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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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niG
작품등록일 :
2021.12.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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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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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백(4)

DUMMY

‘Viva La Vida(인생이여 만세)’의 가사가 암시하는 미래에 당할 혁명 대상이 누구이건 간에 북조선이 3대까지 우뚝 설 수 있는 배경에는 수령 자리를 위협할 수 있는 위험인물들에 대한 지속적인 제거를 빼면 설명이 안 된다네.


여간해서 일반인들은 모르는 이야기지만, 간첩조직에도 생간(生間)과 사간(死間)이 있네. 어느 정도 혁명완수를 위해 물 다 빨아먹고, 더 이상 빨 것이 남아있지 않으면, 다른 조직으로 하여금 그 죽일 조직을 노출시켜 영원히 제거하는 비밀수법이니라.


그래서 한동안 간첩 잡았다는 소리가 없다가 느닷없이 한 건 했다는 당국의 발표가 있다면, 공화국에서 너희들도 먹고살라고, 다 죽어가는 폐물을 던져준 것으로 보면 되겠네. 이거이 바로 ‘윈 윈’ 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안 보이는 세상에서는 충분히 발생할 수 있는 공생방법인 듯싶구나!


그나저나, 다소 걱정되는 건, 13명에 이르는 백사 패밀리를 조지는 데는 적어도 50여 명은 족히 필요할 것으로 계산된다네.

푸시킨의 구(舊) 소련 패밀리에다 다른 세포조직을 집합시키고, 외국인 용병들까지 긁어모아도 쉽지 않은 숫자일 테지.

더욱이 실전을 방불케 하는 준전시 상황이 벌어진다면? 정예강군만 필요하지, 어중이떠중이는 짐만 된다네. 느낌 오시나?


특별히, 서울 한복판에서 대규모 총격전이 벌어질 가능성이 농후하거든. 마지막 발악을 할 경우에는 오래전 태백이란 자가 가지고 월남한 소련제 기관단총이 난사될 수도 있겠지.


장백이란 놈도 무술수준은 떨어지는 것으로 보이나, 타고난 스나이퍼(sniper-저격수)가 아닌가! 따라서 단숨에 한 번의 기습으로 끝내야 한다네. 실수가 있어서는 안 되겠네그려.


그나마 다행인 점은 여무명이 조직을 배신했다는 첩보를 입수했지 뭔가. 따끈따끈한 정보! 그자는 후장(後場)에 처리하면 된다네. 그럼, 백사를 배신할 한 놈만 더 확보한다면···.


다른 이야기지만, 내 친구 푸시킨이 요즘 큰 건을 진행하고 있다는구먼. 이번 정부에서 세다는 놈 불알을 꽉 잡고 있는 모양일세.

비즈니스에 있어서도 예술가 출신답게 ‘아트(art)’스럽지 않은가?


허나 이 땅에서도 시간이 얼만 안 남은 것 같아! 당초 20년은 무난하다고 보고 장기 비즈니스를 다방면에서 진행해 왔는데, 요즘 영 ‘아니올시다.’잖아? 잘들 좀 해보기요!




나 여무명이 뜻밖의 인물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을 받았다. 다름 아닌 죽련방의 한국거점 보스가 아닌가!


처음엔 당연히 의심부터 가더라. 죽련방이 날 만나는 자리에서 총으로 쏘려고 하는 수작일수도 있어서다.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굳이 자기도 위험부담을 안고 날 만나서 재낄 이유가 없다는 판단이 섰다. 그들의 요청을 과감하게 수락한 것이다.


만에 하나 혹시 모를 위험에서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 회사 나머지 4명에게 엄호를 부탁했다.

만나는 장소도 일부러 사람이 많은 특급 호텔 커피숍을 택했고, 옆 테이블에는 쌍장군과 담백 부녀가 원조교제 커플처럼 앉아서 만약의 사태에 대비 중이다.


철저한 위장을 위해 그윽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고나 할까. 쌍장군이 짚고 있는 지팡이는 유사시에 사제 총으로 변신할 태세다.

쌍장군이 직접 오랜 기간 공들여 만들었단다. 못 하는 게 없고 모르는 게 없는 사내일세!

아쉬운 점은 딱 한 가지, 본업이 무당임에도 잘 못 맞춘다는 것인데···.


한편, 다니엘은 조금 멀리 떨어진 테이블에 음악가로 위장한 채 앉아있다. 마냥 대기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첼로 박스에 원거리 저격용 소총이 들어있다.


혹, 독일제 HK416 총이라고 들어나 보셨는지? 미군이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할 때 쓰던 총이란다.


드디어 그자가 나타났다. 분명 혼자였다. 주변엔 수상한 자들도 아직은 보이지 않는다.


그가 먼저 이름을 밝힌다. 한국말이 유창하다. 당연히 본명은 아니다.

추측컨대, 그쪽 세계에서 쓰는 별명으로 보였다.

백미(白眉)란다. 흰 눈썹, 즉 뛰어난 자라는 뜻일 게다. 이어서 예전에 있었던 습격사건에 대해 사과의 뜻을 전해오는구나.

생각보단 괜찮은 인물이란 생각까지 들던데 연기는 아니겠지?

적어도 나에게 적의가 없음이 본능적으로 느껴져서다.

그러곤 시간이 없으니 본론으로 바로 들어가겠단다.

그의 입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오는 내용들은 나를 충격에 빠뜨리고 말았다. 나와 식구들에 대해 조직의 총역량을 동원하여 탐문했단다.

그 결과, 내가 식구들을 배신한 사실과 백사를 비롯한 식구들도 지금 날 노리고 있음을 밝혀냈다나 뭐라나?

이제 ‘적의 적’은 같은 편이라고 볼 수 있으니, 우리 함께 일을 해보자고 권유한다.

그러면서 “워먼 또우 스 쯍궈런.(우린 모두 중국인이다.)” 이라는 기초 중국어회화 멘트까지 날리다니!

이미 내 정체를 소상히 파악하고 있음이 분명한데···.

이어진 설명은 자신이 어떻게 백사에게 배신당했고, 이렇게 불구가 되었다면서 소매를 걷어붙이더니 의수(義手)를 뽑아내는 것이 아닌가!

분명 팔 한쪽이 없었다. 나에게 신뢰감을 주려는 다소 과장된 의도로 보였지만, 커피숍 안에 있던 영문을 모르는 손님들은 거의 토할 것 같은 표정들을 짓고 있다.


백미는 나 여무명이 어느덧 자신을 어느 정도 신뢰한 것으로 판단한 나머지 한 가지 새로운 사실도 털어놓는다.


아니! 염소도 곧 해치울 것이라는데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이자가 염소마저도 알고 있었고, 겁 없이 그를 제거하겠다고 호언장담하는 걸 보면, 보통 인물이 아니리라!


뒤이어 염소를 이 땅에서 삭제하려는 이유를 나열한다. 염소가 자기들의 나와바리인 마약유통에 관여하고 있다는 거였다. 계속 벼르고 있었단다.


염소가 과거 소련 위성국가인 중앙아시아 조직들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아편까지도 유통하려 한다는 것이다.


예전에도 벌써 한 번 붙은 적이 있었단다. 자신들이 몇 년 전부터 일본 야쿠자와 연합하여 소위 ‘허브 마약’을 필로폰의 1/10가격에 공급함으로써 한국 소비자들을 감동시키자, 염소의 마약유통 세부조직에서 한국 당국에 밀고해 체포당하게 한 것도 모자라 언론에 제보하여 난리를 피웠다는 것까지도.


한국 언론에서는 일본산 허브마약이 사람을 죽게 하는 인체에 치명적인 독약인 것처럼 떠들어 지금은 그 장사를 접게 되었단다.


나 여무명은 일단 백미의 장황한 설명을 다 들어준 후에, 생각해 보겠으니 시간을 달라고 했다.


빠져나갈 핑곗거리를 찾다가, 죽련방 조직 내 로켓 우먼이 아직 악감정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염려의 뜻을 전달했다.


그런데도 백미는 그건 자기 부하이니 자신이 알아서 하겠다며 걱정 말라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일단 헤어졌고, 우리 회사원들과 긴급회의를 열었다. 회의결과는 우리가 백사나 염소 무리에 비해 수적 열세가 여실하므로 백미와 죽련방의 제안을 무조건 뿌리칠 수는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정확히 일주일 후! 나 여무명과 다니엘은 물론이고 쌍장군과 담백에다 청백까지 백미의 초대를 받았다. 아니! 중식당도 아니고 강남의 고급 일식집이라!

백미가 자기는 중국음식에 질렸다며 일식으로 하자는 제안을 먼저 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첫 만찬은 인원이 꽤 되므로 큰 방을 예약했단다. 그 일식집 또한 자기 수하들이 경영하는 것이라고 소개한다.


우리 측 회사원 5명이 자리에 착석하자, 저쪽도 보스를 비롯한 5명이 착석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예약된 방 안에서 회를 직접 뜨고 있는 자는 로켓 우먼이 아닌가! 여기서부턴 견녀 내지는 로켓 우먼이라고 부르지 않고 본명인 리쿠라 하겠다.

리쿠는 나 여무명을 쳐다보지도 않고 오직 회 뜨는 일에 전념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내 앞에서 그것도 얼굴을 부들부들 떨며 횟감에 칼질하는 모습으로 인해서 마치 내 갈비뼈에서 살을 발라내는 엽기물이 연상되더라!


난 그 모습에 질려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리쿠가 내 속내를 알아챈 것일까? 얼굴이 조금 떨리는 현상은 성형수술 후유증이라며 너무 신경 쓰지 말란다.

이렇게 배려심이 많은 여인이었다니! 그럼에도 난 신경을 안 쓸 수 없었다.


이번에도 그녀가 손에 쥔 칼에는 선명하게 ‘세키시(關市)’라고 적혀있었다.

견녀, 아니 리쿠는 분명 한 가지 명품만을 고집하는 마니아임이 틀림없을 듯.

이것이 진정 ‘오타쿠’가 아니던가! 그녀가 잠시 등을 돌리자, 거대한 등짝에 적혀있는 한자가 학구(鶴龜)?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은 도복이라기보다는 도포인데? 검은색 도포 뒷면에 흰색 달인지, 해인지가 떠있구나. 그 동그라미 안에는 정확히 학구라고 적혀있었다. 장수를 상징한다는 학과 거북이라!


쌍장군이 리쿠와 나 여무명 간에 흐르는 어색한 분위기를 전환시키기 위해 끼어든다. “아니, 츠루카메(鶴龜)!” 다소 과장된 리액션이었다.


리쿠가 무표정하게 응답한다. “오카상(어머니)이 저를 출산한 장소므니다.”

그럭저럭 시간이 흐르고 술이 들어가자, 분위기가 무르녹았다.


백미는 자신이 시를 한수 읊겠단다. 우리의 천재소년이자 어린 전사인 창백은 그 시를 접하자마자 이백의 조발백제성(早發白帝城-아침에 백제성을 떠나며)이라고 아는 척을 하는구나!

역시 어려서부터 백수였던 아버지를 따라 한학을 공부했던 효과가 빛을 발하는 순간! 백미는 잠시 한국의 어린학생이 이를 알고 있는데 대해 놀랐다는 표정을 지으며 읊기를 계속한다.


‘----양안원성제부주(兩岸猿聲啼不住-강 양쪽 기슭에 원숭이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그치질 않는데).

경주이과만중산(輕舟已過萬重山-날렵한 배는 이미 겹겹이 쌓인 산들을 지나고 있네).’


백미가 시 읽기를 마치면서, 나 여무명이 백사 소굴에서 탈출한 것을 축하하는 의미로 골라봤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후일 난 이 시의 의미를 찾아보니, 이백이 역모에 연루돼 체포된 상태에서 유배를 가는 중이었는데, 그곳 백제성을 지나면서 사면 소식을 듣고 지은 시였다.

즉, 자유의 몸으로 살아났음을 힘차게 묘사한 것이다.

대충 내 사정과 시의 배경 및 의미가 맞아떨어져 진한 감동이 몰려오는구나!


백미는 설명을 계속한다.

“백제성에서 장강(長江-양쯔강)을 바라보는 장소는, 이백(李白)뿐만이 아니라 두보와 백거이 등 중국의 최고 문인들이 시를 남긴 곳입니다. 현대에 와서도 여기에 모택동•주은래•강택민이 직접 쓴 비들도 있지요. 이 밖에도 심지어 10원짜리 중국 인민폐에도 그곳이 그려져 있고, 삼국지의 유비가 제갈량에게 후사를 부탁하며 죽은 장소로도 유명하답니다. 껄 껄”


조직의 보스인 백미가 말이 많아지고 흥분하여 자기의 인문학 지식을 자랑치는 이유는 술 때문만이 아닐 터.

리쿠를 제외한 저쪽 4명이 모두 우리의 ‘베아트리체 첸치’인 담백의 얼굴을 보고만 것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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