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고아
한스는 사임한 이후에도 보안이 철저히 유지되는 호텔에서 몇 장성들과 만남을 가졌다. 쿠데타를 일으키려고 한다는 오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이런 모임은 비밀로 유지해야 했다.
일본은 현재 극동에서 방어태세로 전환한 상태였다. 정보에 의하면 일본군은 현재 극동에서는 최대한 병력을 소모하지 않고 있었고, 조만간 휴전 협상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또한 프랑스에서는 계속해서 극우 민족주의가 겉잡을 수 없게 커지고 있었다.
'일본은 우리가 프랑스와 전쟁을 하기를 원할 것 이다...소련과의 전쟁이 끝나고 우리가 프랑스를 상대로 승리하면 일본은 인도차이나 반도의 식민지를 점령하고 그 자원과 노동력으로 영토를 확장할 수 있을테니..물론 그렇게 되면 양키 새끼들은 태평양 패권의 위협을 느낄 것 이고 이는 방공연합(독일, 이탈리아, 일본 동맹)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현재 미국은 전쟁으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고 있었고, 반전 여론이 대세였다. 하지만 일본이 인도차이나 반도로 진출해서 태평양에 위협이 된다면 달라질 수도 있었다. 그렇게 머리를 굴리던 한스는 그 날, 20년도 더 전부터 함께 싸웠던 동료이자 현재 교관으로 근무하고 있는 헤이든을 만났다. 한스가 헤이든에게 물었다.
"거너 그 녀석은 잘 지내고 있는가? 통 연락이 안되더군."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전우회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다음 날, 헤이든이 한스에게 거너가 살고 있는 집 주소를 가르쳐주었고, 한스는 거너의 집을 방문해보기로 했다. 한스는 집 주소를 확인했다.
'이렇게 작은 집에서?'
한스는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거너가 나오더니 한스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아...안녕하십니까!! 들어오십시오!!"
한스는 거너를 따라 집으로 들어갔다. 집은 그야말로 돼지 우리가 따로 없었다.
'이...이럴 수가...'
거너가 말했다.
"집이 지저분하죠?"
보아하니 거너는 가족도 없이 혼자 살고 있었다. 나름 취직을 하고 결혼도 하고 자식도 있었지만 몇 년 전에 그만두고 완전히 폐인처럼 살다가 이혼당했던 것 이다. 거너의 집에는 여기저기 술병이 놔뒹굴고 있었다. 거너는 그래도 오랜만에 옛 전우가 놀러왔다고 기분이 좋아보였다.
"오실 줄 알았다면 슈바인학센이라도 준비해두는건데 말입니다!"
한스는 거너가 왜 이 꼴이 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지만 굳이 말은 하지 않았다.
"이보게 거너. 지금 신병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교관이 필요하네."
"하지만 전쟁은 이제 늦어도 한 달 안에 끝나지 않습니까?"
"이번 전쟁이 끝이 아닐 수도 있네."
그렇게 한스는 거너를 교관 자리에 소개시켜 주기로 했다. 그 날, 거너는 한스에게 기쁜 표정으로 경례를 했다. 한스가 외쳤다.
"한번 전차병이면 영원한 전차병일세!"
그리고 한스는 거너를 데리고 고급 매음굴에 가서 매춘부들을 주물렀다. 에밀라의 어머니인 뮐러 부인과 한스의 어머니인 엠마 파이퍼가 몸져누웠지만 한스는 그런건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렇게 한스는 매춘부들에게 돈을 뿌리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
'이등병 시절부터 독일 제국을 위해 죽어라 고생했는데 이 따위 대접이라니!!'
한편, 오토의 소대는 계속해서 시가전을 치루고 있었다. 언제 어디서 화염병이나 수류탄이 날아올지 알 수 없었다. 여기서 소련군은 독일군 전차 포신에 수류탄이 걸려있는 줄을 걸어놓고 도망가서 전차의 주포를 망가뜨리는 수법을 쓰고 있었다. 오토는 6시 방향 관측창을 바라보았다. 오토 소대는 페를라스카 보병 소대의 엄호를 받고 있는데 망할 놈의 페를라스카 새끼가 말도 없이 먼저 후퇴해버린 상태였다.
'이 시발놈!!!'
보병 소대의 엄호 없이 계속 진격하는 것은 무리였다. 오토가 무선으로 자신의 소대에게 명령을 내렸다.
"27 확인점으로 후퇴한다!"
그렇게 오토의 소대 티거들은 모두 후퇴했다. 오토는 언제 어디서 소련군이 튀어나와서 화염병을 던질지 알 수 없었기에 전차장 해치를 열어두고 MP40를 들고는 관측창을 살폈다.
'시발놈들...화염병 던지기만 해봐라!!'
오토는 팽이처럼 고개를 돌리며 360도 모든 방향의 관측창을 계속해서 확인했다. 소대가 모두 안전하게 철수하고 오토는 페를라스카 소대장에게 이에 대해 항의했다.
"말도 없이 갑자기 보병만 후퇴하면 어쩌라는 것이오!!"
페를라스카 소대장이 외쳤다.
"후퇴한다고 수신호를 보냈소!!!"
오토는 페를라스카에게 주먹을 날리고 싶었다.
'도대체 언제 수신호를 보냈다는거야!!!'
하지만 어쨋거나 앞으로도 계속해서 보전 협동을 해야했기에 오토는 화를 억눌렀다. 솔직히 말해서 하이에가 소대장일 때가 훨씬 편했다.
지금 독일군도 부상자가 많이 나오고 있었고, 들것이 부족했기 때문에 카페트나 커튼을 이용하여 부상병을 운반하고 있었다. 오토는 전차를 점검한 다음, 전방 쪽에 독일군 보병들이 점거한 주요 건물로 걸어갔다. 이 건물은 울타리로 둘러 쌓여 있었고, 보병들은 이 울타리 중간 중간에 널빤지를 한칸씩 때놓은 상태였다. 보병들은 그렇게 울타리가 때인 곳에 총을 거치해두고 사격을 하고 있었다.
탕! 타앙! 탕!!
박격포 팀이 박격포를 조준하며 유선으로 관측팀과 연락을 주고받고 있었다. 현재 박격포 팀은 소련군이 주요 거점으로 쓰고 있는 건물을 향해 박격포를 정확히 발사해야 했다.
관측팀이 박격포 팀에게 연락했다.
"일단 한 번 쏴봐!!"
"발사!!!"
"하나 둘 셋!!!"
콰광!!!
그렇게 발사한 다음 박격포 팀이 전화로 물었다.
"얼마나 더 좌측으로 가야해!!"
"700 정도!!!"
"알았다!!! 다시 발사하겠다!!!"
박격포 팀은 다시 박격포를 발사했다.
"발사!! 둘 셋!!!"
콰광!!!"
"가까워졌다!! 200 정도 더!!"
이 광경을 지켜보는 오토 또한 똥줄이 탔다.
'제...제발!!!'
"발사 둘 셋!!!"
콰광!!!
전화기에서 정찰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확히 맞췄어!! 정확해!!! 존나 멋져!!!"
박격포 팀은 모두 이 광경을 보고 기뻐했다. 오토는 지붕 위로 올라간 다음, 굴뚝 뒤에 엎드리고는 시가지 지형을 살폈다. 앞으로 이 구역으로 전차 부대가 진출하기 위해서는 모든 지형을 살펴두어야 했다.
'저기 잔해 더미에 대전차포가 엄폐하기 좋겠군...'
오토는 잠시 뒤, 1층으로 내려왔다. 창문 밖에서는 병사 한 명이 소총을 들고는 급히 어딘가로 걸어가고 있었다.
오토가 옆에 있던 병사에게 물었다.
"여기 소대장 어디있.."
쿠우웅!!!
육중한 폭발음과 함께 유리창이 와장창 깨졌고 오토와 옆에 있던 병사는 뒤로 발라당 자빠졌다.
'!!!!!'
건물 앞에 박격포가 정확히 떨어진 것 이었다. 오토는 겨우 정신을 차리고 일어났다. 몸 위에는 온갖 파편들이 우수수 떨어진 상태였다.
'으...으아아...'
다행히 귀는 멀쩡했다. 오토는 박살 난 창문 밖을 살펴보았다. 아까 전에 소총을 들고 가던 녀석은 다행히 무사해보였다. 만약 그 녀석이 10초만 늦게 지나갔어도 박격포에 산산조각 났을 것 이었다.
'좆될 뻔했네...'
오토는 자신의 소대원들이 쉬고 있는 건물로 돌아갔다. 이미 다들 전차 정비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오토의 소대에 들어온 신병들이 가족에게 편지를 쓰며 쑥덕거렸다.
"엄마한테 뭐 보내달라고 할까?"
"난 책 한 권 보내달라고 했어!"
마티아스가 신병들에게 말했다.
"무슨 책을 보내달라고 하냐? 담배나 보내달라고 하게!"
"저는 담배 안 핍니다!"
"담배 안 펴도 여기선 담배가 돈이네!"
다들 그렇게 편지도 쓰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고, 오토도 피곤했기에 잠이 들었다. 한참을 자는데, 슐레프 중대장의 대노한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이게 뭐하는 상황인가!!!"
다들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슐레프 중대장이 호통을 쳤다.
"이 따위 정신 자세로 모스크바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내가 몇 번이나 전화를 했는데 전화를 못 받나?"
'저..전화는 안 왔는데?'
오토의 소대가 쓰고 있는 전화기는 작동하지 않고 있었다. 통신병을 보내어 확인해봤는데, 놀랍게도 통신선이 절단되어 있었다.
"이...이건 분명 누가 일부러 절단한겁니다!!"
오토와 전차병들은 식은 땀이 줄줄 흘렀다. 마침 근처에 러시아 민간인들이 대피한 대피소가 있었다. 오토는 열 받아서 이 대피소의 문을 박차고 들어간 다음 민간인들을 유심히 살폈다. 노인, 어린 아이, 여자로 이루어진 이 민간인들은 벌벌 떨고 있었다. 오토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이들을 찬찬히 노려보았다.
'어떤 새끼야!!!!'
오토가 러시아어로 말했다.
"잠시 수색 좀 하겠습니다!!!"
오토는 민간인들의 짐을 뒤지기 시작했다.
'분명 가위로 절단했을거다!!!'
하지만 가위나 칼은 나오지 않았다. 오토는 9살 정도로 되어보이는 꼬맹이를 노려보았다.
"나랑 이야기 좀 할까? 아아악!!!"
슐레프 중대장이 오토의 귀를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민간인들에게 사과하고는 오토를 데리고 나갔다. 오토는 억울해 죽을 지경이었다.
"분명 저들 중에 통신선을 절단한 자가 있을 것 입니다! 누가 이런 짓을 저질렀는지 알아내야 합니다!!"
슐레프 중대장이 말했다.
"이보게 파이퍼! 러시아 땅은 광활하네! 이들의 민심을 얻지 못한다면 모스크바 전투에서 승리해도 이 넓은 땅을 다 점령할 수는 없네!"
잠시 뒤, 슐레프 중대장은 자신의 중대 장교들과 2중대장 마흐땅 중대 장교들과 다 같이 모여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슐레프 중대장이 말했다.
"현재 프랑스의 움직임을 보면 두 번째 전쟁을 준비해야 할 수도 있네."
게오르크가 입방정을 떨었다.
"그 망할 놈의 프랑스 놈들은 사랑 노래나 부르는 얼간이들이라 6주 안에 정리할 수 있습니...악!!"
슐레프 중대장이 게오르크의 귀를 잡아당겼다. 참고로 마흐땅 중대장이 프랑스인이었던 것 이다. 마흐땅 중대장은 세계대전 당시 부모님을 모두 잃은 전쟁고아였고, 독일군 장교가 마르셀 마흐땅을 입양하여 독일의 군사 학교에 보내준 것 이었다. 오토는 마르셀 마흐땅의 눈치를 보았다.
'그러고 보니 혹시 프랑스와 전쟁나면 마흐땅 대위님은 어떻게 되는거지?'
볼프강이 쑥덕거렸다.
"그러고보니 스테판도 절반은 프랑스인이잖아!"
블라덱이 수근거렸다.
"그래도 이런건 아버지쪽이 더 중요..악!!"
헬무트가 블라덱의 허리를 쿡 찔렀다.
'이런 눈치도 없는 병신들...'
그 날 식사를 마치고 마르셀 마흐땅 중대장은 자신의 중대 지휘소로 갔다. 조만간 프랑스와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소식은 마흐땅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마흐땅은 어린 시절 기억이 거의 나지 않았다. 부모님에 대한 기억조차도 어렴풋했고 현재 마흐땅 대위는 프랑스에 아는 사람이 전혀 없었다.
어린 시절 부모님이 돌아가셨을때 마흐땅은 도대체 현재 상황이 어떻게 된건지 몰랐기 때문에 울지도 못했다. 그냥 독일인이 초코바를 주면 좋아했고, 자신도 전차를 타고 싸우고 싶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고아가 된 마흐땅을 군사학교에 보내준 것도 독일인 장교였고, 마흐땅은 군사학교에서 독일인들하고 같이 성장했다. 16살이 될 무렵, 마흐땅은 전쟁 고아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그리고 마흐땅은 자신이 운이 정말로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마흐땅은 군사학교에 다니다가, 주말에 외출을 했을때 우연히 한 장례식을 보게 되었다. 주름이 패인 중년의 남성이 자신의 어머니의 관 앞에서 흐느껴 우는 것을 보았지만, 마흐땅으로서는 그 감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마흐땅은 그제서야 자신의 부모님이 돌아가셨을때도 자신이 슬퍼하지 않았다는게 이상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상황이었다. 부모님에 대한 기억도, 감정도 남아있지 않았다. 다만 마흐땅에게는 현재 티거 중전차 중대장이라는 직위와 기사 철십자 훈장이 있었다.
'쓸데없는 생각이다...'
마흐땅은 현재 전선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쓰기 시작했다.
한편, 소련군 나타샤 또한 동료들과 함께 모스크바 인근 지역을 방어하기 위해 끌려간 상황이었다. 나타샤 또한 명령에 의해 삽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지만 하필이면 나타샤가 있는 곳은 나무 뿌리가 있어서 파기 힘들었다.
'뿌리가 있는데 어떻게 파라는거야...'
한 장교가 외쳤다.
"땅을 파기 어려운 곳에는 모래 주머니라도 얹어놔라!!"
잠시 뒤, 나사탸, 크세니야 등등 동료들은 고생한 끝에 어느 정도 참호를 판 상태였다. 그런데 고약한 성격의 장교가 와서는 호통을 쳤다.
"이런 얼간이들!! 일직선으로 파지 말고 지그재그로 파라!!"
'미리 말을 해주던가!!'
그렇게 죽어라 고생한 끝에 나타샤, 크세니야, 류드밀라, 그 외 여군들은 참호를 어느 정도 파는 것에 성공했다. 이들은 다섯 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방어 호에 앉아서 모두 다같이 점심을 먹었다. 손에는 물집이 생기고 피곤해서 뒤질 지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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