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라
오토와 동료들은 3호 돌격포를 타고 최대한 조용히 전진하고 있었다. 3호 돌격포의 좌측의 맨 뒷자리가 오토의 전차장 자리이고, 전차장 자리에서는 토끼귀 모양의 잠망경으로 전방을 정찰할 수 있다. 그리고 오토 앞에는 포수 에밀이 있고, 에밀 앞에는 조종수 마티아스가 3호 돌격포를 조종하는 조종석이 있다. 또한 포수 에밀의 우측, 즉 차체의 우측 중앙에는 장전수 겸 무전수석으로 요하네스가 앉아 있었다.
오토의 등 뒤에는 MP40이 한 정 들어있는 케이스가 벽에 달려 있었다. 또한 MP40의 예비 탄약과 구급 상자 또한 벽면에 걸려 있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오토 일행은 MP40와 구급 상자도 없는 3호 돌격포로 임무를 수행해야 했었다.
그렇게 오토의 돌격포와 스테판의 돌격포는 지뢰 지대에 빠져서 기동불가가 된 독일군의 4호 전차를 구조하러 간 것 이었다. 조종수 마티아스는 땀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오토가 말했다.
"궤도 자국 따라서 전진한다."
그렇게 두 대의 돌격포는 천천히 지뢰밭을 건너기 시작했다.
트으응 트드드드등 트드드등
3호 돌격포의 슬릿을 통해서 얇은 빛이 들어오고 있었고 이들이 전차병들의 얼굴을 비추었다. 구조를 기다리는 4호 전차로부터 무전이 왔다.
트으응 트드드드등 트드드드등
오토는 잠망경을 통해서 사방을 살폈다. 소련군의 포병대는 상당히 멀리 떨어진 지점에 자리잡고 있다고 들었다. 하지만 오토 일행이 지뢰밭에 기동불가된 4호 전차를 구하러 왔다는 것을 알면 분명 포격을 쏟아부을 것 이었다. 그렇게 마침내 오토와 스테판의 3호 돌격포는 기동불가된 4호 전차에 도착했다. 4호 전차의 해치가 열리고 전차장이 머리를 내밀었다.
"고맙네!!!"
4호 전차의 우측 궤도는 대전차 지뢰를 밟고 완전히 퍼져 있었다. 오토와 스테판은 식은 땀을 줄줄 흘리며 기동불가된 4호 전차에 크레인을 연결했다. 이렇게 두 대의 3호 돌격포에 4호 전차를 크레인으로 연결한 다음 잡아 끌면 한 쪽 궤도가 망가진 4호 전차도 견인할 수 있을 것 이었다.
트응 트드등 트드등
그렇게 두 대의 3호 돌격포가 힘을 합쳐서 4호 전차를 견인하기 시작했다. 조종수 마티아스는 팬티에 똥오줌을 지렸다.
'으아아!!!'
트으응 트드등 트드드등
이제 조금만 더 전진하면 이 공포의 지뢰밭으로부터 빠져나갈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주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퍼엉!! 시이잇!!!
이건 소련군의 야포 소리였다.
소련군이 발사한 중포탄은 오토 일행의 3호 돌격포로부터 80m 정도 떨어진 곳에 착탄했다.
쿠과광!! 콰광!!!
오토가 외쳤다.
"침착해!!!"
이제 소련군은 2탄을 발사할 것 이었다. 에밀이 울부짖었다.
"우아악!! 이러다 죽겠다!!"
좀머도 울부짖었다.
"진짜 죽는다!! 죽는다!!!"
"닥쳐!! 살 수 있.."
시이잇!!! 쿠과광!! 콰광!!
3호 돌격포로부터 불과 50m 떨어진 곳에 포탄이 착탄했고, 소련군이 묻어두었던 대전차 지뢰들도 같이 폭발했다. 오토가 타고 있는 3호 돌격포에도 흙먼지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우아악!!"
"빨리 가!!!"
트으응 트드등 트드드드등
시이이잇!! 콰과광!!! 쿠광!!!
그렇게 오토 일행은 겨우 4호 전차를 견인해서 지뢰밭을 빠져나와서 관목림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여전히 소련군은 지뢰 지대에 포탄을 퍼붓고 있었다. 오토가 3호 돌격포 위로 고개를 내밀어보니 차체 위에 수북하게 흙먼지가 쌓인 상태였다.
4호 전차의 전차장이 4호 전차에 보관해두고 있던 슈납스를 내밀며 외쳤다.
"이 은혜는 잊지 않겠네!!"
에밀이 속으로 생각했다.
'포탄 수납대에 슈납스 보관해두는건 어느 부대나 똑같군.'
그렇게 오토 일행은 기동불가된 4호 전차를 구난하는 것에 성공했다. 헤어만 중대장이 외쳤다.
"아주 훌륭해! 자네는 6시간 뒤에 부대로 직위와 명예를 회복할 수 있을 것 이네! 그런데 그 전에 말일세!"
헤어만 중대장은 오토에게 슈빔바겐을 보여주었다.
"이걸 타고 27구역 하천을 건넌 다음 37구역을 정찰하고 오게!"
오토, 좀머, 에밀, 요하네스는 그렇게 슈빔바겐에 탑승하게 되었다. 좀머가 씨부렸다.
"저 망할 새끼 아주 끝까지 부려먹는군!!"
오토도 기분이 좆같았지만 몇 시간만 있으면 훈장, 계급장이 복귀되기 때문에 이번만 참기로 했다.
"그냥 정찰 임무일 뿐이네!"
좀머는 슈빔바겐을 보며 감탄했다.
"이걸 타면 하천을 건널 수 있다는거지? 정말 신기하군!!"
슈빔바겐은 독일군이 흔히 쓰는 4인용 퀴벨바겐과 거의 비슷했다. 다만 뒤에 접이식 프로펠러가 달려있었기 때문에, 물 속에서도 뜰 수 있었다. 꼭 수중에서 사용하지 않더라도 퀴벨바겐보다 엔진이 더 좋았기 때문에 매우 귀한 물품이었다. 에밀은 슈빔바겐을 보며 감탄했다.
"진짜 대단합니다!"
에밀은 당장에라도 슈빔바겐을 타고 하천을 건너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였다. 좀머가 중얼거렸다.
"근데 이상한데...집행유예 부대에 이렇게 귀한걸 내준다고?"
에밀이 외쳤다.
"우리는 특임 부대나 성공할만한 임무를 계속 해왔으니 특별 대우를 받는걸세!"
오토도 에밀의 말에 동의했다.
'내가 다른 집행유예 부대 쓰레기들이랑 같은 줄 아냐?'
그렇게 오토, 에밀, 요하네스, 좀머는 슈빔바겐을 타고는 정찰을 하기 위해 출발했다.
트으응 트드드드등
에밀이 외쳤다.
"엔진 소리도 기가 막히네요!"
잠시 뒤, 27구역에 하천이 나왔다. 좀머가 말했다.
"이거 혹시 중간에 가라앉는 것은 아니겠지?"
오토가 외쳤다.
"걱정 말게나!!"
오토는 슈빔바겐 뒤에 달린 접이식 프로펠러를 내렸다. 그렇게 슈빔바겐은 물 속에 반쯤 잠겼고, 프로펠러가 돌아가면서 천천히 하천을 건너기 시작했다. 슈빔바겐 뒤 쪽에서 작은 물보라가 일었다. 좀머가 외쳤다.
"우오오!! 이거 진짜 가는구나!!"
"쉿! 조용히 하게!"
그렇게 하천을 건너고 나서 오토 일행은 정찰을 마친 후 다시 하천을 건널 준비를 했다. 슈빔바겐은 천천히 하천으로 들어갔고 다시 슈빔바겐 뒤 쪽에는 작은 물보라가 생겼다. 그런데 갑자기 물보라가 멈추었다. 좀머가 외쳤다.
"이거 왜 더 안가는 건가?"
다시 프로펠러를 작동시켜보았다. 프로펠러는 잠시 돌아가다가 멈추었다. 슈빔바겐은 하천에 둥둥 뜬 채로 조금씩 떠내려가고 있었다.
"이거 왜 이러지?"
오토는 식은 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좀머가 말했다.
"다들 수영은 할 줄 알지?"
에밀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말했다.
"그...그런데 이거 분실하면 군사재판 아닙니까?"
장교들도 쌍안경을 잃어버렸다는 이유로 계급이 강등되거나 군사 재판을 받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집행유예가 끝나지 않은 상황에 이 귀한 슈빔바겐을 잃어버리고 또 다시 군사 재판을 받는다면 아무리 한스의 빽이 있더라도 쉽지 않을 것 이었다. 슈빔바겐은 그렇게 둥둥 떠내려갔다.
"어떻게 합니까!!!"
"내 인생은 망했다!!!"
다행히 다시 프로펠러가 돌기 시작했다.
"우아악!! 된다!! 된다!!!"
그렇게 슈빔바겐을 타고 오토 일행은 헤어만 중대로 복귀했고, 오토, 스테판, 좀머, 마티아스, 알프레트, 요하네스, 에밀 등은 모두 계급장과 훈장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 헤어만 중대장이 오토에게 외쳤다.
"내 부대에서의 짧은 시간이 귀관들에게 교훈이 되었으면 좋겠군!"
오토는 헤어만 중대장의 얼굴에 주먹을 날리고 싶은 것을 참고는 경례를 하고 동료들과 함께 트럭에 탑승했다. 그렇게 이들은 트럭을 타고는 만토이펠 대대로 돌아가게 되었다.
오토는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집행유예 부대에서는 현재 모스크바 전투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에 대해 정확한 소식을 듣기 힘들었다.
'모스크바를 향한 철도망에 대한 공격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제공권은?'
잠시 뒤, 오토 일행은 슐레프 중대에 도착했고 블라덱, 볼프강, 헬무트, 게오르크가 이들을 반겼다. 오토가 물었다.
"철도망 공격은 어떻게 되었나?"
헬무트가 엿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실패했네."
오토는 동료들과 인사를 한 이후에 자신의 티거부터 보러 갔다.
'내 티거!!'
오토는 티거를 쓰다듬었다.
'내 음식들은 그대로 있겠지?'
오토는 티거에 캐비어 통조림 등 고급 음식들을 모조리 숨겨둔 상황이었다. 오토는 군침을 삼키며 티거 포탑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통조림은 보이지 않았고 가족과 밀리나에게서 온 편지만 가득 있었다.
'내 통조림은?'
오토가 전차장 해치 위로 고개를 들고는 게오르크에게 물었다.
"이보게!! 혹시 내 통조림 못 봤나?"
게오르크가 모른척했다.
"통조림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헬무트가 외쳤다.
"그거 우리가 좀 먹었네!"
"뭐라고!!!"
오토는 자신의 소대원들을 바라보았다.
"하나도 안 남기고 다 먹었다고?"
'난 집행유예 부대에서 식량 보급도 제대로 못 받았는데!!'
오토 소대의 전차장 우벤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
"식량 보급이 안 되어서 어쩔 수 없었습니다!"
블라덱이 외쳤다.
"고맙네 오토!!"
오토는 자신의 소대원들과 동료들에게 이를 갈았다.
'저 새끼들이!!'
한편, 모스크바에서 소련군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하고 있었다. 독일군은 계속해서 모스크바로 통하는 소련군의 철도망을 공격하고 있었다. 소련군은 최선을 다해 방어하고 있었지만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블라슈크는 독일군 공세 초반때 지휘관들의 어처구니없는 명령으로 수 많은 소련군 병사들이 갈려나간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군부에서는 동양계 소수 민족들을 갈아넣고 있었다. 지뢰 지대나 독일군의 기관총 앞으로 몽골계 소수 민족들을 투입한다는 것을 블라슈크는 잘 알고 있었다.
'망할 놈의 멍청한 지휘관들이!!!'
만약에 초반에 그렇게 큰 손실을 입지 않았다면 모스크바는 성공적으로 방어할 수 있을 것 이었다. 블라슈크는 그렇게 인력을 갈아넣은 수 많은 지휘관들에게 이가 갈렸다.
블라슈크는 벽 한 쪽이 허물어져내린 지휘소에서 잠시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 블라슈크는 단 한번도 종교를 믿어본 적이 없었고 기도도 어떻게 하는지 몰랐지만 이런 상황이 되니까 그 기도라는 것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말에 블라슈크는 누구보다 동의했다. 하지만 인간의 강철 같은 의지만으로도 힘든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초인적인 존재가 있다면 제발 모스크바 방어에 성공하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고 싶었다.
한편, 소련 여군 나타샤는 자신의 언니 크세니야와 함께 힘든 근무를 서고 있었다. 그런데 어딘가로 군인들이 우르르 몰려가고 있었다.
'무슨 일이지?'
나타샤는 그들을 따라가보았다.
'!!!'
모스크바 외각에서 독일군의 공격에 도주한 병사들이 결박당한 상태로 처형을 기다리고 있었다. 정치 장교가 외쳤다.
"이들의 비겁한 행동 때문에 수 많은 동지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
잠시 뒤 정치 장교는 이들을 처형할 자원자들을 뽑았다. 놀랍게도 그 자원자 중에는 여군도 있었다. 나타샤는 도저히 처형 장면을 볼 수가 없어서 다른 곳으로 달려갔다.
'시..싫어!!!'
타앙! 탕!! 타앙!!
나타샤는 여기저기 건물 파편이 떨어진 모스크바 시내를 달려갔다. 그리고, 사이렌이 울리기 시작했다.
위이잉 위이이이잉
이는 독일군의 항공기가 떴으니 대피하라는 신호였다.
'아...안돼!!'
나타샤는 급하게 인근에 방공호로 들어가서 대피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폭격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잠시 뒤 나와보니 수 많은 삐라가 시내에서 휘날리고 있었다. 정치 장교가 외쳤다.
"읽지 마!! 절대 읽지 마!! 건드리면 처형이다!!!"
나타샤는 수 많은 삐라가 휘날리는 모스크바 시내를 가로질러 언니 크세니야가 있는 지휘소로 들어갔다.
"크세니야, 있잖아..."
나타샤는 크세니야와 함께 아무도 없는 낡아빠진 창고로 들어갔다. 크세니야가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아까 전에 독일군 항공기가 삐라를 뿌렸어. 근데...왜 다들 그걸 읽지 못하게 하는 거야?"
크세니야가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당연한걸 물어보네..읽으면 안되니까 그렇지."
"생각해봐. 파시스트가 우리보다 열등하다면 그걸 읽던 말던 누구도 파시스트에게 넘어가지 않을거 아냐. 그런 거짓말을 누가 신경쓰겠어? 혹시..."
크세니야가 나타샤의 어깨에 손을 올려놓고는 말했다.
"파시스트들은 거짓말로 선동을 하는거야. 그런 삐라를 읽고 병사들이 속아서 파시스트에게 넘어가면 모스크바를 방어할 수 없으니까..."
나타샤가 이를 갈며 말했다.
"판단은 내가 직접 해...그깟 종이쪼가리 읽었다고 처형하는게 말이나 된다고 생각해?"
크세니야가 화난 목소리로 나타샤에게 말했다.
"너 말 조심해..."
"혹시 알아? 파시스트가 승리하는게 우리한테 유리할지..."
크세니야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너 빌헬름이랑 히틀러 그 새끼를 지지한다는 소리야?"
"난 아무도 지지 안해...누가 이기는게 나한테 좋을지 판단하는거야..."
"나타샤!!"
"난 언니 때문에 이 전쟁터에 왔어. 아무 의미없이 죽고 싶지는 않아!"
나타샤는 주머니에서 두 장의 삐라를 꺼냈다. 이 삐라는 통행증의 역할도 한다고 적혀 있었다.
"같이 도망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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