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뢰 설치
한스는 커다란 모형 지도에서 각 사단의 움직임을 확인했다.
'돌출된 곳에서 연대, 대대 규모로 병력을 나누다니 이런 한심한 새끼들이 있나!! 포위당하고 싶어서 환장한 병신같은 놈들...'
현재 독일군은 두 개의 돌출부를 만들며 모스크바를 양쪽에서 서서히 애워싸고 있었다. 여태까지는 이런 전격전이 잘 먹혀들어갔다. 하지만 지금 독일군은 연대, 심지어 대대 단위로 병력을 나누며 상당히 공격적이고 대담하게 전진하고 있었다. 여태까지야 이런 전술이 잘 먹혀들어갔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현재 모스크바 인근에서 소련군 정예병들이 중화기로 무장한 강력한 소규모 강화 진지가 주를 이루고 있었다. 이들은 공군의 강력한 지원까지 받고 있었기에, 독일군이 작은 부대 단위로 나뉘어 무모하게 계속 전진하는 것은 상당히 위험할 수 있었다.
'다 분산되어 있군...이러다 통신 끊기고 고립이라도 당한다면...'
더군다나 모스크바 인근의 민간인들은 우크라이나의 민간인과는 달랐다. 이들은 독일군의 진격 정보, 독일군이 설치한 지뢰 위치 등 중요한 정보를 모조리 소련군에 밀고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민간인들이 직접 통신선을 끊을 우려도 있었다. 여태까지 빠른 속도로 전격전을 해왔지만 지금 모스크바 인근에서는 다른 전술을 써야 했다.
'이렇게 부대가 연대 대대 단위로 뿔뿔이 흩어져 있으면 소련군 입장에서 각개 격파를 노리기에 딱 좋겠지...이러다 대규모로 역포위를 당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소련군의 전술은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었다. 독일군으로 하여금 성공적인 공세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게 한 다음, 매복해있다가 측면에서 기습 공격을 가하기도 했다. 이에 대응해서 독일군은 후퇴하는 소련군의 진격로를 측면에서 때려서 소련군의 후퇴를 차단하기도 했다. 전투 상황은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유동적으로 대처해야 했다.
한스는 위험 지역에 너무 돌출 형태로 진격해있는 소규모 부대에게 다른 부대와 진격 속도를 맞추라고 직접 지시했다. 뿐만 아니라 각 사단의 위치를 전부 점검하고, 부대 간에 간격이 멀어진 경우, 간격을 좁혀서 연결점을 강화하라고 명령했다.
또한 한스는 프랑스 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았다. 프랑스에서 계속해서 극우 시위가 일어나고 있었고, 이들을 군부가 제대로 제지하지 않고 있었다. 깃발을 휘날리며 도심을 활보하던 극우 시위대는 현재 민병대를 조직하고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한스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들이 국경 쪽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면!'
한스 뿐만 아니라 다른 독일 참모들 또한 이 상황에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참모들 중에는 프랑스가 전쟁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 이라고 보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한스의 생각은 달랐다.
'낙관적 선입견만 가지고 프랑스가 공격하지 않을 것 이라고 믿는 것은 국가 안보에 있어서는 최악의 실수가 될 수 있다...'
한편, 독일군은 또 다시 모스크바 인근에서 소련군을 포위하는 것에 성공했다. 오토와 집행유예 부대원들은 이들이 탈출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점에 개인호를 파고 매복해 있었다. 오토, 스테판, 좀머가 몰던 T-34 전차의 연료와 탄약이 모두 떨어졌기에 이런 위험한 임무를 맡게 된 것 이었다. 10명의 집행유예 부대원들은 판저 파우스트, 흡착 지뢰 등을 제각기 들고는 개인호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다들 철모에는 풀잎을 꽂고 얼굴에는 시커멓게 검댕을 발라서 위장한 상태였다.
에밀이 중얼거렸다.
"제발 이 쪽으로 퇴각하지 마라...제발 이 쪽으로 퇴각하지 마라..."
"좀 닥쳐 시발!!"
오토는 미리 퇴각로를 계산해둔 상태였다.
"판저 파우스트 발사하고 즉시 5시 방향 덤불로 퇴각한다!!"
한심한 좀머는 판저 파우스트의 뒷부분을 자신의 가슴 쪽으로 갖다대고 있었다. 스테판이 외쳤다.
"배 구멍 나고 싶냐!! 발사할때 뒤쪽에서 후폭풍이 엄청나단 말야!!"
참고로 집행유예 소대장은 집행유예 부대원들에게 꼭 소련군의 전차가 가까이 접근했을때 이를 발사하라고 명령한 상황이었다. 좀머는 완전히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중얼거렸다.
"난 이제 죽었다...두 시간 뒤에 난 총에 맞았거나 포탄 맞아서 대가리가 날아가거나 궤도에 깔려 뒤졌겠지...러시아 땅은 독일인의 피를 먹고 자라겠구나."
스테판이 판저 파우스트를 점검하고는 좀머에게 말했다.
"한 번만 더 아가리 날리면 이건 니 대가리에 쏘겠어."
그렇게 오토 일행은 참호에서 지루한 시간을 보냈다. 집행유예 부대에서 나눠준 식량은 오래된 소시지, 흑빵, 물이 전부였다. 그래도 지난 번에 소련군에게서 투숑카 통조림을 긴빠이쳐둔 것이 다행이었다. 숟가락도 없었기에 다들 손으로 통조림을 먹어야 했다.
트드등 트드드드등 트드등
수 km 떨어진 곳에서 전차들이 기동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오토 일행은 모두 긴장한 상태로 소련군의 전차가 오기를 기다렸다.
트드드등 트드등 트드드드등
이것은 분명 T-34가 기동하는 소리였다.
'역시 이 곳으로 퇴각하는군!!'
10개의 구덩이에 집행유예 부대원들이 제각기 자리잡고 있었고, 오토, 스테판, 좀머가 맨 앞에 있는 구덩이에 자리잡고 있었다. 판저 파우스트는 오토, 스테판, 좀머만 갖고 있었다.
트드등 트드드등 트드등
점점 T-34의 소리는 가까워져오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뒤, 5대의 T-34 전차들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트드드드등 트드등 트드드드등
좀머는 판저 파우스트를 발사하고 싶어서 오줌을 지린 상태였다.
'으아아...아아아아...'
좀머는 지금 당장에라도 판저 파우스트를 발사하고 튀고 싶어서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오토는 초조하게 좀머가 있는 개인호를 바라보았다.
'제발 발사하지마라...제발 발사하지마라...'
지금 거리에서 판저 파우스트를 발사하면 위치만 발각되고 T-34는 격파되지 않을 것 이었다. T-34가 더 전진했을때, 오토 일행이 측면을 향해 판저 파우스트를 발사해야 이들을 격파할 수 있었다. 오토는 혹시나 다른 녀석이 먼저 판저 파우스트를 발사하는 것은 아닌지 걱정하며 손에 식은 땀을 닦았다. 이런 매복 작전은 단 한 명만 실수해도 완전한 실패로 끝날 수 있었다.
트드드등 트드등 트드등
그리고 마침내 T-34들을 격파할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오토가 제일 먼저 발사하면 그 신호와 함께 다른 녀석들도 판저 파우스트를 발사할 것 이었다. 오토는 순간적으로 판저 파우스트를 발사하지 말고 그냥 놈들이 퇴각하게 냅둘까 생각했다.
하지만 오토는 심장이 쿵쾅거리고 머리는 차분해지며 피가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여태까지 티거로 수 많은 소련군의 전차를 격파한 것 처럼, 오토는 자신의 이성이 아니라 본능에 의해 행동했다. 그렇게 오토는 참호 밖으로 상체를 내밀고는 오른쪽 어깨 위에 판저 파우스트를 발사했다.
수워워워!!!
귀 옆에 폭풍이 부는 듯한 엄청난 소리와 함께 근처에 있던 흙먼지들이 공기의 흐름에 의해 뿌옇게 휘날렸다. 오토는 우측에서 순간적으로 대기의 압력이 변화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소련군의 T-34는 측면 장갑이 관통되어 거대한 화염과 함께 폭발했다. 커다란 불구덩이 위로 포탑 해치가 하늘 높이 날아가는 광경이 보였다.
쿠과광!!!
스테판과 또한 반사적으로 자신의 판저 파우스트를 발사했다. 좀머는 팬티에 똥오줌을 완전히 지려버린 상태로 자신의 판저 파우스트를 발사했다.
그와와와와!!! 그와와와와!!!
두 대의 T-34도 연달아 격파되면서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T-34의 포탑과 전차를 호위하던 소련군 병사들이 압력에 의해 멀리 날아갔다. 소련군이 우왕좌왕하는 틈을 타서 오토, 스테판, 좀머는 재빨리 근처 덤불로 달아났다. 그 때, T-34를 엄호하던 소련군이 오토 일행을 향해서 조준 사격을 했다.
쉿!! 시잇!! 따닥!!
'!!!'
오토 일행은 잽싸게 덤불로 달려가서 은폐하는데 성공했다. 반대쪽 덤불에 은폐해있던 다른 집행유예 부대원들이 박격포로 연막을 쏴주었다.
퍼엉! 퍼엉!! 퍼엉!!
열 받은 소련군의 T-34 전차 두 대가 독일군 집행유예 부대원들이 숨어있는 곳으로 오기 시작했다. 에밀, 마티아스, 알프레트, 요하네스는 여전히 개인호 속에 숨어있는 상태로 흡착 지뢰를 들고는 T-34가 더 가까이 오기를 기다렸다.
'으아아아아!!!!'
두 대의 T-34 전차들은 주포와 기관총에서 불꽃을 뿜으며 독일군이 있는 곳으로 접근해오고 있었다.
따다닥 따다닥
펑!! 퍼엉!!!
인근에서 들리는 총소리는 고막만 진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몸 속에 있는 모든 장기들을 진동시킨다. T-34의 주포가 불을 뿜을 때마다 흙먼지가 높이 솟구쳤고 개인호에까지 먼지들이 들어왔다. 에밀 일행은 개인호 속에서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풀숲 속에 엄폐해있는 아군 박격포, 기관총, 대전차포 소리가 이리저리 뒤섞였다.
퍼엉!! 퍼엉!! 퍼엉!!
드드득 드드드득
쉬잇! 쉿!!
땅!! 따앙!!
소련군은 T-34 뒤에 엄폐한 상태로 독일군을 향해 따발총을 긁어대고 있었다.
따다닥 따다다다닥 따다닥
그리고 에밀은 자신의 엄폐호 위를 지나가는 T-34의 하부 장갑을 경악한 얼굴로 바라보았다. 에밀의 머리 위로 흙먼지가 우수수 쏟아졌다.
"아아아아악!!!"
그렇게 T-34가 지나가고 나서 팬티에 똥오줌을 지린 에밀은 밖으로 뛰쳐나와서 T-34의 후면 장갑에 흡착 지뢰를 붙이고 재빨리 개인호 속으로 뛰쳐들어왔다.
"으아악!!!"
소련군은 에밀을 발견하고는 에밀이 숨어있는 개인호를 향해 달려갔다. 소련군이 개인호 속으로 총을 발사하려는 순간, 알프레트가 참호 위로 고개를 들고는 소련군을 향해 조준 사격으로 소련군을 사살했다.
타앙!!
소련군은 피를 흘리며 에밀이 있는 개인호 속으로 떨어졌다. 에밀은 고함을 쳤다.
"우아악!!!"
엄폐호 속에 있던 마티아스는 T-34 전차를 향해 칵테일 화염병을 던졌다.
화르륵!!!
불타오르는 T-34 전차에서 소련군 전차병들이 탈출하기 시작했고, 다른 녀석이 경기관총을 이용해 이들을 모두 사살했다.
드드득 드드드드득 드드득
그렇게 힘겨운 전투 끝에 오토 일행은 후퇴하는 소련군을 섬멸하는 매복 작전에 성공하였다. 이런 위험한 전투를 성공한 공으로 오토 일행은 형기를 10일 감면받을 수 있었다. 집행유예 부대 중대장이 외쳤다.
"원래는 일주일 감면인데 내가 자네들을 위해 힘을 써주었네!"
오토는 소총 개머리판으로 집행유예 부대 중대장의 머리를 깨고 싶은 충동을 느꼈지만, 그랬다가는 즉시 사살당할 것 이었기에 참기로 했다. 그날 저녁, 오토 일행은 전공을 세운 덕택에 고기 통조림을 하나씩 받을 수 있었다. 통조림을 먹으며 에밀이 투덜거렸다.
"이렇게 되면 모스크바 전투 때도 집행유예 부대로 참전할 것 같습니다."
"꼭 그 전까지는 부대 복귀해야하네!"
게오르크, 블라덱, 볼프강, 헬무트가 전공을 세우고 중대장으로 진급할때 오토 자신만 직위 해체에 훈장까지 빼앗기고 집행유예 부대에서 전전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마티아스가 말했다.
"지뢰 설치하면 3주 감면이라던데..."
그 날 밤, 야간에 오토 일행은 지뢰를 설치하러 갔다. 에밀이 쑥덕거렸다.
"잘 안 보여서 설치하기 힘들 것 같은데 왜 야간에 설치하는겁니까!"
"쉬잇!! 조용히 해!!"
"지뢰 설치하는거 민간인들이 목격하면 소련군에게 그 즉시 전달되네! 그러니 이 인근 민간인들은 절대 믿지 말고 그 어떠한 사소한 정보도 주면 안되네!"
그렇게 어두운 밤에 오토 일행은 얕은 불빛에 의지한채로 지뢰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실수했다가는 뒤질 수 있기 때문에 오토는 몇 번이고 손에 식은 땀을 닦아야했다. 마침내 지뢰 설치가 거의 다 끝났다. 그 때, 형벌 부대 중대장이 직접 와서 지뢰 설치를 점검했다.
"훌륭해! 2주 감면이다!"
'3주였잖아!!!'
그 때, 어둠 속에서 한 여자가 꼬맹이와 함께 이 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형벌 부대 중대장이 러시아어로 외쳤다.
"야밤에 무슨 일 이십니까?"
그 여자와 꼬맹이는 커다란 짐을 들고 있었다. 오토가 속으로 생각했다.
'호..혹시 파르티잔 아냐?'
민간인이라고 해도 파르티잔들에게 물건을 운반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던 것 이다. 에밀이 수근거렸다.
"파르티잔일 수도 있습니다!!"
형벌 부대 중대장은 손전등으로 여자와 꼬맹이를 자세히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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