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상황 브리핑 3
파일에는 최근에 다시 일본과 장제스 측이 교섭을 시도하고 있다는 보고가 있었다. 토마스에 주석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 있었다. [출처 : 중국 외교 자료] 참고로 이 당시 중국의 외교 문서는 암호가 완전히 다 뚫린 상태였기 때문에 90%의 확률로 믿을만한 정보라고 보면 된다.
'이건 일본이 남방으로 갈 수도 있다는 신호인가? 잉글랜드 놈들의 해군이 전세계에 흩어져있기는 하지만 일본이 모험을 할 가능성이 얼마나 될 것인가?'
지금 독일의 청색 작전에 대한 소문과 아울러 우크라이나 국민 정부 등 동유럽 국가들과 독일 제국의 동맹 관계가 공고해지고 있었기에 영국은 중동, 근동 쪽 병력을 강화하고 있었다. 영국 내부에서는 싱가포르 방위를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일부 있었지만, 극동은 중요성이 낮아진 상황이었다.
'1년 내에 일본이 남방을 기습적으로 친다면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모른다. 이는 계속 눈여겨 봐야겠군...'
한스는 발칸 반도에 관한 보고서를 읽기 시작했다.
'이번 공세가 마무리 되기 전까지 발칸에서는 아무 일이 없어야 할텐데...'
1941년 올해 공세가 끝날때까지만 제발 이탈리아가 뻘짓을 하지 않기를 한스는 간절히 바랬다. 현재 독일은 발칸에 최대한 직접적인 개입은 꺼리고 이득만 얻어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었다. 물론 발칸 국가에서 반독일 새력의 힘을 빼는 것이 좋겠지만, 그것 또한 독소전이 끝난 이후에 생각해볼 일이었다.
가장 큰 변수는 코민테른의 지지를 받는 발칸 반도의 공산주의 세력이었다. 발칸 반도 지형 특성 때문에 공산주의 게릴라들이 활동하기 너무 유리했다. 독일 제국은 발칸 반도의 치안 유지를 위하여 도움은 주고 있었으나 이들을 상대로 직접적인 공격은 하지 않고 있었다.
어떻게던 발칸에 새 전선을 만들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 스탈린은 발칸 쪽에 새 전선이 열리기를 바라고 있었고 코민테른 또한 발칸에 새 전선이 열리도록 온갖 공작질을 하고 있었다.
독일은 새 전선이 열리지 않는 것 뿐만 아니라 영국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도 발칸에 당분간 최대한 불개입할 작정이었다. 안 그래도 영국은 독소전에서 독일이 승리할 경우 지중해와 발칸에서 이탈리아의 이권이 커지는 문제에 대해 신경이 곤두선 상태였다.
영국 측에서는 발칸에 대한 독일의 입장을 알기 위해서 온갖 첩보전을 벌이고 있었다. 영국 첩보부가 발칸 반도에서 왕성한 활동을 한다는 것은 독일 쪽에서도 알고 있었고, 그들이 발칸에서 활개를 치도록 내버려두었다.
'영국 쪽 상황은...'
한스는 영국 해군에 관한 자료도 읽어 보았다. 영국은 해군 예산 문제로 인하여 1920년대 해군과 재무부의 치열한 갈등이 있었다. 만약 세계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했다면 영국 재무부가 자국 해군을 상대로 정치적 싸움에서 승리하고 해군 예산을 감축하는데 성공했을 것 이다.
하지만 세계대전이 무승부로 끝나고 독일이 일부 식민지를 보전하고 있었기에, 1920년대 영국 해군은 예산을 유지하는 것에 성공했던 것 이다. 그 당시 해군 예산에 대해서는 정치적으로도 많은 갑론을박이 있었다.
한스는 계속해서 페이지를 넘겼다. 그 다음 스크랩된 파일들은 큰 의미가 없었다. 히틀러가 우크라이나 국민 정부 수장과 회담을 하고 촬영한 사진이 크게 언론 보도가 되어 있었다. 뿐만 아니라 빌헬름 3세가 현 루마니아 국왕 카롤 2세와 회담을 한 사진 또한 실려 있었다. 이후 불가리아의 보리스 3세와의 만남도 예정되어 있다는 토마스의 메모가 적혀 있었다.
이렇게 언론에 대서 특필된 이유는 뻔했다. 독일이 동유럽을 집어삼키고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불가리아 등을 자국의 속국으로 만들려고 한다는 서방의 비난을 회피하기 위한 것 이었다. 뿐만 아니라 터키 등 다른 중립국들로 하여금 독일과 동유럽 국가들과의 친분을 과시하는 목적도 있을 것 이다.
기사에 따르면 회담 분위기는 무척 화기애애한 것으로 보였다. 얼마나 공세가 성공적이고 전쟁이 빨리 끝날 수 있을지에 관련한 상투적인 대화가 끝나고 나면 치열한 외교 공방이 시작될 것 이다.
각국의 외교 사절들은 이번 전쟁에서 얼마나 자신의 병력이 희생했는지 정확한 수치를 모조리 암기하고, 관련하여 전문가들도 대동하여 1941년 공세 때 가능하면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고 최대의 지원을 받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이 끝나면 전리품에 대해 협상이 이루어질 것인데, 반드시 이번 전쟁에서 흘린 피에 대한 대가를 받아야 할 것 이다.
그리고 회담 장소 근처에는 영국의 첩보 요원과 프랑스의 첩보 요원, 소련의 첩보 요원 등이 도청기를 설치해두고 사람을 심어두었다. 이번 회담에서 비공식적으로 오고 갈 협약에 대해서 어떻게던 정보를 알아내야 할 것 이었다.
뒷페이지로 갈수록 파일에 첨부된 서류들의 내용은 중요도가 떨어졌다. 지금 전쟁중이라 히틀러 내각의 지지율은 아직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한스는 사실 독일 국민들이 이번 전쟁은 그닥 원치 않았다는 것을 내심 잘 알고 있었다. 독일 국민들 중에는 한스 파이퍼를 전쟁광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한스는 그들이 멍청해서 자신을 비난한다고 생각했다.
'일반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군사적, 지정학적 동기가 있는 법이지...그들의 일자리를 위해 독일 산업이 정상적으로 굴러가기 위하여 꼭 필요한 자원, 시장에 대해 일반인들에게 자료를 갖다주어도 일반인들은 그 숫자를 이해조차 할 수 없다.'
한스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자료들은 그냥 넘겼다. 그 때 한스 파이퍼 자신에 대한 내용이 눈에 띄었다.
'이건?'
OKW(독일 국방군 최고 사령부) 내부에서 한스에 대한 비판 여론이 있다는 보고서였다. 지금 한스가 감옥에 간 것은 누명을 쓴 것이라는 여론이 대세였는데, 한스의 반대파에서는 1940년 독소전 공세 실패에 대해서 한스 책임이 크다는 식으로 주장을 하고 있었던 것 이다.
'이 망할 새끼들이...'
한스는 반드시 1940년에 독소전을 벌여야 한다면서 수 많은 군 수뇌부와 정치인들을 설득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한스는 온갖 자료를 모으고 전문가들을 대동해서 발표를 했다. 육해공군 3군의 계획이 교환되는 중요한 회의가 있을때, 한스는 3명의 전문가와 방대한 양의 자료를 준비했다.
그 당시 한스는 소련군이 현재는 방어를 위한 배치이지만, 소련의 산업생산력과 자원을 고려했을때 소련이 마음만 먹으면 순식간에 공격을 위한 배치로 바뀔 수 있다는 것. 그 외에 소련을 상대로 예방적 전쟁을 치뤄야 하는 합당한 이유에 대해서 한스가 썼던 서류들은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였다.
그 때 OKW 내부에서도 전쟁에 반대하던 세력이 있었다. 아마 그 쪽 놈들이 지금 기회를 틈타 한스를 공격하고 있으리라.
'이 머저리 새끼들은 아무것도 모른다! 소련이 핀란드와 루마니아를 야금야금 먹으면 어떻게 될지! 발트해에서 소련의 패권이 커지고 결국에는 북해를 위협하게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소련은 명백히 발트해를 넘어 북해를 넘보고 있었던 것을 모른단 말인가? 물론 전쟁을 피하기 위하여 소련에 다 양보할 수는 있었겠지! 그렇게 된다면 독일 국민들의 필수적인 자원과 산업, 산업계가 물품을 팔 수 있는 시장을 소련에 완전히 뺏기게 된다!'
한스는 이를 바득바득 갈며 여러 군사적인 조언들을 적기 시작했다. 현재 독일에 있는 자원들의 양, 앞으로 수입 가능한 물자의 양 등을 고려해서 여러 메모를 함.군, 전술, 외교 등에 대하여 치밀한 군사적 분석을 썼다.
한스는 OKW(독일 국방군 최고 사령부)가 별개의 첩보 기관을 미국에 설치한 것을 알고 있었다. OKW는 독일 외무부를 신뢰하지 않았던 것 이다. 그리고 한스는 OKW를 신뢰하지 않아서 자기 나름대로의 라인을 구축한 것 이었다. 한스는 몇 년간 막대한 자금을 뿌려가며 미국 등에 연줄을 만들어둔 것이 뿌듯했다.
'머저리 같은 OKW 놈들...'
한스는 자신의 군사적 분석을 모조리 서류에 정리했다.
'조만간 출소하게 되면 이걸 정치적으로 이용해서 OKW에서 다시 내 입지를 다지는데 쓸 수 있을 것 이다!'
다음 날 다시 토마스가 면회를 왔고 한스는 토마스에게 그 서류를 주었다.
"이 문서를 누군가에게 뺏기느니 반드시 소각하시오."
토마스가 믿음직스러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각하!"
토마스가 면회를 끝내고 나가는데 간수가 토마스에게 말했다.
"이 교도소에서 가져나가는 모든 물건은 검문이 필요합니다.
토마스는 의심없이 간수에게 서류를 주었고, 간수는 토마스가 기다리는 동안 그 서류를 모조리 복사했다. 그 다음 간수는 서류 원본을 토마스에게 주고, 복사된 서류는 하인리히 힘러에게 보내졌다.
토마스는 아무 의심없이 자신이 돌려받은 서류를 암호화한 다음, 한스의 자택으로 가서 한스의 서재에 책장 뒷편에 있는 비밀 공간에 서류를 넣고 집 밖으로 나왔다. 토마스는 자신이 첩보원으로서 매우 훌륭하게 일을 잘했다고 생각하며 뿌듯해했다.
그리고 이 순간 힘러는 복사된 서류를 읽고 있었다. 한스의 자택을 들락거리던 친위대측 인물이 토마스에 대해 보고했다.
"그 자가 한스 파이퍼 저택 비밀 금고에 넣어둔 서류는 이 서류와 완전히 똑같은 내용입니다."
힘러는 서류를 읽으며 중얼거렸다.
'확실히 이건 도움이 되는군.'
힘러는 군사적 능력이 부족했지만 군사령관으로서의 야망이 있었기에 한스가 작성한 서류는 매우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이었다. 힘러의 부관이 물었다.
"파이퍼 그 작자가 토마스라는 얼뜨기를 통해서 다시 정보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힘러가 말했다.
"그냥 주게. 그 멍청한 놈은 워싱턴에서 별 영향력도 없는 머저리 같은 정치인에게 사기를 당하고 거액의 외화를 뿌리고 있었네. 자기가 군사적으로 능력이 있다고 뭐라도 되는줄 아는데 우스울 뿐이군."
"네! 알겠습니다!"
한스가 고용한 얼뜨기 첩보원 삼총사 토마스, 페터, 헤르만은 한스를 위해서 열심히 외교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들은 한스가 해외에 갖고 있는 연줄을 통하여 정보를 수집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이는 힘러 쪽에서 준 정보들이었다. 이렇게 한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극비]가 쓰여진 독일 외무부 측 일부 정보를 앞으로도 얻게 되었다.
힘러가 서류를 계속 읽다가 부관에게 물었다.
"카를 파이퍼는 전역시키게. 그 미끼는 이제 필요없네."
그렇게 힘러의 명령에 의하여 카를 파이퍼는 친위대에서 의병 제대를 하게 된 것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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