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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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파
작품등록일 :
2012.11.1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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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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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 그림자 179

DUMMY

아침 일찍 국청을 떠났던 최석정은 점심 때가 지나서야 돌아왔다. 이미 국청 마당에는 형틀도, 형구도, 죄인도 다 치워지고 없었다.


석정이 엉거주춤 당상청사 문턱을 넘어서니 판의금 이정영의 가시돋친 시선이 석정의 한몸에 꽂혀들었다. 석정은 목젖마저 그 시선에 꿰뚫린 기분으로 무르춤히 뒷발질을 했다. 발뒤꿈치에 문턱이 밟혔다.


"자네, 너무 제멋대로 아닌가?"

"송구합니다."

"자꾸 이러면 내 자네 스승한테 서간을 쓰겠네."

"..."


스승과 친분이 깊은 만큼 이정영은 최석정을 다루는 법을 잘 알았다. 석정은 어깨를 움츠리고 고개를 옆으로 슬그머니 틀었다. 이리저리 코가 꿰인 신세였다.


여기 오면서 생각을 해보았는데, 김석주가 자신만 쏙 빼놓고 문랑들을 재산루로 불러들인 것은 그저 자신이 여생麗生이라 자처하기 위함이 아니라, 오히려 미심쩍게 여겨서 제발로 재산루로 찾도록 자신을 유인하기 위함이었다. 그 그림을 똑똑히 목도하게 하여, 경거망동하지 말라 경고하려는 것이었다.


중궁이 내 손 안에 있다.


그리고, 그런 김석주의 의도는 보기 좋게 주효했다. 일단 자신의 손발을 묶어놓은 셈이니. 덕분에 금부로 돌아오는 걸음만 더뎌졌다. 돌아오기가 죽기보다 싫었으니.


"허적은 문초를 하셨습니까?"

"가서 공초나 받아오게."


석정이 씁쓸히 묻는 말에 이정영도 씁쓸히 답하였다. 명색이 정승인 허적에겐 형문은 커녕 평문도 어려웠다. 언제 왕이 또 변심하여 허적을 도로 영의정에 앉힐 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당장 왕의 눈밖에 찍혀나서 귀양을 갔던 김수항이 돌아와서 영의정의 자리에 앉았으니, 어제의 영의정은 오늘의 죄인이 되더라도, 다시 내일의 영의정이 될 수 있는 터였다. 그러니 그저 서간西間에 가두고 지필묵을 가져다주는 것이 고작이었다.


"서간입니까, 남간입니까...?"

"서간일세."

"아 네..."


석정은 떠름하게 답하면서 고개를 숙였다. 대역죄에 연루되었는데 남간이 아니라 서간이다. 역시 판의금 이정영이라 해도 허적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거물일 터였다. 그런 허적에게서 바로 국청에서 공초를 받아내지 못하고 서간에 지필묵까지 갖다준 모양이었다. 눈물겨운 배려였다. 석정은 괜히 코끝이 간지러워 긁으면서 당상청사를 물러나서 서간으로 향하였다.


"왔는가?"


체념어린 음성으로 허적이 홀로 서간에서 석정을 반겼다. 풀기라곤 하나도 없는 눈빛이었다. 석정은 그의 두눈에 짙게 드리워진 그늘을 보았다. 재상의 신분이라 아직까지 제대로 구문도 못하고 공초 또한 서간의 시원한 그늘 아래에 지필묵을 맡겼을 뿐이었다. 하지만 허적 역시 그 그늘조차 자신을 집어삼키는 기분이 들었을 터였다.


석정은 허적의 무릎맡에 있는 공초를 창살 틈새로 건네받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워낙 장황하여 읽어내리는데도 시간이 걸렸다. 하단부를 읽어내릴 무렵엔 왠지 눈이 뻑뻑해지는 느낌이었다. 석정은 두눈 사이를 손가락끝으로 문지르며 마저 읽었다.


‘事若不諱,

則殿下飮食一節, 必須謹愼,

亦宜深處殿內, 擇內官醇謹者,

使之宗室之出入內庭者, 切禁宜當’

所謂宗室, 卽指柟也。

積之爲國慮患, 若此之深, 聖上想必記憶。

但積有當死之罪,

辜負先王末命,

不能鎭定朝著, 休息生民,

天怒於上, 民怨於下, 此罪也。

不幸生惡子, 到此地頭, 又罪也。


'일이 불휘不諱라면,

전하께서 음식을 일절 근신하시옵고,

또한 전내 깊은 곳에 거처하시옵고,

종실의 내정에 출입하는 자는 순후하고 신중한 자를 골라서 보내시어 절금하시옵소서.'

신이 그때 가리킨 종실이라 함은 곧 복선군 남柟입니다.

이 허적이 나라를 근심함이 이처럼 깊었던 것은 성상께서도 기억하실 것입니다.

다만 이 허적의 죽을죄는

선대왕의 유명을 저버려서

조정을 진정시키지도,

민생을 휴식시키지도 못한 것이니

하늘이 위에서 노하고, 백성이 아래서 원망하니, 이 또한 죄입니다.

불행히 몹쓸 자식을 낳아서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이 또한 죄입니다.


석정은 공초를 끝까지 훑어보곤 두눈을 깜빡였다. 마지막줄엔 미처 생각도 못한 글귀가 적혀 있었다.


不幸生惡子...불행히도 몹쓸 자식을 낳아서...라니...


허적에게 허견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었다. 아들이 원하는 건 무엇이든지 다 들어주고, 그 죄는 열두폭 치마로도 모자라서 천이백폭 천막으로 덮을 정도로 아끼던 아들이었다. 그런 허견을 악자惡子라 칭하며, 그런 자식을 낳은 것도 죄라고 써놓은 허적의 비통한 심정이 부러진 칼날처럼 가슴을 찔렀다.


"가 보게나."


허적은 석정이 자신을 연민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는 것도 보기가 싫었다. 비루해진 자신을 타인의 눈으로 내려다 보기가 싫었다.


이미 돈화문 앞에서 이곳 견평방 의금부로 끌려와서 김수항과 굴욕적인 해후를 하였다. 홍포 차림의 새 영의정 김수항이 판의금 이정영을 제치고 국청 호두각 아래 위관석에 앉아서 백포 차림의 자신을 내려다보면서 꺼낸 말은 네글자였다.


- 새옹지마塞翁之馬는 이럴 때 쓰는 말이지요.


허적은 그때 자신을 보던 김수항의 기묘한 눈빛을 지우려고 두눈을 감았다. 하지만 아무리 눈을 꼭 감아도 홍단령의 김수항이 자신의 눈꺼풀을 파고들었다. 다시 어심이 손바닥처럼 뒤집힐 수 있을까. 차라리 중궁을 천천히 지우지 말고 빨리 치울 것을. 치워버릴 것을.



다음날 아침 일찍 김수항은 오사모에 백단령을 갖추고서 두손에 홀을 들고 위풍당당하게 희정당에 입시하여 사은謝恩을 행하였다.


활짝 열린 장지문 밖에 최석정을 앉혀두고 엄숙하게 사배례를 올리는 김수항을 보는 숙종의 시선이 복잡하게 엉켰다.


김수항은 언제든 송시열의 뜻을 받들어 조정을 다스린 바, 김수항이 곧 송시열이고, 송시열이 곧 김수항일진대...


생선가시가 아니라 생선등뼈를 씹지도 않고 삼킨 기분이었다. 목에 걸리다 못해 가슴 한복판이 걸려서 숨도 못쉴 만큼 아팠다. 중궁의 세번째 회임까지 잘못되지만 않았어도, 반년 전의 그 일만 없었어도, 자신은 김수항이든 송시열이든 그 생선등뼈를 씹지도 않고 삼킬 필요는 없었을 터였다. 숙종은 김수항을 내려다보며 지난 세월을 곱씹듯이 짤막한 인사를 건네었다.


"오랜만이오."

"어제도 신을 보셨습니다만."

"사은을 했으니, 오늘 이제야 그대가 내 눈에 들어왔소."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기 부응교는 내 눈 밖에 났소."


또 시작이었다. 최석정은 두눈을 질끈 감았다. 역시나 집요한 주군이었다. 왕이 또 자신에게 화살을 돌리니 앉은 자리가 가시방석이었다. 귀양을 떠나기 전에도 자신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던 김수항이니, 또 사은을 핑계 삼아 자신을 뼈째로 잘근잘근 씹어먹으려 들 터였다.


"허면 당장 제 백포를 빌려줘야겠군요."


김수항이 여릿한 웃음으로 화답했다. 석정은 귀를 의심하고 김수항을 돌아보았다. 이게 어찌 된 영문인지. 김수항의 음성은 마냥 부드러웠다. 이럴 리가 없었다. 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5년만에 김수항이 자신에게 뼈 없는 웃음을 건네었다. 어쩐지 얼떨떨하였다. 김수항이 거짓으로 탈을 쓴 것인지, 아니면 진심으로 뼈를 발라낸 것인지, 반신반의할 수 밖에 없었다.


"최문랑은 교지를 받아쓰라."

"예."


석정은 김수항에 대한 의문을 잠시 접어두고 붓을 고쳐쥐었다. 왕의 옥음이 초주지 위를 매섭게 긁어댔다.


- 강만철은 비록 고변을 하긴 하였으나, 정원로의 강압에 못 이겨서 고변하는 시늉에 그쳤으니, 엄히 형문하라.


사은례를 마치고 희정당을 나서면서 김수항은 왕이 최석정에게 불러주던 교지를 머릿속으로 되새겼다. 정원로 대신에 강만철을 족치겠다...강만철을 족쳐서 허적이 공모했다는 진술을 받아내려는 건지, 아니면 역풍을 일으키려는 건지.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러다 허적과 남인들을 사냥하고 나면 자신들이 도리어 토사구팽 당하지는 않을까. 불안했다.


희정당을 물러나오면서도 김수항은 어깨 뒤로 걸어오는 최석정을 의식했다. 차마 뒤를 돌아보진 못한 채로 고개만 모로 틀어서 곁눈질로 살피면서 그는 자신의 붉은 어깨 뒤의 푸른 어깨를 신경썼다.


송시열은 여러번 서찰을 보내어 자신을 타일렀다. 꺽정이도 품으라고. 지금은 최석정을 디딤돌 삼아서 다시 서인이 건너가든 올라서든 해야 한다고. 이 더러운 정치판에 발을 담갔으니 그 디딤돌이 동그랗든 네모지든 모양을 따지진 말아야 한다고.


"금부로 가는 길인가?"

"예? 예."


석정은 앞에서 걸어가던 김수항이 부드럽게 건넨 말에 두눈을 깜빡였다. 이제는 친근하게 말도 건네다니. 김수항이 자신에게 제법 누그러진 모습이라 그저 얼떨떨하였다. 하지만 입맛이 다디달기 보단 쓰디썼다. 도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역시나 김수항도 국청의 상황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모양이었다.


"금부가 있는 견평방堅平方의 이름을 명심하게. 굳셀견堅, 평평할평平일세."

"..."

"허면 이따 보세."


꿋꿋하게, 그리고 평평하게. 김수항은 한마디 당부를 남기고서 고아한 풍모를 잃지 않고 걸음을 옮겼다. 석정은 그 뒷모습을 보며 그의 이름을 가만히 되새겼다.


문곡文谷 김수항.


그가 진심으로 그런 충고를 해주었을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최소한 외압에 대한 부담은 덜어주는 말이었다. 석정은 그 뒷모습을 향해 고개를 숙여보이고선 조금은 가벼워진 걸음을 견평방으로 옮겼다.


"이 자들은..."


석청이 국청 망문을 지나 중문으로 들어서니, 이미 국청 마당에는 굴비 한두름쯤 되는 무장武將들이 포승줄에 묶여 끌려와 있었다. 남간으로 끌려들어가는 그들의 옆얼굴을 하나둘씩 살펴보니 평소 인달방에 드나들어 허견과 친분을 쌓고 벼슬을 한자리씩 꿰어찼던 자들이었다.


호두각 위관석엔 판의금 이정영이 아닌 영의정 김수항이 앉아 있었다. 그 옆으로 좌의정 정지화, 대사간 김만중도 조용히 시립해 있었다. 판의금 이정영은 위관석을 양보하고 뒷자락에 밀려나 있었다. 하긴 김수항이 복귀하였으니, 국청대신들이 모조리 사열할 수 밖에.


"대감..."

"병판이 저들을 고변했으이. 허견의 사주를 받아서 이천둔伊川屯의 군대를 동원하여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던가."

"군사훈련..."


김수항의 건조한 설명에 석정은 치를 떨며 가만히 되뇌였다. 올가미는 이렇게 놓는 것이던가. 차라리 허적의 사주라면 모를까, 허견의 사주라니. 허견 한마리 잡아먹겠다고 개떼처럼 달려드는 송곳니들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미 이천둔 별장 강만철이 자복하여 물론 문산둔文山屯, 총명둔聰明屯의 별장까지 줄줄이 끌려왔으이."

"..."

"조만간 저들의 군사훈련을 방치한 죄목으로 훈련대장 유혁연도 끌려올 걸세."

"..."


석정은 그저 쓰디쓴 마른침을 삼키는 수 밖에 없었다. 목이 바짝 타고 부쩍 부어서, 꼭 침을 삼키려다 돌을 삼키는 기분이었다. 대비전을 등에 업은 외척으로서 병권을 틀어쥔 김석주의 힘이 이렇게나 무시무시했다. 자신도 재산루에서 편비 및 사병들을 훈련시키면서 허견과 복선군에게 군사훈련의 죄목을 씌워 이중삼중으로 철저하게 올가미를 씌우다니.


"강만송을 끌고 와라!"

"정원추를 끌고 와라!"

"다음 홍유하!"

"다음 윤정!"

"다음 윤선달!"

"다음 김초삼!"


순식간에 국청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김석주가 밀어넣은 죄인들이 줄줄이 불려와서 형장을 얻어맞고 비명을 질러댔다. 피가 사방팔방 튀어 이제는 석정은 청단령에 묻는 피도 닦아낼 여력이 없었다. 그들은 반쯤 이성을 잃은 채로 있는 죄 없는 죄를 토설하기 바빴다.


"허견이 복선군을 옹립하겠다고 하는 말을 강만송도 들었습니다."

"홍유하도 같이 들었습니다!"


국청에 끌려오는 죄인들이 늘어날 수록 형문에 걸리는 시간도 늘어났다. 석정의 얼굴이며 팔뚝에 튀는 핏방울도 늘어났다. 석정은 코끝에 훅 끼치는 피비린내를 견녀낼 재간이 없었다. 어쩌면 김수항이 견평방에서 강조한 건 평평할평平자가 아니라 굳셀견堅자일지도 몰랐다.


굳세어라 꺽정아.


석정은 자신을 다독이며 계속해서 형문을 견뎌냈다. 자꾸만 올라오는 구역질을 참아내지 못하고 여러차례 우물가로 뛰어가곤 하여 서리들과 나장들, 다른 문랑들의 비웃음을 사는 것도 여전했다. 유난히도 해가 긴 하루였다. 해그물이 국청 바닥을 드리우고, 위관석엔 김수항 대신 정지화가 앉았다. 석정은 만신창이가 된 강만철에게서 공초를 받아들었다.


堅又言

‘彼輩欲於他日, 以焜、熀爲之云,

此人何可主宗廟?

吾觀福善, 器度非凡, 如爲君則宗社之福也。

必設體府, 多聚壯士,

彼欲作變, 以此應之。


허견이 또 말하기를

저들이 다른 날에 이혼과 이엽을 왕으로 삼으려 하지만

이들이 어찌 종묘의 주인이 될 수 있겠는가?

내가 복선군을 보건대, 기도가 비범하니 그가 왕이 되면 종사의 복이다.

반드시 체부를 다시 설치하여 장사를 많이 보유해야

저들이 변을 일으키면 대응할 수가 있다.


석정은 한숨을 쉬며 남간 쪽을 돌아보았다. 이미 남간은 미어터질 지경이었다. 이 많은 이들을 형문하면서 벌써 해가 저물었다. 정지화도 물러가고 도로 이정영이 위관석에 앉았다. 이제는 허견의 죄상에 군사훈련까지 추가되었다. 호두각 아래로 걸어들어가서 강만철의 공초를 바치자 이정영도 시원섭섭한 한숨을 내뱉았다.


"군사훈련이라...이젠 저들이 빠져나갈 구멍도 없으이."

"..."


석정은 마른 입술을 혀끝으로 축이다가 혀끝에 닿는 비릿한 피비린내에 질겁했다. 너무도 고단하여 아랫입술이 터져서 피가 배어난 것인지, 아니면 피와 살이 튀어 자신의 아랫입술에까지 묻어난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는 핼쑥해진 얼굴로 청단령의 어깻죽지에 입술을 쓱쓱 문질렀다. 또 속이 울렁거리면서 구역질이 올라왔다.


이때 중문으로 승지가 직접 왕의 교지를 들고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석정의 얼굴이 굳어졌다. 어둑어둑한데도 형틀 장판에 널브러진 이태서를 보는 승지의 두눈에 잠시 동정과 연민이 스쳐갔다. 승지는 심각한 얼굴로 판의금 이정영에게 왕의 교지를 전하였다.


승지가 다시금 중문으로 물러가는 모습을 흘끔 곁눈으로 살피면서 이정영이 교지를 펼쳐들더니 이내 안쓰런 눈빛으로 입맛을 쓰게 다시면서 석정을 돌아보았다.


"오늘도 자네가 끝을 보겠는가?"

"..."


석정은 쉽사리 답하지 못하였다. 불길했다. 불안했다. 이정영이 석정의 두눈 앞에 교지를 펼쳐보였다. 승지나 지제교가 대필한 교지가 아니라 왕이 직접 친필로 쓴 비망기備忘記였다.


- 이태서와 문산별장 홍유하에게 압슬壓膝(무릎을 짓누르는 형벌) 및 낙형烙刑(불에 달군 쇠로 지지는 형벌)을 실시하라.


어두워서 읽지 못할까봐 걱정되었는지, 금부서리가 재빠르게 초롱을 들고 비망기를 비추었다. 석정은 비망기 속에서 무시무시한 독기를 내뿜는 글자들을 내려다 보았다.


압슬壓膝...낙형烙刑...


"할 수 있겠는가?"

"..."


석정은 차마 대답을 할 수 없었다. 그저 한숨만 나왔다. 그렇다고 내뺄 수도 없었다. 김석주가 총융사 군관의 고변을 받았다며 군사훈련까지 걸고 넘어졌다. 또한 복선군은 물론 허견의 무리들도 허견이 왕의 유고 시에 복선군을 보위에 앉힐 대안까지 마련한 것을 토설했다. 없는 죄를 만드는 것은 못하더라도, 있는 죄를 벌하는 것은 할 수 있었다. 해내야만 했다. 저들은 감히 지존을 우습게 알고 대안까지 논하였으니.


"해...보지요."


석정의 목소리가 잠겨들었다. 며칠새에 퀭해진 두눈으로 남간을 쏘아보려니 초점이 제대로 잡히질 않았다. 하지만 그는 계속 두눈에 힘을 주어 남간을 뚫어져라 쏘아보았다. 순식간에 나장들이 이태서를 들여보내고 형틀을 치웠다. 그리고는 나장 셋이서 기다란 핏빛 주장朱杖(붉은 칠을 한 몽둥이)을 짚고 섰다.


석정으로선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압슬이 워낙 잔혹하여 시행되는 일이 드물었다. 역대 임금들도 자신의 대에 압슬을 명하는 일은 열손가락도 꼽지 못할 정도였다. 효종과 현종조엔 아예 시행된 기록도 없었다. 헌데 당저조에 이르러 압슬이 재개되었다.


남인들이 강화흉서를 뒤늦게 고변한 이우에게 압슬을 윤허해달라 청하고, 다시 서인들이 이태서와 홍유하에게 압슬과 낙형을 윤허해달라 청했다. 그리고 왕의 독한 손가락이 압슬과 낙형이란 글자들을 직접 적어 금부로 비망기를 내려보냈다.


어느덧 홍유하가 두손을 뒤로 묶인 채로 국청마당에 끌려왔다. 그는 천간정丁자형의 형틀 대신 한일一자형의 모난 나무토막과 두꺼운 널빤지가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두눈을 의심했다. 이게 뭔지 알 수가 없었다.


설마 이거, 말로만 듣던...압슬?


지난 흉서사건 때 이우가 압슬을 받다 죽었다던가. 홍유하가 불안에 젖은 눈으로 나장들을 돌아보니 핏빛 주장을 짚고서 자신을 쳐다보는 참이었다. 그들의 눈빛도 일렁이는 횃불처럼 흔들렸다. 홍유하는 공포에 질린 눈으로 문랑 최석정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문랑은 자신에겐 눈길도 주지 않고 국청 호두각 아래에 놓인 서탁 앞에서 문서들을 뒤적일 뿐이었다.


어느새 나장들이 그에게 바짝 다가들어, 그를 나무토막 위로 주저앉히더니, 나장 1인은 그의 두손을 뒤로 묶은 포승줄 사이로 주장을 꽂아넣고, 또 나장 1인은 주장을 손에 쥔 채로 그 무릎 위로 널빤지를 얹고, 마지막 나장 1인은 그들 사이로 주장을 짚고 섰다. 그 어깨너머로 문랑 최석정이 문서들에서 눈길을 떼고 담담한 눈빛으로 자신을 보았다.


"홍유하!"

"..."

"이천둔伊川屯에서 압수한 문서들 중에 너의 글이 가장 많았다. 이천별장 강만철도 허견과 내통한 자로 너를 지목했다. 하여 전하께서 너에게 압슬과 낙형을 명하셨다."

"..."


홍유하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압슬과 낙형을 두눈으로 본 적은 한번도 없었다. 하지만 장형 만으로도 사람의 몸으로 견디기 힘들진대, 압슬과 낙형이라는 무시무시한 이름은 그대로 자신의 뇌리를 짓누르고 살갗을 불태우는 느낌이었다. 그런 홍유하의 두눈 앞에 석정이 단호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마지막으로 너의 죄를 자복할 기회를 주겠다. 이천둔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한 내막을 고하라."

"..."


홍유하는 말문이 콱 막혔다. 압슬과 낙형이란 단어들이 자신의 코와 입을 틀어막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그는 억울했다. 언제까지나 반란에 대비하기 위한 군사훈련일 뿐이었다. 궁성을 쳐들어가겠다고, 그리하여 복선군을 보위에 앉히겠다고 이천둔에서 강만철과 함께 훈련을 일삼은 것이 아니었다. 아무리 압슬과 낙형이 두려워도, 무인된 자존심에 굴복할 수는 없었다.


"나는 고할 죄가 없소."

"..."


석정은 목젖이 꿈틀거릴 만큼 힘겹게 마른침을 넘겼다. 이젠 어쩔 수가 없다. 이젠 홍유하도, 자신도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다. 그는 잠겨들어가는 목청을 돋우어 더욱 낭랑하게 홍유하를 꾸짖었다.


"감히 성상을 두고 택군擇君을 한 것 자체가 불경죄이고 대역죄임을 모르는가?"

"..."

"끝내 죄를 뉘우치지 못하겠다?"

"..."

"고하라."

"..."


홍유하는 두려움에 눈빛이 어지러이 흔들렸다. 하지만 그는 입을 열지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했다. 후사도 없이 골골대는 임금을 두고 대안을 준비한 것이 어떻게 대역죄라는 것인지. 벌써 중궁이 세번이나 회임을 하여 두번은 조졸, 한번은 소산으로 세번 모두 생명을 잃었다. 서인이든 남인이든, 왕의 사후를 대비하여 택군擇君을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일진대.


택군...택군이 죽을 죄라고?


그렇다곤 해도 인정할 순 없었다. 그는 연거푸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 입을 더욱 굳게 다물었다. 토끼이빨처럼 기다란 윗니가 아랫입술을 짓누르는 것이 느껴졌다.


"압슬을 실시하라."


홍유하가 두눈을 부릅뜨는 것을 보면서, 석정의 입술이 천천히 열렸다. 구레나룻을 기른 나장이 멍청히 대답하곤 엉거주춤 홍유하의 무릎 위로 널빤지를 올려두었다. 그나마 사금파리에 앉히려다 나무토막에 앉혔으니 나름대로 홍유하한테 자비를 베푼 셈이라고 스스로에게 위안을 삼는 것이 고작이었다.


3인의 나장들이 서로 눈짓을 주고 받으면서, 먼저 홍유하의 뒤로 손목의 포승줄 사이로 주장을 괴어놓은 나장이 슬쩍 고개를 돌리고 외면하더니, 맨뒤에 주장을 짚고 선 나장이 한발 뒤로 무르춤히 물러서고, 결국 홍유하의 무릎에 널빤지를 올려놓은 나장이 홍유하의 얼굴을 마주보며 쭈뼛쭈뼛 널빤지 위로 오른발을 얹었다. 그 등뒤에서 나머지 나장이 허리를 잡고 부축했다.


홍유하는 왼쪽 무릎이 짓뭉개지는 고통에 이를 악물며 상체를 당기며 몸을 뒤틀려 했다. 하지만 등뒤에 앉은 나장이 그의 손목 틈새로 찔러놓은 주장을 잡고 버티는 바람에 상체를 당길 수도 없었다. 그새 구레나룻의 왼발이 널빤지 위로 마저 올라섰다.


홍유하는 이젠 혼백마저 으스러지는 고통에 비명을 터뜨리며 두눈에서 실핏줄을 터뜨렸다. 자신의 무릎 위로 얹은 널빤지에 구레나룻이 주장을 짚고 균형을 잡고, 그 뒤로 나머지 나장이 허리를 받쳐주는 모습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그저 고통이 눈을 가리고, 생각을 끊었다. 어렴풋이 널빤지를 딛은 징신 신은 발이 보이긴 하였으나, 아무 생각도 없었다.


으스러진 무릎사이로 시뻘건 핏물이 튀는가 싶더니 여러가닥으로 줄줄 흘러나와 나무토막을 적셨다. 계속해서 구레나룻이 주장으로 중심을 잡으려고 애쓰면 애쓸 수록 그의 무릎은 처참하게 으깨졌다. 비명이 터져나오다가 목에 걸려서, 더는 소리를 지를 기운도 없었다.


"..."


석정은 차마 두눈 뜨고 지켜볼 수가 없어서, 홍유하를 보는 두눈에서 초점을 흐리고서 그저 허공을 응시할 뿐이었다. 이미 물크러져서 널빤지와 나무토막 사이로 피와 살이 뒤엉킨 그 무릎을 쳐다볼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의 청단령 흉배로 붉은 핏물이 튄 상태였다.


"혼절했습니다."


홍유하의 코끝에 손가락을 대어보고 나장이 하는 말에 석정은 안도하는 건지, 아쉬워하는 건지, 자신의 속을 알 수가 없었다. 차라리 빨리 끝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잔인한 짓이었다. 그렇다고 이대로 끝내버리는 것도 끔찍했다. 심장이 벌렁거리는데도, 손발이 미친 듯이 벌떡거리는데도 자신의 정신이 또렷해지니 더 괴로웠다.


"문랑은 일각만 쉬었다가 낙형을 실시하라."

"예 대감."


등뒤 위관석에서 이정영이 지시했다. 석정은 살짝 쉰 목소리로 답하였다. 사금파리 같은 것을 삼키기나 했는지, 껄끄럽고 뾰족한 끝이 그의 목울대를 콕콕 찌르는 듯 하였다. 석정은 우물가로 달려가서 표주박으로 물을 길어올려 미친 듯이 입을 대고 꿀꺽꿀꺽 마셨다. 물이 자신의 목울대를 빨아들이는 건지, 자신이 물을 빨아들이는 건지, 물을 마시면 마실수록 더욱 목이 조급했다.


석정이 물을 마시고 돌아오니 이미 국청 마당엔 화로와 인두가 준비되었다. 홍유하가 눈을 게슴츠레 뜨고 눈앞의 화로와 인두를 쳐다보는 참이었다. 그냥 한시진이고 두시진이고 의식을 잃었으면 바로 낙형을 집행하지 않아도 좋을 것을.


"낙형을 실시하라."


석정이 메마른 음성으로 명하였다. 이미 압슬을 집행하는 것도 악몽이었다. 그런데 낙형이라니. 나장들이 대답하고 인두 손잡이를 잡았다간 화들짝 놀라서 도로 화로에 툭 내팽개치는 모습을 보니 손잡이 만으로도 충분히 뜨거웠다. 하지만 이내 나장 한명이 소맷부리를 접어쥐고 인두 손잡이를 잡아서 높이 쳐드는 것을 보니, 인두 끝이 시뻘겋게 달궈진 채였다. 나장은 이내 홍유하의 맨발바닥에 인두 끝을 갖다대었다.


홍유하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비명을 질렀다. 압슬의 자세 그대로 두손이 뒤로 묶여 주장에 꿰인 신세였다. 화끈한 인두 끝이 발바닥을 지지고, 태우고, 물크러뜨리는 고통에 온몸을 뒤틀기도 힘들었다. 압슬을 받으며 목에 걸린 비명과 숨결이 그의 숨통을 막아버렸다. 자신의 피와 살이 타는 냄새를 맡을 수도 없었다.


한번, 두번, 세번...


홍유하는 의식이 점점 흩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함께 흩어지는 초점을 걷잡기 위해서 두눈을 지릅떴다. 하지만 그렇게 두눈에 힘을 쓰는 순간, 그는 고통으로 숨을 헐떡거리면서 자신의 비명이 목에 걸려 더는 한줌의 숨도 들이쉬고 내쉴 수가 없었다.


"나는...억울..."


작살 맞은 물고기처럼 펄떡거리다가 멈춘 홍유하를 보면서, 석정은 두손의 체온이 차갑게 식는 것을 느꼈다. 그의 두눈에서도 동공이 텅 비었다.


죽...었다...?


석정의 무릎에서 힘이 좍 빠졌다. 석정은 주춤히 뒤로 한발 물러서며 홍유하의 모습을 두눈에 담았다. 실핏줄이 모두 터진 시뻘건 두눈이 자신을 노려보는 참이었다. 하지만 손끝이며 발끝까지 꼼짝도 하질 않았다. 한겨울 솜이불을 빨겠다고 이불을 밟는 아낙처럼 널빤지를 밟던 나장도 움찔하여 두발을 주춤주춤 멈추었다. 그리고는 쭈뼛쭈뼛 널빤지에서 내려섰다. 그 뒤에서 허리를 잡아주던 나장의 열손가락이 후들거렸다.


"주, 죽었...습니다."

"..."


사람이 죽었다. 사람을 죽였다. 석정의 온몸이 싸늘하게 식었다. 석정이 머리끝부터 빨끝까지 무덤 앞 문인석처럼 굳어버리자, 나장들이 호두각 아래로 눈길을 던졌다. 정신이 반쯤 나가버린 최석정 대신 판의금 이정영에게 결정을 맡기려는 것이었다.


"홍유하의 시신을 내가고, 형구를 수습하라."


이정영의 음성도 물먹은 창호지처럼 목울대에 착 달라붙었다. 매정하게도, 그는 석정에게 추안을 정리하란 당부를 끝으로 호두각을 벗어날 수 밖에 없었다. 모쪼록 석정이 정신을 빨리 수습하고 추안을 적어내길 바랄 뿐이었다.


최석정은 국청 마당에 덩그라니 선 채로 핏자국이 흥건한 바닥을 내려다 보았다. 이미 금부에서 사람 죽어나가는 꼴을 숱하게 목도한 나장들은 홍유하의 시신을 들것에 싣더니 대충 나무토막과 널빤지도 들여가버렸다. 그리고는 서리들이 나무통에 물을 가득 담아와서 최석정에게 어서 비키라는 눈짓을 하였다. 하지만 혼이 반쯤 나간 최석정은 그들이 아무리 눈치를 줘도 꿈쩍도 하질 않았다.


"나으리!"

"..."

"아 나으리!"

"..."

"에라이! 난 몰라요! 모르구먼요!"


마침내 서리들이 두눈 질끈 감고 그 자리에서 목통을 엎어버렸다. 그대로 물이 콸콸 쏟아져서 거무스름한 흙물과 불그스름한 핏물이 섞이고 섞여서 석정의 발치로 밀려들었다. 불그죽죽한 진흙물에 허연 달빛이 비치어 반짝이는 윤슬이 꿈인 듯 생시인 듯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 어느덧 윤슬이 최석정의 목화 갑피까지 맴돌았다. 축축한 물기가 목화에 스며들어 발가락 틈새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석정은 아무런 감각도 없었다.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그저 하릴 없이 발치를 내려다보던 석정은 비로소 그 물결의 정체를 알아차렸다.


핏물?


홍유하의 핏물이 자신의 목화에 스며들어 발가락에 닿는 감촉에 소름이 끼쳤다. 석정은 질겁하여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하지만 이미 두발은 젖어버렸다.


"아 그러게 좀 비키시지...전 분명히 주의 드렸습니다! 드렸고 말고요!"


문랑의 발을 적셔놓고 서리가 발뺌하듯 푸념했다. 석정은 그런 서리를 날선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하지만 이내 눈빛이 시들해져선 그는 말 없이 걸음을 옮겼다. 이미 젖어버린 국청 마당을 벗어나서 중문을 지나고 또 망문을 지나는 그의 젖은 목화에서 새어나오는 젖은 발자국을 보며 서리가 뒤에서 또 뭐라고 궁시렁거렸지만, 석정은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계속해서 걸음을 내딛으며 그의 불그죽죽한 발자국이 점점 흐릿해졌다.



밤이 이슥해서도 판의금 이정영과 부응교 겸 문사낭청 최석정이 희정당에 모습을 비치질 않자, 숙종은 통명전으로 돌아와서 두광을 금부로 보내어 두 사람을 통명전 앞뜨락으로 불러들였다. 희정당으로 부르기엔 이미 밤이 늦었고, 그렇다고 추안을 보지 않고선 잠도 오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최석정은 오간 데가 없고, 이정영만 홀로 우승지를 대동하고 통명전 앞뜨락에 들었다.


"추안은? 아직인가?"


최석정 대신 우승지를 대동한 이정영을 숙종이 대청에서 날선 시선으로 내려다보았다. 이정영은 가만히 부복하여 고개를 조아렸다. 바닥에 깔린 박석이 밤이슬을 머금었는지, 금세 무릎쪽이 눅눅해져서 꿇어엎드리는 것도 괴로웠다. 손바닥에 닿는 찬기운도 께름칙했다. 하지만 당장 등줄기를 훑는 왕의 옥음이 더 찬서리를 머금은 것 같아서 오히려 더욱 납작하게 엎드리고 말았다.


"송구하오나, 오늘 추국을 맡았던 문랑 최석정이 자리를 비우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터라..."

"최석정이?"


숙종은 어슴푸레한 달빛이 묻어나는 월대에 내려섰다. 어스름 탓에 얼굴이 보이지도 않았지만, 워낙 이정영이 고개를 납작하게 숙인 탓에 마치 그림자가 얼굴에 묻기라도 한 것처럼 표정을 살필 수가 없었다.


"홍유하가 도중에 죽어서...충격이 큰 듯 하여..."

"..."


이정영이 말끝을 얼버무렸다. 최석정이 마음이 약하여 흠이라고 사뢰어야 하나, 아니면 심문도중에 사람이 죽으면 충격을 받는 것이 인지상정이라 아뢰어야 하나, 판단이 서질 않았다.


"..."


숙종은 콧잔등만 남기고서 이정영의 얼굴까지 반쯤 묻어버린 그늘을 내려다 보았다. 어둠이라 그늘의 경계가 뚜렷하지가 않았다. 어둠을 밝히겠다고 사방팔방에 세운 횃불에 비쳐서 그림자가 한겹, 두겹, 세겹 겹쳐서 손이나 머리가 서너개씩 달린 괴물로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괴물은 자신이었다. 오늘밤의 어둠이 최석정을 잡아먹었다. 그나마 이정영은 코빼기라도 보였지만, 최석정은 이 자리에 오지도 못하였다.


"최석정이 돌아오면 전하라. 교지를 쓰러 희정당으로 오라고."

"교지라 하심은..."


이정영이 머뭇머뭇 물었지만 숙종은 답할 마음이 없었다. 그저 침묵하여 허공만 응시할 뿐이었다. 이정영은 왕이 웬일로 인내심을 발휘하여 자신을 더는 추궁하거나 독촉하지 않자 괜히 불안했다. 다른 자를 문랑으로 삼는다는 교지일까. 하지만 도중에 문랑을 교체하는 것은 여러모로 번잡한 일이었다.


"이만 물러가라."


왕의 음성도 밤이슬에 젖은 듯, 밤서리에 식은 듯 무거웠다. 이정영은 다시 한번 고개를 조아리고 통명전을 나섰다. 함께 온 우승지는 자신을 놔두고 굳이 최석정을 기다리는 어심을 헤아릴 수가 없어 고개를 갸우뚱하는 참이었다. 기껏해야 문랑을 추가로 더 뽑거나 교체하려니 하는 것이라서, 그들은 더 이상의 의문을 접고 각자 갈라져서 의금부로, 또 승정원으로 향하였다.


인정을 훌쩍 넘기고 자정도 넘은 탓에 순라꾼들이 흔드는 요령搖鈴 소리를 들으며 이정영은 의금부로 돌아왔다. 망문을 지나는데 괜히 기분이 으스스했다. 심문 도중 사람이 죽었으니 밤공기가 더욱 을씨년스럽게 느껴졌다. 그는 점점 빨라지는 걸음걸이로 중문을 지났다. 그런데 텅 빈 국청 마당에 덩그렇게 서 있는 귀신 같은 형체가 눈에 들어왔다.


"누..."


푸르스름한 새벽 어스름을 뒤집어쓴 듯한 그 귀신이 고개를 돌렸다. 이정영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둔통을 느끼며 숨을 죽였다. 한순간에 머리부터 가슴, 팔다리까지 온통 무지근하게 만드는 공포가 그의 온몸을 집어삼켰다. 차마 누구냐고 말을 잇지도 못한 채로 그는 국청 마당 한복판을 쳐다보았다.


그림자가 있었다. 그것도 여러개가 있었다. 당상청사와 낭관청사, 그리고 서간과 남간 앞에 세워진 횃불이 바람결에 흔들리며 이리저리 비추는 그 불빛에 손도 여섯개, 다시 여덟개, 머리도 세개, 다시 네개로 둔갑하긴 하였어도, 그림자는 있었다. 그러니 귀신은 아니었다. 게다가 핏기가 하나도 없이 껍질만 붕 떠버린 듯한 몰골이긴 하였어도, 눈도, 코도, 입도 익숙하게 들러붙은 얼굴이었다.


"자네...도망간 줄 알았으이."

"사람을 죽였으니, 죽인 자리로 돌아와야지요."


최석정의 음성은 허공을 배회하다 부서지고 흩어지는 메아리 같았다. 이정영은 코끝에 어린 찬이슬을 들이마시고 또 숨을 죽였다. 홍유하가 흘린 피에 놀라서 국청 마당을 떠났다가, 두어시진 만에 또 돌아와서 국청 마당에 돌아와 서는 심정을 생각하면 딱하기도 하였다. 단단한 땅을 딛고 서고서도 마치 물위에 떠 있는 것처럼 표표히 서 있는 모습은 빈껍데기 같기도 하였다.


"전하께서, 교지를 쓰러 희정당으로 들라 하시었으이. "

"교지요?"


석정은 멍하니 되묻고서 발치를 응시했다. 서리들이 이미 물을 뿌려 마당의 핏자국이 흐려져 있었다. 하지만 석정 자신의 목화는 본래 앞코가 검은 빛인데도 검붉은 빛이 진해져 있었다.


"문랑을 교체하시려나...자네가 워낙 힘들어했으니..."

"그럴 리가요. 제가 우는 소리를 하면 물속에 던지시고, 죽는 소리를 하면 흙속에 묻으실 분입니다. 그리고 함께 뛰어드시겠지요."

"뭐?"

"전하께선 결코 한가하지 않으십니다."


석정은 담담히 한마디를 내뱉고서 걸음을 옮겼다. 이정영은 의아히 두눈을 깜빡였다. 전하께선 결코 한가하지 않으시다...? 설명을 해줄 석정은 터벅터벅 중문을 벗어나는 참이었다.


한치의 틈도 없이 허공에 빼곡한 어둠이 석정의 온몸에 들러붙어 숨쉬는 모공마다 후벼팠다. 석정은 어둠에 잠식당한 채로 한발한발 내딛으며 춘사월 열하루의 달이 반짝이는 밤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벌써 반달이 차면서 보름달이 되어가는데도 석정의 눈길은 달 주변에 흩뿌리듯 많은 별들을 훑었다.


웬놈의 별들이 저렇게나 많은지. 저게 다 일거리였다. 이민철이 탈상을 마치고 돌아오는대로, 또 소각에 모여서 천문도를 마저 마무리해야 했다. 별이 아니라 일이라는 생각을 하고 석정은 도전적인 눈빛으로 손가락을 꼬물거렸다.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영롱한 별빛을 머금고 반짝거렸다.


"늦었소."


석정이 희정당에 드니 숙종은 침수에 들지도 못하고 뜬눈으로 서안 앞에 앉아 한필의 붉은 족자를 감아쥐고 자신을 기다리는 참이었다. 아예 장지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맞이했다.


"송구합니다."


석정이 고분고분 엎드리는 순간에도 두광이 냉큼 지필묵을 갖춘 서안을 대령했다. 석정은 입맛을 쓰게 다시며 서안 위 연적의 물을 벼루에 부었다. 헌데 투명한 맹물이 아니라 짙은 먹물이 쏟아져나왔다.


"..."


흠칫 놀라 석정은 가만히 숨을 죽였다. 도대체 무슨 교지를 받아쓰게 하시려고 이리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으신 건지 불안했다.


"재산루에 한폭의 그림이 더 있더군."


숙종은 서안 옆으로 연화도를 내려놓아 고개를 조아린 석정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하였다. 물론 석정은 이미 두어차례나 보았던 그림이었다.


그 연화도엔 흰 연꽃이 아닌 붉은 연꽃이 활짝 피어있어 코를 갖다대면 은은한 향내가 코끝을 간질일 것 같았다. 석정은 쓴웃음을 지으며 코끝을 손가락으로 긁었다.


"그것도 받아내셨습니까?"

"여생의 그림을 좀더 견식해야겠다고 했더니 외종숙이 제발로 가져왔소."

"빠르군요."

"누구완 달라서."

"..."


석정이 입맛을 쓰게 다시는데, 숙종이 왼손을 뻗어서 붉은 연꽃, 즉 부용의 꽃잎을 하나하나 어루만졌다.


"난 흰 연꽃보다 붉은 연꽃이 더 좋소."

"..."

"검어질 지언정 차라리 붉어지니..."

"..."

"그래서 중궁도, 사부도 좋소."

"..."


석정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왕은 아직 교지를 부르기 전이었다. 무슨 무시무시한 분부를 하시려고 이토록 다정한 말씀을 건네시는지. 그 옥음이 너무도 부드러워 오히려 뼈에 사무쳤다.


"전하, 영의정 김수항, 좌의정 정지화, 대사간 김만중, 판의금 이정영이 분부 받잡고 들었나이다."


두광이 장지문 너머로 아뢴 말이었다. 석정은 정말로 왕이 중대한 분부를 내리려는 것임을 깨달았다.


"들라 하라."

"예, 전하."


두광의 대답이 들리는가 싶더니, 영의정 김수항, 좌의정 정지화, 대사간 김만중, 판의금 이정영이 속속 입시했다. 신료들의 버 선발을 내려다보며, 숙종은 석정을 힐끗 보고 놀리듯 말했다.


"온 김에 사관 노릇도 해야겠군."

"..."


석정은 이미 입안이 바짝 말라붙어 목소리가 목울대에 착 달라붙었다. 목이 너무도 탔다. 연적 안에 든 것이 맹물이면 차라리 후루룩 마시기라도 할 것을. 그는 애써 마른침을 삼키고 붓을 집어들었다. 가슴이 꽉 막힌 것 같은 기분으로 초주지를 내려다보는데, 서늘히 식어버린 옥음이 손등을 거머쥐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국청대신들은 오늘 오시까지 이만 결안취초結案取招(최후진술을 받고 매듭지음, 줄여서 결안)하라."


왕의 급한 성미가 또 도졌다. 이정영은 턱을 꿈틀대며 슬그머니 김수항을 돌아보았다. 김수항도 난감한 표정으로 이정영을 돌아보는 참이었다.


결안? 결안? 결안? 말이 되나?


이정영도 고개를 가로저었다. 열흘이나 되었을까. 왕의 인내심이 이미 동이 났다. 게다가 홍유하가 죽어 최석정도 더 버티기 힘들겠다 싶었다. 그래선지 왕은 문랑을 교체해주는 대신 오히려 결안을 언급했다. 이정영을 비롯하여 대신들의 시선이 최석정에게 쏠렸다.


석정은 붓을 쥔 손을 멈칫하더니 마치 예상이나 한 듯 코끝으로 한숨을 흘리면서 받아적었다. 결안結案 두글자를 겨우 쓰자마자 김수항의 반론이 그의 손놀림을 더욱 바쁘게 만들었다.


"하오나 전하, 아직 저들의 도당徒黨을 다 찾지 못하여 심히 심려가..되온데..."

"홍유하가 죽었소. 이미 강만철은 도당을 고변하지 않고 버티는 마당에, 허견과 복선군마저 곱게 단매에 죽어버리면, 실형實刑 아닌 실형失刑이 되는데, 허면 어찌해야 하오?"

"..."

"나는 일벌백계를 원하오."

"..."


김수항은 말문이 막혔다. 왕이 역도들의 처벌에 대해 이토록 강경한 입장을 보이니 일단 허견과 복선군을 징벌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 싶었다. 게다가 그들이 허견과 복선군의 손에서, 혹은 입에서 받아내고 싶은 도당의 이름은 허적許積 그자체였지만, 굳이 허적의 이름을 받아내지 않아도 좋았다. 어차피 아들이 역도면 아비도 역도가 되는 법이니.


"하오시면 신의 뜻도 이와 같으니, 곧 결안하여 올리겠습니다."


김수항이 동조하면서 이정영에게 눈짓을 보냈다. 하지만 이정영이 고개를 끄덕이기도 전에, 왕의 옥음이 그의 턱을 굳어버리게 만들었다.


"모반대역은 나라에 정해진 법도가 있어, 부자연좌父子連坐의 율을 굽힐 수가 없지만, 명나라 엄세번이 복주될 적 그 아비 엄숭처럼 허적도 그저 가산만 적몰하고 목숨은 살려두려 한다."

"그게 무슨..."

"허적의 공초를 보아하니 이번 역모에 관해 아는 바가 없으니, 명나라 엄숭의 예로 다스리고자 함이다. "

"..."


김수항이 잠시 멍한 얼굴이 되었다. 이미 결안을 명한 왕이 허적의 목숨만은 붙여두라 하셨다. 하지만 이번 옥사의 최종 목적지는 허적이었다. 허적의 이름을 받아내겠다고 이 난리인데, 왕은 오히려 결안을 명하고 또 허적의 사면을 명하니...이번 추국에 허적의 이름을 받아내지 못하도록 자비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분명했다. 김수항은 쓴웃음을 삼키고 단웃음을 머금었다.


"허적은 여러 종묘를 섬겼고, 또 고명顧命(왕이 신하에게 유언으로 후사의 안위를 부탁하는 일)까지 받은 신하이니 법을 굽혀 호생지덕好生之德을 펼침이 옳으신 줄로 사료되옵니다."

"좌상의 생각은 어떻소?"

"신도 영상의 견해와 같사옵니다."


김수항이 왕에게 동조한 마당에 정지화가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숙종은 차가운 눈빛으로 허공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그래? 허면 부응교 최석정은 교지를 받아쓰라. 허적의 벼슬을 지워서 백성의 신분으로 돌아가도록 명한다."

"..."


김수항과 정지화가 왕의 눈치를 보며 지금은 잠자코 발톱을 숨겼다 해도, 김만중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김만중은 이내 차가운 눈빛으로 간하였다.


"하오나 전하, 그 처벌이 너무도 가벼워 기강이 서지 않으니, 하늘의 무서움을 알게 하기 위해서라도, 허적을 차율次律로 논단하시옵소서."

"불윤不允. 더는 번거롭게 하지 말라."

"하오나..."


김만중은 불복하여 재차 간하려다 입을 닫았다. 이미 김수항이 부응교 최석정에게 눈짓을 보내는 참이었다. 왕이 이리 마음이 약해질 땐 한사람이라도 더 직언을 하여 어심을 바로세워야 하는 법, 어서 붓을 놓고 왕에게 직언하라고.


하지만 석정은 오히려 공포에 질려서 두눈에서 동공이 커다랗게 열린 채로 그저 자신이 반듯한 해서체로 적어놓은 교지의 글귀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 눈동자가 조용히 얼어붙었다.


削職爲民,

放歸田里

벼슬을 지워서 백성으로 만들고,

고향으로 돌아가게 놓아준다.


벼슬을 지워서...무서운 말이었다. 환각처럼 서안 위로 흑돌과 백돌이 춤을 추는 것이 보였다. 이게 호생지덕이라고? 그럴 리가 없었다.


석정은 얼떨떨히 다른 종이에다 반초서로 사초를 흘려쓰며 호생지덕好生之德을 쓰다가는 붓끝을 멈추었다. 그는 이내 덕德자에 줄을 긋고 그 아래에 독毒자를 써넣었다. 호생지덕이 아니라 호생지독好生之毒...독毒이었다. 왕의 독기가 이렇게나 검붉은데, 이게 호생지덕일 리가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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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2

  • 작성자
    Personacon ANU
    작성일
    14.04.06 18:20
    No. 1

    저라도 제 가족, 제 핏줄에게 누군가 위해를 가한다면 저렇게 독기가 넘실거릴 것 같습니다.
    좋은 글 재미있게 풀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김은파
    작성일
    14.04.15 23:29
    No. 2

    숙종 하면 사실은 무시무시한 괴물이지요. 늘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눈겨산환
    작성일
    14.04.06 21:51
    No. 3

    그동안 수많은 선호작들이 있었지만,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정독하며 읽었던 작품이 과연 몇이나 있었을까?란 생각을 하며, 또박또박 읽고 있답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김은파
    작성일
    14.04.15 23:30
    No. 4

    더 정성들여 써야할 것 같은 긴장감을 주시네요. 여러모로 고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8 뚱뚱한멸치
    작성일
    14.04.06 23:07
    No. 5

    그래도 숙종이 많이 참는걸까?
    윗분 말씀대로 중궁한테 한 짓들을 생각하면 그냥 죽이지 않고 피를 말려 죽일텐데...
    즐겁게 읽고 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김은파
    작성일
    14.04.15 23:30
    No. 6

    피를 말려죽일 걸 아셨네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히로와노다
    작성일
    14.04.07 10:54
    No. 7

    복잡하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김은파
    작성일
    14.04.15 23:32
    No. 8

    제가 복잡하게 썼나 봅니다. 요즘 욕심만큼 잘 안써지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5 pl0t
    작성일
    14.04.08 12:18
    No. 9

    이번 편은 문장이 참 와닿네요. 최석정의 심리에 이입됩니다. 잘 읽고 갑니다 :)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김은파
    작성일
    14.04.15 23:32
    No. 10

    오랜만의 댓글이네요. 고맙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8 파리매
    작성일
    14.04.09 12:41
    No. 11

    꺽정이 또 당했네요. ㅠㅠ
    숙종이나 중전에게 거의 유일무이한 복심인데 매번 당하기만 하는 꼴이 안스럽네요.
    남인과 서인 사이에서 힘들어 하는 숙종과 중전이 어찌 될런지? 꺽정이가 언제나 김석주 맞상대가 될런지? 참 궁금하네요.
    잘 봤습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김은파
    작성일
    14.04.15 23:34
    No. 12

    꺽정이는 아직도 더 힘을 키워야 하지요. ^^;;;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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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 그림자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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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 해의 그림자 193 +4 14.06.28 1,860 36 40쪽
193 해의 그림자 192 +4 14.06.21 2,016 31 41쪽
192 해의 그림자 191 +5 14.06.15 1,837 26 42쪽
191 해의 그림자 190 +5 14.06.09 3,270 38 41쪽
190 해의 그림자 189 +4 14.06.01 2,195 47 41쪽
189 해의 그림자 188 +12 14.05.26 3,055 43 40쪽
188 해의 그림자 187 +8 14.05.22 1,957 31 42쪽
187 해의 그림자 186 +8 14.05.18 2,167 32 40쪽
186 해의 그림자 185 +13 14.05.11 2,178 35 43쪽
185 해의 그림자 184 +12 14.05.05 2,100 37 42쪽
184 해의 그림자 183 +10 14.04.27 1,860 34 37쪽
183 해의 그림자 182 +8 14.04.21 2,182 45 35쪽
182 해의 그림자 181 +8 14.04.15 2,307 32 42쪽
181 해의 그림자 180 +12 14.04.10 1,898 33 39쪽
» 해의 그림자 179 +12 14.04.06 2,126 29 41쪽
179 해의 그림자 178 +10 14.04.02 1,764 31 42쪽
178 해의 그림자 177 +7 14.03.29 1,684 32 41쪽
177 해의 그림자 176 +7 14.03.25 2,321 32 43쪽
176 해의 그림자 175 +6 14.03.21 2,232 38 36쪽
175 해의 그림자 174 +2 14.03.17 2,107 24 39쪽
174 해의 그림자 173 +4 14.03.13 2,259 98 37쪽
173 해의 그림자 172 +6 14.03.09 2,328 39 36쪽
172 해의 그림자 171 +6 14.03.05 2,467 32 39쪽
171 해의 그림자 170 +4 14.03.01 2,758 27 35쪽
170 해의 그림자 169 +5 14.02.26 2,585 29 39쪽
169 해의 그림자 168 +2 14.02.22 2,978 32 30쪽
168 해의 그림자 167 +3 14.02.19 2,083 26 38쪽
167 해의 그림자 166 +4 14.02.15 1,781 30 38쪽
166 해의 그림자 165 +4 14.02.11 2,178 29 40쪽
165 해의 그림자 164 +5 14.02.07 1,920 33 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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