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타샤
소련군은 저격수들을 위한 참호를 건설할때,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참호를 판다. 일단 다섯 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호를 가운데에 판다. 그리고 그 중앙호로부터 연결되는 개인호들을 여러 방향으로 판다. 그렇게 되면 대전차소총을 들고 있는 저격수들은 독일군의 전차가 어느 방향으로 오던지 그 방향으로 대전차소총을 들고 가서 저격을 할 수 있다. 그리고 방어선이 뚫렸을 경우 후퇴를 할 수 있도록 후방으로 연결되는 교통호 또한 있다.
이렇게 소련군은 가운데에 중앙호가 있고 여러 방향으로 거미줄처럼 연결되는 호를 사방팔방에 만들어두었다. 나타샤, 크세니야, 류드밀라, 그 외 동료들은 중앙호에서 함께 비스킷과 정어리 통조림을 먹었다. 그 때, 소련군 장교가 와서 저격수용 페리스코프와 PTRD-40를 하나 주며 외쳤다.
"이는 아주 중요한 자산이므로 절대로 잃어버리면 안 된다!!"
이 일자 형태의 저격수용 페리스코프에는 소련을 상징하는 낫과 망치가 그려져 있었다. 이 페리스코프와 PTRD-40은 독일군 전차의 진격을 막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 이었다. 크세니야와 류드밀라는 PTRD-40을 전방에 개인호에 거치하고 발디딤판의 높이를 조종했다.
나타샤가 외쳤다.
"페리스코프와 대전차소총이 더 필요합니다!"
소련군 장교는 아니꼬운 눈으로 나타샤를 바라보았다. 나타샤는 체구가 작았기에 육중한 대전차소총을 잘 다루지 못할 것 같았다.
"이봐 자네!! 저기 기관총 팀으로 가게!!!"
그렇게 나타샤는 기관총 팀으로 가서 교통호를 통해 탄약을 전달해주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왜 하필 내가 기관총 팀으로 가는거야!!!'
하지만 생각해보니 대전차소총 저격수보다는 탄약을 전달해주는 일이 더 안전할 것 같았다. 그렇게 나타샤는 룰루랄라하고 있었다. 기관총 사수가 나타샤에게 쌍안경을 빌려주었다.
"이거 한번 써볼텐가?"
나타샤는 쌍안경을 이용하여 소련군 공병들이 대전차 지뢰를 설치하고 있는 전방을 구경했다.
'저거 설치하는거 위험하지않나?'
지뢰 매설하는 동안 몇 공병들은 무릎을 꿇고는 총을 든 상태로 지뢰 매설 중인 동료들을 엄호했다. 지뢰를 매설하고 있는 공병은 엎드린 다음 삽을 이용해서 조심스럽게 옆으로 땅을 팠다. 그 옆에는 지뢰를 들고 있는 공병이 쭈그리고 앉아서 보조를 하고 있었다.
잠시 뒤, 나타샤는 볼일을 보기 위해 잠시 후방으로 가는 교통호를 따라 걸어갔다. 기관총 사수가 나타샤에게 외쳤다.
"이봐!! 길 절대 잃지 말라고!!"
나타샤는 알았다고 손을 흔들고는 구불구불한 교통호를 따라서 걸어간 다음 볼일을 보고 돌아왔다. 기관총 사수가 나타샤에게 물었다.
"이봐 자네!! 자네는 기관총 쏠 줄 아나?"
"모릅니다."
나타샤는 저격총 다루는 법은 알았지만 기관총은 한 번도 쏴본 적이 없었던 것 이다. 기관총 사수가 나타샤에게 기관총 긁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나와 부사수가 더 이상 못 쏘게 되면 자네라도 기관총을 계속 쏴야하네! 혹시 파시스트가 밀려와서 기관총을 챙기지 못하고 후퇴할 경우엔 반드시 기관총 노리쇠를 갖고 가야 하네!"
그렇게 지루한 시간을 보냈는데 어느 새 밤이 되었다. 나타샤는 지난번에 긴빠이쳐둔 쿠키를 꺼내어 먹었다.
'다들 잘 있을까?'
그런데 쿠키를 먹고 나니 목이 메었다. 나타샤가 기관총 부사수에게 말했다.
"목 마른데 물은 어디서 먹는지 궁금해도 되는지 여쭈는 것을 허락받아도 되겠습니까?"
기관총 부사수가 외쳤다.
"여기 기관총에 물 있으니 이걸로 먹게!"
그렇게 나타샤는 기관총에 입을 갖다대고 물을 마셨다. 잠시 뒤 기관총 사수나 부사수가 오줌을 싼 다음 오줌을 기관총에 채워둬야 할 것 이다.
한 시간 뒤, 기관총 호에 기대어서 다들 졸고 있는데, 갑자기 최전방에 소련군 수색대가 하늘에 붉은 조명탄과 보라색 조명탄을 동시에 쏘아올렸다.
퍼엉!!!
'저...저거!!!'
"다들 준비해!!!"
수색대가 보낸 이 신호는 독일군이 오고 있다는 신호였다.
"시...시발!!!"
다들 실탄을 장전하고 준비하기 시작했다. 후방쪽에 있는 스탈린 오르간이 시꺼먼 하늘을 향해서 불을 뿜고 있었다.
구오오오 구오오오 구오오오 구오오오
구름 속을 비추는 노란 불꽃들이 마치 호랑이의 꼬리처럼 계속해서 비스듬히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노란색 구름들이 계속 지상에서 솟구치는 듯한 기이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독일군 포병대 또한 방어선을 위해 포격을 쏟아붓고 있었다.
쿠과광!! 콰과광!! 쿠구궁!!
나타샤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으아아...으아아아아...'
독일군 전차들의 엔진, 궤도 소리로 미루어보건대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인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하늘에서는 독일군의 항공기들이 때지어 오고 있었다.
쿠과광!! 콰광!!
탕! 탕! 탕! 탕! 탕!
대공포병들이 시커먼 하늘을 향해서 대공포를 발사했고 지상에서 발사되는 노란 불꽃들이 궤적을 그리며 하늘을 뒤덮었다. 엄청난 수의 별똥별들이 땅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
펑! 펑! 펑! 펑! 펑!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의 항공기에서는 계속해서 폭탄이 투하되었다.
쿠궁!!! 쿠광!! 쿠궁!! 쿠구궁!!!
전방에서 누군가가 독일군이 오는 방향으로 예광탄을 발사했고, 나타샤가 있는 기관총 팀의 사수는 그 쪽으로 기관총을 조준하고는 더 접근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타샤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들었다. 어둠 속에서 독일군의 전차들이 기관총과 주포에서 불꽃을 뿜으며 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부사수가 나타샤의 머리를 눌렀다.
"고개 올리지마!!! 고개 올리지마!!!"
트으응 트드등 트드드드등
드드득 드드득 드드드드득
티잉!! 콰광!!! 티이잉!!! 콰과광!!!!
독일군이 더 접근한 다음에야 최전방에 소련군 대전차소총 사수와 기관총 사수들은 사격을 시작했다.
드득 드드득 드드드드득
한편, 류드밀라 또한 거대한 PTRD-41 대전차소총을 티거의 기동륜으로 추측되는 지점을 겨냥하여 발사했다.
타앙!!!!
하늘에 붉은 예광탄이 계속해서 발사되었다. 나타샤가 있는 기관총 팀 사수가 외쳤다.
"탄 갖고 와!!! 빨리!!!!"
하지만 사방에서 포격 소리가 들려서 나타샤는 사수가 뭐라는지 알 수 없었다. 사수가 탄창을 가리키며 외쳤다.
"탄 갖고 오라고!!!"
나타샤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로 교통호를 달려가서 탄을 갖고 왔다.
드륵 드르륵 드르르르륵
우측에 있던 다른 기관총 호는 포격을 맞고는 기관총이고 사수고 부사수고 산산조각난 상황이었다. 부사수가 나타샤한테 그 기관총 호를 가리키며 외쳤다.
"저기 탄약 남은거 있을테니 가져와!!!"
나타샤는 다시 허리를 숙인 채로 교통호로 달려갔다.
쉬이잇!!!!
쿠과광!!! 콰광!!!
'으아악!!!'
나타샤는 머리를 감싸고 엎드렸다. 뒤를 돌아보니 아까 전에 있었던 기관총 호가 포탄을 맞고는 완전히 작살난 상황이었다. 사수, 부사수 둘 다 사망했고 기관총은 산산조각나서 굳이 노리쇠를 뺄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기관총도 없고 사수도 부사수도 죽었는데 나타샤는 어떻게 해야할지 순간적으로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나타샤는 그렇게 교통호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
쉬이잇!!!
나타샤가 숨어있는 교통호에서 고작 10m 떨어진 곳에 고폭탄이 폭발했고, 나타샤 위로 엄청난 흙 무더기가 쏟아졌다.
'아아악!!!'
그렇게 나타샤는 다리가 모조리 흙에 파묻히는 꼴이 되었다.
"꺄아악!!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그리고 나타샤는 기관총과 주포에서 불을 뿜으며 다가오는 독일 전차들을 볼 수 있었다.
드륵 드르륵 드륵
티잉!! 티잉!!!
나타샤는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로 독일군의 전차 부대를 바라보았다. 팬티에는 완전히 똥오줌을 지린 상태였다.
'으아아아아!!!'
그 때, 크세니야와 류드밀라가 달려와서 나타샤의 다리 위에 쏟아진 흙을 파내기 시작했다.
"빨리!!! 빨리!!!"
겨우 나타샤를 끄집어낸 다음 삼인방은 후방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 때, 도망가는 이들에게 한 장교가 외쳤다.
"전사자 있는 참호에서 탄약 챙겨!!"
그렇게 삼인방은 도망가는 와중에도 기관총 사수나 대전차소총 사수가 있었던 개인호에 들어가서 혹시 남은 탄약이 있는지 찾아야 했다. 나타샤는 한 개인호에 들어갔다가 완전히 산산조각난 시체들을 보고 고함을 쳤다.
"으아악!!!"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타샤는 멀쩡해보이는 모신나강 한 정을 챙기는데 성공했다.
'좋았어!!!'
"빨리 후퇴해!!"
소련군은 그렇게 제 2방어선으로 후퇴했고, 나타샤는 모신나강을 손톱이 하얗게 될 정도로 꽉 쥐고는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렇게 총을 목숨 걸고서라도 노획해야 하는 이유는 독일군과 싸우기 위해서만이 아니었다. 기관총이 격파되어서 퇴각했더라도 정치 장교가 왜 싸우지도 않고 무기를 버려두고 퇴각했냐며 총살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어둠 속에서 류드밀라, 크세니야, 나타샤와 동료들은 6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호에서 벌벌 떨며 사격을 준비했다. 그 때, 11시 방향에서 독일군의 함성소리와 함께 놈들이 총을 쏘는 듯한 불꽃이 계속해서 번쩍거렸다.
탕! 타앙! 탕!
"우와와!!!"
"저 쪽이야!!!"
류드밀라, 크세티야, 나타샤, 그 외 소련군 모두 그 쪽을 향해 소총을 사격했다. 나타샤 또한 모신나강을 발사했다.
타앙!!
총알을 다 쓸 무렵, 나타샤는 뭔가 이상함을 느꼈다.
"왜 갑자기 멈췄지?"
그 때, 2시 방향에 있던 아군이 고함을 질렀다.
"이 쪽이다!!!"
독일군은 11시 방향에서 일부러 함성을 외치며 사격을 한 다음, 2시 방향으로 은밀하게 소련군의 턱밑까지 접근했던 것 이다. 독일군은 엉뚱한 곳에서 급습을 한 다음 수류탄을 한 번에 던지고 있었다.
쿠과광!! 쾅!! 쿠과광!!!
2시 방향에서 온갖 수류탄이 폭발함에도 불구하고 일부 소련 병사들은 엄한 곳을 향해서 총알을 낭비하고 있었다. 나타샤가 외쳤다.
"우리 잘못 쏘는 거야!!!"
참고로 나타샤는 이미 모신나강 총알을 다 쓴 상태였다. 나타샤는 모신나강의 달린 스파이크 총검을 바라보았다. 이미 2시 방향에서 수류탄이 터지고 두개골이 으스러지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훈련때 나타샤, 크세니야, 류드밀라 모두 사격에는 능했지만 백병전은 해본적도 없었고 다들 체구도 작았다.
"어...어떡하지?"
그 때, 블라슈크가 달려와서 이들에게 외쳤다.
"퇴각해!!! 빨리!!!!"
다음 날 새벽, 나타샤와 친구들은 모두 무사히 후퇴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다들 팬티에 똥오줌을 지리고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정신이 나간 상태였다. 한 병사가 자리에서 일어나서 고개를 숙이지도 않고 화장실로 가기 위해 교통호를 걸어가자, 고참 병사의 욕설이 날아왔다.
"이런 멍청아!! 고개 안 숙이냐!!"
"니 두개골이 100mm 경사 장갑인줄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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