나, 그 진주들을 꿴 끈이 끊어지면 진주가 땅에 떨어져 상할 것이고, 그때는 그 끊어진 끈으로 내 외종숙의 목을 조를 것이니, 집에 가서 그 끈이나 잘 묶어두시오."

"..."

"뭐하시오? 어서 가보시지 않고?"


왕의 살벌한 경고에 석주는 온몸이 굳었다. 물론 왕은 자신을 함부로 어쩌진 못할 터였다. 사촌누이인 대비 김씨가 자신만큼은 열두폭 치마폭으로 감싸는 마당에, 어미의 치마폭을 찢어서라도 자신을 해치려고 들진 않을 터였다. 하지만 왕은 경고했다. 진주가 상하면...


"허면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석주는 가만히 중궁을, 그리고 우희를 둘러보았다. 어슬렁거리면서 중궁 앞에서, 다시 우희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서. 막상 자신의 진주들을 보니 여태 끼니를 거르고도 그냥 배가 불렀다. 돼지 목에 진주라고 왕이 은근히 비꼬았어도 마냥 기분이 좋았다.


최우희는 김익훈을, 김익훈은 김만기를, 김만기는 중궁을, 중궁은 왕을, 왕은 최석정을...그렇게 서로가 서로의 발목을 잡아버릴테니, 자신의 두꺼운 목이 더욱 두터워질 터였다.


석주는 자신의 목줄기를 가만히 쓰다듬으면서 느긋하게 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뒷통수를 집요하게 노려보는 왕의 눈길을 통명전 협문을 넘어서야 겨우 떨쳐낼 수 있었다.


"우희야, 이리 나오거라."

"예? 예 전하."


우희가 냉큼 꽃신을 신고 통명전 뜨락으로 쪼르르 달려나오다가 왕의 서슬퍼런 눈빛에 주춤했다. 자신을 보는 왕의 눈빛은 요상하게도 항상 변덕이 죽 끓듯 하였다.


"그, 그림 이리 다오."


숙종은 여전히 왈짜 차림으로 뒤따르던 금군 한명에게 손을 뻗었다. 금군이 검집에 함께 친친 감아놓은 족자의 실끈을 우악스레 풀어서 바치는데도, 숙종은 눈총 한번 주지 않고 덤덤히 족자를 받아들어 우희의 눈앞에 차르륵 펼쳤다.


"이 그림을 똑똑히 봐두거라."

"네?"


우희는 두눈을 깜빡였다. 왕의 곁에서 알뜰살뜰하게 자신을 보며 웃으며 자신을 보던 중궁의 눈동자가 우질부질하게 흔들렸다. 똑똑히 봐두라니? 우희가 듣기에도 이상했다.


"전하?"

"횃불을 가져오라."


왕이 냉기가 뚝뚝 떨어지는 옥음으로 명하자, 또다른 금군 한명이 냉큼 자리를 비웠다. 지아비를 보는 진홍의 두눈이 흑돌처럼 굳어졌다. 벌건 대낮에 횃불이 필요할 이유가 없었다.


"무슨 짓을..."

"..."


숙종은 대꾸도 않고 가만히 우희를 쳐다보았다. 이 영민한 아이는 도토리를 줍는 다람쥐처럼 쪼르르 달려들어 이내 온신경을 집중하여 그림을 훑어보고 살펴보는 참이었다. 뭔가 심상치 않다고 생각해서인지, 해작거리는 듯한 손가락 끝으로 그림의 구석구석 문질러도 보면서, 불기를 들고 쫄레쫄레 걸어가는 어린 스님을, 듬성듬성 털이 빠진 말과 멧새를, 잎이 지고 꽃대만 올라온 상사화를, 금빛 개울을, 요모조모 살피는 참이었다. 우희의 손끝이 희초希草라고 써진 화제畵題에 닿는 순간, 금군이 횃불을 들고 달려왔다.


"전하, 대령했나이다."

"태우거라."


왕이 눈도 깜짝 않고 명하였다. 진홍은 당혹스런 얼굴로 숙종과 우희를 번갈아서 쳐다보았다. 이럴 줄 알았다. 그림이 내포한 전언을 알아차린 왕이 그림을 가만둘 리가 없었다. 아니, 우희를 가만둘 리도 없었다. 진홍은 얼얼하게 굳어버린 왼쪽 허벅지의 통증을 무릅쓰고, 우희에게 다가들어 그 손목을 꼬옥 붙들었다. 벌써 금군이 냉큼 그림을 받아들어 불을 붙이는 터였다. 족자 한귀퉁이에 불이 붙더니, 독한 냄새와 함께 그대로 화르륵 불타올랐다.


"전하, 왜 이러십니까?"

"이미 이 아이 때문에 중궁이 두번이나 궁을 나섰소. 허니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낼 거요."

"..."


숙종을 보는 진홍의 두눈에서 속눈썹이 빳빳하게 굳어지며 초점이 짙어졌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중궁?"

"무슨 이유에서든 상아가 저를 배신하였으니, 그 아이를 내쫓고 대신 이 아이를 본방에 들일 것입니다. 전하께오선 이제 이 아이에게 털끝 하나 건드리실 수 없습니다."


숙종을 보는 진홍의 두눈이 반항심으로 불타올랐다. 검게 흩날리는 잿가루만큼 속눈썹도 짙고, 눈동자도 짙었다. 숙종은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다.


누가 누굴 지키겠다는 건지.


하지만 저 중궁이 한번 고집을 부리기 시작하면 도저히 당해낼 수가 없었다. 어처구니 없게도, 지금 자신을 쏘아보는 맹랑한 눈동자에서 눈길을 뗄 수도 없으니, 오히려 시선이 점점 짧아져서 그 검은 눈동자에 자신이 비치는 것을 보고야 말았으니...


작가의말

1. 소설 앞부분에 백광현의 사연을 슬쩍 묻어놓았었는데, 그때 백광현의 외조카 이름을 쓰지 않은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기는 참입니다. 흥조라고 백광현 외조카의 이름을 쓰다 보니 친조카의 이름에 흥조가 있더군요. 실존인물들을 쓰다 보면 왜 꼭 이름들이 겹치는지. 속편에선 그냥 속편하게 가상인물들을 좀더 활용할까 생각도 드네요.


2. 음주집필...맞습니다. 조금 오글거리는 대사를 써놓고도 나 몰라라 하는 중입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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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0

  • 작성자
    Lv.99 눈겨산환
    작성일
    14.04.02 10:39
    No. 1

    '좋군요'..라는 말외에 다른 어떤 말이 떠오르질 않는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김은파
    작성일
    14.04.15 23:23
    No. 2

    격려말씀 고맙습니다.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8 파리매
    작성일
    14.04.02 14:21
    No. 3

    이것 참... 작가님 참 대단하시네요.
    정사에 기록된 사건들의 감춰진 이면을 상상력 만으로 어찌 이리 풀어내시는지...
    주말에 다시 한번 정주행 하게 만드시네요. 대하역사소설이예요. ㅎㅎㅎ
    항상 잘 보고 있구요,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김은파
    작성일
    14.04.15 23:25
    No. 4

    한붓그리기라던가...상상으로 점을 이어 그림을 그리는 기분입니다. 격려 고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8 뚱뚱한멸치
    작성일
    14.04.02 17:53
    No. 5

    정말 깊이있는 글입니다
    한번 읽기 시작하면 도무지 눈을 뗄 수가 없네요
    한 편을 읽을때마다 심호흡하고 클릭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김은파
    작성일
    14.04.15 23:26
    No. 6

    긴 소설인데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히로와노다
    작성일
    14.04.03 11:47
    No. 7

    누구냐 넌!
    작가님한테 하고픈 말~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김은파
    작성일
    14.04.15 23:26
    No. 8
  • 작성자
    Personacon ANU
    작성일
    14.04.06 17:47
    No. 9

    음주 집필이었군요!
    어쩐지 인물들의 대화에서 술기운이 묻어... =3=3
    최석정이 숙종과 중궁에게 저잣거리에서 직언으로 간하다니..
    작가님의 상상이시겠지만 실제 저런일이 있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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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답글
    작성자
    Lv.17 김은파
    작성일
    14.04.15 23:27
    No. 10

    요즘 슬럼프라 술기운이 쬐금 필요합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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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 그림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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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해의 그림자 193 +4 14.06.28 1,861 36 40쪽
193 해의 그림자 192 +4 14.06.21 2,016 31 41쪽
192 해의 그림자 191 +5 14.06.15 1,838 26 42쪽
191 해의 그림자 190 +5 14.06.09 3,270 38 41쪽
190 해의 그림자 189 +4 14.06.01 2,196 47 41쪽
189 해의 그림자 188 +12 14.05.26 3,055 43 40쪽
188 해의 그림자 187 +8 14.05.22 1,957 31 42쪽
187 해의 그림자 186 +8 14.05.18 2,168 32 40쪽
186 해의 그림자 185 +13 14.05.11 2,178 35 43쪽
185 해의 그림자 184 +12 14.05.05 2,100 37 42쪽
184 해의 그림자 183 +10 14.04.27 1,861 34 37쪽
183 해의 그림자 182 +8 14.04.21 2,182 45 35쪽
182 해의 그림자 181 +8 14.04.15 2,307 32 42쪽
181 해의 그림자 180 +12 14.04.10 1,898 33 39쪽
180 해의 그림자 179 +12 14.04.06 2,126 29 41쪽
» 해의 그림자 178 +10 14.04.02 1,765 31 42쪽
178 해의 그림자 177 +7 14.03.29 1,685 32 41쪽
177 해의 그림자 176 +7 14.03.25 2,322 32 43쪽
176 해의 그림자 175 +6 14.03.21 2,232 38 36쪽
175 해의 그림자 174 +2 14.03.17 2,108 24 39쪽
174 해의 그림자 173 +4 14.03.13 2,259 98 37쪽
173 해의 그림자 172 +6 14.03.09 2,329 39 36쪽
172 해의 그림자 171 +6 14.03.05 2,467 32 39쪽
171 해의 그림자 170 +4 14.03.01 2,759 27 35쪽
170 해의 그림자 169 +5 14.02.26 2,585 29 39쪽
169 해의 그림자 168 +2 14.02.22 2,978 32 30쪽
168 해의 그림자 167 +3 14.02.19 2,083 26 38쪽
167 해의 그림자 166 +4 14.02.15 1,783 30 38쪽
166 해의 그림자 165 +4 14.02.11 2,178 29 40쪽
165 해의 그림자 164 +5 14.02.07 1,920 33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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