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전 한스 파이퍼 조상 루이스 파이퍼의 모스크바 약탈
1812년, 한스 파이퍼의 조상 루이스 파이퍼는 작센군으로서 나폴레옹의 프랑스군과 함께 모스크바에 입성하게 되었다. 루이스 파이퍼는 다른 동료들처럼 금붙이들을 약탈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루이스는 마구간에 자신이 약탈한 금붙이와 도자기를 놓아두고, 행군용 군복을 벗기 시작했다. 이 당시 군복은 입는데만 5분 이상의 시간이 걸린다. 단추도 엄청나게 많았고 혼자 갈아입기에는 부족해서 고위급 장교들은 옷을 입을 때 도움을 받고는 한다. 이 당시 바지는 앞섬이 특이한 구조로 되어있는데, 바지를 완전히 내리지 않고 오줌을 쌀 수 있도록 만든 것 이었다.
이 당시 유니폼 바지가 꽤 타이트해서 불편했기에 루이스와 동료들은 바지는 벗고는 마구간에서 휴식을 취하며 페터와 부대원들과 함께 마구간에서 자신이 약탈한 도자기와 금화를 만져보았다.
'이거 다 갖고 갈 수 있을까?'
이 도자기와 금화를 빼더라도 루이스와 보병들의 군장은 상당히 무거웠다. 모스크바로 오면서 강을 건널 때도 다리가 너무 부실했기 때문에 혹시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조마조마하면서 건너야했다. 어떤 녀석들은 욕심을 부려서 온갖 식기와 그림까지 노획한 상황이었다. 페터가 이걸 보고 외쳤다.
"그거 어떻게 가져가려고!"
커다란 그림을 노획한 녀석이 말했다.
"멍청하기는...장교들은 이걸 우편으로 보낼 수 있단 말일세! 장교가 갖고 있는 귀금속과 교환할 수 있고 러시아 농민들에게 이걸 주고 하다못해 음식이라도 얻어낼 수 있네!"
어떤 녀석은 귀부인이 썼을 법한 고급 털가죽을 잔뜩 노획하고 목에 두른 상황이었다. 장교들은 모스크바에 집에서 머물렀지만 루이스과 일행들은 마구간에서 머물러야했고 꽤나 쌀쌀했다. 마구간에는 오랜 기간 행군해서 비쩍 마른 말들이 건초를 잔뜩 먹고 있었다. 루이스는 건초를 덮고는 눈을 붙였다. 하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이거 다 가져가서 팔면 얼마 정도 될까?'
내일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귀금속 위주로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루이스는 퍼뜩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왜 다들 피난간거지?'
루이스가 눈을 뜨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근데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러시아 놈들 말일세! 싸워보지도 않고 이렇게 싸그리 다 피난간게 말이나 되나? 이렇게 진귀한 물품들도 다 내버려두고?"
"쫄보들이니 그렇지!"
루이스는 잠이 오지 않았기에 마구간 밖으로 나가서 지붕 위에 올라가서 저 멀리 보이는 크렘린 궁을 바라보았다. 이 곳에서는 크렘린 궁의 뾰족한 탑 꼭데기만 보였다.
'저 안은 얼마나 멋질까?'
루이스는 마구간으로 다시 들어가서 노획한 물품을 누가 훔쳐가지는 않았는지 확인하고는 건초 더미 위에 누웠다. 이 무거운 물품들을 가지고 돌아가고 내일도 노획을 하려면 체력을 보충해두는 것이 좋을 것 이었다. 그 때, 밖에서 누군가의 고함 소리가 들렸다.
"불이야!!! 불이야!!! 불이야!!!"
루이스와 동료들은 모두 마구간 밖으로 나가보았다. 놀랍게도 700m 쯤 떨어진 곳에서 시뻘건 불꽃이 일렁이고 있었다.
"저...저거!!!"
대다수의 건물이 목조 건물이었고 날도 건조했기에 불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옮겨붙고 있었다.
"피...피해!!!"
루이스와 동료들은 군장과 노획한 물건들을 갖고는 마구간 밖으로 나온 다음 반대편으로 달렸다. 기병들은 놀란 말들을 진정시키고는 마구간 밖으로 끌어냈다. 말들 또한 공포에 질린 상태였다.
"히이잉!!! 이히잉!!!!"
페터가 울부짖었다.
"시..시발!!"
"어떤 새끼가 술 쳐먹고 불 낸거야!!"
하지만 반대 쪽에서도 화염이 번지고 있었다.
"일단 피해!!!"
근처 민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던 중대장은 미쳐 옷을 갖춰입지도 못하고 상의만 입고 짐을 챙기고 뛰쳐나왔다.
"화재 낸 새끼 잡아!! 잡아!!!"
그렇게 모스크바에 많은 목재 건물들이 불타올랐다. 그 틈을 타 수 많은 병사들은 민가를 다시 약탈하기 시작했다. 루이스는 어떤 녀석이 잔뜩 털가죽을 목이 두르고 은접시를 챙기는 것을 보고는 역시 민가로 들어가서 약탈을 하기 시작했다.
'나도!!'
루이스는 은으로 된 작은 소품 몇 개를 찾아냈다. 갑작스럽게 화재로 난리가 났던 다음 날, 루이스 일행은 완전히 기진맥진한 상태로 집합했다. 중대장이 외쳤다.
"아시다시피 어제 불미스러운 화재가 발생했다!! 이로 인하여 부대의 기강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 질서를 유지하고 %&$@ 약탈에 몰두하지 말아야 할 것 이며!!"
한편 중대장은 화재가 발생했을때 자신이 약탈한 것을 챙기느라 바지도 안 입고 탈출한 상태였다. 중대장의 가방 속에도 온갖 귀금속과 털가죽이 들어있었다. 루이스가 중대장을 보고 생각했다.
'바지라도 입으시지...'
그리고 다음날도 루이스와 동료들은 마구간에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피곤해서 뒤질 것 같았다. 그런데 누군가 고함을 쳤다.
"불이야!!! 불이야!!!"
"시발!!!"
다들 헐레벌떡 짐을 챙기고 달아났다. 한 동료가 울부짖었다.
"러시아 새끼들이 일부러 불 지르는거야!! 우릴 모스크바에서 태워죽이려고!!"
페터 또한 달아나며 외쳤다.
"설마 지들 도시를 다 불태우겠냐!!"
루이스 또한 자신이 약탈한 것을 모두 챙기고는 급히 달아났다.
'으아아악!!!'
모스크바에 수 많은 목조 건물들이 불타오르며 순식간에 무너져내렸다. 시뻘건 화염이 여기저기서 용솟음쳤다. 긴 거리를 행군해온 말들조차 이 광경을 보고 공포에 떨었다.
"히이잉!! 이히잉!!!"
그리고 다음 날, 병사들은 잿더미가 되어버린 목조 건물을 바라보았다.
"우리가 약탈하지 못하게 놈들이 불태운거야!! 틀림없어!!"
한 병사는 주위를 둘러보며 외쳤다.
"어떤 놈이야!! 나와보라고!! 붙어보자고!!"
그 날 루이스와 동료들은 마구간에서 잘 준비를 했다. 그런데 건초 더미가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여태까지 굶주렸던 말들이 거의 다 먹어치운 것 이었다. 유니폼 바지는 너무 타이트해서 도저히 이걸 입고 잘 수는 없었다. 결국 루이스와 동료들은 민가에서 귀부인들이 입는 옷과 캐시미어를 잔뜩 노획해서 덮고 잠을 자기 시작했다.
"근데 우리 언제까지 여기 있는거야?"
"빨리 집에 돌아가고 싶다!"
루이스와 동료들은 빨리 노획한 물건을 팔고 싶었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병사들은 생각보다 지루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매일마다 물건을 교환하는 가판대가 열렸다. 집에 우편을 보낼 수 있는 장교들은 이 가판대에서 캐시미어나 그림, 도자기 같이 커다란 물건을 구입하기도 했다.
루이스는 군침을 흘리며 파인애플을 구경했다.
'나...나도 한 번 먹어보고 싶다...'
러시아 농민들과 병사들은 대충 손짓을 통해서 물건을 교환했다. 그리고 장교들은 생각보다 편안한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 모스크바에서 미처 피난을 가지 못한 민간인들은 러시아인을 두려워했기에 장교가 자신의 집에서 머무는 것을 선호했다. 루이스와 페터가 있는 부대의 중대장은 벌써 러시아의 한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있었다.
페터가 말했다.
"도...도대체 러시아 민간인들이 어느 정도이기에 모스크바 사람들은 차라리 우리 쪽 장교들 보호를 받으려는거지?"
다른 동료가 말했다.
"러시아인들은 천성이 미개하기 그지없군!!"
그 때 한 녀석이 꼬냑을 들고 들어왔다.
"이거 봐라!!"
다들 꼬냑을 한 모금씩 마셨다. 겉으로는 웃고 떠들고 있었지만 루이스와 동료들은 집에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도 밀가루가 남아있었기에 빵을 먹을 수는 있었지만 그 외에 식량이 거의 없었기에 매일 같이 러시아식 양배추 스프나 메밀 죽을 먹어야 했던 것 이다. 어떤 부대는 훈제 고기를 먹는다는 소문이 있었지만, 루이스가 속한 작센군 부대는 홍차, 꼬냑 등과 함께 빵과 메밀죽, 양배추 스프로 계속해서 끼니를 때워야 했다.
날마다 가판대에서는 장교와 병사들이 농민들과 함께 흥정을 했다. 처음에 병사들은 이 약탈한 물품들을 모조리 집에 갖고 가서 팔겠다고 결심했다. 하지만 이 엿 같은 양배추 스프와 메밀 죽은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과일 잼, 훈제 고기 따위를 구입하기 위하여 커다란 그림, 모피, 캐시미어 등을 러시아 농민들에게 넘겼다.
루이스는 중국제 도자기만은 절대로 넘기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건 돈을 떠나서 상당히 가치가 있어보이는 소장품이었다.
'우리 부대는 언제 집에 돌아갈까?'
모스크바의 날씨는 점점 쌀쌀해지고 있었다. 귀부인들이 입던 고급스러운 캐시미어 코트, 치마를 두른 작센군 병사들은 러시아 민가의 아궁이에 앞에 모여서 불을 쬤다.
'시...시발...'
"야! 신발 벗고 발 갔다대면 더 따뜻해!!"
그 말에 작센군은 군화를 벗고 양말만 신은 발을 아궁이 앞에 갖다댔다. 냄새가 고약했지만 그래도 발이 따뜻해지는 것이 기분이 좋았다.
루이스는 크리스탈 잔에 들어있는 물을 마시며 하루라도 빨리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기를 빌었다. 부대에 마지막으로 남은 훈제 고기가 있었고 다들 이것을 어떻게 하면 알차게 먹을 수 있을까 회의했다. 소금이 있다면 맛있게 먹을 수 있었을테지만 안타깝게도 소금이 없었던 것 이다.
얼빠진 녀석이 외쳤다.
"화약을 조금 뿌려먹는게 어때?"
루이스가 외쳤다.
"죽고 싶냐!!! 절대 안돼!!!"
그리고 다음 날, 나폴레옹은 전군 철수 명령을 내렸다. 이 말에 루이스의 동료들은 쾌재를 외쳤다.
"좋았어!!"
"드디어 돌아간다!!"
"빨리 좀 퇴각하지..."
루이스는 빗방울이 떨어지는 시커먼 하늘을 바라보았다. 너덜너덜한 행군용 군복이 비에 젖기 시작했다. 조금 있으면 군장은 빗물을 흡수해서 무쇠처럼 무거워질 것 이었다.
"날씨도 좆같네..."
희한하게도 퇴각이 결정된 날, 하필이면 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때 크렘린 궁쪽에서 폭발 소리가 들렸다.
쿠구궁!!
나폴레옹이 퇴각하기 전 크렘린 궁 밑에 폭약을 설치한 것 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크렘린 궁은 잘 폭발하지 않았다.
병사들은 퇴각하기 전 농민들에게 필요한 농산물을 구입하고 있었다. 빗방울 속에서 기병들은 자신의 말에게 먹일 건초를 사기 위해서 농민들과 흥정을 하고 있었다. 병사들은 가능하면 자신이 노획한 물품을 최소한으로 쓰고 꼭 필요한 식량만 구입하고 있었다. 결국 고민하던 한 장교는 진귀해보이는 은 장식을 농민에게 팔고는 코사크 말들에게 먹일 대량의 건초를 구입했다.
루이스는 짐을 다 챙기고는 자신의 도자기를 손에 들었다. 가방에 넣을 곳이 없었기에 이 도자기는 들고 가야했다. 그 때 한 러시아 농부가 외쳤다.
"이봐 자네!! 그걸 들고 가겠다고?"
루이스는 러시아 농부의 말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러시아 농부가 대충 뭐라는지 알 것 같았다. 지금 루이스의 가방에는 기름 바른 종이로 감싼 탄약, 유니폼, 예비 군화, 금화 등이 있었다. 루이스가 속으로 생각했다.
'십자군 전쟁때 내 조상은 도대체 어떻게 물건을 운반한거야!!!'
그 농부는 루이스가 갖고 있는 도자기가 탐이 나는 것 같았다. 농부는 루이스에게 아주 편안하고 따뜻해보이는 신발을 보여주었다.
"이건 최상급 상품이야!!"
루이스는 그 신발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농부가 루이스가 신고 있는 군화를 보며 소리쳤다.
"그거 신고 가다간 발에 동상 걸려서 발가락 잘라내야할걸세!!"
결국 루이스는 농부에게 도자기를 주고는 따뜻한 방한용 신발을 구입했다. 농부는 인심 좋게도 이 방한용 신발에 지푸라기도 넣어주었다. 루이스는 그 신발을 신어보았다. 확실히 여태까지 신던 군화보다 훨씬 편했다. 농부가 외쳤다.
"아주 탁월한 선택일세!!!"
그렇게 나폴레옹의 군대는 퇴각을 시작했다. 행군용 군복 위에 여성용 코트, 치마 등을 덮어쓴 병사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처참하기 그지없었다. 행군할때마다 루이스의 가방 속에서 금화가 짤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벌써부터 군장이 무겁게 느껴졌다.
'시...시발...'
어떤 녀석은 모스크바에 민간인들이 썼을 것으로 추정되는 고급스러운 유모차에 도자기, 그림, 그 외 장식품을 운반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장교들은 러시아의 귀족들이 쓰던 화려한 마차를 이용하고 있었다. 페터가 쑥덕거렸다.
"생각해보니 저런 유모차를 제일 먼저 노획했어야해!!"
저 앞에서는 앞서가던 다른 부대가 통나무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다리는 벌써부터 부실하게 흔들거리고 있었다. 결국 다리는 우지끈 무너졌고, 손수레에 들어있던 그림, 장식품 등은 모조리 하천에 빠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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