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터리 삼총사 첩보전
미국 워싱턴 주재 독일 대사관에서 한스 톰젠 대리 대사는 독일 외무성으로 보낼 전문을 작성하고 있었다.
[황제 폐하의 연설을 영어로 번역하고, 미국의 여러 인사들에게 알리며 이를 최대한 홍보하고 있음. 또한 3일 전 총리의 의회 연설을 영어로 번역하고 홍보하고 있음. 이를 인쇄하는데 들어간 금액은 %@ 달러이며 아래와 같이 청구하겠음.]
[고립주의 진영 언론사에 협상을 하느라 %$&@ 달러가 소요됨. 이는 아래와 같이 청구하겠음.]
한스 톰젠 대리 대사는 미국에서 최대한 독일에 대한 여론을 좋게 하고, 미국이 소련을 돕지 않고 고립주의를 유지하게끔 여론을 조장하느라 많은 노력을 하고 있었던 것 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언론사 등에 뇌물을 바치는 것이 필수였다.
[뉴욕타임즈에 광고를 하기 위하여 &%@$달러, 일러스트레이터를 섭외하느라 %$@& 달러가 소요됨. 이는 아래와 같이 청구하겠음.]
[정치 평론가를 섭외하느라 %$^&달러 소요됨. 조만간 뉴욕타임즈에 사설이 나갈 것임.]
한스 톰젠은 영수증을 첨부할까 하다가 영수증과 관련 증거 서류들을 화장실로 가져가서 지포 라이터를 이용해서 불로 태워버렸다. 매캐한 연기가 화장실을 가득 채웠다.
"켁...켁..."
당연히 톰젠은 서류를 대사관 마당이나 옥상에서 소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 대사관 건물은 언제나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었다. 그렇기에 문서를 대량으로 소각하는 연기가 눈에 띄면, 그것만으로도 독일이 미국을 배신하는 신호가 아닌가 많은 사람들이 의심할 것이 분명했다.
최근에 대사관에서 직원들이 쓰던 라디오가 고장나서 수리를 시도하다가 폐기하기 위해서 대사관 마당 쓰레기통에 버렸는데, 새벽에 누군가가 침입해서 쓰레기통에 들어있던 고장난 라디오 부품을 가져간 것 이었다. 톰젠을 비롯한 대사관 직원들은 미국 첩보 기관은 이 고장난 라디오 부품을 무선 통신 장치, 혹은 암호 해독 기기로 의심을 해서 가져갔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측했다. 좀도둑이라면 쓰레기통에서 다른 쓸만한 물건들도 가져갔을 것 이었다.
톰젠은 서서히 자신의 목을 죄어오는 미국의 첩보망을 상상하며 신경이 곤두섰다.
'MID(미국의 육군 첩보과)인가? 아니, ONI(해군 첩보부)?'
톰젠은 독일 외무성에 보내는 전문에 다음과 같이 추가했다.
[여태까지 보낸 영수증은 전부 외무성에 보관하지 말고 소각시켜주길 바람. 그렇지 않을 경우 미국 내에 친독일 의원들, 그 외 독일을 도와주는 여러 좋은 친구들의 정치적 입지가 끝장날 수 있음.]
한스 톰젠은 전문을 보낸 다음, 대사관 창 밖으로 길거리를 쳐다보았다. 맞은 편 건물 창가에 나이든 여성의 얼굴이 보였다. 눈이 마주친 듯 싶더니 이내 그 얼굴은 사라졌다. 저 여성은 평범한 일반인이 아니라 아마도 독일 대사관을 감시하는 미국 측 첩보원일지도 모른다. 한스 톰젠이 가장 우려하는 것은, 친독일파 의원들의 정치 생명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의 안위였다.
그렇게 한스 톰젠은 계속해서 독일 외무성에 영수증도 제출하지 않고 비용을 청구했다. 참고로 독일 외무성에서는 한스 톰젠이 영수증도 없이 매번 비용을 청구하는데 제대로 일을 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톰젠 이 친구 제대로 일을 하는 것은 맞습니까?"
"지난 번 뉴욕 타임즈에 광고가 나온 것은 사실이네!"
"매번 작가를 고용한다 일러스트레이터를 고용한다 이러는데 작가 나부랭이를 고용하는데 이 정도의 자금이 드는게 말이나 됩니까? 고작 30줄 짜리 짧은 사설을 썼을 뿐입니다."
"공작 비용은 여러 가지 복잡한 지출이 드는 법이니 별 수 있나?"
다른 외무성 직원도 투덜거렸다.
"시청자도 얼마 없는 라디오 방송국에 뭘 그리 달러를 뿌리는지 원..."
"그리고 미국의 고립주의자 의원 블록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톰젠의 그 친구라는 양반 말입니다! 정말 그 정도 영향력이 있습니까? 얼마 전에는 루스벨트의 진짜 의중을 알아낼 수 있다는 정치인에게 막대한 달러를 지출하지 않았습니까? 루스벨트는 백악관 그 누구도 믿지 않고 신뢰하는 측근한테도 꼭 필요한 정보만 주는데 이게 말이나 되는 소리였습니까?"
"믿어야지. 별 수 있나."
그리고 워싱턴에서 한스 톰젠은 또 다시 외무성으로 전문을 보내고 있었다.
[미 의회에서 고립주의 의원들의 힘이 더 커지고 있음.]
한스 톰젠은 독일 외무성에서 자신에 대한 여론이 그닥 좋지 않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톰젠은 자신이 열심히 뇌물을 뿌린 덕분에 뉴욕 타임즈, 그 외 여러 정치 주간지 등에 올라온 사설들을 스크랩한 파일을 읽어 보았다.
[소련이 미국의 잠재적인 시장이 될 것 이라는 경제적인 분석은 그 실상을 들여다보면 많은 오류가 있다. 다음 도표에 의하면 소련의 구매력은 %^&*$@# 이며 소련의 정치적인 상황과 이러이러한 것들을 고려했을때, 소련은 미국의 물건을 살만한 경제력이 없다.]
[세계대전때 러시아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던 것을 돌이켜보지 않아도, 소련에 지원해준 무기에 대하여 최소한의 돈을 돌려받지 못할 것 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어떤 기사에는 세계대전때 미국의 사상자 수에 대한 수치가 적혀 있었다.
[미국 국민들의 진정한 의사와는 상관없는 여러 외교, 정치적인 이유로 미국은 유럽 땅에서 이러한 손실을 보아야 했다. 다시는 이러한 일이 없어야 하며...]
[미국의 아들들이 외국 땅에서 피를 흘리는 일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 될 것 이다.]
[미합중국은 앞으로 독일 제국과 협력을 하며 &^%$]
한편, 엉터리 첩보원 토마스 삼총사는 미국에 도착해서 신나게 길거리를 구경하고 있었다.
"우와! 독일은 물자 부족으로 난리인데 애네들은 호황이네!"
지금 독일은 물자 부족으로 인하여 각 상점마다 [담배 품절] 이라고 크게 적혀 있었다. 담배는 군대에 먼저 지급되는 것이 원칙이었기 때문에 민간인들은 담배를 배급받기 위해서 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1941년 1월 독일의 길거리를 걸어가다 보면 어디서나 사거리 모퉁이를 넘어서까지 ㄱ자로 길게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담배 뿐만 아니라 난방용 등유까지 배급제가 시행되고 있었던 것 이다.
현재 독일에서는 담배 뿐만 아니라 비누, 나일론 스타킹, 머리핀도 부족했다. 독일의 자동차 회사들은 모두 군용 차량 생산에 투입되었기 때문에 민간인들은 바퀴가 너덜너덜해진 자동차를 타고 다니고 있었다. 독일 길거리를 다니는 자동차의 대다수는 바퀴가 걸레짝처럼 너덜너덜해진 상태였다.
출퇴근 시간마다 독일인들은 자동차의 시동을 걸기 위해서 뒤에서 열심히 인력으로 밀어주어야 했다. 타이어는 걸레짝이 되고 일부 기능이 망가져도 그나마 차가 굴러가는 독일인은 운이 좋은 편 이었다.
괴벨스의 기름 절약 캠페인에 따라, 아직 굴러가는 자동차를 타고 있는 직장인은 동료들 또한 차에 태워주어야 했다. 출퇴근 시간마다 지나가는 차들 대다수는 한자리도 남김없이 꽉 찬 상태였다. 그리고 이 차마저 못 쓰게 되면, 직원들은 전부 복잡한 대중교통을 타고 출퇴근을 해야 했다.
반면 미국의 차들은 죄다 쌩쌩하게 굴러다니고 있었다. 토마스 삼총사는 부러운 표정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길거리에는 최근 상영되는 영화, 뮤지컬 등의 포스터가 붙어 있었다. 시시껄렁한 연애물이나 코믹물이 대다수였다.
토마스 삼총사는 참고로 상당한 금액의 공작금을 받았기 때문에 연극도 보고 고급 레스토랑에서 밥도 먹고 담배도 사 피웠다. 토마스 삼총사는 이것이 반드시 필요한 임무라 생각했다.
'첩보전에는 그 지역의 문화를 익히는 것이 우선이지!'
'미국에서 정보를 캐내기 위해서는 완전히 미국에 동화되어야 한다!'
토마스 삼총사는 선술집에 들어가서 맥주를 마셨다. 한 쪽에서 미국인 청년들이 요새 유행하는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고, 토마스 삼총사는 가사를 모르면서 대충 멜로디를 따라불렀다. 그 미국인 청년들이 토마스 삼총사를 반겼다.
"이봐! 같이 부르지!!"
그 다음 토마스 삼총사는 나이트에 가서 야한 쇼를 관람하며 노래를 따라 불렀다.
"룰룰루~~ 룰룰루~~~"
그 나이트에는 포커를 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토마스 삼총사는 쇼가 끝나면 포커를 치기로 했다. 페터가 외쳤다.
"이따가 내 포커 실력을 보여줄게!"
이 말을 듣고 한 남자가 페터의 자리 밑에 있던 가방을 눈여겨보기 시작했다. 그 가방에는 참고로 권총, 자살용 독약, 위조 신분증, 무선 통신 장치, 공작금, 탈출용 쇠톱이 들어있는 작은 캡슐, 수갑 등이 있었다. 페터는 쇼에 집중하느라 자신의 가방이 소매치기의 타겟이 된 것도 모르고 있었다. 페터는 주머니에서 지폐까지 꺼내어 쇼걸한테 집어 던졌다.
"워후!!"
쇼걸이 페터에게 오는 사이, 그 도둑놈은 페터의 가방을 훔치고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도둑은 서두르다가 의자 다리에 걸려서 넘어졌다.
"우당탕탕!!!"
토마스 삼총사가 뒤를 돌아보고는 잽싸게 그 도둑놈을 셋이서 제압한 다음 주먹을 날리고 다시 가방을 빼앗았다. 곤봉을 들고 있는 엄청나게 덩치가 큰 가드가 달려와서 외쳤다.
"무슨 일입니까!!"
페터가 외쳤다.
"이 자식이 내 가방을 훔쳤습니다!!"
가드가 그 도둑놈을 제압하며 외쳤다.
"지금 즉시 경찰을 부르겠습니다."
헤르만이 외쳤다.
"괘...괜찮습니다!"
토마스가 외쳤다.
"분위기를 망칠 필요는 없지!"
"이 놈은 밖으로 던져버리고 쇼를 즐기자고!"
토마스 삼총사는 나이트 가드에게 팁을 찔러넣어줬고, 그 도둑놈은 몽둥이 찜질을 당하고 나이트 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렇게 토마스 삼총사는 실컷 관광을 즐기고, 미리 지령을 받은 작은 숙박 업소로 향했다. 오늘 저녁 8시까지 이 숙박 업소에 가야 했다. 페터가 중얼거렸다.
"앞으로는 신중히 움직여야겠네."
헤르만이 말했다.
"가방에 끈을 걸어두라고!"
토마스 삼총사는 숙소에 가면 위조된 신분증을 냄기고 가명을 대야 했기에 모두 머리 속으로 가명을 암기했다.
'난 정비병으로 취직해서 처음 이 도시에 오게 된 것이고, 일을 구하러 왔으며 ~'
'사무직으로 취직했고 나는 펜실베니아 출신이고~'
그렇게 토마스 삼총사는 빈대가 나오는 구석진 숙소에 묶게 되었다. 헤르만은 지급받은 자살용 알약을 꺼내어 확인했다. 자살용 알약을 보니, 자신들이 정말로 중요한 임무에 투입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헤르만은 자살용 알약을 옷깃에 집어넣고는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임무 도중에 발각되더라도 조국에 피해를 줄 수는 없네! 나는 잡히게 된다면 기필코 자살할걸세!"
토마스 또한 비장하게 말했다.
"임무에 실패하면 그 어떤 것도 누설하지 않을 것을 맹세하지."
"잡히면 온갖 고문을 받을거야! 그러니 잡히기 전에 자살에 성공해야 해!"
페터 또한 말했다.
"당연하지! 근데 이거 확실히 즉사하는건가?"
"..."
자신이 이 셋 중에서는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토마스가 말했다.
"권총으로 서로를 쏘아주는 것은 어때?"
"좋은 생각이야! 서로를 동시에 쏘는 거야!"
토마스와 헤르만은 각오를 다질 겸 서로를 향해 권총을 겨누는 시늉을 했다.
"조국을 배신하느니 죽음을 택할걸세!"
페터가 말했다.
"물론! 근데 나는 어떻게 죽지?"
세 명이라 짝이 맞지 않았던 것 이다. 헤르만이 말했다.
"내가 쏴주면 되려나?"
스스로 가장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토마스가 말했다.
"이렇게 원을 그리고 서고 동시에 서로를 쏘면 되네!"
그렇게 토마스는 헤르만을 겨누고 헤르만은 페터를 겨누고, 페터는 토마스를 겨누는 시늉을 했다.
"좋아! 이렇게 하면 양키들에게 누설할 일은 없겠군."
토마스 삼총사는 오늘 가방을 잃어버릴 뻔 했던 것을 떠올리며, 총과 나이프 대신 검문에 걸려도 괜찮은 무기를 만들기 시작했다. 페터는 길다란 끈에 단단하고 굵은 너트를 묶고는 뺑뺑 돌렸다.
"이걸로 제대로 내려치면 뼈도 박살 낼 수 있다고!"
헤르만은 길다란 양말에 자물쇠를 넣어두고는 휘둘렀다.
"이것도 한 방이면 두개골을 박살낼걸?"
그렇게 토마스 삼총사는 자기가 만든 무기를 휘두르다가 그만 숙소 벽에 걸려있던 액자를 박살냈다. 잠시 뒤, 토마스 삼총사는 숙소 여사장한테 사과를 하며 이에 대한 배상을 했다. 숙소 여사장은 토마스 삼총사를 매우 찝찝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는 돈을 받고 물러났다.
잠시 뒤, 토마스 삼총사는 코를 골며 골아떨어졌다.
"드르렁...드르렁..."
페터는 카바레 여자 댄서와 시시덕거리는 꿈을 꾸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의 목소리에 잠에서 일어났다.
"자네 이름은?"
끔뻑거리며 눈을 떠보니, 생전 처음 보는 신사가 방 안에 들어와서 페터에게 총을 겨누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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