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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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iG
작품등록일 :
2021.12.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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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2.28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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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백(5)

DUMMY

그러고 보니 저희가 오른 곳이 도봉산 선인봉(仙人峰) 박쥐코스였군요.

선인봉은 신선이 도를 닦는 곳이란 뜻이고, 일명 박쥐길은 이곳에 박쥐가 많아서랍니다. 아마도 박쥐가 여기 플레이크 속에 자릴 잡은 이유는 한낮의 열기와 야밤의 추위를 피할 수 있어서겠죠.

이 세상엔 박쥐 인간들이 좀 있지요? 특히나 한국 정치사에 무수한 사례들이 있고요.

들짐승과 날짐승들의 전쟁이 시작되면 이들은 간을 보기 시작해요. 양쪽이 팽팽할 땐 양다리 걸치기도 서슴지 않아요. 이윽고 한쪽이 기울기라도 할라치면 바로 선봉에 나서서 패배자를 짓밟지요.

기회 포착이 본능적으로 빠르거든요. 이 잡것들의 속마음은 이렇습니다.

“한쪽 편을 드는 건 미련한 짓이야. 난 이기는 쪽 편이 되어서 편하게 지내야지.”

전형적으로 ‘이기는 편이 우리 편’이라는 기회주의자거든요. 인간적 의리나 사상에 관한 정체성 등 이런 것에 대한 생각 자체가 없어요.

그렇지만 얘들 동화에도 보여주고 있듯이 종국에는 실체가 드러나 양쪽으로부터 외면당한 채 어두운 동굴 속에서 숨어 지내요.

그런데 문제는 이들 박쥐들의 똥을 암벽 등반 도중에 잘못 밟으면 바로 미끄러져 추락하거든요. 그래서 조심하라니까요!

더더욱 무시무시한 사실이 있어요. 이놈은 인체에 치명적인 감염병균을 종종 유발한대요. 면역체계가 남달라 수많은 바이러스와 공존할 수 있고, 날 때에는 40도까지 치솟아 병균이 몸속에서 활발히 활동할 수 없는 게 비결이죠.

결론은 여타 생명체에 바이러스를 마구 전염시키되 자기만 안전한 거죠. 여무명에 따르면 중국에서는 박쥐를 편복(蝙蝠)이라고 한대요.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예로부터 복(福)을 상징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고요. 장수를 상징하기도 해서 즐겨 먹기도 한대요. 심지어 천년 먹은 흰 박쥐를 먹으면 장수한다는 내용이 고서에 나올 정도래요.

서양에선 드라큐라나 뱀파이어라며 혐오하는 것과는 완전 딴판이죠? 앞으로 우리 인간에게 복을 줄지 재앙을 줄지는 두고 봐야겠군요.


헌데, 왜 이리도 느낌이 싸하죠? 앞으로 중국산 박쥐 때문에 무슨 불길한 일이 발생하는 건 아닐까요? 다른 이야기로 돌릴게요.


혹시 초등학생들도 다 안다는 시인 이육사가 쓴 시 중에서 박쥐가 있단 걸 알고 계시나요? 우리 대부분은 ‘광야’ 정도만 배웠죠. 이렇게요.

‘까마득한 날에 하늘이 처음 열리고 어데 닭 우는 소리 들렸으랴∼백마 타고 오는 초인이 있어 이 광야에서 목 놓아 부르게 하리라.’ 멋있었죠?


일제 강점기에 한국의 신세를 비유한 ‘박쥐’ 또한 이렇답니다.

‘광명을 배반한 아득한 동굴에서 가엾은 박쥐여! 영원한 보헤미안의 넋이여! 멸망하는 겨레여!’

참고로 그를 기리는 문학관이 경북 안동에 있는데, 앞으로도 이곳을 다른 의도로 활용할 분들이 많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건 왤까요? 여보게들 정신 좀 차리세. 다시 박쥐처럼 고독한 유령으로 살 거여!


후일담이랍니다. 푸시킨이 최면상태에서 던진 대사인데 보실까요.

“너무 졸립다(졸리다). 불 좀 키지(켜지)? 난 말이야. 2017년 초에···. 그러니까 몇 십 년 만에 귀국할 당시 서울 소공동 소재 프라자호텔에 묵고 있었다네.

물론 전에도 몇 차례 다른 이름으로 남한에 잠입한 적은 있었지. 남한 당국은 당연히 몰랐겠지. 국정원 삼춘(삼촌)들을 말하는 거라네.

내가 늘그막에 이처럼 고향인 남한에 자리 잡기로 결심한 이유를 아무도 모를걸? 이유는 정신적 조국인 소련 몰락과 동시에 포기했던 꿈인 사회주의의 불길이 여기서 다시 피어오르는 걸 목격했기 때문이라네.

난 그날 고국의 시민들이 광화문 광장에 나와 촛불을 들고 있는 모습을 호텔 방 소파에 앉아 내려다보고 있었지. 되게 멋지더군!

축제가 따로 없었다니까. 흰옷에 흙 묻히고 맨발로 살아냈던 소박한 백의민족이 드디어 붉은 죽창을 든 거였거든.

촛불처럼 불붙은 죽창을 연상한 걸세. 마치 동학농민운동과 같았지. 내 눈에는 촛불이 어렸을 때 대학가에서 직접 그려 붙였던 그림에 단골로 등장하는 횃불로 보이더라고.

야간 전투에서 횃불을 들고 싸우는 병정(兵丁)들을 이르는 것이지. 그리고 난 호텔 유리창 넘어 보이던 집단에 대해 촛불을 병기(兵器)로 삼는 촛불병정이라고 불렀단 말일세. 자네들은 모르는 사실이 있지. 난 황시증(黃視症)이란 병을 앓고 있어. 그것 때문인지는 몰라도 밤마다 가생이(가장자리)에 달과 별과 촛불이 함께 너울거리는 노란색의 장관을 볼 수 있었다네···내 어찌 이를 아름답게 여기지 않겠나?”


저 다나엘은 80년대 서울 사투리를 여태껏 쓰는 푸시킨의 표현을 듣고, 잠시 병정들에 관해 생각해 보았지요.

병정을 역사적으로 살피자면 원래 자발적인 경우도 물론 있겠으나, 대부분 징집되었거나 자기가 왜 그런 전쟁에 참여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습니다.

노회한 위정자들이나 이상을 좇는 몽상가들에게는 병정은 한낱 그들만의 전쟁수행을 위한 병장기와 같은 것에 불과했으리라.

그에 따르면 푸시킨은 원래 미술학도였대요. 순수미술만 고집한 것이 아니라 현실참여형의 예술가였던 것이죠. 인민의 저항정신과 사회주의 제도의 위대함을 그림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더 잘 표현하기 위해 유학의 길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 결과는? 인체의 피에 해당하는 사상을 소련 붕괴와 함께 포기한데 이어서 그 사람에게 살과도 같은 예술가의 길도 접었다는군요.

곧이어 발을 내디딘 암흑세계에서는 피와 살이 튀는 현장을 경험하면서 붉은 피와 살이 영혼에서 멀어지면 검은색으로 변한다는 것을 배워야 했다는데···.

그의 표현이 너무 어렵죠. 그쵸? 푸시킨이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건넨 이야기는 다시는 이데올로기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지 않는다고 했죠.

그렇다 해도,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러시아와는 관계를 끊을 수 없음을 고백하다니!


저 다니엘의 눈에 푸시킨이 호텔 방에 걸어놓은 2개의 국기가 눈에 띄었어요. 태극기는 아니었고요. 구(舊) 소련 국기와 현재 러시아 국기였지요.

소련 국기는 붉은 바탕 위로 별(공산당), 망치(노동자), 낫(농민)이 다소곳이 자리 잡고 있네요. 난 개인적으로 이 국기에 대해 이견이 있답니다.

러시아는 도끼의 나라가 아닌가요? 춥고 험한 숲에 나무 집을 짓고 생활하기 위해서는 이 연장이 필수였던 터. 그래서 망치와 낫 외에도 도끼가 함께 했으면 더 어울리지 않았나, 하는 개인적 소견을 가지고 있답니다.

러시아 사람들이 사랑하는 도스토앱스키의 죄와 벌에 나오는 주인공 라스콜리니코프가 노파와 그녀의 동생을 무참히 처형한 것도 바로 도끼가 아니었던가요?

그런데 하고많은 문양 중에서 어째선지 소련 붕괴 후 세워진 러시아기는 백•청•적 삼색기였죠. 세부적으로 접근하니, 더욱 놀랍군요.

백(白)이 고귀함과 진실•자유를, 청(靑)이 정직•헌신•충성을, 적(赤)이 용기•자기 헌신•사랑 등 좋은 것은 모두 자국기에 의미를 부여했다는 것도 충격이었지만 더 신기한 것이 있어요.

이들 백색과 청색, 그리고 적색이 태극기와 같은 색일 뿐만 아니라 흰색은 천상을, 청색은 하늘을, 적색은 속세를 나타내는 동양적 신비마저 내포하고 있다는 점이에요.

국기만 보더라도 분명 러시아는 유럽과 아시아를 동시에 쥐고 있는 지리적 대국이었던 것이죠. 요즘 러시아는 더 이상 공산주의 국가가 아님을 강변해요.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뽑는 민주주의 국가임을 표방하고 있으니···. 주변 국가들은 뭔가 이상하고 왠지 찝찝하다며 정말 민주주의가 맞기는 하냐는 입장인데 반해, 정작 러시아 측에서는 타국 사람들이 그런 거 따지면 홍차 마시다 죽을 수도 있음을 점잖게 암시하네요.


이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 나라의 국기가 떠오른답니다.

바로 오성홍기(五星紅旗)죠. 구 소련기와 비스름하네요. 붉은 바탕에 황금색 왕별과 그 주위를 두르고 있는 4개의 작은 별인 데, 큰 별은 당연히 공산당을, 작은 별은 노동자, 농민, 지식인, 애국적 자본가를 각각 표현한다고 하니 더 놀랍지 않나요?

인텔리와 자본가도 포용하고 있다잖아요. 이러한 배경으로 인해서 포용을 배제한 어떤 나라와 달리 경제적으로 마구 발전을 거듭한 비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다른 한편으로는 아직까지 굳건하게 공산주의를 표방하고 있는데, 이곳 역시 맞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고, 주변 국가들을 많이 헷갈리게 하죠?

어떤 경우에는 자본주의 국가들보다 더 자본주의 색채가 농후하기 때문이랍니다. 저는 이런 식으로 각 나라 국기의 디자인과 색을 음미하는 취미가 있어요.

그러면 그 나라의 역사와 구성원들의 정신, 그리고 현재 표방하고 있는 시대정신을 체크할 수 있어서랄까요. 적어도 표면상으로 표방하는 것이 비록 진실은 아닐지라도 겉으로는 소중한 척은 한다는 걸 말이죠.


【들은풍월을 한두 마디 엮어 읊다.】


소나 돼지 등 가축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걸 눈치 채고 강하게 저항하거나 체념한 채 눈물을 흘린다고 하죠.

그런데 어떤 가축 몰이꾼이 도살장으로 인도하는 돼지들은 너무나도 행복하게 끌려가더래요. 죽는 순간까지도 곧 죽임당할 운명임을 몰랐던 것이겠죠.

신비한 몰이꾼의 비결은 바로 콩이었답니다. 도살장으로 돼지 떼를 끌고 가는 길에 콩을 살포시 뿌려놓았던 것이지요.

“백성들은 들을지어다! 혹시 이따위 콩 한 알땜시 영혼마저 넋과 바꿔먹은 인간들은 없는가?”

왜, 있잖아요? 나라님이 하사하시는 각종 지원금들! 아님 요상한 정책자금들이요.

이제 눈치 채셨죠? 님들이 황송해서 받는 그것은 다 여러분 자녀들이 장차 먹고살아갈 돈이거든요. 그렇답니다. 나라 곳간이 비어가고 있다니까요.


현명한 자유민주주의 시민이라면 바람이 주는 암시를 눈치 채야 해요. 나뭇가지와 파도는 혼자서 움직이는 게 아니기 때문이에요.

이런 경고를 무시하단 영화 올드보이에 나오는 오대수처럼 15년 동안 독방에서 만두만 처먹을 수도 있다니까요. 화내지 마세요. 농담이라잖아요.


참고삼아 다산 정약용 선생님의 한시 리노행(貍奴行)을 띄엄띄엄 보실까요. 다산은 당시 조선사회가 전서(田鼠-들쥐)와 가서(家鼠-집쥐)들이 안팎으로 다 해 처먹는데 그치지 않고, 이것들을 감시해야 할 리노(貍奴-고양이)가 알고 보니 쥐떼들이 떠받드는 더 큰 도적님이었다고 풍자하고 있지요.


그래서 ‘직욕분검행천주(直欲奮檢行天誅-당장 칼을 휘둘러 천벌을 내리고 싶다)’라고 하셨답니다. 그러곤 ‘고양이를 죽이고 쥐들이 횡행하면 사냥개를 부르리라’, 라고 하셨고요.

백성이 하다하다못해 부른 사냥개는 괜찮을까요? 물론 괜찮아야죠. 이제 정말! 이 시대 전서(田鼠) 및 가서(家鼠), 그리고 또! 리노(貍奴)는 누굴까요? 혹시 사냥개는 뉘신지 아시는 분, 얼른 손드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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