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행유예 부대 헤어만 중대장
요하네스가 물었다.
"러시아 땅은 가을에 엄청난 장마가 내린다고 들었습니다. 벌써 장마철이 온걸까요?"
오토가 주의 깊게 오토바이를 운전하며 말했다.
"아직 장마철은 아닐세! 러시아의 장마는 주로 10월 둘째주에 시작되네! 그 때 되면 모든 것이 진창 속에 파묻히겠지."
그렇게 오토는 요하네스와 사이드카 달린 오토바이를 타고는 고지 위로 올라가서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엎드린 다음 관측을 시작했다. 헤어만 중대장이 빌려준 쌍안경을 이용하여 오토는 주의깊게 관측을 했다. 참고로 헤어만 중대장은 이 쌍안경을 빌려주며 대단히 생색을 냈었다. 쌍안경 같은 중요한 물품을 분실하게 될 경우 이는 장교의 책임이 되기 때문에 절대 잃어버리지 말라고 했던 것 이다.
오토는 헤어만 중대장만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요하네스가 오토 옆에서 반대편 지역을 관측하며 말했다.
"헤어만 중대장은 절대 우리를 안 놔줄 것 같습니다."
"집중하게."
"제가 다른 녀석들에게 들었습니다. 분명히 임무를 수행하고 오면 형기 한 달 감면해준다고 했는데 일주일 감면으로 말을 바꿨다고 합니다! 다른 집행유예 부대에서는 3개월 정도는 감면해주는 임무를 수행해도 헤어만 중대장은 고작 2주만 감면해주었다고 합니다!"
"설마 그럴리가 있겠냐?"
'그래도 내 아버지 빽이 있는데...'
그렇게 한참을 기다렸는데, 소련군의 장갑 차량들이 움직이는 것이 관측되었다.
'저 녀석들!'
오토는 식은 땀을 흘리며 쌍안경을 계속 바라보았다. 소련군은 정찰 목적으로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 요하네스가 무전기를 이용하여 중대 본부로 이를 보고하려고 하는데, 오토가 말했다.
"정찰 목적은 아닌 것 같군...놈들이 29구역에 숙영지를 설치하고 있다..."
그렇게 소련군은 29구역에 숙영지를 설치하고 있었고, 아예 포대까지 갖다 놓고 있었다.
"이럴 때는 전차포로 한두방 쏴주는게 예의인데..."
소련군이 이렇게 눈에 딱 보이는 지점에 포를 갖다놓으면, 오토는 자신의 전차 소대로 포를 몇 번 쏴서 쫓아내곤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오토는 집행유예 부대에 배속해있었고 구형 T-34 전차를 마음대로 운용할 수도 없었기에 별 방법이 없었다. 오토는 부대에 있을때 마음껏 포탄을 낭비하던 것을 떠올렸다.
'빨리 사면되고 부대 복귀해야지...'
그렇게 관측을 마치고 오토는 요하네스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는 다시 집결지로 복귀했다. 헤어만 중대장은 보고를 받고는 무전기와 쌍안경의 상태를 확인하고는 오토를 불러서 따로 말했다.
"우리 부대에서 생활하는 것에 딱히 불편함은 없지?"
오토는 마음에도 없는 입에 발린 소리를 했다.
"훌륭하신 중대장님과 동료들 덕분에 &%$%@"
헤어만 중대장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사실 이렇게 무전기와 쌍안경을 빌려주는 것은 군법에 금지되어있지만 내 특별히 자네에게만 해주는 걸세! 앞으로도 필요한 장비가 있으면 요청하게!"
헤어만은 오토를 부려먹고 있으면서도 이런 식으로 생색을 냈던 것 이다. 오토는 한심하게도 자기가 이용당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기분이 좋아졌다. 헤어만이 지도를 보여주며 말했다.
"현재 모스크바 쪽으로 포위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일세. 몇몇 티거 중전차 대대가 어마어마한 전공을 세우고 있다더군!"
앙뚜완은 지금 티거 중전차 대대의 소대장으로서 전공을 세우고 있었고, 이는 전선 신문에도 실렸다. 오토는 이거만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그...그 시발 놈이!!!'
헤어만이 외쳤다.
"내 특별히 자네를 위하여 전공을 세울 수 있도록 기회를 만들어주겠네! 어떤가?"
오토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하...할 수 있습니다!"
앙뚜완이 소속한 티거 중전차 대대는 구데리안 기갑군에 소속되었고, 이들은 모스크바를 포위하는 우익 포위망을 형성하며 빠른 속도로 전진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작전에 오토, 스테판, 좀머의 T-34 세 대가 투입될 예정이었다.
소련군은 병력을 최대한 보전하면서 후퇴하는 수법을 쓰고 있었다. 그렇기에 티거 중전차 대대가 전면에서 소련군을 공격하는 동안, 오토, 스테판과 좀머가 T-34 3대를 이끌고 퇴각하는 적의 측면을 공격하는 임무를 맡게 되었다.
소련군은 다리가 부상당해서 도망가지 못하는 녀석들이나 형벌 부대원들이 끝까지 남아서 기관총을 사격하도록 했다. 그 사이에 나머지는 후퇴해서 전력을 보전하고 있었고, 이들은 몇 달 뒤에 소련의 공업생산력이 회복되면 독일에 어마어마한 위협이 될 것 이었다. 헤어만 중대장이 외쳤다.
"소련군이 전력을 보전하지 못하도록 하나도 빠짐없이 남김없이 사살해야한다!"
그렇게 헤어만 중대장이 신경써준 덕분에 오토, 스테판, 좀머는 T-34의 연료와 탄약을 충분히 보급받을 수 있었다. 헤어만 중대장이 외쳤다
"이 임무에 성공하면 조만간 자네들은 직위와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 걸세!"
헤어만 중대장이 떠나고 스테판이 전선 신문을 보며 말했다.
"앙뚜완 이 새끼가!!!"
앙뚜완은 티거 중전차 소대장으로서 전공을 세우고 있었던 것 이다. 오토가 외쳤다.
"이번 임무에 꼭 성공하고 모스크바 공방전이 끝나기 전에 빨리 부대 복귀해야 하네!! 좀머! 자네도 이번 임무에 성공하고 사면되면 내 소대에 들어오면 좋겠군!"
좀머가 투덜거렸다
"난 그냥 살아남기만 하면 되는데..."
그렇게 세 대의 T-34 전차는 다른 집행유예 부대원들과 함께 저지대로 전진했다. 세 대의 T-34 후면에 있는 두 개의 배기관에서 연기가 나왔다. 헤어만 중대장 덕분에 오토 일행은 MP40 세 정을 보급 받을 수 있었다. 오토, 스테판, 좀머는 이 MP40를 지저분하고 비좁은 T-34 내부 차체에 포탄걸이 쪽에 걸어두었다.
헤어만 중대는 많은 전공을 세웠기에, 집행유예 보병들은 트럭을 타고 이동할 수 있었다. 슐레프 중대에 있을때 전차를 엄호해주는 기갑 척탄병들은 Sd.Kfz를 탔지만, 집행유예 부대원들에게 트럭을 빌려주는 것 만으로도 엄청난 혜택이었다. 덜컹거리는 트럭에서 한 집행유예 부대원이 중얼거렸다.
"오토, 스테판 저 녀석들 덕분이 우리가 트럭도 타보는군!!"
"얼마 전까진 수류탄이랑 소총도 제대로 보급 안 해줬는데 말일세!!"
"그래봤자 이용이나 당하는건데 좋기는 뭐가 좋나?"
수염이 난 집행유예 부대원이 말했다.
"오토 파이퍼 저 친구는 전공을 세우면 원래 부대로 돌아갈 수 있을거라고 믿더군! 어리석은 녀석이야!"
"아직 한참은 더 굴러야지!!"
트드등 트드드드등 트드등
마을 쪽에서 러시아 주민들이 나와서 오토 일행의 전차들을 보고 있었다. 전차장 해치 위로 고개를 내민 오토가 외쳤다.
"빨리 이동하자!!"
모스크바 인근 주민들은 우크라이나쪽 민간인들과는 달리, 독일군의 세세한 움직임을 바로 소련군에게 보고했다. 그렇기에 이들의 눈에 띄면 무조건 빨리 이동하는 것이 상책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토 일행의 T-34들은 후퇴하는 소련군 포병대를 측면에서 공격하기 시작했다.
"고폭탄 사격!!!"
트럭과 말로 운반하던 소련군 포병대를 향해서 T-34 세 대는 고폭탄을 퍼부었다.
티잉!! 쿠과광!! 쿠광!! 콰과광!!!
그 때, 무전으로 항공 정찰에 의한 정보가 들어왔다.
"다수의 T-34전차가 83지역으로 집결 중!!"
오토가 흰색 깃발을 꺼내들고는 스테판과 좀머의 전차에 외쳤다.
"27 확인점으로 퇴각!!!"
그렇게 3대의 T-34 전차는 27 확인점을 통해 빠른 속도로 퇴각했다.
트드등 트드드등 트드등
또 다시 전공을 세우고 나서, 오토 일행은 이번에는 모스크바 인근 시가전에 투입되었다. 뿌연 먼지 속에서 집행유예 부대원들이 엎드린 채로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땅!! 따당!! 따닥!!
사방에 벽돌들이 무너져 내려있었고, 건물들도 절반쯤은 박살난 상태였다. 시가지 곳곳에 사람과 장갑차가 지나갈 수 있을만한 커다란 통로가 있었다. 총 소리가 병사들의 귀청을 때렸다. 총소리가 벽에 반사되었기에 신병들은 도대체 어디 적군이 있는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따당!! 땅!! 따앙!!
집행유예 부대원들은 다같이 길을 건너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적군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었기에 섣불리 길을 건널 수 없었다.
한 집행유예 부대원이 외쳤다.
"지금 빨리 건너자!!"
"너부터 건너!!"
결국 한 녀석이 소총을 들고는 냅다 달렸다. 어디선가 총소리가 들렸다.
쉬잇! 쉿!! 피웅!!
그 달려가던 녀석이 퍽하고 잔해 더미 옆에 넘어졌다.
"나 맞았어!! 나 맞았어!!"
골목길에 있던 녀석이 반대편에 있는 오토의 전차에게 손짓으로 적군이 총을 쏜 위치를 가르쳐주었다. 오토는 7시 방향을 향해 T-34의 고폭탄을 발사했다.
티잉!!!
엄청난 연기가 T-34 내부를 가득히 채웠다. 그렇게 격파한 틈을 타서 다른 집행유예 부대원들이 길을 건넜고, 한 녀석은 총을 맞은 녀석을 업어서 안전한 곳으로 운반했다.
"으아아!!"
집행유예 부대원들은 한 건물을 점령하고는 그 안에서 부상자를 치료했다. 오토는 신중하게 T-34를 운용했다.
'젠장 무전기가 없으니 본부에 보고를 못하잖아!!'
집행유예 부대원들은 잔해 더미 뒤에서 엄폐한 채로 엎드려 있다가, 수신호를 보내면 소련군이 있는 곳을 향해 냅다 수류탄을 던졌다.
쿠과광!! 콰광!!
계속된 포격으로 몇 건물들과 천막이 시뻘건 화염에 휩싸였다. 화염을 뒤로 한 채로 독일 병사들과 T-34 전차는 점점 시가지 깊숙한 곳으로 이동했다.
트드등 트등 트드드등
그 때, 정찰을 갔던 집행유예 부대원이 소련군의 전차가 있다는 수신호를 보냈다. 오토는 천천히 그 쪽으로 전차를 기동하기로 했다.
트드등 트드드등 트드등
오토는 미리 적 전차가 있는 방향으로 포탑을 선회시켜놓고 천천히 사거리쪽으로 전진했다. 알프레트는 검댕이 묻어 더럽고 더럽고 두꺼운 장갑을 낀 손으로 주의 깊게 철갑탄을 장전하고 재빨리 손을 뺐다.
털컥
"장전 완료!!!"
오토의 이마에서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이미 소련군 전차도 오토의 전차가 오는 것을 알고 있을 것 이었다. 오토가 조종수 마티아스에게 외쳤다.
"건물 옆에 엄폐하고 45도 각도로 천천히 전진해!!"
놀랍게도 소련군의 T-34 전차는 건물 뒤에 엄폐하지 않고 길 한복판에서 오토의 T-34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토가 외쳤다.
"발사!!!"
오토가 주포를 발사했다.
티이잉!!!
발사가 되는 순간, 김이 모락모락나는 탄피가 떨어졌다.
철커덩!!
소련군의 T-34 전차의 주포와 오토의 전차의 주포가 거의 동시에 불을 뿜었다.
쿠과광!! 콰광!! 와르르
오토가 발사한 철갑탄은 소련군의 T-34 전차를 격파했지만 소련군이 발사한 포탄은 근처 건물 벽을 박살냈다. 오토의 T-34 차체 위로 벽돌들이 와르르 무너져내렸다. 오토가 외쳤다.
"격파 완료!!"
T-34에서 전차병들이 아무도 탈출하지 않는 것을 보니 소련군은 모두 전차 안에서 죽은 것이 틀림없었다. 오토는 왜 소련군의 T-34가 엄폐하지 않고 길 한복판에 있었던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놈들은 엄폐하지 않고 있었던거지?'
오토는 불타오르는 T-34 옆으로 전차를 기동 시켰다. 전차가 기동하면서 차체 위에 얹혀있던 벽돌들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근처에 건물들의 유리창은 전차 폭발로 인하여 와장창 깨진 상태였다. 그 때, 오토는 3층에서 한 할머니의 얼굴이 아른거리는 것을 보았다.
'민간인이 살고 있었군...'
오토는 불타는 소련군의 T-34 전차를 살펴보았다. 그 소련군은 민간인이 위험할까봐 건물 뒤에 엄폐하지 않고 길 한복판에서 오토의 전차를 기다린 것 이었다. 그 소련 전차병들은 모두 바짝 익은 바비큐가 되었을 것 이었다.
오토는 이유 모를 불편함을 느끼며 시가지를 전진했다.
트드등 트드드드등
Comment ' 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