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를 파이퍼 징병되다
카이저 빌헬름 물리학 연구소에서 우라늄 프로젝트를 연구하는 천재 물리학자 카를 파이퍼는 오늘도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카를은 아침 9시부터 오후 1시까지 4시간 동안 집중하여 연구를 한 다음, 점심을 먹고 코카콜라를 먹고는 연구실로 돌아와서 자신의 노트, 물품이 제자리에 있는지 체크했다. 그리고는 청소부 아주머니가 몇시에 출근하는지, 혹시나 자신의 노트에 지문이 찍히지 않았는지, 자신의 컵을 건드리지 않았는지 확인했다. 참고로 카를은 자신의 컵에 자물쇠를 잠가 둔 상태였다.
'이상 없음...'
그 때 직원이 카를 파이퍼에게 우편물을 가져왔다.
"우편물입니다."
카를은 동료 과학자들에게 온 우편물을 제외하고는 모조리 직원에게 다시 건네주었다.
"이건 가져가십시오."
직원이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이건 읽어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징집 영장입니다."
카를은 코웃음을 쳤다.
"풉! 현재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제가 징집된다구요? 실러같은 약해빠진 녀석들이야 과학을 포기하고 군대로 도피했지만 저는 다릅니다. 뭔가 서류 상에 오류가 있을 겁니다."
카이저 빌헬름 물리학 연구소의 직원은 난감한 표정으로 징집 영장을 가지고 갔다. 그로부터 얼마 뒤, 카를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연구를 시작했다. 그런데 어디선가 문이 열리고 저벅저벅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카를이 미간을 찌푸리고 펜을 든 손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내가 집중하는 오전 시간에는 발소리 내지 말라고 했는데!!!'
카를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 때, 경찰들이 카를에게 서류를 내밀며 말했다.
"파이퍼씨, 전쟁 상황에서 징집 거부로 체포 영장이 내려왔습니다."
뒤늦은 소란에 하이젠베르크가 달려와서 경찰에게 상황을 설명했다. 현재 카를 파이퍼는 중요한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기 때문에 징집을 면제받았다고 했다. 경찰이 귀찮은 투로 물었다.
"증빙 서류가 있습니까?"
"없습니다."
옆에 있던 조금 더 친절해보이는 경찰이 말했다.
"서류 상 오류가 있어서 징집 영장이 왔더라도 일단 이에 대해서 의의제기 신청을 하셨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행정상으로는 전쟁 상황에서 징집 거부로 체포 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카를 파이퍼는 병신같이 징징거리면서 경찰 둘에게 끌려가며 울부짖었다.
"으허엉...으허어어엉...억울합니다!! 교수님 어떻게 좀 해주십시오!!!"
하이젠베르크가 말했다.
"내가 최대한 인맥을 동원해서 상황을 신속하게 해결해보겠네. 일단 진정하게."
그렇게 카를이 구치소에 넣어지고, 카를을 체포헸던 경찰이 중얼거렸다.
"이 자가 강철 사냥꾼의 아들이라고?"
하이젠베르크의 확인 결과, 카를은 징집 면제를 위한 서류를 내지 않았던 상황이었다. 물론 우라늄 프로젝트에 참가한 젊은 과학자들은 징집 면제를 해주기는 하지만, 카를 파이퍼가 추가 서류를 제출하고 형식적인 면접을 봤어야 하는 것 이었다. 결국 카를은 SS 훈련소로 끌려가게 되었다. 카를은 슈탈헬름을 쓰고 군복을 입고 소총을 들고 철조망이 쳐진 진창을 통과하는 훈련을 받았다. 좆같은 교관이 외쳤다.
"빨리!! 더 빨리!!"
카를이 철조망 아래를 통과하면서 속으로 울부짖었다.
'오전은 연구하는 시간인데!!!'
카를은 머리 속으로 열심히 물리학을 연구했다. 그 때, 카를은 철조망에 손가락이 긁혔다.
"아악!!! 내 손가락!!! 내 손가락"
카를은 훈련이 끝나고 교관한테 갔다. 교관이 기분나쁜 표정으로 카를을 보며 물었다.
"뭔가!!"
"손가락이 긁혔습니다!!"
교관의 얼굴이 꿈틀거렸다. 카를이 속으로 생각했다.
'파상풍에 걸리면 내 연구에 지장을 받는다!! 지금 당장 치료를 받아야 한다!!'
잠시 뒤, 카를은 교관에게 특별히 개인 훈련을 받았다.
"엎드려!!"
카를은 눈과 진흙이 섞인 더러운 진흙탕 속에 재빨리 엎드려야 했다.
철퍼덕!!
그렇게 고된 훈련을 끝나고, 카를과 동료들은 샤워를 해야 했다. 교관이 외쳤다.
"샤워는 30초 내에 마친다!!"
교관이 가르쳐준 샤워 루틴은 그냥 물을 몸에 묻히고 비누로 가장 더러운 부분만 대충 문지르고 서둘러 물로 행구고 수건으로 재빨리 닦는 것 이었다. 카를은 결벽증이 있어서 반드시 자신의 샤워 루틴이 있었기에 이는 고역이었다. 느려터진 카를을 보며 교관이 외쳤다.
"이런 느려터진 놈 같으니!! 당장 나와!!"
엄청나게 고된 훈련이 끝나고, 카를은 막사에 누웠다. 어떻게던 펜과 종이를 꺼내어 연구를 하고 싶었지만 취침을 해야 했다.
"취침!!!"
불이 꺼졌다. 카를은 머리 속으로 물리학을 연구하며 애써 자신을 위안했다.
'훈련기간 동안 어떻게던 행정적 문제는 해결될거다!! 교수님이 다 알아서 해주실거다!!'
하지만 카를은 결국 훈련이 끝날때까지 행정적 문제가 처리되지 않아서 결국 동부전선으로 사는 열차에 타게 되었다. 어머니 에밀라와 여동생 마야가 카를을 찾아서 열차역으로 왔다. 카를이 울부짖었다.
"엄마!! 엄마!! 뭔가 잘못됐어!!!"
지금 동부전선으로 가는 군인들은 다들 가족과 껴안고 마지막 이별을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카를은 끌려가기 싫어서 울부짖었다.
"교수님이 해결해주신다고 했는데!!"
에밀라가 눈물을 흘리며 카를에게 말했다.
"금방 처리 될거야. 조금만 기다려."
상황을 잘 모르는 어린 마야가 외쳤다.
"카를도 군대 가는거야?"
카를이 울부짖었다.
"난 못 가!! 난 못 가!! 난 중요하게 해야할 연구가 있다고!! 다른 사람들은 다 죽어도 되는데 나는 죽으면 안된다고!!"
다른 병사들이 카를을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잠시 뒤, 기차가 역을 출발하기 시작했다. 카를이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고 울부짖었다.
"으아악!! 살려줘!! 살려줘!!!"
그렇게 카를 파이퍼는 미하엘 비트만이 있는 SS 101 중전차 대대와 같이 싸우고 있는 보병 부대로 들어가게 되었다. 카를이 중대장에게 전속명령서를 제출하며 외쳤다.
"이병! 카를 파이퍼! 중위님! 전속을 신고합니다!"
"가서 쉬게."
카를은 동료들과 함께 눈밭에 참호를 파기 시작했다. 하지만 카를은 워낙 폐급이었던 탓에 다들 카를에게는 일을 시키지 않고 내버려두었다. 카를은 아무도 자신에게 일을 시키지 않자 편함을 느끼면서 참호 속에 기어들어가서 쉬었다. 카를과 같은 분대원들이 수근거렸다.
"강철 사냥꾼 아들이고 그 오토 파이퍼랑 쌍둥이 형제라던데?"
"저 폐급이?"
"뭐 지가 중요한 연구를 해야한다며 조만간 돌아갈거라고 하던데."
"빨리 돌아갔으면 좋겠네. 저런 녀석은 부대 전체에 피해만 준다고."
카를은 그렇게 참호 속에서 퍼질러 자다가 눈을 떴다.
"흠냐흠냐"
그런데 눈을 떠보니 허연 천장 밖에 안 보였다. 자는 사이에 눈이 참호를 뒤덮은 것 이었다. 카를은 완전히 정신이 나가서는 허우적거리며 눈을 헤치고 나갔다.
"으아악!! 살려줘!! 으아악!!"
카를은 공황 발작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잠시 뒤 분대장님한테 얻어맞고 기절했다가 벌벌 떨면서 불을 쬐었다.
"으갸갸...으갸갸갸..."
카를의 선임이 물었다.
"이봐! 자네 아버지가 강철 사냥꾼이라는게 정말인가?"
"네!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자네 또한 훌륭한 군인이 될 수 있겠군! 근데 내가 궁금했던게 있는데 말일세. 자네 아버지랑 에르빈 롬멜 장군이 싸우면 누가 이기나?"
"잘못 들었습니다?"
"아니, 대인 격투로 붙으면 누가 더 잘 싸울거 같나?"
다들 궁금한 얼굴로 카를을 쳐다보았다. 카를이 얼빠진 표정으로 말했다.
"총 있는 쪽이 이기겠죠?"
"이런 얼간이 같은 놈! 둘 다 총 있으면 누가 이기냔 말이야!"
"총알 한 발이라도 더 들어있는 쪽이요."
다들 한심한 표정으로 카를을 쳐다보았다. 아무턴 카를은 부대 내에서 아무도 터치 안하는 존재가 되었고, 카를은 그게 매우 편했다. 카를은 오도독 쇼카콜라 초코렛을 씹어 먹으면서 행정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서 돌아가게 되거든 이번 사건 관련된 자들에게 소송을 걸기로 했다.
'망할 공무원들 때문에 내 귀중한 시간을 빼앗겼어. 이건 단순히 나만 손해본게 아니라 물리학 전체가 손해를 본거야!'
그런데 소련군의 대공세가 시작되었고, 결국 카를은 동료들과 함께 방어선에서 최대한 소련군의 충격을 흡수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쿠르릉 쿠릉 쿠르르르릉
카를은 참호 속에서 소총을 쥔 채로 대기했다. 저 앞에서는 소련군의 강력한 기갑군이 몰려오고 있었다.
'으...으아아아!!!'
고참병에 카를의 어깨를 치며 외쳤다.
"무릎 앉아 새꺄!!!"
카를은 참호에 무릎을 꿇었고, 그 순간 총알이 카를의 슈탈헬름 5센치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카를은 괄약근이 풀리면서 팬티에 똥오줌을 지렸다.
'으악!!!'
쿠릉 쿠르르르릉
이제 소련군의 전차들은 각자 자리에서 정지한 상태로 주포에서 불을 뿜기 시작했다.
펑!! 퍼엉!! 펑!!!
"퇴각!! 퇴각한다!!"
카를은 참호의 대피로를 따라 허리를 숙이고 동료들을 따라 달려갔다.
"헉...허억...허억!!"
하지만 카를은 그만 발을 헛디뎌서 넘어졌고, 수 많은 군화발이 카를의 등을 밟고 달려갔다.
퍽! 퍼억! 퍽! 퍼억!
"악!! 살려줘!! 으아악!!!"
카를은 발 한쪽이 삐어버린 상태였다. 뒤늦게 카를은 겨우겨우 일어나서 교통호를 따라 달려갔다. 그런데 이미 소련군의 전차 궤도 소리가 가까워진 상태였다. 육중한 T-34 전차의 궤도가 방어선을 넘어오고 있었다. 카를은 교통호에 엎드린 다음 죽은 척 했다. T-34의 궤도 소리가 점점 가까워져 오고 있었다.
트으으 트으으으으으 트으으으으
엄청난 엔진 소리와 궤도 소리와 함께 T-34는 카를로부터 고작 7m 떨어진 곳에 있는 참호를 건너고 있었다. 궤도에서 눈과 먼지가 섞인 시꺼먼 잔해들이 참호 속으로 우수수 떨어졌다.
'&@!%*(&!@($&(@!!!!!'
트으으 트으으으으
T-34의 포탑이 이리 저리 선회하고 있었다. 만약 생존자가 발견되면 시체를 찾지 못할 정도로 분쇄될 것이 분명했다. 카를은 더 이상 지릴 똥오줌도 없었다.
"끄...끄아...끄어...끄억..."
T-34 뒤에 소련군 병사들이 자세를 낮추고 따라오며 참호 속으로 수류탄을 집어 넣으며 정리하고 있었다. 카를은 자신이 있는 곳으로부터 고작 20~30m 떨어진 곳에서 수류탄이 폭발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펑!! 퍼엉!! 퍼엉!!
소련군의 T-34 전차들은 그냥 이 방어선을 지나가지 않고, 전진했다가 후진했다가를 반복하며 꼼꼼하게 살피고 있었다. 그 때, 무언가가 번쩍였다.
쿠과과광!!!!
T-34의 뚜껑이 날아간 다음, 카를은 쉬잇하며 포탄이 날아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쉬이잇!!
미하엘 비트만의 티거가 T-34의 티거 포탑을 날려버린 것 이었다. 곧이어 SS 101 중전차 대대와 소련군 전차들간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펑!! 퍼엉! 쿠과광!!!
카를은 절뚝거리며 완전히 정신이 나간 상태로 교통호 속을 달려갔다. 순간적으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저 멀리 항공기들이 폭탄을 떨구고 기총을 소사하는 광경이 보였다. 그렇게 카를은 무사히 다음 방어선으로 넘어갔으나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린 상태로 응급 치료소 쪽으로 보내졌다.
"흐에에...헤헤헤...헤헤헤..."
한편, 나타샤 일행은 스페츠나츠에서 새 명령이 떨어지기 전까지 대기하고 있었다. 나타샤는 사탕을 까먹으며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 좆같은 특수 부대 임무를 그만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이러다가 분명 죽을거야!!'
나타샤는 혼자서 초코바를 씹어먹으며 동료들이 있는 방 근처에 복도를 따라 걸어갔다. 근데 방 안에서 류드밀라와 안나가 수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타샤가 너무 불쌍해."
"크세니야도 그렇게 되어버렸고 나타샤라도 잘 살아야할텐데...스페츠나츠 임무라니..."
"근데 언젠가는 말해야하지 않을까?"
"나...난 절대 말 못해."
"그냥 살아있다고 생각하는게 좋을...헉!"
나타샤는 문을 열고 류드밀라와 안나가 하는 이야기를 모조리 듣고 있었던 것 이다. 잠시 뒤, 류드밀라, 안나, 그리고 파블리첸코, 뽈리나, 키라, 옥사나, 마가리타가 광분하는 나타샤를 말려야 했다. 나타샤의 울음 소리가 건물 전체에 울려 퍼졌다. 정치 장교 안토노프가 나타샤의 상태에 대해 보고서를 써서 스페츠나츠 임무에서 빼내주려고 했으나 이미 스페츠나츠에서는 새로운 임무를 내렸다.
스페츠나츠에서는 나타샤에게 크세니야가 사망했을때 있었던 독일군 기갑부대인 501 중전차 대대에 대한 정보와 각 소대장들의 사진을 서류로 보여주었다.
"이 자가 오토 파이퍼, 1소대장이다. 강철 사냥꾼이라고 불리는 한스 파이퍼의 아들이다."
나타샤는 멍한 표정으로 오토 파이퍼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스페츠나츠 측에서는 이번 일을 계기로 나타샤를 아주 잘 써먹을 수 있을거라 생각하고는 그 당시 발견된 크세니야의 시신에 대해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인민을 위해 복무하며 이번 작전을 반드시 성공시키게."
그렇게 나타샤 일행은 또 다시 독일군이 거주하는 시가지 쪽 침투 작전에 보내졌다. 계속된 스페츠나츠 부대 투입에 독일군은 민간인도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지 검문을 철저하게 했다. 결국 나타샤 일행은 부엌칼을 제외하고는 무기도 소지하지 않은채로 정보 수집 임무를 해야 했다. 나타샤 일행은 시가지 건물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리고 나타샤 일행 중에 가장 나이프를 잘 쓰는 키라가 부엌칼을 두꺼운 겨울 외투 안에 숨기고 인근을 정찰하고 있었다.
'지도나 명령서를 노획하는 것은 무리겠지?'
키라는 세탁물이 들어있는 바구니를 들고는 골목을 따라 걸어갔다.
- 작가의말
외교, 정치, 그 외 전략적인 부분을 공부하면서 연재하고 싶어서 앞으로 일주일 7일 연재는 힘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얼마 전처럼 한달 내리 장기 휴재 같은 휴재는 없습니다.)
Comment ' 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