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룡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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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등록일 :
2021.12.13 1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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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1.0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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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백(5)

DUMMY

다시 시점을 사건 현장으로 돌려서,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터진 것을 알게 된다.


조직의 보스로 보이는 자가 겁나게 싸우는 과정에서도 “어, 혹시, 이상하다.”란 말들을 줄기차게 되풀이했고, 독침에 맞고 죽어가면서까지 “우리 같은 편 같은데···.”란 마지막 대사를 치는데다가 독이 전신에 퍼져 떨군 얼굴에서도 억울하고 뭔가 잘못되었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우리 식구들은 그때까지만 해도 그의 말과 표정이 나타내는 의미를 모를 수밖에! 무지의 소치가 엄청난 결과를···.

서울로 귀가해 어머니의 낯빛이 사색이 된 것을 보고서야 끔찍한 실수가 있었음을 짐작했다.


염소가 후원하던 회사를 난장판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서류까지 도둑질했다는 질책이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더 괘씸하다는 비판을 받은 이유는? 오랜 시간 공들여 조성한 국내 자생 세포조직을 우리가 전멸시켰다고 하니, 이를 어쩌란 말인가!

그것도 전투력 측면에서 최고 우수한 실적을 올리고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 조직을 말이다.


더군다나 이들 조폭들은 해당 지자체와 짜고 각종 개발 사업을 벌여 떼돈을 벌어들임으로써 보급투쟁에 혁혁한 공로를 세웠단다.


우린 결국 어머니의 지시에 따라, 그 더러운 땅을 다시 수작업으로 파서 시신을 수습한 후, 비밀리에 장례를 치러줘야 했다.


염소가 화가 난 나머지 우릴 엿 먹으라고, 절대 굴삭기 쓰지 말고, 삽이나 곡괭이로 팔 것을 특별히 지시했다고 한다.


당시 계절이 혹서기(酷暑期)였거늘. 염소새끼는 정말 인정사정없는 놈이다.

얼마나 더운 날이었는지 묻었던 곳을 다시 파보니, 그 안에 있던 해골이 땀을 흘리고 있을 정도였다.

그건 뒤이어 벌어진 기기묘묘한 장면에 비하면 약과였으니! 다음 펼쳐진 풍경으로 인해 더위까지 줄행랑!

구덩이 속에서 시신과 죽은 가축이 뒤엉켜 허그 쇼를 벌이고 있는 평생 처음 보는 광경이여! 식구들은 영혼마저 털렸다.

그 작업 후, 다들 충격 먹고는 며칠씩 알아 누워야 했고. 따라서 여러분은 누가 허그쇼를 하자고 할 땐, 이것들이 영혼이 일도 없는 시신인지, 아님 잡축(雜畜)인지 꼭 살피세요!


그날, 해골들을 본 그날! 난 또 꿈을 꾸고 말았다.

뼈가 가득한 골짜기를 걷고 있는 자는 다름 아닌 나 여무명! 혹시 이곳이 망각의 초원(Forgetful Green)인가? ‘존 번연’이 감옥에서 썼다는 PILGRIM’S PROGRESS(천로역정)‘에 나오는···.


어쩜! 멸족한 저 뼈들에게 힘줄이 생기면서 서로 들어맞아 연결되더니 그 위에 살과 가죽까지 덮이고, 이내 생기가 들어오면서 살아나는 것이 아닌가!

남들이 다 죽었다고 여겼던 어떤 세력이 무덤에서 나오는 역사가 곧 일어날 것이 예상되는 건 무슨 이유일까?


난 그간 내 마음속 질병을 스스로 치유하는 과정에서 기초적인 정신분석학은 물론 심리학에다 최면요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를 섭렵하고 있다.

그 결과 최근에야 밝혀진 사실이 있으니. 서울에 온 시점부터 여태껏 꾸어온 환상의 꿈들이 실제론 ‘자각몽(自覺夢)’이었다는 것. ‘루시드 드림(Lucid dream)’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색깔까지 기억할 수 있었을 테지. 물론 대다수 꿈들은 악몽이었지만.

즉, 이러한 꿈의 종류는 스스로가 현재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이를 통제할 수도 있단다.


그러다 보니 매번 깨어나서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을 것이리라. 거의 일기에 기록할 정도였으니까. 중국의 사상가 장자(莊子)의 호접몽(胡蝶夢)도 자각몽의 일종이라는데? 꿈에 나비가 되어 즐겁게 놀았다는 고사를 일컫는다. 몰아일체의 경지 내지는 인생무상을 비유한다는···.


같은 이유로 다니엘 역시 자각몽을 꾸는 건 아닐까? 그가 나에게 해몽을 부탁하는 것들 말이다. 혹여 다니엘이나 나 여무명은 자신들도 모르게 자각몽을 일부러 즐긴 건 아닐까?

만약 이런 것들이 가상현실이라면 우리들은 누구인가? 어떤 자각몽은 남들의 꿈까지도 개입을 한다던데. 심지어 ‘공유몽’까지도 존재할 수 있다면 너무 비현실적일까?


또다시 뇌 속이 엉망으로 뒤엉키는 경험을 하고 있다. 정신 똑바로 차리자!


“그랬었구나!” 난 식구들을 소개하고 에피소드와 해프닝을 이렇게 추억해나가는 과정에서 왜 내가 의문의 공격을 받아야 했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염소가 나 때문에 화가 많이 나셨나 봐!

무슨 까닭으로 인해서 왜 하필 나일까? 계속되는 의문 속에서도 이상타. 정말로.

나 혼자가 아니라 우리 식구 모두가 나선 집단행동의 결과였는데.

나만 공격받은 것은, 이상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나의 막연한 추측은? 염소가 자신이 피해를 본 것에 대해 책임을 물을 대상이 필요했고, 동시에 어머니 백사도 오판에 대한 책임을 면하기 위해 희생양으로 나를 끓는 물에 삶으려고 작당했을 터.


이 밖에도 내가 구치소에서 스탠딩 오더에 대한 집행을 고의로 회피했다는 의심도 받고 있었는지라 공공의 적이 되어버렸다 치자. 또한, 내가 바이오회사의 서류를 가져다 본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었겠다. 그것도 큰 문제가···.


그러고 보니 그 회사 서류에 등장하는 투자회사나 협력업체들이 남조선 혁명을 위한 보급부대였더랬다. 바로 주가조작 보급부대에다 정의로운 인테리어 보급부대라···.

심지어 해당 바이오에 투자한 회사의 경우, 어땠길래···. 그들이 투자한 곳에는, 쉿! 설상가상으로 암호화폐까지도 다루는 남조선 혁명전사가···.


이러저러한 이유로 인해 내가 식구를 없애야 할 때가 왔다는 판단이 선다.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가 아니냐고?

이는 어린 날 매수해 이용만 해 먹은 집단이기에 상호 간 결자해지(結者解之)가 불가피한 시점이 임박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장황하게 나 여무명의 식구들에 대해 설명한 이유는 이들 개개인의 삶과 가족사가 바로 한반도에 도래해 살아온 민족의 역사 자체이기 때문이다.

즉, 우리들의 이야기가 한데 얽혀 한반도의 근현대사를 형성해온 연유일지니! 얼기설기 엮어놓은 그물 같은 민족사, 각 개인의 삶이 망라된 세력의 네트워크···.

숨겨진 집안과 핏줄들의 역사를 ‘블랙 코드’삼아 민족과 국가의 흐름을 가늠하는 것도 재미난 소일거리일 테지.


이런 흑역사를 색깔로 표현하자면 ‘피아노 블랙’이 아닐까? 그래, 피아노를 통해 집단의 리듬과 박자를 노래하자꾸나!

한편, 어떤 이들은 시대의 영웅보다는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리는 데 있어 민초(民草)들의 역할과 기능만 지나치게 강조한다.


쉿! 겉으로만, 말로만! 이것을 결초보은(結草報恩)이라고 해야 하나? 반면에 이런 백성들의 죽음조차도 초개(草芥)처럼 여기는 정권···.

망망대해를 표류하다 적의 총탄에 벌집이 된 채 불살라져버렸거늘. 그러나 정작 세상 이치를 제대로 모른 채 속임 당하고 있는 민초의 경우, 외세의 말발굽을 불러오는 단초가 되어 짓밟히고 말 것이며 종국에는 믿었던 자들로부터도 낫으로 베어지고 말 것인가!


이것이 풀들의 슬픈 역사라면, 어찌 찡하지 않겠는가? 잠시 격한 감정을 추스르자.

풀 이야기하다 보니,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 ‘정오의 휴식’이 생각난다.

고흐가 존경하던 ‘장 프랑수아 밀레’의 작품을 모작한 것이라는데···.

다만 밀레의 그림과 좌•우가 바뀌어 있다던데···.


누런 건초더미 위에서 오수를 즐기고 있는 남녀···. 예전에 나 여무명과 미백이 가을철 시골에서 임무를 마치고 잠시 건초 더미 위에서 쉬던 추억이어라.

고흐 그림 속 남녀는 낫을 가지런히 내려놓은 채 자고 있는데 비해, 우린 칼을 나란히 옆에 두고 누워 있었다.

그림 속 건초와 밭의 두껍게 다져진 노란색이 평화스럽다 못해 몽환적인데 비해서 구름 색깔과 뒤섞인 시퍼런 하늘이 너무 위태롭고, 그로테스크하구나!


나와 미백의 합동작전은 배신할 기미를 보이고 있던 고정간첩을 처치하는 임무였다. 장소는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라는 책에 맨 처음으로 나오는 전남 강진군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모란이 피기까지는 나는 아직 나의 봄을 기다리고 있을 테요.’의 시인 김영랑의 고향. 저기 외롭게 서있는 볼품없는 고택이 다산초당인가!

가끔 정치인들이 자기의 목적을 위해 이곳에 있던 다산 정약용을 소환하기도 한다던데···.


오늘 처리해야 할 대상자는 한가로이 풀을 베고 있구나. 왜 당에서는 굳이 저런 할머니까지 없애려 하는 것일까, 그리고 왜 할머니는 낫을 두 개나 사용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도 잠시.

우리가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해 겸손하지 못했다. 그분은 우릴 기다렸다는 듯이 낫을 양손에 쥔 채 자세를 바꿔 잡는다.

“백사동무가 보냈스므니까?” 누가 봐도 일본인이다.

글구 얼핏 보아도 근래 들어 만나 뵙기 힘든 고수다!

낫도 한국 전통 낫이 아니었다. 미세한 차이가 있지만 일본인들이 고대로부터 쓰던 무기다.


어머니 백사가 한낱 노파를 처치하는데 우리 둘을 함께 보낸 깊은 뜻을 알겠다. 비록 연세가 있으시나 틈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두 개의 낫이 왜소한 할머니 주위를 맴돌고 있다. 마치 도깨비불처럼 번쩍이면서.


고수들 간 싸움은 통틀어 3합(合)을 넘어가는 법이 없다. 다만 서로 오래 노려볼 뿐이거늘. 순간 결심이 서면 번개처럼 부딪쳐서 몇 합 정도에 승부 낸다.

그녀의 암호명은 Mrs. Bat’s eyes(박쥐눈 부인)였다. 너무 흉한 별명이다.

오히려 커다란 눈이 미국의 전설적인 여배우 베티 데이비스(Bette Davis)를 닮았다.


원래는 일본 전통무술 집안의 딸이었단다. 이분이 타향에서 간첩질을 한 이유는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 때문이었다는데···.

동생이 재일교포와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북송을 당함으로써 분단된 한반도 비극의 역사에 동참한 것이다.

북조선에서 동생을 볼모로 삼아 무술 고수였던 그녀를 포섭했다고 들었다.


젊은 시절에는 한국 주재 기자로 활동하면서 유력한 정재계 인사들에게 접근해서 많은 성과를 냈단다.

이래서 뻐드렁니를 드러내며 마구 웃어주는 일본 여기자를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알게 모르게 많이들 당한단다.

암튼 일본판 베티 데이비스는 이제 나이 들어 현역에서 은퇴했음에도 공화국의 귀국명령이 떨어지지 않아 시골에서 은거하며 대기하던 중인데, 전라도 노인을 만났단다.

힘이 장사라서 과거 동네 씨름판을 휩쓸던 그에게 끌려 늘그막에 사랑에 빠진 나머지 자수를 결심하던 중 남한 내 간첩들을 대상으로 한 감시전담조의 안테나에 걸렸던 것이다.


역시 고수다! 미백과 합동으로 사방에서 공격했음에도 미동도 없다.

이미 노인네가 휘두른 낫에 우리의 겉옷은 물론 속옷까지 수차례나 베어졌다.

일부러 봐주고 있다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구나.

그랬다. 그녀는 미백과 내가 마지막 기합소리와 함께 양쪽에서 찔러왔음에도 종국에 가서는 방어를 포기한 채 양 낫을 든 손을 웃으며 내렸다. 삶을 포기한 것이다.


그간 자기 죄를 회개라도 하듯이. 베티 데이비스는 우리에게 알 수 없는 말을 남기며 죽어갔다.

“임진년 조선 정벌 당시 우리 일본군은 이 땅의 성벽들이 너무 낮고 군사들의 창이 짧은 것을 보고 놀랐다는군. 오사카성의 높이와 넓이를 보게나. 그러한 난공불락의 요새도 점령당하는 게 운명이거늘···.”

지금도 그분을 생각하면 ‘킴 칸스(Kim Carnes)’ 노래가 들리는 듯하다.

‘Her hair is Harlowe gold, Her lips sweet surprise, Her hands are never cold, she’s got Bette Davis ey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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