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호 돌격포
오토와 집행유예 부대원 동료들은 나무 그루터기 위에 주저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집행유예 부대에서는 집에서 오는 우편물도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예전에 받은 편지만 계속 읽어야 했다. 담배도 떨어진 상황이었다. 그 때, 헤어만 중대장이 이 쪽으로 오고 있었고, 오토 일행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다시 2인용 참호를 파기 시작했다. 헤어만 중대장이 외쳤다.
"훌륭해!! 땅을 많이 파는 만큼 피를 한 방울이라도 덜 흘린다!!"
오토는 에밀과 함께 야전삽으로 2인용 참호를 팠다. 그 위에는 통나무를 덮어두고, 다시 판초를 덮은 다음 흙과 풀을 뿌려서 완벽하게 위장했다. 에밀이 외쳤다.
"이 정도로 파면 포격에도 안전할 것 같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한 이후 오토 일행은 혹시나 수류탄이 날아올 경우 처리할 수 있도록 수류탄 처리용 배수구도 팠다. 참호속에서 버티다가 오줌이 마려오면 여기 볼일을 봐도 될 것 이었다. 그렇게 고된 작업을 마쳤는데 누군가 외쳤다.
"밥이다!!!"
오토와 에밀은 무거운 야전삽을 2인용 참호에 내팽개치고는 밥차로 달려가서 줄을 섰다. 그리고 반합에 스프를 받아서 먹은 다음 2인용 참호에 돌아왔는데 아까까지 쓰던 야전삽이 보이지 않았다.
"내 야전삽 못봤냐?"
근처에 다른 참호 속에 있는 동료들에게 물어봤지만 다들 모른다고 했다. 좀머가 외쳤다.
"자네 이름 안 써뒀나?"
"이런 젠장..."
야전삽이 없으면 앞으로 참호를 팔 수 없기에 상당히 곤란해지는 상황이었다. 스테판이 외쳤다.
"야전삽이 없으니 손으로 파야겠군!"
오토는 야전삽을 내버려두고 간 자기 자신이 한심하기 그지없었다. 전차 소대에 있을때는 전차에 삽, 수통 등을 놔두면 누가 훔쳐갈 일이 없었기에 방심했던 것 이다.
'이런 병신같은...'
오토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외쳤다.
"야전삽 좀 빌려주게!"
그 때 한 집행유예 부대원이 참호 파는 것을 마치고 외쳤다.
"내꺼 빌려줄까?"
"고맙네! 으익!"
그 녀석이 빌려준 야전삽은 분명 오토의 것이었다. 오토는 야전삽에 여기저기 패인 상처로 알 수 있었다.
"이거 내꺼잖아!!!"
"무슨 소린가! 내꺼일세!"
잠시 뒤 그 녀석은 씨익 웃으며 외쳤다.
"미안하네! 내가 착각했나보군!!"
오토는 야전삽을 갖고 참호로 돌아온 다음 수통, 반합, 야전삽, 슈탈헬름, 심지어 군화에까지 모두 이름을 썼다.
'망할 놈의 집행유예 부대...'
잠시 뒤, 헤어만 중대장이 와서 외쳤다.
"이 임무에 성공하면 귀관들의 명예와 직위가 회복 %$&@"
'이번엔 과연 무슨 임무지?'
"귀관들이 해야할 이 특수 임무의 성공에 따라서 조만간 있을 커다란 전투의 승패가 갈릴 것 이다!!"
이 특수 임무란 지뢰밭 돌파 임무였다. 참고로 얼마 전까지 오토 일행이 쓰던 T-34 3대는 나름 쓸만하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 출신 부대가 사용하기로 했다. 덕분에 오토 일행은 계속해서 지뢰 제거 같은 임무를 해야했던 것 이다.
오토, 스테판, 좀머, 에밀, 마티아스, 알프레테, 요하네스는 그렇게 지뢰밭 돌파조로서 지휘관, 제거병, 제거 확인병, 통신병, 예비병, 등등의 임무를 각기 누가 맡을지 의논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지휘관이 가장 안전하고, 제거병이 가장 위험할 것 이었다. 오토가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집행유예 부대 오기 전에 장교였으니 나랑 스테판 둘 중에 지휘관을 하는게 맞겠지? 내가 지휘관을 안하더라도 난 장교 출신이었으니 예비병으로...'
그 때, 좀머가 말했다.
"어차피 다들 계급이 같으니 제비뽑기로 하는거 어떤가?"
오토와 스테판은 속으로 좀머에게 이를 갈았다.
'저...저 새끼가!!!'
그 때, 헤어만 중대장이 와서 외쳤다.
"뭘 그리 꾸물대나!! 자네가 제거병, 자네가 제거 확인병, 통신병, 예비병, 지휘관 &%$@"
그렇게 막내 알프레트가 지휘관이 되었고 오토가 제거병, 스테판이 제거 확인병, 에밀이 탐지병이 되었다. 오토의 표정은 사색이 되었다.
'나인!!!!'
전차 부대 있을때 막내라서 맨날 토스트 만들고 구멍난 양말 기우고 반합에 우유 스프 떠오는 일을 담당했던 알프레트는 안전한 지휘관 임무를 맡았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졌다. 오토는 알프레트를 한 대 치고 싶었다. 하지만 오토는 현재 계급장이고 훈장이고 다 없었기 때문에 그럴 자격이 못되었다. 이 계급장이라는 것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없어지니까 심리적으로 쭈그러들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알프레트가 웃으며 외쳤다.
"그..그러면 29구역으로 출발합시다!!"
그렇게 오토 일행은 지뢰밭 돌파조로 지뢰탐지기와 지뢰탐지봉을 갖고는 어둠 속에서 은밀하게 지뢰밭으로 진입했다. 지뢰탐지기로 지뢰를 탐지하는 것은 상당히 섬세한 기술이 필요하다. 탐지기를 너무 낮게 들고 땅을 훑었다가는 지뢰를 건들일 수 있다. 그렇다고 너무 높이 들면 탐지가 안 된다. 에밀은 식은 땀을 흘리며 지뢰탐지기를 적당한 높이에서 움직였다.
삐이이 삐이이이
오토는 지뢰탐지봉을 이용하여 45도 각도로 지면을 찔러보았다.
'!!!'
오토는 조심스럽게 지뢰 제거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앞서가던 스테판은 흙으로 덮어두지도 않은 대전차 지뢰들이 널려있는 것을 발견했다.
'로스케 병신들은 제대로 덮어두지도 않았나...'
잠시 뒤 마티아스가 무전기로 지뢰밭 돌파에 성공했다고 전달했고, 기갑 척탄병들과 기갑 부대가 29구역을 돌파하기 시작했다. 그 날 전투는 독일군의 승리로 끝났다. 기갑 척탄병 녀석들과 기갑 부대가 승리를 자축하고 있었다.
녀석들은 소련군에게서 노획한 술을 마시고 있었고 오토 일행은 이를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그리고 휴식을 취할 틈도 없이 오토는 에밀, 알프레트, 스테판, 좀머와 함께 야간에 소련군이 침투해올 수도 있는 길목에서 경계를 섰다. 알프레트는 아까 전에 자신이 지휘관으로서 지뢰밭 돌파 임무에 성공했다는 것에 아직도 기분이 좋은 듯 했다.
오토는 지난 번에 공동묘지에서 보초를 서다가 있었던 무시무시한 일 때문에 이번에는 방법을 바꾸기로 했다. 다섯 명이 모두 들어갈 있는 참호를 판 다음에 둥그렇게 앉아서 서로 어깨를 닿게 하는 것 이었다. 이렇게 되면 한 녀석이 졸면서 고개를 떨구면 옆에 있는 녀석이 깨워줄 수 있을 것 이었다.
"20분에 한번씩 시계 방향으로 옆에 있는 녀석을 깨워준다!"
이렇게 둥글게 앉으면 다같이 졸더라도 슈탈헬름이 부딪치기 때문에 경계에 집중할 수 있을 것 이었다. 새벽 3시쯤 되었을때, 오토는 졸다가 뒤통수에 슈탈헬름이 세게 부딪치는 것을 느꼈다.
탁!
'으익!!'
새벽 4시가 되고서야 오토와 집행유예 부대원들은 돌아와서 천막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집행유예 부대에 들어온 이후에는 하루에도 임무를 몇 개씩이나 해야했다. 오토는 너무 피곤했기에 이제는 부대에 복귀해서 훈장을 받고 말고 이딴걸 생각할 여유도 없었다. 잠을 자고 일어나서 뒤늦게 식사를 하는데, 헤어만 중대장이 와서 외쳤다.
"제군들을 위하여 아주 특별한 선물을 준비했다!!"
'담배? 크바스?'
'우편물 허용해주려나?'
오토 일행 앞에는 3호 돌격포 3량이 있었다.
"이...이건!!"
헤어만 중대장이 외쳤다.
"여태까지 제군들은 독일 제국을 위해서 용맹스럽게 싸웠다! 그렇기에 이 3호 돌격포를 갖고 중요한 임무를 하게 될 것 이다!!"
이 3호 돌격포는 포탑이 없기 때문에 시가전에서는 쥐약이었다. 하지만 차체가 낮기 때문에 풀숲에 은폐하고 있다가 매복 전술로 소련군의 전차를 격파하는데는 상당히 유용했다.
물론 3호 전차는 단점도 있는 것이 방어력이 약하기 때문에 75mm 대전차포에도 격파된다. 오토는 3호 돌격포의 상태를 살폈다. 3대의 3호 돌격포 모두 상태는 멀쩡했으며 측면에 쉬르첸이 달려 있었다. 오토는 엔진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았다.
트드등 트드드드등
'엔진 상태만 보면 오래 쓸 수 있을 것 같군...'
좀머가 물었다.
"이걸로 소련놈들 중전차도 격파 가능한가?"
오토가 말했다.
"근거리에서 T-34와 KV-1 정면 장갑을 관통할 수 있네."
스테판이 말했다.
"하다못해 4호 구축전차라도 받으면 좋을텐데...아니면 헷처라도..."
중대 본부로 걸어가던 헤어만 중대장이 이 말을 듣고는 돌아와서 외쳤다.
"새끼...기열!!! 진정한 군인은 장비를 따지지 않는 법이다!!"
기합을 받은 이후에 오토가 철갑탄 수량을 확인했다.
"근데 이게 철갑탄 수량이 부족할 것 같은데...아껴써야겠군.."
전차에 대해 잘 모르는 좀머가 눈을 굴리며 물었다.
"이거 쓸만한거 맞나?"
알프레트가 낙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4호 전차나 티거, 판터와 같이 싸우면 이것도 쓸만하죠. 하지만 우리는 지원도 못받는 위험한 곳에서 돌파하는 임무를 할 것이 분명합니다!
에밀이 말했다.
"어차피 죽으면 철갑탄 남아봤자 소용없으니 아껴쓰지 말고 실컷 쓰고 죽는 것도!! 악!!"
스테판에 에밀의 대가리를 치고는 다른 집행유예 부대원들을 격려했다.
"3호 돌격포는 매복 전술에 강하니까 너무 염려하지 말게."
그런데 헤어만 중대장은 이들에게 37구역에 가서 소련군의 T-34 소대를 공격하라고 명령을 내렸다. 매복으로 격파하는 게 아니라 전차전을 하듯이 돌격해서 격파하라고 명령이 내려온 것 이었다.
"시동 걸어!!!"
오토과 에밀과 같이 크랭크를 돌렸다. 에밀이 울부짖었다.
"돌격포로 어떻게 매복도 하지 않고 T-34와 교전합니까!! 포탑도 없는데 말입니다!!"
멀리서 있던 헤어만 중대장이 이 말을 듣고 와서 외쳤다.
"새끼...기열!!!"
3호 돌격포에 시동이 걸렸다.
오토가 자신의 돌격포의 전차장석에 앉기 전에 외쳤다.
"놈들 발견하면 그 주위를 빙빙 돌면서 사격한다!! 놈들에게 우리가 대규모 기갑부대인 것처럼 보여야 하네!!"
트드등 트드드등 트드등
"착석!! 출발!!!"
그렇게 3대의 3호 돌격포는 저지대를 이용하여 명령받은 지역으로 전진하기 시작했다. 3호 돌격포는 차체가 낮은 만큼 상당히 비좁아서 다들 불편해했다.
트드등 트드드드등 트드등
시끄러운 엔진 소리 속에서 마티아스가 울부짖었다.
"집행유예 부대원들은 사람도 아닙니까!!"
"닥쳐!!"
정찰을 갔던 집행유예 부대원들이 7대의 T-34를 발견했다고 수신호를 보내주었다.
'7대!!!'
잠시 뒤, 3호 돌격포 3대는 T-34가 있는 곳을 빙글빙글 돌면서 한 발 쏘고 튀고 한 발 쏘고 튀는 것을 반복했다.
티잉!!
티잉!!
쿠과광!! 콰광!!!
소련군 T-34 전차병들은 무전기가 없었기 때문에 엉뚱한 방향으로 다같이 포탑을 선회시키고 발사했다.
티잉!! 티잉!
그 틈을 타서 오토의 3호 돌격포가 T-34의 똥꾸멍을 노리고 있었다.
"발사!!!"
티잉!!!
쿠과광!!!
"격파 완료!!!"
소련군의 T-34들은 6시 방향에 독일군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6시 방향으로 포탑 돌려!!!"
1시간 뒤 7대의 소련군 T-34들의 포탑이 날아간채로 불꽃과 시꺼먼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이렇게 오토와 동료들은 3대의 3호 돌격포로 소련군 T-34 7대를 격파하는 전공을 세웠다.
고생하면서 중대에 복귀했는데 헤어만 중대장이 외쳤다.
"잘했다!! 조만간 더 중요한 임무를 하게 될 것 이다!!"
오토 일행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다음 날, 어마어마한 규모의 기갑 부대가 판처카일(전차 쐐기대형)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이 쐐기 대형의 제일 선두에는 티거와 판터가 자리잡고 있었고, 3호 전차, 4호 전차가 그 뒤를 따르고 있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광경이었다. 수 많은 전차들이 연기와 흙먼지를 내뿜으며 소련군의 강력한 방어선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다.
트으응 트드등 트드드드등
그리고 소련군의 포병대는 이 독일군의 전차들을 향해서 엄청난 화망을 형성하고 있었다. 문 두드리개라고 불리는 작은 구경의 대전차포와는 비교가 안되는, 76.2mm 대전차포가 일제히 독일군의 쐐기 대형을 향해 불을 뿜고 있었다. 능선 너머에서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있는 대전차포들이 번갈아가며 불꽃을 뿜고 있었다.
쿠르릉 쿠르르르릉
거인이 방귀를 끼는 듯한 천둥 소리가 계속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군의 전차 부대는 계속해서 진격했다. 그럴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소련군 포병대가 강력한 탄막을 퍼붓는 것은 독일군의 전차 부대를 대전차 지뢰밭으로 유인하기 위한 전술이었다. 포격을 피하여 이동했다가는 대전차 지뢰밭 한가운데에 전차들이 기동불가가 된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포격이 거세도 계속 진격해야 했던 것 이다.
오토 일행의 3호 돌격포 3량은 쐐기 대형 뒷부분에서 전차 부대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집행유예 부대원들이 3호 돌격포와 함께 앞으로 전진하고 있었다. 티거, 판터가 대전차포와 소련군의 전차들을 격파할 것 이고, 오토 일행은 3호 돌격포를 이용하여 소련군의 강력한 콘크리트 토치카를 격파해야 할 것 이었다.
이제 스탈린의 오르간도 하늘을 향해 비스듬히 로켓포를 발사하고 있었다.
구오오오 구오오오 구오오오 구오오오
오토 일행의 3호 돌격포들은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했다. 좀머는 팬티에 똥오줌을 지린 상태였다.
"으아아아악!!!!"
그 날 오토 파이퍼는 일기에 이렇게 적는다.
[전술은 전혀 모르는 이 좆같은 망할 놈의 집행유예 장교들때문에 뒤지게 고생했다. 그렇게나 독일 제국을 위해 이 한 몸 다바쳐 싸웠는데 어떻게 독일 제국군이 나한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3량의 3호 돌격포 만으로 많은 수의 T-34를 격파하는데 성공했고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소련군의 토치카를 격파하는 것에 성공했다. 내가 부대에 복귀만 한다면 일단 그 헤어만 중대장 시발 새끼부터 가만 안 둘 &%$*@]
21세기, 한스 파이퍼의 후손인 루카 파이퍼는 오토 파이퍼의 일기장을 보다가 덮었다. 집행유예 부대에 들어가서 고생을 하는 오토 파이퍼에게 전혀 동정심이 들지 않았다. 루카는 자신의 군사 유투브 채널을 지울까 말까 고민하고 있었다. 루카는 자신의 선조 오토 파이퍼의 회고록을 읽고는 역겨운 생각이 들었던 것 이다.
그 때, 아나스타샤가 들어왔다.
"뭐해?"
아나스타샤는 루카의 책상 위에 놓인 오토 파이퍼의 회고록을 집어들었다. 루카가 말했다.
"안 읽는게 좋을거야."
아나스타샤는 오토 파이퍼의 회고록이 궁금했던터라 회고록 책장을 넘겼다.
"나도 전쟁 영웅 회고록 읽어보고 싶단말야."
루카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그 자는 전쟁 영웅이 아니야. 구역질나는 쓰레기일 뿐이지."
아나스타샤가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루카를 바라보았다. 결국 루카는 모든 사실을 털어놓았다. 아나스타샤는 말이 없었다. 루카가 말을 이었다.
"내 조상은 너희 민족에게 쓰레기같은 짓을 했어. 이혼하고 싶으면 이혼할게."
아나스타샤는 루카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전혀 놀랄거 없어. 인간은 다 사악하니까."
'???'
"하지만 네 모든 선조가 그런 것은 아니잖아. 그 엠마한테 준 결혼반지 말이야. 십자군 전쟁때 네 조상이 이슬람 여인을 구해주고 보답으로 받은거라며?"
아나스타샤의 말이 옳았다. 레오폴트 파이퍼가 십자군으로 원정했을때 이슬람 여인을 구해준 적이 있었다. 그 여인은 말도 통하지 않았지만 레오폴트 파이퍼에게 자신의 반지를 선물했다. 그리고 그 반지는 파이퍼 부인에게 대대로 내려오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졌을때조차도 그 반지만은 팔지 않았던 것 이다. 루카가 말했다.
"나는...절대로 그러지 않을거야."
아나스타샤가 웃으며 루카를 안아주었다. 그 날 루카는 아나스타샤에게 조심스럽게 입을 맞추었다. 친구로 지내면서 이 둘은 서로에게 늘 설레고 있었다. 오히려 친구라서 더 조심스러웠던 것 이다. 하지만 입을 맞춘 순간 루카는 전기가 흐르는듯한 짜릿함을 느꼈다. 루카는 아나스타샤의 부드러운 팔이 자신의 목을 감싸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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