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의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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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파
작품등록일 :
2012.11.19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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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12.2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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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2.11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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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의 그림자 165

DUMMY

가을이라, 먼동이 트기 전의 하늘은 온통 구름 한점 없이 맑고 푸르렀다. 진홍은 발치에서 바스락거리는 가랑잎을 조심스레 밟으면서 후원으로 나오다가, 시선을 살짝 위로 들어 새벽녘 푸르른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구름도, 해도, 유난히도 높았다. 귀밑을 간질이는 바람도 소슬하기만 하였다. 출산이 임박해서인지 치골이 아픈 탓에 몇발짝을 걷는 데만도 힘이 들었다.


진홍이 어쩐지 평소보다 늘어지는 걸음걸이로 후원의 연못가에 당도하니 시어미가 벌써 궁인들을 거느리고 와서 기다리는 모습이 그녀의 시야에 비쳤다. 꼭두새벽부터 자신을 애련지로 불러낸 장본인이었다.


"어마마마..."


진홍은 황망히 걸음을 재촉했다. 축축한 연못가라 눅눅해진 낙엽들이 발밑에서 미끌거리는 탓에 빨리 걷기는 힘들었다. 새벽이슬 때문인지 코끝이 시리기도 하였다.


"천천히 오세요."


시어미가 웬 일로 자애로운 미소로 만류한다. 진홍은 의아히 두눈을 깜빡였다. 시어미가 고마울 때는 사실 일년에도 열손가락 꼽을 만큼 드물었다. 그나마 만수전이 그녀를 찾아와서 한시진이고 두시진이고 차를 마시면서 곧은 자세로 한참을 견디게 만들 적에, 가뭄의 단비처럼 찾아와서 잠시라도 일어서게 하는 정도였다. 그 외엔 언제나 강퍅한 성정으로 진홍의 신경을 고문할 때가 많았다.


"어마마마..."

"많이 걸어야 아기를 순산할 수 있습니다. 내 그래서 중궁과 함께 걸으려고 불렀어요."

"예..."


모전자전인가. 꼭두새벽부터 불러내어 산보를 시키는 시어미나, 밤늦도록 끌고 다니는 지아비나...진홍은 고마움반 원망반 범벅이 된 웃음을 지었다.


"내 알아보니 중궁은 여기 연못을 둘러보는 걸 좋아한다지요. 애련지...라던가...?"

"예..."

"애련지라...중궁이 붙인 이름이라지요?"

"아니옵니다. 중종대왕 때 잠깐 애련지로 불렸다고 하여, 저도 그냥 애련지로 불렀사온데..."

"중궁이 애련지로 부르니, 주상도 애련지로 부르구요?"

"정식으로 붙인 이름은 아니옵니다."


진홍은 어쩐지 자꾸만 화제가 삐딱해지는 것을 느꼈다. 정답게 대화를 나누다가도 뭔가 뾰족한 톱니와 맞물려서 화제가 엉뚱하게 빗나가니, 그저 부대끼는 느낌이었다. 그래선지 뱃속 깊은 곳에서부터 콕콕 찌르는 듯한 통증이 일었다.


"중궁이 발견했다는 그 소각은 그래 뭐라 이름 붙였습니까?"

"아직...이옵니다. 어마마마께서 붙여주시옵소서."

"내가 그럴 자격이나 되나요? 궐안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조차 주상이 이름 짓는 법이거늘..."

"..."

"난 아직도 그 소각이 어디에 있는지 모릅니다. 선대왕께서도, 주상도, 중궁도 가보았는데 나만 통 가보질 못하였으니..."

"..."


진홍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모를 리가. 애련지 근처에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 테고, 시간이 지난 지금은 충분히 위치를 파악하셨을 터였다. 다만, 들어가질 못하니 답답하셨을 터.


시어미가 먼저 걸음을 옮기더니 어느덧 소각 앞에 이르렀다. 진홍은 난처한 얼굴로 뒤따랐다. 오늘은 시어미가 소각에 들려고 작정을 하신 모양이었다. 시어미를 막을 방도 따위는 그녀에게 없었다. 당장 화끈거리는 고통을 참아내느라 콧잔등에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나도 소각 하나를 발견했지요. 헌데 어떻게 들어가는 건지를 모르겠더이다."

"..."


시어미의 걸음이 소각 앞에 멈춰섰다. 그것도 녹슨 드무 앞에. 진홍은 난처한 표정으로 봉이와 상아를 돌아보았다. 이들이 누설했을 리는 없다. 벌써 7년 안팎의 세월이 흘렀으니 시어미가 못 알아내었을 리도 만무했다. 이제 와서 비밀문을 감추거나 할 수도 없었다.


"저기 오는군요."

"네?"

"주상은 중궁이 어딜 가든 알고 쫓아오니 참 신기하지요."


대비 김씨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애련지쪽을 쳐다보았다. 왕과 두광이 빠른 걸음으로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드는 참이었다. 혹여 어미가 만삭의 중궁을 들볶거나 할까 싶어, 꽁지에 불붙은 듯 달려오는 모습이 가관이었다. 지금은 동이 트기 전에 상참의를 준비할 시각인데도 용케 알고 쫓아오다니. 두광이놈이 조족등을 들고 뒤따르며 소매에서 열쇠를 꺼내드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비밀문이 따로 있을테지만, 지금은 그저 이 소각의 문만 열면 그만이었다. 그녀는 이 소각 안에 숨어 있을 물건들이 너무도 궁금했다.


그렇게 해서 대비 김씨는 결국 아들, 며느리를 앞세워서 소각 안으로 들어섰다. 워낙 은밀하게 방치된 공간이라선지, 눅눅하고 퀴퀴한 냄새들이 코를 찔렀다. 낡은 서책들이며, 쇠붙이, 나무붙이들도 케케묵은 냄새를 풍겼다.


"드디어...와보는군요."

"..."

"별 거 없사옵니다."

"그러시겠지요."


심드렁히 둘러대는 아들의 옥음을 뒤로 하고, 대비 김씨는 서가 앞으로 다가들었다. 그 틈새에 놓인 세개의 거울이 그녀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금빛, 은빛, 구리빛으로 저마다 반짝이는 거울들이었다.


"이건..."


대비 김씨가 동거울을 움켜쥐는 순간, 아들의 숨넘어갈 듯한 소리가 고막을 파고들었다.


"중궁? 이게 웬 일이오 중궁?"

"..."


진홍은 발목을 타고 흐르는 검붉은 핏물을 내려다보며, 두려운 눈동자로 허공을 보았다. 지아비의 공포에 질린 얼굴도, 시어미의 떨리는 음성도 그저 허공을 맴도는 연기 같았다.


"하혈이라니? 어서, 어서 중궁을 데려가세요 어서!"

"여봐라. 가서 가마를...어서, 어서...!"


진홍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저 발밑으로 혈루가 뚝뚝 흘러내릴 뿐이었다. 양수가 터진 거라 믿고 싶었다. 아직도 태동은 복부에서 일었고, 의식도 멀쩡했다. 핏물에 놀란 지아비와 시어미의 호들갑일 뿐이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하지만 머릿속 의식이 점점 흐려지며, 찢어지는 듯한 뱃속 고통은 점점 짙어졌다. 뭔가 잘못되었다. 이 고통은...처음 공주를 출산할 때와는 또 달랐다. 진홍은 자신의 팔을 힘껏 붙든 지아비의 손길을 느끼며 무릎에서 점점 힘이 빠졌다.


당장 서온돌이 산실로 꾸며졌다. 왕도 동온돌을 비우고 양화당으로 침전을 옮겼다. 진홍은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얼굴로 산자리에 누운 채로 천정에 가막쇠로 못박힌 말고삐를 보며 두눈을 깜빡였다. 처음 보는 광경도 아닌데도, 방안 풍경은 여전히 그녀의 가슴을 떨리게 하였다. 검푸르스름한 새벽공기를 방안 구석구석 자리한 촛불이 어슴푸레 밝혔는데, 시뻘건 경면주사로 진하게 그린 당일도當日圖와 최생부催生符, 차지부借地符, 안산실길방安産室吉方, 장태의길방藏胎衣吉方이 나붙어 있어 을씨년스러운데다, 자신이 겹겹이 깔고 누운 백마피, 유둔, 쌀포대, 짚자리가 푹신푹신하기보단 퍼석퍼석했다.


"..."


진홍은 가만히 심호흡을 하였다. 깊게 코로 숨을 들이마시고, 또 내쉬었다. 등허리가 뻐근하니, 조금씩 산통이 밀려드나 싶었다.


이번엔 꼭 원자를 낳으라며 두손을 모아쥐던 시어미의 얼굴이 떠올랐다. 차마 아무 말도 못했지만 두눈은 간절히 원자를 갈망하던 지아비의 얼굴도 떠올랐다. 그들이 원하는 원자를 낳고 싶은 마음이야 그녀도 굴뚝 같았다.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속이 시꺼멓게 탈 것만 같았다.


지금 몸상태가 너무도 좋지 않았다. 하복부에서 시작된 고통으로 이미 식은땀을 흘린지도 벌써 몇시진이 지난데다, 다리 사이에서 혈루는 도저히 멈추지도 않았다. 수의 이동형이 진두지휘하는 약방에서 탕약까지 달여왔다.


"교애사물탕 膠艾四物湯이옵니다."


의녀 영림이 탕약을 가져와서 그녀를 부축해서 앉혔다. 진홍은 은림의 어깨에 등을 반쯤 기댄 채로 겨우 앉아 탕약을 한모금 마셨다. 심장이 평소보다 미친 듯이 뛰었다. 겨우 한모금 마시고서 약사발에서 입을 떼는 진홍을 보고서 의녀 영림이 초조한 얼굴이 되었다.


"어서 드십시오. 하혈부터 멈추셔야 무사히 아기를 순산하실 수가 있습니다."

"..."


진홍은 떨리는 두손으로 약사발을 움켜쥐었다. 가슴이 왜 이리 두근거릴까. 콩닥거리는 소리가 너무도 크게만 들렸다. 왜 자신은 출산조차 이리 무사히 넘기질 못하는 건지. 벌써 세번째 회임인데, 첫번째는 식중독으로 인한 조산, 두번째는 해수로 인한 소산, 세번째는 심한 하혈로 인한 난산...


"넌 낯이 익구나..."


진홍은 영림의 얼굴을 돌아보고 핏기라곤 남아있지 않은 얼굴로 해사하게 웃었다. 자신보다 나이도 꽤 많아보인다. 한 스물여덟? 아홉? 영림은 가슴이 온통 후들거려 웃을 기분도 나질 않았다.


"어서 쭈욱 들기나 하시옵소서."


영림의 독촉에 진홍은 겨우 탕약을 들이키고 손에서 힘이 좍 빠진 채로 탕약을 허벅지 위로 내려놓았다. 영림이 황급히 약사발을 받아들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워낙 상황이 급박해서 천정에 매단 말고삐를 자신도 모르게 팔꿈치로 치는 바람에 말고삐가 흔들거렸다. 진홍은 말고삐가 귓가를 스쳤지만 영림을 탓하지 않고 쓰러지듯 다시 산자리 위로 힘없이 누웠다. 복부의 고통으로 인해 팔다리를 제대로 펼 수도 없어 웅크리고 눕는 것이 고작이었다.


영림과 함께 중궁을 모시는 의녀 녹향이 얼른 약사발을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다. 영림은 딱한 얼굴로 진홍을 내려다보곤 그녀의 상세를 유심히 지켜보며 맥도 짚어보고, 팔다리도 주물렀다. 약사발을 치우고 돌아온 의녀 녹향이 진홍의 다리 사이를 보더니 핏빛이 점점 붉어지는 모습에 질겁했다.


"어우 어떡해...더 심해지셨어..."

"뭐?"


영림은 손으로 저고리 앞섶을 꾹꾹 눌렀다. 놀란 가슴이 채 진정이 되지도 않았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교애사물탕을 복용하셨으면 약효가 돌 때도 되었는데 왜 아직도...영림은 산실 구석 서안 앞으로 다가들어 황급히 붓을 집어들었다. 그런데 무슨 변고인지, 청설모가 붓대에서 툭 빠져버렸다.


"아니 이건 왜 또..."


영림은 재차 품속을 더듬어서 붓대가 벌건 붓 하나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서안 위 남는 종이 위로 황급히 붓을 놀렸다. 힘들게 중궁의 팔다리를 주무른 탓인지, 아니면 더욱 심해진 하혈에 놀란 탓인지, 손가락 끝에 힘이 제대로 들어가질 않았다.


- 교애사물탕을 복용하셨는데, 약효가 듣질 않습니다.


"이걸 어의 영감께..."

"알았어. 계속 주물러드려."


영림이 쓴 서계를 들고 녹향이 황급히 바깥으로 달려나갔다. 뜨락에 수의 이동형을 비롯한 의관 3인과 서리는 물론, 내관 및 본방나인들이 대기하는 참이었다. 약방제조인 허적, 도제조인 김석주도 한시도 자리를 뜨지 못한 채로 서성였다.


"여기..."

"탕약은 효험이..."

"없습니다. 어서 다시 처방을..."


녹향도 마음이 급했다. 수의의 말을 끝까지 들을 여유도 없이 그저 손안의 서계를 내밀며 독촉할 뿐이었다. 수의는 심장이 철렁하여 서계를 받아들었다. 손이 덜덜 떨려서 서계를 펴다가 도로 접고 말았다. 침착하려고 하였지만, 다시 서계를 펴는데 짜증이 확 일었다.


"나으리!"

"허...교애사물탕에 상기桑寄 한돈을 추가해야겠습니다."


수의는 허적과 김석주를 쳐다보며 빠른 어조로 말하고선 그 자리에 철푸덕 주저앉아 황급히 붓을 놀렸다. 처방을 내려도, 절차상 왕에게 먼저 재가를 받아야만 했다. 교애사물탕에 상기 1전錢을 추가한 탕약을 지어올리겠다는 서계를 쓰고도 바로 탕약을 짓지 못하고, 녹향이 황망히 편전으로 내달렸다. 그런데 협문을 나서기도 전에, 내관과 금군, 별감들을 대동하고 이쪽으로 곤룡포를 펄럭이며 성큼성큼 걸어오는, 아니 달려오는 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전하?"

"중궁은?"

"여기...어서 윤허하여 주시옵소서."


녹향은 마음이 급했다. 모두가 급했다. 격식이고 예의고 차릴 겨를이 없었다. 숙종은 너무도 심각한 통명전 분위기에 간담이 움츠러든 채로 황급히 서계를 펼쳐들었다. 두손이 덜덜 떨려서, 자신도 모르게 서계 양끝을 구겨쥐었지만, 당장은 글만 읽으면 되었다.


"교애사물탕에 상기 한돈?"

"예 전하, 어떻게든 식은땀과 하혈을 멈춰야..."

"알았다."


숙종은 황급히 손을 뻗었다. 아무나 빨리 지필묵을 내놓으란 손짓이었다. 수의 옆에 있던 의관이 채 먹물이 마르지도 않은 붓과 벼루를 대령하자, 숙종은 그 자리에서 지도知道라고 답하고선 두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했다. 마음이 너무도 불안하고 초조했다. 세번째 회임인데, 왜 이리 가슴이 떨리고 무서운지. 하혈은 걷잡을 수 있는 건지.


중궁, 힘을 좀...


가슴 속의 당부를 채 끝맺을 수도 없다. 말끝을 얼버무리는 것은 자신답지 않은 일인데도, 자신도 모르게 얼버무리게 된다. 숙종은 산실 안에서 온몸이 땀에 젖은 채로 고통에 시달릴 진홍을 생각하며 두손을 불끈 쥐었다. 너무도 힘껏 주먹을 움켜쥔 탓에 손등의 시퍼런 힘줄이 도드라졌다.


산통이 반시진마다 한번씩 등줄기를 훑더니, 이제는 2각마다, 다시 1각마다, 그렇게 점점 간격을 좁혀왔다. 웅크리고 모로 누워 있던 진홍은 점점 고통이 목구멍까지 비집고 튀어나올 것만 같아 말고삐를 힘껏 움켜쥐었다.


아가야...


진홍은 그리운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입안 가득 웃음을 머금었다. 몸속에 생선등뼈보다 거대한 것이 꿈틀거리는 것만 같은 고통 때문에 팔다리를 제대로 펼 수도 없는데도, 그녀는 아기가 무사히 나올 수 있도록 자궁 문을 열어줘야 했다. 소슬한 늦가을 날씨인데도 식은땀이 날 만큼 온몸이 괴로운데도, 온몸을 열어줘야 했다.


사내아이일까, 계집아이일까.


죽은 공주여도, 오다가 말았던 아기여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간에, 무사히 자신에게만 와준다면 그것으로 족하였다. 이제는 아기와 만날 시간...다리 사이에서 무언가 뛰쳐나오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진홍은 구슬땀을 흘리면서도 두눈을 반짝이며 허공을 보고 웃었다.


아가야, 고맙다...


"경하...드리옵니다. 공주아기씨입니다."


영림이 탈진하여 온전히 나오지도 않는 음성으로 축하의 인사를 건네었다. 그 음성엔 어쩐지 아쉬움이 짙게 깔려버렸다. 진홍은 허공을 올려다 보며 눈물을 글썽였다. 공주아기씨라니...죽은 공주가 다시 와준 걸까, 아니면 세상 빛도 보지 못하고 뱃속에서 꺼져버린 그때 그 아기가 다시 와준 걸까, 아니면 새 공주인 걸까...생각은 더 이어지질 않았다. 새하얗게 안개가 머릿속을 가득 메웠다.


의식이 가물가물한 순간, 영림이 진홍의 품안에 아기를 안겨 주었다. 말랑말랑 촉감과 뜨끈뜨끈한 체온을 가진 아기가 진홍의 품으로 안겨 들었다. 진홍은 품속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 보았다. 눈도 채 못뜬 아기가 그녀의 엄지손톱만한 입을 비죽이며 울먹였다. 말갛고 발간 얼굴을 내려다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코끝이 찡해지는 순간이었지만, 진홍은 더는 아기를 안을 기력도 없었다.


진홍의 팔이 스르르 풀리자, 영림이 황급히 아기를 안아들었다. 흐려지는 진홍의 시야로 아기의 얼굴이 다시금 눈에 들어왔다. 진홍은 입가에 흐릿한 미소를 띠면서 의식이 흐릿해졌다.


"감축드리옵니다. 참으로 왕실의 홍복이옵니다."

"..."

"경하...드리옵니다."

"..."


숙종 역시 양화당 앞에서 제조 허적과 도제조 김석주의 하례를 받으면서 안색을 흐렸다. 공주의 탄생은 물론 기쁜 일이었다. 그것도 산모와 아기 둘다 위험한 상황에서 무사히 태어났으니 더욱 다행스런 노릇이었다. 하지만 앞으로 중궁이 원자를 생산할 때까지, 매번 가슴을 졸이고 원자의 탄생을 기다릴 생각을 하니 암담했다. 중궁이 원자를 낳지 못하면 후궁한테서라도 왕자를 얻어야 하는 것이 궁중의 법도인 탓에.


"중전마마!! 정신을, 정신을 차리시옵소서!"


겨우 마음을 놓으려는데, 산실인 통명전 서온돌에서 의녀 영림의 다급한 음성이 허공을 찢었다. 숙종은 고개를 퍼뜩 쳐들고 산실 쪽을 돌아보았다. 자신도 모르게 안으로 뛰쳐들어가려 하자, 허적이 황망히 그 앞을 가로막고 고개를 조아렸다.


"전하, 들어가실 수 없사옵니다."

"비켜라. 중궁이 정신을 잃었다지 않느냐?"

"피를 많이 흘리신 탓이옵니다. 의녀들과 어의들이 대기하여 중전마마를 보살피니 너무 걱정 마시옵소서."

"내 얼굴만 볼 것이다."

"전하, 신들이 숙직하여 중전마마의 상세를 지켜볼 것이옵니다. 너무 걱정 마시옵소서."

"..."


숙종은 어느덧 입안이 바짝 말라버린 채로 아무 말도 못하였다. 중궁이 난산 끝에 공주를 낳았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마음이 워낙 불안하고 머릿속이 아득했다.


"산후통을 앓으시는 것이옵니다. 성심껏 보살필 것이오니, 심려 놓으시옵소서."


수의가 차분하게 간하는 말에 숙종은 그대로 제자리에 못박혔다. 더는 들어갈 수가 없다. 도대체 가슴을 몇번이나 쓸었는지 세어볼 수도 없다. 그러고 보니 아기는 건강하냐는 말도 물어보질 못하였다.


"아기는, 강건하냐? 건강한 것이냐?"


이미 최어의가 산실인 서온돌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 흰 주렴에 가려진 중궁의 모습을 뒤로 하고, 최어의가 아기의 상세를 살피는 참이었다. 차지내관이 황망히 안으로 뛰쳐들어가서 최어의와 얘기를 나누고서 도로 달려나와서 고하였다.


"그게...난산으로 태어나서, 두고 보아야 알 것이라고..."

"..."


숙종의 안색이 흐려졌다. 왕자가 아닌 공주라는 사실에 실망할 겨를도 없었다. 허적이 기쁜 내색을 감추려고 애를 쓰면서도 얼굴이 환히 빛나는 몰골이 눈에 들어올 짬도 없었다. 산모도 아기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지경이라니. 의녀가 걷어온 산자리를 허적이 둘둘 말아서 붉은 끈으로 산실 문앞 한가운데에 매달아 엄숙하게 현초를 치르는 것도 숙종은 눈에 들어오질 않았다.


석주는 복잡한 눈길로 흘끔흘끔 왕의 용안을 훔쳐보다 속내가 얽히는 것을 느꼈다. 강화도에서의 일이 떠오른 탓이었다. 큰스님은 왕이 세번 가례를 올릴 운명이라 답하였고, 작은스님은 중궁이 희우가 되어 왕 대신 죽을 운명이라 답하였다.


소현세자의 죽음 이후, 효종과 현종은 마흔 전후로 단명했다. 역대 왕들이 명이 짧았어도 이렇게 짧지는 않았다. 헌데 피의 저주인지 대대로 짧은 명줄을 타고 났으니 당상 또한 마흔을 채 넘기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런데 세번 가례라니...최소한 세분의 왕후를 앞세울 만큼은 오래 사시리라.


그리 천수를 누리시기 위한 제물, 희우가 저 산실 속의 중궁이라면, 어쩌면 중궁에게서 원자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지도...


석주가 머릿속에서 불측한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동편에서 떠오른 해는 중천에 떠올랐다, 서편으로 기울고, 땅거미 속에 자취를 감추었다. 유독 검은 얼굴이 어스름 속에 잠긴 채로 그는 가만히 두눈을 내리감았다. 밤이 오면 졸린 두눈을 붙여야만 했다. 그러라고 밤이 오는 것이었다. 아무리 산실청에서 허적과 함께 직숙을 하더라도, 잠도 자지 말란 법은 없었다. 만일 원자라면 두눈에 불을 켜고 지키겠지만, 공주인 마당에 두눈에 불을 켤 필요는 없었다.


"공주라면서요."


등뒤에서 들려온 여인의 음성에 석주는 흠칫 어깨를 들썩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사촌누이가 당의를 곱게 차려입고, 온몸에서 냉기를 폴폴 풍기면서 서 있었다. 중궁이 공주를 생산했다는 소식을 아침 나절에 듣고서도, 해가 저문 저녁 나절에야 와서 시큰둥히 묻는 첫마디에 그 기분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산모가 무사하신 것 만으로도 축복이지요."


석주는 대답하다 말고, 문득 묘한 눈길로 대비전을 쳐다보았다.


"실망하셨습니까?"

"아니라면 거짓말이겠지요. 벌써 세번째 회임인데 어찌..."


대비 김씨가 매운 한숨을 내쉬면서 말끝을 흐리자, 석주는 어두운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곤 상체를 숙여서 나직하게 속삭였다.


"강도에서 화엄사 고승들에게 중궁의 사주를 물었더니 태임이되, 희우라 하더이다."

"희우?"

"천자가 제물로 쓰는...순백 혹은 순흑의 소지요."

"..."


석주의 말에 대비 김씨는 그다지 놀라지도 않은 눈빛으로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사촌오라비 석주의 날카로운 눈길이 꼬챙이가 되어 자신의 동공을 후벼파는 느낌이 들었다. 간혹 사촌오라비는 남의 속내를 쉽게 꿰뚫어볼 때가 있다. 어둠 속이든 어둠 밖이든 상관 없이, 언제든 읽고 싶을 때 읽는 것만 같았다.


"왜 놀라지 않으십니까?"

"놀라야 합니까?"


미심쩍은 사촌 오라비의 질문에 대비 김씨는 냉담히 되받았다.


"중궁의 사주가 태임이되 희우라는데..."

"사주가 희우일 리 있습니까?"


대비 김씨는 차갑게 일축하고 돌아섰다. 어차피 중궁과 공주가 있는 저 산실은 사흘간은 아무도 들어가지 못하게끔 외부에선 출입이 제한되어 있다. 산실청 소속의 의관과 의녀, 내관, 시녀들만 출입이 가능한 만큼, 자신이 통명전을 방문한 것은 그저 구색을 맞춘 것이었다. 오래 있을 필요도, 의무도 없었다. 더군다나 사촌오라비의 캐묻는 듯한 질문까지 온몸으로 받아낼 생각도 없었다.


"그렇지요. 애초에 중궁의 사주엔 희우가 없습니다. 그저 생년일시를 듣자마자, 어린 중놈이 입을 허투루 놀린 것이지요."

"..."

"헌데 그자들이 하필이면 화엄사 소속이고, 각성覺性과 연이 닿은 자들이란 사실이 문제랄까..."

"..."


대비 김씨는 더는 못 들어주겠는지, 그대로 걸음을 떼어 산실청을 나섰다. 사촌오라비가 집요하게 뒤따르며 입이라도 놀릴까 신경이 쓰였는지. 그녀의 걸음은 무척이나 촉급했다. 헌데 그럴수록 김석주의 걸음도 엽렵하게 따라붙었다.


"대비마마, 얘기 좀 하십시다..."

"..."


귀찮게 되었다. 어둠 속에서 석주를 돌아보는 대비의 두눈에 가시가 돋쳤다. 하지만 석주는 그저 말 없이 씨익 웃어보일 뿐이었다. 자리를 옮겨서 대화를 나누자는 듯이, 그 눈꺼풀을 치뜨고 웃는 얼굴에, 대비 김씨는 입맛을 쓰게 다셨다. 중궁이 희우라...게다가 세번째 회임 끝에 낳은 아기도 공주인 이상, 사촌오라비 김석주가 무슨 생각을 할 지는 사실 너무도 뻔하였다. 자신과 오라비는 같은 부류의 사람...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 지를 들킬까봐 오히려 두려웠다.


"자경전으로 가시지요."


대비 김씨는 사촌오라비 석주를 힐끔 노려보며 눈짓했다. 후궁을 간택할 준비를 하자는 말이든, 아니면 자꾸만 태기불안胎氣不安(임신불안)으로 조산, 소산, 난산을 일으키는 중궁을 어찌하자는 말이든, 어차피 뚫린 귀로 오라비의 얘기를 못 들을 것이 없었다. 그나마 입은 자유라서 하기 싫은 말은 입을 닫으면 되니, 일단은 보는 눈을 피해 자경전으로 옮겨야만 했다.


대비전과 김석주가 함께 통명전 협문을 나서자. 양화당 옆에서 허적이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눈엣가시였던 김석주가 자리를 비웠다. 태어난 아기가 원자가 아닌 공주인 이상 굳이 지킬 필요를 못 느낀 건가. 물론 원자도 아닌 공주를 자신들이 해할 필요도 없었다. 차갑게 냉소를 머금으면서 허적은 협문 틈새로 모습을 드러낸 서후행을 힐끔 쳐다보았다.


공주를 해할 필요는 없지만, 중궁을 지울 필요는 있으니.



하늘이 칠흑빛 혹은 주홍빛으로 반짝이고, 금빛 혹은 은빛의 시야가 닫히고, 또 열렸다. 진홍은 팔다리가 퉁퉁 부어오른 채로, 온몸이 부대껴서 신열을 앓았다. 눈꺼풀이 감겼다가, 혹은 떠졌다가, 그렇게 금모래 은모래가 잔뜩 속눈썹에 낀 것처럼 졸음이 통 가시질 않았다. 온몸이 부은 탓인지, 손가락을 까딱하는 것도 힘들었다. 찬바람이 든 늦가을에 아기를 낳은 탓에 오한이 그녀의 온몸을 절구공이로 찧고 다지는 것만 같은 고통이 덮쳤다.


"내 아기..."


눈을 잠시 떴을 때만 해도 푸르스름한 어스름이 산실 안을 가득 메웠었는데, 다시 눈을 붙였다가 뜨고 보니, 환한 아침햇살이 산실 장지문 고리에 오색의 빛무리를 걸어놓기라도 한 것처럼 반짝거렸다.


진홍은 영롱한 오색띠가 드리워진 산실 장지문을 몽롱히 쳐다보았다. 자꾸만 두눈이 부시고, 또 감겼다. 잠깐 눈을 감았다 뜨고 나면 그새 시간이 훌쩍 지나가기라도 하였는지, 방안에 비치는 햇살이 파래졌다가, 붉어졌다가, 밝아졌다가, 어두워졌다가...색채와 명암이 부쩍 변하였다. 문이 한번 열릴 때마다 무지개빛 햇살이 짓쳐 들어와선 방안 한구석에 있는 금빛 물체와 상응하여 번쩍이기도 했다.


저건...


착각일까. 금빛 명두 같은 것이 북쪽에 걸려 있었다. 진홍은 두눈을 의심했다. 명두 맞나? 동그란 금빛, 아니 동빛 표면에 반사된 무지개빛 햇살이 그녀를 비껴 아기의 얼굴을 비추었다. 채 눈도 못뜬 아기가 눈을 감은 채로 두눈을 실룩였다. 진홍은 황급히 일어서려다 도저히 일어서지 못하고 도로 누웠다. 축 늘어지는 몸을 가눌 길이 없었다. 그녀는 엉금엉금 기어가서 두손으로 아이의 얼굴에 손그늘을 만들어주었다.


"영림아, 녹향아...저 명두를 좀..."

"..."

"영림아, 명두를..."


진홍은 중얼거리듯 힘없이 웅얼거리다가 축 늘어졌다. 녹향은 어딘가로 사라지고 없고, 영림은 산실 한구석에 기대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진홍은 온힘을 다해서 명두를 내려서 손에 쥐고 대청마루로 힘겹게 걸어나왔다.


"마마?"

"어찌 나오셔서..."


장지문을 지키던 지밀나인들이 흠칫 놀라 불렀지만, 진홍은 그들을 지나쳐 명두를 대청마루 아래로 내려놓았다. 그 순간, 섬돌에 슬쩍 비친 두겹의 무지개가 진홍의 두눈에 얼핏 스쳤다. 진홍의 눈꺼풀이 잘게 떨렸다.


일훈? 중훈?


누가 그랬더라. 일훈日暈(무지개)은 좋지 않다고 하였는데, 아니 그냥 일훈은 괜찮아도 중훈重暈(겹무지개)은 좋지 않다고 하였는데. 하늘을 올려다 보니 눈이 너무도 부셨다. 출산 후라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도 힘들었다.


"영림아..."

"..."

"영림아..."

"예? 예..."


영림은 장지문 밖에서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겨우 눈을 떴다. 헌데 눈을 뜨니 장지문이 훤히 열려 있었다.


"중전마마?"


허겁지겁 서온돌을 뛰쳐나오니, 이미 중궁이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한손으로 눈을 가린 채로 하늘을 올려다 보는 참이었다. 눈이 너무 부셔서 하늘을 제대로 올려다보지도 못한 채로.


"영림아...하늘 좀...무지개 좀 살펴다오."

"무지개요?"

"일훈인지, 중훈인지...어서..."

"예에..."


영림은 뜬금없는 명을 내린 중궁을 이해할 수가 없어 힐끔 돌아보곤 대청마루를 나섰다. 섬돌이 찬란한 오색빛으로 반짝였다. 정말로 무지개가 떴나. 무지개가 비치는 아침인가. 아니, 이제 낮것상을 들일 때도 된 것 같으니 아침이 아니라 정오쯤 되었으려나.


뜨락으로 나오자 더욱 찬연한 햇볕이 영림의 머리를 내리쬐었다. 영림이 고개를 드니, 해의 주변으로 한겹, 두겹 무지개가 에워싼 것이 눈에 들어왔다. 겹무지개라니. 안쪽 무지개는 그저 둥글었지만 바깥쪽 무지개는 위 아래로 나뉘어, 위로는 관 冠의 형태를 띠고, 아래로는 신履의 형태를 띠고서 띠 안쪽이 빨강, 띠 바깥쪽이 청색으로 물들었다. 그리고 흰 무지개가 태양을 관통하며 더욱 맹렬하게 반짝였다.


백홍관일白虹貫日...


영림은 불길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았다. 이미 중궁도 손샅으로 햇볕을 흐리게 하고선 무지개를 다시금 살피는 참이었다. 구름처럼 풍성한 속눈썹이 햇살을 채 가리지도 못하고서 잘게 떨렸다. 백홍관일에 놀랐는지, 중궁의 두눈이 커다랗게 떠진 채로.


"한시진 전인 사시巳時에 일훈日暈이 관측되었사옵고...지금 오시午時에는 중훈重暈(겹햇무리)가 져서 양이兩珥(두개의 고리)가 져서 위는 관, 아래는 신이 되더니, 바깥쪽 햇무리가 갈라져서 내적외청內赤外靑의 형상을 이루고 또 백홍관일의 현상을 보입니다."


동온돌에 틀어박힌 채로 상참과 경연을 정지한 숙종은 도승지와 함께 찾아온 관상감 일관日官의 보고에 미간을 찌푸렸다. 하필이면 백홍관일이 관측되었다. 관상감에선 일훈을 갖고 측후단자를 부랴부랴 올리질 않는다. 중훈, 특히 백홍관일이 관측되면 바로 승정원에 측후단자를 들고 달려온다. 그리고 왕에게 보고를 마친 후엔 조보에도 올리기 위해 주서에게 넘긴다. 이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기상이변으로 간주된 탓이었다. 지난날 최석정이 송시열을 신구하는 상소를 올렸을 때도 남인들이 백홍관일을 들먹이며 최석정을 내치라고 간할 때처럼, 지금쯤 빈청에서 신료들이 또 뭐라 쑥덕거릴 지도 몰랐다.


"백홍관일..."

"혹여 중전마마나 공주아기씨께 무슨 변고라도..."

"알았으니 이만 물러가라."


숙종은 차갑게 식은 손가락 끝으로 곤룡포를 힘껏 움켜쥐었다. 왜 하필 중궁이 난산 끝에 공주를 출산하자마자 두겹의 햇무리가 떠서, 또 흰 무지개가 해를 파고들어, 이리 불길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건지. 물러가는 민암의 발걸음이 괜히 소리 없는 추임새를 넣는 것만 같았다.


"..."


숙종은 입안이 타들어가는 것만 같아서 두손을 움켜쥔 채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다시 한번 산실청 앞으로 가보아야만 했다.


"주상전하 납시오!"


두광의 목소리가 통명전에 울려퍼지자, 의녀 녹향이 황망히 소맷부리에 두손을 넣고 달려나왔다. 얼핏 소맷부리 사이에 금동빛 물건이 비치는 듯도 하여, 숙종은 미간을 찌푸렸다.


"가만..."

"네?"

"..."


숙종은 어쩐지 미심쩍어 녹향의 소매를 뚫어져라 주시하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당장 의녀의 소매를 살펴야 하나. 뭔가 소매에 감춘 물건이 신경을 거슬렀다. 소매를 걷어보이라고 명을 내려야 하는데, 말보다 손이 더 빠른 탓에, 숙종은 다짜고짜로 녹향의 팔을 잡고 소매를 걷어올랐다.


"에그머니..."

"이건..."


숙종은 어처구니가 없는 얼굴로 녹향의 소매에 감춰져 있던 동거울을 내려다 보았다. 지난날 시뻘건 녹을 벗겨 원래의 동거울로 면모를 되찾은 막례의 명두가 녹향의 소매에서 나왔다.


"이게 왜..."

"소녀는 그저 대비전께서 시키셔서..."


녹향은 황급히 덧붙였다. 숙종은 고개를 갸웃하며 두광을 돌아다 보았다. 소각에 있어야 할 물건이 왜 여기 있느냐는 의문의 눈초리로. 하지만 두광 역시 똑부러진 대답을 내어놓진 못하였다.


"소각에서 발견하셨나 보옵니다."

"..."


숙종은 미심쩍고 혼란스런 눈빛으로 동거울을 내려다 보았다. 허적이나 김석주처럼 보는 눈이 많은 데서 더는 동거울을 문제삼을 수도 없었다. 하지만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니었다. 막례는 자신들 몰래 산실청 협문에다 이 거울들을 걸어두려 하다가 들켰고, 애초에 막례를 궐에 들였던 어미는 의녀를 시켜 몰래 동거울을 들이려 하였다. 막례의 명두라는 것을 아신 건가. 아시고 산실에 걸어놓게 하셨다면 그저 막례의 영력과 신력을 빌리려는 건가. 하지만 그의 예민한 신경에는 그저 거슬렸다.


"도대체 어마마마께선 왜..."


숙종은 동거울을 와락 움켜쥔 채로 그대로 걸음을 떼어 대비전으로 향하였다. 소각에 있던 동거울을 굳이 산실에 가져온 것부터, 어미에게 따질 요량이었다. 숙종이 거침 없이 걸음을 내딛는데, 공복 차림의 최석정이 걸어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사부?"

"전하..."

"이제야 오는가?"


숙종이 반가운 얼굴로 최석정을 쳐다보았다. 하지만 최석정은 걸어오다 말고 안색을 흐리며 하늘을 쳐다보았다. 지금은 신시申時(오후 3~5시)였다. 주시동들이 주시패를 들고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알리는 소리를 들었다. 숭례문에 입성했을 때만 해도 하늘에 겹햇무리가 지더니, 흰 무지개가 해를 꿰뚫어서 불길한 조짐을 보였다. 백홍관일이라던가...지금은 바깥 햇무리가 걷히고, 속 햇무리가 왼쪽으로 이동하여 태양에 귀고리처럼 걸린 상태였다.


석정은 공주 탄신을 경하드린다는 말이 채 입에서 떨어지질 않아서 그저 숙종 앞에 부복하여 사배례를 거행했다. 한번, 두번, 세번, 네번...배례를 마치고도 입이 도저히 떨어지질 않았다. 도대체 왜 자신이 도성에 돌아오니 백홍관일의 불길한 징조가 나타난 건지. 아니, 그나마 오늘 중궁이 난산 끝에 공주를 낳았으니, 하늘이 돌봤다고 해야 하나...


"신 최석정, 전하를 뵈옵니다."

"대체 그동안 왜 소식이 없었던 거요? 홧김에 확 사부의 아들을 부마로 삼으려다 참았소."

"망극하옵니다."


최석정은 고개를 조아리며 피식 웃었다. 하마터면 하나 뿐인 아들의 앞길을 막을 뻔 하였다. 설마 정말로 왕이 창대를 부마로 삼으려 하였을 것 같지는 않지만, 만에 하나 부마로 삼았으면, 아들 창대는 문관으로 출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혹시라도 공주가 요절할 경우엔 개가도 금지되는 신세가 될 뻔했다. 아들은 물론 조카며 제자라 해도, 의빈이 되는 일 만큼은 없어야 했다.


"오랜만에 회포나 풉시다. 나도 술 좀 늘었다오."

"전하...?"

"공주가 태어났는데, 축하주는 같이 마셔줘야지."

"전하, 신은 술이 약하여.."

"지금이라도 오태주 대신 최창대를 의빈으로 삼을 수는 있소만."

"마시겠나이다."


석정은 할 수 없이 왕의 손에 이끌려 양화당으로 향하였다. 자신과의 해후가 반가운 탓인지, 공주 출산이 시원섭섭한 것인지, 왕은 지금 자신을 그냥 보낼 생각이 아니었다.


당장 양화당에 다과상이 차려졌다. 통명전을 그대로 산실청으로 꾸민 탓에, 왕은 양화당을 침전으로 옮겨서 생활하는 참이었다. 헌데 양화당에서 술냄새를 풍겨도 되는 건지 내심 저어되기도 하였다.


"헌데 사부, 꿀을 자셨소?"

"예?"

"공주 탄신을 경하드린다거나,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게 아니오?"

"그게..."

"사부는 빈말을 못하지 참...왜, 원자가 아니라 유감이오?"

"..."


석정은 긍정도 부정도 못한 채로 그대로 손안의 술잔을 내려다 보았다. 누르스름하면서도 투명한 빛깔의 이강고가 잔 속에서 찰랑였다. 술잔을 입가로 기울이자, 달보드레한 맛이 입안 가득 번지더니, 코끝으로도 배향과 울금향이 간질였다.


"독한 술은 대접할 때가 아니라서."

"예..."


석정은 피식 웃었다. 반년 사이에 참으로 많은 일들이 있었다. 허목과 권대운, 권대재 등이 모조리 찍혀나가고, 지금은 그야말로 허적 천하였다. 왕이 허적을 지나치게 맹신하여 나머지는 찍어내었나 싶다가도, 또 중궁의 산달을 핑계 삼아 허적의 정적들을 모조리 불러들였으니, 그 속을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무얼 하다 나타난 거요?"


왕도 이강고를 한모금 마시고서 묻는 말에, 석정은 진천의 농다리를 떠올리고 엷은 미소를 띠었다. 그의 망막에도 추억이 한꺼풀 씌워졌다.


"진천에서 석하 놈의 볼모가 되어 있었습니다."

"볼모?"

"동지까지만 있으라고 붙잡았지요."

"흥, 사부를 지켜준 거로군."


숙종은 피식 웃으면서 다시금 이강고를 한모금 머금었다. 자꾸 마시다 보니 배맛과 함께 울금 맛이 났다. 달큼한 향이 코와 입안은 물론 머릿속까지 얼얼하게 만들었다.


"보호한 건지, 감시한 건지..."


석정은 쓴웃음을 지으면서도 눈빛만은 부드럽게 반짝이며 석하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이 끼여들었으면 김석주든, 허적이든, 송시열이든, 자신을 내버려두었을까?


"어쩌면, 사부가 뭔가를 알아낸 탓이었을 수도 있고."

"..."

"그래, 뭘 알아내었던 거요?"

"그것이..."

"혹시, 이유정이란 자가 역모를 꾀하는 흉서를 실제로 쓰면서 그 스승 송시열에게 의논을 하였고, 송시열은 김석주에게 그 사실을 알렸고, 김석주는 허적에게 가짜 흉서를 만들어 송시열을 잡자고 제안하여 허적을 끌어들인 건 아니었소?"

"전하..."


석정은 귀를 의심했다. 하마터면 왕의 용안을 올려다볼 뻔하였다. 왕은 이미 진상을 눈치챘다. 헌데도 어떻게 그간 참아오신 건지.


"허적은 가짜 흉서를 갖고 송시열을 얽어매려다 진짜 흉서인 걸 알아차리고, 또 그 고변자가 송시열이란 사실에 놀라서 중간에서 발을 뺀 거고, 허적이 송시열을 죽이고 나면, 송시열이 억울한 고변자였음을 밝히고 허적의 목숨을 취하려고 김석주는 일부러 슬쩍 자리를 비켜준 거고."

"헌데 전하께서 송시열의 목숨도, 허적의 목숨도 취하지 않으셨지요."

"사부가 돌아오질 않아서."


숙종이 담담하게 미소지었다. 최석정은 자신도 모르게 눈길을 들어 왕의 용안을 올려다 보았다. 왕이 웃는다. 불안하고 쓸쓸한 눈빛으로 웃는다. 내가 돌아오지 않아서, 허적도 송시열도 내버려 두셨다니.


"내가 누구의 얘기를 믿겠소? 나는 사부의 말만 듣고, 또 믿을 거요. 그래서 사부가 돌아올 때까지 판단을 보류하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소. 그렇게 자꾸 생각하다 보니 얻은 결론이 그거였소. 송시열과 허적, 김석주가 벌린 판이구나...그래서 사부가 지금은 돌아올 수 없구나."

"전하께선, 허적과 송시열 두사람 모두의 명줄을 끊어낼 기회를 잃으셨습니다."


석정은 목울대가 뻐근해지는 것을 느끼면서, 착 가라앉은 음성으로 답하였다. 허공에서 부딪히는 왕의 눈길도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러게...아쉽소..."


아쉽다. 하지만 송시열과 허적을 목숨을 모두 끊어낸 뒤엔 어쩐지 최석정을 영영 잃게 될 것 같았다. 자신이 신중하게 어떤 행보도 보이지 않고 기다리는 동안, 저들도 조심스레 최석정의 목숨을 담보로 숨죽일 것만 같아서...그러다 보니 허목을 잃었다. 자신이 허목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어 연천으로 돌아가는 허목에게 고작 말을 내어주는 게 전부였다. 그렇게 하여 지금 자신이 최후까지 지키려는 것은 단 둘...최석정과 중궁이 고작인데...


밤이 이슥하여 최석정이 물러갔다. 숙종은 술기운이 올라 그대로 술상 앞에 턱을 괴고 잠시 눈을 붙였다. 자신의 짙은 속눈썹이 마치 밀랍으로 만들어진 건지, 밀랍이 녹아서 끈끈하게 달라붙기라도 하는 건지, 도무지 눈꺼풀이 달라붙어 두눈을 뜰 수가 없었다. 아주 잠깐, 나른한 졸음이 그의 의식을 물고 늘어지는 순간, 그의 고막에 미약하게나마 누군가 목이 졸린 듯이 고통어린 신음을 내뱉는 것이 들렸다.


"고, 고, 공...주..."


공주? 숙종은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갑자기 온몸이 가위라도 눌린 것처럼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 이 목소리는 자신이 세상 그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진홍의 음성이었다. 목에 졸린 듯이 울음에 목이 메여, 아무 말도 내뱉지 못하고 겨우 신음만 토하는 이 음성은...바로 옆 통명전에서 들려오는 음성인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제발, 제발..."


목이 졸린 듯이 아무 말도 못하고 숨만 헐떡이는 중궁의 목소리에 이어, 의녀들이 비통히 소리치는 목소리가 밤의 정적을 찢었다.


"중전마마! 정신을 차리시옵소서..."

"송구하오나 이미..."


아니다. 이럴 수는 없다. 숙종은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겨우 눈을 떴다.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신음, 비명으로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 자신이 취중에 잠시 귀엽을 일으킨 사이, 잠시 손끝도 발끝도 움직일 수 없었던 사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숙종은 뻣뻣하게 굳어서 제대로 움직여지지도 않는 두 다리로 힘겹게 걸음을 내딛었다. 그가 양화당 대청으로 나서니, 이미 자신의 지밀나인들은 물론이고 중궁전 지밀나인들까지 통명전 뜨락으로 몰려들어 불 밝힌 서온돌을 지켜보는 참이었다.


숙종은 귀엽에서 채 풀리지 않은 두 다리로, 한걸음한걸음 내딛었다. 산자리를 붉은 끈으로 둘둘 말아 걸어놓은 통명전 서온돌로 그가 들이닥치자, 지밀들이 문을 열기를 기다릴 것도 없이 활짝 열어젖히자, 이미 차갑게 식어버린 간난아기의 시신을 끌어안고 새하얗게 질린 진홍의 얼굴이 그의 시야에 들어왔다. 공포와 충격으로 두눈이 커다랗게 질린 그녀의 두눈은 지아비를 보지도 않았다.


"왜...잠깐 사이에...대체 왜, 왜..."


진홍은 믿을 수가 없는 눈빛으로 영림과 녹향을 돌아보았다. 눈을 뜨고 보니 아기가 숨이 끊어져 있었다. 아무도 모르게, 그저 통명전 연못쪽으로 난, 궁인들이 지키지도 않는 장지문이 손가락 하나 들어갈 틈새가 벌어진 채로, 그렇게 달빛만 스며드는 채로. 이 아기가 어쩌다, 어떻게 죽었는지 한밤을 파고드는 저 달빛은 알까, 한낮을 파고든 그 햇빛은 알까.


작가의말

1. 현존하는 기록으론 숙종이 인현왕후 혹은 장희빈 때쯤 후원의 연못에 정자를 짓고 애련정이라 이름을 붙였습니다. 장희빈 때일 것 같은데, 애련지란 이름은 언제 지어진 이름인지 모르겠더군요. 중종도 어느 고을의 연못을 보고 애련지란 시를 지은 적이 있어서 그냥 중종 이후 애련지로 불리던 걸로 설정했습니다. 


2. 진홍의 세번째 회임 및 난산, 산후통은 승정원일기를 참고하여 상상으로 재구성했습니다. 해석을 잘 못해서 얼마나 정확히 참조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른 새벽의 복통과 출혈로 당시 산실청에 비상이 걸렸다 합니다. 백홍관일의 기록도 승정원일기에 있습니다. 공주 죽은 날에 백홍관일이 관측되어 승정원일기에 적혀 있었습니다. 최석정의 복귀는 제가 상상으로 덧붙였습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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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4

  • 작성자
    Lv.98 뚱뚱한멸치
    작성일
    14.02.11 07:50
    No. 1

    불쌍한 진홍이...
    그 역할은 여기까지인 모양입니다
    앞으로 또다른 형태의 고난이 기다리겠군요

    숙종이 중전한테 이렇게 지극정성인줄은 잘 몰랐습니다
    장희빈과 대비되어 희생자로만 생각되었는데...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김은파
    작성일
    14.02.15 07:44
    No. 2

    네번 회임이니 한번이 남아있긴 한데...일단 역사적으로 숙종이 인경왕후에겐 죽은 지 스무해가 지나고도 꿈에 인경왕후를 봤다면서, 평소 때랑 똑같아서 생생하더라며 때 아닌 제사를 치러주라 명했었죠. 그 외에도 신경을 쓴 부분이 있긴 하구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Personacon ANU
    작성일
    14.02.12 00:01
    No. 3

    어흐흐 ㅠ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17 김은파
    작성일
    14.02.15 07:45
    No. 4

    쓰다 보니 진홍의 엔딩이 저도 부담스럽네요. ㅠㅠ;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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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 해의 그림자 151 +6 13.12.17 3,968 102 37쪽
151 해의 그림자 150 +5 13.12.13 2,123 36 38쪽
150 해의 그림자 149 +6 13.12.09 1,972 30 38쪽
149 해의 그림자 148 +6 13.12.04 2,107 34 36쪽
148 해의 그림자 147 +8 13.11.29 1,968 35 37쪽
147 해의 그림자 146 +10 13.11.25 2,625 30 37쪽
146 해의 그림자 145 +11 13.11.21 2,296 30 33쪽
145 해의 그림자 144 +5 13.11.16 2,288 33 34쪽
144 해의 그림자 143 +5 13.11.12 2,681 32 31쪽
143 해의 그림자 142 +8 13.11.07 3,089 32 24쪽
142 해의 그림자 141 +6 13.11.05 1,872 37 39쪽
141 해의 그림자 140 +6 13.10.30 2,350 61 38쪽
140 해의 그림자 139 +6 13.10.26 1,975 41 33쪽
139 해의 그림자 138 +6 13.10.23 3,545 33 34쪽
138 해의 그림자 137 +6 13.10.20 3,223 41 34쪽
137 해의 그림자 136 +8 13.10.18 2,102 37 36쪽
136 해의 그림자 135 +8 13.10.13 3,191 36 36쪽
135 해의 그림자 134 +10 13.10.10 2,332 34 3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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