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의 그림자

무료웹소설 > 일반연재 > 일반소설

김은파
작품등록일 :
2012.11.19 13:33
최근연재일 :
2017.12.22 23:56
연재수 :
342 회
조회수 :
789,184
추천수 :
11,578
글자수 :
5,820,877

작성
14.06.21 23:57
조회
2,016
추천
31
글자
41쪽

해의 그림자 192

DUMMY

"스승님!"


송시열이 뒷짐을 지고서 한벽루의 전망을 관망하는 사이, 등뒤에서 마루를 딛는 발자국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한둘이 한벽루를 오르는 기척이 아니었다. 하지만 송시열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냥 전망을 바라보았다. 눈앞엔 허적이 드리운 자주빛 옷고름만 살랑거리는 듯하였다. 마치 대물을 낚으려고 미끼로 물려놓는 어름치처럼.


하지만 송시열은 입만 벌린 채로 쉬이 미끼를 물 생각이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입질을 하더라도 죽은 허적은 챔질을 할 수 없었다. 입질을 기다리는 손은 따로 있을 지도 몰랐다. 그래봤자, 복선군도, 복창군도, 윤휴도, 이미 죽었다. 아직 권대운과 민희, 허목이 남았지만, 저들은 이미 손발이 잘린 셈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허적 대신 낚싯줄을 잡은 손은 오리무중이었다.


"스승님, 다들 모였습니다."


또 다시 등뒤에서 들려오는 젊은 음성에, 송시열은 눈밑을 실룩거리면서 고개만 살짝 틀어 오른쪽 어깨너머로 뒤편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마저 몸을 돌려서 찬찬히 살폈다.


한벽루는 회랑을 층층으로 붙여놓아서, 위에서 아래로 굽어보기가 좋았다. 저마다 신분에 따라서, 바로 아래 회랑엔 붉은 행의를 입은 십수명의 제자들이, 그 아래 회랑엔 푸른 행의를 입은 수십의 제자들이, 그리고 그 아래 마당으로도 푸른 행의를 입은 수백의 제자들이 공손히 시립하여, 장대한 광경을 자아냈다. 어탑에서 왕이 신료들을 굽어보는 기분이 이러할까. 송시열은 문득 회랑의 붉은 행의들 틈새를 살피며 물었다.


"영숙永淑(김만기의 字자)인?"

"도성에서 여기까진 좀 멀다 보니..."


머무적머무적 보고하는 얼굴은 다름 아닌 우의정 민정중이었다. 자신도 도성에서 이곳 제천 청풍까지 만사 제치고 달려온 터라, 김만기를 위해 애써 변명하기도 내키지 않은 기색이었다. 자연히 변명에도 그다지 성의는 없었다. 송시열은 변명 같지도 않은 변명을 더는 듣고 싶지 않았다.


"너는 왔잖으냐?"

"저는 누구처럼 궁성의 방비를 맡은 것이 아니옵고..."

"흥, 멀어서 못올 만한 인물은 김석주 뿐이지. 그놈은 너무 무거워서 말이 한참一站(두 역참 사이의 거리)도 버텨내질 못하거든."


송시열은 딱 잘라 말했다. 도성에서 제천 청풍까진 무려 3백리길이었다. 30리마다 역참이 있으니, 역참을 열군데나 지나야 올 수 있었다. 어지간한 준마로도 꼬박 두나절이 걸렸다. 이토록 먼길을 오려면 준마나 역마를 이용하는 법인데도, 김석주가 워낙 무거운 탓에 한참의 거리도 말이 당해내질 못했다. 그러다 보니 김석주는 궐문 밖은 물론 도성으로도 좀처럼 걸음을 내딛지 않았다. 기껏해야 흉서 사건 때 강화도를 찾은 게 전부였다. 그런 김석주 외엔 아무도 불참할 자격이 없다는 의미였다.


"광산김문 진구, 진규가 대로를 뵈옵니다."


회랑 아래 마당에 서 있던 김진구와 김진규가 한걸음 앞으로 나섰다. 송시열의 발치에 이르는 높이로 김진구, 김진규 형제의 준수한 얼굴들이 비쳤다.


"너희들은..."

"할아버님이 도성을 비우지 못하시어, 손주인 소생들이 왔사옵니다."


송시열은 미간을 좁히고 회랑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마당에는 신분이 낮은 제자들이 서 있어서, 대부분은 면식이 없었다. 그나마 면식이 있는 얼굴은...저 김진구 정도였다.


"그 앞에...제 조카들도 왔습니다."


민정중이 얼른 보태는 말에 송시열은 의아히 두눈을 깜빡였다. 낯이 익은 얼굴이 김진구 형제 건너편에 또 있었다. 희고 말간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것이, 이제 열서넛이나 되었을 법한 어린 도령이었다.


"저 아이는...진후, 아니 진원이던가...아니, 저렇게 어렸나?"


송시열이 확인하듯 민정중을 힐끗 쳐다보자, 민정중은 의미심장한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 아이의 양 옆을 큰조카 진후, 작은조카 진원이 바짝 붙어 지키는 참이었다. 진원이보다 서너살은 어린 듯한 저 아이를 보고 스승이 착각한 모양이었다. 민정중의 기묘한 눈웃음에, 송시열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금 눈여겨 보았다. 그제야 좌우에 바짝 붙어선 민진후, 민진원이 눈에 들어왔다.


송시열은 다시금 어린 도령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반쯤 감긴 듯하던 눈꺼풀을 똑바로 뜨고 형형하다 못해 흉흉한 눈빛으로 쏘아보았다. 평소 남의 눈을 마주보지 못한다던 송시열이 정면으로 눈을 후벼파듯 쳐다보자, 어린 도령은 흠칫 놀라 어깨를 들썩이면서도, 표정 하나 바뀌질 않았다.


이놈 봐라?


송시열은 기가 막힌 듯이 입을 살짝 벌리고서 어린 도령의 두눈을 쏘아보았다. 도령은 수줍게 두눈을 내리깔고 눈코입 어디에도 감정을 내비치지 않은 채로 단아하게 서 있을 따름이었다. 갈고리 같은 시선으로 한참을 도령의 동공을 파헤친 후에야, 송시열이 흡족한 웃음을 머금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다들 춘형春兄(송준길의 별호 동춘同春을 가리키는 말)을 닮아 옥을 다듬은 것 같구나."


갓 약관을 넘긴 민진후와 채 약관도 되지 않은 민진원은 아직은 물정을 몰랐다. 그저 동생을 보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남의 눈에 띄는 것조차 조심스러운 존재였다. 그런데 뜬금 없이 백부가 동생을 한벽루로 불러내었으니 괜히 자신들까지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했다. 그런데, 아비와 백부의 스승인 송시열이 동생을 요모조모 뜯어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니 영문을 알 길이 없었다.


"여기, 영상대감의 서한과, 그동안 모아놓은 조보가 있습니다."


민정중이 소매춤에서 서한과 조보뭉치를 꺼내어보였다. 송시열은 평소 남의 얼굴을, 특히 눈을 쳐다보는 법이 없었다. 좀전에 청풍부사의 얼굴을 쳐다본 것만 해도, 눈이 아니라 미간을 쳐다보았을 뿐이었다. 그런데 어린 조카를 쳐다볼 때 언뜻 폭사된 눈빛은 너무도 섬뜩하여, 가슴이며 손발까지 얼어붙을 지경이었다.


"윤휴가 죽은 것 말고도 다른 소식은?"

"예, 허견의 역모사건이 마무리가 되었습니다. 논공은 물론 녹훈錄勳까지 끝났는데, 여기 보시면 공신으로..."


민정중은 떠름한 표정으로 서슴서슴 대답했다. 송시열은 그런 민정중을 흘끗 쳐다보곤 이내 손을 뻗어 조보뭉치를 낚아채었다. 조보를 한장한장 훑어보는 송시열의 입꼬리가 조용히 비틀렸다.


奮忠效義炳幾協謨保社功臣、

一等金萬基、金錫冑、

문충효의병기협모보사공신

일등 김만기, 김석주


"그래, 보사공신 일등이 김만기, 김석주라..."

"예, 그 공으로 김석주가 정1품 청성부원군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김만기는 그다지 한 일 없이 일등에 이름을 올리긴 하였으나, 그저 이름만..."


민정중이 계속해서 설명하려는데, 송시열이 회랑까진 들리지 않을 만큼 목소리를 낮추어 혼잣말을 했다.


"제놈이 이제야 말을 들었어?"


송시열의 아래위 입술을 비집고 비웃음이 키득키득 흘러나왔다. 차마 큰소리로 웃을 수 없는 탓에, 송시열은 마치 비계살을 꾸역꾸역 삼키듯이 웃음을 삼켰다.


"이제야, 멧돼지가 실컷 포식을 하겠구먼?"


회랑 아래의 마당에 잠자코 서 있는 김진구, 김진규 형제는 고막을 간질이는 듯한 송시열의 낮은 웃음소리에 어쩐지 어깻죽지가 오싹해졌다. 건너편에 마주 서 있는 민진후, 민진원을 보니 기분이 떠름했다. 저들 형제보다 어린, 목젖도 없는 도령을 보려니 괜히 불길했다.


그런 그들을 굽어보는 송시열의 두눈은 금세 차갑게 식어버렸다. 뇌리엔 허적이 보낸 글자들이 또 다시 자줏빛 옷고름을 기다랗게 드리우는 참이었다. 송시열은 날카로운 혀끝이 입속에서 낼름거리는 것을 느끼고, 눈길을 돌렸다. 다시 봐도 한벽루의 전망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오랫동안의 가뭄으로 남한강의 수심이 해마다 얕아지는 것이 흠이긴 하였지만, 강물이 줄어들어 얄팍해질수록, 좋은 소식이 임박할 터였다.


"곧 소결疏決이 있겠어."


송시열은 나직하게 혼잣말을 하며, 민정중을 돌아보았다. 준마를 탔다 해도 한나절이든 두나절이든 꼬박 달려왔을 것이고, 아마 지금도 엉치뼈가 욱신거릴 터였다. 미안한 일이지만, 이대로 엉치뼈가 진정되기도 전에, 또 다시 안장에 앉혀야만 했다. 고맙게도, 말을 잘 듣는 착한 제자이니, 큰 걱정은 없었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딴놈이 먹고!"


사내의 손은 못생겼다. 손가락 마디마디가 굵고 짧아서, 상평통보 1문文의 네모난 구멍조차 들어가질 않았다. 헌데도 만취한 선비는 새끼손가락 손톱 끝에 겨우 상평통보를 걸쳐놓고 팽이처럼 핑글핑글 돌려본답시고 기를 썼다. 부질 없는 짓이었다. 벌써 열댓번도 넘게 손가락 끝에서 상평통보가 굴러떨어져서 맑은 승기악탕이 가득 든 푼주며, 연노랑 빛깔이 고운 이강고가 든 술잔이며, 사정없이 퐁당 빠진데다, 그때마다 사방팔방 국물이 튀고 술이 튀어, 술상이 난리가 났다.


"나으리, 술상이..."

"그만 좀..."


사내의 양 옆 옆구리에 찰싹 달라붙어 시중을 들던 기녀들이 국물이며 술이 흥건한 술상을 보고 치를 떨었다. 사내를 말려보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스무뼘은 넘는 거리에 가야금을 뜯던 숙정 역시 앞섶에 젖은 얼룩이 진 것을 보고 몸서리를 쳤지만, 사내를 말리는 일은 진저리가 났다.


"나으리, 술상..."

"뭐? 술상 뭐?"

"국물이 다..."

"어디?"


사내는 술잔 속의 이강고를 왼손 집게손가락으로 콕 찍어 술상에 '곰'자를 써놓고선 술상마저 뱅글뱅글 돌렸다. '곰'자가 '문'자로 바뀌자 어린 아이처럼 마냥 재미있어 하며, 술상을 돌리고 또 돌렸다. 그 바람에 술상 위의 술잔이며 접시며, 심하게 딸그락거렸다. 한복판에 아직도 허연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승기악탕 국물이 넘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정원로는 실없는 장난을 치느라 여념이 없었다.


"곰! 문! 곰! 문! 흐히히! 재밌지? 재밌지?"

"..."

"곰이 재주를 넘으면, 이 상평통보 일문의 문文자가 되는 거야. 재밌지?"

"..."

"재주는 곰이 넘고, 문은 딴놈이 먹고."

"나으리! 왜 이러세요, 이러다 술상이..."

"놔! 놔! 놓으라고!"


기생 하나가 황급히 술상을 두손으로 잡고, 정원로가 더는 돌리지 못하도록 안간힘을 써보았다. 하지만 그럴 수록 정원로는 온힘으로 기생을 밀치고서 술상을 마저 돌렸다. 뒤로 자빠진 기생들이 나 죽는다 비명을 질러봤자 아무 소용이 없었다. 정원로는 반쯤 실성한 사람처럼 술상을 돌려대며 꼬장을 부렸다.


"곰이 물구나무 서면 문文! 이 문을 챙긴 놈은 김석주! 김만기! 개새끼들! 지들이 한 게 뭐가 있다고!"

"나으리이!"

"누가 나으리야! 누가! 이제 이몸은 대감이시다! 동원군東原君 대감! 알아들었냐?"

"..."

"알아들었냐고! 왜덜 대답이 없어!"


신이 나서 자랑하는 것도 아니고, 악에 받쳐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참이었다. 숙정은 정원로의 고함에 고막이 따갑다 보니 더는 노래를 부를 수도 없었다. 뭐 이런 미친 놈이 다 있나 싶었다. 마음 같아선 당장 자리를 박차고 뛰쳐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기적에 매인 몸이니 그럴 수도 없었다. 그저 누군가가 자신의 연주와 노래 소리를 듣고 달려와서 끌고 나가주길 바라는 심정으로, 숙정은 더욱 손끝에 힘을 주고, 목청을 돋워서 마저 사미인곡을 불렀다.


동풍이 건듯 불어 적설을 헤쳐내니

창밖에 심은 매화 두어가지 피었구나.

가뜩이나 쌀쌀한데 암향은 무슨 일인고.

황혼의 달이 좇아 베갯머리 비추니

흐느끼듯 반기듯 님이신가 아니신가

저 매화 꺾어내어 님 계신 데 보내볼까.

님이 너를 보시고 어떻다 여기실꼬.


너무도 매혹적인 음색이었고, 고혹적인 눈빛이었다. 하지만 정원로는 그 아름다움에 마냥 취할 생각이 없었다. 그저 짜증만 났다.


"이년이! 대답이나 하라니까!"


정원로는 악에 받쳐 숙정의 목덜미를 잡아 그대로 주안상 위로 찍어눌렀다. 뜻밖의 봉변에 숙정이 비명을 질렀다. 도저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채 식지 않은 승기악탕 국물이 넘치고 넘쳐서 숙정의 눈시울로 튀었다. 혹여 눈이 잘못될까 지레 겁을 먹고 숙정은 연신 비명을 질러댔고, 나머지 두 기생들은 문을 열어젖히고 방에서 뛰쳐나갔다.


"살려주세요!"

"어매!"


한두발짝 폴짝 문턱을 넘고 보니 어느새 장희재가 한손에 접선을 접어 쥐고 다가들어 있었다. 기생들은 문앞을 막아선 장희재를 보고 겁을 지어먹긴 커녕 오히려 구세주를 만난 표정이 되었다.


"큰일났어요! 숙정언니가...!"

"얼른!"


장희재 역시 더는 들을 것도 없이 기생들을 밀치고 문간으로 뛰쳐들어갔다. 숙정이 하필이면 어느 미친놈한테 목덜미를 잡혀 주안상에 머리를 받히는 참이었다. 그 참혹한 모습에 희재는 가슴이 섬뜩하여 한달음에 달려들었다.


"이게 무슨 짓이요?"

"뭐야 넌? 너 뭐야?"


정원로는 술이 덜 깬 눈빛으로 멍청히 장희재를 쳐다보았다. 시야가 핑글핑글 도는데도, 이놈의 얼굴은 또렷또렷하게 보였다. 번질번질한 옥빛 명주 중치막을 갖춰입었는데, 얼굴도 이목구비가 번질번질했다.


"너? 너?"

"나으리?"


정원로가 장희재를 알아본 그 순간에, 장희재도 정원로를 알아보았다. 두 사람 사이에 팽팽한 긴장이 어린 채로, 실날 같은 웃음이 스쳤다.


서로 면식이 있는 사이였다. 봉선루에서 오다가다 마주치고, 때로는 허견과 함께 술잔도 기울이고, 또 때로는 허견이 그들을 데리고 장희재 숙질의 면포전으로 가서 온갖 귀한 옷감을 갈취해갔던, 그 한패였다. 나중에 듣기론 허견과 복선군의 뒷통수를 쳐서 역모로 고변하고 자신은 그 공로로 고작 정9품 남부참봉 자리를 얻었다던가. 그리고 며칠 전엔 훈적勳籍(공신의 명부)에 추록되며, 동원군東原君에 봉해졌다던가.


"아, 이젠 대감이시지. 녹훈錄勳(훈공을 기록하는 일) 소식은 들었습니다."


장희재는 뱀같은 눈동자로 차갑게 웃었다. 술기운이 두터운 콩깍지를 씌워놓은 정원로의 두눈엔 그저 반질반질한 눈웃음일 뿐이었다. 평소에도 속을 엿볼 수 없는 장희재를, 술에 취한 지금은 더욱 들여다 볼 수 없었다.


"그래, 나도 자네 소식은 들었으이. 자네 집안이 쫄딱 망했다지. 자네 숙부들이며 사촌들이며 죄다 극변에 끌려가고 말야."

"..."

"자네도 나처럼 조정에 불만이 많겠어."


동병상련을 나누려는 듯한 정원로의 말에 장희재는 실날같은 비웃음을 머금었다.


"모르시나 본데, 제 친가만 망했을 뿐, 외가는 아직 건재합니다."

"외가? 아...자네 외가가 육의전을 꽉 잡았다지 아마?"

"예, 오히려 소인은 떼부자가 되었지요. 마음만 먹으면 이 봉선루도 얼마든지 살 수 있을 만큼 말입니다."


장희재는 웃음을 잃지 않고 대꾸했다. 정원로는 멍청히 두눈을 깜빡였다. 봉선루도 살 수 있다니. 돈지랄을 하고 싶어 안달이 난 자들이 찾아와서 하루에 뿌려대는 액수만 은 삼백냥이라는 소문이 있었다. 이런 봉선루를 살 수 있다니,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갑부라는 얘기였다. 정원로는 손아귀에 잡힌 숙정의 존재도 잊고 멍청히 되물었다.


"정말인가? 이 봉선루도 살 수 있다고?"

"물론이지요. 오늘 술을 크게 살 터이니, 그 계집은 내쫓고 저와 놀아주시지요."

"자네랑 놀면 무슨 재민가?"

"그야 돈 쓰는 재미지요."


장희재는 씨익 웃으며 그 자리에서 손뼉을 쳐보였다. 소란에 놀라서 문밖에 몰려와 있던 기녀들이 하나둘씩 방안으로 입장했다. 으스러지게 숙정의 목덜미를 틀어쥐었던 정원로의 손아귀에서 힘이 스르르 풀렸다. 숙정이 요것은 음색으로 이름이 나있는 가기歌妓일 뿐 미색으로 이름이 난 가기佳妓는 아니었다. 하지만 속속 들어오는 기녀들은 눈앞이 어질어질해질 정도로 미모가 빼어났다. 숙정도 제법 절색이지만 성에 차지 않았던 정원로로선 그야말로 양에 찼다.


"다다익선多多益善이지요?"

"그럼그럼..."


정원로는 히죽거리면서 숙정의 목덜미를 놓아주었다. 어찌나 세게 잡았던지 목덜미는 물론 뒷덜미까지 시뻘겋게 손자국이 나 있었다.


숙정이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뒤로 물러나니 멱에도 벌겋게 손자국이 보였다. 그 붉은 멍자국에 언뜻 장희재의 눈시울도 활활 불타오르는 듯 하였다.


하지만 장희재는 표정 자체는 변함이 없었다. 그저 눈시울을 한번 꿈틀하여 열을 식히고선, 정원로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나머지 열한명의 기녀들도 하나둘씩 정원로와 장희재를 마주하고 둘러앉았다.


숙정은 가만히 문가로 물러나서 지켜보았다. 어느 틈에 행수기생 봉선이 두팔 자개미에 팔짱을 찌르고 관망하는 참이었다. 숙정은 고개를 기울여 봉선에게 나직하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래요? 참봉이었잖아요?"

"며칠 전에 녹훈 하면서 동원군인지 뭔지가 되었다더라."

"친우들을 팔아먹은 대가로요?"

"뭐, 그렇지..."

"쓰레기 주제에..."


숙정은 파르르 치를 떨며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정원로를 쏘아보는 두눈엔 시퍼런 독기까지 비쳤다.


저 천하디 천한 놈이 복선군을 팔아먹었다. 귀하디 귀한 복선군이 당고개에서 흰 끈으로 목을 졸려 죽게 만들었다. 기껏해야 측실의 후예 주제에, 정실의 후예가 없다는 이유로 대를 이어 양반이란 허울만 뒤집어쓴 주제에...혈통부터 천한 놈이...귀한 분을 잡아먹었다. 저 죽일 놈이. 그런데 어떻게 저딴 놈과 술잔을 나눌 수가 있지?


숙정의 눈가에 맺힌 불길은 이내 장희재마저 집어삼킬 기세로 사납게 뻗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장희재가 정원로 같은 작자와 대작對酌을 하는 것이 속상했다. 요즘 제법 눈길이 가는 사내건만. 하지만 남의 속도 모르고, 자기 속도 모르는 듯한 이 사내는 정원로와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하며 태평하게 시시덕거리는 참이었다.


"동원군 대감! 이제 소원 푸셨겠습니다."

"소원?"

"당상이 되셨잖습니까? 이제 대감을 우습게 보는 이는 아무도 없을 게 아닙니까?"

"흥, 김석주가, 아니 이젠 청성부원군이 여기저기 떡 돌리다..."


정원로는 대꾸를 하다 말고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더는 말을 할 수도 없었다. 속은 부글부글, 눈은 이글이글, 그렇게 울화만 끓어넘쳤다.


"떡을 돌리다뇨?"


장희재가 채근했다. 대답을 해주자니 또 속이 끓어, 정원로는 술잔을 꽉 움켜쥐고 한입에 털어넣었다. 그 옆으로 장희재의 두눈이 더욱 차갑게 번뜩였지만, 정원로는 보지 못했다. 그저 자기 생각에만 빠져 있었다.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이 한잔 술로 털어버리시지요."


장희재가 다시금 술을 따라주었다. 하지만 정원로는 손가락끝이 벌겋게 피가 몰릴 정도로 술잔을 부여잡았다. 털어내자니, 온몸 힘줄 구석구석 엉겨붙었고, 담아두자니, 핏줄 하나하나 태워버리는 것만 같았다.


"나 원 더럽고 치사해서..."


정말이지 더럽고 치사했다. 남의 돈으로 빚잔치를 한다는 말이, 이럴 때나 쓰이는 말이었다. 제일 먼저 총대를 메고 허견과 복선군을 핏물로 쓸어버린 것은 정원로 자신인데, 김석주 혼자서 원훈이 되어서 제맘에 드는 자들에게 사방팔방 공훈을 나눠주었다. 그러다가 겨우 구색을 맞추자고 자신을 동원군에 봉한 것이었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개고생한 건 난데! 이 정원로! 이 몸인데! 김석주 그 시꺼먼 멧돼지가 떡하니 원훈을 차지하고선, 여기저기 저 이쁜 놈들한테 공훈을 돌리더라, 이 말이야. 웃기지도 않아! 김만기? 그 인간들이 한 게 뭐가 있어? 뭐가 있다고..."

"하긴, 김석주 대감은 몰라도, 김만기까지 보사공신이라니...그건 좀 아니지요?"

"내 말이! 한 게 뭐가 있다고...지들이 일등 공신이고, 나는, 나는..."


몇마디 맞장구를 쳐주고서, 장희재는 정원로의 술주정을 들으며 차갑게 속으로 비웃었다. 너도 한 게 없지. 진짜 역모를 고변한 것이라면, 왕도, 김석주도 이렇게 홀대하진 않았겠지. 가짜 역모를 고변한 것이니, 네놈이 더운밥이 아니라 찬밥 신세가 된 것이고. 그 흑돼지는 흑돼지대로 제 살길을 도모하겠다고 계속해서 김만기를 물고 늘어진 끝에, 함께 보사공신保社功臣인지, 보복공신인지 하는 감투를 씌워놓은 거고.


하지만, 정원로의 흐릿한 눈빛을 마주치는 순간 얼음을 한조각 삼킨 듯한 웃음이 장희재의 입가에서 금세 녹아없어져 버렸다.



"이것이...무엇입니까? 보사공신이라니요?"


서온돌의 서안 위로 두장의 조보가 놓였다. 칼자국이 흉터로 남은 진홍의 가운뎃손가락 끝이 보사공신保社功臣 넉자를 가리켰다. 그 바로 옆줄엔 일등一等 김만기金萬基라는 글귀가 또렷했다.


奮忠效義炳幾協謨保社功臣、

一等金萬基、金錫冑、

二等李立身、

三等南斗北、鄭元老、朴斌。

문충효의병기협모보사공신

일등 김만기, 김석주

이등 이입신

삼등 남두북, 정원로, 박빈.


錫冑加輔國爲淸城府院君,

立身加資憲爲陽興君,

南斗北爲宜豐君,

元老超嘉善爲東原君,

朴斌爲密城君。

김석주는 보국을 더하여 청성부원군으로,

이입신은 자헌을 더하여 양흥군으로,

남두북은 의풍군으로,

원로는 가선으로 올려 동원군으로,

박빈은 밀성군으로 삼았다.


광성부원군 김만기는 그저 고개를 조아린 채로 입을 꾹 다물었다. 영명한 중궁을 속이기는 틀렸다. 세상엔 남을 쉽게 속이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쉽게 속지 않는 이들도 있었다. 자신의 핏줄인 중궁은 전혀 달가워하지 않는 눈빛으로 추궁하는 참이었다.


"아버님!"

"..."

"왜, 말씀을 못하시는지요?"

"..."


진홍은 입을 굳게 닫은 아비를 보면서 입안이 얼얼해졌다. 매운 한숨을 내쉬고서, 마른침도 삼켰다. 아직도 임신 초기라 심신의 안정이 중요한데도, 심장이 콩닥콩닥 뛰었다.


아비는 이미 왕의 국구國舅로서 정1품 광성부원군에 봉작된 몸이었다. 더는 얻을 것도, 오를 곳도 없었다. 그런 아비가 원훈 김석훈과 나란히 보사공신의 영예를 입었다. 하지만, 진홍의 눈엔 영예가 아니라 굴레였다.


"아버님껜 이미 득은 없고, 실만 있는 일이옵니다. 헌데 어찌 보사공신에 존함을 올리셨습니까?"

"..."

"병판대감이 또 아버님을 끌어댄 것이지요? 여기, 16일자 조보를 보니 정원로가 허견의 역모를 고변한 직후 함께 궁성을 기찰하고 호위하는 일을 논의하였으니, 아버님을 함께 원훈으로 삼아야 한다고, 김석주가 아버님을 끌어대었더군요. 어쩌면 칼로, 방패로, 인질로."

"알고도, 당해줘야 했습니다."


김만기는 한숨어린 음성으로 대답했다. 어쩔 수 없었다. 말 그대로, 알고도 당해줘야 했다. 정치와는 담을 쌓고 구중궁궐에 틀어박혀 지낸 자신의 여식은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 못할 일이었다. 그나마 김석주에게 이용당했다고 자신을 나무랄 정도의 식견이라도 갖춘 것이 대견했다.


"알고도...당해요?"


진홍은 손끝에 부서지는 살얼음처럼 얼굴이 부서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비는 자세한 설명을 아끼지만, 어쩐지 곡절을 알 것 같았다. 여태 김석주는 그 교활한 머리로 끊임 없이 그녀와 아비 김만기를 인질 삼아 왕의 정면에 떠밀었다. 이래도 편들지 않을 거냐, 이래도 나 몰라라 할 거냐, 이래도 치려고 들 거냐...


360여일을 회임과 국상에 시달려 맨정신일 수가 없었던 그녀였다. 정치에 관심도 없었지만 온몸이 바닷속에서 불고 또 불어서 머릿속까지 팅팅 불어버린 느낌이었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축축 늘어졌다. 줄곧 회임을 해온 지난 3년간은 머릿속이 한 사흘은 팅팅 불은 운두병雲頭餠(수제비)같았다. 벌써 네번째 회임이니, 지금은 아예 온몸이 물먹은 솜뭉치요, 국물 바짝 졸아버린 운두병이었다. 특히나 지금은 곤죽 그 자체였다. 그래선지 무슨 생각이든 떠올리려고 하면 할 수록, 축축 밑으로 처지는 기분이었다.


"성의표시지요."

"..."


아비의 음성이 너무도 음울하여, 진홍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성의표시라니. 진홍은 두눈을 치뜨고 곰곰 생각에 잠겼다. 아비가 병판대감에게 성의표시를 할 필요는 없었다. 김석주가 암중에서 일을 꾸밀 때면 거북이 등껍질처럼 단단한 대비 김씨의 후광을 등에 업고도, 중궁인 자신과 아비 김만기까지 방패로 삼곤 했다. 매번 이런 식인데, 김석주에게 성의표시로 당해준다는 건 의미가 없었다. 어쩌면, 최석정이 한때 김수항과 송시열을 비호하는 상소문을 써서 성의를 보여준 것과 같은 맥락이 아닐까.


"누구에게요?"


진홍의 반문은 한박자 늦었다. 한참을 생각하고 물었으니, 김석주라 믿고 물은 것은 아니었다. 김만기는 대답 대신 진홍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여식은 화초 같았다. 뿌리깊은 광산김문의 핏줄인데도, 뿌리가 없는 양 물 위에 떠 있고, 물 위에서도 떠돌지 않고 늘 제자리에 떠 있는 모습이 오히려 평온했다. 향내도 있는 듯 없는 듯 은근하게 감춘 채로. 그렇게 맑은 연못에 해맑게 핀 연꽃 같았다.


하지만 연꽃도 한때였다. 벌써 세번의 회임이 잘못된 채로 네번째 회임을 하였다. 만 3년반을 하루종일 쌀 한섬을 짊어진 사람처럼 살면서 회임과 소산, 출산을 반복한 탓에, 여식은 지금 가을을 맞은 연꽃처럼 생기가 말라붙어버렸다. 내일 시들어버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왕은 연못의 물을 갈아치웠다. 연꽃이 시들지 않도록. 하지만 연못에 담긴 물을 바꾸어도, 철을 바꿀 수는 없었다. 네번째 회임마저 잘못되면 가을이 되어 싯누렇게 시들테니, 이번 만큼은 지켜줘야 했다. 아비인 자신이, 지켜줘야 했다.


자신도 모르게 돌덩이를 삼키는 기분으로 마른침을 꼴깍 삼키면서, 김만기는 품안의 서찰 한통을 어루만졌다. 중궁에게 보여야 할까나. 잠시 망설이는데, 서안 건너에서 자신을 뚫어져라 보는 진홍의 시선과 마주쳐버렸다. 손끝이 움찔하는 순간, 품속의 서찰이 바스락거렸다. 그 순간 진홍의 두눈이 반짝였다.


"송시열이, 아버님께 무슨 서찰이라도 보낸 것이옵니까?"

"..."

"보여주시겠습니까?"

"..."

"보여주시옵소서."

"..."

"보여주시지요."


더는 버틸 수가 없어서, 김만기는 마지 못해 품속에서 서찰을 한통 꺼내어 두손으로 공손히 건네었다. 중궁에게 보여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스스로 결정을 내리지 못했지만, 영명한 중궁이니 안 보일 이유도 없었다. 어차피 자신이 보사공신이 된 것을 보고, 중궁도 고민이 많아졌을 터였다. 김만기는 순식간에 아랫입술이 바짝 말라붙은 채로 진홍의 손끝을 주시했다.


진홍은 미간을 찡그리고 서찰을 펼쳐들었다. 시꺼먼 서체가 한글자한글자 검푸른 바다의 물비늘처럼 꿈틀거리는 느낌이었다. 읽어나갈 수록 집채 같은 파도가 되어 순식간에 그녀를 집어삼켰다.


- 나의 제자 영숙永淑, 보고 싶구나. 우리가 만나지 못한 지도 어언 6년이로구나. 다른 아해들은 한두번쯤 짬을 내어 들러 소식을 전하고 회포도 풀었건만, 관직에 매여 성상과 곤전을 보필하는 너는 마음만 내게 달려왔구나. 무자식이 상팔자고, 무소식이 희소식이려니, 그리 아쉬움을 달래누나. 중궁전하께서 다시금 용종을 수태하셨다는 소식은 들었다. 기쁜 소식만 들리고 나쁜 소식은 아직 들리지 않아서 한시름 덜었느니. 스승이 못나서 제자에게도, 제자의 골육에게도 아무 힘이 되어주지 못하는 것이 미안하구나. 수백의 제자들이 나를 위해 상소를 올렸다가 주상의 진노를 사서 큰 화만 입었으니, 이 죄 많은 목숨을 어이할꼬. 내 비록 멀리서나마 곤전의 안위를 노심초사하는 바...돌이켜 생각해 보면 참으로 하늘이 내린 귀인이로다. 걸음마를 떼기도 전에 태임이 되실 분이란 예언을 받들고 늘 몸과 마음을 삼가시어, 낯선 사람을 보면 설령 먼 친척이라 해도, 조심하고 또 근신하며 하늘이 내린 직분을 어김 없이 지켰으니, 하늘이 내린 조선의 국모는 정녕 한분 뿐이로다. 하늘이 성스러운 태임太任의 천명을 내리시고, 다시 그 음덕이 넘치시어 마후馬后의 숙명까지 내리셨으니, 하늘의 사랑이 너무도 지극하시어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것이 한스러울 뿐...구중궁궐에 홀로 갇혀 흉중을 터놓을 벗도 없으시니 더욱 적적하실 터...


얼핏 읽기에는 살갑고 도타운 글귀만 가득했다. 하지만 송시열의 서한을 읽으면 읽을수록 진홍의 눈빛도 어두워졌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이토록 다정다감한 편지를 읽는데 기분이 더 나빠지니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진홍은 두번세번 서찰을 읽으면서 행간의 의미를 곱씹었다.


"아직 한번도 찾아뵙지 않으셨습니까?"

"..."


진홍의 조용한 질문에 김만기는 움찔했다. 스승이 유배를 간지 6년, 아니 만 5년동안 자신은 하루도 관직을 비운 적이 없었다. 덕원부나 거제 같은 곳은 너무도 멀었다.


"대신 중궁전하의 오라비들을 보냈습니다."

"헌데 직접 찾아오지 않은 사실이 아쉬웠던 모양이군요."

"다른 제자들은 천리길을 직접 찾아오는데, 천신은 자식을 대신 보내고, 또 목숨걸고 상소를 올려 신구하는데, 천신은 줄곧 침묵했으니...상대적으로 성의가 부족하다 여기셨겠지요."

"그래서, 성의표시로 아버님의 이름을 백척간두에 올리셨구요?"

"..."


김만기는 가만히 조보에 적힌 자신의 이름을 내려다 보았다. 일등一等 김만기金萬基、김석주金錫胄...보사공신의 일등공신으로 자신의 이름이 김석주와 나란히, 아니 먼저 오른 것이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자신은 이미 그물에 든 고기였다. 복선군의 공초에도 김만기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느니, 또 허견의 공초에도 여생이라느니...모든 정황이 자신과 진홍을 가리켰다. 뒤늦게 여생은 윤휴와 김석주를 통칭하는 것이라고 저쪽에서 말을 바꾸었다지만, 자신들만 빠져나가는 모양새가 되어, 같은 서인들한테도 줄곧 눈총을 받았다. 특히나 민정중한테서. 그리고 스승은 은근슬쩍 자신의 무성의를 탓하면서 딸 진홍의 안위까지 꼬집는 서찰을 보냈다. 구구절절 스승은 행간의 여백으로 자신에게 경고했다.


태임이 될 거냐, 마후가 될 거냐...


"마후馬后...자기 아들을 못 낳고 남의 아들을 훌륭한 황제로 키워준 여인 말이지요."


딸 진홍의 나직한 음성에 김만기는 흠칫 놀라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는 부드럽고 낮았지만, 고드름 끝처럼 얼어 있었다. 그 끝이 부러지면 그대로 떨어져서 녹아버릴 것 같기도 하였다. 송시열의 서한에 진홍도 위기감을 느꼈는지 가만가만 달래듯이 복부를 쓰다듬었다.


"정말로 저는 넘치는 사랑을 받았지요. 태임이 못되면 마후가 되는 운명이라니."

"..."

"서찰은 두고 가시어요."

"어찌..."

"송시열이 아버님이 아니라 제게 간쟁하는 서한 같으니, 마땅히 제가 간직해야지요."

"..."


김만기는 할 말을 잃었다. 아무래도 진홍의 어감이 서늘했다. 행간의 의미를 읽은 것이 분명했다. 누구보다 영민한 아이였다. 아들 진구나 진규보다도 더 영특했다. 빈궁으로 간택되어 가례 전 별궁에 들어간 이 아이를 찾아와 소학을 가르칠 때만 해도, 도무지 소학의 한글자도 가르칠 수가 없었다. 홀로 모든 글자는 물론 행간의 뜻까지 파악해버린 아이에게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그래서 더 아까웠다. 왜 이 아이는 하필이면 여인으로, 그것도 왕의 여인으로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왔을까.


김만기가 비탄에 젖어서 물러가고, 진홍은 가만히 서찰을 다시금 펼쳐보았다. 서찰을 읽으면 읽을수록 뱃속이 딴딴해지다 못해 딱딱해졌다. 한글자한글자가 거센 파도처럼, 드센 물보라처럼 사람을 집어삼키는 힘이 있었다. 무서웠다. 이렇게 패도적인 서체라니.


순식간에 돌덩이처럼 굳어버린 뱃속에서 위험의 신호를 보냈다. 진홍은 황급히 서찰을 서안 위에 엎어놓고 고개를 뒤로 젖혔다. 상체도 뒤로 젖혔다. 떨리는 손끝으로 복부를 만져보았다. 두부처럼 부드러워야 할 복부가 손톱 만큼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았다.


아가야...


진홍은 정신 없이 우희와 봉이의 이름을 불러댔다. 절박했다. 수의와 여의들이 불려왔다. 여의들이 부산스런 손놀림으로 손목의 맥을 짚고, 팔다리를 주물러주었다. 그 와중에도 진홍의 두손은 채 불러오지도 않은 복부를 조심스레 감싸안았다.



"복중 아기씨께선 무사하십니다. 마음을 편히 가지시면 괜찮아지실 것이옵니다. "


흰 주렴을 내려서 중궁의 옥체를 가린 채로 여의가 진맥하고, 수의가 고하였다. 주렴 바로 앞에서 불안한 듯 서성이던 숙종은 비로소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들었소? 무탈..."


주렴을 슬쩍 들어 중궁의 얼굴을 쳐다보니, 그 눈가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참이었다. 숙종은 흠칫 놀라 말을 채 잇지 못했다. 아직 소산까지 된 것은 아닌데도, 중궁은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 것인지, 아니면 태아를 잃어버릴 뻔한 충격으로 가슴마저 먹먹해진 것인지, 눈시울을 적시는 것이었다.


"중궁..."

"..."

"중궁, 아기는 무사하니..."

"혼자 있고 싶사옵니다. 주위를 물려주시옵소서."

"..."


숙종은 목울대가 부어버린 것을 느끼고 힘겹게 마른침을 삼켰다. 누구 때문에 자신이 목구멍이 부었는데, 혼자 있고 싶다니. 차라리 둘만 있고 싶다고 말했으면 서운하지나 않았을 터였다. 헌데도 혼자 있고 싶다고 말하니 괜히 기분이 좋지 않았다. 숙종은 알았다고 답하면서 상체를 숙여서 진홍의 한쪽볼을 슬며시 꼬집어 비틀었다. 그리고는 험상궂은 얼굴로 의녀와 수의를 쏘아보았다.


"들었으면 이만들 물러가라."

"예, 전하."


약방사람들을 물리고서, 숙종은 내키지 않는 듯이 뒷짐을 지고 진홍의 금침 주변을 서성였다. 혼자 있고 싶다는 말을 무시하고 싶었다. 발꿈치만 계속 뭉그적거리니, 마침내 진홍이 볼멘 음성으로 불렀다.


"전하..."

"알았소, 알았소!"

"..."


숙종은 화를 내듯 두팔을 휘적거리고선, 막상 주렴을 헤치고 나가다 말고 또 발꿈치를 머무적대면서, 얼굴을 주렴 틈새로 빼꼼 내밀고 물었다.


"나, 정말 가야 하오?"

"송구하옵니다."

"진짜 가오?"

"예..."

"쳇!"


주렴을 세차게 놓으며 자리를 뜨려는데, 그 바람에 서안 위의 서찰 같은 것이 펄럭이며, 왼쪽 한귀퉁이의 글귀가 숙종의 시야로 빠르게 나부꼈다. 어쩐지 눈에 익은 서체였다. 한획한획이 유달리 굳세고 사나웠다.


- 대수大受(민정중의 자字)에게 열네살인 질녀가 하나 있다는데, 동춘공同春公의 피를 이어받아선지, 나이는 어리지만 제법 현숙하니, 외로우신 중궁전하께도 좋은 말벗이 될 것 같구나.


어처구니 없었다. 고작 열네살짜리가 중궁에게 말벗이 될 리가 없었다. 중궁을 뭘로 알고. 조선에 크나큰 족적을 남긴 김장생의 고손녀이자, 젊은 나이에 대제학에 올랐던 김만기의 여식이었다. 생전에 이이의 뒤를 이어 소학집주小學集註를 완성한 김장생의 직계 아니랄까봐, 소학에 누구보다 정통했다. 여인으로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유현이 되었을 거라고 김만기가 직접 인정한 그녀가, 이제 열네살인 소녀를 말벗으로 삼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고 보니, 더 어린 우희도 옆구리에 끼고 글과 그림을 가르치는 중궁이니, 또 혹시 모르지만.


헌데 저 서체는...숙종은 장지문을 넘어서며 기억을 빠르게 되짚었다. 어미를 닮아서 워낙 기억력이 좋아서 탈인 탓에, 망각은 없었다. 때로는 죽도록 잊고 싶은 순간도 잊히지가 않았다. 하필이면 저 서체의 임자가 송시열이라는 사실이 생각나버렸다. 송시열과 서한을 주고 받을 중궁이 아닌데, 어찌 된 영문인지 알 길이 없었다. 도로 방에 들어가 물으려는데, 뒷덜미를 붙잡는 듯한 옥음들이 들렸다.


"주상! 중궁은요?"

"중궁은 무탈합니까?"


어미 청풍김씨와 증조할미 양주조씨의 음성이었다. 물론 중궁이 편찮다니까 걱정되어 달려왔겠지만, 저들이 오면, 중궁에게 좋을 것이 하나도 없었다. 숙종은 정색을 하고 차갑게 대답했다.


"무탈하지만, 만일을 위해 두분께선 이만 물러가주시지요. 앞으로 사흘간은 중궁을 만나실 수 없습니다."


냉정하게 못박는 말에 대비 김씨와 대왕대비 조씨는 충격어린 눈빛으로 숙종을 돌아보며 치를 떨었다. 이럴 수는 없었다. 이 구중심처에서 자신들이 믿고 의지할 건 오직 당저 뿐인데도, 중궁에게 정신이 팔려서 자신들을 나몰라라 하다니. 괜히 기분이 상했다.


"주상! 어찌 이러십니까? 우리 때문에 복중태아가 잘못되기나 한답니까?"

"그럼 이만 물러가시지요. 중궁 대신 소자가 찾아뵙겠나이다."

"..."


더는 버텨봤자 소용이 없었다. 대왕대비 조씨는 울분이 치밀어 견디기 어려웠다. 뱃속의 용종을 무기로, 자신들에게의 문안은 물론, 자신들의 방문까지 막아버리다니. 이런다고 중궁이 멀쩡히 아기를 낳을 리가 없었다. 이런다고.


"참으로 회임이 벼슬입니다 그려."


대왕대비 조씨는 아랩입술을 씹어먹듯 비아냥거리고 홱 돌아섰다. 대비 김씨는 입꼬리를 살짝 비틀어 비웃음을 조용히 흘렸다. 그간 시할미가 쌓아온 업보가 있었다. 조씨 본인도 서인 가문 사람이니 차마 드러내고 중궁을 적대하거나 박대하진 못했지만, 교묘히 학대한 적은 많았다. 그러니 이런 대우를 받아 마땅했다.


"어마마마께서도 이만 돌아가심이..."

"내 손주가 무사한지 보기만 하겠습니다."

"어마마마도 예외는 아니십니다."

"주상! 중궁의 뱃속아기는 내 핏줄입니다. 설마하니 내 새끼 잘못되는 일을 하겠습니까?"


대비 김씨는 진심으로 자신은 대왕대비 조씨와는 다르다고 믿었다. 믿었기에 더욱 아들의 지나친 경계가 서운하고 괘씸했다. 그간 자신이 중궁에게 해가 되는 짓을 한 일이 뭐가 있다고, 자신까지 가로막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냥...혼자 있게 놔두시옵소서. 중궁이 몹시 불안해 합니다."

"하! 누군 회임 한번 안해봤나. 세번이나 회임을 망치고서 무슨 자격으로..."

"어마마마!"


조용히 그녀 자신을 부르는 아들의 옥음은 나직했지만 서늘했다. 눈빛은 더욱 싸늘했다. 대비 김씨는 말문이 막혔다.


"네! 알았습니다! 이만 가렵니다! 그 대신, 이번에도 용종을 지키지 못할 시엔 그땐 이 에미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두분께서 따라주셔야 할 겁니다."

"네?"


아들의 놀란 눈을 뒤로 하고, 대비 김씨는 치맛자락을 틀어쥐고 홱 돌아서서 자경전으로 거친 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보며 숙종은 의아히 미간을 찌푸렸다. 방금 어미는 무언가 흉중에 계획을 품은 것처럼 으름장을 놓았다. 어쩐지 께름칙했다. 어떤 때는 증조모인 대왕대비 조씨보다 친모인 대비 김씨가 더 마음이 놓이지 않을 때도 있었다. 보통 아들은 자기 어미는 하해河海와 같은 모성을 지녔다고 철석같이 믿는 법이건만, 그리하여 고부간의 갈등은 무조건 며느리 탓이라고, 아내보다는 어미 편을 들게 되는 법이건만, 이상하게도 자신은 어미가 더 불안했다. 손톱을 감추려고 힘껏 두손을 웅크리느라 오히려 시퍼런 힘줄이 한껏 도드라진, 그리 미운 손을 보는 느낌이었다. 괜히 자신이 예민해서 어미의 심기를 건드렸나 싶어서, 숙종은 어미의 모습이 멀어질 때까지, 그 울긋불긋한 손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전하, 이만 편전으로 돌아가심이..."


두광이 조심스레 간하자, 숙종은 입을 꾹 닫고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영 내키지 않는 얼굴이었다. 유독 더운 날씨였다. 벌써 두어달은 비도 거의 내리지 않은 듯하였다. 올해도 가뭄이면, 소결을 거행해야 했다. 하지만 소결은 정말로 내키지가 않았다. 숙종은 마치 두광이 자신의 두 다리에 매달리기나 한 것처럼 질질 끌며 편전으로 향했다.



편전 안은 한여름에 한낮인데도 소슬했다. 가뭄으로 인해 죄수들을 석방하는 소결을 의논하는 자리인데도, 삼정승 중 아무도 오질 않았다. 형조판서만 소결을 위한 문서들을 챙기고 참석하여, 도승지와 모종의 눈길을 주고받는 참이었다. 그림자로는 눈길을 읽을 수가 없으니, 석정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어 눈치를 살폈다.


"어이하여 다들 보이질 않는가? 영상은?"


숙종이 미심쩍은 눈길로 묻자, 도승지 윤계가 등뒤의 승지 이익에게 눈짓했다. 이익이 따로 두루마리 두필을 챙겨놓은 소반을 도승지에게 건네었다. 도승지는 소반을 받아들고 서슴서슴 아뢰었다.


"여기...영상과 좌상의...사직차자이옵니다."

"사직차자?"


숙종은 미간을 찡그리고 소반 위를 내려다보았다. 삼공이 둘씩이나 사직차자를 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무턱대고 등청하지 않았다.


"우상은?"

"우상은...몸이 좋지 않아서..."


도승지가 어물어물 답하였다. 숙종은 두눈을 지릅뜨고 도승지를 노려보았다. 등뒤에서 파초선을 부치던 두광이 어탑 아래로 쪼르르 달려내려가서 소반을 낚아채어 어탑으로 돌아왔다. 두광이 서안에 두 필의 두루마리를 내려놓기 무섭게 숙종은 차자를 펼쳐들었다. 김수항의 사직소부터 숙종은 빠르게 훑어내렸다.


갑인년 겨울, 송시열이 효종의 적통에 관하여 결백을 주장하는 상소 초고를 써서 자신에게 보냈는데, 당시 국상 중이라 어심을 어지럽힐까 두려워 만류하였더니, 도리어 왕의 오해를 풀지 못한 채로 6년이나 되었다며, 자신의 죄를 벌하여 달라는 차자였다. 하지만 행간의 글자가 숙종의 목젖을 꽉 누르는 것만 같았다.


이만, 대로大老를 풀어주시지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4

  • 작성자
    Personacon ANU
    작성일
    14.06.22 12:39
    No. 1

    슬쩍 풀어주면 열흘굶은 염소마냥 다 집어 먹으려 하는군요.
    날씨가 오묘?합니다. 건강하세요 =)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8 뚱뚱한멸치
    작성일
    14.06.23 09:38
    No. 2

    이제 자릿값을 하는 걸까요?
    송시열의 제자들이...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38 파리매
    작성일
    14.06.23 11:47
    No. 3

    잘 봤습니다.
    또 폭풍우가 오는군요. 진홍이 무사할지? ㅠㅠ
    송가 늙은이의 욕심이 그저 추하기만 하다기에는 너무 크디 크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눈겨산환
    작성일
    14.06.24 14:39
    No. 4

    조선이 망하는 길로 들어서는데, 송시열이 아주 지대한 영향을 끼쳐죠. 저런 넘이 송자로까지 추앙을 받았으니 망조일 수밖에.

    오늘도 즐감여^^

    찬성: 1 | 반대: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해의 그림자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94 해의 그림자 193 +4 14.06.28 1,861 36 40쪽
» 해의 그림자 192 +4 14.06.21 2,017 31 41쪽
192 해의 그림자 191 +5 14.06.15 1,838 26 42쪽
191 해의 그림자 190 +5 14.06.09 3,270 38 41쪽
190 해의 그림자 189 +4 14.06.01 2,196 47 41쪽
189 해의 그림자 188 +12 14.05.26 3,055 43 40쪽
188 해의 그림자 187 +8 14.05.22 1,957 31 42쪽
187 해의 그림자 186 +8 14.05.18 2,168 32 40쪽
186 해의 그림자 185 +13 14.05.11 2,178 35 43쪽
185 해의 그림자 184 +12 14.05.05 2,100 37 42쪽
184 해의 그림자 183 +10 14.04.27 1,861 34 37쪽
183 해의 그림자 182 +8 14.04.21 2,182 45 35쪽
182 해의 그림자 181 +8 14.04.15 2,307 32 42쪽
181 해의 그림자 180 +12 14.04.10 1,898 33 39쪽
180 해의 그림자 179 +12 14.04.06 2,126 29 41쪽
179 해의 그림자 178 +10 14.04.02 1,765 31 42쪽
178 해의 그림자 177 +7 14.03.29 1,685 32 41쪽
177 해의 그림자 176 +7 14.03.25 2,322 32 43쪽
176 해의 그림자 175 +6 14.03.21 2,232 38 36쪽
175 해의 그림자 174 +2 14.03.17 2,108 24 39쪽
174 해의 그림자 173 +4 14.03.13 2,259 98 37쪽
173 해의 그림자 172 +6 14.03.09 2,329 39 36쪽
172 해의 그림자 171 +6 14.03.05 2,467 32 39쪽
171 해의 그림자 170 +4 14.03.01 2,759 27 35쪽
170 해의 그림자 169 +5 14.02.26 2,586 29 39쪽
169 해의 그림자 168 +2 14.02.22 2,978 32 30쪽
168 해의 그림자 167 +3 14.02.19 2,083 26 38쪽
167 해의 그림자 166 +4 14.02.15 1,783 30 38쪽
166 해의 그림자 165 +4 14.02.11 2,178 29 40쪽
165 해의 그림자 164 +5 14.02.07 1,920 33 4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